소설리스트

87화 (87/193)

  정액은 슈리엘의 도움으로 빼냈다. 윗옷을 벗기고 눕힌 다음, 손으로 짓누른다는 다소 난폭한 방식으로. 그 과정에서 성대하게 가버린 건 덤이었다. 암퇘지 같은 신음을 내며 자궁 가득 찬 정액을 빼내는 모습은 음란하다 못해 저열하기까지 했다.

  남의 시선이 잔뜩 몰린 상태에서 가버리는 건 꽤나 색다른 경험이었다. 인간이 아닌 가축의 흉내를 낼 때 오는 배덕감. 목에 걸린 구속구와 합쳐져 완전히 슈리엘의 소유가 돼버린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달아오른 몸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게 조금 아쉽긴 했지만, 시간이 부족해 어쩔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선 개처럼 박히면서 헐떡이고 싶었으나 기껏 줄어든 배를 다시 팽창시킬 수는 없었다. 여러모로 아쉬웠다.

  기회가 된다면, 슈리엘을 꼬셔 어디 으슥한 곳에서 다시 시도해봐야겠다. 광장이나 뒷골목 같은 데가 좋지 않을까. 사람들이 오는 타이밍에 맞춰 강간당한다면 최고일 텐데.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마차에 올랐다.

  그렇게 수 시간이 지났다. 슈리엘은 약간의 손장난은 있을지언정 몸은 건들지 않았다. 틈만 나면 가슴을 주물럭거리고 다리 사이에 손을 집어넣는 등 평소와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삽입을 참았다는 점에서 고평가할 만 했다.

  "이제 곧 도착인가."

  창문 밖 풍경을 보던 슈리엘이 중얼거렸다.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 밖을 내다보았다. 멀리 보이는 거대한 성벽. 그리고 성벽 위로 얼핏 보이는 거대한 산맥. 웅장했다.

  산맥 곳곳에 세워진 거대한 첨탑들. 그 아래로 내려진 무수히 많은 계단. 흙이 있어야 하는 곳엔 돌벽과 계단이, 나무가 자랄 곳엔 뾰족한 첨탑이 대신 세워졌다. 못해도 수백 개. 슈리엘은 저 수많은 첨탑 하나하나에 최고위 방위 결계식이 펼쳐져 있다고 했다.

  "거대하네요."

  "땅과 산 자체가 성황청이니까."

  "굳이 저렇게 만들 이유가 있나요?"

  "만들다 보니 저렇게 돼버린 거지."

  성황청은 거대했다. 누가 설명해도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산맥 전체를 깎아 건물을 세운 그 위용과 규모는 어딜 가든, 아니 이 세계 전체를 뒤져봐도 없을 것이다.

  성황청이 처음부터 독립된 기관이었던 건 아니었다. 부서 정도밖에 안 되는 자그마한 기관에 이름난 사람들이 모이고, 악마를 어떻게 하면 족칠 수 있을까 연구하다 보니 저리 거대해졌다고 설명했다. 그 기간만 자그마치 오백 년. 성황청이란 이름으로 독립했을 땐 악마와 함께 피를 흘린 지 삼백 년이 됐을 때였다.

  도착까지 못 해도 세 시간일 텐데, 벌써 막대한 양의 신성력이 느껴졌다. 분열과 전쟁을 반복하던 인류가 악마라는 절대 악의 이름 아래 단결한 결과물이었다. 그 덕에 산맥 아래 세워진 도시는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했다.

  성역聖域 하일린.

  신의 기적을 바란 이들은 스스로 기적을 일구어냈다.

  "…."

  슈리엘은 어딘가 가려운지 자꾸만 목을 긁어댔다. 마기 침식. 따로 말하진 않았지만, 그것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나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목을 긁는 슈리엘을 보며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괜찮아요?"

  "아니. 안 괜찮아. 젠장."

  명색이 대행자인데 신성력에 거부 반응이 일어나다니. 그리 한탄한 슈리엘은 기어이 피를 보고 나서야 긁기를 멈추었다. 긁힌 피부는 재구축으로 회복시켜주었다. 원상태로 돌아오는 피부를 보자 부서진 아티팩트가 생각났다. 그게 있다면 지금 상태를 멈출 수 있었을까.

  "아티팩트를 부수는 게 맞는 선택이었을까요."

  슈리엘은 코웃음을 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딴 조잡한 기계로는 해결 못 해. 아마 정화 의식을 받아도 그대로일 거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잖아요."

  "마기를 조금이라도 억누르려면 신관의 도움이 필요해. 성물개조 따위가 아니라 진짜 신의 선택을 받은 신관의 도움이."

  신관. 제국 내 다섯 명밖에 없는, 직접 신에게 선택받은 자들. 세 명은 서부에, 두 명은 동부에 있다. 둥부에 있는 두 명 중 한 명은 성황청에 머물며 대행자들을 관리한다.

  검은 머리 신관 세르티.

  슈리엘은 그녀를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검은 머리의 신관이라니 조금 신기했다. 검은 머리는 마의 상징으로 여겨져 차별이 자자하다 했는데, 신관이 될 정도면 얼마나 신실해야 할까. 그러나 내 생각과 달리, 슈리엘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젠장. 얼굴 볼 생각하니 벌써 짜증이 나는군."

  "신관이랑 싸우기라도 했어요?"

  

  목을 긁으려는 슈리엘을 제지하고 묻는다. 동료를 생각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악우 정도가 맞겠지. 미워할 수는 없지만 가까이 하기는 싫은, 그런 얼굴이었다. 그래도 대행자 일을 하면서 수도 없이 만났을 텐데 평가가 박했다.

  슈리엘은 내 말을 듣곤 더욱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곤 상상도 못할 말을 내뱉었다.

  "그년은 창녀야. 신관이 될 재목이 아니라고."

  그 말을 들은 나는 한동안 말도 못하고 벙쪘다. 신관에게 창녀라니? 아무리 사이가 안 좋다 하더라도 선을 넘는 발언이었다.

  "…말이 험하시네요."

  "농담이 아니라 진짜 창녀다. 흑장미에서 몸을 팔던 창녀."

  슈리엘은 굳어버린 나를 대신해 설명해주었다.

  ―창관에 빛이 내려올 줄 누가 알았던가. 그것도 흑장미에. 차기 신관으로 지목된 세르티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즐기면서 돈도 벌고 있는데 갑자기 신관이 되라니?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자유를 제한당하는 게 걸리긴 했지만, 창관에 처박혀 손님을 받는 일보단 낫다고 생각한 거다.

  거기에 더해 그녀는 검은 드레스였다.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다 받으면서도 품위와 밤기술만큼은 정상에 다른 여자의 칭호. 그 밤기술이 어디를 향했는지는 뻔했다. 소문으로는 팔라딘과 남사제들을 수도 없이 따먹었다고 한다. 심지어 몇몇 추기경의 순결도 건들인 것으로 추측되니 교단의 폐혜가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신성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막대하니 성황청으로선 대체재가 없었다. 그녀는 신에게 선택받은 자. 신관 일만 제대로 해준다면 무슨 짓을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슈리엘은 머리를 흔들며 투덜거렸다.

  "복장부터가 되먹지 못한 년이야. 천박해. 신은 왜 그런 여자를 골랐는지 모르겠구나."

  날 누구보다 천박하게 따먹은 사람이 그리 말하니 영 신뢰가 안 갔다. 슈리엘은 못 미더운 눈길을 받더니 어깨를 으슥거렸다.

  "상시 발정 난 암캐보다는 평소에 얌전한 강아지가 더 끌리는 법이지."

  "…."

  …참나.

  칭찬인지 희롱인지 구별이 안 된다. 낯부끄러운 말에 고개만 돌린 나는 하일린을 기대하며 눈을 감았다. 슈리엘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는 날 확 끌어안더니 다시 몸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 * *

  성역 하일린.

  인류의 염원이 구름이 되고, 마에 대한 증오가 신성력으로 화한 도시. 나와 슈리엘은 칼버드를 대동한 채 하일린으로 입성했다.

  하일린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대부분 첨탑을 관리하는 사제들이었다. 관리 해야 할 방위 첨탑의 수만 수백이 넘으니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닥 살기 좋은 곳은 아니었다. 이곳은 마의 일족을 처단하기 위해 세워진 성역. 인류의 번화는 제국의 몫이지 성황청이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성기사들의 경례를 받고 거리를 나선다. 길목은 온통 사제와 성기사 뿐이었다. 모험가 일을 하며 몇 번 보지도 못한 고급 인력들이 천지니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았다. 그러나.

  "삭막하네요."

  내가 내린 평가. 품은 기대와 달리 거리 사람들의 얼굴에는 정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슈리엘은 시골 촌놈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는 날 보며 말했다.

  "뭘 기대한 거지?"

  "그냥, 조금 더 번화로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굉장히 무미건조하네요."

  "악마를 상대하는데 사사로운 감정은 필요 없으니까."

  "…."

  "잠깐."

  그때, 슈리엘은 손가락을 들어 말을 끊었다.

  ―대행자 루셸리니!

  그는 들리는 목소리에 혀를 차며 걸음을 멈췄다.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인파에 눈을 돌렸다. 성기사들이 누군가를 보호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그 인간 방벽 속 비추어진 검은 머리칼. 슈리엘은 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쯧. 먼저 와 있었나."

  성기사들이 갈라지며 안을 내보인다. 그 속에는 170cm은 돼 보이는 여성이 웃으며 입을 가리고 있었다.

  포니테일로 묶은 검은 머리, 늘씬한 몸. 상체는 보란듯 가슴골을 드러내고 있었고, 옆으로 쭉 찢어진 치마 사이로 검은 가터벨트가 보였다. 그녀는 매력적인 눈화장 덕에 살짝 퇴폐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세르티."

  검은 머리 신관 세르티.

  그녀가 직접 마중 나왔다.

  "어머, 슈리엘. 오랜만이에요. 탑을 조사하는 임무 이후로 한 달 만인가요?"

  "…귀한 몸 직접 행차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농담도 참."

  옆을 보니 칼버드가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표하고 있었다. 판단은 신속했다. 고개를 숙여 예의를 표한다. 세르티는 신관이다. 그녀의 출신이 창녀든 뭐든 간에, 신의 선택을 받은 인간. 감히 무시해선 안 될 존재다.

  세르티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으음. 슈리엘. 당신이 여자를 데리고 다닌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요."

  "…신관님께서 신경 쓰실 일이 아닙니다."

  "후후… 제가 권유했을 땐 매몰차게 거절하더니, 다른 여자랑은 아이까지 만들 줄은 몰랐네요. 키 큰 여자는 취향이 아닌가 봐요?"

  갑작스런 돌직구에 몸이 굳는다. 나는 그녀가 신관임을 또 한 번 자각했다. 그녀는 신관神官이었다. 신의 일을 대행하는 자. 탄생의 축복 따위는 가볍게 사용할 줄 알 것이다. 날 향한 시선이 거두어지지 않는다. 세르티는 날 몇 분이나 관찰하다 눈을 돌렸다.

  "고개를 드세요. 못 보던 얼굴이 몇 명 생겼지만, 슈리엘의 말대로 제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니까요. 서로를 알아가는 건 나중으로 미뤄도 될 것 같네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는다. 그녀는 고혹적인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따라오세요. 대삼림으로 가는 길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해 뒀으니."

  악마를 잡으려면 기도만으로 부족하니까. 그녀는 다소 물질주의적 발언을 하며 등을 돌렸다.

  * * *

  

  교단 내부.

  세르티의 방.

  "자아… 그럼."

  모든 성기사를 물리고, 칼버드마저 밖에 대기시킨 세르티는 잔뜩 내려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왜 밖으로 내보내지 않은 거지. 의문이 들었지만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슈리엘. 옷 벗어요. 당장."

  옷을 벗으라니. 분홍빛 망상이 머리에 차올랐지만 금세 떨쳐냈다. 그런 생각할 때가 아니다. 순식간에 표정을 지운 세르티는 슈리엘에게 명령했다. 불온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

  슈리엘은 군말 없이 상의를 탈의했다. 그러자 보이는 붉어진 피부. 위로 생긴 습진. 나는 슈리엘이 자꾸만 몸을 긁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기 침식으로 인한 신성력 거부 반응. 신앙의 총본산인 성황청에 도착하자 더 심해진 거다. 세르티는 심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언제부터 그런 거에요?"

  "…."

  슈리엘은 말하지 않았다. 그냥 나갈까. 무거워진 분위기가 껄끄러웠던 나는 출구에 눈을 돌렸다. 정화 작업에 방해될 수도 있잖아. 그렇게 몸을 돌리려 하자, 세르티의 따가운 눈총이 날아왔다. 나한테 왜 이래 진짜.

 "어디서 저주라도 걸렸어요?"

  "…."

  "말 좀 해봐요. 지금 당장 정화 작업을 해야 해요. 심각하다구요."

  그녀는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붉어진 등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슈리엘은 그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도 무언으로 일관했다. 그렇게 말이 끊긴다. 세르티는 답답함에 고개를 돌렸고, 슈리엘은 도로 옷을 입었다.

  "이름이 유진이라고 했나요?"

  슈리엘이 말이 없으니 관심사는 자연스레 내게로 옮겨졌다. 세르티는 풍만한 가슴을 흔들며 다가왔다. 걸음걸이 하나하나가 색욕에 젖은 듯한 모습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이라면 실로 천부적 재능이었다.

  "둘이 무슨 관계에요?"

  그녀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며 말을 고른다. 육변기, 성처리용 장난감, 오나홀, 애완동물. 많고도 많은 별명이 떠올랐지만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세르티는 나마저 입을 닫자 입술을 약하게 깨물었다. 이 답답한 분위기를 어떻게라도 풀고 싶었던 나는 '일을 도와주는 모험가입니다.' 정도로 대답하려 했다.

  그런데.

  "내 전속 시녀다."

  슈리엘이 내 말을 끊고 대답해버렸다. 전속 시녀. 그가 보장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신분. 대충 상황을 파악한 나는 세르티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대행자 슈리엘 루셀리니 님의 전속 시녀, 유진이라고 합니다."

  "전속 시녀라… 성은 없는 걸 보니 평민인가요?"

  "…예."

  "제게 예의 차릴 필요 없으니 편하게 말하세요. 밖이면 몰라도, 지금은 우리 셋밖에 없으니까요."

  막상 고개를 숙이니 그냥 밝혀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모험가라고 차별받을 것 같진 않았는데 말이지. 당장 세르티의 출신만 봐도 흑장미 매춘부인데, 평민이라고 차별을 받는다니 어불성설이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세르티는 내 예의 바른 인사를 받곤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어갔다. 

  "심마心魔. 마음에 마기가 꼈으니 하루 이틀 정화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지속해서, 또 성실하게 임해야만 마음속 마기를 없앨 수 있어요."

  심마라. 이곳에서의 심마는 단어 자체에 의미를 둔 것 같았다. 마음에 낀 마기. 직관적이라 알아듣기 쉬웠다. 근데 뭔 차이가 있는 거지. 마기 침식은 알아도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세르티는 내가 바보처럼 눈만 굴리자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다.

  "일반적으로 마기는 영혼까지 건들진 못해요. 인간과 악마의 마나는 서로 극상성을 자랑하는 만큼 그 차이를 뚫고 들어오기는 쉽지 않죠."

  뒷말이 예상이 갔다. 이런 얘기를 한다는 건 항상 예외가 있다는 소리. 이 세상엔, 아니 어느 세상을 가든 '절대'라는 가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예상대로 '예외'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끔 벽을 뚫고 들어올 정도로 짙은 마기에 노출될 때가 있어요."

  세르티는 말했다. 악마와 계약한 자들. 혹은 제 욕망을 못이긴 상태서 마기에 노출된 자들. 이렇게 생긴 마기는 없어지지 않고 무의식 속에서 욕망을 부추긴다. 성황청은 이것을 심마라 불렀다.

  "슈리엘은… 솔직히 말해서 늦었어요. 지금 당장 정화한다 해도 변질된 영혼은 돌아오지 않아요."

  영혼의 변질. 한 번 생긴 심마는 평생 후유증으로 남아 성격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슈리엘은 이미 늦었다는 소리에 눈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침식은 얼마나 진행됐지?"

  "타락한 대행자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시다면, 이대로 두 달 정도 죽치고 앉아 있으면 될 것 같네요."

  "하아…."

  두달.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완전 타락까지의 시간이라 하니 짧게만 느껴졌다.

  "후후…."

  세르티는 묘하게 색정적인 미소를 지으며 후후 웃었다. 짜증 가득한 슈리엘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가 왜 웃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심각한 상황 아닌가? 왜 웃는 거지?

  

  "언젠가 이런 일이 올 거라 예상은 했지만… 대행자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임무 성공률을 자랑하는 그 슈리엘 루셸리니가 심마에 걸려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그녀는 가로로 쭉 찢어진 치마 사이로 손을 넣었다. 그러곤 매끈한 허벅지에 달린 속옷 끈을 조심스레 당산다. 대리석으로 치장된 바닥에 새하얀 속옷이 떨어졌다. 떨어진 속옷엔 끈적한 실선이 묻어났다.

  "어, 음. 세르티?"

  이게 뭐하는 짓이지. 세르티는 속옷을 벗곤 슈리엘에게 엉겼다. 풍만한 가슴을 등에 밀착하고 끈적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누가 봐도 유혹하는 모습이었다. 으음. 저 정도는 나도 해줄 수 있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음. 그녀는 내가 쭈뼛거리며 발만 동동 구르자 고양이처럼 눈을 떴다.

  "왜 하필 창녀였을까요? 서부에 있는 신관들은 무기를 들고 직접 전선에 나서는데, 왜 특출난 힘도 없는. 기껏해야 몸 파는 일밖에 못 하는 창녀를 신관으로 점지했을까요?"

  "네가 연약하다고? 개소리도 정도껏―"

  "후후. 대행자께선 잠시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슈리엘은 목소리를 내려 했지만 정체 모를 힘에 막혀 말하지 못했다. 마나의 흐름을 분석하니 아니나 다를까 침묵 마법. 세르티의 짓이었다. 슈리엘의 딴지를 다소 거친 방법으로 받아넘긴 그녀는 내게 말을 건넸다. 

  "유진. 각 신관은 신님에게 고유의 능력을 받아요. 누군가는 신탁의 능력을 받고, 누군가는 천무지체의 재능을 받는답니다. 그럼 저는? 궁금하지 않아요?"

  세르티는 슈리엘을 끌어안으며 커다란 가슴을 비벼댔다. 짓눌리고 쓸린 속옷은 마찰력을 버티지 못했고, 곧 분홍빛으로 빛나는 유두가 삐져나와 등을 간질였다. 어떤 남자라도 버티지 못하고 넘어갈 만한 음란한 장면이었지만 슈리엘의 얼굴은 썩어있었다.

  "저는 강력한 정화의 권능을 하사받았어요. 여러 명을 동시에 정화하는 일은 하지 못하지만… 대행자처럼 소수정예를 관리하는 일엔 더없이 적합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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