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거짓 선지자 (2)
"멍청한 신전 놈들… 웃기지 않나? 마법을 '신의 뜻'이라는 얄팍한 사상에 가둬놓고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려는 모습이? 하. 아니야… 그래서는 안 돼. 마법은 좀 더 다채로워져야 할 필요가 있어. 만들고 부수는 것만이 마법이 아니란 말이다. 애초에 마법이란 개인의 사상에 가둘 수 없기도 하고."
왼쪽 어깨에 붕대를 두르고, 몸에 가루약을 바른다. 자신을 헤리엇이라 소개한 남자는 나를 치료하면서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심지어 그는 치료가 끝나자 자신의 옷을 찢어 내 몸에 둘러주었다. 진득한 피 냄새가 풍기는 옷. 피 냄새야 익숙해 상관없었지만 이러는 이유가 궁금했다.
솔직히 말해서, 미친놈 같았다. 마법사라는 존재가 워낙 괴짜가 많긴 했지만 막상 만나보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쫓길 때만 해도 심각한 얼굴로 석궁을 쏘았던 놈이, 추격에서 벗어나자마자 손수 치료해준다니? 병 주고 약 주고 가 딱 맞는 상황이었다. 나 납치된 거 맞나.
하지만.
이 괴상한 반응이 식어가던 흥미를 다시 재점화했다. 내게 '흥미'는 행동 동기다. 흥미가 없다면어울려주지도 않는다. 신경 쓰지도 않는다. 의욕도 없이 움직이기엔 지독한 권태가 목을 죄어온다. 그러니 오직 합리대로만. 지금으로선 이 남자의 목을 따고 신전에 넘겨주는 것이 '합리'일 것이다.
내가 얌전히 따라가는 이유는 흥미뿐이니, 날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권태에 찌든 파이어볼이 날아갈 것이다.
"세상은 구도자에게 냉혹한 법이야! 모두가 내 참뜻을 몰라주고 있어. 하지만 괜찮다네. 이 또한 신께서 내린 시련. 되려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나를 건져준 신께 감사해야 함이 마땅하겠지."
내게 말하는 건지, 혼잣말하는 건지 모르겠는 중얼거림을 들으며 헤리엇을 따라간다. 그는 나를 속박하지 않았다. 나를 보지도 않고 오로지 전진만 한다.
헤리엇은 일부러 길을 꼬아서 갔다. 밟힌 풀을 보고 추적을 할 수 있다나 뭐라나. 되도록 억센 풀이 자란 곳으로 갔다. "이름도 없는 풀이지마는, 의지력 하나는 배울 만 하다네." 라고 운을 띄우며 또 떠들어대는 그를 보자 현기증이 났다.
청각을 차단할까 말까 고민하던 사이 외곽 중심부 도달했다. 높이 뻗은 나무에 가려져 앞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 그때, 헤리엇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자. 소녀여. 놀라진 말게나. 이제 곧 '마을'에 도착하니."
"…?"
"뭐 보면 알겠지."
그대로 한 발자국 앞으로. 풀이 죽어있는 부분을 건너자, 세상이 일렁였다. 결계였다. 인식 저하 결계. 미궁에 사용된 것과 비슷한 종류의 결계였다.
"여긴…."
결계를 넘어 안으로 당도하자 넓은 공터가 보였다. 그 위로 세워진 허름한 나무판자 집. 헤리엇이 말한 '마을'은 흔히 볼 수 있는 판자촌이었다. 햇빛도 잘 들지 않아 굉장히 음침해 보이는 마을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무덤덤하게 감상평을 들려주었다.
"허름하네요."
"하지만 모두가 행복한 곳이지."
"…."
여전히 의미 모를 말만 주절거린다. 그래서 더 께름칙했다. 이 마을의 분위기도, 이상할 정도로 말이 많은 헤리엇도. 인제 와서 겁을 먹은 건 아니다. 기분이 나쁠 뿐이다. 바퀴벌레가 인간보다 강해서 무서운 게 아니잖는가. 그냥, 생리적인 혐오가 몸을 잠식했다.
내가 눈을 찡그리고 눈만 돌리고 있을 때, 헤리엇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자, 마을 주민 여러분!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짝짝! 헤리엇이 박수를 치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쿵!
동시다발적으로 문이 열린다. 고작 몇 초간의 오차를 두고 차례대로 열린 문 사이로, 무언가의 형체가 보였다.
"……."
"어떤가? 내 걸작들이."
헤리엇의 입에서 걸작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나온 것들은 인간이었다. 아니, 인간이기를 원하는 고깃덩이였다.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 저런 것들을 본 적이 있었다. 흔히들 키메라라 불리는 것들이 저런 모습이었지. 인간은 아니었고 몬스터였다. 마탑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기행 중에는 몬스터를 섞는 실험도 있었다. 보통 고블린이나 힘줄을 자른 오크 따위의 몬스터를 사용해 실험을 주도한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면역 거부 반응이라는 기본적 개념도 없는 마법 편의주의적 세계에서 신체 이식은 고사하고 이종간 합체가 성공할 리는 요원했다.
그런데.
'저것들'은 인간이었다. 실패하지 않은 인간들. 실패하지 않아서 인간이 되지 못한 이들. 바닥을 기어 다니는 자의 다리는 여섯 개였다. 모두 크기가 달랐다. 눈은 세 개였다. 저게 그나마 온전한 형상임을 깨달은 건 다섯의 주민을 눈에 담았을 때였다.
나는 정색을 하고 헤리엇을 올려다봤다. 그는 여전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정면을 주시했다. 자신이 만든 결과물의 아비 되는 것처럼 자랑스럽게 웃었다.
"미친놈."
"동감일세. 하지만 광기는 예술가들의 오랜 친구가 되어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지. 안 그런가? 난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일세."
―으그극… 헤, 헤리어엇…
머리가 두 개 달린 고깃덩어리가 그극거리며 다가온다. 피가 말랐다. 오만상을 찌푸린다. 몸을 기어오르는 혐오감에 반사적으로 거리를 벌렸다.
―바, 반가, 워. 요.
그러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따듯한 한마디가 들렸을 때. 나는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저것'은 살짝 슬픈 눈을 지은 채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눈 대신 단추가 박혀있는 인형 같은 모습이었지만 나는 그 표정에서 슬픔을 읽을 수 있었다. 헤리엇은 벙찐 채 가만히 있는 내게 눈치를 주며 훈계했다.
"너무 정색하면 주민들이 슬퍼할 걸세. 그보다 반갑네 클라라! 아니 루리인가? 한 몸이 되었으니 클루리? 뭐 어찌 됐든 나 몸 성히 돌아왔으니 보수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클루리는 나중에 날 찾아오도록. 그리고 내가 살아 돌아온 건 모두 이 작은 소녀 덕분이니, 감사를 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자 클루리, 고개 숙여야지?"
―고, 고맙. 습니다다.
키가 2미터는 되어 보이는 머리 둘의 거구. 녹아내리다 만 듯한 근육을 열심히 움직여 고개를 숙인다. 나는 저 덩치에서 어린 소녀의 순진무구함을 발견했다. 머리가 싸늘하게 굳는다. 살인 충동이 일어나려는 찰나, 헤리엇은 내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나름의 변명을 시도했다.
"저들이 부탁한 거라네. 죽어가는 한쪽을 살리려면 멀쩡한 몸에 기생하는 수밖에 없었어. 덩치는 필수적으로 늘려야 했고. 목숨이 위태로울수록 원형을 유지하기 힘들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괴물로 바꾼 겁니까."
"괴물이라니! 도대체 누가 인간을 정의했지? 신? 아니! 인간들이 자기 자신을 정의하고 스스로를 가뒀을 뿐이야. 이들도 엄연한 인간이라네. 여기에 있는 주민들은… 그래, 적응하지 못했다고 함이 맞겠지. 그래서 내 기꺼이 보살펴주는 중이라네."
핏덩이에서 흘러나오는 악취에 코를 막고 헤리엇을 노려본다. 미친놈. 죽어가는 인간을 이렇게 만들 바에는 그냥 죽이는 게 나았다.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비참한 모습이었다.
"고작 그런 개똥철학을 보여주려 절 여기까지 데려온 겁니까? 당신은 그냥 미치광이입니다. 후세에도 인정받지 못할, 미치광이."
"평가가 박하군. 내 손을 거친 모든 인간을 이런 모습으로 바꾼 건 아니라네. 오히려 멀쩡한 모습으로 건강해진 사람이 더 많아. 그들은 도시에 녹아들어 자신만의 삶을 찾아갔지."
"…백 번의 선행을 했다고 한 번의 죄악이 지워지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백 번의 선행이 인정받지 못하는 건 또 아니지. 내가 쌓아둔 인망은 현실로 나타나 나를 도와준다네. 끌끌. 신의 뜻만 주야장천 외치며 날 죽이려 드는 신전 놈들보단 몇 배는 나아."
"…."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니 말이 맞물리지 않았다.
이래서는 평행선이다.
헤리엇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내 비난일색을 받고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가슴을 쭈욱 폈다. 저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인간들을 보라. 행복해하지 않는가.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부덕함이 흘러나왔다.
확실히.
저들은 행복해하고 있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있었다. 서로의 모습에 연연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그들의 삶에 끼어들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몰라도 됐다. 그냥. 좆같았다. 기분이 몹시 좆같았다. 억지로 행복을 주입하고 살아가게 하는 헤리엇이 너무 혐오스러웠다. 지금 이순간. 이성보다 본능이 휘몰아쳤다.
나는 말 대신 행동으로 나서기로 했다. 마나를 끌어 올린다. 고통 없이 한 번에 죽여주마. 말하는 게 흥미로워서 따라왔더니 기분만 잡쳤다.
땅이 진동한다. 나무 사이로 세차게 불던 바람은 마나의 흐름에 막혀 다가오지 못했다. 헤리엇은 마나의 양이 상상 이상으로 많아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허튼짓 하지 말라며 손을 저었다.
"내가 자네를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몰라 씨발… 알고 싶지 않아."
"허허. 어린 것이 입이 참 험하군그려."
그 순간.
주민들이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살벌하게 파동치는 마나의 격류에 겁먹지 않고 당당히 다가왔다. 그들의 눈엔 연민이 담겨있었다. 어째서? 라는 의문이 머리를 스친다. 저들이 날 연민할 이유가 어디 있는 거지?
―싸우, 지 마세요….
―저, 저희는 괜찮아요….
땅을 터트려 전부 생매장시키려 할 때. 그들의 외침이 내 마법을 멈추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속으로는 저들이 인간이라 생각하기 때문일까. 찰나의 망설임이 생겼다. 저 흐느낌이. 녹아내린 근육이. 그런데도 인간성을 잃지않고 내게 매달리는 모습이. 내 무언가를 자극했다. 마법이 멈춘다. 마나의 격류에 잡아먹혀 사라진 바람이 다시금 분다.
그때.
-푸욱!
"…!"
망설임 사이 생긴 공백. 헤리엇은 그 짧은 공백을 놓치지 않고 순식간에 다가왔다. 날카롭고 뾰족한 금속이 팔에 꽂힌다. 무언가가 체내로 들어온다. 주민들 때문에 빠르게 반응하지 못한 나는 곧바로 팔을 쳐내고 헤리엇을 튕겨냈다.
쿵!
마나의 파동을 처맞은 헤리엇이 멀리만치 날아간다. 하지만, 별 상처는 입히지 못했다. 공격이 가해질 때 순식간에 베리어를 둘렀다. 전개속도를 보면 실력이 상당했다.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 간의 융합을 성공한 마법사인 만큼 상당한 실력자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소로웠다.
아크 메이지인 내겐 너무나 가소로웠지만, 체내로 흘러들어온 액체가 너무나도 신경 쓰였다. 고작해야 몇 방울이었으나 그가 유효타를 날릴 기회를 포기하면서까지 놓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움직이지 못하게 포박한다. 헤리엇은 몸을 구속하는 마나의 흐름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 경악했다. 그러나 곧 웃음을 참지 못하고 실실 웃었다.
"너도 다른 재료들이랑 똑같아. 미련하게도, 인간성을 버리지 못했어."
"뭘 놓은 거지?"
"그런데 궁금하구나. 이렇게 실력이 좋으면서 왜 힘을 숨긴 거지? 석궁에 처맞았을 때부터 힘을 발휘했으면 이럴 필요가 없었을 텐데."
"뭘 놓은 거지?"
"급하긴. 급속 성장제다."
급속 성장제? 헤리엇은눈짓으로 주민들을 가리켰다.
녹아내린 근육.
2미터는 가볍게 넘는 덩치.
"저 불어난 살덩이들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지 않나? 참고로 저것들은 한차례 '깎아낸' 것들이지. 내버려두면 살덩이에 파묻혀 죽어버리거든."
시선을 내린다.
팔에 기포가 들끓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