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루셸리니 (1)
제국에서 영지의 위치를 설명할 때면, 제국 동부인지 서부인지를 먼저 말하고, 수도 탈레온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말한다.
모든 기준은 수도 탈레온이었다.
정작 탈레온은 제국 남동쪽에 치우쳐져 있지만… 수도보다 조금만 서쪽으로 떨어져도 '제국 서부'라 부르니 수도편의주의가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탈레온은 제국의 심장이자 제국 그 자체였다.
굳이 이런 설명을 하는 이유는, 동서부의 성향 차이가 무척 심하기 때문이다. 동부는 전투와는 인연이 없다고 해야 하나…. 미개척 지역이 많고 '모험가'라는 직종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서부와 달리, 동부는 탈레온과 성황청이 있어서 그런지 평화에 찌들어 있었다.
동부에도 모험가 길드가 있긴 한데… 제대로 돌아가진 않는다. 모험할 곳이 없거든. 그래서 동부 사람들은 모험가 하면 환상을 품거나 환멸을 느끼거나 둘 중 하나란다. 슈리엘은 환멸을 느끼는 쪽이었고. 비율만 따지면 환멸이 더 많았다.
마차를 타고 이동한 지 삼 일째.
루셸리니 령에 도착할 때까지 대충 이틀 정도 남았다.
불현듯 불안감이 스치는 건, 루셸리니 령이 드물게 '제국 동부'에 자리 잡아서일까. 슈리엘은 내가 뚱한 얼굴로 입만 우물거리자 나를 확 끌어당기고 말했다. 어째서 날 품에 안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무언가 말하려는 게 있어 보여 닥치기로 했다.
"동부는 처음이라 불안한가?"
"…예."
"네 신분이 모험가라서?"
"저보단, 도련님의 평판이 깎일까 걱정됩니다."
"흠…."
동부는 모험가 차별이 심하니까. 슈리엘은 나른한 몸을 밀착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끔한 옷 냄새가 코에 스며든다. 키 차이 때문에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모습이 되었다. 곧이어, 그는 좋은 생각이 났다며 뺨을 간질였다.
"누군가 네 신분을 물어본다면, 내 전속 시녀라 답하도록. 당장 보장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신분이다."
"시녀… 라고요?"
"그래. 내 전속 시녀."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귀족가의 시녀는 그 가문보다 낮은 계급의 '귀족'들만 맡는 직책이기 때문. 드물게 평민도 들어갈 수는 있으나, 부유한 대상단의 딸 정도가 아니라면 불가능했다. 그런 내게 시녀, 그것도 전속 시녀의 직위를 내리겠다는 건 못해도 자작가 딸과 같은 신분을 보장하겠다는 뜻.
"…하녀로 괜찮습니다."
조금, 부담스러웠다. 차라리 하녀가 낫지. 가슴팍에서 얼굴을 떼자 비웃음을 지은 슈리엘이 보였다. 그는 콧방귀를 뀌며 머리를 헝클었다.
"네가 하녀라 주장한다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거다. 빼어난 외모나 깔끔한 옷차림은 그렇다 쳐도… 전투도 잘하고, 예의 바르고 박식한 대다가, 심지어 궁정 언어까지 통달한 너를 누가 일개 하녀라 생각할까."
"그렇다면, 누가 외팔이를 시녀라 생각할까요."
한마디를 지지 않고 따진다. 그는 외팔이라는 소리에 몇 초 침묵하더니 침울한 얼굴로 속삭였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라. 내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볼 테니."
"잘린 팔을요…?"
"뛰어난 사제를 수소문하면 가능할 거다. 그게 안 된다면, 의수라도 달아주마."
슈리엘은 루셸리니 령에 도착하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라 말했다. 그 모습이 하도 처연해 재구축을 밝힐까 했지만, 정면에 칼버드가 떡 버티고 있으니 아직 때가 아니었다.
루셸리니 령이 다른 동부 영지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역시 종교의 힘이라 할 수 있겠다. 긴 세대를 걸쳐 대행자를 선출한 그들은 성황청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그에 걸맞은 이권들을 다수 챙겨왔다. 대부분 종교와 관련된 것으로.
종교와 연이 깊다는 건 곧 사제의 공급이 늘어난다는 것과 같은 말. 치유 마법은 오직 신성력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니 루셸리니 령은 의료복지가 타 영지보다 몇 배는 빵빵한 편이었다. 이는 같은 대행자 가문인 프루카이스, 앙그리드의 영지와 공유하는 특징이었다.
'그리고… 그게 가장 중요하지.'
무엇보다. 내겐 루셸리니 령으로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신전. 그곳엔 신전이 있다.
임신 극초기 아이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
그 격렬한 난전 속에서 애가 살아남았는지는 모르겠다만, 자꾸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카할리아엔 임신 테스트기 비슷한 마도구조차 없었다. 신전도 없었고. 아니, 관광 도중 섹스도 하고 애도 가질 수 있잖아. 왜 없는 거야?
그렇게 낙담하던 중, 답답함을 못 이겨 슈리엘 몰래 사제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 임신했는지 확인할 수 있냐고.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사제는 곤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자기 영역이 아니라고. 대신, 쓸만한 정보 하나를 알려주었다. 산부에게만 축복을 내리는 신전이 루셸리니 령에 있단다. 그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나 뭐라나.
"하아…."
요즘 그거 때문에 자궁 재구축도 못 하고 있는데…. 슈리엘은 내 한숨을 다르게 생각했는지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괜한 오해를 사기 싫었던 나는 후후 웃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다독였다.
"괜찮습니다 도련님. 제게 팔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태연해 보이는구나."
내게 중요한 건 팔 따위가 아니다. 권태감을 해소할 자극이 가장 중요하지. 최근 권태감을 느낄 새도 없이 바삐 시간이 흘렀지만… 이렇게 다시 평화에 물들기 시작하면 저주 같은 권태가 스멀스멀 올라온단 말이지. 안 그래도 마차만 삼 일째 타고 있었다.
…좋은, 생각이. 났다.
임신은… 아, 모르겠다. 이참에 확실하게 해버리면 되는 거지. 나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슈리엘의 눈치만 봤다. 이제 10분만 있으면 휴식시간. 때때로 말의 페이스 조절을 위해 30분 휴식시간을 가졌는데, 이제 곧이었다.
"…슈리에엘."
"왜 그러지?"
"이제 곧… 음… 그러니까, 곧… 휴식, 시간이죠?"
…이러니까 내가 유혹하는 거 같은데. 그래도, 삼 일이나 참았잖아. 이 정도면 많이 참은 거 아니야? 열 오른 비음이 그의 가슴에 부딪힌다. 혹여 본심이 튀어나올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킨다. 칼버드를 보니 평상시처럼 등을 기대고 정자세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지. 말도 쉬어야…"
경직.
창밖에 눈을 두고 있던 슈리엘은 나와 시선이 맞자 몸을 굳히고 쉬던 숨조차 멈춰버렸다. 좁혀지는 눈가. 차가워지는 시선. 나는 왼팔로 치맛자락을 꾸욱꾸욱 눌러 움찔거리는 아랫배를 진정시켰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 얼굴이 붉게 물들었고 숨은 뜨거우니 싫어도 알게 될 것이다.
"그래. 이제 곧, 휴식 시간이지."
그순간, 슈리엘의 기운이 바뀌었다. 마치 딴 사람처럼. 미궁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기운. 거멓고, 탁한… 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고통스럽게 조여지는 그런, 검은 기운이…
"히, 흐…"
아직. 그대로구나. 미궁에서 나오고 나선 내게 죄책감뿐이라 조금 걱정했는데 그대로였어. 이게 좋은 현상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당장의 내겐 희소식이었다. 아직은 나한테만 저러니까. 다리 사이가 젖는다. 팔 하나를 잃은 상황인데도 음란한 몸뚱어리는 지조 없이 달아오르며 물을 흘렸다.
저 상태의 슈리엘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검은 슈리엘이라 부르겠다. 하여튼, 내가 검은 슈리엘을 유독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가 있다. 저 상태의 슈리엘은 백 퍼센트 진심이었다. 죽기 직전에 다다르면 겁을 먹고 멈추는 멍청한 쪼다들과는 다르다. 진심으로, 죽을 수 있어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좋았다. 그래서, 기대되었고.
시간이 흐른다.
"정지!"
10분이 흐르고, 마차가 멈추었다. 말들은 발굽을 두드리며 풀을 뜯어 먹었고, 뒤따라오던 마차에 탔던 종과 병사들은 몸을 풀기 위해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었다. 나와 슈리엘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와라."
"네, 네에…."
엉덩이를 떼자 무언가의 액체로 잔뜩 젖은 마차 시트가 보였다. 칼버드가 눈을 뜨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가 가만히 있다는 건 주변에 적이 없다는 뜻이니까. 아마 앞으로도 눈을 뜰 일은 없을 거다. 애액으로 젖은 시트를 보면 뭐라 말했을지… 상상도 하기 싫다.
슈리엘은 내 손목을 피멍이 들 정도로 꽉 붙잡곤 커다란 나무 뒤로 이끌었다. 병사들이 어디 가느냐고 물어봤지만 그는 고개 한 번 까딱이지 않고 무시했다. 그 냉랭한 모습에서, 날 범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져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마차로부터 멀리 떨어진 커다란 나무 뒤. 슈리엘은 누구의 눈도 닿지 않는, 나와 슈리엘. 둘만이 있는 비밀스러운 장소에 도착하자-- 일말의 지체 없이 치맛자락을 들치고 속옷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이미 잔뜩 젖어있던지라 삽입을 방해하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털 하나 없는 매끈한 보지 사이로 두툼한 손가락이 들어온다.
"히그읏…"
"시작도 안 했는데 물투성이군."
굴종을 요구하는 눈빛을 받으면 응당 발톱을 숨기고 배를 뒤집어 까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좁은 질구멍을 격렬하게 긁는 손가락에 애액을 뿜으며 헐떡였다.
"슈, 슈리헤엘…"
"발정 난 암캐년… 팔이 떨어졌는데도 음란한 몸은 그대로야. 천박해. 천박하기 그지없어."
"헤흐, 흑."
가차없는 매도에 또 한 번 절정 하자, 다리에 힘이 풀려 그의 품에 안겨버렸다. 애액으로 흥건해진 손가락을 빼낸 슈리엘은 곧바로 내 입에 처넣어 미끈거리는 혀를 만지작거렸다. 달짝지근하고, 살짝 쓴맛의 애액이 입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장난감이 된 느낌을 만끽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뭘 원하지?"
툭. 슈리엘은 자지를 꺼내어 음부에 비비기 시작했다. 커다랗고 기다란… 흉악 자지가 꽉 다문 균열 사이를 비비며 크기를 키워갔다. 뜨거웠다. 몸이 달아오른다. 분위기에 취해 몽롱해진 머리는 다른 잡생각들을 모두 밀어내고, 오로지 본능만을 남겨 입 밖으로 내뱉었다.
"하힉, 흐. 해, 해주세여…."
"무얼?"
"모, 목조르면서어…."
"조르면서?"
"헤윽, 헥… 난, 폭하게…."
그 순간.
-찌걱!
"햐으으응?!"
슈리엘은 기습적으로 자지를 처박았다. 애액을 윤활유 삼아 매끄럽게 들어간 자지는 순식간에 자궁구까지 도달했고, 그대로 내장을 짓뭉개며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나는 침을 질질 흘리곤, 얼빠진 소릴 내며 초점 풀린 눈으로 그의 품에 매달렸다.
"천박한 년. 암캐는 암캐답게 엎드려라."
"녜헤으, 에으…."
그는 자지를 처박은 채로, 날 개처럼 엎드리게 하였다. 한쪽 팔이 없어서 땅을 지탱하고 서 있기가 힘들었다. 균형 감각도 왼쪽으로 쏠려 어중간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그는 밧줄을 꺼내어 단단해 보이는 나뭇가지에 묶더니 매듭을 지었다. 교수형에 쓰이는, 흔히 자살 매듭이라 불리는 원형 매듭을 지어 나무에 매달았다. 그가 무슨 짓을 할지는 안 봐도 뻔했다. 곧 다가올 고통에 흥분한 머리는 두려움에 떠는 몸과 다르게 쾌락물질을 계속해서 분비했다. 까끌까끌한 밧줄의 감촉이 목을 감싼다.
"끄, 흣, 끄윽…."
그가 줄을 당기면 목이 위로 올라가 숨구멍을 조이는 방식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땅에 팔이 닿지 않았다. 안 그래도 개처럼 엎드린 자세에, 골반은 박히고 있는 중이라 들려 있었는데… 그렇다고 밧줄을 풀기엔 손이 부족했다.
"사려…주…헥…."
그는 밧줄을 들었다 놨다 하며 조임을 확인했다. 혀를 쭉 내밀고 살려달라 애원한다. 보지는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자지를 꾸욱꾸욱 조였다. 살이 찢어지고 목뼈에 금이 갈 정도로 강하게 당겨진 줄은, 내가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꺽꺽댈 때 순간적으로 놓아졌다. 쿵. 축 늘어진 모가지가 바닥을 향한다.
"헤, 헤엑…."
"당길수록 조임이 강해진다라… 재밌어. 장난감을 쓰는 기분이야."
"제, 졔바아…."
내 목숨은 슈리엘의 유희를 위해 사용될 장난감이었다.
"닥쳐라. 장난감은 장난감답게 조이기나 해라."
"졔, 졔성…. 하므읏?!"
"팔 하나가 없는 게 정말 인형 같군. 나머지 한쪽 팔도 자르는 게 나아 보인다만…."
"끄긋, 끄흐으윽…."
"…꺾는 거로 봐주도록 하지."
뚜둑! 왼팔을 뒤로 당기자 살벌한 소리가 들렸다. 팔이, 꺾였다. 감각이 사라져 간다. 오른팔이 날아간 것도 모자라 왼팔마저 처참하게 꺾이자, 정말 인형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다리만 잘리거나 꺾이면 될 텐데… 시간이 촉박한 게 한이었다. 휴식시간이 끝나기까지 17분. 회복에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 짧았다.
'더… 더 즐기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선 슈리엘의 자지를 좀 놓아줘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의지와 상관없이 오히려 더 빨리 싸달라는 듯 조이고 있으니 원…. 멍청한 보지 같으니라고. 하윽… 그, 근데 이 크기를 어떻게 버텨….
-짜악!
"꺄으윽?!"
"내가 박히고 있을 땐 자지에만 집중하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너는 대체 학습 효과라는 게 없는 것이냐?"
"졔성, 졔성해여…"
"쌀 테니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전부 담아라."
"녜에헤…."
멍청한 건…
보지가 아니라 나였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