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둘의 무대 (2)
'어째서' 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마저도 사치였으니. 아크 메이지의 마법을 '어떻게' 무력화 시켰는지 알아내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생각해라. 머리를 한계까지 쥐어짜내 승리를 도모해라. 저주 계열? 아니면 어딘가에 설치된 무력화 술식? 맵스캔을 하려 해도 무언가에 꽉 막힌듯 마나가 퍼져나가지 못했다.
당황하지 마라. 마법사의 이성이 속삭인다. 일부러 봉인에 가깝에 억누르고 있던 마법사의 이성이 끊임없이 '나'의 자리를 차지하려 들었다. 머리가 싸늘하게 굳는다.
"…."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느껴지는 건 날 옆구리에 끼운 슈리엘의 체온 뿐이었다. 그와 떨어지지 않았음에 안도한다. 그러나 언제 어느 이유로 떨어질 지 몰랐다.
"도련-"
"쉿."
내가 그의 허리춤에 매달려 암울한 소식을 전달하려 했을 때였다.
그는 내 입을 막았다. 입을 막은 손엔 식은땀이 흥건했다.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어느때보다 긴장해 있었다. 공포에 질린 건 아니었다. 그는 크게 숨을 쉬었다. 심호흡 한 번에 몸의 떨림이 잦아든다. 이어진 심호흡 두 번에, 심장이 맥동하며 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한다.
그제야.
나는 슈리엘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덜어내고 있었다. 몸을 잠식하려는 공포를 덜어내고 한줌조차 되지 않는 용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선명히 비추어지는 맑은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세 번째 심호흡에, 그는 숨 쉬기를 멈추었다.
그가 숨을 멈춘 순간.
나의 숨도 멈추었고 세상은 시간을 잃었다. 끔찍한 침묵과 어둠이 나를 반기니 공기의 흐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보지 못한다. 듣지 못한다. 하지만. 완벽한 무無의 상태로 접어들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마기의 잔향이라든가.
"도련, 님."
검은 침묵 속에서 흐릿한 진동이 눈에 밟혔다. 집중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덜어내지 않았더라면 결코 보지 못했을 하고 작은 진동이 보였다. 다섯 발자국이었다. 내가 마기의 잔향을 눈에 담은 건 검은 진동이 다섯 발자국 앞까지 다가왔을 때였다.
"다섯 발자국. 앞. 3.64초."
암호 같은 속삭임은 토씨 하나 빠지지 않고 슈리엘의 귀에 닿았다. 내가 본 걸 그도 봤을까. 봤기를 바라야겠지. 그게 아니라면, 이해했기를 바라야겠지. 속으로 3초를 센다. 나는 그가 반응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해 몸을 던질 각오까지 하였다.
내 걱정은 기우였다. 정확히 3초 뒤, 소리 없이 허공을 가르는 검격이 푸른 궤적을 남기며 흩날렸다. 미궁을 공략하면서 숱하게 봐왔던 슈리엘만의 검기. 오러 나이트의 검술. 사선으로 쭉 휘두른 검의 날 끝에는 자그마한 천 조각이 하나 걸려 있었다. 얕게 찢어져 조각만 떨어져 나온, 붉은 피가 잔뜩 묻어난 천 조각이.
베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어둠 속에서. 우리는 미약한 진동에 의지해 악마의 움직임을 잡아냈다. 슈리엘은 여전히 침착함을 유지한 채 내게 물었다.
"다음은?"
역시, 보지 못하는 건가. 속으로 낙담했지만 나라도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어떤 수를 썼는진 모르겠으나… 마법을 봉인했다 해도 모든 걸 꿰뚫어보는 아크 메이지의 눈마저 닫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너는 눈을 감아라. 내가 너의 눈이 되어주마. 나는 슈리엘에게 눈을 감으라 속삭였다. 네 눈은 더이상 필요 없으니까. 서로 사족은 붙이지 않았다. 그는 내 속삭임을 따라 순순히 눈을 감았다.
"열다섯 걸음. 동남쪽. 대기."
"…."
어둠 속에 암약한 악마는, 반격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가만히 서 우리를 응시했다. 검은 진동이 제자리에서 꾸물거리며 움직인다. 나는 그 작은 움직임도 실수로라도 놓칠세라 뚫어지라 바라봤다.
연격을 날리거나 빠르게 다가와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 페널티로 추측된다. 아크 메이지의 마법을 무력화시키고, 공간을 자유자재로 바꾸면서 공격까지 능통하면 그게 마왕이지 악마겠는가.
어디까지나 추측이었다. 저 악마가 마음을 바꿔먹고 달려들기라도 하면 낭패였다만, 슈리엘의 말마따나 방도가 없었다. 아니면 악마의 말대로 무대… 그러니까 탑에 한정해 마왕에 필적하는 힘을 발휘할 수도 있었고.
이윽고.
잔향이 빠르게 이동했다.
"여섯 발자국. 바로 뒤. 2.71초."
다시 푸른 궤적이. 검정만이 가득 찬 공허한 탑을 비추었다. 소수점 단위까지 완벽하게 카운트한 슈리엘은 악마가 공격하기도 전에 대각으로 검기를 뿜어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하였다.
일순간.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린 악마의 모습이 보였다. 검기에서 빠져나온 푸른 빛은 찰나의 순간 다시 어둠에 먹혀버렸지만―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뺨에 아주 작은 실선을 남기고 고개를 뒤로 뺀 악마의 모습을.
이 괄목한 만한 쾌거에 조금도 흥분하지 않은 슈리엘은 맑은 호숫가의 파동처럼, 모든 감정을 흘려보내 평소의 고요를 되찾았다. 일렁임 하나 없는 그의 가슴 속에는 오직 신뢰만이 남아있으니 탑의 저주는 감히 그를 건들지 못할 것이다.
-왜 속으로 썩히십니까.
더이상, 그에게 부정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제게 전부 쏟아내면 되는데.
추악한 욕망은, 전부 내가 먹어치웠기에.
탑은.
악마는.
우리를 건들지 못할 것이다.
검은 진동이 격하게 흔들린다. 감정이 요동치고 있다는 증거였다. 덕분에 마기의 잔향은, 눈이 빠지라 집중하지 않아도 얼추 보이게 될 정도로 선명해졌다.
"다음."
내가 슈리엘의 눈이 되어준 것처럼 그 또한 나의 검이 되어 악마를 향했다. 그 고요함 속에는 지난날의 과오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마저 느껴졌다. 이젠 잘못된 방향으로 검을 휘두르지 않겠다고. 욕망에 잡아먹히지 않겠다고. 소리 없는 외침은 말하지 않았기에 와 닿을 수 있었다.
"네 발자국. 정면을 기준으로 남서쪽. 4.39초."
베었다.
"다음."
"세 발자국. 왼쪽. 사선으로. 1.92초."
또. 베었다.
"다음."
다음. 그가 악마에게 할 말은, 내게 할 말은. 그걸로 충분했다.
격하게 흔들리다가도. 때로는 신중하게 이동하던 검은 잔향은 일곱 번째 '다음'이 찾아오자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는 말이 더 적절할까. 그렇게 짧지만 긴 시간이 흐른다. 우리는 자세를 낮추고 잔뜩 긴장했으나 잔향은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임. 없음. 대기."
초긴장 상태서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두르던 슈리엘은 '대기' 한마디에 힘을 쭉 빼고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잠시간의 휴식.
흐르지 않았던 땀이 수도꼭지라도 터진 것처럼 폭포수처럼 내리흐른다. 나는 옆에 꼭 안겨있던 나까지 축축해질 정도로 땀을 흘리는 슈리엘을 다독였다. 하지만. 마냥 다독일 수만은 없었다. 싸움은 끝이 아니었으니.
악마는.
일곱 번이나 공격이 통하지 않자 어둠을 이용하길 포기했다. 인간에게 공포와 무지를 선사해야 할 어둠은 내가 등이 되어 밝혀졌기 때문이다. 어둠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어둠이 사그라든다. 붙어있지 않으면 서로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던 세상은 점차 연해지더니, 달빛 아래의 밤처럼. 상당량의 빛을 되찾았다.
…슈리엘.
이제야 네 얼굴이 보이네. 그는 눈꺼풀 위로 빛이 들어오고 몇 초 뒤에야 눈을 떴다. 언제나 맑았던 눈동자가 다량의 빛으로 한껏 수축한다.
-쿠궁.
"건방져… 건방져어어어!!!"
어둠은 사라졌다. 눈을 가리던 장막이 드리워지자 새로이 출현한 조명은 땅거미 진 황혼이었다. 어둠 이후에 찾아온 진홍색 어스름.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지평선 너머로 추락하던 해가 떠오르며 세상을 비추었다.
다시.
우리는 새하얀 대리석이 깔린 허허벌판으로 돌아왔다. 황혼의 빛을 받아 시뻘겋게 빛나고 있는 대리석 위로 검은 뿔의 악마가 날아올랐다.
"왜 통하지 않는 거지?! 여긴 내 무대야! 탑 안이라고!"
잔성처가 많아 꼴이 말이 아닌 악마.
다만 치명적인 상처는 나지 않았고, 우리 쪽에서 마땅한 피해를 입힐 수도 없어서 그런지 그녀의 상태는 나름 괜찮아 보였다. 땀을 줄줄 흘리는 슈리엘과 마법을 쓰지 못하는 나에 비하면 지극히 멀쩡했다.
악마는 손등을 이용해 뺨에 흐르는 피를 쓱 지워버렸다.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은 거꾸로 떠오른 빛을 받아서 그런지 더 붉어 보였다.
그리고.
조금 전 보였던 분노는 연기였다는 듯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꾸었다.
악마는 고했다.
"인간의 아이들아. 후회는 하지 마렴. 어둠은 내 마지막 자비였어. 어둠 속에 가지런히 누워, 편히 잠들게 해주겠다는데 왜 거부하는 거니."
슈리엘은 말이 없었다.
대신.
거칠게 숨을 쉬며 손에 힘을 더했다. 꽈악. 피부가 까질 정도로 검을 쥐어 잡은 슈리엘은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악마를 응시했다.
"너. 그 눈동자. 마음에 안 들어."
그의 도전적인 눈동자는 악마의 심기를 건드려버렸다. 우리를 오만하게 내려다보던 그녀는 양손에 날카로운 손톱을 세웠다. 그 길이는 눈대중으로만 12cm. 손톱인지 칼날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였다.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공격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용하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그 또한 페널티의 일종인지는 모른다. 다만, 그녀가 육체파라는 소식은 희망을 불어넣을 만했다.
정보를 모아라.
빈틈을 찾는 거다.
모든 종류를 대상으로 한 절대적인 마법 무력화. 만약. 이것이 그녀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라면. 시전자인 만큼 어느 정도의 자유는 있겠지만, 본인도 그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라면.
만약에 슈리엘이.
악마가 공격 마법을 써야 하는 상황까지 몰아붙인다면….
"도련님."
"말해라."
"이길 것 같습니까?"
"하! 이제 와서 겁이라도 난 건가?"
그는 빈정거리는 어조와 다르게 웃고 있었다. 내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한쪽의 피해가 강요되는 작전이다. 그는 나라는 핸디캡을 안고서 악마와 싸워야 했다. 그뿐일까. 악마가 슈리엘보다 강하기라도 하다면 우린 그대로 끝장이다.
"이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떻게든, 저 악마가 '마법'을 쓰게 하면 됩니다."
"네가 지금까지 마법을 쓰지 않은… 아니. 못한 이유인가?"
"…다는 아닙니다."
다행히도, 마법 발동 자체가 막힌 건 아니었다. 마나를 흡수하는 양이 부조리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막돼먹어서 그렇지.
한계를 뚫고 마나를 억지로 쥐어짜봤자 탑에 모두 흡수된다. 흡수되기 전, 찰나의 시간 동안은 유지할 수 있지만 그딴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운용할 수 있는 마법은 가짓수가 적었다. 어거지로 사용한다 해도 형편없는 성능이었고.
지금 쓸 수 있는 마법은 악마의 공격을 딱 한 번 막을 수 있는 수준의 베리어를 0.812초 동안 유지하는 게 다였다.
반대로.
체내에서 돌리는 마법은 흡수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래. 감이 오겠지. 재구축이다. 재구축만은 탑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아크 메이지의 육신까지는 건들이진 못하는 걸까. 내 눈이 마기의 잔향을 잡아낸 것처럼 신체를 포함한 내부 작용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이길 수 있습니까?"
"…노력은 해봐야겠지."
"……."
자기표현이 확실한 슈리엘이 망설인다는 건, 승리를 점칠 수 없을 때였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하아.
'그건' 진짜 위험한데….
"도련님."
"…또 뭐냐."
그때였다.
-촤아아악!
"한눈팔지 마아아아!!!!!"
손톱을 세운 악마가 급강하한다. 슈리엘은 나를 들고 피하고자 진각을 밟았지만 나는 오른쪽으로 몸을 트는 것으로 가볍게 손길을 뿌리쳤다.
유진. 처절한 외침이 들린다. 애꿎은 땅만 박찬 슈리엘은 빈손으로 허공을 밟았다.
증오스런 악마의 공격이 날아든다.
-콰아아아앙!
"꺄윽?!"
그러나.
신음은 내가 아니라 악마가 냈다. 0.812초. 찰나의 시간을 이용해 악마의 공격을 튕겨낸다. 이 형편없는 베리어를 쓰기 위해 체내 마나의 삼 분의 이를 써야 했으니 얼마나 효율이 구린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물론, 아크 메이지의 육신은 마나를 무한정으로 생산하고 빨아들이기 때문에 곧 다시 채워졌지만― 7.2초. 마나가 채워지기까지의 공백은 나와 슈리엘의 목이 잘리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유지이인!!! 미쳤어?!!!"
악마가 튕겨 나간 틈을 놓치지 않고 나를 회수한 슈리엘은 악귀 같은 얼굴로 소리쳤다. 나는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고 그에게 대꾸했다.
"…도련님."
"다시는 하지 마라!! 차라리, 내가 뛰어들겠다! 그러니―"
뒷말은 듣지 않았다.
나는 그의 말을 끊곤 가슴팍을 살포시 밀어내었다.
"도련… 아니 슈리엘."
누군가가 위험에 처해야만 한다면.
하물며 그 '누군가'가 짧은 시간이나마 인연을 맺은 나의 벗이라면.
그리고… 내 아이의 아비 될 자라면.
"제가 미끼가 되겠습니다."
차라리.
내가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