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공략 (5)
"문제라도 있어?"
"아니. 아니야. 아무 문제 없어."
급하게 말을 끊은 감이 있었지만 괜찮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코르딜은 그녀의 단호한 즉답에 고개를 갸웃거리곤 다시 탑 관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아… 고작 교미 때문에 탑 오르는 속도가 느려졌다고?'
눈이 절로 찌푸려진다. 지금 저 둘은 몬스터 사체 옆에서 개처럼 교미하는 중이었다. 그것도 후배위로, 목에 줄까지 채우면서 격렬하게 교미를 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41층까지 올라왔다기에 조금 긴장까지 한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코르딜이 말하는 것만 들으면 무슨 대단한 용병이나 마법사, 혹은 성황청 소속 성기사들이 쳐들어온 줄 알았는데… 저 둘은 아무리 봐도 성욕처리용 노예 하나와 그 주인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굳이 구분하자면 수컷 쪽은 기사였고, 암컷 쪽은 마법사였다. 실력은… 저주를 버티고 41층까지 올라왔으니 한 가닥 하는 자들일 거다.
그보다…
왜 교미를 하는 건가.
'침식에 먹혀버린 건가…?'
탑의 저주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구조다. 이는 층수와 상관없이 오로지 시간에만 영향을 받는다. 1층에서의 10일과 최정상에서의 10일이 같다는 소리다. 보통 3일 내지는 5일 정도면 완전히 먹혀버려 내면의 부정감정이 실체로써 나타난다. 이는 정신이 약하고 욕망이 강한 자일 수록 짧아진다.
고로, 탑을 오르는 데 필요한 건 신속함 뿐이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저들이 탑에 처박힌 지 몇 주나 넘은 지금에서야 저주에 당했다는 건데… 지금까지 잘 버티다 갑자기? 둘 사이에 불화라도 생긴 걸까. 저주는 없던 감정을 만들어 증폭시키진 않으니까. 생각할수록 부자연스럽고 수상한 정보들이 눈에 밟혔지만 인간에 대한 편견이 이를 지워버렸다. 하아. 그래. 이게 인간이지. 내면까지 완전무결한 인간은 없다는 게 또 한 번 증명됐다.
별개로 이런 잡념들이 무색하게도 저들은 정말, 정말 격렬하게 교미를 했다. 커다란 자지에 박혀 기쁘다는 듯 헐떡이는 암컷 인간과 목줄을 당기며 허리를 흔드는 수컷 인간… 코르딜이 앞을 볼 수 없다는 걸 알아도 자꾸만 곁눈질로 눈치를 보게 됐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천박함. 포르딜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화면을 꺼버렸다.
"하아…."
"왜 그래?"
"아, 아니야. 괜찮아. 정말로."
알아서 좋을 거 없어 코르딜. 속으로 뇌까린 포르딜은 다시금 마나 회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침식에 먹혀버렸음을 확인했으니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 것이다. 저런 천박하고, 난폭한 교미를 버틸 암컷이 어디 있다고. 마법사의 죽음은 곧 파티의 죽음. 저런 짓을 수도 없이 반복하다 보면 알아서 자멸할 게 뻔했다.
……
…
…그런데.
"…벌써 49층이야."
그 뒤로 몇 주가 더 지났지만 저들은 죽지 않았다.
"왜, 왜 멀쩡한 거지?"
코르딜은 당혹감으로 물든 얼굴로 탑을 이리저리 조작했다. 몬스터 웨이브와 함정 밀도는 전보다 세 배 가까이 높게 설정해뒀다. 층의 구조도 난해하게 바꾸어 오르기 쉽지 않게 만들었고. 헌데 저들이 탑을 오르는 속도는 일정했다. 일순간 느려졌던 속도는 잠깐의 방황이었다는 듯 다시 페이스를 찾고 차근차근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러다… 진짜 정상까지 올라오겠는걸."
"지금 탑이 몇 층이지?"
"56층."
저들만 탑을 오르는 건 아니었다. 지금 탑을 오르는 두 인간을 구조하기 위해 파견된 놈들도 왔었고, 돈을 벌기 위해 모험가들이 떼를 지어 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많아도 20층을 넘지 못했다. 그게 정상이었다. 애초에 이 탑은 오르기를 상정하고 지은 게 아니었기에.
이 탑은 인간을 죽이기 위한 덫이었다. 인간을 죽이고 생명력과 마나를 흡수해 탑의 덩치를 키운다. 언젠가 개화할 탑의 끝을 위해서. 세상에 어둠을 퍼트리기 위해서.
그렇다고 입장한 인간을 막무가내로 죽이지는 않았다. '보상'은 없고 '위험'만 있다면 인간들은 탑을 오르지 않을 테니까. 코어의 힘으로 생성되는 몬스터들은 위험하긴 해도 재료로써의 가치는 충분한 놈들이었다. 탑 내부에서 죽은 인간들의 돈과 무구는 각 층에 무작위로 배치되어 저들의 '보상'이 되어주었고.
그렇게 정상적인 미궁을 연기하며 인간들의 판단을 보류시킨다. 이상을 깨닫고 코어를 부수기 위해 탑을 오를 때면 이미 한참 늦었을 것이다. 포르딜은 열심히 탑을 오르는 두 인간의 모습을 생각하며 혼잣말로 읊조렸다.
"정상까지 7층이라…."
저들이 탑에 오르고 28일하고 7시간이 지났다. 어느덧 9월이 찾아온 바깥세상은 여전히 밝고 아름다웠다. 광활한 대호수 위에 세워진 탑. 습기 어린 찬 바람이 열린 창 너머로 들어와 포르딜의 뺨을 적셨다. 평화로웠다. 살육과 증오로 뒤덮인 탑과는 다르게 말이다. 턱을 괴고 창밖을 내다본다. 그녀는 감성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립시켜서 죽일 수는 없어?"
몬스터 생성을 정지시켜 식량 보급을 끊는다든지, 올라가는 계단을 없애버려 영원히 그곳에 살게 한다든지. 평화로운 바깥 풍경을 봐서 그런 걸까, 그녀는 괜한 위험을 자초하는 게 아닌지 몰라 불안해졌다. 만약 저들이, 우리를 죽이게 될 인간들이라면….
"핵심 코어의 원형이 미궁 코어라 아마 불가능할 거야. 내려가는 계단을 없애는 거라면 몰라… 그건 충분히 '함정'의 범주에 속하니까."
코르딜은 미궁 코어에 여러 가지 기능을 덧붙여 만든 게 지금의 핵심 코어라 설명했다. 역사적으로 미궁은 도전하는 자를 거부하지 않았기에, 그런 기능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래… 도전자는 응당 맞이해 줘야겠지."
그 말을 끝으로 포르딜은 코르딜의 품에 안겨 볼을 부비적 거렸다. 땋은 머리를 그의 목에 걸고 얼굴을 밀착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감이 몸을 잠식할 것 같아 더욱 격렬히 몸을 비볐다. 코르딜은 아이처럼 어리광부리는 포르딜의 낯선 모습에 당황하면서도 꽉 끌어안아 다정하게 속삭여주었다.
"포르딜, 불안해?"
"응."
"뭐가?"
"또 네가 다칠까 봐."
흐흐. 서로의 웃음이 동시에 울려 퍼진다. 둘은 이어지지 않는 시선을 교차하곤 입술을 맞대어 서로의 타액을 교환했다. 끈적이는 혀가 민달팽이처럼 꾸물거리며 휘어진다. 남매의 키스는 그 자체로 배덕적이어서, 둘의 흥분을 끝을 모르게 고조시켰다.
"푸하…."
키스를 마친 포르딜은 자신의 음부에 코르딜의 손을 집어넣곤 그대로 허리를 흔들어댔다. 코르딜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손가락을 자위 기구를 사용하듯 좁은 질구멍에 넣다 뺐다 했다. 끈덕진 액이 흘러나와 코르딜의 손을 더럽힌다. 포르딜은 얼굴을 잔뜩 붉히고 달뜬 숨을 내뱉었다.
"코르딜… 나 못 참겠어."
"오늘따라 되게 적극적이네?"
포르딜은 입을 꾹 닫고 답하지 않았다. 지금 올라오는 두 인간의 격렬한 교미 영상 때문이란 걸 말했다간 놀림 받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옷을 벗어 던져 새하얀 피부를 과감하게 드러냈다. E컵은 가볍게 돼 보이는 묵직한 가슴이 코르딜의 가슴을 짓눌렀다.
"오늘은… 조금 격렬하게 해줘."
* * *
미궁에 진입하고 정확히 30일째 되는 날.
모두 내 계획대로 흐르고 있었다. 호칭은 도련님이 아니라 주인님으로 격상되었고, 내 취급은 장난감 이하의 무언가로 격하되었다.
목조르기와 배빵 정도에 그쳤던 폭력은, 나를 아무리 험하게 취급해도 멀쩡하단 사실을 한 번 주입하자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물론, 절단된 팔다리까지 회복할 수 있다곤 밝히지는 않았다. 이해 가능한 범주를 벗어나면 나도 그도 곤란해지니. '신체 결손'부턴 신성력의 범위였다. 그것도 그냥 사제들이 아니라 최고위 사제들이나 성기사만 가능한 기술.
'마법사'의 이름으로 커버칠 수 있는 범위는 골절상 정도였다. 아쉽긴 했지만, 이 정도도 감지덕지했다.
"헤윽, 헥… 흐그으윽?!"
삽입 도중 손가락을 부러트리면 얼마나 조이는지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해, 발목을 박살 내 개처럼 기어 다니게 만들기까지. 슈리엘은 어지간한 상처는 곧바로 원상복구 할 수 있다는 걸 알아내자 좀 더 '다채로운' 플레이들을 시도했다. 목조르기와 배빵은 기본 베이스였다.
"햐, 햐그읏…."
그리고 이상한 고집 같은 게 생겼는데… 사정 후엔 꼭 마개를 끼워 다음 날까지 정액을 담고 있으라 명령했다. 다음 날이 찾아오고, 마개를 빼면 곧바로 새로운 정액을 주입하고 똑같은 명령을 내리니 의미 없는 조건이었다. 그런 슈리엘의 기행 덕에 자궁은 24시간 정액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임신은… 확정이겠네.'
즐겼으니 책임을 지라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가지는 건 거진 확정이었다. 자궁을 재구축해 내부를 갈아버린다면 원상태로 돌아올 테지만 그래서야 낙태가 아닌가. 젠장… 피임을 확실하게 하지 않은 과거의 내가 미웠다. 처맞고 강간당할 때면 능지가 박살 나는 것도 고쳐야 할 것 같았다. 지나친 쾌락은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를 가진다니. 여자가 되기 전에도 육아와는 인연이 없었는데, 지금은 육아는 물론이고 출산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니…
-짜악!
"햐응?!"
"또 딴생각 중이군. 삽입 중엔 자지에만 집중하기로 하지 않았나?"
"졔성, 함니다앗… 주, 주인니임…"
일단은 즐기고… 아. 또 이러네.
"사과는 말로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츄읍….
"흐우웁…."
멍청해지려는 뇌를 가까스로 되돌리고 슈리엘의 입에 입술을 맞춘다. 이제 키스까지 익숙해져 버린 나였다. 엄청난 자기혐오가 들었지만 이 또한 기쁘게 받아들였다. 아, 그래. 미궁 나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지. 나는 보지를 꾸욱꾸욱 조이며 정보를 되짚어갔다.
벌써 50층이다.
50층이 정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조금 더 있는 모양. 그래도 최정상에 접근한 것이라 추측되었다. 미궁의 구조가 노골적으로 변화하였으니까. 지금까지 우리를 '죽이기 위해' 함정과 몬스터들이 배치되었다면 지금은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느낌이었다.
-부르릇!!
"히으그으윽?!?"
몇 번 째인지 기억도 안 나는 사정은 오늘도 멈춤이 없었다. 정액으로 자궁을 가득 채우고 나서는 어김없이 마개를 꺼내 들어 보짓구멍을 틀어막았다. 슬슬 공략의 끝이 다가와서 그런지 평소보다 많은 양이었다. 이때가 아니라면 임신시킬 기회가 없다고 생각이라도 한 걸까. 충분해. 충분하다고. 하아. 정액 양만 보면 다섯 쌍둥이는 임신하고도 남겠다.
"후아으…"
슈리엘은 자빠진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몸에 줄을 묶어 정말 짐처럼 들처맨 그는 혼자서 공략을 진행했다. 내 체구가 워낙 작아 가능한 일이었다. 슈리엘은 마법이 필요할 때마다 뺨을 때려 나를 깨웠는데, 마법 사용이 가능한 고성능 오나홀이 된 기분이라 굉장히 묘했다. 나쁘진 않은 경험이었다.
"다음 층으로 가는 계단인가… 드디어 찾았군. 어지간히도 꼭꼭 숨겨놨어. 마치 우리가 올라가기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후에, 에윽…."
"유진."
"으베에…?"
아으, 뭐야. 계단 발견했어? 하도 옹알거렸더니 언어능력이 퇴화라도 한 듯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힘들게 고개를 들어 다음 층으로 가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슈리엘은 계단을 발견했다는 기쁨도 없이, 긴장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슬슬, 끝이 다가올 것 같다."
"녜흐베에…?"
"하아…. 이제 이 짓거리도 슬슬 끝내야 할 때란 소리다."
"아…."
아니, 왜 아쉬워 하는 거야. 그게, 음… 조금 아쉬울지도. 어쨌든. 슈리엘은 나를 바닥에 앉혀놓고 진중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처럼 가학심에 물든 얼굴이 아닌, 타락하기 전의 순수했던 얼굴이었다. 그는 나를 묶은 끈을 끊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널 건들지 않겠다. 너도, 평소의 유진으로 돌아오도록."
"…."
"지금부터는 정말로 죽을 수도 있으니까. 악마를 고작 둘이서 상대하는 건 미친 짓이다만… 별 방도가 없군. 죽어도 부딪힐 수밖에."
-끄덕.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히 즐긴 거지. 들켜서 억지로 당하는 시츄는 이번이 처음이었고, 과연 두 번째가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겠지. 이제는 악마들을 잡아 족칠 때다. 이딴 변태 같은 미궁을 만든 악마가 누군진 모르겠다만 지금까지의 수모에 걸맞는 칭찬, 아니 응징을 내려줘야 했다.
애는… 모르겠다. 나가서 확인해보고 두 줄 떴으면 책임은 져야겠지. 이 세계에 임신 테스트기가 있긴 한가? 현대과학 못지않게 마도공학이 발달했으니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쓸데없는 생각들을 모두 날려버린 나는 천천히 상처를 회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액 마개는… 그대로 뒀다.
슈리엘은 천막 설치에 썼던 천을 크게 잘라 내 몸에 둘러주었다. 나는 사양 없이 그대로 목에 둘러 망토처럼 몸을 감쌌다. 나체에 망토라니, 굉장히 부끄러운 차림이었지만 없는 것보단 나았다.
"하으… 도련님?"
"그래. 유진."
"그럼… 가볼까요."
그리하여.
공략의 끝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