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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화 〉공략 (2) (58/193)



〈 58화 〉공략 (2)

"…본심?"
"…그러, 니까."


말실수를 덮을 때 가장 중요한 건 순발력이다. 말을 얼버무리거나 흐리기라도 한다면 십중팔구 의심의 눈길을 보낼 테니까. 그런 이유에서 나는 대차게 망해버렸다. 적절한 타이밍을 놓쳐버려  초간의 침묵을 보여주고 말았다.


"…본심이 아닙니다."

얼굴을 굳히며 정색한다. 표정변화가 매끄럽게 보였을지는 모르겠다만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슈리엘은 입을 꾹 다문 내게 무언의 시선만 보냈다. 나는 그 침묵이 영 껄끄럽게 느껴져 고개를  돌리곤  할 일을 시작했다. 등을 돌리고 남아있는 정액을 빼낸다. 어찌나 많이 쌌는지 한참을 빼내도 끝을 모르고 흘러내렸다.

"하윽…."


 기운이 조금 남아있나. 손가락을 넣어 질벽을 긁자 찌릿찌릿한 쾌감이 몰려들었다. 신음을 참는다. 조금 음란한 광경. 등 뒤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슈리엘이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액 제거를 이어나갔다.

그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날 좋아하든, 아니면 구제불능 변태로 생각하든. 어차피 미궁 공략이 끝나면 헤어지게 될 상대. 팔다리 자르고 납치 감금한다면 조금 어울려줄 수는 있겠다.


정액을 모두 빼내고 바닥을 내려다보자 어마무시한 양의 정액이 웅덩이져 있었다. 이게 정말 사람의 사정량이 맞나 속으로 경악했지만 저게 다 내 자궁 안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그러려니 했다.

"다… 됐습니다.
"…그래."


*

그 뒤로는 공략의 연속이었다.


미궁 진입 시간을 기준으로 1초도 빠지지 않고 샌 결과, 8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 주가 넘도록 햇빛은커녕 바깥 공기조차 맡지 못한 슈리엘의 모습은… 처참했다.

그런데 그 긴 시간 동안 길 찾기밖에 안 했느냐. 음. 당연하게도 아니었다. 몹쓸 욕구를 참기 힘들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다. 하물며  번이나 강간당해도 내색조차 하지 않는 여자애가 곁에 있는데 말할 것도 없겠지.

여섯 번을 강간당했다.


대부분 눈이 붉어진 슈리엘에게 당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그중 두 번은 여러 이유로 발정 난 내가 달려든 것이었다. 빌어먹을. 화염계 함정이 풀을 태우니 어쩔 도리가 없더라. 마스크 껴도 소용이 없었다.

원형이라곤 하나도 남지 않은 옷은  결과다. 나는 그냥 누더기만 누르고  나체로 다니기로 했다. 다시 입어봤자 찢길  뻔하잖아.

그러다보니 뭔가, 뭔가… 좆집이 된 기분이 들었다. 원할 때 박을 수 있고, 목을 조르면 보지를 조이는 재미난 장난감. 아, 젠장. 왜 흥분하는 거야. 되뇌이는 것만으로 아랫배가 찌잉 울렸다.

그리고 슈리엘은…


"하윽?! 도, 도련님?!"
"…왜그러지?"
"가, 갑자기 엉덩이를 잡으셨습니다만…."
"뭐? 아, 음. 미안하다."

익숙해졌다.

이 모든 행위에 익숙해졌다.


보통 이렇게 말하면 엉덩이에서 손을 떼야 할 텐데, 계속해서 주물럭거렸다. 나는 한숨을 퍽퍽 쉬며 조물 거리는 손을 내버려뒀다. 익숙해진 건 나도 마찬가지라….


그는 뭐라고 해야 할까. 거리낌이 없어졌다. 무뎌진 거다. 심심하면 뒤에서 꽉 껴안아 가슴을 주물럭거린다든가, 말도 없이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는다든가. 갑갑한 미궁 속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생긴 건 좋았다만…

"미궁을 나가면 나와 같이 살자. 내가 책임져주겠다. 원하는  있다면 말만 해라. 보석? 아니면 마법 연구를 위한 방? 명예도 좋다. 내가 비록 차남이지만, 네게 형수 못지않은 명예를 안겨줄 수 있다."

…집착이 심해졌다. 나는 엉덩이에 이어 가슴을 조물딱 거리는 슈리엘에 지친  얼굴을 구겼다.


"…됐습니다. 이 손 놓으세요. 저를 범한 건 불가피한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런다고 마음이 따라가겠습니까. 어불성설입니다."
"몸이 따라오면 마음도 따라오기 마련이지."
"그럴 일, 하윽. 없습, 니다."


슈리엘의 아내라니. 백작부인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하자 등에 소름이 돋았다. 정말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지만은 않아 더 소름 돋았다.


"하하…."


슈리엘은 더이상 붉은 눈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정확히 네 번째 질내사정부터였다. 미궁이 그의 정신을 잡아먹은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극복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꽈아아악….

"정말로?"
"까흑, 끄흐으…?!"

그는 왼팔로  목을 조르면서 소름 끼치게 웃었다. 제정신인 상태로 말이다.


하아. 그때 말을 흐리지 않았어야 했는데. 결국 알아차린 것이다.


내가 구제불능 마조 변태라는 걸.

그는 목에 팔을 감아 죽지 않을 정도로 조이다 말다를 반복했다. 나는 살기 위해 까치발을 들고 몸을 경련했다. 채 가리지 못한 다리 사이로 음란한 물이 흐르며 비부를 더럽혔다. 슈리엘은 남은 팔로 흐르는 애액을 스윽 훑더니 그대로 음핵을 자극했다. 그의 다리 사이가 부푼다.

등에 닿은 뜨거운 불기둥은 슈리엘이 나 못지 않게 흥분했음을 알려주었다. 그는 전처럼 참지 않았다. 슈리엘은 내가 그것을 의식하기도 전에, 보짓구멍에 자지를 욱여넣었다. 찌븝, 하는 음탕한 사운드가 귓가를 맴돈다. 기다랗고 흉악한 자지는 삽입과 동시에 자궁을 짓눌렀다.

"그런 음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하힉, 흑… 흐극…."


그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다. 목조르기 질식 섹스. 커다란 자지는 쉴 새 없이 뿜어내는 애액을 흡수하며 질벽을 긁어댔다. 여러 번 강간당했음에도, 보지는 늘 처음처럼 자지를 꾸욱꾸욱 조이며 정액을 짜내려 했다.


"하흣, 히, 힉…."

웃음을 참아야 하는데…  잘라서 거절해야 하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다. 나는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바보같이 입꼬리를 올렸다. 정말 끔찍하게도, 서로가 제정신이었다. 약에 취하지도 않았고 누구의 간섭도 없었다. 내 미소는 결정타였다. 슈리엘이 보냈던 의심의 눈초리는 확신이 되어 쏘아졌다.

"어떤지 말해라."
"히, 히읏, 힉."
"말하지 않는다면 손을 놓겠다."

…이런 식으로 협박하면 어떻게 하라고.

"조, 조하여…."
"…역시나."

하아….


모르겠다.


일단 즐기고 나서 생각하자.







* * *

유진이 슈리엘에게 개처럼 따먹히고 있을 때, 미궁 최정상에는 두 악마의 은밀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정갈한 단발을 찰랑대는 여리여리한 남성체 하나, 그리고 머리를 오른쪽으로 길게 땋아 흔들거리는 여성체 하나. 둘의 머리색은 저들이 지은 탑과 같은 칠흑색이었다. 그리고 서로를 닮은 중성적인 외모. 게다가 목소리 또한 같아 듣기만 해서는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들을 구분할 필요는 없다. 이름이나 머리 모양으로 구분할 필요는 더더욱 없고. 왜냐면. 그들은 마의 일족 중에서도 몇 없는 쌍둥이 악마이기 때문이다.


쌍둥이 악마 코르딜, 포르딜.

같은 날, 같은 모체에서 나고,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은 사고로 행동한다. 둘이서 하나  그들은 갈라져 존재할  없다. 그들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은 오직 서로 뿐이니 영원까지 함께할 것이다.

"하아… 코르딜. 네가 이 호수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포르딜은 제 혈육의 눈을 어루만지며 탄식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하나뿐인 가족, 코르딜. 그는 과거 수룡인-인간 연합과의 격렬한 충돌 끝에 시력을 잃어버렸다. 가증스러운 용의 후손들과 끔찍한 인간들의 목을 수백씩이나 배어 넘겼으니 후회는 없다만… 앞을 보지 못하는 그를 볼 때마다 슬픔이 밀려왔다.

"내  만지지 말고 탑 안정화에나 신경 써."
"미안. 비꼬려는 건 아니었어."
"아니까 떨어져. 그럴 때가 아니란 거 알잖아."

시니컬하게 대답한 코르딜은 자신에게 들러붙는 포르딜을 밀어내며 투덜거렸다. 포르딜은 열기 오른 숨을 쉬며 잔뜩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떨어지기 직전, 그의 머리에 입맞춤을 날리고 달콤하게 속삭였다.

"코르딜. 키스해줘."
"탑 내부 이물질부터 정화한 뒤에."
"너무해. 그정돈 해줄 수 있잖아."
"네가 정말 키스만으로 만족할까?"
"…눈치만 빨라가지고."

포르딜은 종종 코르딜을 덮치곤 했다. 피가 이어진 혈육끼리 관계라니, 인간들이 들으면 경을 칠 테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인간의 법규는 악마에겐 하등 의미없는 것이었다. 뭐가 잘못됐는지도 알지 못했고, 알아도 그만둘 생각은 없다.


"뭐, 시간은 많으니까."

아쉬움에 혀를 할짝댄 포르딜은 요염하게 몸을 비틀며 몇 발자국 떨어졌다. 흘깃 돌린 시선 너머로 아름다운 호수의 풍경이 들어왔다. 카할리아. 대자연의 정수를 한껏 받은 축복받은 지역. 그녀는 이런 아름다운 광경을 눈에 품을 때면 감탄보다는 분노가 먼저 몰려왔다.

 모습을 코르딜도 봤다면 좋았을 텐데. 평생을 맹인으로 살아야 할 코르딜을 생각하면 할수록 분노가 치솟았다. 치료 불가능의 치명적 상처. 찢어 죽일 성기사들 같으니라고… 신성력에 당하지만 않았어도 이럴 일 없었을 텐데. 포르딜은 넘치는 분노를 겨우겨우 삼키곤 코르딜에게 물었다.

"정화 작업은 어때?"
"좋지 않아. 인간 두 명이 예상 범위를 넘어선 속도로 올라오고 있어."
"…어딘데?"
"37층. 저 속도면 2주면 정상에 도착해."
"빠르네. 여기까지 올라온  쟤들이 처음이지 않아?"
"감정 증폭 강도와 함정 밀도를 높여야겠어. 포르딜. 부탁할게."
"재미없긴. 알겠어."


-라라라…

포르딜은 탑을 이루는 '핵심 코어' 위에 걸터앉아 음산한 멜로디로 흥얼거렸다. 인간을 향한 저주와 모든 것의 종말을 노래하며 발을 흔든다. 노래가 절정으로 치달았을 때, 핵심 코어가 붉게 빛나며 진동했다.

탑이 미약하게 흔들리고, 멀게만 느껴지는 땅이 더욱 멀어진다. 그간 흡수했던 땅의 정기와 마력을 제물로 새로운 층을 구축한다. 그녀의 노랫소리는 의지가 되어 탑에 반영될 것이다.

탑의 성장.

"하아…."

노래를 끝마친 포르딜은 수척해진 얼굴로 쭉 뻗어버렸다. 코르딜은 익숙하다는 듯 그녀를 받아들더니 포근한 침실로 옮겨주었다. 내심 칭찬을 바랐지만 탈진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심술이 난 그녀는 코르딜의 목에 팔을 휘감고 기습적으로 키스했다.


"흐읍…."
"푸하…."

끈적한 침이 호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만족한 포르딜은 손을 놓고는 창 너머로 고개를 돌렸다.


'…기다려. 조만간 어둠을 퍼트려줄 테니.'


신과 드래곤의 영역인 창공을 겁 없이 침범해 거대한 탑을 세운다. 그리고 먹어치운다. 그렇게 카할리아의 모든 빛과 정기를 빨아들이고, 충분한 양의 피를 머금어 탑이 완전한 꽃으로 '개화'할 때. 둘의 목적은 이루어진다.

세상에 어둠을 퍼트릴 것이다. 느리지만 착실하게. 인간들이 눈치챘을 때는 완전히 어둠으로 물들어 돌이킬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내 혈육이 깊은 어둠에 빠진 것처럼, 똑같이 어둠에 빠트려줄 것이다.

공략?

할 수 있다면 해봐라.

올라올 수 있다면 말이다.


온갖 부정적 감정을 증폭시키는 탑의 저주. 이걸 인간들이 버틸 수 있을까? 천만에. 인간은 더럽고,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존재다. 완전무결하고 순수한 인간? 그딴 게 있을 리 없잖아? 뿔을 걸고 맹세하건대, 저주를 버틸  있는 인간은 없을 거다. 순결하다 자칭하는 성황청의 성기사들도 마찬가지다.


탑을 오르려는 자칭 '모험가'라는 벌레들이 내분으로 자멸하는 꼴을 수없이 봐왔다. 돈을 노리고, 몸을 노리고, 혹은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 배신하고 도망치고 동료의 등에 칼을 꽂는다.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불리한 구조. 용사 같은 천외천의 존재가 단신으로 쳐들어오면 몰라…. 무엇보다, 포르딜은  대 일의 구도에서 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꼭두각시의 저주와 현실 왜곡의 식. 지금의 탑을 만들 수 있게 해준 그녀만의 특별한 기술.

37층이라고 했나. 흥. 올라올 수 있으면 올라와 보라지.

철저하게… 박살 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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