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감정 포식자 (4)
"자, 자못, 잘못해써여…."
가학심을 자극한다는 계획은 아주 잘 먹혀들었다. 혹여 제정신을 차려 주저할까 걱정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비인간적으로 기다란 슈리엘의 자지는 자궁구를 건드리다 못해 짓눌렀으며, 보통의 상식선에서 벗어난 성행위는 더는 성적인 쾌락을 선사해주지 못했다.
삽입하고 있는 쪽만 즐기는 강간. 천박하게 말하자면 오나홀. 오나홀이 찢어져서 슬퍼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아쉬움과 짜증이 몰려올 수는 있겠지만 딱 거기까지. 다시 사면 그만인, 일회용 소모품.
나는 오나홀이었다.
"하윽! 그읏… 흑!"
일명 교배 프레스 자세.
쿵, 쿵! 그가 허리를 내리찍을 때마다 눈앞이 점멸하며 세상이 새하얘진다. 애무는커녕 상대방을 향한 배려조차 없는 난폭한 행위에 침만 줄줄 흘렸다.
쿠퍼액과 애액으로 범벅이 된 질벽이 거근의 모양대로 움직인다. 허리 놀림에 맞춰 밀려나오는 속살. 작은 보짓구멍은 자지를 꽉 움켜쥔 채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비참하게도 '이런 거'에 흥분해버리는 탓에 평소보다 더 조였다.
생을 지향하는 생명체가 죽음의 고통에서 쾌락을 느낀다니 지독한 모순이 따로 없었지만― 기분 좋은 걸 어떡해.
"하으으?!"
슈리엘은 피가 새어 나올 정도로 가슴을 꾹 움켜쥐고 보지 속을 휘저었다. 순간 숨이 멎는 듯한 고통과 쾌락이 밀려왔다. 정상적인 인간이었다면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들어간 자지는 그대로 자궁구를 꾸욱, 꾸욱 하고 눌러댔다.
"하극, 크흣?!!"
아팠다.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아팠다. 고통에 탁해져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생기를 잃고 나풀거리기만 했다. 어느새, 신음은 잦아지고 흐느끼는 소리가 미궁을 가득 채웠다. 그럼에도 슈리엘의 정사는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끄, 끄흐으윽…."
벗어나려 발버둥 치면 어김없이 목을 졸랐다. 목뼈를 으스러트릴 기세로 쥐는 그 감각이 너무나 황홀해, 조금 더 저항하고 싶었지만 체력이 남아나지 않아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호흡곤란. 수축한 목근육을 겨우겨우 풀어가며 숨을 내쉬었지만, 가뜩이나 날리는 먼지들 탓에 제대로 호흡하기도 힘들었다.
"사, 사려, 사, 사려주새여…."
"닥쳐라. 버러지가…."
애원하자 돌아온 것은 냉랭한 욕지거리였다. 슈리엘은 자지를 밀어 넣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경악한다. 여기서, 더? 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세상이 돌아간다. 배가 찢어지는 고통에 시선을 내리자 툭 튀어나온 뱃거죽이 보였다.
"햐, 햐으으…."
찌븝, 찌븝 하는 천박한 소리가 울린다. 주변을 서성였던 몬스터는 슈리엘의 살기와 분노에 지레 겁을 먹어 감히 다가오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꺾일 듯한 공포가 눈에 서려 있었다. 작정하고 저항한다면 그깟 살기쯤이야 무시할 수 있지만… 지금의 나는 포식자가 아니라 피식자였다. 눈을 내리깔고 바들바들 떠는 게 내 역할이란 말이다.
"하, 하읏…?"
슈리엘은 작은 떨림을 목격한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살기가 거둬지고 숨이 트인다. 나는 이때다 싶어 추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는 방울진 눈물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날 내려다봤다.
분노가 서린 얼굴은 그대로. 나는 그의 얼굴을 천천히 분석했다. 이제와서 죄책감 따위가 든 게 아니었다. 경험상 저런 얼굴은, 항상 앞에서의 일보다 심한 일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눈이 전보다 붉게 빛나고 있었으니까.
"우, 우으…?"
속을 가득 채운 막대기가 꿈틀거린다. 자궁을 억지로 올려친 귀두 끝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뒷골목 양아치들은 물론이고 몬스터에게까지 범해진 나는 이게 무엇인지 손쉽게 예상이 갔다.
지금까지 숱하게 겪어온. 그러면서도 그 후의 일을 경계하는. 눈앞의 암컷을 지배하려는 수컷의 본능.
지금 이 순간, 나는 한 마리의 암컷이었다.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절망을 연기한다. 슈리엘의 가학심을 부추기기 위해. 더 끝없는 폭력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소리친다. 가녀린 어깨를 떨며 되도 않는 저항을 시도한다. 고통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몸은 생동감을 더해주었다.
"제, 졔바아…!"
"허으윽…."
이 몸부림이 거짓뿐인 연기인지, 정말 절망에 찬 몸부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정사를 막기에 하등 상관 없는 것이었기에.
꾸우욱… 어깨를 눌러 고정시킨 슈리엘은 허리를 크게 들어 올렸고―
"꺄흐으윽?!"
쿵! 다시 내리찍었다.
그것을 수십 번 넘게 반복했다. 흔히 섹스를 떡방아에 비교하고들 하는데, 딱 맞는 말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절구가 부서지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정도일까.
슈리엘은 말 그대로 내 골반이 부서지도록 허리를 놀렸다. 흐르는 피는 어느새 멎어 애액만을 분출했고, 바닥이 흡수하다 못해 웅덩이가 질 정도였다. 한 번 엉덩이를 찍을 때마다 애액을 찍찍하고 싸버리니 내가 정말 고통에만 흥분하는 게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래도. 목을 조르거나, 살을 찢는 압도적인 크기가 아니었다면 흥분할 일도 없었겠지. 쾌락에 유두가 솟은 봉긋한 가슴을 애써 무시하며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나는 고통에 흥분하는 거야. 라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보지가 애액으로 범벅이 되다 못해 눅진눅진해질 때까지 허리를 내리찍은 슈리엘은 이를 갈며 경련했다. 내가 그토록 경계하는 '그것'이었다.
"아, 안 대에…"
사정.
-부르르르!!
"헤익, 히, 헤으에."
뜨겁고 농밀한 하얀 액체들이 자궁으로 쏟아진다. 비상식적으로 커진 자지의 크기만큼이나 방대한 양이었다. 비록 미노타우로스처럼 배를 부풀 정도로 가득 채우지는 못했으나, 바닥에 고인 애액 웅덩이를 가릴 정도로 많은 양이 들어가고, 역류해 뿜어져 나왔다.
임신시키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사정. 자궁은 귀족의 씨를 넘칠 정도로 받아들였다. 강인하고 우수한 수컷의 씨를 두 팔 벌려 환영한다는 듯, 일말의 저항도 없이 그대로 자궁을 활짝 열었다.
"아, 아아……."
끊어진 소리를 내며 신음한다. 이미 깨지고 빠진 손톱으로 바닥을 세차게 긁었다. 바닥을 긁는 세기만큼의 절망이 온몸을 급습했다. 현실을 부정하는 것처럼 고개를 도리질 쳤지만 자궁에 들어온 정액은 그대로 잔류해 정신을 일깨워주었다.
"하흐, 힛. 흐히…."
나는 실없이 웃었다.
이거였다. 이 감정이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장난감처럼 난폭하게 당해, 모르는 이의 아이를 가질지도 모른다는 절망감. 물론 뒤처리는 성실히 할 거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연약하고 가녀린, 아무 힘도 없는 소녀를 흉내 낼 수 있어 좋았다.
"하, 하흐…."
웃었다. 미치도록 웃었다.
이렇게 한바탕 웃으면, 무無를 동경하지만 힘을 잃기는 두려워하는 병신같은 내 모습을 잠시나마 지워버릴 수 있어서.
-찌브븝…
사정이 끝나고, 어느 수컷들과 다를 바 없이 잠깐의 여운을 즐긴 슈리엘은 질 속에 처박혀 있던 자지를 빼내었다. 그 짜릿한 감각에 허리를 튕기며 발작한다. 좁디좁은 보짓구멍은 슈리엘의 자지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꽉 물어 속살을 삐져나와 보였다.
"우에, 으으…."
음란하고 천박한 물소리를 내며 자지를 내뺀다. 미처 나오지 못한 정액들이 주룩주룩 흘러 엉덩이골을 간질였다. 찬 바람에 차갑게 식은 몸과 달리 불처럼 뜨거운 치부 사이로, 정액이 용암처럼 흘러내린다.
말라붙은 눈물 자국 위로 새로운 물줄기가 흘렀다.
그의 눈이 맑아졌다.
* * *
폭력성의 증가. 선민의식의 강화. 평소라면 하지 않을 난폭한 행동과 욕지거리. 슈리엘은 어느샌가 자신의 정신이 이상해졌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참았다. 이 또한 미궁의 장난질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라면 극복할 수 있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왜냐면.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대로였으니까.
시간이 흐르고 층수가 높아질수록 침식은 강해졌다. 미궁의 장난질은 고약하고, 또 잔인했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욕망을 억지로 꺼내어 증폭시키는 종류. 분열이 나기에 딱 좋은 종류였다.
슈리엘은 허벅지에 칼자국까지 내며 욕망을 억제했다. 그리고 되도록 앞만 보고 전진했다. 칼버드를 바라보면 금방이라도 검기를 뿜을 것 같아서. 소녀를 바라보면 참지 못하고 달려들 것 같아서.
유진. 모험가 유진.
첫 만남부터 그녀에게 호감을 표하긴 했으나 유진은 딱 잘라 거절했다. 슈리엘은 그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일평생 외모라고는 부족함 없이 살았던 그였다. 거기에 백작가라는 긍지 높은 명예까지 있는데, 거절하다 못해 혐오감을 표출할 정도로 거부하니 그로서도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욱이 떠올랐다.
어딘가의 주점에서.
칼버드와 웃으며 식사를 하는 장면이.
'왜 나는 안 되고 저 노인네는 되는 거지?'
이런 상념들이 머리를 지배할 때면 잔 실수가 많아졌다. 원래라면 당하지 않을 공격과 함정에 당하거나, 허접한 몬스터도 일격에 처리하지 못할 때가 많아졌다.
자연스레 나서는 건 칼버드가 되었다. 앞장서서 몬스터들을 무찌르는 기사의 표본. 실수만 하는 자신과는 다름 듬직한 모습이었다. 소녀의 눈길도 어느새 칼버드의 등에 고정되었다.
슈리엘은 이를 뿌득 갈았다. 그것이 단순 공격대를 권유하기 위한 만남이란 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낱 모험가 따위에 마음을 품기엔 자신은 너무 높은 위치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었다. 귀족 못지않게 박식했으며 백작가의 대행자 상대로 겁먹지 않는 모습은 흡사 꺾지 못하는 꽃을 떠올리게 했다.
당돌했고, 도도했고, 지식이 풍부하며 예의 바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거기에, 미궁에서의 모습도 더할나위 없는 실력자였다. 매력적이란 말이 아니라면 어떻게 표현할까. 슈리엘은 마차에서 맡았던 그녀의 달콤한 살내음을 잊지 못했다.
보석으로 치장하며 뽐내기에만 급급한 다른 귀족년들과는 다른 매력이었다. 모든 귀족가의 영식이 추구하는 '완벽'에 더없이 가까운 여자. 신분 차이? 신분이야 내가 높여주면 된다. 그러니 가지고 싶었다.
그러나. 어떤 수를 쓰더라도 손에 넣겠다고 다짐한 게 무색할 정도로 빈틈이 보이질 않았다. 완전무결함으로 무장한 유진은 감히 다가오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애가 탔다.
저 앙증맞은 미소가 나를 향했다면. 손을 잡고 함께 정원을 거닌다면. 사랑을 속삭이며 뜨거운 밤을 보낸다면. 저 작은 체구가 내 품에 온전히 들어온다면. 붉디붉은 머리칼을 간질이며 시시덕거리며 웃는다면.
저 꽃을 꺾는 게 나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
……
…
눈이 붉어진다.
그 이후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주 가끔,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 상황은 벌어지고 난 뒤였다.
칼버드를 내쫓았다. 유진의 목을 졸랐으며, 자신의 치기 어린 고집으로 돌아갈 길조차 없어져 버렸다. 후회, 또 후회뿐이었다. 슈리엘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자신을 자책했다. 나는 루셸리니의 차남이자 성황청을 대리한 대행자라고. 이러면 안 되는 거라고. 지금이라도 유진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고 싶었지만―
단 둘이 남은 상황이.
―날 한심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무심한 듯 피식 웃는 저 얼굴이.
―목을 졸라도 별거 아니라는 듯 넘기는 모습이.
사과해도 대충 넘기는 것이.
―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는 것 같아서.
참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어째서. 난 안 되는 거냐고.
추악한 본심이 마음 밖으로 드러난다. 더이상의 억제는 없었다. 그럴 마음은 이미 꺾여버린 지 오래였다. 그저, 눈앞의 소녀를 향한 증오심과 분노만이 남아있을 뿐.
왜. 왜. 나는 안 되고 그 빌어처먹을 노인네랑은 즐겁게 웃는 거야. 나한테는 그런 웃음 한 번도 보여준 적 없으면서. 일방적인 사랑은 닿지 않은 채 열등감이 되어 슈리엘의 심장을 죄었다.
열등감은 망상을 폭주시켰고 사실을 왜곡해 그에게 전달했다. 그리하여 지고지순하여 순결한 유진의 모습은 칼버드와 놀아난 창녀로 변해버렸다.
더러운 창녀 새끼. 네가 나쁜 거야. 그러니, 나한테도 한 번쯤은 벌릴 수도 있잖아.
옷을 찢고, 속옷을 벗기고 새하얀 나신을 눈에 담는다. 칼버드가 만지작거렸음이 분명한 창녀의 몸. 그렇게 정사를 이어나갔다. 어차피 비루하고 천한 평민이다. 강간하고 죽여도 손가락질 몇 번 받는 거로 끝난다.
그러니까.
상관없다.
처녀라는 게 조금 놀랍긴 했지만 뒷구멍이든 입으로든 놀아났을 거 아니야. 슈리엘은 칼버드가 그 나이에 허리를 흔들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라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
발정 난 원숭이처럼 체통도 잊고 미친 듯이 유진을 범했다. 잘못했다고, 죄송하다고. 그만둬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목소리가 귀를 간질일 때. 그는 어느 때보다 흥분했다.
옥처럼 고운 목소리.
더 듣고 싶었다.
나한테 매달렸으면 좋겠다.
빛 하나 들지 않아 얼마나 지난지 모를 긴 시간이 흐르고. 자신의 모든 것을 유진의 안에 담아냈을 때.
슈리엘은 정신을 차렸다.
"으윽… 유진?"
붉은빛이 잦아들고. 이성적인 사고가 돌아오자 보인 것은― 정액 범벅이 되어 죽은 눈으로 눈물을 흘리고만 있는, 얼핏 보면 천박한.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만든.
그런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