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3화 〉감정 포식자 (2) (53/193)



〈 53화 〉감정 포식자 (2)

미궁 내부는 지하라 해도 믿을 만큼 어두웠다. 그리고, 벽이 돌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 또한 지하의 모습과 크게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렇게 보인다는 거지, 굴이 아닌 '탑'의 모습을 한 만큼 공간의 제한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끝이 없는 느낌을 받았다. 걸어온 다리의 길이보다 긴 거리를 '앞으로만' 걸었는데 통로는 끝이 보이질 않으니….


"1층. 이상 무. 출구 확보 완료. 이상입니다."

그래도, 끝없는 미로는 아니었다. 출구는 존재했으며 다음 층으로 가는 계단 또한 멀쩡히 있었다. 인생 첫 미궁이 상승형 미궁이라니…. 나는 떨떠름한 기분을 구석에 처박곤 정보를 되뇌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모험가들의 최고 기록은 7층. 마법사의 사망으로 더는 전진하지 못했다고 한다. C급 모험가 네 명의 파티였다.

지도 작성은 내가 담당했다. 나는 계단 앞에서 출구와 입구, 다녔던 길을 표기했다. 시간이 걸렸지만 재촉은 없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지 알기 때문이리라.

"끝났어요."


지도 작성 끝.


나는 펜을 품에 넣고 빛을 발하는 구체의 크기를 늘렸다. 계단 너머의 공간이 보인다. 나는 너머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시선에 수신호로 경고를 보냈다. 슈리엘은 수신호를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층으로 간다. 칼버드!"


-촤아악!

미궁을 밝힌 빛의 구체 사이로, 자이언트 뱃의 날개가 종잇장처럼 찢어진다. 나는 피가 튀지 않게 두 발자국 물러나  광경을 관망했다. 발치에 피가 흩뿌려진다. 고약했다.

"진입!"

레인저 출신 병사가 함정을 발견하면 슈리엘이 나서서 해체한다. 직접적인 무력은 칼버드가 행사했으며, 시야 확보 같은 편의성은 내 마법으로 때웠다. 랜턴을 들지 않아 비어버린 손은 상상 이상의 기동성을 선사해주었다.


5층까지는 별 어려움 없이 갈 수 있었다. C급 생환율이 낮다 해도 결국 모험가 대상 통계. 전문적 훈련받은 병사 둘과 오러나이트 둘, 그리고 마법사(아크메이지) 하나인데 뭐가 어려울까.


하지만. 7층부터는 달랐다.

"큭!"


갑자기 날아온 불덩이를 피하느라 바닥을 구른 슈리엘은 돌조각에 팔꿈치가 까져 작게 신음했다. 자연스레 걸음은 멈췄고, 모두가 침묵에 빠졌다.


마법 함정.

내게 시선이 모인다.

나는 애써 당황한 척하며 눈을 돌렸다.

"함정이에요. 아마 이 근처에 마법진이 있을 텐데…."

가볍게 스캔하는 것으로 술식의 위치를 알아낸다. 압력에 반응하는 비교적 간단한 트랩이었다. 술식은 시간이 지나면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여 다시 충전 되는 식이었다. 슈리엘은 침을 퉤 뱉으며 일어났다.


"마법사를 데려오길 잘했군."

나는 술식을 발로 밟아 지워버린 뒤 작게 한숨 쉬었다.


'지금이라도 빠져야 하나.'

미궁은 생각보다 위험했고, 마법사의 의존도가 높았다. 후반에 가서 내가 빠져버린다면 필히 누군간 죽을 거다. 게다가 기대랑 달리 모험가들도 보이질 않았고.

'멍청한 몬스터한테 당하는  별론데….'


 지성이 있는 쪽을 원한다. 무지성 폭력은 감정 고조가 안 돼서 별로다. 서로 즐겨야지 나만 즐기면 쓰나. 그게 딸딸이랑 뭐가 다른가 말인가. 아무튼, 내겐 악보惡報의 연속이었다. 이젠 내가 없으면 진행할 수 없을 정도니 함부로 빠질 수도 없는 노릇.


7층 너머로는 보고서에 적히지 않은 그 말대로의 미지였기에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식량 아껴 먹어! 박쥐 고기 처먹을 거 아니면 지금 건량 뜯지 마!"


병사를 갈구는 슈리엘을 뒤로 하고 간이 텐트에 들어간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다. 내 몸 성히 끝낼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모 영국 셰프가 생각나는 얼굴로 윽박지르는 슈리엘을 떠올렸다.


'그럼 지금 있는 애들로 해결해야 하는데… 구슬려 봐? 어떻게?'


슈리엘은 강간을 하거나 목을 조를 것 같진 않았다. 칼버드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랑 가득한 섹스라니? 으웩. 진짜, 진짜. 그건 무리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생리적 혐오가 온몸을 기어올랐다.

"하아…."


한숨만 깊어진다.


*


우리가 앞으로 갈 8층부턴 아무런 정보 없이 돌파해야 했다. 슈리엘은 지도의 사본을 무려 다섯 장이나 만들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식량은 충분했다. 이제, 죽지만 않으면 된다.


8층. 몬스터의 크기가 작아졌다. 허나, 파괴력은 더 강해졌다. 9층. 함정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무작위 전이 술식 같은 치명적인 함정은 내가 사전에 차단했다. 10층. 마나가 담기지 않은 원시적 함정에 식량이 소실됐다. 슈리엘의 말대로 박쥐 고기를 처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맛은 끔찍했다.


11층. 12층. 13층. 층수는 점점 높아지고 난이도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특히나, 몬스터들은 더는 생명체의 형태로 다가오지 않았다.

예를 들어, 17층 공략 도중, 벽에서 고블린의 팔이 솟아난다거나.

"으아악!"

기겁한 병사를 밀쳐내고 팔을 뽑아낸 칼버드는 눈을 찡그리고 말했다.


"어떻게, 손만 나와서 공격할 수 있지?"

분명 고블린의 팔은 '의지를 가진 것처럼' 움직였건만, 팔을 뽑은 벽 내부에는 고블린은커녕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검기로 벽 안쪽을 파내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벽이 살아있는 것 같았다. 점점 기괴하게 변해가는 구조에 하나같이 탄식만 나왔다. 슈리엘은 폐인이 다 돼가는 병사들을 흘깃 보더니 아무에게나 말했다.


"하아. 대체 몇 층까지 있는 거야?"

던지듯 내뱉은 말에 대답한  나였다.

"…올려다봤을 때 높이가 가늠이  됐으니, 적어도 50층은 가야  겁니다."
"씨발. 이 상태로 30층을 더 가라고?"

평소에 안 하는 욕지거리까지 내며 머리를 벅벅 긁은 그는 이를 갈며 성을 냈다.

"이 미궁은 위험해. 대체 어떤 미궁이! 사람  먹이기를 이리 좋아하겠느냐고!"

확실히… 여기가 내 인생 첫 미궁이다만 악의로 가득 찼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더 고통스럽게 죽일까밖에 생각하지 않는 미치광이가 설계한 듯한 구조와 함정.

슈리엘은 침울한 표정의 병사들을 바라보더니 크게 소리쳤다.

"너희 둘!"
"…예."
"꺼져."
"어, 예?"
"두 번 말해야 알아듣겠어? 내려가란 소리야. 사실상의 임무는 종료야. 이젠 우리 관할이 아니라고."

조사는 끝났다. 10층 이상은 물론이고 당장 5층의 몬스터들만 봐도 평범한 모험가가 상대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경제적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얻는 거에 비해 위험도가 너무 높은 미궁. 슈리엘은 이런 미궁을 불량품이라 불렀다. 그러니 더 조사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아닌 성황청 혹은 영주의 병사들이 개입해 대대적인 토벌을 가할 테니까.


"칼버드으으으! 이 새끼들 좀 데리고 내려가!"


철수 명령.
헌데, 그의 명령을 잘 들어보면 약간의 이상함을 알아챌 수 있었다.

"도련님."
"…뭐."
"도련님은요?"

그리고 나는?

내가 좋아서 함정을 막아준 줄 아나? 보기만 해도 아랫배가 뜨거워지는 함정들을 해체하는 게 얼마나 괴로웠는데…. 뼈 빠지게 고생해서 기껏 살려놨더니, 혼자서 탑을 오르려고 해? 괘씸했다. 슈리엘은 내 굳은 얼굴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썩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대행자야. 루셸리니의 검, 성황청의 대리인. 이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할 의무가 있어."

터무니없는 주장.
칼버드는 검집을 두드리며 그를 만류했다.


"주인. 마법사도 없이 앞을 가는  불가능합니다."
"내가 언제 혼자 간다고 했나? 이년은 나랑 같이  거야."
"…모험가의 의사도 물어봐야 할 일입니다."
"으극…."


그 순간.
슈리엘은 얼굴을 악귀처럼 일그러트렸다.


―닥쳐어어어!!!

"……."
"……."


내가,  본 거지.

벽이 진동할 정도로 크게 소리친 슈리엘은 자신도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휘청거리며 벽에 몸을 기댄다. 칼버드는 넘어지려는 슈리엘을 부축하곤 심각한 얼굴을 지었다.

"주인! 괜찮습니까?"
"…괜찮아."
"어서 돌아가시죠. 이 미궁은… 어딘가 이상합니다."
"나, 난…."

말을 흐린 슈리엘은 얼굴에 혐오감을 잔뜩 드리운 채, 칼버드를 거칠게 밀쳤다. 성격이 급변한 사람마냥, 평소의 슈리엘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표정으로 윽박질렀다.

"저리… 안 꺼져?!"
"……."
"칼버드. '명령'이야.  둘을 데리고 이곳에서 나가."
"주인."

차마  주인을 버리고 가지 못하는, 이렇게까지 윽박질러도 등을 돌리길 주저하는 칼버드를 향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네 딸을 살리기 위해 내가 한 달에 돈을 얼마나 퍼붓는지 알면, 그렇게 주저할 수가 없을 텐데?"


누가 봐도 악당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당장. 꺼져."


―협박했다.

"…알겠습니다."


그와의 첫만남에서 내게 딸이 있다고 했던가. 슈리엘의 입에서 저렇게 과격한 말이 나올 줄은 나도, 칼버드도, 병사들도 몰랐던 것 같았으나― 자식이 거론된 순간부터 칼버드에게 거부권은 없었다. 얼굴을 싸늘하게 굳힌 칼버드는 폐인이 돼버린 병사 둘을 이끌고 돌아섰다.

"자, 잠깐만요 칼버드. 가기 전에…"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작은 빛 구체를 두어개 만들어 그들에게 띄워주었다. 지도 또한 챙겨주었다. 빛이랑 지도도 없이 어떻게 돌아가겠다고? 죽으라는 소리 아닌가.

'쟤 왜 저래? 고기 잘못 먹었나?'


슈리엘 루셸리니. 박쥐 고기를 처먹더니 드디어 돌아버린 것인가. 하긴. 처먹어도 박쥐 고기를 처먹었으니 정상이지는 않겠지. 농담이고, 나는 그가 단순 스트레스 때문에 예민해진  알았다. 정말로 박쥐 고기 탓이라면 모두다 돌아버려야 했으니까.
………
……
…그런 줄 알았는데.


"따라와!"

-꽈악!


"꺄흐, 윽?!"


내 머리끄덩이를 처잡고, 실실 쪼개며 위층을 향해 올라갈 때. 나는 일이 꼬였음을 깨달았다. 슈리엘도, 미궁도. 정상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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