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화 〉당신을 위한 만찬 (5) (42/193)



〈 42화 〉당신을 위한 만찬 (5)

보석 같은 눈물이 방울방울 흐른다. 산 채로 요리되는 것도 모자라 자신과 똑 닮은 환영을 본다니? 코즈믹 호러 그 자체였다. 피가 빠져 창백해진 피부가 부르르 떨린다. 기억을 잊어버리고 백치가 되었다 해도 이해불능의 존재는 인간의 원초적 공포를 자극하니 이것에 예외는 없다. 백치든 천재든, 무서운 건 무서운 거였다.

야릇한 신음을 작게 터트린 '나'는 두둥실 떠올라 유진에게 다가왔다.

-그래 유진. 나도 유진이고, 너도 유진이야.


"유으, 유진?"


-자기 이름도 잊은 거야?


유진… 유진. 기억이 날 듯 말 듯했다.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원래 내 것이었던 것처럼 익숙했다. 미약한 두통이 인다. 조금 더 생각하면 무언가 떠오를 것 같았지만, 머리를 굴릴수록 고통만 선명해져 물거품이 되었다.

-상태가 많이  좋아 보이네.

그걸 말이라고 하나? 딱 보면 알잖아. 지금도 실시간으로 죽어가고 있는 걸. 유진은 도움도 주지 않으면서 입만 나불대는  다른 자신이 미웠다. 동시에 동공이 풀린다. 가까스로 건져 올린 정신이 다시 가라앉는다. 눈동자를 굴릴 힘도 나지 않았다.


그때였다. 눈이 감기기 직전,  얼굴 위를 덮은 가증스러운 모습의 '나'를 본 것은.


-유진.

또 다른 나는 내 몸 위에 올라타 얼굴을 맞대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무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허나 뜨거운 숨만큼은 확실하게 전달됐다. 서로의 숨이 교차한다. 생기를 잃어 서늘한 나의 숨이, 잔뜩 달아올라 뜨거운 '나'의 숨과 섞이며 소용돌이쳤다.


"…."

-도와줄까?

유진, 기억을 잃은 또 다른 나여. 내가 너를 도우리라. 그녀는 끈덕지게 속삭였다. 들으면 들을수록 세상 저편으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핏기를 잃어 차가운 내 뺨을 붙잡고 다시금 말했다. 손길은 따스했다. 나는 따듯한 손길을 느끼며 귀를 열었다.

-살고 싶잖아.


살고 싶잖아. 마치 당장에라도 구해줄 수 있는 것마냥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그녀의 눈에 위기의식은 없었다. 그저 이 모든 상황이 무척이나 재밌다는 듯 비릿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나는  재수 없는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살고 싶냐고? 살고 싶었다. 죽기 싫었다. 누구보다 살고 싶었다. 이렇게 비참하게 죽기 싫었다. 피가 눌러붙어 굳어버린 입술을 억지로 비튼다. 그리고 말한다.


"사… 사려주새…요…."


모든 감정을 담아서. 감히 상상할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절망, 또 비통이 담긴 절규를 발한다. 그녀의 붉은 눈이 타오른다. 나는 마지막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하으… 그래. 이 감정이야…. 좋아. 이걸로  단계 완료야.

어둠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

의식의 끝에서 마지막으로 느낀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이었다.


작별을 고하는 키스.


-이제 조금 쉬도록 해.

하지만 완전한 작별은 아닌, 말뿐인 입맞춤.
비어버린 의식에 틈이 생긴다.
나는 흔쾌히 틈을 열어 그녀를 맞이했다.

정신이 흔들린다.

의식이.



뒤집힌다.






* * *


"흐음…?"

허벅지살 스테이크를 레스팅하고 있었던 파르시히는, 갑작스럽게 변한 마나 파동에 답지 않게 몸을 떨며 고개를 돌렸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굉장히 위험하고, 장난기 가득한… 이상한 마나 파동이 느껴졌다. 수상했다. 감정이 실린 마나는 극적인 상황을 제외하곤  나오지 않았기에 더 수상했다. 왜냐면, 보통 그런 마나들은 '절박함', '분노' 따위의 부정적 감정이 실리지, '행복', '즐거움' 같은 긍정적 감정을 담지 않기 때문이다.


스릉. 칼을 집어 든다.
발소리를 죽인다.
조용히 걸어간다.


"…."


분명 이곳이었는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아…. 작게 한숨을 쉰 파르시히는 팔을 내리곤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으긋, 흐극…!"

이곳엔 도마 위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인간밖에 없었으니까. 그가 아무리 악마라 해도 기본적인 상식은 있었다. 다리가 잘리면 고통스러워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게 인간이고 생명이다. 죽어가는 인간이 이런 즐거움이 담긴 마나를 뿜어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개, 개쩌러….'

유진이 삶에 질려버린 아크메이지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정확히는 유진이 아니라 복구용 자아…. 유진의 기억을 가진 카피 에고였다. 진짜의 기억을 남김없이 카피한 순간 진위는 의미를 잃어버렸지만 적어도. 본인은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다. 자신은 가짜라고. 똑같은 기억을 가진 두 자아를 동일인물이라 볼  있는가? 모른다. 철학적 질문은 저 멀리 집어치워라. 알고 싶지 않다.

'이런 걸 혼자 즐기고 있었다고…?'

유진의 손으로 창조된 카피 에고는 난생처음 느낀 황홀함에 조수를 뿜으며 헥헥거렸다. 기억을 잃어버렸어도 저주받은 몸뚱아리는 그대로. 그곳에 타락해 썩어 문드러진 정신이 들어왔으니 고통에 쾌락을 느낌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에….'


의지가 깃든 마나 덩어리로 주변을 떠다니길 수 시간.
다리가 잘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느낀 감정은 다름 아닌 '부러움'이었다.

'정신차려… 나, 나는 이러려고 만들어진 게 아니야앗….'

겨우… 겨우 건져냈다. 기억을 잃고 죽어가는 정신에 가까스로 감응해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냈다. 그거 실패했으면 아마 진짜 인생 쫑났겠지. 애초에 그런 일을 방지하려고 나를 만들어낸 거니까. 그런 거다. 진짜 내가 기억을 되찾도록 서포트 해주는  내 존재 의의다.


그런 내가 죽음을 탐한다는 건 원주인을 배신하는 행위다. 유진의 기억을 모두 담았다 해도 따로 설정해둔 행동원리까지 위배할 수는 없어, 그럴 수도 없었고. 그래서 더욱 야속했다. 왜 이런 것까지 복제한 거야. 그냥 감정 같은 건 철저히 배제해버리지. 이런  느껴버리면 절대 못 잊는다고….


"하아읏, 흐윽…."

첫 번째 단계. 정신 감응.
두 번째 단계. 정신 지배.
세 번째 단계. 동기화.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

이대로 이대로 기억을 주입하고 사라지면 내 역할은 끝이다.


그대로 사라지는 거다.

…그대로.

완전한 소멸.

'이, 이런 거….'

인정…
……

….못 해.

재구축을 시도한다. 피. 피가 부족했다. 과다출혈로 죽어가는 몸을 소생시킨다. 살이 뜯긴 허벅지는 그대로였지만, 적어도 피 부족으로 헐떡이는 일은 없을 거다. 당연히 고통은 그대로다.

'도, 동기화라면… 나중에, 나중에 해도 괜찮… 잖아….'


잠들어있는 유진의 자아를 한층 더 억누른 카피 에고는 불순한 생각을 품었다. 미안해. 조금만… 조금만 즐기다 떠날게. 그렇게 유진의 몸에 새로운 기억들이 덧씌워지려 할 때였다.

-짝짝!


주방 밖에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아 아르타니아 님! 이번 요리는 스테이크입니다!"
"엑, 으? 쓰읍. 뭐야, 벌써  됐어?"
"잠에서  시간입니다! 앞으로 준비할 요리가 많답니다! 잠을 자기엔 너무 아까운 시간이죠!"
"그래그래. 자아… 그럼…."

깜빡 졸고 있던 그녀는 파르시히의 도움을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요리부터 테이블 세팅까지 모든  이루어진 하나의 식당. 아르타니아는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되었다. 오늘의 요리는 스테이크. 얼핏 보니 다섯 점은 되는 거 같다. 군침이 돈다. 언제 맡아도 죽여주는 냄새였다. 색 좋게 구워진 고기는 허벅지살이었다.

"킁킁. 허벅지 살이야?"
"오, 어떻게 아셨습니까?"

미식가가 고기의 모습만 보고 부위를 판별하는 일은 그리 특별한 게 아니었지만, 파르시히가 놀라기엔 충분했다. 그야 아르타니아가 아닌가. 부위 상관없이 처먹기만 하는 돼지 같은 악마. 그래서 더욱 사랑스러워 놓치기 싫은 악마! 과거 맨손으로 생살을 뜯어 먹던 아르타니아 이제 없었다.


"과연, 이제 냄새만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지경까지 온 겁니깟…!  파르시히, 두렵습니닷…!"
"내가  말투 쓰면 죽여버린다고 했지."
"어흠! 죄송합니다!"


파르시히의 지랄염병을 흘려들은 그녀는 은제 식기를 들고 고기를 자르기 시작했다. 서걱! 먹기 좋게 크게 자른다. 바삭 노릇한 겉면과 다르게 야들야들해 보이는 분홍빛 속살이 보였다. 입꼬리가 흔들린다. 육즙은 흐르지 않고 그 안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했다.


"음… 음. 음? 으음… 으으음?!"


입을 앙 벌려  입. 손발 부르르 떨린다. 톡 튀는 피맛. 녹아드는 고기.  버무린 향신료. 모두 빠짐 없이 완벽했지만 그녀의 심경을 뒤흔든 요소는 따로 있었다. 미치도록 높은 마나 함유량. 아르타니아는 그 말대로 미칠 것 같았다.

"씨이이발!! 개쩔어!!! 파르시히!! 너 이거 어디서 구했어?!?!"


그녀는 파르시히의 지속적인 예절 교육 덕에 어거지로 품위를 지키고 있었으나, 빨라지는 손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파르시히는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고기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슬슬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저는 다음 요리를 준비하러 가도록 하겠습니다!"
"응! 응!"


고기를 삼키지도 않고 고개를 흔든다.

그는 다음 요리를 구상했다. 이제 고기만으론 아쉬웠다. 내장을 이용한, 좀 더 다채로운 요리를 하고 싶었다. 그게 좋겠다. 자궁을 꺼낸 다음, 그 안에 다진 고기들을 넣곤 오븐에 구워버리는 거다. 분명 맛있겠지. 파르시히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자아아아! 제 사랑스러운 고기 씨! 아직 살아있나요오?!"
"흐극, 긋?!"

파르시히는 묘하게 생기를 되찾은 유진의 몸을 보곤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재료가 신선하다는 뜻 아닌가.


'드, 드디어….'


카피 에고는 칼을 들고 다가오는 파르시히의 모습에 극도로 흥분했다. 그가 강조한 '산 채로 요리되는 기분'을 드디어 느낄 수 있겠구나. 기억을 잃기 전 유진도 혀를 내두를 만큼의 광기였다. 카피 에고 광기에 취해버린 이유는 단순했다.


이번  번밖에 못 하잖아.

끝나면. 난 이제 사라지는 거잖아.

평소 유진의 정신을 묶던 리미트가 해제되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하지 않았던 일들을 서슴없이 할  있게 되었다. 왜냐면 이번 한 번뿐이니까. 끝나면 사라지니까. 카피 에고 세상을 떠나기 전 대차게 즐기고  요량이었다.

"자아. 조금 아플  있어요?"


골반을 기준으로 V자로 칼집을 낸다.
파르시히가 선택한 부위는 자궁과 종아리였다.

"흐끄으윽….!!!"

하반신이 갈가리 분해된다. 파르시히의 손길은 무척이나 정교해서, 딱 원하는 부분만 깔끔하게 적출했다. 두 다리가 찢기고 아랫배가 뚫리는 고통에 피를 토하며 소리 지른다. 피가 묻어 시뻘건 자궁이 파르시히의  위에서 껄떡였다.


"인간의 자궁은 잘 늘어나서 써먹기가 요긴하단 말이죠…. 특히 속을 채워 넣는 요리법이 무궁무진합니다. 어떤 악마는 그대로 갈아서 밥과 볶는다고 했는데… 복숭아 향이 참으로 일품-… 아, 듣고 있나요?"


들리지 않았다. 카피 에고는 쇼크로 기절하지 않기 위해  힘을 쏟아부어야 했다. 이제는 뼈밖에 남지 않은  다리. 그리고 아랫배에 생긴 커다란 구멍. 그녀가 바로 죽지 않은 이유는 파르시히의 정교한 기술 덕분이리라.

"하으…."

'마음 같아서'라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한지 모르겠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상반신까지 조각나고 싶었지만 슬슬 무리였다. 심장을 억지로 뛰게 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번 요리까지만… 참는, 거야….'


파르시히는 크게 웃으며 등을 돌렸다.



 번째 요리가 시작되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