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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화 〉당신을 위한 만찬 (4) (41/193)



〈 41화 〉당신을 위한 만찬 (4)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눈물콧물애액까지 전부 흘리며 비굴하게 애원했음에도, 슬라임의 무자비한 세척은 멈추지 않았다.  울음을 쿨하게 씹은 슬라임은 주인의 명령대로 좁은 질구멍을 들락날락거릴 뿐이었다. 어지러웠다. 나는 뱃속에서 꾸물거리는 역겨운 이물감에 몸을 비틀며, 입덧하는 임산부마냥 헛구역질을 했다. 체력은 이미 바닥이었지만 슬라임의 치유 효과로 실신도 불가능했다.

태엽 풀린 인형처럼 간헐적으로 떨며 늘어진다. 몸 안의 수분은 말라버려 더는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든 애액이든 소변이든 간에.


"아힉, 흣. 으읏…."


슬라임은 음부에 특히나 오래 머물러 있었다. 성욕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상처가 가장 심한 곳이 보지였을 뿐이다. 슬라임에게 성욕이 있다면 그거대로 끔찍했겠지. 그리하여 체감 시간  시간. 슬라임은  긴 시간 대부분을 자궁 안에서 보냈다. 덕분에 내 배는 마른 몸에 비해 과하게 부풀어있는 상태였다.

"찰리 씨. 이제 마무리 단계입니다. 마지막까지 수고해주세요!"
"헤윽…?"

-꿈틀.

"으극, 히긱?!"


거대한 점액질 덩어리가 자궁과 질벽을 억지로 넓히고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슬라임은 몸 안의 노폐물을 빨아들이며 아주 천천히 전진했다. 한 번 꾸물거릴 때마다 허리가 휘고 몸이 떨렸다. 차라리 시원하게 빠져나오면 좋을 텐데… 마치 애간장을 태우는 것처럼 뜸을 들인다.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른다.

'이, 이상해에…'

나는 이 복잡 오묘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으나 추잡한 신음만 나올 뿐 마땅한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언어능력의 상실…. 말을 막 배운 어린아이처럼 낯선 경험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했다.


"이거 죠, 죠아… 하윽, 힉…."

묘하게 기분 좋다는 것.
백치들은 자기표현에 솔직하다.

-꿈틀!


"끄흐흐읏…!"

 안의 찌꺼기들을 전부 제거한 슬라임은 더 흡수할 게 없다고 판단했는지 탈출 속도를 높였다. 나는 전신을 지배하는 쾌락을 참을 생각도 못 하고 겉으로 드러냈다. 몸의 통제권을 포기하고 환하게 미소 짓는다.  눈은 마약을 맞았을 때보다  흐려 보였다. 몸에 잔뜩 쌓인 출산욕구와 배설욕구를 한 번에 해소하자 잠시 맛이 가버린 것이다.


"헤, 에헤헤…."


바보같이 웃으며 대자로 뻗는다. 슬라임은 쓰러진 내게 다가와 가슴과 등허리를 핥았다. 다시 한 번 찾아온 자극에 클리토리스와 유두가 솟아올랐다. 나는 몽환적인 부유감에 몸을 맡기고 슬라임의 '세척'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찰리 씨!"

 청소를 마친 슬라임은  멀리 떨어지며 자신이 떨어진 게이트로 꾸물꾸물 기어갔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는지 전보다  탱글탱글해 보였다. 잿빛 남자는 게이트로 들어가는 슬라임에게 크게 손을 들며 인사했다.

"수고했습니다 찰리 씨!"
"아…."


슬라임이 떨어지자 서운한 소리를 냈다. 좀 더… 좀 더 기분 좋아지고 싶었는데…. 나는 약간의 간절함을 가지고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봤지만… 얼마 가지  하고 다시 내려왔다. 남자의 눈을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남자의 잿빛 얼굴을 보면 반항할 수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는 기가 죽다 못해 쭈그리가 된 나를 바라보며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울지 마세요, 꼬마 아가씨…."


-지이잉…


잿빛 얼굴의 남자는 크게 손짓하며 게이트를 열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칼들과 무수히 많은 냄비가 떨어지며 주위를 장식한다. 솥과 오븐 같은 거대한 기구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주변 환경이 격변해갔다. 그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이곳을 주방으로 바꿔버렸다.

"아, 으…?"

눈 한 번 깜빡일 때마다 격변하는 환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남자를 바라본다. 어떻게… 어떻게 한 거지? 작은 뇌를 열심히 굴려봤지만 기적에 가까운 마법에 눈만 동그랗게 떴다. 인지을 초월한 광경을 목도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공포는 경외심으로 바뀌어버린 지 오래였다.


남자는 살짝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오히려… 기쁘지 않습니까?"

내 두 눈을 응시하며,

"이제 곧 있으면 그 추하기만  인간의 육신을 버리고…"

벽에 걸려있는 칼을 쥐었다.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예술 작품으로 승화할 텐데."

살짝 곡선을 이룬 길고 얇은 칼날.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습니까."


보닝 나이프.
도축용 칼이었다.

"첫 번째는 스테이크가 좋겠군요. 어디 보자…. 허벅지 살이 괜찮으려나…."

잿빛 얼굴의 남자… 아니 '요리의 악마 파르시히'는 입꼬리가 찢어질 정도로 미소 지으며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치직 치지직… 지직거리는 라디오 소리가 주방을 가득 채우며 뻗어나갔다.





* * ! * *




파르시히는 요리를 할 때면 더없이 진지해진다. 성깔 더러운 아르타니아마져 주방 칼을 쥔 그에게 감히 대들 수 없을 정도다. 그녀는 이때가 되면 아무  없이 얌전히 요리를 기다린다.

요리 한정으로 선포되는 절대 성역.

당연하지만 나태의 악마에게 기다림이란 쉽지 않은 것이었다. 재료 선별부터 도축, 손질, 조리까지 모든 과정을 파르시히 혼자 해결하려 하니 시간 상승은 필연적. 코를 찌르는 달콤한 냄새에 애간장을 탄 게  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괜찮았다.

결과물은 늘 환상적이었으니.


미미美味는 나태에게 감내를 가르쳤다.

파르시히는 그 사실을 자못 뿌듯해 했다. 본능을 꺾을 정도로 맛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힘이 아닌 맛으로 굴복시킨 첫 번째 악마… 아르타니아는 그에게 있어 무척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 이런 최고급 재료에 맛이라도 들려버리는  아닐까, 하고 말이다. 앞으로 요리하게 될 음식들이 입에 맞지 않기라도 하면 조금 곤란했다.


물론, 그렇다고 요리를 멈출 생각은 없었다.


"사, 사려주세여… 흐, 흐윽…."


파르시히는 커다란 도마 위에 결박당한 붉은 머리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나가 풍부한 최고급 재료…. 평소엔 먹지 않고 버리는 머리카락마저 마나가 깃들어 있었다. 답지 않게 아이처럼 흥분할 정도다.

스릉! 가볍게 날을 갈고 들뜬 마음을 다잡는다.

첫 번째 요리는 스테이크.


첫 요리로는 많이 아쉽지만… 최대한 깨끗하게 조리하고 싶다는 제 욕심으로 시간을 지체한 것도 사실. 그녀 또한 소중한 시간을 투자하며 기다리고 있을 테니 최대한 빠르게 대접하는 게 예의이다. 빠르다고 대충 하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늘, 최선을 다해서.


"아, 아아…"


칼날이 붉은 벽에 반사된 빛을 받고 빨갛게 빛난다. 파르시히는 소녀의 비탄을 무시하고 나이프를 역수로 쥐었다.

재료는 왼쪽 허벅지.

파르시히는 유진을 따로 기절시키거나 그러진 않았다. 산 채로 요리되는 기쁨을 알려주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 싸이코 새끼 같지만 그는 진심이었다. 소녀가 왜 울부짖는 줄도 모른다.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 된다는데, 기뻐해야 함이 마땅치 않은가? 아무리 임프의 피가 섞여 있다고 해도, 결국 그도 악마였다. 그는 뒤틀린 가치관을 가졌다.

"아, 아아… 아아아아악!!!"

쭈우욱… 의사가 메스로 피부를 가르듯 매끄럽게 칼집을 낸다. 파르시히는 안쪽 근육이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피부를 드러내곤, 샛노란 지방층과 불필요한 피부 조직을 떼어놓았다. 순조로운 박피였다. 시뻘건 핏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그는 군침 도는  냄새에 살짝 입맛을 다셨다.


"흐끅, 이긱. 으그윽…."

소녀은 산 채로 피부가 벗겨지는 고통에 거품을 물고 껄떡거렸다. 잘 보니 기절하진 않았다. 파르시히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넘어갔다. 이제 피부를 벗겨냈으니, 고기를 잘라내야 할 시간이다. 저런 것 따위에 신경  겨를이 없었다.

"후후…."

파르시히는 즐거웠다. 마나가 풍부한 것도 모자라 어린 소녀이기까지 하다. 평소 가져오는 시체들이 숫소였다면 이건 어린 암송아지다.


행복을 삼킨 그는 나이프를 역수로 쥐고 본격적으로 고기를 발라냈다. 서걱, 서걱… 허벅지 살이 뭉텅이로 잘려나간다. 파르시히는 유진의 살을 먹기 좋게 발라내곤 도마 위에 쿵! 소리가 나도록 올려놓았다. 이건 스테이크용 고기다. 시즈닝 이후 구워질 냄새를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흠… 스테이크만 떡하니 올려놓기엔 조금 심심하니, 간단한 고기 스튜도 만들어 볼까요."


추가 발골 선언.

"아, 아. 아…."

유진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며 뚝뚝 끊어진 신음을 흘렸다. 더 소리 지를 힘도 없었다. 당장 혀를 깨물고 자살하고 싶었으나  힘마저 부족했다. 그저 속으로 절규를 삼킬 뿐이었다. 무엇보다 끔찍한 사실은, 정신만은 멀쩡하다는 것이다. 피부가 벗겨지는 고통, 칼이 살집을 파고들 때의 고통, 안을 헤집다 못해 뼈를 건드는 고통까지 모두 선명하게 느껴진다.


"으으…."


유진은 선택받지 못한 살점들이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눈이 충혈된다. 붉어진 눈을 내리깔자, 골반과 무릎 사이가 비어있는 자신의 왼쪽 다리가 보였다. 남자는 정말 뼈를 제외한 모든 허벅지 살을 가져갔다. 믿고 싶지 않았다. 말랐던 눈물이 다시금 샘솟았다.


"으, 으으… 으으으!!!"


죽고 싶지 않았다.

덜컹, 덜컹. 도마 위가 흔들린다.


파르시히는 노릇노릇 구워지는 고기에 시선을 고정하곤 무심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피를 모아주겠다고 하니 딱히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만… 발작하면 좀 더 빨리 죽을 거라고요?"

격한 몸부림에 출혈이 가속된다. 흐르는 핏물은 도마에 패인 홈을 타고 조그마한 양동이로 모였다. 파르시히는 피가 양동이의 절반을 채웠을때, 그것을 그대로 팬에 투척했다. 핏물이 증발하며 역겨운 비린내를 풍겼다. 피구름이 생긴다. 그는 "역시 와인보단 핏물이 더 향기롭군요!"라고 외치며 마저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아그윽…."


가라앉는다. 피구름의 비릿한 혈향을 맡으며 빠른 속도로 침몰한다. 유진은 죽음을 느꼈다. 죽음은 생각보다 상냥하게 다가왔다. 죽기 싫다고 추하게 발버둥 칠 때에 그렇게 매서웠던 죽음이, 막상 이렇게 다 포기하니 낫을 거두고 생을 애도한다.  죽을 생을 위한 영원한 묵념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매정하기도 하지. 이렇게 편안한 거라면 진즉에 알려주지 그랬어.


-…려?

그때였다.

유진은 정신이 심해 밑바닥에 처박기 직전,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내 목소리 들려?

익숙하시고 자시고 이건 내 목소리였다. 죽을 때가 되니 환청이 들리는 걸까. 그러나 단순 환상으로 치부하기엔 지금 느끼는 고통만큼이나 선명했다. 유진은 머리를 울리는 목소리에 지하 깊숙이 처박히던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윽…?"

눈을 뜬다.

눈을 뜨면 보이는 건 또 다른 나.

유진과 똑같이 생긴 소녀가 하늘을 떠다니고 있었다. 유진은 숨 쉬는 것도 잊고 '나'를 바라보았다. 특이점이 있다면 몸이 반투명했다. 피부도 푸른 빛을 띠는 게 사람 같지 않았고. 또 겁에 질린 자신과 다르게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였다. 그녀는 나와 시선이 맞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들려? 이제 나 보이지? 좋아. 첫 단계는 해결됐고…

 단계? 이해할 수 없는 말뿐이다. 그녀는 엉망진창이 된 내 몸을 이곳저곳 살펴봤다. 특히 갈기갈기 찢긴 왼 허벅지를 유심히 들여다봤는데… 어째서인지 부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분 좋아 보이네.

'나'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부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이가 없었다. 이게 부럽다니? 누굴 놀리는 건가? 그러거나 말거나 또 다른 나는 야한 신음을 뱉으며 몸만 배배 꼬았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녀는 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힌 유진의 눈을 보곤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진짜… 나도 어지간히 미친놈이야.

유진은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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