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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화 〉당신을 위한 만찬 (2) (39/193)



〈 39화 〉당신을 위한 만찬 (2)

"하암…."

나태의 악마 아르타니아는 파르시히가 가져오고 조리한 '특별한 만찬'을 즐기곤 방구석에 백수처럼 뻗었다. 배가 부른 채 누워버리니 절로 하품이 나온다. 아무렇게나 누워버린 탓에 웨이브진 금색 머리는 살짝 뻗쳐버렸고, 풍만한 가슴이  차례 출렁거렸다. 그녀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나른한 인상을 받게 했다. 실제로도 나른했고.

'파르시히는 언제 오는 거지?'

매번 인간들을 가져와 조리해주는 파르시히의 모습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신다. 임프 혼혈인 주제에 키는 멀대같이 큰 모순적인 악마. 임프를 따먹은 병신같은 악마가 누군진 몰라도 그놈들 키가 130을  넘긴다. 난쟁이란 소리다. 그런데 파르시히는 임프 피를 타고났으면서도 190이 넘는단 말이지.

'아무튼, 신기한 놈이야.'


아르타니아의 신장은 158 정도. 인간으로도 악마로도 작지만은 않은 키였으나 파르시히 앞에 서면 임프가 되어버린다. 예전엔 그 사실을 썩 마음에 들어하진 않았지만 요즘들어 오히려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요리도 잘하고…  인간도 많이 가져다주고. 사냥하는 것마저 귀찮아 늪지대에 자리 잡은 아르타니에겐 썩 괜찮은 상대였다.

'내가 걜 어떻게 만났더라….'


파르시히와의 만남을 상기한다.


....
...
..
.


악마들의 만남은 늘 우연이 함께한다. 서로를 만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심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동족을 달가워하는 것도 아니었고. 악마 대부분은 철저하게 개인주의였다. 그래서 파르시히를 만났을 때조차 평범한 일상이었다. 평소처럼 겁 없이 늪지대를 방문한 인간들을 늪에 빠트리고, 회수한 다음 생으로 씹어먹고 있는데 키만 더럽게 큰 악마가 기겁을 하며 달려드는 게 아니던가. 뭔가 얼굴도 능글맞은 게 재수 없어 보였다.


"당신!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가요!"

아르타니아는 그때 당시 파르시히가 날렸던 독설을 잊지 못한다. 야만적이니, 미개하다느니, 먹을 줄을 모른다느니… 다짜고짜 욕부터 날리는 만행에 어이가 없어진 그녀는 땅을 대차게 뒤집는 것으로 화답했다. 늪지대의 주인인 아르타니아는 물과  마법에 능통했다.

땅이 뒤집히고 물이 솟구친다. 끽해봤자 임프 혼혈인 파르시히가 정통악마, 그것도 '나태' 라는 이명이 붙은 악마의 마법을 피하기는 요원했다. 아르타니아가 게으르다고 약한 것은 아니었기에 더더욱.


"끄에엑!!!"

팔이 부러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가공할 만한 수압과 날카로운 돌조각에 찢겨나간 파르시히는 그야말로 걸레짝이 되었다. 그래도 악마는 악마인지라 한 번의 공격만으로 죽지는 않았다. 아르타니아는 무거운 발을 움직이며 그에게 다가갔다.


"임프…?"

얼굴이 잿빛이었다.  세상에 얼굴이 잿빛인 놈들은 임프밖에 없었다. 눈을 굴려 파르시히를 바라본다. 컸다.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그냥 엄청나게 컸다. 이게 정말 임프가 맞나? 내가 알던 임프는 대체…? 자세히 바라보니 이마에 뿔이 달려있었다. 자신의 것과 비교하면 형편없었지만, 분명 악마의 상징이었다.

"악마임프 혼혈…? 푸하하!!"


웃음이 빵 터졌다.


세상에. 임프랑 떡을 치는 악마가 있었을 줄이야. 아르타니아는 여타 악마들과 달리 성에 대해  알았다. 나태와 성욕은 떼놓을 레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가올리스처럼 자위에 중독된다거나 하진 않았다. 게으름이 성욕을 덮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그녀는 식욕 또한 왕성했다.


차오르는 눈물방울을 스윽 하고 닦아낸 그녀는 키가 큰 임프를 바라보며 말했다.

"야.  이름이 뭐냐?"

오래간만에 좋은 구경 했네. 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한 그녀는 숨만 헐떡이는 임프에게 물었다.

"끄윽… 파르…시히입니다…."
"병신같은 이름이네."

비웃음을 지으며 엿을 날린다. 그러곤 곧바로 뒤돌았다. 뒤지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일까. 마무리하는 것도 귀찮아진 아르타니아는 파르시히를 내버려두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정확히는, 돌아가려고 했다.

"자, 잠시만요!"
"…뭐야?"

다시 고개를 돌리자 파르시히는 두 다리 멀쩡히 일어나 있었다. 흠. 어떻게? 악마가 체력이 좋다곤 하지만 저렇게 곧바로 회복할 정도는 아니었다. 살짝 의구심이 들었지만 '임프 혼혈이라 그런거겠지.' 라는 생각으로 때워버렸다. 그녀는  생각하기가 귀찮았다.


"제, 제가 요리를 해드리겠습니다!"


아르타니아는 파르시히의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리라니? 요리라곤 늪지대에 빠진 인간을 씻어내는 일밖에 하지 않았던 그녀에게 조리 과정이란 생소한 것이었다.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조리가 아닌 손질이겠지만 아무튼. 아르타니아는 조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생으로 씹어먹어도 맛있는데 왜 요리를 하겠냐고. 근육과 혈관을 베어   터지는 핏물과 오도독거리는 뼈의 감칠맛은 그 자체로도 훌륭했다.


"꺼져 등신아."

 희한한 놈을 다 보겠네.
악마가 요리라니? 그딴 귀찮은 짓을  해?

"절대로! 절대로 잊을 수 없으실 겁니다!"
"……."
"제가 당신에게 천국의 맛을 느끼게 해드리겠습니다!!"

천국의 맛이라…
…잠깐.
나 악마잖아.


"그거 죽으란 소리 아니야?"
"먹다 죽을 만큼 맛있다는 소리죠! 제 농은 재밌었습니까? 부디 그러셨으면 좋겠군요!"

이 거지 같은 농담에 피식 웃어버린 아르타니아는 자존심이 상해 파르시히를 그대로 날려… 버리려고 했으나 살짝 구미가 당겼다.

"…얼마나 맛있는데?"

전에 설명했듯 나태, 성욕, 식욕은 한 세트다. 식량이 쌓이면 퍼질러져 놀고먹기만 하는 그녀에게, '죽을 만큼 맛있는' 이란 수식어는 흥미를 끌 만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혹시 따로 거처가 있으십니까?"
"…거처는 왜?"
"그야 조리할 장소가 필요하니까 말이죠! 밖에서는 조리 방법이 극히 제한된답니다!"
"흠…. 허튼짓 하면 바로 죽여버릴 거야."

그러나 지하에 처박힌 아르타니아의 성에 온다고 상황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파르시히의 말마따나 그녀는 야만인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조리 도구 따위는 없었다.


"하아…."
"너 지금  보고 한숨 쉰 거야?"
"아니요! 아닙니다! 아니고말고요! 그저, 놀랐을 뿐입니다! 성이 무척이나 아름답군요!"


뻔한 아부였지만 기분이 좋아진 아르타니아는 턱짓으로 명령했다.
그 잘난 요리 좀 한  해보라고.


"맛없으면 죽일 거니까 알아서  처신해."
"아하!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마른 입술을 핥은 파르시히는 아공간에서 온갖 조미료와 와인 등을 꺼냈다. 아르타니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공간 마법을  줄 알아?"
"예! 제 특기입니다!"
"근데 꺼낸 것들은 뭐야?  도자기는?"
"도자기가 아니라 와인입니다! 이건 후추! 저건 파슬리고요!"
"그래 너 잘났어. 그래서 그거 먹으면 되는 거야?"
"아니요 아니요! 이건 재료입니다! 그리고 요리는 인내심이 필요하답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얼마나?"
"음… 오븐이나 커다란 솥이 없으니 굽기가 적당하겠군요! 손질 시간이 필요하니 두 시간 정도만 기다려주십쇼!"
"두우시이이간?"

아르타니아는 얼척이 없었다.
나태의 악마인 그녀에게 두 시간이란 기다림은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냥 죽―."
"당신!"
"…."
"후회하실 겁니다!"
"내가 왜?"
"이 음식을 먹어보지 못한다면! 평생토록 후회하실 겁니다!  뿔을 걸고 장담합니다!"

파르시히는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르타니아는 고민했다. 얼마나 맛있기에 저 지랄을 하는 걸까? 하고. 지금 이 새끼를 죽이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더 깊게 생각하기 귀찮았다.


"…알아서 해. 난 자고 있을 테니."
"현명하신 선택입니다!"


그리하여 두 시간 뒤.

아르타니아는 자신을 깨우는 파르시히의 두꺼운 손길을 알람 삼아 일어났다.

"뭐야… 시발! 너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전 공간 마법이 특기입니다! 하하!"
"뭐가 하하야! 안 꺼지고  해?!"

재수 없는 멀대 새끼.
그래도 자는 동안 공격은 안 했으니 믿을 만은 하겠지.


"자! 요리가  되었습니다!"

파르시히가 선택한 음식은 갈비였다.


아르타니아가 사로잡은 인간은 늑골에 마나가 특히나 많이 모여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조리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심장과 간을 제외한 내장을 모두 들어내고 쓸모 없는 팔다리와 머리는 버린다. 갈비뼈 마디마디를 섬세하게 분리하여 먹기 좋게 따로 나눈다. 살점이 뼈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 굽는다.


가지고 다니는 철판이 작아 많이 굽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1인분은 훌쩍 넘기는 양이었다. 중간중간 구운 간과 심장이 싱싱한 야채들과 같이 장식되어 있어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그 뒤로 파르시히는 조미료가 무엇이 들어갔냐느니, 먹을 때 어떻게 먹어야 한다느니 여러 가지를 설명했지만 아르타니아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

코를 찌르는 강렬한 조미료의 향.
인간 고기 특유의 꾸리꾸리한 냄새.
데코레이팅까지 완벽해 보는 것만으로 침샘이 흐른다.


아르타니아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문장.


이건.


참을  없다.

눈이 돌아가 팔을 뻗으려 했을 때―.

"잠깐!"


파르시히가 손을 잡아 저지했다. 순간 동공이 확장된 아르타니아는 숨이 막힐 정도의 살기를 담아 파르시히를 바라봤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했다.

"더욱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게 허겁지겁 먹는다면 요리한 의미가 없겠지요!"


파르시히는 그녀가 인간을 뼈째로 씹어먹는다는 걸 알고있었기에, 이것을 통으로 먹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면 고기 본연의 맛을 느끼지 못한다. 악마의 미각은 뼈도 무리 없이 받아들였지만, 인간 사회에서 요리를 배운 파르시히에겐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기는, 고기로 승부를 봐야 한다.


그녀는 '더 맛있게' 라는 말에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었고, 파르시히는 직접 시범을 보이며 고기를 먹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는 맛있게 구워진 갈비 한 조각을 들곤 뼈를 제외한 모든 부위를 남김없이 흡입했다. 아르타니아는  모습을 침을 질질 흘리며 바라보았다.

"자. 이렇게 먹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끄덕끄덕. 커다란 가슴과 황금색 머릿결이 흔들거린다. 어느샌가 열등한 임프혼혈의 명령을 듣는 처지가 되었지만 그딴  생각나지도 않았다.


고기를 베어  아르타니아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으니까.

"하하하!! 그렇게 맛있게 드시니 저도 행복하군요!"

그리고 그것은 파르시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인간 사회에 숨어 살면서 우연히 요리를 접했고, 방식의 다양함에 감탄했다. 특히나 조미료의 발견은 가히 혁명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요리책을 홈치기도 하고, 인간으로 위장을 해 직접 배우기까지 했다. 그래서 파르시히는 악마치곤 드물게 인간들의 언어를 글로 쓸 줄 알았다.

물론 재료는 인간이었다. 악마에게 소나 돼지는 입에 맞지 않았다. 먹으려면 먹을 순 있지만, 아무래도 마나의 농도 차이가 너무 심한지라….

파르시히는 자신에게 요리를 알려준 노부부를 그대로 삶아 먹어버렸다. 어린아이의 간을 먹어보기도 하고, 체격이 튼튼한 남자의 질긴 고기도 뜯어봤다. 기혼녀의 내장으로 탕을 끓인 적도 있다.

문제는 너무 활개 쳐서 그런지 성황청이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시적으로나마 이명도 붙었다. 요리의 악마라고! 이명이 붙은 건 경축할 만한 일이었으나, 파르시히는 추적이 시작된 이후론 시체 위주로만 요리했다. 성황청의 무력을 감당할 실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맛있게 먹어주는 손님이 있다면 무엇이 두려우리.


무엇보다 아르타니아는.

그의 첫 손님이었다.

....
...
..
.



대충 이렇게 만났다.


요리의 참맛에 빠져버린 아르타니아는 파르시히에게 종종… 아니 하루도 빠짐없이 요리를 부탁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파르시히는 기꺼이 응했고 종국엔 그가 직접 식재료를 조달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늪지대에 빠진 인간들은 너무 복불복이라나 뭐라나.


어디서 구했냐고 물었는데 시체를 돈 주고 산단다.
돈은 어디서 났느냐 물어보면 그건  비밀이래.


'뭐… 상관없지.'

맛만 있으면 되니까.
아르타니아는 흡사 길러지는 수준으로 조교 당했으나 본인은 눈치채지 못했다.
파르시히 본인도 별 생각 없었고.


-지이잉….

게이트가 열리는 소리.
아르타니아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파르시히! 오늘  뭐야?!"

파블로프의 개처럼, 게이트가 열리는 소리를 들으면 침샘이 고인다.
그녀는 주인을 맞이하는 강아지처럼 뾸뾸뾸 달려갔다.
쑤욱! 파르시히의 기다란 다리가 게이트에서 삐죽 튀어나왔다.

곧이어 붉은 머리의 인간을 둘러업고 눈앞에 당도한 파르시히는 어느 때보다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안녕하십니까 아르타니아 님!! 오늘은 제가!! 엄청난 재료를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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