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3화 〉뒷골목 신드롬 (1) (33/193)



〈 33화 〉뒷골목 신드롬 (1)

뒷골목.

오랜 시간 경비대의 손길이 닿지 않아, 온갖 범죄의 온상이 되어버린 곳. 도시에 암약한 뒷골목은 암세포가 되어 알게 모르게 퍼져나간다.

하지만 실핏줄같이 퍼진 이들을 잡기란 쉽지 않다.

브리도니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도시라면 어디든지 존재하는 '사각지대'는 쥐새끼들의 거처가 되고 하이에나들의 사냥터가 된다. 아무리 열심히 소탕해도 새로운 쥐와 하이에나가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골목을 싹 밀어버려 재건설을 하거나 지속적인 인력을 배치하지 않는 이상 완전소탕도 불가능했다.

골칫덩이가 아닐  없다.

수도급 치안 유지력이 없는 대부분의 영주는 끈질기게 연명하는 이들에게 귀한 인력을 투자하기보단, 감시에 가까운 방임을 택했다.


선을 넘으면 죽여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내버려둔다.
알아서 사리라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끝없는 치킨 게임에 지친 뒷골목 쥐새끼들은 자체적으로 규칙을 만들어 지키지 시작했다.

그중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가지를 뽑자면―

―첫째.
선을 넘지  것.

'선'의 기준은 각자 다르지만, 대체로 영주를 빡돌게 하지 않게 하는 것으로 수렴된다.


사람을 죽이더라도, 마약을 팔더라도, 강간을 하더라도 절대로 뒷골목 밖에서 자행하지 마라. 만약에 하더라도 철저하게 숨기면서 해라. 숨을 쉬러 물 위로 머리를 내미는 순간 목이 잘릴 테니까.

―둘째.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말 것.

정확히는, 고객을 죽이지 말 것.
이는 밥그릇 문제에 가까웠다.
뒷골목이 아무리 쓰레기 무법지대라 해도 결국은 사람이 사는 곳.
사람이 있으면 돈이 돌고, 돈에 의한 질서가 형성된다.


그중 가장 큰 파이는 당연 마약. 딜러와 카르텔은 마약을 수월하게 팔기 위해 나름의 치안을 확보했다. 사람을 썰고 다니는 미친놈이 있으면 용병을 고용해 죽여버린다. 사업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으면 전쟁을 벌인다. 고객들은 밥그릇을 두고 일어난 치열한 싸움 덕에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았다.


물론, 돈을 낼 능력이 전무한 거지새끼들은 '고객' 취급을 받지 못한다. 이들은 얼마 가지 않아 하이에나들에게 당해 내장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소문으로는 '특별한 음식'을 원하는 자들에게 팔려나간다던데…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왜… 왜… 아무도 안 건드는 거야….'


어린 소녀가 겁도 없이 맨몸으로 방문했음에도 건드는 놈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으으…."

그리고 나중에  건데, 내가 모르는 세 번째 규칙이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추가된 규칙이라 모를 수밖에 없었다.


―셋째.
이상할 정도로 깔끔한 여자가 있으면 건들지 마라.

흑장미의 주인 다이나 프루카이스가 직원들을 음마공으로 단련시키자, 여리여리한 몸과 다르게 힘이 장사인 여자들이 속출한 것이다.


업무 시간 외에도 정기 흡수를 위해 종종 뒷골목을 방문하는 그녀들은 싸구려 매춘부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흑장미 출신인 만큼 굉장히 깔끔했고, 자신의  배나 되는 덩치의 남자를 보아도 쫄지 않는다.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는데  쫄겠는가?


"이봐. 얼마면 돼?"
"꺼져…."


그런 의미에서 나는 더없이 완벽한 '흑장미 창녀'였다.

"씨발련. 비싸게 굴긴. 퉤!"

 창녀로 오인하고 돈을 제시한 남자는 '꺼져' 한마디에 침을 뱉으며 돌아섰다. 흑장미의 사정을 몰랐던 나는 남자의 모습에 커다란 이질감을 느꼈다.

'그냥 간다고? 면전에 욕을 했는데?"


양아치 새끼들이 이럴  없는데….
자기보다 어린 소녀한테 욕먹으면 빡칠 만도 하잖아.
배빵이라도 날릴 줄 알았던 나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시발….'

그렇다고 애원하자니 자존심이 안 산다. 그건 흑장미 창녀도, 싸구려 매춘부도 아닌 그냥 변태였다. 변태 중에서도 개쌉변태. 내가 마조변태라는 걸 부정하진 않지만, 겉으로 드러내는 것과 속으로 즐기기만 하는 건 펩시와 코카만큼의 차이가 있다.

'병신 쪼다 새끼들….'

덩치도 작은 소녀한테 겁이나 먹고 말이야.


그냥, 막. 발로 걷어차거나.

목을 조르거나.


쓰러트려 짓밟거나 하면….

"후으…."

진짜 어쩌지.

놀라울 만큼,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상행동을 하면 할수록 더 기피하는 느낌이었다. 눈치 빠른 놈들은 내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눈치채고 자리를 피해버렸기 때문이다.


"……."


죽음 충동.
입술이 마른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가늠하기도 힘든 권태가 날 덮칠 게 뻔했다. 피학성애를 깨닫기 전의, 무료함에 젖어 하루하루를 시체처럼 살아가는 내 모습을 떠올리자 몸이 덜덜 떨렸다.

그 끔찍한 감각을 다시 느낄 바에는 머리를 터트려서 자살하고 만다.

제발, 아무나 좋으니 내게 음습한 욕망을 풀어줬으면 좋겠다. 어떤 종류든 상관없다. 추잡한 성욕이든, 물욕이든, 가학심이든 상관없다. 날 비참하게 만들어라. 살려달라고 애원하게 하여라. 신음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두들겨 패라. 장난감으로 써도 좋다.

7일간 풀지 못해 쌓인 흥분은 식지 않고 뇌를 달궜다.


그렇게 발발 동동 구를  경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땅꼬마."


고개를 돌린다.
스킨헤드 스타일의 껄렁한 복장의 남자가 보였다.
카르텔 소속으로 추측된다.


"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들어온 거냐?"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꽤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상태.
눈을 굴리자 남자와 똑같은 스타일의 스킨헤드 빡빡이들이 몇 보였다.
나도 모르게 카르텔의 중심 활동지역까지 들어온 것이다.

"보니까 흑장미 쪽 같은데, 대가리 박살 나기 싫으면 얼쩡거리지 말고 꺼져."

흑장미의 여직원이 뒷골목에서 죽기라도 한다면, 그 골목은 그날로 끝장난다고 보면 된다. 다이나 프루카이스가 극대노를 하며 뒷골목을 초토화 시키기 때문이다.

극한까지 단련한 음마공도 문제였지만, 주먹을 이용한 체술도 수준급이라 어지간한 용병 아니면 손도 못 댄다. 다시 말하지만, 모험가가 아니라 용병이다. 전문적으로 사람 써는 기술을 배워먹은 용병들도 프루카이스를  이긴단 소리다.
심지어 혼자 오는 것도 아니다. 라일라를 비롯한 음마공 전수자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카르텔과 전면전을 벌인다. 카르텔의 전멸을 각오해야 하는 싸움. 당연히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

…물론, 지금의 나는 알지 못하는 이야기.

'흑장미  너야?'

그놈의 흑장미, 흑장미…
뭘 당한 적은 없지만 괜스레 미웠다.

"그년만 아니면 팔다리 자르고 팔아버리는 건데… 씨발. "

정말 진절머리가 난―

………

……



…팔다리를 자르고, 팔아, 버린. 다고?


"씨발련아 말 안 들려? 계속 거기 있으면 팔 한 짝 잘라버리는 수가 있다? 나도 책임 못져?"

드디어―
드디어 찾았다.
두근두근, 기쁨에 심장이 미칠듯이 뛴다.


"이 개좆련이 지금 뭐하는―"

침착하자….
아그네스 때처럼 어중간하게 끝날 수도 있어.


나는 피어오르는 미소를 숨길 생각도  하고 말했다.


"흑장미가… 아니야."
"뭐?"
"말 그대로야. 난 흑장미 소속이 아니야."
"……."


순간 내 몸을 훑는 끈적한 시선.
천박하게 혀를 핥짝인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 쪽이지? 남쪽 거리 놈이냐?"

빡빡이는 주머니에서 조금 길이가 있는 대나무 통을 꺼내 들었다.
그러곤 양쪽을 잡아당겼고, 이어 스르릉하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렸다.

장도粧刀였다.

"대답 잘하는  좋을 거야."






* * *


북카르텔 소속 '로건'은 주머니에 손을 꽂고 불량한 자세로 뒷골목을 거닐었다.


"씨발."

좆같았다.

그냥 다 좆같았다.

흑장미의 창녀들도, 남쪽 카르텔 놈들도 다 좆같았다.

동쪽 거리의 뒷골목을 차지하기 위한 남카르텔과의 항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흑장미 창녀들이 뒷골목을 싸돌아다니기 시작하자 값싼 매춘부들은 모습을 감췄다.


마약 한 번 놓아주면 헬레레 하며 다리를 벌리는 창녀들이 사라지자 불편한 게 한둘이 아녔다.

남카르텔과의 싸움에 지칠 대로 지쳤는데, 성욕마저 풀지 못한다니? 성욕은 쌓이고 싸움은 계속되고… 조직 내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게다가 흑장미년 한 번 따먹으려고 돈을 갖다 바치는 멍청한 새끼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조직  돈이 흑장미로 흘러간다는 소리다.

'좆같네 씨발….'


여자 수요는 많고, 공급은 없다.


드물게 마약을 구하러 온 창녀가 있다면 죽을 때까지 돌려먹었다. 최소   이상의 남자를 쉬지도 않고 상대해야 하는 창녀들은 대부분 자궁파열이나 섹스 도중 구타로 죽어버린다.


그마저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좆질이 뒤로 밀릴수록 허공에 박는 느낌이 든다.
걸레짝이 된 보지는 자위를 하는 것보다 못했다.

그 탓인지 뒷골목을 찾는 창녀들은 점점 줄어들었고, 종국에는 돌아다니는 여자는 전부 흑장미 소속인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건…

"야 땅꼬마."

눈앞의 붉은 머리 계집애도 마찬가지겠지.


"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들어온 거냐?"

눈앞의 소녀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들고 박기 적당한 아담한 체구와, 망가질 때의 표정이 기대되는 오만한 무표정… 키는 작지만, 비율적으로는 완벽했다. 가능하다면 애완동물로 기르고 싶은 여자였다.


저런 여자가 뒷골목에 있을 리 없으니…

'백 퍼센트 흑장미년이겠지.'


입을 다신다.


"보니까 흑장미 쪽 같은데, 대가리 박살 나기 싫으면 얼쩡거리지 말고 꺼져."

흑장미만 아니었어도 바로 따먹는 건데.
로건은 가슴 큰 여자가 취향이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수천 번은  따먹었다.
 그대로 상상이라서 아쉬울 뿐이다.


"그년만 아니면 팔다리 자르고 팔아버리는 건데… 씨발. "


다이나 프루카이스.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년.
언젠가 꼭 따먹고 만다.
따먹은 다음엔 팔다리를 잘라 개먹이로 준다.

그렇게 실현 가능성 없는 다짐을 할 때였다.


-또각, 또각….


소녀는 묘하게 색정적인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다가왔다.
로건은 예상외의 행동에 장도를 뽑아들고 경계태세를 취했다.


"이 개좆련이 지금 뭐하는―"

하지만 소녀는 칼을 들이댔음에도 전혀 겁을 먹지 않았고, 오히려 즐겁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흑장미가… 아니야."

억지로 숨을 참는 듯한 떨리는 목소리.

"뭐?"

로건은 뇌정지가 왔다.

"말 그대로야. 난 흑장미 소속이 아니야."
"……."


마약을 사러 온 건가? 그렇다기엔 존나게 수상했다. 굳이 우리  딜러를 통하지 않고 이곳까지 기어들어 왔다는 건,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 그런 거라 생각된다.

"어디 쪽이지? 남쪽 거리 놈이냐?"

만약 남쪽 거리 놈들이 겁도 없이 기어온 거라면, 팔다리를 잘라 팔아… 아니, 아니지. 그냥 죽이기엔 아쉽다.

"대답 잘하는  좋을 거야."


혀를 날름 내밀어 입술을 핥는다.

 계집애가 정말 흑장미 소속이 아니라면, 죽이기 전에 개처럼 따먹어주마. 저 정도 외모면 도내 최상위 랭크… 다른 새끼들이 망가트리기 전에 먼저 사용해버려야지. 안 그래도 쌓여있는 상태라 기분이 몹시 좆같았던 로건은 장도를 휙휙 굴리며 소녀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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