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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화 〉기사단의 미친개 (2) (31/193)



〈 31화 〉기사단의 미친개 (2)

* * *


브리도니아 북쪽 거리, 아그네스의 자택.

아그네스는 손톱이 부러져라 탁자를 두드렸다. 딱딱딱… 그녀의 심정만큼이나 불안정한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불안감에 입술이 찢어질 정도로 깨물었다. 비릿한 혈흔의 맛을 느낄 겨를도 없이 말라버린 핏자국은 흉하게 갈라진 입술을 장식했다.


그녀는 눈을 감기가 무서웠다.

눈을 감으면 꺼지는 세상.


그 심연 같은 어둠 속에서 아그네스는 절규하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고통에 찬 신음을 듣는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뒤에서 희미한 속삭임이 들린다. 괴롭다고. 구해달라고. 제발 살려달라고.

미칠  같았다.


산맥에서 빠져나오고 단 하루도 편하게 잠을 잔 적이 없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병사 소집도, 단독 출정도 모두 불허 당했다. 보고를 받은 영주가 산맥에 대해 빨간 별 두 개, `극도로 위험함` 평가를 매겼기 때문이다.

아그네스 정도 되는 강자를 일격에 쓰러트리는 몬스터, 그리고 오러 발산을 막는 마법진. 함부로 기사를 투입했다가 잃기라도 하면 메꿀  없는 전력 손실로 이어진다.

기사는 귀했으니까.


말이 기사`단`이지 영지 내 기사는 열을 겨우 넘길 정도다. 기사는 마법사와 달리 절대적으로 수가 부족했다.


아그네스는 이 사실이 자못 고통스러웠다. 어린 소녀 하나 구하지 못해놓고 명예로운 기사니, 몇 없는 실력자라느니… 전부 허상뿐인 아부에 불과했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은 평생 잊을  없을 것이다.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힘없이 바스러지는 나약한 육체.
겁탈당하는 소녀를 앞에 두고 눈을 감아야 한다는 무력함.
탈출할 생각도 못 하고 웅크려야 하는 좌절감.

절망.

또 절망뿐이니.


오직 절망이니라.


처음부터 이런 죄책감을 느꼈던 것은 아니다.


아그네스는 기본적으로 모험가란 족속들을 혐오했다.

더럽고, 무식하고, 약해빠진 주제에 힘이 생기면 약자들을 무시한다. 그런 놈들이 눈앞에서 떼거리로 죽는다 해도 아무 감정도 안 들 것이다.

그러나 그 소녀만큼은 달랐다.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내몰린 자신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쓰다듬어준다. 절망뿐인 내게 희망을 불어넣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품에 파고들어 어리광을 부릴 정도로 자애로웠다. 그녀가 없었다면 진즉에 자살했을지도 모르겠다.

천사가 강림하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분명 자기보다 머리 한 개는 작은 체구였지만, 소녀의 품은 바다처럼 넓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런 소녀가.
몬스터 밑에 깔려 고통스러운 얼굴로 신음했을 때.
아그네스의 마음도 같이 무너져내렸다.


그녀는 탈출하는 마지막까지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자기만 내버려두고 빠져나가는 게 원망스러울 법도 한데, 이걸로 만족한다는 듯 결연한 얼굴로 우리를 배웅해주었다.


만약, 그녀가 아직 살아있다면…  커다란 소대가리에게… 엉망진창으로…

-뿌득.

이가 갈린다. 그 불한당 같은 모험가 새끼들은 나가면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그네스는 소녀와의 약속을 떠올렸다.

―그대를 여기서 구하겠노라 맹세하겠다.

`약속… 했는데.`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혹여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억지로 버티기라도 하는 게 아닐까. 편히 눈을 감을 기회를 내가 날려버린 것은 아닐까. 이런 지키지도 못할 맹세 따위 하지 않았더라면, 조금은 덜 괴로웠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악질은 자기 자신일 지도 몰랐다.


술이나 아편 같은 기호품에는 눈길조차 보내지 않는 아그네스였지만, 오늘따라 술이 고팠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술이.

-쿵쿵쿵!!!

"……."


흑장미에서 죽어라 술을 마실 생각을 하고 있던 아그네스는,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찡그리며 일어났다.

시답잖은 일이라면 팔다리를 분질러주겠다.


끼익.
문을 연다.

"아그네스 님을 뵙습니다!"


문을 열자 당찬 목소리가 아그네스의 귀를 때린다.
눈앞의 남자는 일반 병사였다.
오러를 깨우치지 못한, 그저 봉급대로 먹고 사는 평범한 병사.


"…무슨 일이지?"


폐인이나 다름없는 아그네스의 몰골을 본 병사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당황해서는 안 된다. 아그네스가 요 이틀간 벌인 일들을 생각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


은인을 찾으려 가야 한다고 휘하 병사들을 갈구지를 않나, 보초들을 협박하며 붉은 머리 소녀가 오면 자기한테 꼭 전해달라고 하질 않나…. 심지어 용병단을 고용했다는 소문도 돈다.

아그네스의 모습은 광인狂人 그 자체였다.

병사는 침착한 목소리로 급보를 전했다.

"현재 서문 보초 대기실에 토벌령 마지막 생존자로 추정되는 모험가가 억류되어있습니다. 아그네스 님께서 준비하신 회복 스크롤 덕에 생명의 지장은 없는 상태이며…."


병사는 그녀의 눈치를 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네년이 찾으라는  찾았으니 제발 그만  갈궈라….`

아그네스는 무서울 정도로 표정 변화가 없었다. 충혈된 눈을 붉게 빛내며 소름 끼치는 무표정으로 병사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상입니다."
"…."
"아그… 네스 님?"

보고를 마친 병사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표정은 그대로였으나 스멀스멀 올라오는 살기에 눈도 마주치기 힘들었다.


아그네스는 바닥을 긁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예, 예!"
"거짓말이라면 팔다리를 자르겠다."
"아,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병사는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잡았다.

"길게 내려온 붉은 머리와 작은 체구…. 아그네스 님이 말씀하신 인상착의와 동일합니다. 그, 그러니 살기  걷어주십쇼…."

아그네스는 비틀거리며 병사를 밀어냈다. 갑주를 챙길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선다. 병사가 뭐라뭐라 소리쳤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평원은 어떻게 가로지른 거지? 미노타우로스는 무슨 수로 해치운… 아니, 아니야….`


몇 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런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다시  번.
 미소를 볼 수만 있다면…
목숨마저 불사를 수 있었다.






* * *


아그네스는  십분 채 안 걸려서 서문에 도착했다. 병사 말로는  시간은 있어야 온다고 했는데… 그녀의 복장을 보니 급하게 뛰어나왔나 보다. 갑주도 검도 없다. 옷도 일상복이었다.


"살아있었구나… 살아있었어…."


미처 흐르지 못한 눈물이  하고 떨어진다.
내 눈물이 아니라 아그네스의 눈물이었다.
그녀는 나를 껴안고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저, 저기 아그네스?"
"미안, 미안하다…."
"괜찮으니까 팔 좀 떼주세요…."

내 말을 들은 채 만 채 한 그녀는 가슴팍에 머리를 비비며 그르릉 거렸다. 금발 머리가 살랑거리며 목덜미를 간지럽힌다. 다시 멀쩡해졌나 싶었는데… 부분적 유아퇴행은 아직도 고쳐지지 않았나 보다.


어찌해야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결국 서리 굴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상한 말로 아그네스를 진정시키기로 했다.


"그렇게 달려들지 않아도  어디  가요. 그러니까, 조금 진정해줄래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머릿결을 타고 뺨을, 더 내려가 목덜미를 부드러운 손길로 내리 쓴다. 아그네스는 뺨을 붉게 물들이고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녀의 얼굴은 언뜻 보면 황홀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 꼬라지를 모두 지켜본 보초는 짧게 탄식했다.


"허어……."


기사단의 미친개라 불리는 아그네스가 애완동물처럼 그르릉 거린다니? 지금의 모습은 미친개가 아니라 순한 강아지. 게다가 상대는 고작해야 F급 모험가라고 하니 더더욱 놀라웠다.

나는 쓰게 웃으며 시선을 받아넘겼다.

"하아…."

사람과 관계를 맺는 걸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니오`에 가깝지 않나 싶다.


남과 사귀기엔 가지고 있는 비밀이 너무 많다. 극에 다른 마법 실력은 둘째 치더라도 마조히즘의 극치인 피학자위… 들키기라도 하면 큰일 난다.

"아그네스? 제  듣고 있나요?"
"하으으…."

애완동물과 주인 같은  모습을 평범한 관계라고 부르기엔 어폐가 있겠지만 말이다.

아그네스는 내 품에서 한참을 어리광부렸다. 그 탓에 머리칼은 산발이 되었고 옷은 말려들어가 귀여운 배꼽을 드러냈다. 자신이 얼마나 퇴폐적인지 깨닫지 못하고 아양 부리는 그녀의 모습은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크, 크흠."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리를 피하는 보초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 * *

조사는 따로 받지 않았다.
 어떤 추궁도 없었다.


원칙대로라면 산맥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불어야 했지만, 아그네스가 따로 조처를 했는지 별  없이 정상복귀할 수 있었다.
안 좋은 기억을 굳이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다나 뭐라나.

`안 좋은 기억은 없었는데 말이지.`

그때의 상황을 되뇌면 되뇔 수록 괴롭긴커녕, 다시 가고 당하고 싶다는 저속한 욕망만 기어오른다.
미노타우로스… 미친 척하고 다시 가면 그때처럼 난폭하게 다뤄주려나. 살아있다면 언젠간 다시 찾아가 봐야겠다.


하여튼 이 모든 편의가 공짜로 이루어진 건 아니었다. 나는 그 대가로 아그네스의 자택에 납치… 아니 초대되었다. 거절하면 자살하겠다는 듯이 울먹이는데 어떻게 거절해 이걸.


그렇다고 거절할 생각이 있었다는 건 아니다. 딱히  것도 없었고, 조금은 쉬고 싶은 마음도 있어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그네스의 자택은 땅값이 비싸다는 북쪽 거리에 있었다. 역시 기사는 기사. 그녀의 집은 혼자 산다고 하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넓었다.


게다가 씻는 방, 소위 샤워실이라 불리는 방이 따로 존재했는데, 보통 서민들이 공중목욕탕을 쓰거나 물을 길어와 씻는다는 걸 생각하면 개인 욕실을 지닌 그녀가 얼마나 부유한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좋기만   아니었다.

원래라면 하루 정도만 푹 쉬려고 했다만…


"버, 벌써 가려는가?"

내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 아그네스 덕에 종일 처박혀 있어야 했다. 씻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잠을  때도 날 곁에 두려고 한다. 혹시라도 밖에 나간다면 시선이 따라붙는다.


감시와 통제.

누군가에게 집착 당한 적이 있는가.

적어도, 내가 겪어본 바로는 썩 좋은 기분은 아니다.

본인은 사랑이라 부를지 모르겠으나 본질은 비틀려 변해버린 뒤.
사랑이라 부르기엔 일방적이고 주종적이다. 한쪽이 예속되어야지만 이어갈 수 있는 관계는 사랑이라 부르기 어렵다.

혼자 집착피폐물을 찍고 있으니 참으로 곤란하다.


차라리 팔다리를 부러뜨리고 지하 깊숙한 곳에 처박아 애완동물처럼 대한다거나,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생니를 뽑아버린다거나 한다면 나도 좋다고 하면서 응해줬을 거다.


"흐으…."

이런 생각 하니 몸이 부르르 떨린다.

금단 증상.


파국으로 치닫다 못해 타락해버린 내 몸뚱아리는 이런 상냥한 감정에 반응하지 못했다.
칭찬 대신 매도. 쓰다듬기보다는 목조르기.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기보단 인간 이하의 장난감처럼 다뤄주는 난폭한 상대가 좋다.
음습하고 저열한 욕망으로 고조된 감정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형태였기에, 아그네스의 상냥함은 내게 독이 되어 돌아올 뿐이었다.


`24시간 감시하는 탓에 자해도 못 하고….`


결국, 나는 4일째 되는 날에 결단을 내렸다.


"아그네스."
"피, 필요한 게 있는가?"

아그네스는 나를 체스터필드 소파에 조심스레 앉혀놓았다. 소파가 더러워진다고 내 쪽에서 사양했으나 눈물로 협박하니 어쩔 도리가 없더라. 결국 얌전히 앉았다. 비싼 소파인지 상당히 부드러웠다.

나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백할  있어요."
"…고백이라니?"

아그네스에겐 다소 충격적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선을 그어야 했다.

"산맥에서 있던 일, 기억하시죠?"
"……."

아그네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무시하고 말했다.

"어떻게 맨몸으로 평원을 가로질렀는가, 아니 그전에 미노타우로스의 감시는 무슨 수로 벗어났는가…. 궁금할 법도 한데 단  번도 제게 물은 적이 없어요. 나름의 배려일 테죠. 그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그네스는 상냥해요."


"하지만 아그네스."


"저는 아니에요."

"저는 아그네스가 생각하는 만큼 착한 사람도 아니고, 숭고한 희생을 할 만큼 고귀하지도 않아요."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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