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악마와 검은 소와 마법사 (1)
악마는 성숙하기가 힘들다.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사는 이들은 대개 오만할지언정 지혜를 갖추지만, 악마는 아니었다. 수십 년, 수백 년을 살아도 지혜롭지 못했으며 늘 어리숙했다.
그들은 순수에서 태어난 악惡이기 때문이다.
그저 좋아하니까,재밌으니까 행한다. 행한 일이 무슨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하지 않는다. 알아도 무시한다. 욕망을 채우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교단의 성전사가 자신을 쳐죽이러 올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흐음…산 제물을 바치면 위력이 더 올라가려나.'
혹한의 악마, 가올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잠에서 깬 그녀는, 차가운 게 좋다는 이유만으로 브리도니아에 눈을 내렸다. 농사를 망쳐 피눈물을 흘리는 농부의 외침이나, 길거리에서 얼어 죽는 고아들은 그녀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조금만 더 유지해보고, 한 명씩 넣어보자.'
최정상에 만든 얼음 코어는 산맥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마나와 생명력을 빨아들이며 추위를 가속했다. 종국에는 모든 생명체가 죽고 황폐한 땅만이 남을 것이다.
굳이 하크나르 산맥을 택한 이유는, 자신의 활동 반경에서 마나가 가장 잘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지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정신을 링크한다.
대상은 지하 감옥에 있는권속, 미노타우로스.
쓸데없이 목소리가 커, 최대한 먼 곳에서 아무 일이나 시키는 잡일 담당 권속이었다.
소라 그런지 일은 잘했다. 아무리 험한 일을 시켜도 '가올리스니이임!!' 하고 감복하며 제 역할을 다한다. 그것만큼은 무척이나 마음에 든 가올리스였다.
'어디 보자…. 산 제물로 적합한 놈이…'
권속의 가장 큰 장점은 주인과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었으며, 무엇보다 시야가 공유된다.
이는 여러 군데 요긴하게 쓰인다.
새나 박쥐 같은 권속을 부리는 이유다.
'누굴 골라볼… 어, 어?'
하지만 그녀는, 권속을 잘 부릴 순 있어도 이해하진 못했다.
그러니까, 배려 같은 게 없었다.
미노타우로스는 가올리스의 밑에서 일한 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살아있는 인간을 만난 적이 없었다. 항상 꽁꽁 얼어 죽었거나 깊은 잠에 빠져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고기 인형만을 봐왔다.
당연히 파괴와 살인을 업으로 삼던 몬스터였던 만큼 불만이 있었지만, 표출하진 못했다. 주인은 가올리스였고, 자신은 권속에 불과했으니까.
'어, 어….'
…권속은 정신을 링크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오직 주인이 알려줘야지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꿀꺽.
링크가 이어진 지 세 시간.
미노타우로스는 링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우워어어어!!!
미노타우로스는 흥분했다. 가올리스의 권속으로 산 지 어언 사십년, 살아있는 인간을 만난 것이다. 하지만 죽이면 안 됐다. 가올리스 님의 명령이 있었으니까. 미노타는 거칠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콧김을 내뿜었다.
물론, 명령이 없다고 해도 죽일 생각은 없었다.
언제 만날지 모르는 귀중한 장난감.
한 번 쓰고 버리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아, 으…."
고개를 푹 숙이고 부들부들 떠는 소녀의 처량한 모습은 미노타의 흥분감을 극한까지 고조시켰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느낀 '지배'의 쾌감이었다.
과거 지하 미궁의 대괴수로 활동했을 때, 미노타는 인간들이 겁에 질린 모습을 가장 좋아했다.
동료가 반갈죽당해 내장을 쏟자 눈물콧물 다 뿜으며 주저앉는 모험가. 회심의 마법이 통하지 않자 살려달라고 비는 마법사. 발아래서 깔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멍청한 토벌대.
빛 한 점 들지 않던 미궁에서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유희였다.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꽈아악!!
소녀를 들어 올린다.
한 손으로 집을 수있을 만큼 작았다.
"끄, 꺼윽!"
소녀는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며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미노타의 흥분만 돋구었을 뿐이다. 아무리 힘을 줘도 꼼짝도 하지 않자 소녀의 얼굴에 절망감이 올라왔다.
미노타는 자신의 몸을 제어하기 힘들었다. 기쁘고, 즐거웠다. 그리고 참을 수 없었다. 눈앞의 소녀를 망가뜨리고 싶다. 제발 살려달라고 할 때까지 고문하고 싶다.
그리 생각하자 하반신을 두른 천이 무언가로 인해 솟아났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 없는 발기.
-뿌득!
너무 세게 잡았는지 뿌드득 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소녀의 입에서 피가 주륵, 하고 흘렀다. 미노타는 당황했다. 얼어버린 인간들만 상대하다 보니힘 조절이 미숙했다. 소녀의 눈은 초점이 맞지 않았다.
"허윽, 흐… 사,사려주, 세요…"
'안 된다!! 인간!! 죽는다!!!'
미노타는 가올리스가 두려웠다.
―죽지 마라!!!!!
*
한 손으로 내 상반신을 감쌀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손은, 가슴과 등허리를 짓누르며 압력을 가했다. 로션통을 짜는 듯한 난폭한 손길에 폐가 찌그러지고, 갈비뼈가 산산조각이 났다. 입에선 각혈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겨우 남아있던 공기를 쥐어짜며 말했다.
"허윽, 흐… 사, 사려주, 세요…"
이런 내 애원과 다르게 몸은 무척이나 달아올랐다. 몸은 고통으로 보기 흉할 정도로 떨렸지만, 뇌는 오직 쾌락만을 받아들였다.
인간은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압도적인 체급 차이를 이용한 압박. 상대보다 작다는것은, 그 사실만으로 묘한 패배감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이런 패배감마저도 흥분으로 치환시켰다.
"하, 하윽…."
극심한 내출혈과 호흡 곤란 탓에 눈앞이 흐려진다. 고작 쥐어졌을 뿐인데, 벌써 생명이 위태로웠다. 그런데, 정말 저속하게도, 다리 사이에선 투명한 액체가 흘렀다. 애액이었다.
그렇게 혼절 직전의 몽롱함과 뇌가 타는 듯한 고통을 즐기고 있자니 미노타가 침을 튀기며 소리 질렀다.
―죽지 마라!!!!!
손아귀의 힘이 약해진다. 나는 작게 탄식을 흘렸다. 아쉬웠기 때문이다. 눈 앞의 소대가리는 내가 피를 내뿜은 것이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나 보다.
설마, 이걸로 끝이야?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면 정말로 그런 것 같았다.
너무, 너무 짧았다. 아직 오 분도 되지 않았다. 이런 짧은 자극을 주고 가버리면 미쳐버릴지도 몰랐다. 몸이 완전히 달아오르기엔 충분하지 않았다.
나는 미노타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개, 갠차, 나요…."
눈물 범벅인 얼굴로 애원한다. 미노타의 괴성에 겁을 먹은 것처럼 눈을 내리깔고, 울먹거리며 몸을 파들파들 떨었다. 하지만 말 뿐으로는 부족했다. 미노타는 내가 죽는다 생각하면, 그 즉시 파괴 행위를 멈출 것이다.
그렇다면 죽지 않게끔 해줘야겠지.
방법은 간단했다.
재구축.
가올리스의 마법진 때문에 속도는 느렸지만, 찔린 장기를 복구하고 부러진 갈비뼈를 맞추는 정도야 쉬웠다.
-후우욱…
미노타의 콧김이 미약하게 떨린다.
피는 더 흐르지 않았다.
저릿한 감각이 남긴 했지만, 이정도면 괜찮았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노타가 제힘에 겁을 먹고 행위를 멈추는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선 강력한 힘에도 부서지지 않는 내구성을 증명해야 했다.
'신체 강도를 높이는 건 취향이 아니지만….'
…찝찝하게 끝내는 것보단 낫지.
전신에 아주 얇은 마나 베리어를 두른다. 다른 마법사들이 보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기예였지만, 정작 나는 이 기술을 무지하게 싫어했다. 덜 아프게 처맞을 이유가 없잖아. 긴장감 없는 승리는 공허함 뿐이다.
*
-꽈악.
미노타우로스는 소녀의 물기 어린 애원에 흥분한 나머지 또 한 번 힘을 주었다. 미노타는 흠칫했다. 이걸로 소녀가 죽어버리면, 본인도 가올리스에게 죽는다.
죽는 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충성심이 의심받는다? 그것만은 안 됐다. 죽음보다 신의를 잃는 게 더 두려웠다.
"하윽, 흐큭…."
그러나 소녀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 손아귀에서 한참을 버텼다. 피를 내뿜은 것은 찰나. 얼굴은 아직도 피범벅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눈의 초점은 돌아왔고 얼굴엔 생기가 돌았다.
미노타는 생각했다.
이정도면, 적당한 수준이 아니냐고.
그리 생각한 미노타우로스는 망설임 없이 소녀를 집어 던졌다. 보통 사람이라면 목뼈를 비롯한 척추 라인이 모두 부러져 즉사, 살아도 식물인간을 면치 못할 정도의 힘이었지만, 사십년 동안 살아있는 인간을 만나지 못한 미노타가 알 리 없었다.
-콰아앙!!
"케흐윽!!"
벽에 성대하게 부딪힌 소녀는 바닥과 키스를 하며 발작하듯 떨었다. 미노타는 눈을 크게 떴다. 멀쩡했다. 소녀의 몸은 피부가 긁히고 찢어질 지언정 심각한 상처는 없었다.
오랜만에 파괴 욕구를 충족시킨 미노타는 그대로 소녀를 두들겨 팼다. 벽에 금이 갈 정도로 세게 집어진다거나, 질질 끌고 다니면서 지하감옥을 배회하기도 했다.
그러기를 한 시간.
소녀의 몸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당연하지만 옷이 버틸리 없었다. 소녀는 반 나체가 되어 미노타에게 끌려다녔다. 피와 흙먼지는 서로 섞여 혼탁한 색을 이루어 소녀의 몰골을 더욱 참혹하게 만들었고, 여기저기 새겨진 멍 자국은 아름다운 얼굴과 대비되어 배덕감을 증폭시켰다.
미노타는 또다시 흥분했다.
동시에, 가슴 가장 깊숙한 곳에서 추잡하고 저열한 욕망이 끓어올랐다.
어쩌면.
이 소녀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인간과의 교미.
하반신이 부풀어 오른다. 골반을 빙 둘러싼 천은 솟아나는 양물의 힘에 못 이겨 찢어져 버렸다. 성인 남성의 팔뚝만 한 거대한 성기, 아니 강철 몽둥이가 소녀의 가녀린 체구를 가리며 나타난다.
상상을 초월한 크기에 소녀의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아… 으…?"
소녀는 힘겹게 땅을 짚으며 엎드렸다. 추위에 떠는 강아지처럼 부들부들 떨며 아마를 바닥에 맞닿게 한다. 그러곤 애원했다.
"재, 재송… 합니, 다."
당연히, 이 정도의 크기를 넣는다면 내장파열로 죽는다. 절반은 커녕 입구에 들어갈지도 의문이었다. 그래서 평소의 미노타였다면 참았을 것이다. 어느 여자든 자신의 성기를 집어넣는 순간 거품을 물면서 죽어버렸으니까.
하지만 저 애원이.
"사, 사려주, 새요…."
눈물자국이.
"흐윽,하으… 그, 그마, 때, 때려. 주새요."
엎드려 벌벌 떠는 벌레같은 모습이.
미노타의 본능을 일깨웠다.
―그오오오오!!!!!
검은 눈이 붉게 빛난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미노타오르스는 가올리스의 권속이 아닌 지하미궁의 대괴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