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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돌이 되어라 (2) (9/193)



〈 9화 〉돌이 되어라 (2)

소리를 죽이고 안으로 들어간다.


후드남이 누워있는 침대 바로 옆에는 커다란 석궁이 비스듬하게 세워져 있었다. 흘깃 보니 장전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바로 응전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였다.

침대 옆 작은 책상에는 작은 돈 주머니가 올려져 있었다. 들키지 않게 몰래 다가가 그 속을 확인하니 5실버. 이미  건지, 털보가 나눠주지 않은 건진 모르겠다만 물욕은 없어 보였다. 아마 알면서도 받지 않았으리라 추측된다.

나는 돈주머니를 챙기고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았다.

"……."


털보가 쓴 돈은 회수할 수 없다. 허나 고작 70실버 쯤이야, 고위 몬스터를 몇 차례 잡으면 금세 복구될 것이다.


이대로 돌아가기만 하면 끝이다.

끝인 것이다.


다시 평범한일상으로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나는 문을 열지 못했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문고리를 잡은  한 참을  있었다.

입술이 말랐다.

들어올 때보다 몇 배는 고민되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지하수로서의 일이 플래시백 된다.

죽기 직전까지 목이 죄이고, 산채로 사지가 떨어져 나가는 고통.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근육, 터질 듯이 박동하는 심장, 인간 취급이라곤 쥐뿔도 없는 난폭하기만 한 몸놀림. 구토해도, 오줌을 지려도, 살려달라고 빌어도 멈추지 않는―

"하아―."


얕지만 달콤한 숨이 목구멍에서 빠져나왔다. 내가 내쉬고도 놀라울 만큼 열기에 젖은 숨이었다. 돌아가기 싫다. 그 한 문장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동시에 저열한 욕망이 들끓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문을 열지 못했다.

오른팔이 잘릴 때의 고통은 무척이나 생생해, 종종 환상처럼 내게 다가온다. 착각뿐인 고통에 놀라 오른팔을 잡아보기도 했지만 몸 상태는 멀쩡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한 번만, 딱  번만 더 느낄  있다면.

그때 느낀 모든 감정을, 다시 한 번 더 느낄 수 있다면.



"……."


후드남이 코를 고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


결코 정상적인 판단이 아니다.

굳이  남자여야만 할까, 이래서야 서쪽 거리의 창녀와 다름없지 않은가. 차라리 고문을 당하는 게 어떨까. 마법사의 이성은 지금 당장 남자를 죽이고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저 아프기만 해선 다소 심심한 건 사실이었다. 인간의 악의에 매료되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해주는 조미료, 그 속에 담긴 절박함.


이건 유희다.그때와 같은 자극을 느끼기 위한 유희.
고통만 남는, 그래서 끊을  없는 마약.

지하수로에서 벗어난  얼마나 됐다고 또다시 이런 상황을 자초하는 게 참으로 한심스러웠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주머니 끈을 풀어 손바닥 위에 은화 세 개를 올린다. 달빛을 받아 빛이 나는 동전들은 유달리 하얘 보였다.

"후으, 흐으…."


동전을   손목을 돌려 손바닥이 아래를 향하게 한다.

그러곤, 펼쳤다.

―짤그랑!

나는 고개를 돌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문을 향해 나간다.
그러나 속도는 내지 않았다.

동전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떨어졌고 적막뿐인 방 안에 가득 퍼졌다. 후드남이 잠에서 깨는 건 필연적이었다.

"……!"


그는 곧바로 눈을 떴고, 방 안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석궁을 들어 날 조준하였다. 격발음조차 나지 않은 석궁 볼트는 아주 조용히, 은밀하게 내게 다가왔다.

-콰직!

"아윽!"

볼트는 왼쪽 어깻죽지에 적중했다. 거리가 부족했는지 뼈와 살을 뚫지 못한 볼트는 박히는 것에 그쳤다. 나는 반동으로 나무문에 머리를 처박았다. 자세가 무너진다. 후들거리는 양팔로 일어서려 했지만 연이어 날아오는 후드남에 공격에 제압되었다.


-쿵!

 머리채를 잡은 후드남은 그대로 바닥에 찍어누르곤 뒤로 오른팔을 꺾어 움직임을 봉쇄했다. 목 뒤에서늘한 금속의 감촉이 느껴졌다. 후드남은 나이프를 찌르기 직전까지 들이대고 있었다.

"반항하면 죽이겠다. 넌 누구지?"

로브를 벗겨 낸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렸다.

"넌…그보다, 오른팔은 어떻게 재생한 거지?"

잘린 팔이 강물에 떠내려간 모습은후드남도 보았을 것이다. 고로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붙일 수 없었다. 잘린 신체를 원본도 없이 전과 똑같이 복원하는 건 초고위 팔라딘 정도가 아니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돈을 되찾으러 온 건가?"


후드남은 풀리지 않는 의문은 집어치우고 현재의 문제에 직면했다. 그는 문턱 근처에 굴러다니는 동전을 보곤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괘씸하군."


원래 내 돈이었는데 뭐가 괘씸하다는 건지.

마법을 쓰는 걸 경계한 걸까, 그는 주머니에서 밧줄을 하나 꺼내더니 그대로  목을 빙 둘렀다. 능숙하게 매듭을 묶은 그는 그대로줄을 조여 목을 압박했다. 마법사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리기 위한 수작이었다. 경지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마법사는 주변을 의식하기만 해도 마법이 취소된다.


물론 이런다고 내가 마법을 못 쓰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목을 죄여오는 고통이 사라진다는  아니었다.

"케흐, 헤윽!"

그래, 이거였다. 죽음 직전까지 향할 때의 간절함. 이걸 원했다. 나는 다리 사이가 약간 젖었음을 깨달았다.


"잠시 거기 있어라."


후드남은 옷걸이에 밧줄을 묶었다. 상당히 높은 데에 묶었는데, 땅에 발이 겨우 닿는 정도라 자연스레 까치발을 든 상태가 되었다. 실수로라도 삐끗하면 바로 목이 졸리는 식이었다. 나는 당연히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세를 유지했다.

"헤으으…."


그렇게 버티길  분.


"팔 한쪽으로는 부족한가 보지?"


후드남은 검은 자루에 씌워진 정체불명의 물건을 들고 나타났다. 연필 케이스 정도의 크기였는데 감히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퍼억!


"아윽, 컥!"

내가 까치발을 들고 바라보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배를 힘차게 가격했다. 위액이 역류할 정도로 힘이 실린 펀치는 당연하게도 간신히 버티고 있던 자세를 풀리게 하였다.

"에극, 흑. 켁…."


충격에 발을 헛디디자, 뿌득! 하고 청아한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그와 동시에 몸이 축 늘어졌다. 혀를 내빼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친다. 그나마 움직이는 오른팔로 손톱이 빠지도록 밧줄을 긁었지만, 손에 상처만 생길 뿐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횡격막으로 가는 신호가 차단되어 무슨 수를 써도 숨을  수 없었다.  사실을 깨닫자 얼굴이 새파래졌다.


"이걸 쓸 때가 왔나 보군.."


검은 자루를 벗기자 나온 것은 유리 케이스에 담긴 여러 개의 주사기였다. 마약인가? 저게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난 지금도 실시간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꺽꺽대지도 못하고 밧줄에 매달려있자 쯧, 하고 혀 차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포션값이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나이프를 휘둘러 밧줄을 끊자 매달린 몸이  하고 쓰러졌다. 후드남은 침을 질질 흘리며 쓰러진 내 몸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리고선, 고개를 처들어 포션을 흘려 넣었다.


"자아… 흘리지 말고 먹어라."

의지와 상관없이 입에 흘려보내진 포션은 끊어진 신경을 도로 복구해놓았다. 상당히 고급진 포션이었다. 나는 횡격막이 활성화되어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곧바로 포션을 역류해냈다.


"으읍, 욱, 케헥!"

포션에 담겨있는 농축액은 체내에 흡수된 지 오래. 내가 뱉어낸 것은 그저 아무 효능 없는 붉은 액체일 뿐이었다. 후드남은 얼굴을 찡그렸트렸지만 군말 없이 몸에 붙은 액체를 닦아냈다.

"하으,하. 으으…."


널브러진 내게서 잠시 떨어진 후드남은 검은 액체가 담긴 주사기를 들고 찾아왔다.

"본래라면, 자고난 후 쓸만한 여자를 발견하면  예정이었지만… 이렇게 몸 성히 찾아오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 첫 실험체는 네가 되어줘야겠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몸에 주사를 놓으려는 후드남을 바라보았다. 어지간히 강한 마약이 아니면 안 통할 것이다. 체내 마나가 정화해버리니까.

후드남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 지, 주사 바늘을 꽂곤 약 투여를 준비했다. 날카로운 바늘이 피부를 뚫고 들어온다.


"걱정하지 마라. 마약이나 미약은 아니니."

따끔한 바늘의 감촉.

검붉은 액체가 혈관을 타고 흐른다.


"그것보다 더 심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마약이 아니라고?
그렇담 뭐지? 독?


나는 주사를 놓은 팔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아으?"

후드남은 무척이나 가학적인 미소를 지었다. 지하수로에서 팔을 잘랐을 때와 같은 미소였다.


팔이, 굳고 있었다.
정확히는 회색빛으로 변해 돌이 되어가고 있었다.

감각이 마비된다. 몇 분이 흐르고 완전히 굳어버려 돌덩이가  오른팔은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주사 한 방에 팔 한 짝 정도 면적이라… 생각보다 효과가 좋아. 자주 애용해야겠어. 흡!"


-콰드드득!


가시달린 부츠 굽으로 내려 찍힌 팔이 산산이 조각난다. 나는 멍하니 팔을, 아니 팔이었던 돌조각들을 지켜보았다.


"석화시켜 갈아버리면 아무도 찾지 못해, 피도, 흔적도 안 남아. 그저 돌 많은 흙길에 뿌려두기만 하면 돼. 이런 약물을 지금에서야 발견한 게 너무 후회될 지경이야."

주사기는 대충 보아 스무 개정도 있었다.

시발, 석화 물약이라니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팔꿈치 밑으로 산산이 조각나 부서진 팔의 단면은 과장 하나 보태지 않고 '돌'이었다.

"왼쪽 팔도, 아니. 팔을 포함해 양다리까지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일단 이것 좀 쓰고 있으라고."

후드남은 내 머리에 천을 둘렀다. 시야가 차단됐다. 동시에 입에 무언갈 물렸다. 끊어진 밧줄이었다.

"으읍, 읍!"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말할 수도 없다.

"일단 왼팔부터…"


태초의 공포가 전신을 뒤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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