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자해하는 미친 븝미
"그래, 그렇단 말이지."
털보는 눈을 휙휙 움직여 후드남에게 신호를 주었다. 이 정도까지 되니 슬슬 빡치네. 지금 날 죽일 거라고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전체적으로 어설픈 게 초짜 같았다.
"마법사님! 살 거 있어요?"
도리도리.
말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아쉬운 표정을 지은 클레앙은 입맛을 다시더니 이내 사라졌다. 시발 지금 뭘 본거지. 입을 왜 다셔? 인식을 초월한 나조차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이봐 마법사."
"?"
"아까부터 말이 없는데, 초행인가?"
내가 말이 없는 건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꾹 다물고 있는 거고. 한 가지 나쁜 점이 있다면 내가 입을 다물고 있는 걸 '무시'로 받아들이는 족속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골목길에서 만난 삼인조가 그랬고…
지금 눈앞의 털보가 그랬다.
내가 듣는 둥 마는 둥 대꾸하자 얼굴이 붉어진 털보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내가 검사라고 무시하는 건가?"
"하아…."
머리가 아파졌다.
"이래서 마법사 놈들은… 나중에 마법 이상한데 갈기기라도 하면, 바로… 아니다. 아니야. 그래. 크흐."
뭐야 시발 기분 나쁘게.
이마저 내가 무시하자 털보 혼자 떠드는 꼴이 되었다. 털보의 얼굴은 더욱 붉어져 홍당무 수준까지 갔다. 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내가 반응이 없자 털보는 후드남을 데리고 구석진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면서 뭐라뭐라 떠드는데 솔직히 듣고 싶지 않았다. 안 들어도 뻔했거든.
의도적으로 청각을 차단한 나는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칼을 꺼내어 만지작거렸다. 칼을 만지작 거리고 있자면 안심이 되었다. 불안감을 해소시켜주는 나만의 피젯 토이다.
정확히 17분 하고도 41초. 클레앙이 도착했다.
"죄송해요. 조금 늦었죠?"
"쯧."
말 없는 나. 혀를 차는 털보. 클레앙은 무안해졌는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하긴 준비안 한 건 자기밖에 없었으니까.
"그, 그럼 가볼까요?"
* * *
썩은 물의 악취가 코를 찌른다.
지금 이곳은 제국 하수도 17번 처리장. 쥐 떼가 출몰해서 하수도가 오염되었다고 한다. 본래라면 마법사들이 나서야 할 일이다. 하지만 마법사는 보이지 않았다. 자기들은 더러운 쥐 따위 잡기 싫다고 모험가 길드에 짬 처리를 시킨 거다.
그리고 그 의뢰는 우리가 수행하고 있고.
―찍찍. 찍.
멀리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울려 퍼지는 쥐 떼의 울음소리.
나는 일행 몰래 마나를 풀어놓아 전체적인 머릿수를 재봤다. 일종의 맵 스캔이다.
7미터 앞에 쥐 두 마리, 그로부터 20미터 앞 갈림길에서 스무 마리. 두 마리는 낙오됐나 보다.
"후우. 쥐 떼 처리는 언제 해도 익숙하지가 않아요. 냄새도 그렇고."
클레앙은 쥐 떼 처리 경험이 있는지 온갖 불평불만을 다 쏟아내었다. 하지만 의뢰는 의뢰. 돈을 받기 위해선 싫어도 해야 한다.
선두는 후드남. 전위는 클레앙, 중위는나, 후방 경계는 털보.
선두에 선 후드남이 쥐 떼를 발견하면 중열에 합류하는 식이다.배치조차 노골적이었다.
"두 마리 발견."
후드남이 말했다. 클레앙은 긴장한 표정으로 검을 들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탓에 놀라지 않았지만.
"잠깐만요."
나는 검을 뽑아드는 클레앙을 제지하며 말했다.
"응?"
저 두마리는 서열 싸움에서 탈락한 일종의 낙오자들이다. 잡는 것이야 어렵지 않겠지만, 소리를 듣고 안쪽의 쥐 떼들이 몰려 올 가능성이 있었다.
수천억 마리가 와도 솔직히 질 거 같진 않았지만, 지금 내가 스릴 넘치는모험이나, 돈을 노리고 파티 짠 건 아니잖아?
파이어볼 하나로 소도시 절반을 태울 수 있는데 사냥 따위로 흥분할 리가 있나. 힘을 내세워봤자 내가 원하는 건 얻을 수 없다.
그래.
인정하긴 싫지만 내심 바라고 있는 거다.
'위험 상황'을.
몬스터의 악의와 인간의 악의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원인부터가 천지 차이지..
고블린 따위를 제외하면, 몬스터를 건드는 건 대부분 인간이다.
몬스터들의 악의는 대부분 생존과 영역의식을 건드림으로부터 나온다.
거기에 몬스터들은 강자를 알아본다.
내가 아무리 마나를 감추어도, 본능적인 위험을 느껴 달아난다. 그런 놈들과 싸워봤자 얻을 수 있는 건 없었다.
반대로 인간의 악의는 그 종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교만, 질투, 분노, 음욕, 식탐, 태만. 이 외에도 온갖 기상천외한 이유로 악의를 품는다.
인간이 인간을 싫어하는 데에는 나열할 수없을 정도의 이유가있다. 인간은 그런 동물이다.
"안쪽에 쥐 떼들이 더 있을 가능성이 있어요. 소리를 내는 건 좋지 않으니, 석궁으로 조용히 처리하거나 그냥 지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는 그 다채로움에 매료되었다.
몬스터에게 상처 입는 건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저생존과 생존을 건 결투. 어떤 몬스터를 만나도 매번 똑같은 싸움에 금방 질려버릴 것이다.
"이봐요 마법사 나리. 내가 여기 자주 들락날락거려서 아는데, 쥐새끼들 좆밥이야. 뭘 그리 쪼는 거야?"
하지만, 고작 70실버 때문에.
"…맞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이 앞에 쥐들은 없다."
하찮은 성욕 때문에.
"그리 겁나면 구경이나 하고 있어! 퉤."
목숨이 위협받는다면.
나는 좀 더 필사적이게 될 것이다.
"그치만, 마법사님 말도 맞지 않을까요? 예전에 한 번 고생한 적이…."
"거 참. 쌍으로 지랄들이네. 검사 맞아?"
결국 나와 클레앙는털보의 의견을 따랐다.그러자 털보는 기분 나쁜웃음을 지으며 검을 뽑아들었다. 리더라도 된 기분일까.
나는 고개를끄덕이곤 마법을 준비했다. 자그마한 파이어볼이었다.
―쾅!
쥐새끼 하나 컷!
몸에 불이 붙은 쥐는 발버둥치다 클레앙의 검에 찔려 꼬챙이가 되었다.
크기는 더럽게 컸다. 대충 리트리버 성체 정도 될까.
털보는 내가 무영창으로 불을 쏘아내자 살짝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후드남과 함께 협공해성공적으로 남은 쥐 하나를 처리하였다.
"좆밥이라니까! 왜 이리 쫀 거야?"
풀어놓은 마나로 확인해본 결과, 쥐 열 마리가량이 우릴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글쎄.
지금도 그런 소릴 지껄일 수 있을까.
"어, 어?"
―찍찍! 찍!
늑대에 버금가는 크기의 쥐 떼들.
발톱도, 이빨도 작은지라 진짜 늑대에 비하면 허접이 맞았지만, 머릿수는 장식이 아니었다.
시궁창 쥐 열 마리는 E급 셋과 F급(아크메이지) 하나가 막기엔 벅차…진 않았지만, 딱히 힘을 쓸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클레앙이 다치지 않도록 중간중간 마법을 날려 쥐 떼들의 진입을 막았다.
"고, 고마워!"
반대로 털보는 쥐들에게 집단 린치를 맞고 있었다. 후드남과 같이 어찌어찌 상대하고는 있지만, 가죽옷은 너덜너덜해진 지 오래였다.
"좆같은 쥐새끼들!!!"
피가 튄 거 이외에 별다른 상처가없는 클레앙과 정반대였다.
그렇게 앞으로 나가며 쥐 떼들을 쳐죽이길 반복.
4시간 정도 지났을까. 상당히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것 같았다.
"하아. 이봐. 조금 쉬는 게 어때?"
털보가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4시간 가량의 강행군은 모두를 지치게 하였다. 후드남은벌레라도 물렸는지 목을 계속 긁고 있었고, 클레앙은 발이 쑤시는지 계속해서 발목을 돌려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클레앙의 표정이 밝아졌다.
각자 챙겨온 담요를 두르고 맛대가리 없는 건량들을 씹어대기 시작했다.
불은 내가 밝혔다. 내가 따로 끄지 않는 이상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었지만 이들이 알 리 없었다. 기름값 아꼈다고 좋다고 하는 클레앙의 표정은 볼 만 했었다.
휴식시간 20분.
우리는 다시 하수도 안으로 전진했다.
* * *
"대충 오늘 야영하고, 내일 열 마리쯤 잡은 뒤에 복귀하면 되겠구만."
지금 모은 쥐 꼬리는 70개. 남은 쥐는 많았지만, 80마리 정도 족쳤으면 마탑 마법사들이 출동할것이다.
파티의 리더는 자연스레 털보가 맡았다. 난 별생각 없었고, 클레앙은 주도적으로 나서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꼴에 리더라고 이것저것 지시하는 거 보니 참 기가 막혔다.
털보는 간이천막을 치고는 우리를 향해 말했다.
"불침번 설 건데, 제일 먼저 할 사람?"
모험의 꽃, 불침번.
다만 그 순번에 따라 장미꽃이 될 수도, 라플레시아가 될 수도 있었다. 당연히 서로 눈치만 봤다. 불침번에서 가장 좋은 순번은 첫 번째니까.
아무도입을 열지 않자 털보는 클레앙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봐 멀대. 댁이 설래?"
"네, 네?"
인성 더럽고 입도 험한 털보가 초번을 양보하다니? 클레앙의 얼굴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 그럼제가 설게요."
클레앙이 순진해 보이긴 해도, 들어올 기회를 걷어찰 정도의 호구는 아니었다. 단박에 승낙한 클레앙은 자리를 잡고 경계를 시작했다.
두 번째는 후드남이 맡기로 했다.
세 번째는 털보.
마지막이 나.
털보와 후드남은 순번을 모두 정하자 간이 천막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나와 클레앙만이 떡하니 남겨졌다.
나는 대충 벽에 기대어 눈이나 감기로 했다. 나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잠을 잘 수 없었기에, 강제로 의식을 끊는 마법을 따로 사용해야 했다.
당연하게도 마법이 풀릴 때까지 완전 무방비 상태다. 충격을 받으면 풀리지만, 후속 반응이 둔해지는 건 필연적이었다.
정신을 끊으려 할 참이었다.
"저기 마법사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나는 말 없이고개만 돌렸다. 입을 우물우물 거리는 클레앙이 보였다.
"마법사님도 안 가져오셨나 봐요? 하하… 서로 같은 처지네요."
클레앙은 털보의 천막을 흘깃흘깃 바라보며 내게 다가왔다.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질 않자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뭉쳐야 체온 유지에 좋다나 뭐라나.
"디, 담요 같이 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