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자해하는 미친 븝미
그날 나는 반송장 상태가 되어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내쫓기는 건 백퍼센트에 가까웠으니 노숙이라도 하려 했지만, 다리가 썩어버렸네. 젠장.
피범벅에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실실 쪼개고 있자니 여관 주인이 날 집어들어 다른 방으로 옮기는 것이 아닌가.
엄한 짓이라도 하는가 싶었더니, 여관 주인은 날 침대에 눕히고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옆방에서 걸레질 소리가 나는 걸 보니 피를 닦고 있는 모양이었다.
바지를 벗는 순간 절대영도로 꽁꽁 얼려버리려 했더니 아쉽게 됐다. 그냥 내 뇌가 썩어버린 걸까. 괜스레 미안해졌다.
당연하게도 나는 다음날 여관에서 쫓겨났다.
포션 값과 기물 파손 배상으로 4실버가 깨진 건 덤이었다. 어차피 하루 자고 나면 완전 재구축이 가능한지라 포션은 안 마셔도 됐지만 예의상 마셨다.
그지랄을 했는데도 포션까지 가져다주고 방도 옮겨준 걸 보면 심성이 뒤틀린 사람은 아니리라.
무안해진 나는 쫓겨날 때 팁으로 3실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모험가 길드.
"유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어제 왜 그렇게 급하게 달려간 거야?"
팔목 찌르러 갔어요. 라고 말하면 무조건 정신병자 취급받겠지.
"죄송해요. 급한 일이 있어서…."
"얼굴 보니 딱 봐도 급한 상황 같았어. 그러니까, 어제 등록비 30쿠퍼를 내지 않고 그대로 갔더라구. 그동안 귀한 재료를 가져다준 것도 있고, 다시 올 것 같아서 별다른 터치는 안했지만 오늘도 내지 못한다면 자격 취소와 함께 벌금을 물을 수 있어."
나는 지갑에서 1실버를 꺼내어 건네주었다. 짤그락 거리는 소리가 사방에 퍼졌다. 대충 남은 돈이 70실버하고 50쿠퍼.
"응! 이걸로 정상등록 완료야. 의뢰를 수주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어. 의뢰창구에 개시 된 의뢰를 선택하거나, 인력소에 가서 일거리를 받거나, 지명 의뢰를 받거나. 아니면 자율적으로 몬스터 사냥을 나서도 돼."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꾸했다.
의뢰는 둘 째 치고 주변에서 날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가 않았다. 마법사는 이기적이고 매사 독단적이라는 편견이 알게 모르게 퍼져있기도 하고…
―짤그락.
무엇보다 청명하게 울리는 동전 소리.
1 실버를 꺼내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날 주시하고 있는 몇몇 모험가들이 있었다.
지금 내 전 재산 70실버는 E~F 모험가가 장비에 돈 안 쓰고 밥도 안 먹고 3년은 벌어야 얻을 수 있는 돈이었다. 눈 안 돌아가고 못배기지.
나는 메리와 헤어지자마자 의뢰창구로 향했다.
[고블린 퇴치 - 보수 20쿠퍼 / 어금니 두 개당 3쿠퍼 추가 지급]
[하수구 청소 - 보수 30쿠퍼]
[쥐 떼 퇴치 - 보수 1실버]
…
…
…
역시 등급이 낮아서 그런지 구리고 보수도 낮은 일밖에 없었다.
눈에 띄는 의뢰는 당연 쥐 떼 퇴치. 고작 쥐 잡는 게 왜 1 실버씩이나 하냐면, 그야 존나 큰 쥐니까. 저런 쥐가 수백 마리씩 있다.
하수도는 또 엄청나게 넓어 의뢰 완수까지 2일 이상 걸리는 대표적인 함정 의뢰다.
하지만 내겐 딱 들어맞는 의뢰다.
나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모집창구 게시판에 인적사항과 파티원을 모집한다는 글을올리면 될 것이다.
[쥐 떼 퇴치 파티원 모집 - 마법 쓸 줄 암]
다른 종이들을 보니, 피를 부르는 미친 광전사 파티 모집 중, 몬스터들 떼도륙 내는 지옥의 폭풍 같은 궁수 등등 차마 보기에도 부끄러운 미사여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발 안 부끄럽나?
어차피 끽해야 D급인데.
풀을 발라 붙여놓고 기다리기를 수십 분.
전처럼 공황장애가 오지는 않았다. 팔목 절단에 가까운 자해쑈로 기분이 풀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새로 장만한 칼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접이식 칼이었다.
왜 새 칼을 샀느냐 하면, 여관 주인이 내 칼을 치운 이후로 일종의 강박증 같은 게 생겼다고 해야 하나. 품에 칼이 없으면 불안장애 비슷한 것이 온다.
하여튼, 시간이 더 흘렀음에도 사람들은 파티에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심하네…
나는 손에 들린 칼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
그치만, 그치만. 밖인데.
한 번만, 한 번만. 딱 한 번만 하면.
괜찮지 않을까.
―스륵.
접이식 칼을 펼치자 매끄러운 단면에 내 얼굴이 비치어졌다. 언제나 봐도 적응 안 되는 얼굴이다.
붉은 로우 트윈테일의 소녀. 그래도, 웃고 있으니 보기는 좋네. 썩은 동태 눈깔만 아니었다면.
'그래…. 딱 한 번만….'
날카로운 날을 팔목에 대었다. 달아오른 몸 덕분에 서늘한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조금 더 힘을 주었다. 그러자 붉은 실선이 얕게 나타나며 피를 흘렸다. 고작해야 다섯 방울. 만족스럽지 못했다.
나는 주변의 눈치를 조금 보곤, 그대로 그어버렸다. 푸슉, 하고 살이 찢기는 소리가 났다. 흘러나오는 피는 곧바로 천으로 닦았다. 피 냄새가 퍼져 나갔지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냄새 지우는 마법은 모르는데, 어떻게 하지. 끝나고 클린 마법이라도 쓸까. 괜찮아.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몬스터 잡느라 피투성이인 모험가도 많았으니까.
"…헤으."
몸이 부르르 떨린다. 고통은 날 늘 행복하게 해준다.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해주는 더없이 사랑스러운 존재다. 고통을 느낄 때면, 그 순간만큼은 순수했던 지난 시절로 돌아간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다가오는 만큼, 나는 고통을 미워할 수 없었다.
사각, 사각. 베인 곳을 또다시 칼로 긋는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만할까? 그만둬야 하나? 이렇게나 좋은데, 왜?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교차했다.
―……요.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긋고 끝내자.
―…봐…요.
나는 베인 곳을 또 그을까, 아니면 새로운 곳을 그을까 고민하는 중이었다. 미처 닦지 못한 피들이 허벅지를 적셨다.
그래.
동맥 위쪽만 살짝 건들―
"이봐요!"
―탁.
누군가 내 왼팔을 잡았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순간 힘이 풀려 나이프를 떨구고말았다.
"으, 아?"
제대로 상황 파악을 못 한 나는 고개를 들어 눈을 굴렸다.
내 팔을 잡은 건 금발의 키 작은 소년이었다.
등급을 보니 E급, 이름은 클레앙.
키가 작다 해도 나보다 작은 건 아니다만… 겉모습만 보면 중학생티를 못 벗은 고딩? 그쯤 되었다.
나는 가쁜 숨을 정리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첫 번째로 파랗게 질린 얼굴의 메리가 보였다. 안절부절못하는 게 마려운 강아지 같았다.
잠깐,
메리가 날 봤다고?
"……."
모두가 날 보고 있었다.
시발.
좆됐네.
* * *
예상과 다르게 클레앙은 파티에 가입하기 위해서 날 찾아온 것이었다. 사실 자기 말고도 더 있었는데 팔 그으면서 실실 쪼개는 모습이 겁이 나 오지 못했다고 한다.
고맙게도 그는 자해에 대해 더 묻지 않았다.
"이름이, 유진? 사용할 줄 아는 마법은… 클린이랑, 파이어볼?"
그는 창구에서 내 정보를 뽑고선 꼼꼼히 읽는 중이었다. 그보다 분명 쓸 줄 아는 마법은 다 적어놨는데 왜 두 개만 남았지.
"마법사님이 있다고 해도, 쥐 떼 처리는 기본 4인 파티가 권장이에요. 어떻게 할 거에요?"
더 기다려야 한다고? 나는 실망스런 표정을 가릴 수가 없었다. 불을 쓸 수 있는 마법사인 만큼 주도권은 내게 있었다. 내가 그냥 가자고 하면 그는 잠자코 따라올 것이다. 마법사는 그런 존재들이니까.
클레앙은 내 얼굴을 보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람 면전 앞에서 한숨 쉬는 게 예의가 아니란 건 나도 알았지만, 왠지 찔리는 게 있어 뭐라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로 하였다.
사람은 좀처럼모이지 않았다. 상처투성이 팔목은 붕대로 가렸고, 핏자국은 클린으로 지운지 오래였지만 내가 보여준 모습이 워낙 강렬했는지 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십여 분을 더 기다리자, 마침내 남성 두 명이 우리에게 접근했다.
"여기가 쥐 떼 파티?"
클레앙이 반색하며 대답했다.
"아, 네.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검사. 이쪽은 레인저. 사용 무기는 석궁, 기척 감지랑 함정 해체가 가능하지. 내가 쓰는 무기는 말 안 해도 되지?"
그가 허리춤에 달린 검을 툭툭 건드리며 말하였다.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검사. 후드를 쓰고 있는 마른 남자가 레인저. 후드남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마법사에 검사 둘, 정찰병 하나. 쥐 떼 잡는 데 탱커는 필요 없으니 나름 균형 있는 조합이었다.
"괜찮네요. 언제쯤 출발할까요?"
"글쎄. 나는 곧바로 출발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
반말 하는 게 거슬린다. 게다가 저 남자. 클레앙을 보고 있지 않았다. 날 보고 있다. 정확히는 허리춤에 있는 동전 주머니를 보고있었다. 속내가 뻔했지만, 포커페이스로 넘겨버렸다.
"그래요. 그럼 잠시 정비한 다음에, 바로 출발하도록 해요. 건량이랑, 기름도 사야 하는데, 어쩌실래요? 따라올 거에요?"
"아니."
"그래요, 뭐. 그럼 잠시 기다려 주실래요?"
"이봐."
"예?"
"아니, 너 말고 마법사."
"……?"
그는 날 가리켰다. 일단 털보라 부르기로 하겠다. 털보는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마탑 출신인가?"
하.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너무나 노골적인 악의였다. 클레앙은 순진해서 그런 건지 눈치채지 못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마탑에서 내려온 마법사들이 실적을 쌓기 위해 모험가 일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지금 털보는 묻고 있는 거다.
너 죽여도 탈 없느냐고.
'마탑 소속' 인원을 죽이면 수배령이 떨어진다. 그것이 견습 마법사든, 청소부든 상관없다. 체면치레를 중요시하는 마탑 특성상 자기 사람들은 확실하게 감싸주는 편이다.
마탑의 폐쇄적이고 보호적 성향은 마법사들의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성격 형성에 꽤 영향이 갔을 거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그리 말하자 털보의 입꼬리가 올라가 내려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