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자해하는 미친 븝미 (3/193)



〈 3화 〉자해하는 미친 븝미

침묵.


이 상황을 완벽하게 설명해주는 단어가 어디 있을까.


잠자코 있던 접수원 메리는 날 구석진 곳에 데려가더니  손을 살포시 잡으며 말했다.


"무슨 바람이 들어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모험가란 일은 되게 위험한 직업이야. 마냥 밝은 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안다.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E~F급 모험가는 약초 채집, 쥐 잡기, 하수구 청소 등 구린 일을 주로 받는다. 잡을 수 있는 몬스터라고 해봤자 고블린, 그렘린 정도겠지. 게다가 파티로 가지 않으면 털릴 위험성도 있다. 고작 고블린에게.

"게다가 이 피는 다 뭐니? 재료 운반 과정에서 흘러내린 피니?"
"제 피에요."
"……뭐?"
"하아…."

머리가 아파왔다. 벌써부터 흥미가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설명하기도 귀찮고, 왜 설명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모험가 시켜주면 안 되나.

"마법, 마법을 쓸 줄 알아요."

설명하는 것 보다 보여주는 것이 백 배는 빠를 것 같았다.


나는 손가락을 팅겨 위생 계열 마법 [클린]을 시전했다. 마력  다룬다 싶은 놈들은 필수로 익히는 마법이었다. 내가 '새롭게' 배운 첫번째 마법이기도 하고.

몸에서 피냄새가 나야 살아있는 기분이 드는지라 클린을 쓰는 건  내키진 않았지만, 그대로 있으면 메리가 죽을 때까지 설득하려 들 테니어쩔 수 없었다.

"마법! 마법을  줄 아는구나!"

메리는 깨끗해진 내 몸을 보곤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바닥에서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점은 굉장히 큰 메리트로 다가온다. 모험가 사이에서 마법사라는 존재는 힐러에 버금가는 귀족 그 자체였으니까.

공격 마법이 없어도 된다. 물 마법을 익힌 자들은 걸어다니는 우물과 같았고, 작은 불씨라도 피워낼 수 있다면 생체 라이터로 우대받는다. 빛으로 작은 구체를 만들  있다면 횃불 대용으로 쓰기도 하고. 기름값 절약에 좋았다.


"다른 마법도  줄 아니?"


마법이라.

많지. 내 전문 분야이다.


"메테오, 땅가르기, 절대영도, 플레임 스트라이크, 아이시클 랜스. 그리고 기본적인 기상변화랑…"
"응?"
"이 외에도 기술명은 없지만 적을 압축시켜버린다던가 몸을 터트린다거나…."
"그만! 그만!"

사용 가능한 기술중 일 퍼센트도말하지 않았지만 메리의 눈은 미친년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영 못미더운 표정이었다.

"농담도 참. 재밌는 아이네. 그래. 직접 겪어보는  낫겠지. 이쪽으로 와.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기입해야 해. 글은 읽을 줄 알지?"

끄덕.


마법을 쓸  있는 자들은 대부분 소위 말하는 '배운놈'들이 많다. 마법을 배우려면 기초적인 체내 마력과 글읽기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읽는다고 배운 놈이니 뭐니 하는 것도 웃겼지만 이 세상은 기초 교육도 못 받는 놈들이 천지에 널렸다. 현대와 달리 이곳은  한자루로 할  있는 일이 무척이나 많기에 교육은 개나 줘버린 것이다.

물론 난 배우지도 않고 깨우쳤지만.

메리는 줄을 무시하고 날  앞에 세웠다. 새치기 한 건 조금 미안했지만 빠르면 나야 좋지.

"이름이… 유진? 음음. 알겠어."

생전 이름은 아니지만, 동아시아, 서양, 성별 막론하고 위화감 없는 이름으론 유진이 제격이었다.


추가적으로 능력, 나이. 기타 참고할 만한 사항들을 모두 적자 메리는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창구 안으로 사라졌다.

"…."

벌써부터 재미가 없다.

여관에 처박혀 팔 긋는 게 훨씬 나을 거 같았지만 나는  참고 '파티'까지만 하기로 결심했다.

불특정 다수의 인원이 같은 목표를 가지고 생활하면 갈등은 필연적으로 다가온다. 계기가 무엇이 됐든간에, 일이 잘 풀리고  풀리고 관계없이 '불화'는 갑작스레 찾아온다.

전리품 분배 도중 뒤에서 칼로 찌른다던가, 잠든 도중 찾아와 목을 조른다던지, 약을 먹여 재운 다음 늑대 먹이로 준다던지.

놀랍게도 그렇게 죽어나가는 모험가만 하루에 수십명이다.


그럼에도 파티를 하는 이유는 많았다. 혼자 힘으론 감당 못하는 몬스터들은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물론 내겐 해당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 도시 일대의 모든 몬스터는 내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내가 파티를 하는 이유는 별  없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을겪기 위해서.

권태감과 무료함을 긴장감과 공포로 덮어버린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하루를 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언제올까.

초조해진 나는 마나를 풀어  쪽 상황을 살펴보았다. 모험가 패를 만드는 중이었다. 내 이름을 음각으로 새겨넣고 있었는데 속도가 상당히 느렸다. 조금 더 걸릴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른다.

통증은 점점 멎어갔고, 피냄새는 더이상 나지 않았다.날 위협하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속이 울렁거린다.

"모험가 패가 완성됐어. 넌 이제부터 F급 모험가고, 50개의 일반 의뢰를 처리하거나 사냥으로 실적을 채운다면 E급으로… 유진? 왜이렇게 창백해?"

어느새 모험가 패가 완성되고 메리가 날 찾아왔지만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온 몸에 힘이 빠졌다.

동화同化 현상.

때때로 찾아오는 정신병 비스무리한 현상이다. 온 몸이 녹아내려 세상과 하나 되는 기분이 들어, 까딱하면 미치기 일수다. 물론 그런다고 정말 세상과 동화하는 건 아니였지만…

 끔찍한 감각을 덮어씌울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는 모험가 패를 품에 넣자마자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메리가 뭐라 소리쳤지만 들리지 않았다. 머리가 울렸다.

"유진? 유진!"


황급히 발을 움직여 도착한 곳은 묶고있었던 여관이었다. 쿵 소리가 날 정도로 난폭하게 문을열어재낀 나는 몰려드는 시선을 무시하고 내가 체크인 한 방으로 들어갔다.

"이봐! 이보게!"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여관 주인이 내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내쫒거나, 돈을 요구하거나 둘  하나겠지. 아침에 성대하게 일을 저질러놨으니.

'내 칼, 어딨지?'


여관 주인이 치운  분명하다.

'마법을 써서? 아니야….'


나는 급해졌다.
울렁거림이 멈추지 않는다.


―쨍그랑!

테이블 위 등을 집어 유리창에 던졌다. 충격을 버티지 못 한 유리창이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나는 유리 파편으로 엉망이 된 바닥을 헤집었다. 유리에 베이고 베여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았다.


마침내 칼날에 버금가는 커다란 유리조각을 찾았을 때.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왼 팔의 소매를 걷곤―


팔목을 향해 그대로 찔렀다.


"끅."

눈물이 핑 돌았다.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유리조각을 빼낼 때엔  배의 고통이 날 찾아왔다.


"아으…."


축 늘어진 왼 팔을바닥에 고정시킨  다시  번 찔러넣었다. 피가 튀었다.  과정을 몇  반복하자 더이상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동맥은 끊긴지 오래였다.

"흐. 흐으. 하아."

입에서 침이 줄줄 새어나왔다. 기절할 것 같았다.

거의 절단에 가까운 상처를 새겼으니 이대로 두면 과다출혈로 죽을 것이다. 나는 원소 마법에 능통한 것이지 신체 강화나, 신성력을 다루는  따위는 몰랐다.

지금 당장 신체를 재구축하지 않으면―

죽는다.

머리가 아찔해졌다. 너무나 선명하게 다가온 죽음이 옆에서 속삭인다.

―쿵쿵쿵!

여관 주인이 성난 목소리로 문을 두들기자 정신이 들었다. 나는 가쁘게 숨을 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 주변은 피바다였다. 너덜너덜해진 손목에서 나오는피의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하읏…."

여기서 눈을 감으면 확실하게 죽는다. 하지만 공포심에 두근거리는 심장과 다르게 내 얼굴은 어느때보다 기쁘게 웃고있었다.

―콰직!

문이 열렸다. 내가 문을 열지 않자 연장을 들고  여관 주인이 강제로 뜯어 버린 것이다.

"이보게! 오늘 아침에… 으아악! 지금 뭐하는 겐가!"


미소는 점점 일그러져갔다. 재구축을 하고는 있지만, 2분 내로 성공하지 못한다면 과다출혈로 죽는다.


'재구축을… 해야하는데… 정신이… 온전치가…'


2분.
내게 남은 수명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필사적이었다.

나는 죽기 싫었다. 이지경까지 와서야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전신을 지배했다. 살고싶다. 살고싶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고싶지 않다.

그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아… 하아…."


57초.
새 살들이 솟아났다.

41초.
끊긴 동맥들이 제자리를 찾았지만 피가 부족했다.

24초.
심장을 억지로 뛰게 만든다. 마법으로 피를 재생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13초.
감각이 돌아왔다. 끔찍하리만큼의 고통이 느껴졌다.

7초.
팔목이 완전히 봉합되었다.

3초.
피가 정상적으로 흐름을 확인했다.


1초.
생명 지장 없음.


"포션! 포션을 가져왔네 이보게!"

오른 시야가 보이질 않았다. 눈이 썩어버린 것이다. 무리한 신체 재구축의 대가였다. 폐 한 쪽도 쪼그라  것 같았고, 두 다리에 감각이 없는  보니 괴사한 모양이다.


이 모든 상황이 무척이나 마음에들었던 나는 무심코 실소를 흘렸다.


"흐으."


덧없이 꺼져버릴 삶을갈구할 때,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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