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자해하는 미친 븝미
"씨, 씨발 뭐야?"
그래, 이거다.
이거야.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이.
아랫배가 간질간질 한 게 살짝 젖은 거 같았다. 남자의 우악스러운 손아귀로 꽉 막힌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숨소리는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다리를 배배 꼬며 마약맞은 사창가의 창녀처럼 실소를 흘려보냈다.
마법사의 이성이 고통으로 마비될 때, 나는 감정을 여과 없이 느낄 수 있었다.
"시발! 기분 더럽게!"
―휘익! 쾅!
"카학!"
피와 함께 터져 나오는 숨.
사내는 질린 얼굴로 날 집어 던졌다. 먼지가 흩날릴 정도로 세게 집어 던져 진 나는 그대로 축 늘어졌다. 코 밑으로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척추 쪽이 손상된 것 같았다.
"……"
아쉬웠다. 조금 더 느끼고 싶었다. 죽음 직전까지 몰려 필사적으로 삶을 갈구할 때에 생기는 그 모든 감정을.
나는 그나마 움직이는 눈을 굴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역시 날 미친년 보듯이 보고 있었다. 내 입꼬리는 경직이라도 됐는지 올라간 채로 멈춰있었고 왼팔의 상처는 충격으로 터져 피를 내뿜고 있었다.
"형님. 좀 불길하거든요. 걍 내버려두고 가는 게 어때요?"
"…그래. 그러자."
내 돈 79실버.
붕대도 사야 하고, 이번에 모험가 등록하려면 1실버도 필요한데.…
어떻게 모은 돈인데, 잃을 순 없지.
사실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지낼 수는 있다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아침은 걸러도 점심 저녁은 꼭 먹는다. 밤이 되면 잠도 자고.
하여튼, 남을 죽이려 했으면 본인도 죽을 각오를 해야지.
약간 장난을 쳐볼까.
"형님! 여기 막혀있는데요!"
"지랄하지 마! 우리 여기로 들어왔, 어. 어?"
그들이 진입한 모든 경로를 막아두었다.
돌아가봤자 보이는건 주변과 똑같은 회색빛 벽일 것이다.
"시발!"
그들은 다시 돌아와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시체처럼 늘어진 날 지나쳐 본래 들어온 곳으로 가봤지만…
"여, 여기도 막혀있는데요?!"
"너 씨발 말끝에 데요 한 번만 더 붙이면 죽여버린다!"
길이 나올 리가 있나.
"뭐, 뭐야 시발! 다 막혀있는데요!"
"이익!"
헤매면 헤맬수록 좁아지는 골목. 그들이 길 찾기를 포기했을 때는 나를 중심으로 사방이 꽉 막혔을 때였다.
그들이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좁아지자 그들은 최후의 탈출구로 벽타기를 시전했다.
'슬슬움직일까….'
슬슬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신체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만 재구축했다. 마치 실을 뽑는 듯 뿜어져 나온 마나의 흐름이 내 목을 휘감는다. 그렇게 몇 초가 흐르고, 팔다리가 무사히 움직이는 걸 확인한 나는 엉덩이에 뭍은 흙먼지를 털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멍과 왼팔의 상처는 그대로 두었다.
보기와 달리 생각보다 만능인 기술은 아니다만, 그건 그때 가서의 이야기.
"어, 어?"
죽었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두 다리 멀쩡히 일어나자 대장격 되는 사내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크아악! 네가 한 짓이지!"
그걸 이제야 눈치채다니 멍청하기도 해라.
나는 대답 없이 벽을 '통과'해 유유히 빠져나갔다. 전과 같은 골목길이 날 반겼다. 나는기지개를 피곤 저놈들이 바닥에 흘린 동전 주머니를 슬며시 들어 올렸다. 음, 79 실버. 정확하네.
"자, 잠깐만!"
그들이 갇힌 벽은 점점 좁아질 것이다. 나는 그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천장까지 덮어버렸다. 그들은 어둠, 태초의 공포 속에서 무력하게 죽어나갈 것이다.
"사, 살려줘!"
"밀지 마! 침착해! 침착하라고!"
"침착하게 생겼나 미친새끼야아악!"
―콰득. 콰지직.
사방이 막힌 벽은 점점 줄어들어 살이 터지고 뼈가 부서지는 소리를 내더니 종국엔 정사각형 모양의 큐브가 되었다.
작은 회색빛 큐브.
이 사각형 큐브 안엔 일반인 세 명분의 마나와 살점이 담겨있었다.
마탑에 팔면 좋다고 하면서 사들일 것이다. 일반인이라 마나가 많지 않아서 20쿠퍼 쯤 하겠지.
20쿠퍼.
살인강도 삼인방의 가치였다.
'…나도 좁아지는 밀실에 갇혀볼까.'
분명 흥분될 것이다.
'아니, 자제하자.'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고통과 죽음마저 무뎌지는 것이다.
'어차피 안 죽잖아.' '마지막에 가서 멈추면 돼.' 따위의 생각이 가장 위험하다. 나 정도의 능력이라면 정신과 육체를 분리해, 목숨과관계없이 고통을 즐길 수 있을 테지만…
'자살 시늉'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무덤덤해질 것이다. 삶을 갈망하는 것마저 지루해질 테고.
만약 그때가 오면 정말로 버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자해하는 것으로 참고, 외부적인 요인으로 목숨이 위협받을 땐 따로 터치하지 않는 편이다.
설령 그것이 정말로 내 목숨을 끊을 수 있더라도.
*
"안녕하세요."
"다 망해가는 가게엔 왜 자꾸 찾아오는 거냐?"
"붕대 사러 왔어요."
"미친년."
[금빛 수선]이란 이름의 간판과 달리 가게는 온통 회색빛이었으며, 여기저기 금이 가 주인장의 말처럼 망해가기 직전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가 이곳을 애용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 사람 없는 으슥한 위치는 둘째 치고, 내 상처를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요컨대 프라이버시 보호를 잘해준다.
"…쯧."
그의 시선이 내 목에 향했다. 커다란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멍이 들어있는 곳이었다. 시선은 점점 내려가 피가 줄줄 흐르는왼팔로, 그리고 절뚝거리는 다리로 향했다.
잠시 몇 초 동안상처를 바라본주인장은 상처를 계속해서 보기 거북했는지 시선을 돌렸다.
내가 가만히 서 있자 그는아무 말 없이 붕대를 넘겨주었다. 나 또한 말없이 돈을 건네주었다. 나는 살짝 미소 지으며 조심스럽게 붕대를 받았다.
그런데 주인장의 얼굴은 평소와 다르게 궁금해 죽은 사람처럼 찝찝한 표정이었다.
"이보게."
그는 결국 궁금증을 못 참았는지 내게 말을 걸었다.
거래 후 내게 말 거는 건 처음인지라 나는 시선만 돌려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오늘부터 가게를 닫을 거야. 원래라면 며칠 전에 해야 했을 일이지만, 워낙 궁금해서 말이지."
가게를 닫는다고? 나는 살짝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다른 가게들은 내 상처를 보면 기겁을 하면서 쫓아내거나, 경비병을 부르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으음, 뒷골목에서 천을 취급하는 가게는 별로 없는데 말이지.
"대체 그 상처들 어디서 난 건가? 네년이 여기 찾아오는 횟수만 열 번이 넘어요. 그런데 항상 상처들을 주렁주렁 달고 온단 말이지."
"음…."
"뭐 말 못 할 일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되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내 이쪽 골목으로 지나가는 남자새끼 세 명을 봤다네. 눈에 익은 놈들이었지. 몇 주 전부터 살인강도 짓을 일삼는 녀석들이었어. 신고는 해봤다만, 경비소에 빽이라도 있는 건지 씨알도 안 먹히더군."
그는 내 목에 선명하게 찍힌 손자국을 보며 말했다.
"혹시 그놈들…만났나?"
"…."
나는 주머니에서 회색빛 큐브를 꺼내어 주인장에게 건넸다.
"이, 이게 뭔가?"
"마탑에 팔면 20쿠퍼에 매입할 거에요. 가지세요."
"그러니까. 이게 뭐냐니까?"
나는 큐브를 살짝 쪼개어 속을 보여줬다.
―꿈틀.
꿈툴거리는 살덩이 속에서 작은 눈 하나가 주인장을 바라보았다.
"그놈들."
큐브 안에는 세 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
나는 새파랗게 질린 주인장을 뒤로하고 모험가 길드로 떠났다.
* * *
나는 대충 붕대를 두르고 모험가 길드로 들어갔다. 목에 있는 멍 자국은 보여서 좋을 게 없기에 짧은 케이프를 둘러 가렸다.
모험가 길드.
평소엔 쓰지 않지만 몬스터 재료나 '큐브' 따위를 처분할 때 쓰는 곳이다. 본래라면 첫날부터 달려가 찬란한 모험가 생활을 해야 했겠지만….
흥미가 팍 식어버린 탓에 스킵한 곳이었다.
대신 몬스터 사냥이라도 하면 흥미가 생길까 하여 열심히 때려잡았던 적이 있었다.
사냥 기간 한 달. 그 한 달 동안은 모험가 길드를 들락날락 거렸지만, 사냥마저 질려버린 탓에 더는 찾지 않았다. 고로 내가 길드를 방문하는 것은 두 달만이었다.
여담이지만 접수원들은 날 마탑의 심부름꾼으로 알고 있다.
가져오는 재료들이 하나같이 굵직굵직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가고일 가죽, 골든 드레이크의 심장, 새끼 아울베어의 깃털, 신록수를 지키는 수호 노루의 발톱까지….
아쉽지만 오늘은 맨 손이다. 미루고 미뤘던 모험가 등록을 하기 위해서다.
나는 조심스레 길드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
시선이 쏠렸다. 나 같은 여자애가 올 만한 곳이 아니기도 했지만, 역시 온몸이 피투성이인 게 가장 크겠지.
나는 쏟아져 내리는 시선을 무시하고 접수창구 앞에 길게 이어진 줄에 합류했다.
―어라? 저 꼬마애 어디서 많아 보지 않았어?
―아, 전에 말했던 마탑 심부름꾼? 재료 크기 때문에 항상 피투성이였잖아.
―아아 맞아! 잘도 기억하고 있네!
그거 다 내가 사냥한 건데.
뭐 좋을 데로 생각하라지.
"꼬마야! 이리로 와!"
"…?"
갈색 머리에 주근깨가 인상적인 강아지상 접수원의 이름은 메리였다. 그녀는 날 보자마자 손짓으로 이리로 와!를 열심히 어필했다.
하지만 길게 이어진 줄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메리 말대로 앞으로 갈까 했지만, 내게 시간은 의미가 없었으므로 그냥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다.
"아이 참!"
아니 이 여자가 왜 이럴까. 그녀는 내가 반응이 없자 옆 직원에게 업무를 넘기고 직접 내게 다가왔다.
"아이 참. 와도 된다니까. 겁먹지 마렴. 저 아저씨들 인상은 험악해 보여도 괜찮은 분들이니까."
"누구 얼굴이 험악하다고?"
쿠사리가 날아왔지만 메리는 능숙하게 받아넘겼다.
"헹. 얼굴로는 드래곤도 때려잡을 양반들이 뭐라는 건지."
그러자 주변에서 푸하하, 하고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개그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었지만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그냥 내가 감정이 메마른 건가.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왔니? 재료 매입?"
피투성이로 채취한 지 얼마 안 된 몬스터 재료를 가져왔으면 눈치챌 법도 한데, 얘가 멍청한 건지 둔한 건지. 뭐 나 같아도 이런 작은 소녀가 괴물들 썰고 다닌다 말하면 안 믿을 거 같긴 했다.
메리는 날 '마탑' 푯말이 걸린 창구로 데려가려 했기에 그녀의 손을 떼놓을수밖에 없었다.
"응? 왜 그러니?"
난 마탑 관계자도 아니고, 재료를 팔러 온 것도 아니다.
"모험가 등록하러 왔어요."
"…."
순간 주변 분위기가 싸해졌다.
"모, 모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