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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다 따먹음-176화 (176/242)

< 176화 > 내 조카한테 친한 척하지 마!!

"…옆에는 누구셔? 설마 오빠!?"

"헐! 오빠신 거야? 어!?"

아마도 '이모'의 친구로 보인다.

그리고 참으로 갑작스러운 만남이었고.

나는 '이모'를 따라서 다시 뒷걸음질을 쳤다.

"야, 너네 어디가? 그리고 오빠…? 아니거든?!"

'이모' 또한 표정에 반가운 기색이 가득했고.

제법 친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설마하니 나를 남자친구라고 소개하려는 건가 하는 걱정이 앞섰고.

그래서 내가 먼저 관계를 바로하려는데, 이런 나보다 '이모'의 입이 열리는 게 더 빨랐다.

"인사해. 내, 조카."

"…조카?"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하, 하하…."

내 걱정이 기우인 듯했다.

그리고 '이모'는 우리의 관계가 자랑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또 어딘가 의기양양해져서는 없는 젖가슴을 앞으로 쭈욱- 내밀고 있었다.

"진짜 내 조카라니까? 우리 언니 아들이야. 그러니까, 나한테는 조카."

"아, 아아… 근데, 나이가… 우리보다 많지 않으셔? 아니면 엄청 동안이신가?"

"그, 그치…? 고등학생은 절대 아닐 것 같은데…."

"헤… 몇 살 같아? 빨리 맞춰봐."

"맞추라고?"

"…흐음. 너무 어려운데."

갑자기 분위기가 스무고개였다.

그리고 나를 바닥에 세워두고는 그렇게 '이모'와 '이모' 친구 두명은 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25살!"

"다운. 이제 2번 남았어."

"아… 진짜 고등학생은 아니겠지…?"

"에이, 말도 안 돼. 세상에 저런 고등학생이 어딨다고."

"아니, 내 말이. 근데… 조카라니까. 조카면 훨씬 어려야 하는데…."

'이모' 친구 둘은 골똘한 표정이 되어 나를 빤히 바라본다.

친구끼리도 닮는다더니, 싸가지 없기로는 처음의 '이모'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인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던 둘이 고개를 옆으로 홱- 돌리며 나와 눈을 피해버렸다.

"일단, 안녕하세요."

"아, 네, 네…."

"…근데, 진짜 지영이 조카세요?"

"하, 네. 정말 조카 맞아요."

신주희 때처럼, 그러니까 '여동생'의 친구를 대하듯이 말이 쉽게 나오지가 않는다.

아무래도 '이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보였다.

"와… 부럽다. 저희집 조카들은 아직 다 바닥에 기어다니거든요."

"…나도 이런 조카 있었으면 좋겠어."

둘은 나를 힐끔거리기 바빴고.

대충의 통성명이 이어진다.

"…저는 지영이 친구 김다솜이에요…."

"저, 저는… 이시은이요…."

내가 너무 나쁘게만 생각했던 건지, 스스로를 소개한 둘은 몸을 배배 꼬면서 부끄러워 하고있었다.

"저는 박한솔이에요."

"아… 박한솔…."

"한솔, 한솔… 이름이 예쁘네요!"

"아, 진짜 예뻐요!"

나는 흔하다 싶은 이름이라고 생각하는데, 둘은 조금 들뜬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아, 고마워요. 두분 이름도 예뻐요."

"히힛… 진짜요?"

"아… 근데, 혹시 어디 가시던 거 아니었어요…?"

"마트 가던 길이기는 한데…."

"아! 저희도 마트 가려고 했는데. 저기 건너서 맞죠?"

"…맞아요."

부쩍 둘은 내게 관심을 보였는데, 그 뜨거운 시선이 얼마나 노골적인지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그리고 대충 이쯤하고 헤어지면 될 것 같았는데, 친구 둘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고.

여전히 신기하다는 관심을 내게 잔뜩 뿜어내고 있었다.

"그럼 같이 가요!"

"맞아요! 마트까지 같이 가요!"

둘은 나를 좌우에서 압박해왔고.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야, 너네 뭐하냐."

"왜?"

"뭐가?"

"…아니야. 그리고 저리 좀 비켜."

'이모'는 자기 친구 들에게 손을 휘휘 저었는데, 그 꼴이 마치 벌레는 쫓는 듯했고.

마침 다시 바뀐 신호에 '이모'는 내 손을 붙잡은 채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야! 같이 가자니까?!"

'이모'는 본인의 짧은 다리로 제법 빠르게 걸었는데, 내 손목을 붙잡은 손에 꽈악- 힘이 들어갔다.

"야… 왜 내 친구한테 친한 척해?"

"…내가 친한 척을 했다고?"

"어. 그것도 언제 봤다고 존나 친한 척하더라."

"하… 내가 언제."

"언제? 막 서로 눈도 마주치고 난리던데? 그리고 쟤들 좀 봐. 아주 네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네, 하!"

질투는 질투였는데, '이모'의 그 질투가 누구에게로 향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얼핏 보면 내가 친구들과 친해지는 게 싫은 모양새였는데, 그게 누구 때문인지 헷갈리고 있었다.

"하, 하아… 좀 천천히!"

"하으, 흐… 하아아… 힘들어, 후…."

그런 우리 뒤를 뛰어서 쫓은 친구 둘이 연신 가빠진 숨을 몰아쉬었고.

몸을 크게 들썩이며 이마에 땅을 훔치는 시늉을 한다.

"…너네 마트 가는 건 맞아?"

"아, 응. 아이스크림 먹을 건데?"

"…이 날씨에?"

"지금 먹어야 제일 맛있는 건데, 역시 뭘 모른다니까."

"……근데, 원래 그렇게 손잡고 다니는 거야…?"

둘 중에 젖가슴이 더 커다란 김다솜의 말이었다.

"어. 왜? 너는 밖에 조카 손도 안 잡아? 그러다가 잃어버리면 어떡하게."

"……잃어버린다고?"

"너, 그거 안전 불감증이다?"

"아니… 다 큰 사람이 길을 왜 잃어버려…."

둘의 시선은 다시금 내게로 향했고.

나로서는 멋쩍게 웃어주는 것이 한계였다.

"아무튼, 아이스크림이나 빨리 사서 가."

"야! 오랜만에 보는 건데, 너무 매정한 거 아니야?"

"뭐가 오랜만이야. 저번 달에도 봤잖아."

"…충분히 오랜만이거든?"

나는 어쩌다 보니까 그런 셋에게 둘러싸이는 형국이 되었다.

"아니, 그래서 조카 분은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 건데? 진짜 우리보다 어린 거야?"

"……아니."

"헐! 그럴 줄 알았어. 저기, 그럼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키가 작은 이시은이 나를 빤히 올려다 본다.

그리고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내게 물어온다.

"한 살 많아요. 스물 하나…."

"아… 오빠시구나아…."

"야! 오빠가 아니라 내 조카라니까?!"

오빠라는 말에 쌍심지를 키는 '이모'가 이시은을 노려본다.

"누가 뭐랬어? 그리고 너한테나 조카지, 우리 한테는 오빠 맞는데? 그렇죠, 오빠아?"

원래 애교가 많은 건지 눈은 이미 반달을 그리고 있었고.

뒷짐을 지며 나를 귀엽게 올려다 본다.

"…너, 저리 안 비켜? 내 조카한테 친한 척하지 마!!"

어딘가 흥분한 '이모'가 이시은을 확- 하고 밀치려고 했다.

"…이모, 그만해. 밖에서 지금 뭐하는 거야."

"와… 이모래. 진짜 신기하다…."

나는 날뛰려는 '이모'를 붙잡았는데, 정작 친구 둘은 내가 '이모'를 '이모'라고 부르는 사실이 더 신기해 하는 듯했다.

"저기, 오빠아… 그럼 저희는 지영이 친구니까, 저희한테는 뭐라고 부를 거예요?"

"…글쎄요."

이제는 '이모' 친구에게까지 손 위 대접을 해줘야 하는 건가에 대한 고민이 짧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야! 내가 친한 척하지 말랬다?!"

"아니… 얘는 왜 자꾸 난리야. 나도 이런 조카 있었으면 좋겠다는 건데, 좀 너무 한 거 아니야?"

"하나도! 안 너무해!!"

'이모'는 공중에서 주먹질을 하는 시늉까지 하는데, 이시은과 김다솜은 이런 지랄맞은 '이모'의 반응에도 익숙한 듯 전혀 개의치 않은 모습을 보인다.

"일단… 들어갈까요? 이모. 안에서는 조용히 해. 안 그럼 과자 안 사준다?"

"…치사하게 과자로 협박하지 마."

그래도 협박이 먹히는 건지 금방 잠잠해져서는 내 가슴에 머리를 가져다 붙였다.

"그리고 나, 안아줘."

"…뭐?"

혹시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안아 달라고."

"…여기서? 갑자기?"

"나, 지금 힘들어. 평. 소. 처. 럼. 그냥 안아줘."

그리고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하는 '이모'의 시선은 친구들을 향한다.

"…왜이래. 부담스럽게."

"야, 이게 왜 부담스러워. 너, 나 평소에도 자주 잘 안아주잖아."

"…조용히 좀 해."

솔직히 남사스러웠다.

남들 앞에서, 그것도 '이모'의 친구들 앞에서 '이모'의 이런 어리광을 모두 받아주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았으니까.

"아, 얼른! 응?"

급기야 반대로 몸을 돌린 '이모'는 내 목으로 팔을 뻗는다.

그리고 내 시선은 이시은과 김다솜에게로 향한다.

"와… 좋겠다… 나도 저런 조카 있었으면…."

"…애도 아니고. 밖에서 저러는 건 좀…."

"그래도 부럽지 않아?"

"뭐, 부럽긴 부러운데…."

그런 둘의 대화에 '이모'의 입꼬리는 귀에 걸릴 것처럼 올라간다.

"빨리 안아줘, 응?"

그리고 까치발을 들고는 내 목에 팔을 감싼다..

또 바닥을 깡총까총 뛰더니, 기어코 다리로 내 허리를 감아왔다.

"어후…."

나는 '이모'가 바닥에 떨어질까 하는 걱정에 별 수 없이 엉덩이를 받치고 안는다.

'이모'는 그대로 내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부비부비 비벼오기 시작한다.

"이제 들어가!"

그리고 한껏 기분이 업된 듯한 '이모'가 마트를 가리켰고.

고개를 뒤로 돌려서 자기 친구들을 내려다본다.

"하! 부러워? 너네는 이런 조카 없지?"

의기양양한 '이모'의 목소리가 작게 울렸고.

친구 둘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있었다.

"사이가 엄청 좋네… 나는 외동이라서 오빠도 없는데… 그러니까, 오빠가 제 오빠 하실래요?"

"나도! 저도 외동인데, 제 오빠 해주시면 안 돼요?"

이시은과 김다솜이 우리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왔고.

'이모'는 이번에도 벌레를 쫓듯이 손을 휘휘 저어댔다.

"저리 안 가?! 누가 너네 오빠야. 내 조카거든?"

"아, 그걸 누가 몰라? 그래도 우리한테는 오빠잖아."

"맞지. 오빠지."

'이모'딴에는 내게 스킨십으로 우리의 친밀함을 자랑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어쩐지 지금은 역효과가 일어난 듯했다.

"…싫다고. 너네는 다른 오빠 찾으라고."

'이모'의 손과 발이 내 몸을 옥죄고 있었다.

그리고 눈을 날카롭게 뜨며 자기 친구들을 매섭게 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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