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누구겠어요? 사위잖아요
"…더 먹어도 되는데."
"아, 아닙니다. 많이 먹었어요."
나는 밥그릇을 두 번이나 비우고 나서야 수저를 식탁에 내려 놓을 수가 있었다.
"그럼 과일 좀 깎을 테니까, 잠깐만 있어요."
"아, 괜찮?"
"아니에요. 손님인데."
내 말을 중간에 자른 장모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냉장고로 가 이것저것 과일을 챙겨 돌아오신다.
"흐… 그럼 밥도 다 먹었겠다, 이제 이야기 좀 해도 괜찮지?"
"아, 응…."
장모님의 시선은 신주희에게 향했다.
그리고 동의를 구한다는 듯이 내게 슬쩍 턱짓을 하고.
신주희 또한 알겠다며, 내 무릎 위에 손을 올렸다.
"오빠 아직 소화도 다 안 됐는데… 체하게는 하지 마."
"얜, 누가 들으며 내가 잔소리하는 줄 알겠네."
"잔소리 맞거든? 그리고 그냥 놔뒀으면 진짜 체했을걸."
"참나, 딸한테 별소리를 다 듣는다."
신주희의 저런 반응도 이해는 간다.
실제로 장모님이 말씀이 조금 많기도 했고.
시도 때도 없이 나를 힐끔이셨으니까.
"아무튼. 천천히, 천천히 하나씩 물어봐."
신주희의 당부가 그 뒤를 이었고.
장모님은 사과를 깎으시면서 내 안색을 살피고 계셨다.
"어… 나이는 한 살 많다고 했죠?"
"네. 한 살 많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편하게 하셔도 괜찮은데요."
"에이, 그것도 천천히 할게요. 음, 그리고 누나랑 여동생이 있다고요? 우리 주희 큰일이네. 시집이라도 가면 시집살이?"
"아, 엄마아!"
"어머,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자,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이!"
"…내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지 않니?"
"다, 조, 좋으신… 분들이라니까…? 그리고 동생은 서현이라고 내가 말했잖아."
"알지. 서현이 잘 알지. 너, 그게 더 무서운 거다?"
그렇게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그런 분위기였다.
장모님은 수시로 농담을 건네셨고.
신주희는 내 눈치를 살피며 연신 난감한 표정을 했지만, 그마저도 귀엽게 보인다.
"괜찮아. 어머니가 농담 하시는 거잖아."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혹시나 둘이 크게 다툴까 싶어서, 나는 신주희에게 살짝 귓속말을 했다.
"오빠, 엄마 저거 농담 아니야… 우리 엄마는 농담을 몰라. 매사에 진지하다고…."
"…그래?"
"사람 앞에 앉혀두고, 그렇게 귓속말 하는 거 아니다…? 나, 귀가 좋아서 다 들려, 응?"
장모님은 어느새 예쁘게 깎은 사과를 접시에 담으셨고.
빙긋- 웃으며, 우리에게 포크를 내미신다.
"자, 많이 들어요."
"감사합니다."
과연, 미인답게 웃는 얼굴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그리고 딸의 남자친구가 그렇게도 신기하신 건지 한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계셨다.
"…엄마, 내 남자친구 얼굴에 구멍 생기겠어."
"닳는 것도 아니고, 되게 뭐라고 한다?"
"흥."
나보다 더 긴장한 듯했던 신주희는 계속 굳은 표정을 유지했었다.
하지만, 식사가 끝난 지금은 평소보다 더욱 다채로워진 얼굴을 한다.
"그래도 남자친구분 덕분에 우리 딸 얼굴도 보고 좋은데?"
"…뭐래. 우리 똑같이 생겨서 채희만 봐도 내 생각 안 난다며."
"어… 그렇긴 한데. 그래도 어디 똑같겠니? 엄마는 바로 누가 누군지 안다니까?"
"…오빠, 저거 거짓말이야."
"딸… 다 들린다?"
장모님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분명 오랜만인 딸과의 상봉이 기꺼운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 기어이 내가 다시 강간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난감했다.
이제와서 도덕적 잣대니, 아니면 인륜과 패륜을 들먹이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리기도 했고.
어차피 내게 남은 양심 따위는 없는 것과 같았다.
그저 내가 강간해야 하는, 그리고 따먹어야만 하는 장모님의 미모가 출중한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나는 오직 그 생각 뿐이었다.
"그럼 이제 어떡해요? 밥만 먹고 갈 건가요?"
"…그럼 뭐, 같이 살기라도 해?"
"아쉬워서 그래, 아쉬워서."
만남에는 그 끝이 찾아온다.
그렇기에 장모님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하고.
신주희는 한시라도 빨리 나를 데려나가려고 한다.
"아쉽기는 뭐가 아쉬워… 자주 올게. 오늘은 그냥 간단하게 인사만 하려고 했단 말이야."
신주희가 내 옷자락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얼른 나가자며 눈치를 보내고 있었고.
하필이면 장모님과 내가 눈이 딱- 하고 마주친다.
"아… 그럼 가기 전에 커피 한 잔만 얻어 마셔도 될까요?"
"어머, 커피를 깜빡했네."
장모님이 손뼉을 짝- 하고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표정에는 다시 기쁨이 자리한다.
"저는 차가운 걸로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아, 근데 커피는 어떤 걸로?"
종류는 중요치 않았다.
차갑기만 하면 그만이었기에, 나는 장모님과 같은 것을 달라고 부탁드린다.
"…오빠, 나 화장실 좀 갔다가 올게."
"아, 응."
그리고 커피만 마시고 정말 가자는 신주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또한 식탁 반대쪽에 앉아있던 신채희가 보란 듯이 엉덩이를 툭- 툭- 두드려 준다.
"아, 진짜아…!"
신주희는 민망해하며 쏜살같이 화장실로 사라지고.
팔짱을 낀 신채희가 나를 노려본다.
"하! 커피까지 얻어 마시고 가게?"
"어."
"…재수없어."
신주희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신채희의 반응을 구경한다는 것은 제법 재미가 쏠쏠하다.
그 둘 사이에서 오는 갭에 자꾸만 내 아랫도리가 반응하고 있었다.
"둘은 또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요? 자, 여기 아아. 저랑 같은 거."
"잘 마실게요."
장모님에게 받아든 컵은 차가웠다.
그도 그럴 게 그 안은 얼음이 가득해서, 보기만 해도 이가 시릴 지경이었으니까.
"아!"
"어, 어머!"
그래서 실수로 그 컵을 놓쳤음에도, 그리고 몸에 끼얹어진 그 커피는 뜨겁지 않았다.
오히려 여러모로 후끈한 몸에 시원함을 더해준다.
"아이구, 어떡해. 잠시만요."
장모님이 많이 바쁘셨다.
앉자마자 다시 일어나셔서 내가 쓸 수건을 챙겨주셨으니까.
"이걸 어떡해. 하필 흰 셔츠일 게 뭐람."
"아, 괜찮아요. 제가 닦을게요."
"아니에요… 손님인데, 가만히 있어 봐요."
장모님의 손이 내 옷 위를 툭- 툭- 두드린다.
그리고 때맞춰 화장실에서 나온 신주희가 내게 한달음에 달려 왔고.
장모님의 손에 들린 수건을 빼앗다시피 받아 들고는 내 몸을 닦았다.
"오, 오빠. 이거 뜨거운 건 아니지?"
"아, 응. 괜찮아. 차가운 거야."
*
무언가 자연스러운 흐름을 원했다.
집에 있는 옷을 빌려 입고, 커피에 더러워진 옷을 세탁한다든가.
그러면 옷을 세탁하는 시간에, 그리고 옷이 마르는 시간 동안은 더욱 오래 머무를 수 있을 테니까.
예상대로 장모님은 그렇게 매몰차지 않으셨다.
옷을 빨아주신다며, 손수 손빨래까지 해주셨으니까.
도리어 뭐라도 입고 나가자는 신주희를, 밖에 옷을 사러 나가겠다는 신주희를 뜯어 말리는 것이 더 힘들었다.
"어머… 근데, 어떡해… 집에는 남자 옷이 없어서…."
그래도 옷이 없어서 이렇게 담요 한 장을 걸치고 있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들어 가지도 않는 여자 옷을 입고 있을 수는 없어서, 나로서는 이게 더 나은 듯했다.
"그래도 건조기로 금방 마르니까, 아까 하던 이야기나 계속 할까요?"
"아… 건조기가 있구나…."
이건 예상 밖이었다.
어떻게든 이 집에 붙어 있어야만 하는 상황에, 앞으로 두어시간 뒤면 쫓겨나게 생겼으니 내게는 조바심이라는 것이 생기고 있었다.
그렇다고 초면에, 그것도 여자친구의 집에서 무작정 묵고 간다는 말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을 때였다.
"아… 혹시, 이후에 바쁜 일이라도 있어요?"
"아, 아뇨! 전혀 없어요."
백수에 무늬만 재수생인 내게 일정이라는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굳이 다음 일정을 꼽자면, 장모님을 강간하는 거겠지만.
역시나 당사자는 꿈에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럼… 너무 늦기도 했고. 편하게 쉬다가 가도, 자고 가도 괜찮은데…."
"아, 엄마아!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도대체에!"
"왜 또 소리를 지르고 그러니?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장모님이 민망한 표정을 지으신다.
스스로가 주책이라고 느끼시는 모양이었지만, 아무래도 오랜만에 만난 딸과의 헤어짐이 아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내 핑계를 대며 딸을 붙잡고 계신 듯했고.
나는 이 여세를 몰아 편승하기로 했다.
"…그럴까요?"
"아, 오빠는 또 왜…?"
"아니, 어머니가 아쉬워 하시는 것 같아서…."
그리고 장모님께 점수 좀 따자고 신주희에게 귓속말을 했더니, 귀를 붉게 물들이며 어버버거린다.
"누, 누가… 자, 장모님이야아…!"
내 이런 호칭이 싫지 않은 듯했다.
괜히 내 어깨를 두들기며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고.
저기 멀리 보이는 신채희의 표정이 더욱 썩어들어가서, 그래서 내 마음은 한껏 간질간질하다.
"자, 자, 장모님!?"
그리고 두 쌍둥이와 똑같은 얼굴을 하신 장모님의 얼굴 또한 빨갛게 익어간다.
이내 동공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떨리기 시작하고.
숨이 가빠지시는지 커다란 젖가슴이 들썩거린다.
"네, 장모님."
"아이… 진짜아…."
옆에서 듣고만 있던 신주희가 더 민망해한다.
그리고 이는 장모님 또한 별반 다를 바가 없었고.
손으로 연신 부채질을 하고 계셨다.
.
.
.
"누, 누굽!! 우웁!!"
"…누구겠어요? 사위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