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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다 따먹음-40화 (40/242)

< 40화 > 내가 여자친구가 있으면서 너랑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여자친구가 있는 걸 알면서도 네가 그런 거잖아

"아, 잠깐만요. 아까 빨래를 널고 나가서, 정리만 조금 할게요."

"으, 응. 천천히 해."

먼저 집으로 들어가는 신주희.

그리고 밖에서 그걸 멍청하게 기다리는 나나 '여동생'이나 별뜻은 없었다.

거절하기에는 명분이 조금 애매해서, 그래서 그저 제안에 응했을 뿐이니까.

"…야아, 여길 또 왜 오는데!"

"그럼 어떡해? 그걸 거절해? 그리고 너도 가만히 있었잖아."

"…네가, 네가 거절할 줄 알았지이…."

조금 늦은 바람에 카페에 케이크는 모두 품절.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긴 신주희가 제 몫을 나누어 주겠다는 말에, 우리는 우물쭈물하다 여기까지 와버렸다.

"나는 네가 케이크가 먹고 싶은 줄 알았지."

"…여기서 먹고 싶겠냐!?"

이럴 거였으면 진작에 거절을 하지… 나는 으르렁대는 '여동생'을 쳐다보며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아! 죄송해요. 이제 들어오세요. 서현아, 들어와."

그리고 정리가 끝난 건지 신주희가 다시 우리를 부른다.

"실례할게."

"헤헤, 실례는 무슨요. 서현이 오빠잖아요. 편하게 들어오세요."

우리에게 시치미를 뚜욱- 떼지만, 나는 물론이고 '여동생'까지 모든 실상을 알고 있는 상태였다.

"…케이크만 얼른 먹고 갈게."

"에이, 편하게 있다가 가. 아니면 저녁도 같이 먹을까?"

신주희의 은근한 물음.

분명 눈은 '여동생'을 향하지만, 어째 내 얼굴이 다 뜨거웠다.

"…아니야. 저녁은 가족들이랑 먹기로 해서."

물론, 저런 약속을 한 적은 없었다.

"아… 그랬어? 아쉽다아… 그럼 나 혼자 먹어야겠네."

세상 무너지는 목소리로 아쉬움을 숨기지 않는다.

근데, 그게 '여동생'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임이 느껴져서 목구멍으로 마른침을 삼킨다.

"그럼 둘 다 손씻고 와요. 제가 준비하고 있을게요."

종종걸음으로 신주희가 먼저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나와 '여동생'은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는다.

"…너, 쓸데없는 짓 하기만 해. 케이크만 얼른 먹고 집에 가는 거다?"

"흐, 알았어. 너나 괜히 이상한 짓 하지 마."

"…누가 누구한테 할 말을…."

궁시렁궁시렁 손에 거품을 칠한다.

작디작은 손이 꼼지락대며 손가락 사이사이를 씻는다.

나도 괜히 그 손 사이로 내 손을 비집고 넣어서 같이 씻었다.

그리고 '여동생'의 곱지 않은 시선이 내게 향했지만, 나는 깔끔하게 무시한다.

"…자꾸 이상하게 만질래?"

"내가, 뭐."

"너, 자꾸 내 손, 막… 더듬고, 어?"

손을 조금 매만진 걸로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어지간히도 몸이 예민한지, 얼굴이 점점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박서현. 너, 너무 밝히는 거 아니야?"

"누, 누가! 누가 뭘 밝히는데!?"

"쉿. 밖에 다 들리겠다."

"흐, 흐으으… 이게 지금 누구 때문인데…."

씩씩거리며 내 탓을 하는 '여동생'은 손을 탈탈- 털어내더니, 곧장 밖으로 튀어나간다.

"야, 같이가."

"알아서 와!"

나는 아직도 아픈 건지 엉덩이를 씰룩이며 사라지는 그 뒷모습을 잠깐 훔쳐보다가, 나도 거품을 마저 헹궈내고는 밖으로 나왔다.

"오빠아! 빨리 와요!"

"아, 응. 갈게."

거실에 놓여진 작은 2인용 소파, 그리고 그 앞에 놓인 티 테이블에 어느새 둘이 모여 앉아 있었다.

"여기요! 여기!"

그리고 신주희가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팡팡- 두드린다.

왠지 '여동생'이 나를 노려보는 듯했다.

"아, 고마워."

나는 둘의 가운데지만, 신주희에게 좀 더 가까운 곳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게 되었다.

"얼른 드셔보세요. 여기 엄~청 맛있어요. 서현아, 너도 빨리 먹어봐."

신주희의 얼굴에는 우리의 반응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는데, 과연 케이크의 맛은 그 기대를 충족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맛있었다.

"오… 맛있네. 케이크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건 맛있어."

"진짜요? 그래도 여기는 별로 안 달면서 엄청 맛있지 않아요? 빵도 엄청 부드럽고, 맞죠?"

"으, 응. 맛있네. 생크림도 안 느끼해."

흔하게 보이는 생크림 딸기 케이크였다.

하지만, 맛있다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라서,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입맛에 맞았다.

"서현아, 맛있지?"

"…응. 맛있네."

"내가 그나마 운이 좋아서 마지막에 남은 걸 다 샀다니까? 또 1인당 3조각 까진데, 마침 갯수도 딱맞아서 다행이야."

신주희가 헤실헤실 웃으며 포크를 움직인다.

우리의 반응이 제법 마음에 드는 눈치였는데, 갑자기 몸을 움찔 떨고는 다시 테이블에 내려 놓았다.

"아, 커피 깜빡했다. 커피 가지고 올게요."

"혼자 들 수 있어?"

"그럼요!"

신주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부엌으로 간다.

나는 먹던 케이크를 입으로 가지고 가려는데, 옆구리에서 찌릿- 하고 전기가 통했다.

"아, 아흑! 왜?"

"……입 찢어지겠다?"

"내가? 내가 입이 왜 찢어져."

"…됐거든? 그냥 케이크나 처 드세요."

'여동생'이 갑작스레 심통을 부린다.

이유는 설마하니, 질투일까 싶었다.

"설마, 질투해?"

나는 거리낌 없이 물었다.

"…지랄하네. 빨리 처먹어. 그래야 갈 거 아니야."

한껏 낮아진 목소리에서 한기를 풀풀 풍긴다.

아무래도 질투가 맞는 듯하다.

"왜? 내가 내 여자친구랑 무슨 말도 못 해?"

"……."

방금 '여동생'의 어깨가 크게 떨렸다.

그리고 눈가를 파르르- 떨면서, 연신 표정 관리에 힘쓴다.

그럼에도 떨리는 눈과 몸, 또한 목소리가 떨리는 것 까지도 어떻게 하지 못한다.

"누, 누가 뭐라고 했어? 하! 그리고, 여, 여, 여자친구도 있으면서, 나, 나랑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그거 순서가 조금 이상하지 않아?"

"…뭐, 뭐가 이상한데."

"내가 여자친구가 있으면서 너랑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여자친구가 있는 걸 알면서도 네가 그런 거잖아. 그것도 내 여자친구가 네 친군데."

"개, 개, 개소리야아아!!"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른다.

얼굴은 펑- 하고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 혹시, 무슨 일에요? 둘이 싸워요?"

그리고 커피를 가지고 오던 신주희가 우리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다가왔다.

표정에는 무슨 일일까 하는 호기심 반에 걱정이 반이다.

"흐, 아니야. 괜찮아."

"…서현아, 너는 괜찮아?"

"흐, 흐으으… 하, 하아… 후우…."

커다란 소리를 내며 심호흡을 했다.

한눈에 봐도 정상은 아니었는데, 눈은 이미 살짝 돌아갔는지 맛이 조금 간 것 같았다.

"…내가 케이크 다 먹어버린다고 그, 조금 놀렸는데… 얘가 좀 흥분했네. 하, 하하…."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지만, 신주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금방 납득한다.

그만큼 케이크는 맛있었고, 나는 이에 한시름을 덜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여기, 커피랑 같이 드세요. 자, 서현이 너도."

"……고마워."

그리고 우리는 묵묵히 티타임을 가진다.

입에 케이크를 넣고 오물오물 씹어 삼키고.

또 커피로 목을 축이기를 반복했다.

"오빠, 혹시 이번에 개봉한 거 봤어요?"

"음… 어떤 거?"

그리고 틈틈히 신주희가 무어라 말을 걸면 대답을 해주고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그 시선, 몸의 방향, 질문이 모두 내게 향했고.

'여동생'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앉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 어. 아직 안 봤어."

"아… 그래요? 그렇구나 히힛… 아, 커피 한 잔 더 드릴까요?"

"아니야, 괜찮아. 다 먹었어."

이미 케이크는 싹싹- 비운지 오래였다.

지금은 그저 신주희의 말상대를 해주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조용한 '여동생'의 눈치를 살피며, 먼저 입을 연다.

"…우리 이제 가봐야겠다. 저녁 다 되가네."

"아… 진짜요? 아쉽다아아…."

'여동생'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사각에서, 신주희가 내 몸을 건드려 온다.

툭- 툭- 그렇게 마치 신호를 보내는 듯했다.

"야, 박서현. 일어나, 가자."

하지만, 나는 '여동생'을 찾았다.

아무래도 상태도 안 좋아 보이고, 실제로 밥 때가 되기도 했으니까.

"……."

그런데, 내 부름에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건지 묵묵부답, 그저 멍한 얼굴로… 그냥 그렇게 가만히 있는다.

"야, 박서현. 안 들려?"

"……아, 어?"

"못 들었어? 이제 집에 가자니까."

"…아, 응."

'여동생'은 넋이 나간 표정을 수습하며, 급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오늘 진짜 잘 먹었어. 다음에는 우리가 맛있는 거 사줄게."

"…진짜죠?! 그럼, 약속."

실망이 가득하던 신주희가 내 말 냉큼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옆에서 찌릿하고 째려보는 '여동생'의 매서운 눈빛이 느껴진다.

"무슨 약속씩이나. 시간 될 때 쟤한테 말 해. 알았지?"

"…넹. 아라써요…."

다시 조금 실망한 듯 보이는 신주희도 신경 쓰였지만, 그보다는 '여동생'이 먼저다.

"나오지 마. 갈게."

"네, 조심히 가세요. 박서현! 내일 봐!"

"…아, 응. 갈게. 잘먹었어."

기운이 없다는 티를 풀풀 풍기는 낮은 텐션에 나는 웃어야 할지, 아니면 울어야 할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타악-

육중한 현관문이 닫히고.

'여동생'은 발이 안 보일 정도로 빠르게 앞서 나간다.

"야, 야아…! 같이 가야지."

그렇게 손목을 낚아 채서 자리에 세웠더니, 내 손을 툭- 쳐낸다.

그리고 그 커다란 눈으로 나를 잔뜩 흘겨 보고 있었다.

"…그냥 신주희랑 살림이라도 차리지 그래?"

"갑자기 무슨 말이야, 그건 또."

"왜? 사이 좋던데. 누가 보면 결혼이라도 한 줄 알겠네."

평범했다고 생각한다.

그냥 대화를 조금 많이 나눈 정도? 그래서 '여동생'이 조금 소외되었다… 딱 이정도였다.

"…야. 진짜 질투하는 거야? 이걸로?"

"지랄하지 말라고 해따아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동생'의 고함이 터진다.

나는 급하게 '여동생'의 입을 틀어막았다.

"야, 여기가 지금 어디라고 그렇게 소리를 질러. 일단 가자."

"으읍! 웁!"

제법 거센 반항이었지만, 내게 비비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힘에 점점 몸이 앞으로 밀려 간다.

"자, 천천히, 천천히."

그리고 다치지 않게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 내려가고.

건물을 완전히 빠져 나와서 입을 막았던 손을 놓았다.

"흐으! 하아…."

"하여튼, 성질하고는."

"…네가 내 성질에 뭐 보태 준 거라도 있어?"

"근데, 왜 그렇게 화가 많이 났어? 신주희 때문에? 근데, 아니라며."

"…지랄. 주희가 무슨 상관이야."

홱-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먼저 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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