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콘돔을 사러 간 게 아니라, 만들러 갔어?
받아 든 봉투에 낑낑대는 '누나'가 나를 은근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아무리 봐도 대신 들어달라는 눈치라서 손을 슬쩍 내밀었더니, 냉큼 내게 짐을 넘긴다.
"어휴, 빨리 좀 받아주지."
"…말을 하든가."
"남자가 눈치가 없어, 눈치가."
싫지 않게 툴툴대는 '누나'가 나보다 반 걸음 정도 앞서 걸어간다.
그런데, 왔던 방향과는 정 반대 방향이었다.
"또 어디가."
"…네가 편의점 간다며. 코, 콘돔… 안 사? 그럼 그냥 집으로 가든가."
아까 '누나'의 대답에 너무 흥분해버렸다.
놓친 줄 알았던 물고기가 다시 제 발로 돌아와서, 정작 다른 중요한 것을 잊을 뻔했다.
"으, 응. 사야지."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누나' 옆에 곧장 따라 붙으며 슬쩍 팔짱을 낀다.
"…밖에서 이러지 말라고 했다."
'누나'는 또 툴툴대며 내게 붙들린 팔을 빼내려 끙끙대지만, 나는 더더욱 단단히 붙잡아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이게 어때서. 그냥 팔짱 좀 낀 거 가지고 엄청 뭐라고 하네. 누가 우리 보고 손가락질이라도 해?"
"…밖에서 이러는 건 좀… 부끄럽잖아."
"아까는 가슴도 만지게 해줬으면서."
"그, 그건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그랬고!"
확실히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기 시작하자 제법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딜 바삐 오가는 사람들과 가벼운 차림으로 산책하는 사람들이 주류였다.
개중에는 우리처럼 가벼운 스킨십을 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었는데, 대개 연인이나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흐, 너무 신경 쓰지 마. 우리 누군지 아무도 몰라."
나는 계속 버둥대는 '누나'를 그대로 뒤에서 살짝 껴안았다.
그리고 어깨에 목을 걸치고, 괜히 얼굴을 마주 비비며, 손으로 배를 감쌌고.
부드럽기만 하던 아랫배는 움찔 떨더니, 이내 탄탄한 복근을 만들어 낸다.
"…비, 비켜."
"냄새 좋다. 향수라도 뿌렸어?"
"누, 누가 마트를 가는데… 향수를 뿌려. 비키라니까?"
맞닿은 아래에 커다란 엉덩이의 탄력이 느껴지고, 긴장으로 작게 떨리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 엉덩이골 사이에 내 자지를 끼워 맞추며 허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퍼억-
"아흑!"
"비, 비키라고 할 때 비켰어야지!"
무방비한 상태에서 옆으로 날아오는 팔꿈치에 한 대 얻어 맞았다.
갈비뼈가 조금 시큰한 게 제법 욱신거린다.
"…그렇다고 이렇게 때려?"
"네, 네가 그, 밑에… 비, 비볐잖아 미친놈아아!"
밖에서 조용히 하라더니, 소리를 빼액- 지르고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주변에서 날아드는 시선에 괜히 더 머쓱해지며 다시 '누나'를 쫓는다.
"미안, 그럼 사람들 없는 곳으로 갈까?"
"…가기는 어딜 가. 빨리 편의점이나 갔다 와."
내게 손을 뻗는다.
그리고 낑낑대며 봉투를 빼앗다시피 가져가더니, 편의점 옆에 마련된 의자에 앉는다.
"혼자 가라고?"
"그럼 뭐, 너랑 나랑 코, 콘돔 쓸 거라고 소문이라도 내려고?"
"…흐, 알았어."
쑥스러워 하는 모습이 조금 귀여웠다.
나도 억지로 데리고 들어갈 필요성은 느끼지 못해서 혼자 편의점으로 걸음을 옮긴다.
"빨리 갔다 와."
"응."
내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아니, 그보다는 조금 들뜨며 흥분했다는 것이 더 옳았다.
"안녕하세요."
"네, 어서오세요."
그래서 괜히 먼저 인사를 건네며, 곧장 카운터로 갔다.
그리고 아래에 보이는 매대에서 껌과 사탕, 그리고 그 주변을 샅샅히 뒤진다.
여러 종류의 콤돔이 한눈에 들어왔다.
뭘 고를까 고민하다가, 써도 써도 한참은 부족할 게 너무나 당연해서, 그냥 종류별로 하나씩 주섬주섬 카운터에 올렸다.
"…아, 이걸 다 사시게요?"
"네, 주세요."
'누나'나 '여동생'이 뭘 좋아하고 싫어할지도 모르니까, 우선 손이 집히는 대로 모두 챙겼다.
그리고 차례로 찍히는 바코드에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아! 죄송한데, 잠시만요."
손에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급하게 나와서 방 어딘가에 있을 지갑이나 휴대폰을 그대로 두고 나왔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누나가 기다리는 곳으로 간다.
"…뭐야, 빈 손이네. 안 판대?"
"그, 미안한데… 내가 지갑을 안 가지고 와서…."
"하! 나더러, 지금 콘돔까지 사라는 거네?"
"…어차피 같이 쓸 거 아닌가. 내가 갚을게. 잠깐만 빌려줘."
"돈 빌리면서 되게 당당하다. 그리고 누가 같이 쓰기는 한댔나…."
말은 모질게 하지만,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선뜻 내밀었다.
"계산만 하고 나올게."
나는 카드를 받자마자 얼른 다시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바지에 눌린 아랫도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내가 계산을 마치고 나오자, '누나'는 무슨 콘돔에 10만 원이나 쓰냐며 내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
"다시 말하는데, 집이랑 밖에서 막 이상한 티 내고 하지 마. 알았어?"
"…알았다니까? 이러다가 귀에 딱지 앉겠다."
"또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막 갑자기 내 몸을 더듬거나 만지는 것도 금지라고 했다. 내가 된다고 할 때 만이야."
편의점부터 엘리베이터에 이르기까지 아주 잔소리를 쏟아낸다.
하면 안 되는 것이라며 주절주절 이것저것을 설명하는데, 요약하면 자신을 평소처럼 대하라는 말과 같았다.
"근데, 평소에 동생이 누나 가슴 좀 만질 수도 있지 않나."
"…개소리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세상에 있는 모든 남매들 사정을 누나가 어떻게 알아? 아마, 누나 가슴 만지는 애들 생각보다 훨씬 많을걸?"
띠잉?
"아! 됐다고! 그리고 분명히 말했다. 엄마랑 박서현 앞에서 나한테 허튼짓 하기만 해."
그렇게 으름장을 놓으며 틱틱대던 '누나'가 내 손에 들린 봉투를 빼앗더니, 내게 5분 정도 있다가 들어 오라고 한다.
어차피 집에 '여동생'밖에 없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물었지만, 매서운 눈으로 그렇게 하라길래 나는 알겠다고 했다.
"어휴…."
저 기 센 여자들을 언제쯤이면 내 아래에 깔아 뭉개고, 그리고 또 언제쯤이면 내가 죽으라고 했을 때 죽는 시늉까지 하게 만들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기약이 전혀 없었지만, 나는 어떻게든 그렇게 만들겠다고 다시 다짐을 해본다.
띠잉?
문앞에 청승맞게 서서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들리는 엘리베이터의 도착음에 이어 또각또각 울리는 구둣발 소리.
왠지 '엄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공교롭게도 정말 '엄마'가 나를 보고는 몸을 멈칫했다.
그리고 내 손에 들린 편의점 봉투를 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아들, 어디 갔다 왔니? 근데, 왜 안 들어가고, 아… 설마 엄마 차 들어오는 거 보고 기다린 거야?"
사실과 조금 달랐지만, 굳이 아니라고 정정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엄마'가 살짝 눈웃음을 보이는 게 보기에도 좋았으니까.
"응, 같이 들어가."
나는 먼저 '엄마'에게 다가가서는 손에 들린 장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옆에 서서 걸음을 함께 옮긴다.
"…안 그래도 되는데."
"다 왔는데, 뭐."
"근데, 편의점 갔다가 왔어? 필요한 거 있었으면 말을 하지."
"…아, 흐흐."
나는 콘돔이 가득 담긴 봉투를 뒤로 숨긴다.
"그냥… 갑자기 과자가 먹고 싶어서."
"그랬어? 군것질도 별로 안 좋아하더니, 별일이네."
툭툭-
'엄마'는 짐을 대신 들어줘서 고맙다며, 내 엉덩이를 토닥였다.
그런데, 그 손길이 조금 야릇해지며 조금씩 노골적으로 주물주물하더니, 기어코 내 앞까지 더듬기 시작한다.
"어, 엄마… 밖인데, 지금."
"…미, 미안. 혹시, 기분 나빴니?"
나쁘기는커녕 아랫도리가 움찔거린다.
단지 예상치 못한 행동에 조금 놀랐을 뿐이었다.
엄마는 내 반응에 도리어 놀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짓길래, 나는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흐, 아니? 하나도 안 나쁜데."
"히… 그래? 어머, 방금 여기 움찔했어."
저렇게 만져대는데, 움찔하지 않는 것이 더욱 이상하다.
그리고 나와의 스킨십을 익숙해하는 저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아니, 익숙하다 못해서 먼저 내 몸에 손대는 게 묘한 쾌감을 불러 일으킨다.
'엄마'와 아들간의 진한 스킨십에, 이 거리낌이 없는 '엄마'의 행동이, 지금도 내 자지를 조금씩 부풀게 만들었다.
"…엄마가 도와줄까?"
그리고 이번에도 내게 의중을 물었는데, 은근히도 아닌 아예 대놓고 바란다는 표정을 보인다.
"아들한테 따먹히고 싶은 게 아니라?"
"…아, 아니야아… 그냥, 도와 주고 싶어서… 그런 거 뿐이야아…."
시선이 공중에서 얽혀든다.
우리는 지금이 어딘지도 망각하고, 이내 서로의 몸이 얽혀드려던 순간.
덜컥? 하고 현관이 열려버린다.
순식간에 멀어지는 '엄마'의 손, 그리고 울려 퍼지는 '누나'의 목소리.
"야, 안 들어와? 도대체 언제 들어오, 아… 엄마도 왔었네."
"아, 응… 이제 딸, 몸은 좀 괜찮아? 부엌에 죽도 있는데…."
"…으, 응. 감기 기운이었나 봐. 괘, 괜찮아."
여자 둘과 남자 하나.
'엄마'와 '누나', 그리고 나 사이에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어, 얼른 들어와."
그리고 먼저 뒷걸음질을 치며 안으로 사라지는 '누나'와 그 뒤를 따라 들어가는 '엄마'를 보며 나는 여러모로 백년은 감수했다.
"어휴."
이 또한 스릴이라면 스릴인데, 누구에게 들키든 난리도 난리가 아닐 것이고.
아마 집이 뒤집혀도 서너 번은 뒤집히고도 남는다.
나는 아직도 빳빳한 아랫도리를 대충 오른쪽으로 허벅지에 눕혀 집으로 들어갔다.
"무, 무겁지. 얼른 줘."
"아… 응."
한껏 어색해진 엄마가 내 손에 들린 장바구니를 받아 부엌으로 간다.
그걸 뒤에서 지켜보던 누나는 설명을 바란다는 표정으로 내게 고개짓을 했다.
"…그냥, 기다리다가 만났지 뭐."
"하아… 큰일 날 뻔했네. 같이 있으면, 있다고 말을 했어야지."
"흐, 내가 더 놀랐거든?"
"그, 그리고 지금 거실에 박서현도 있으니까, 그거 빨리 들고 방에나 들어가."
다행히 바지가 부풀어 있던 것을 본 건 아니었는지, '누나'는 그 말을 남기고는 자신의 방으로 가는 듯했고.
나도 곧장 방으로 가려는데, 이번에는 거실 소파에 있던 '여동생'과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자신의 휴대폰을 손으로 가리키더니, 훌쩍 몸을 일으키고는 부엌으로 가버린다.
나는 예정대로 일단 방으로 갔다.
그리고 책상 가장 밑의 서랍에 콘돔 봉투를 그대로 쑤셔 박고, 휴대폰을 먼저 찾았다.
휴대폰에는 쌓인 톡들이 한 가득이었는데, 먼저 신주희가 보낸 톡은 모두 패스하고.
곧장 '여동생'의 톡을 확인했다.
(여동생)
(방금 언니도 같이 나간 거 맞지? 10:11)
(야ㅡㅡ 왜 대답을 안 하는데. 10:13)
(아 짜증나. 10:17)
(뭔데 안 옴… 왜 안 오냐고…. 10:29)
(왜 박수지 혼자 옴? 넌, 콘돔을 사러 간 게 아니라, 만들러 갔어? 10:32)
(ㅁㄴ아ㅣㄹ안이ㅏㄹ 병신아! 엄마도 왔잖아. 10:35)
실시간으로 이어지는 듯한 톡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보이는 내용은 이랬다.
(점심 약속 생겼다고 하고 밖으로 ㄱㄱ…. 1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