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16-1 폭풍전야
[이번편은 H씬이 없습니다]
"그리고보니 레베아 공작가의 외곽도 아니고, 내부에 깊게 잠입했던 이유가 뭐야?"
에이미의 세뇌가 끝나자 아세는 그녀에게 잠입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아세리아님. 그건 원래 잡자마자 물어보셔야 할 얘기 아닌가요..."
실비아의 말에 아세의 옆에있는 사야도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긍정했다.
포로를 잡았으면 그것부터 알아내야 정상이었는데,
아세는 유열 놀이에 빠져서 그런것조차 묻지않은체 며칠을 보냈던 것이다.
물론 하이그레 세뇌를 먼저시킨 부하 용병들에게 묻는것도 있있지만,
그녀들은 워낙에 무식하다고 할정도로 아는게 없었기에,
'에이미와 자신들은 레베아 공작가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해 움직였다.'
딱 이정도만 알고 있는 상태였다.
"하핫!.. 그, 그건 하이그레 세뇌가 안되면 거짓으로 말할지도 모르잖아!"
'말못해!.. 사실은 유열로 노는데 집중한탓에 까먹고 있었다고!..'
사실은 유열에 집중한탓에 물어볼 생각 자체를 잊어버리다가 이제야 떠올린 것이지만,
아세는 부끄러운 나머지 에이미에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생각해보니 아세리아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미세뇌자에게 심문을 해봤자,
하이그레 세뇌가 되지않으면 잔머리를 굴려서 거짓을 말하는게 당연하죠!"
"하아!... 너 도대체 그 유열이란걸 어떻게 했길래.. 네 전용 광신도를 만든거야?"
누가봐도 변명임이 뻔한 소리였지만, 그런 아세의 말에 찬성하면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에이미의 모습에 사야는 한숨을 쉬었다.
아세에게 완전세뇌 선언을 한 이후, 에이미는 하이그레 마왕을 제외하면,
아세의 광신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팬티스타킹 병사 다리우스의 명령조차도,
아세와 명령이 상반되면 따르지않거나 미뤄버릴정도로 아세에게 심취해버렸다.
"이 사실을 사소한거로 빨리 알아서 망정이지.. 급박할때가 되어서야 알았으면.."
머리가 아픈지 사야는 이마에 두손을 대고서 한숨을 쉬었다.
이걸 눈치챈 사건은 정말 사소하고도 어이없는 사건이었는데,
아세가 에이미에게 소니아등 하이그레 용병들을 데리고서 탈출하는듯한
연기를 할테니, 그녀에게 준비하라는 명령을 했고, 에이미는 그에 따라서
소니아등에게도 중요한 지시를 하며 일반 용병단의 옷을 하이그레 수영복위에
입어두고 적응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준비가 필요한 이유는 원래 푸른눈의 백랑 용병단은 비키니 아머에
가까운 용병단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하이그레 수영복을 가리기 위해서
어쩔수없이 몸을 다 가리는 가죽옷을 입을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비키니 아머에 가깝게 껴입고 지내지않던 야만족 용병들이.
그것도 하이그레 인간이 되어버린 현재에선 미세뇌자의 일반적일 옷을
하이그레 수영복 위에 껴입는것은 매우매우 불편하게 그지없는일이었고,
그러다보니 적응이 필요할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의 관리는 그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에이미에게 맡겨버린 상태였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팬티스타킹 병사 다리우스가 에이미에게 봉사를 받고 싶어했고,
보통의 하이그레 인간이라면 마리안느처럼 조금 튕기는 일은 있어도
결국은 하던일도 미뤄놓고 봉사를 하게 되는게 당연한 것이었으나,
에이미는 아세의 명령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다리우스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그를 설득해 돌려보냈던 것이다. 물론 그녀도 하이그레 인간이었기에,
그의 명령을 이행하지 못한 무례에 강한 죄책감을 느끼고
밤에 다리우스에게 직접 찾아가서 봉사하는것으로 자신의 무례를 사죄했다.
이렇게 보면 전혀 문제없어 보이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아무리 상황에 그랬다고는
해도 하이그레 인간이 같은 하이그레 인간의 명령을 위해서
팬티스타킹 병사의 명령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듣고
사야는 어이가 상실한 나머지 한숨을 쉴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례한 발언이지만.. 팬티스타킹 병사님께서 하신 명령을 이행하지 못하는
무례를 짓는 죄를 감수하고서라도 아세리아님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뭐.. 날 생각하는건 고맙지만, 우리 하이그레 인간은 위대하신 하이그레 마왕님과,
그분을 모시는 팬티스타킹 병사님께 충성해야 한다는게 우선임을 잊지는마.
물론.. 임기응변에 따라서는 명령을 조금.. 미룰수도 있고 말이야."
에이미의 말에 아세는 그녀를 지적했지만, 자신의 지적에 곧바로 풀죽어버리는
그녀를 보고서 말을 덧붙였다.
"아세리아 너!.."
"아니 뭐, 틀린말은 아니잖아 사야. 임기응변에 따라 행동하는건 좋은거라고?
뭐가 되든 세뇌활동을 하기위해서 필요해서 하는거라면,
하이그레 마왕님께는 충성의 의미로 문제없지않잖아?"
에이미를 옹호하는듯이 말을 덧붙이자, 사야는 아세를 노려보았으나,
아세의 논리에 사야는 어쩔수없이 백기를 들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하는 행동이 하이그레에 문제가 되는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나..
"그런데 뭐가 그렇게 불만인거야 사야."
그럼에도 여전히 불만은 아직 남아있는듯한 사야의 시선에
아세는 짜증을 내며 그녀에게 물었다.
"팬티스타킹 병사님을 해친 전적이 있는 너한테 물들어버린 애니까 그렇지."
"그, 그때는 어쩔수없었던 일이야!"
얼마전에 사야도 아세가 팬티스타킹 병사 가렌을 죽였던 이야기를
마리안느에게서 들어버린 것이다. 물론 마리안느 딴에는
다시는 아세가 엇나가지 말라는 의미에서 그녀를 부탁하라는 의미로 얘기한 것이지만,
'아세리아 한명만으로도 언제 튈지 모르는데..'
그나마 저 유열이라는거에 협조하니 그것외에는 하이그레 인간으로써
문제없이 행동하는 아세였지만, 에이미까지 붙어버리면 어찌될지 알수가 없었다.
"잠깐, 아세리아님이 팬티스타킹 병사님을 해치다니요?"
"그, 그러니까 말이지 그건.."
실비아의 물음에 아세는 변명하듯이 팬티스타킹 병사 가렌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다.
"아세리아 아가씨!.. 어떻께 그런 끔찍한 짓을!.."
"어, 어쩔수없었던 일이라고 실비아!.."
마치 하이그레 인간이 미세뇌자를 보듯이 차가운 실비아의 시선을 받은
아세는 움츠러들수밖에 없었다.
방안의 모두가 자신을 죄인처럼 쳐다보는듯한 시선에 기가죽을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으으.. 이런 반응이라니!..
그나마 아는사람이 엄마랑 사야 실비아 정도뿐이라 다행이려나..'
일단 사실을 알고있는 이들에게서 비밀이라도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던
아세였으나. 그때..
"아세리아님은 당연한일을 했었던것뿐 입니다!"
"엥?.."
갑작스럽게 자신을 변호하는 에이미의 모습에 아세는 놀랄수밖에 없었다.
아세 본인조차도 하이그레 인간으로써 정말 큰죄라고 생각하고 있는데다
모두가 자신을 차가운 시선으로 볼정도였는데
유일하게 에이미 그녀만 자신의 편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아세리아님이 팬티스타킹 병사 가렌님의 명령을 그대로 따랐다면,
게릴라에 가까울정도로 괴멸되었던 하이그레 집단은 이렇게 모일일도 없이
완전히 와해되어 구성되지도 못했을 것이고, 이것은 지금 저희가 모시고 계신
팬티스타킹 병사 다리우스님같은 다른 팬티스타킹 병사님과의 죽음과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건.. 궤변이야!"
"그것만이 아닙니다. 팬티스타킹 병사 가렌님, 아니 가렌은 이 곳을
정복하시려던 하이그레 마왕님의 의지를 꺽는것과 같은 대역죄를 저질렀습니다!"
"가렌이라니! 팬티스타킹 병사에게 존칭을 붙이지 않는 하이그레 인간이라면
하극상을 저지르는거랑 같은 존재야!"
사야는 화가났는지 지팡이를 에이미의 머리에 겨누었다.
그녀가 그대로 마법을 영창하면 에이미는 최소 중상 혹은 죽을수도 있었음에도
에이미는 자신은 잘못한게 없다는듯이 사야를 뚫어지게 보면서 대답했다.
사야뿐만이 아니라 실비아도 얼굴이 붉어져서 당장에 검을 뽑으려는 기세였다.
"확실히 저희 하이그레 인간은 팬티스타킹 병사님께 존칭을 붙여야하죠!
하지만 이 대륙을 하이그레 인간으로 세뇌정복하겠다는 하이그레 마왕님의 의지를
꺽는거 자체야 말로 정말 큰 대역죄일것이고! 그런 대역죄인에게는
존칭을 붙이는거 자체가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말해봐. 개소리라고 판단되면 머리에 한방 쏴줄거니까"
화가나서 위협은 하고 있지만 일단은 들어보자 같은 느낌으로
사야의 분위기가 바뀌자 에이미는 방안의 이들에게 설명을 개시했다.
"만약 아세리아님이 팬티스타킹 병사.. 아니, 반역자 가렌의 말을 그대로 들었다면,
여러분들이 지금 이렇게 하이그레 인간이 되어서 위대하신 하이그레 마왕님께
충성의 마음을 담아서 하이그레를 바칠수 있었을까요?"
"앗!.."
"그건..."
에이미의 말에 사야와 실비아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두분도 아세리아님께서 하이그레 인간으로 세뇌해주셨지 않습니까?
당시 아세리아님께 완전세뇌된 하이그레 인간이 누가 있었나요 실비아씨?"
"아니 저, 저도 그때는 재대로 세뇌되지 않아서.."
확실히 실비아는 할말이 없었다. 지금이야 하이그레 인간으로 완전세뇌되어서
하이그레 마왕과 팬티스타킹 병사 다리우스, 그리고 자신을 세뇌해준
아세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지만, 세뇌되기 직전엔 아세의 행위를
전략여왕 아르체에게 보고까지 하려고 했었던 것이다.
"솔직히 얘기를 들어보니 아세리아님 혼자서 세뇌활동을 시작해서
이렇게까지 하이그레 인간이 늘어났다고 생각하면,
그때 반역자 가렌의 말을 들었으면 어떻게 됐을지는 안봐도
아세리아님을 보좌하는 유능한 두분이라면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멋, 멋져!..'
모두가 외면할때 자신편을 들어준것도 모라자서,
자신을 차가운 시선으로 보던 사야와 실비아까지 설득하는걸 보여주자
아세는 에이미에게 정말로 감동할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아세리아님은 위대하신 하이그레 마왕님을 위해서,
하이그레 인간으로써 해선 안되는 행위임을 알면서도 솔선수범해서
마왕님의 뜻을 위해 반역자를 처단하셨다는 결단을 내리신거죠!"
"그거야.. 맞는말이긴하지만. 알았어. 대신에 반드시 네가 관리하는거 잊지마."
"확실히 팬티스타킹 병사 가렌님.. 아니, 반역자 가렌은..
하이그레를 위해 행동하려는듯한 느낌을 없었죠."
실비아와 사야는 그려려니 했지만, 세밀하게 생각해보면
에이미의 논리에는 치명적인 한가지 헛점이 있었다
아무리 가렌이 반역자라는 논리가 맞아도 그걸 노예라고 할수있는 하이그레 인간이
'직접 팬티스타킹 병사를 처단하는게 옳은가?' 라는 헛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교모하게 당연한 행동이라며 밑밥을 깔아서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 문제를 계속 걸고 넘어진다면 '만일 하이그레에 해악이 될 경우
팬티스타킹 병사라고해도 하이그레 인간이 즉결 처분할 수 있다'라는
선례가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이 문제를 특수한 경우로 생각하고 넘기는게 낫다고 판단했다.
"여하튼 그건 그렇고 얘기가 세어버렸네. 에이미 네가 잠입한 목적은 뭐야?"
"레베아 공작가.. 아니, 여러분들이 하이그레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기전까진 이곳이 조용했던 이유를 알지 못했으니까요."
"응?.. 그게 무슨소리야?"
아세의 물음에 사야와 실비아도 에이미에게 주목했다.
"라나 왕녀측에서 여러가지 수단으로 레베아 공작가... 아니,
저희 하이그레를 무너뜨리려고 했는데, 여기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단 말이죠."
"라나 그년이 뭘 하려고 했었길래?"
조용히 있었던 이유는 팬티스타킹 병사 다리우스에게 봉사를 한다고
하이그레 인간들이 라나쪽에 시선을 두지 않았던 것이지만,
라나가 무언가를 꾸몄다는 말에 아세도 흥미를 가지고 에이미에게 물었다.
"저도 들은게 아니라서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4가지에서 5가지 정도
무슨 수단을 쓸지 어느정도 추측을 하고 있었습니다."
"추측이라도 좋아. 푸른눈의 백랑 용병단을 대륙2위 용병단으로 만든
머리를 가진 부단장씨의 추측이라면 믿어볼 만하지."
"아세리아님!.."
자신의 추측을 믿어볼만하다는 아세의 말에 에이미는 눈가에 눈물이 맺힐정도로
감동하고 있었다.
'얘 좀 오버가 심하긴 하네..'
"그 추측이나 한번 말해봐."
"네 알겠습니다 아세리아님!.. 라나 왕녀가 저희 하이그레에 하려고 했던 수작은..."
첫번째는 레베아 공작가의 영역이나 최근에 점령된 영지등에 사람을 보내서
유언비어를 퍼트리는것이었다. 확실히 이러나 저러나 정통적인 왕가의 계승자는
라나였고, 아세는 저쪽입장에서 보면 반역자였기에 레베아 공작가의 일원들이나
혹은 백성들에게 불안감을 퍼트려서 흔들어볼 계획이었다. 그러나..
"어.. 노린건 아니었지만 마을사람들을 하이그레 세뇌시킨덕에 의미없겠네."
하이그레 인간에게 그런식의 유언비어가 먹힐리가 없었기에 당연히 실패.
물론 라나 왕녀측에게 그 실패소식이 알려지기 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이었다.
두번째는 왕국내의 모든 상단을 통제해서 레베아 공작가로 들어가는 물류를 통제.
물자 자체를 막아서 레베아 공작가가 알아서 무너지도록 하는것이었다.
"어.. 그것도 샤리 당주를 세뇌한 시점에서 끝이잖아."
물자가 부족할일이 있을리가 없었다. 여차하면 샤리를 움직이면 그만이었으니까.
세번째는 군대를 움직여서 지속적으로 전선에서 움직이며,
용병단을 이용해서 작은 마을을 약탈하면서 흔들어볼 계획이었겠으나..
"어디까지나 계획이었지 하진 않았겠지?"
"네. 초인 2분이 전선에서 대기중인 이상은 함부러 움직이면 위험하니까요."
네번째. 이게 사실상 제일 핵심적인 계획으로 이렇게 흔들어버린 이후에
몰래 사신을 보내서 '반역자 아세리아를 토벌하는데 힘을 보탠다면
모든 죄를 용서한다는 옥새가 찍힌 공문을 보낸다'였었다.
앞의 계획으로 레베아 공작가측을 흔들어버린 상황에서
이렇게 갑자기 귀족들이 아세의 뒤통수를 친다면 그것은 꽤 위협적이었다.
"나쁘지않은 정통적인 계획이지만.."
"그녀들이 하이그레 인간인 시점에서 그 계획은 아웃인데?.."
하이그레 인간에게 미세뇌자의 분열이나 회유가 먹힐리가 없었기에 당연히 실패.
아세는 노린건 아니었지만, 결과론적으로 라나의 계획이 다 차단되어 버렸기에,
라나측에서 계획을 세우고 공작을 했었음에도,
아세가 아무런 변화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에이미 네 생각에 이 모든 계획이 막힌 라나는 어떻게 할 것 같아?"
"아마도.. 카린측에 초인 2명을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점에서 볼때..
그녀는 최후의 수단으로 회전을 준비하고 있을겁니다."
"그렇다면 그 시기는 언제쯤이 될까요 에이미 기사님?"
에이미의 추측에 사야는 그녀를 인정한듯 그녀에게 굳이 '기사' 라는 호칭을
붙여주면서 물어보았다.
"아마 한달전후쯤으로 추측됩니다."
"한달이라.. 그렇다면 좋은 생각이 있네요. 후훗!.."
"좋은생각?!.."
사야의 좋은생각이라는 말에 유열을 상상하던 아세였으나,
"유열이란거 아니니까 가만히 있어."
"힝..."
곧바로 들어온 태클에 그녀는 시무룩해질수밖에 없었다.
* * * * * * *
"라나 왕녀님을 뵈어요."
드레스의 양쪽 치마를 살짝 들어올린뒤 허리를 살며시 굽히면서
예의를 차리고 하는 루비아의 인사에 라나의 얼굴은 흡족한듯 미소를 지었다.
"오호호홋!.. 시스리아 왕국에 잘 오셨어요 루비아 양"
물론 그녀가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예의를 차리고 있는것은
라나 역시도 알고 있었지만, 대륙 최고 세력의 2인자가 자신에게
허리를 굽힌다는거 자체는 보기좋은 광경이었다.
"옆에 계신 두분은?.."
루비아에게 환영 인사를 한 라나는 루비아의 뒤에 있는 두사람에게 시선을 향했다.
덩치 큰 거구의 영감이라고 할수있는 수염난 남성과 철가면을 써서
얼굴을 다 가린체 레그 슈트를 입은 여성이었다.
"한분은 제 할아버지인 용병왕 벤. 다른 한명은 아세리아를
상대하기 위해 데리고온 저희측에 초인이죠."
"으흠.. 용병왕은 저도 알아요. 하지만.. 다른 한분은 철가면을 써서 누군지.."
용병왕이야 이름을 들어봤고 최근 노환으로 인해 치매증세가 살짝 있는거 빼면,
그 실력은 인증된 초인이라고 할수 있겠지만, 다른 한명은 철가면을 쓴데다,
레그 슈트를 입었기에 여성이라는것 외에 누군지 전혀 할수가 없었다.
"후후훗.. 걱정마시죠. 그녀는 아세리아를 이긴적이.. 아니 박살낸적이 있으니까요."
"그런 초인이라면 제가 이름을 들어본적이 없을리가.. 아!.."
루비아의 미소에 라나는 머릿속에서 '그 여자'를 떠올릴수 있었다.
"오호호홋!.. 저희측에서 내민 조건이 정말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네요.
아세리아를 이길수있는 확실한 패이자.. 그쪽 최고의 무장을 여기로 보내주시다니."
"원래라면 그녀도 자리를 비워서는 안되지만, 지금은 근신중이니까.
제 임의로 이곳으로 데려올수 있었죠."
철가면의 여성이 누군지 알게되자 라나는 웃을수밖에 없었다.
'카린쪽에서 정말 원하는 조건일거라 추측해서 한번 제의하긴 했지만,
초인급의 2명정도나 지원받을줄 알았는데 '그녀'가 왔다니. 후후훗!..
이거 정말 마음에 드는 상황이네요. 카린 본인을 못 부르는 이상.
올수있는 최고의 지원군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죠!'
"이정도면 저희가 해드릴수있는 최고의 성의를 보였다고 생각하네요 라나 왕녀님."
"네. 아주아주 만족스럽네요 오호호홋!.."
물론 내전 자체가 좋지않았기에, 가능하면 전투없이 자신의 계책으로
아세가 자멸했으면 제일 이상적이겠지만, 혹여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서
카린쪽에 초인2명을 빌려받은 것이었다. 자신의 계책이 성공해서
레베아 공작가가 몰락한다고 해도, 라나 자신이 아는 아세의 성격이면
같이죽자는식으로 전쟁을 걸어올수 있었기에 혹시 모를 안전책으로 준비를 한 것이다.
"이번 내전은 저희의 완벽한 승리겠네요. 오호호홋!.."
초인의 숫자가 적다는 불안한 요소도 사라졌기에,
라나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서 부채를 입가에 가져가며 웃고 있었다.
* * * * * * *
한달후.. 라나는 구겨져있는 표정으로 마차에서 나와서 내려오고 있었다.
"으으!.. 정말 짜증나기 그지없어요! 이런 더러운곳을 직접와야한다니!.."
"죄송합니다 왕녀님. 하지만.. 왕녀님께서 계셔야 군의 사기가 오르므로.."
"그정도는 말안해도 잘 알고있어요 지타경!"
라나의 짜증을 받아주고 있는 근위기사 단장인 지타는 죽을맛이었다.
뭐 평소에도 그녀의 히스테리가 좀 심하긴 했지만,
오늘은 유독 더욱 심했기 때문이다.
"믿을수 없어요!.. 어떻게 모든 계책이 물거품으로 돌아갈수있죠?!..
아세리아를 신이 돕는것도 아니고!.."
오늘 그녀의 히스테리가 유독 심한 이유는 이것이었다.
한달동안 실행한 모든 계책이 물거품으로 돌아간데다,
가능하면 진짜 피하고 싶은 내전을 결국 치르게 될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호화로운 궁전에서 드레스를 입고 지내다,
비록 경갑옷이지만 갑옷을 걸치고 군막에서 지낸다는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한번도 겪어본적 없는 환경이었기에 짜증이 날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수 없잖습니까 왕녀님."
"하아!.. 가능하면 내전은 피하고 싶었어요. 알아서 자멸하게 만들수있다면
그거야말로 최선이었는데 말이죠. 오랫기간 약화되어온 레베아 공작가 였기에
그 멍청하고 바보중의 바보인 아세리아라면 충분히 자멸할거라 여겼었는데.."
지타의 말에 라나는 한숨을 쉬었다. 물론 그녀의 말대로 이미 지나간 일이라
어쩔수없이 회전을 치르기위해 직접오긴 했지만, 이렇게 내전으로 싸우는거 자체가
나중을 보면 제살 갉아먹기라는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안심하시죠 라나 왕녀님."
"걱정하지는 않아요 클레어 장군. 이정도의 전력차로 패배한다면
머리위에 있는게 모자걸이라고 의심해봐야 할테니까요."
자신에게 경례를 하며 다가오는 클레어에게 라나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르며 말했다.
동원한 기사만 1천명이 넘는데다, 병력수는 10만이 넘어가는 대군이었다.
물론 보급대와 예비대를 합친 숫자긴 했으나, 그렇다고해도
훈련받은 정예병만 5만이었기에 이정도면 확실히 믿을만한 전력이었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마탑과 연계하여 마법사들까지 참전시킨데다,
자신측의 초인이 적다는걸 감안해서 카린측에 초인 2명을 빌려오기도 했다.
"그나저나 옆에 계신분은 누구죠?"
나름 자신만만한 라나의 눈에 클레어의 옆에 서있는
망토와 후드로 얼굴을 가린 누군가의 존재가 보였다.
정체를 알수없었기에 그녀는 곧바로 클레어에게 그 사람에 대해 물었다.
"제 동생 시라노입니다."
"으흠?.. 제가 알던 시라노경보다 왠지 체격이 작은것 같은.."
자신이 알던 시라노의 키는 180cm쯤 되는 장신의 남성기사였다.
하지만 눈앞에 얼굴과 몸을 가린 저 사람은 아무리봐도 체격상 여자에 가까웠다.
"최근 폐관수련의 성공으로 성취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곳의 회전에서 그 성과를 보여드리게 될테니 걱정하지 말라더군요."
"흠.. 뭐 기사들의 무에 대해서는 제가 아는게 없으니 일리가 있는 말이군요.
클레어 당신이 보증한다면 정말 시라노경이겠죠."
아무말도 없이 고개만 까딱거리는 저 사람의 정체가 라나는 조금 불안했지만,
자신의 측근이자, 전쟁쪽에선 아군측의 제일 전문가인 클레어의 보증에
쓸데없는 기우라고 생각하고서 불안한 마음을 애써 떨쳐버렸다.
"자, 왕녀님? 저희에게도 작전 계획을 알려주시죠."
"좋아요 루비아 양. 클레어경. 이분들에게도 작전을 알려주세요."
라나의 명령에 클레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도를 가리켰다.
"넵 왕녀님. 저희는 좌군, 중군, 우군으로 해서 공격할 계획입니다."
"굳이 3개로 쪼갠건.. 아세리아 그 년의 초인이 3명이라 그런건가요?"
"네. 어차피 우리가 유리하긴 하지만, 변수가 되는 초인 숫자도
이제는 저희가 더 많은 마당이니.. 가능하면 피해없이 이겨야 하니까요.."
클레어의 말에 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녀의 생각은
이 전투는 이기는건 확정적이니 어떻게하면 피해를 줄이냐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제가 굳이 이렇게 진형을 짠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응?.."
"아세리아에게 항복했었던 케이트 백작이 저희에게 보내준
레베아 공작가측의 작전명령서 입니다."
코트안의 주머니에서 서류를 꺼낸 클레어는 그것을 나무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그거 믿을수 있는건가요?"
"제가 확인한바론 그녀는 아세리아의 강요에 의해 항복했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고 하니 믿을수 있을것 같습니다."
"꺄하하핫!.. 역시 레베아의 원숭이는 한심하기 그지없군요!
준비가 저렇게 허술해서야. 시시한 전투가 되겠어요!"
레베아 공작가쪽에서 작전이 누설되었다는 클레어의 말에
라나는 자신이 직접 전장으로 나와서 나빠진 기분이 나아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어차피 이길게 뻔하면 기분좋게 즐겨야지.
게다가 그 재수없고 짜증나는 아세리아년의 몰락을 두 눈으로 볼수있다면
조금 불편하다해도 특등석이나 나름없으니까 말이야!'
"그리고보니.. 이번에는 레그 슈트는 안입으셨네요 클레어경."
"아, 어차피 레그 슈트는 하이그레 침략군과 싸우기 위한 방어구입니다.
미세뇌.. 아니, 보통의 사람과 싸울때 굳이 중요한 방어구가 아니죠."
"으흠. 그렇군요. 좋아요. 자, 전군의 통솔권을 드릴테니
아세리아를 끝장내고 오도록 하세요 클레어경!"
라나의 명령에 클레어는 무릎을 굽히고 한쪽팔을 굽혀서 예를 취했다.
그리고서 그녀가 건네는 보검을 받아서 레베아 공작가쪽의 군세로 겨누었다.
"전군 진격하라!.."
그렇게 시스리아 왕국의 마도프 평원에서 왕가측과 레베아 공작가의
수만 대군의 회전이 그 개시를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