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13-4 불어오는 각자의 바람들
아세가 지방 영주들과 그 가족들을 세뇌하는 그시각..
시스리아 왕국의 공주이자, 1왕위 계승자인 라나는 보고를 받고서 놀라고 말았다.
"제가 아세리아 그 원숭이에게 속았다는 말이에요?!.."
"속았다는게 아니라.. 아세리아가 잔머리를 굴린것뿐입니다. 크억!.."
보고를 하는 기사는 애써 그녀의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라나는 그의 머리를 발로 차버렸다.
"잔머리든 뭐든, 제가 한방먹고 들어간것은 바뀌지않아요!
그 원숭이따위에게 먼저 쳐맞고 시작하다니 이런 굴욕이!.."
"크아아악!.. 으아아아아아!.."
라나는 자신에게 맞아 머리가 땅에 닿은 기사의 뒤통수에
자신의 구두굽으로 밟으면서 괜한 화풀이를 했다.
구두굽에 뒤통수가 밟혀버린 기사는 고통으로인해 비명을 질렀다.
"시끄러워!.. 잘한게 뭐가 있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어!.."
"거기까지 하세요 공주님."
비명소리가 거슬린 나머지 더욱 강하게 기사의 머리를 밟아대던
라나는 자신을 말리는 여린 목소리에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지타경. 왜 말리는거지?"
"그의 잘못은 딱히없어요 공주님. 공주님은 아세리아에게 당한게 아니에요."
시스리아 왕국의 근위기사단장인 드워프 기사인 지타가 그녀를 말린 것이다.
"소문에 따르면 아세리아가 초인 2명을 영입하면서 마법사도 영입했다는데,
아마도 그 마법사의 생각이지 아세리아의 생각일리가 없어요."
"흐음.. 그렇게 들으니 일리가 있네요. 아세리아 그녀석의 머리로는
이런 속임수를 생각하지 않을게 뻔하니까.."
지타의 말에 라나는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기사의 머리위에서 발을 치웠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당장 급하게 돌아갈 필요가 없겠네요.
데보라가 레베아 공작가의 행정 문서를 모두 태우고 창고까지 털었다니까
아마 정비하는데 시간을 쓸수밖에 없어요."
"네. 아마 인구조사부터 시작해서 해야할게 엄청 많을테니까.
지금 상황에서 더는 함부러 공격하지는 못하겠죠."
레베아 공작가의 인구를 기록한 문서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 문서가 타버린데다,
공작가의 창고까지 털린 마당에 라나는 자신측에 붙은 귀족들에 대한
공격은 한동안 없을것이라고 확신했다.
창고가 털린 마당이라 당장에 세금을 걷어야하는데,
그 세금을 걷을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문서소실로 인해 알수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오히려 저희가 역공을 할까요?"
"마음같아선 그러고싶지만.. 아세리아쪽에 초인 2명이 붙어서
그년을 포함해서 총 3명이 된이상.. 함부러 공격할수는 없어요."
자신측의 초인은 시라노 한명이었다. 군부의 여장군인 클레어야
복귀 명령을 보내면 합류해서 2명까지는 어찌어찌 채울수 있겠지만,
남은 1명의 초인이 변수였기에 라나는 신중할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부분은 이미 카린 군의 루비아와 얘기를 끝냈어요.
루비아쪽에서 준비가 끝나면 그때 재대로 반격할 생각이에요."
라나는 마음같아서 레베아 공작가에 반역죄를 씌어버리고 싶었지만,
자신의 어머니가 허락하지 않을게 뻔했기에 카린과 손을 잡은 것이었다.
"그런데 공주님은 어떻게 카린의 비서라고 할수있는 루비아를 설득하셨죠?
많은 기사들과 귀족들이 그방법에 대해서 궁금해했어요. 저도 그렇고요."
"딱히 어렵지않았어요 그부분은.. 카린은 단일세력으로 대륙에서 최강이지만,
아쉽게도 주변에 동맹이나 협력자가 거의 없는편이죠.
대륙연합이 결성되지않았다면, 그녀는 지금도 혼자 대륙의 귀족연합들을 상대로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을게 뻔해요."
라나의 말대로였다. 카린은 단일세력으로는 대륙최강이지만,
상당수의 귀족들에게 미움받고 있었다.
만약 하이그레 침략군의 등장으로 대륙연합이 결성되지 않았다면,
지금도 혼자서 고립되어서 대륙의 귀족연합과 싸우고 있었을게 뻔했다.
그녀의 승전에 매료된 몇몇 일부 귀족들은 그녀편을 들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귀족들은 카린을 하이그레 침략군을 잡는 '사냥개'정도로만
여기고 있는게 그녀의 실상이었다.
"하지만 하이그레 침략군은 사실상 이제 잔당만 남아버린 상태죠.
이번에 카린이 패전을 하긴했지만, 그렇게 순순이 끝날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후일을 생각해야하죠.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크게 필요한것.
바로 그것을 약속한것뿐이에요."
"그것은 대륙연합에서의 정치적인 지지나, 혹은 재물등인가요?.."
지타의 물음에 라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돌렸다.
"아뇨. 바로 동맹군이죠. 아까도 말했지만, 그녀는 홀로 외롭게 대륙의 귀족들과
맞서 싸우던 사람이에요.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것은
바로 동맹관계가 될 세력이 필요하죠. 설사 그게 일시적이라고 해도 말이에요."
"대단해요 공주님. 그 카린의 힘을 빌리는데
겨우 일시적인 동맹관계를 약속받은것 뿐이라니.."
지타는 감탄했다. 라나는 카린의 힘을 빌리는데
재물이나 이권을 준것이 아니라, 겨우 일시적인 동맹관계를 약속한것 뿐이었다.
그것은 카린측에는 정말 필요한 것이었으나, 반대로 라나에게는
그저 적당히 동맹인척 지지하면서 생색만 내면 그만인 것이었기에,
사실상 거의 리스크 없이 카린의 힘을 빌린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족들에게 미움받는 카린에게 동맹을 표명했다가..
우리측 귀족들이 불편해하면 문제가 생길텐데요?"
"그것도 딱히 어려울건 없죠. 어디까지나 일시적 동맹관계라고 확언한뒤에,
카린의 힘을 빌려서 레베아 공작가를 멸하기만 한다면,
그 레베아 공작가를 찢어서 그들에게 적당히 나눠주면 알아서 입 다물거예요."
'역시.. 공주님은 조금 욱하는 성격에다,
아세리아만 엮이면 분노와 광기를 보이긴 하지만..
그것만 빼면 나름 괜찮은 군주가 맞아.'
지타는 겉보기엔 마치 어린 로리 소녀처럼 보여도, 드워프라는 특징으로 인해서.
동안처럼 보이는 외모에 비해 나이가 많았다. 사실 그녀의 나이는 80세가 넘었다.
그렇게 연륜이 나름 있는 그녀의 눈에는 라나는 왕족치고는 꽤나 총명한 편이었고,
인재기용이나 정치적인 안목등에서도 나름 훌륭한 왕위계승자였다.
애초에 그녀의 오빠들이 2명있었던 상황에서도 근위기사 단원이었던
자신을 근위기사 단장으로 승진시키고, 군부의 여장군 클레어를 지원하는등,
웰링턴 후작가와 샤를마뉴 후작가와의 관계를 긴밀히하여
영향력을 올린덕에, 오빠들을 제쳐버리고서
1왕위계승자로 자리잡을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카린과의 협상에서도 라나측은 큰 리스크 없이 카린의 힘을 빌릴수 있었다.
이정도면 사실상 대성공적인 협상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루비아도 바가지를 쓰지않으려고 했지만, 자신들에게 가장 필요한것을
라나가 제의한시점에,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해버린 라나에게
어쩔수없이 이끌려갈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 카린쪽에서 지원이 오기전까지는 일단은 저희도 준비기간이 필요하겠네요."
"아쉽지만 그렇게 되죠. 초인이라는 변수가 있는한은 함부러 싸울수 없으니까요.
다만 레베아 공작가에 대한 여론조작을 하고, 동시에 레베아 공작가와
연관이 있는 모든 상단을 집중적으로 탄압하라고 전해주세요."
라나의 말에 지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령을 끝낸 그녀는 다시 마차에 올라탔다.
"마음같아서는 하이그레 침략군과 협력중이라는 누명을 씌어버리고 싶지만,
어머니가 허락해줄지는 의문이네요. 그렇게되면 정말 이상적인데..."
레베아 공작가가 하이그레 침략군에 협력했다는 누명만 씌운다면,
카린에게 힘을 빌리지않고도 아세를 완벽하게 몰아붙일수 있었다.
하지만 누명도 어느정도 조금의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근거로 삼을것이 아예 없었다.
"아니면 하이그레 침략군과 엮을만한 조금의 근거라도 있다면 좋을텐데 말이에요."
여왕인 자신의 어머니가 허락해준다면 무근거라해도 왕가의 이름으로 발표해서
레베아 공작가를 하이그레 침략군과 엮여버릴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1왕위계승자였고, 아무리 실권을 가지고 있다한들
여왕인 어머니를 함부러 거스를수는 없었다.
"쳇. 차라리 아세리아가 하이그레 인간이었으면 좋겠네요.
그렇다면 레베아 공작가를 완전히 고립시켜서 끝장낼수있을텐데 말이에요!"
아이러니 하게도 라나가 하이그레 침략군과 엮으려는 아세는
이미 하이그레 인간이었다. 물론 그녀가 이 사실을 지금 알아낼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 * * * * * *
"휴우.. 지방 영주들의 세뇌와, 이번에 영주들을 대신해서 당주에 오른
하이그레 인간들 덕분에 어찌어찌 재정문제는 해결될것 같아."
사야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인구조사를 한 문서가 타버린탓에 세금을 걷을수가 없었는데,
레베아 공작가의 창고도 털려버려서 재정난을 겪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아세가 세뇌한 지방 영주들과,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지방 영주들을 대신해서 당주직에 오른 영애들을 재빨리 자신들의 영지로 보내서
그녀들에게 재산을 내어달라고 한 것이다.
역시나 귀족이 아니랄까봐, 뒷 주머니를 차고있는게 생각보다 많았다.
원래라면 절대 아세에게 주지않았겠지만, 그녀들은 이제 하이그레 인간.
즉 물욕에는 비교적 상당히 소탈해져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미세뇌자 시절에 뒷 주머니로 모아둔 재산들은
레베아 공작가로 보냈고, 그덕분에 레베아 공작가는
어찌어찌 세금을 걷지않고서 재정난을 해결할수 있었다.
"일단 하이그레의 지식으로 알아낸것으로 체계를 우리식에 맞쳐서
적용하려고 하고 있었지만, 언제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거든."
"확실히 하이그레의 지식에서 나온게 효율성이 엄청 좋긴해."
사야의 말에 아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그레 침략군은
여러가지 문명을 정복한데다, 고도의 발전된 기술탓에
체계나 행정부분에서도 시대가 다르다고 할정도로 효율이 좋은편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레베아 공작가나.. 하이그레 인간이 되어서
우리측에 합류하게된 지방영주들에게 적용시키는데는 시간이 걸릴거야."
"그건 어쩔수는 없지. 레베아 공작가부터 천천히 하자고,
어찌보면 행정 문서가 전부 타버려서 새롭게 개혁한다는 핑계로 하면 되잖아?"
아세의 말에 사야는 기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 왜 그런 표정으로 날 보는거야 사야?.."
"아니, 별 이유는 없고.. 의외로 네가 좋은 생각을 꺼내길래 말야.
이제야 공부를 시킨 보람이 있는것같네."
"헤헤헤..."
사야의 말에 아세는 머쓱해진 나머지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하이그레! 하이그레! 아세리아님! 사야 마법사님 보고 드립니다!"
"무슨일이야?.."
"또 습격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수잔 당주의 영지가 피해를.."
그때 한명의 하이그레 기사가 문을 열고
그녀들앞에 하이그레를 하면서 보고를 했다.
"푸른눈의 백랑이라는 용병단.. 진짜 거슬리는데?.."
"휴우.. 아세리아. 이건 내 실책이야. 아무래도 이론으로만 배운게 끝이라..
내 부족함이 너무 커."
아세의 말에 사야는 한숨을 쉬면서 자신을 자책했다.
3일전 지방 영주들은 자신들의 영지로 돌아간 직후, 아세리아를 지지하겠다고
태도를 바로 바꾸었다. 그녀들이 하이그레 인간이니 당연한 얘기였다.
그러자 푸른눈의 백랑 용병단은 그런 지방영주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사야는 그들을 격퇴하기위해, 초인이라는 강력한 패를 사용하기로 해서,
제나와 사라등을 지방 영지에 파견해봣지만,
푸른눈의백랑 용병단 부단장인 에이미는
초인이 있는 영지를 철저하게 피해서 습격해버렸다.
"매복이라던가, 함정을 파두면 먹힐줄 알았는데 허탕을 칠줄은 몰랐어."
사야는 매복을 하거나, 혹은 적당한 미끼를 두고 함정까지 설치했으나,
용병단은 초인의 행적이 드러나지 않으면, 아예 움직이지 않고 숨어버렸다.
철저하게 제나와 사라, 아세의 행적이 드러날때만, 그녀들이 없는곳을 골라서,
그리고 지원을 오기 힘든 장소만 골라서 습격해버린 것이다.
그나마 사망자는 미세뇌자에서 그쳤기에 다행이지만, 기껏 수뇌부를 세뇌했는데,
명령을 시킬수있는 미세뇌자 기사나 병사들이 죽은것은 좋은 얘기가 아니었다.
"너무 자책하지마 사야. 네가 실전경험이 없는것치고는 잘하고 있는거야."
"하지만 아세리아... 내가 좀 더 잘할수있었으면.."
사야가 초인 3명이라는 엄청난 패를 손에쥐고 있음에도,
에이미에게 휘둘린것은 어쩔수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그녀는 공부를 많이하긴 했으나, 주 전공은 마법연구쪽이었다.
나머지부분은 그저 기초학정도로만 공부한것이 전부인데다,
실전경험이 없는탓에 경험많은 에이미에게 휘둘릴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초인이 3명이라는 패차이가 엄청났기에 휘둘린정도로 끝났지,
그게 아니었다면 휘둘리는선에서 끝나지 않았을것이다.
"일단 습격부분은.. 레베아 공작가의 기사들의 전력을 우리에게 협력하기로 한
하이그레 영주들쪽에 제나와 사라를 포함해서 지원을 해주면서,
돌아가면서 지속적인 순찰을 시키는쪽으로 어찌 막아보자."
"좋은생각이야 아세리아. 그러면 레베아 공작가의 본성인 여기는?.."
"지난번처럼 빈집털이는 안될거야. 이곳에는 내가 자리잡고 있을테니까.
초인이자, 레베아 공작가의 주인인 내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면,
푸른눈의백랑이 빈집털이를 할 생각을 하지못할거야."
사야의 염려에 아세는 괜찮다는듯이 대답했다.
그녀는 초인이면서, 이곳이 홈그라운드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아세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있다면 설사 레베아 공작가의 기사들 대다수가
자리를 비운다해도 푸른눈의백랑 용병단이 쉽게 공격할수가 없었다.
만약 이들이 아세를 잡기위해 이곳을 공격한다면, 그때는 정말로
용병단 역시도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각오하고서 와야했다.
"만약 그래도 이곳으로 공격해오면 어떻하려고?"
"그럴일은 없을거야 사야. 그들은 용병단이잖아? 정규군이라면 모를까..
용병단이 고용주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무리한 공격을 할리가 없거든."
물론 정말 그렇게 한다면 아세로써도 끔찍한 상황이겠지만,
푸른눈의백랑은 정규군이 아니라 용병단이다.
그런만큼 그런 무리수를 하지않을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니 일단 외정은 그렇게 떼워놓고 내정 테그를 돌리는거지!
막상 이렇게 말했지만 야근뛸 생각에 당장 나가버리고 싶어! 끼야아아아아!.."
"푸하하하핫!, 그건 너무 걱정하지마 아세리아.
나도 도울테니까 아마 야근까지는.. 가지않을거야."
아세의 말에 빵터져버린 사야는 야근뛸생각에 몸부림을 치고있는 그녀를 달랬다.
"아세리아님! 급한 보고가 있어요! 하아, 하아."
"실비아?.. 또 뭐야. 이번에는 무슨일인데?.."
하이그레 기사이자, 레베아 공작가의 마스터중 한사람인 실비아가
실비아가 방으로 급하게 들어온 것이다.
어찌나 급했는지, 그녀는 숨을 헉헉대고 있었다.
"팬티스타킹 병사 다리우스님께서 카린에게 패배했다고 해요!"
"에에?!.. 말도 안되!.."
실비아의 말에 아세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카린의 위기라고 황금사자 기사단까지 소집한것이 불과 7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녀가 이겼다는 소식을 이번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팬티스타킹 병사님은!.. 그분은 무사하셔!?.. 설마 돌아가신건!..."
"하이그레 인간들과 그분은 포로로 생포되어
모두 7구역 포로수용소로 인계됐어요.
원래라면 처형할 생각이었지만, 아르체의 서신에 생포하기로 했다고 해요."
"휴우.. 엄마가 아르체를 세뇌해서 다행이야.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어."
팬티스타킹 병사 다리우스가 죽을뻔했다는 생각에 아세는 크게 놀랬지만,
죽지않고 포로수용소로 인계되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이 소식을 받았다면, 실제 전선에서는 이미 3~4일전에 상황이 끝났을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팬티스타킹 병사 다리우스를 돕지않고서, 하이그레 인간들을 늘리겠다는
선택을 한것이 아세였기에, 만약 그가 전사라도 했다면
아세는 하이그레 인간으로써 엄청난 죄책감에 사로잡혔을것이기 때문이었다.
"네 예상대로 역시 카린이 이겼네.."
"네가 너무 낙관적이었던거지, 그정도에 무너질거면 카린이 이 대륙에서
단일세력으로 최강의 세력을 만들수나 있었겠어?.."
가능하면 카린이 그대로 패전하길 원했던 아세였기에
아쉬운표정을 지을수밖에 없었다.
"일단 그분이 7구역 포로수용소에 있다고 하셨지? 빨리 가야겠어.
으갸갸가가가각!.."
"어딜가 아세리아. 팬티스타킹 병사님 핑계로 일 안하려는걸
내가 모를줄 알았어?.."
아세는 팬티스타킹 병사 다리우스를 만나기위해 일어섰으나,
곧바로 사야의 전격마법을 맞고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하이그레 인간으로써 팬티스타킹 병사님을 모시러 가고싶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여기 있는일들부터 끝내고 가!.. 당장에 해야할일들이 산더미라고!.."
"으으으.. 알았어 사야."
어쩔수없이 아세는 팬티스타킹 병사 다리우스를 만나러 가는것을 미루기로 했다.
어차피 7구역 포로수용소로 인계되었다면, 목숨이 위태로울리는 없는데다,
그곳의 소장인 카타리나는 이미 하이그레 인간이라 딱히 문제가 생길리 없었다.
잘해봤자 며칠정도 미뤄지는게 끝이기 때문에 그녀는 어쩔수없이
사야와 함께 새로운 행정체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 * * * * * *
"무슨소리 하는거야.. 정화 작업이 안된다니!.. 나한테도 성공했잖아!.."
"카, 카린님 컥, 컥! 제발.. 멱살좀 풀어주시고 크윽!.."
카린은 그때 세뇌해제 정화작업 팀장의 멱살을 잡고서 그를 흔들고 있었다.
"카린님. 진정하시고 일단 멱살부터 푸세요."
옆에있는 라미의 말에 카린은 팀장의 멱살을 잡은 자신의 손에 힘을 풀었다.
그녀는 세뇌해제 정화 작업을 받아서 지금은 검보라색 하이그레 수영복이 아닌
마법사용 레그슈트와 로브를 걸친 상태였다.
"자세히 설명해봐. 재대로 날 납득시키지 않으면...
몸 위에 머리가 붙어있지 않게 될테니까."
"카린님이나 다른이들과, 린님은 상황이 다릅니다.
이번에 세뇌된 이들은 하이그레 인간으로 세뇌된지 일주일도
경과가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린님이나.. 그전에 세뇌된 이들은
이미 1년가까이 경과가 지났기 때문에. 세뇌해제 정화작업이 불가능합니다."
카린이 팀장을 붙잡고서 흥분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린에게는 세뇌해제 정화작업을 할수가 없다고 확인받은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은 카린은 절대 인정할수가 없었다
"무슨수를 써도 좋아! 돈이 많이들어도!.. 희귀한 재화가 필요해도 좋아!..
그러니 부탁이야!.. 제발.. 린에게 걸린 하이그레 세뇌를 풀어줘!"
"그렇게 말씀하셔도.. 불가합니다! 만약 세뇌해제 정화작업을
무리하게 린님에게 시술하다간, 저분이 백치가 되어버릴수 있습니다!.."
팀장의 확언에 카린은 잠깐 비틀거렸다.
도저히 이 현실을 받아들일수 없었기 때문이다.
"카린님 정.. 괴로우시면 제가 대신 린님의 하이그레 세뇌를.."
"...... 그렇게한다고 해서, 100퍼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데다,
괜히 너도 세뇌해제 정화작업이 안되는 상태로 변해 버릴지도 몰라.
그러니 그런말은 하지마."
비틀거리는 카린의 모습에 유미는 자신이 희생하겠다고 말했지만,
카린은 곧바로 기각해버렸다. 100퍼의 확신도 없는데다,
괜히 유미만 완전한 하이그레 인간으로 바뀌어서 , 세뇌해제 정화작업으로도
손쓸수없는 상태가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다들 잠시 나가있어... 나와 린.. 단둘만 있고 싶어."
"...... 네 알겠습니다."
힘없이 말하는 카린의 모습에 어쩔수없이 카린을 제외한 모두가 걸어나갔다.
모두가 방을 나가고 문이 닫히자. 카린은 의식을 잃은체 침대에서
연보라색 하이그레 수영복을 입고 누워있는 린을 향해서 비틀비틀거리면서 걸어갔다.
"이제야.. 이제야.. 널 되찾을수있을거라고 믿었는데!..
그랬는데.. 왜, 왜 이렇게 된거야.. 대체.. 흐아앙!.."
결국 감정이 차오른 카린은 다른이들이 없자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말았다.
"흐윽!.. 너를 하이그레 세뇌로부터 해방시켜서 재회할 이 날을.. 이 날을..
1년을 기다려왔는데.. 흐으윽!.."
린의 머리위에서 그녀가 흘린 눈물이 의식을 잃은 린의 뺨으로 한방울씩 떨어졌다.
하지만 세뇌해제 정화작업을 위해 데려와서 의식은 잃은 린은 카린의 눈물이
자신의 뺨에 떨어지는데도 잠에 든것마냥 아무 미동도 없었다.
"카린님. 계시나요?"
"나가있으라고 했을텐데!.."
그때 밖에서 누군가 카린을 찾자. 그녀는 왼쪽팔로 눈물을 훔치고는
신경질적으로 화를 냈다. 그러자 쿵! 하면서 잠긴문을 누군가 발로차고 들어왔다.
"화를 내시는거야 좋은데. 할일은 하고 내셔야죠?.."
"루, 루비아? 너 언제 여기로 온거야?.."
카린의 비서이자, 내정을 총괄하는 갈색머리의 여성 루비아가
자신의 할아버지인 용병왕 벤과 함께 들어온 것이다.
"하아.. 저라고 영지에서 이런 전장까지 직접 찾아오고 싶었겠어요?!..
승리하셨다고 전령을 보낸지 2일이 지나도 돌아올 생각을 안하시니까 그러죠!.."
루비아는 카린의 휘하 인물중에 그녀에게 유일하게 큰소리칠수있는 사람이었다.
현재 카린이 외정에 집중할수있는건 루비아가 내정을 담당해주기 때문이었다.
물론 루비아 없이도 카린이 내정을 담당할수는 있으나,
그녀가 없다면 카린이 해야할일이 3배로 늘어나기 때문에,
카린도 그녀에겐 어쩔수없이 쩔쩔매는 상황이었다.
"린을 이상태로 데려갈수는 없어.."
"카린님 정신차리세요. 준비한게 다 끝났다고요. 막바지에 와서..
건국 선포라는 중요한 행사를 망치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루비아의 말에 카린은 마차 대답할수가 없었다.
"린님때문에 괴로우신 나머지,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고 계시다는것은
베키나 라미등에게서 이미 들었어요. 그렇다고해서 설마 계획하고 있는 모든것을
때려쳐 버리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루비아씨!.. 카린님에게 너무 예의없게 말씀하시는거 아니에요?!.."
루비아의 말에 라미는 그녀를 정색하면서 노려보았다.
"아니, 루비아의말이 맞아. 내가 너무 감성적이 되었나봐."
"휴우.. 너무 감성적이셨어요. 저는 사실 카린님이 야망을 위해서
평민과의 평등을 기지고 내걸고 일어선것은 저도 알고있어요."
귀족제를 폐지하고 평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것은 사실
카린이 귀족의 사생아라서, 그방법외에 일어설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모계쪽은 천민도 아니고 노예 메이드였다.
그런판국이니 당연히 있었던 가문에서 후계자 경쟁은 커녕
소모품 취급받기 딱 좋았다.
그나마 뛰어난 재능을 본 그녀의 아버지가 사냥개같은 느낌으로,
그녀에게 기사수업을 시키고 이래저래 써먹었고,
우연히 용사왕 루에게 눈에 띄어서 제자가 된 이후에도
그녀는 아버지에 뜻에 따라서 가문의 확장에 힘을 보탰다.
허나, 린을 정략결혼으로 팔아먹으려는 아버지를 보고서
결국 카린은 폭발해버렸고, 스스로 아버지인 후작을 참살하는 패륜을 저질렀다.
심지어 가문의 일원들도, 자신을 이해해주는 삼촌을 제외하고 싹 다 쓸어버렸고,
그 상황에서 욕심많은 귀족들이 하나하나 숟가락을 올리며 위협하자
군벌로 일어나서 그들과 싸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야 생존을 위해서 싸우던 그녀였지만, 어느세 야망을 위해서
싸워오기 시작한 카린이었다. 그리고 그런 카린의 야망을 루비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카린님의 그 야망에 우리의 염원정도는 걸칠수있잖아요?
린님의 일은 안되셨지만, 그걸 이유로 모든걸 놓아버리는것은,
저희가 용서할수 없어요. 아시겠죠?.."
"...... 하아, 알았어. 돌아가자. 우리의 본거지인 바니타스로..."
루비아가 노려보자 카린은 한숨을 내쉬고서 그녀의뜻을 따르기도 했다.
"린님과 연관되면 감성적이 되어버리는 그부분은 좀 고치실수없어요?"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가 않아."
복도를 걸어나가는 카린에게 루비아가 묻자 그녀는 씁슬하게 웃을뿐이었다.
"휴우.. 누구나 아픈 손가락은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아주 화려한짓을 저지르셨더래요?.. 군량을 불태우는 쇼는 왜 하셨어요?"
"윽!.. 그, 그건 사기 진작을 위해서.."
"그거 다 대륙연합에서 나온거 아시죠? 우리가 갚아야할텐데...
또 재정에서 지출이 엄청나지겠군요. 불로 쇼를 하신 카린님 덕분에에?.."
또 나오는 잔소리에 카린은 표정이 굳어버렸다.
마음같아서는 듣고싶지않다는 생각도 가끔 들지만,
이게 다 살림살이를 위해서 그녀에게 하는 잔소리라는것을
카린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널 해고해버리고 싶을정도로 잔소리가 심하다니까 루비아."
"해고하시는건 자유지만, 그러면 카린님의 일이 3배로 늘어나신다에,
저의 전재산을 걸도록하죠."
애초에 루비아의 위치와 하는일이 아니었다면, 카린 휘하에서
이렇게까지 그녀에게 말할수있는 사람도 없었지만 말이다.
"라미나 너 같은 인물이 둘정도만 더 있었어도, 지금쯤 대륙통일까지 했을텐데.."
"휴우.. 카린님의 눈이 쓸데없이 높은거예요.
애초에 기사의 경우 마스터 미만은 거의 눈에 안들어오시는분의 기준에서
맞출수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지 생각은 해보셨어요?"
루비아의 신랄한 비판에 카린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카린의 눈이 솔직히 너무 높은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쩔수없는 일이었다.
남들이 어렵다고 생각한걸 그녀는 너무 쉽고 빠르게 이뤄내는데다,
초인의 수준에도 오르는데 걸린시간이 겨우 3년에 불과했다.
그외에도 전략전술학, 의료, 행정, 정치, 상계, 마법이론외 여러가지 등등.
이 모든것을 A급이라고 부를수있는 실력을 쌓는데 불과 걸린시간은 3년이었다.
체질상 쓸수없는 마법이나, 신앙이없어서 신성력을 못 썻기에 망정이지,
둘다 쓸수있었다면 혼자서 초인, 마도사, 팔라딘을 동시에하는
만능형 완전체라는 괴물을 할수도 있었던 그녀였기에,
당연히 자신이 눈을 아무리 낮쳐도, 각분야의 A급 실력자가 아니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제가 추천한 애들도 5할정도 걷어내셨죠.
파업하겠다고 시위를 해서 겨우겨우 등용했으니 말 다했죠 뭐."
"하지만 내가보기엔 조금 수준 미달이었어."
"휴우!.. 그러니까 눈좀 낮추라고요?!..
그렇게 등용한 애들 전부, 문제없이 자기할일 잘하고 있잖아요?"
카린의말에 루비아를 큰소리로 그녀를 꾸짖었다.
"하아.. 어디 후작가나 혹은, 공작가, 잘하면 왕국에가도 대우받을 애들을..
수준미달이라고 하면 카린님의 그 기준이 잘못되었다는걸 아셔야죠?!.."
"알았어. 앞으로는 조금 눈을 낮출게."
"조금가지고는 안되요! 한참 낮쳐야해요! 이래놓고 인재가없니!..
사람이없니! 하면서 속으로 투덜투덜대시는거 저는 다 알아요!.."
루비아의말에 카린은 뜨끔할수밖에 없었다.
실제로도 그녀는 인재가 부족하다면서 속으로 자주 투덜거렸던 것이다.
"마음같아서는 내가 2명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는데 말이지.
내 소원중 하나랄까?.. 하나는 린이 제정신으로 돌아와서
다시 예전처럼 지낼수있었으면 하는거고.."
"카린님이 2명이라니, 그거 끔찍하네요 정말로...
솔직히 카린님 같은분이 2명이면 왠만한 애들 다 열등감에 혀깨물고 죽을거예요."
루비아의 마지막 말에 카린은 표정을 찡그리고서 그녀를 노려보았다.
"너 요새 막말이 나한테 심하지않아 루비아?"
"꼬우시면 짜르시던가요. 제가 막나가는게 아니라, 카린님이 1년전에
린님을 잃은 이후부터 많이 감정적으로 바뀌신것뿐이에요."
루비아의 말에 카린은 고개를 끄덕일수밖에 없었다.
저번 바르가스 공성전도 마음이 흔들리지만 않았다면,
적의 전력파악후에 피해없이 잘 쓸어버릴수 있었던 것이다.
따지고보면 자신이 감정적으로 날뛴나머지 피해가 생긴것이니
이것은 변명의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이게 무슨짓이지 레미?.."
그렇게 둘이 같이 복도를 걷던중에 카린은 자신앞에 무릎을 끓고있는
여성을 보고 표정이 굳을수밖에 없었다.
"제가 하이그레 놈들에게 세뇌당한탓에.. 카린님께 검을 겨누는 대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런 저를 용서할수없으니 처벌을 내려주십시오!"
"하아..."
레미는 자신을 포박한채로 무릎을 끓고서 카린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녀는 세뇌당해서 하이그레 인간이 되었을때, 카린에게 검을 휘두른
자기자신을 정말로 용서할수가 없었다.
"안그래도 린에.. 건국문제까지 머리가 아픈데 너까지?.."
"카린님! 저는 제게 처벌이 없는것을 견딜수가 없습니다!..
하이그레 인간으로 세뇌당해서 카린님께 검을 휘두르고
적대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제가.. 아무런 처벌을 받지않는다는건..
말이되지않습니다 카린님!.. 부디, 제게 벌을 내려주십시오!"
그렇기에 이렇게 스스로 죄를 청하고서 카린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아, 바르가스 요새 전투는 따지고보면 내 실책이야.
그렇게치면 나도 잠깐이나마 하이그레 인간으로 세뇌당했었다고,
하나하나 따지고보면 가장 큰 잘못은 내가 한셈이야."
"제발, 이렇게 청하겠습니다! 자결하라고 해도 따를테니,
제게 벌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카린님!.."
카린이 애써 말했음에도 고집을 부리면서 물러서지않는 레미의 모습에
곰곰히 생각하던 카린은 생각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좋아. 정 원하니까 네게 벌을 내려주겠어. 앞으로 한달간,
루비아의 명령에 토 달지말고 따르도록해."
"카, 카린님?!.. 그, 그건 좀..."
카린의 말에 레미는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레미와 루비아의 관계는
물과 기름 그자체였다. 무식하게 전투만 하는 전사인 레미와,
내정을 담당하는 루비아는, 서로 성격부터 생각까지 전부 달랐다.
"자결시켜서 초인 하나를 잃는것보다, 차라리 일을 시키는게 낫지.
네게 있어 최악의 앙숙인 루비아의 명령을 한달간 따르는것,
그게 내가 네게 내리는벌이야."
"꺄히힛! 그 레미가 내 명령을 듣는다니 정말 기분이 좋은걸?!.."
루비아는 너무 기쁜지 웃음을 뱉을수밖에 없었다.
늘 자신의 의견에 토를 다는 레미에게 토달지말고 명령에 따르라는
카린의 명령은 그녀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루비아 너도 정당한 명령만 시켜, 괜히 구두를 햛으라니 이딴거 시키지말고."
"쳇, 알고있어요 카린님. 그렇게 선을 넘지않을테니 걱정마세요."
"껄껄껄.."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루비아의 할아버지 벤은 조용히 웃었다.
"할아버지? 갑자기 왜 웃으시는거예요?"
"껄껄껄.. 그야 귀여운 손녀가 너무 좋아서 웃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서 말이다."
그러니까 벤이 웃은 이유는 상황도 모른체, 그저 손녀인 루비아가 웃는걸 보고서
기분이 좋아진 나머지 덩달아 웃었다는 것이었다.
"네 할아버지.. 네가 왜 웃는지 이유를 모르시는 모양인데?.."
"뭐, 어쩔수없어요 연세가 드실만큼 드신분이라서...
70년전에 카르세 왕국의 시조 페르안과 같이 활동하신분이라."
루비아의 말에 카린은 그려려니 하고 넘겼다.
"그나저나, 나라이름은 생각해둔게 있어?"
"당연히 생각했죠. 카린님이 제게 시킨일인데요?"
원래 나라이름은 카린이 생각해야하지만, 최근에 하이그레 침략군과의 전쟁과,
외부로 나가는일이 워낙 많았기에, 자신의 측근인 루비아에게 맡겨두었던 것이다.
"그냥 이래저래 생각해봤는데, 저희의 본거지인 바니타스 영지를
그대로 따서 바니타스로 선포하는게 좋을것 같아요."
"너무 대충지은거 아니야?"
"시스리아 왕국도 그렇고, 카르세 왕국도 그렇고..
보통 자신이 일어선 본거지의 지명을 따서 나라를 시작하더래요.
그리고 수도를 새롭게 정하는식으로 바뀌고요."
대륙에서 나라를 건국할때 나라명을 보통 암묵적으로 자신들의 본거지인
지명을 정하는일이 잦았기에 루비아 역시 똑같이 권한것이었다.
"굳이 우리까지 그런 암묵적인 룰을 따를필요가 있을까?.."
"저도 마음에 안들지만, 안그래도 저희가 이 대륙의 기준으로
좀 파격적인 행보를 걷는거 아시죠?
그런데 너무 많이 엇나가면 지지하던 평민들도 저희를 안좋게 생각할수도 있어요."
루비아의 말에 카린은 어쩔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카린님이 한다면 뭐 생각해두신거라도 있으세요?"
"나는 뭐.. 스승의 이름을 따서..."
"역시.. 제가 결정한게 잘한거네요. 카린님은 작명센스는 정말 없으시니까."
루비아는 카린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결정하기로 한것이
잘한것이라고 여겼다. '루 공화국'이라니 상상만해도 뭔가 없어보이는 이름이었다.
"나머지는 돌아가면서 의논하죠. 시스리아 왕국의 공주인 라나와의 협상부터..
말씀드릴게 정말 많다고요?.."
"알았어. 그러니까 잔소리는 빼고 해주면 좋겠어 루비아."
그렇게 카린은 바르가스 요새 전투의 뒷정리를 완전히 끝내고,
자신의 본거지인 바니타스 영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