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황자에게 사로잡혔다-21화 (21/21)

제21장. 승전 무도회

오래간만에 집으로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실로들어간 로제타는 미카엘에게 옷을 벗게 하고 욕실로데려갔다. 그가 약속한 대로몸에 상처를 내지않고 돌아왔는지를 확인하기위해서였다.

"그러니 오늘 목욕 시중은 제가 들 거예요."

"시중들 사람은 옷을 벗지않는 겁니까? 저도 부인의 몸이 몹시도 고픈데요."

로제타의 입술에 연신 키스를 떨어트리며 미카엘이 속삭였다. 로제타는 잠시 망설였으나 그가 바라는 대로옷을 벗기로했다. 미카엘이 그런 만큼 로제타도 그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눈앞에 드러난 로제타의 나신에 미카엘은 침음을 삼켰다.

3개월이나 금욕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몰랐다면 몰라도, 이미 알고 있는 황홀함을 참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알몸의 로제타에게 목욕 시중을 받다니….'

아직도 몸은 전쟁터에 있어, 그리운 로제타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로제타는 미카엘의 몸에 따스한 물을 끼얹고 비누칠이 된 손으로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기시작했다.

"으읏…."

기분이 너무 좋았다. 자신의 손에 비해 상대적으로작은 로제타의 손은 부드럽고 섬세해서 팔을 조금 쓸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갔다.

이미 빳빳하게 성이 난 것이 보였으나 미카엘은 부끄럽다는 생각은 들지않았다. 로제타를 지금보다 더 원하고 있었다.

"벌써 이렇게 돼서…. 푸, 풀어 드릴까요?"

"부인이 원하는 대로가지고 놀아도 됩니다. 부인의 손에 사정하는 것도…, 기분 좋을 것 같고…. 으음."

미카엘의 입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로제타는 거품에 싸인 손으로미카엘의 것을 그러쥐었다. 단지그것뿐인데도 더 커지는 것에 로제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이렇게 커지면…."

"양손으로쥐면 되잖습니까?"

"겨, 결국 하실 거잖아요! 이런 걸 어떻게…."

로제타의 원망에 미카엘은 키득키득 웃었다.

"매일같이 품으셨던 것을 새삼. 로제타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나기는 했으나 이전보다 더 커진 것은 아닙니다. 부인께서 즐겨 탐하셨던 그대로예요."

한 손으로다 쥘 수 없을 만큼 크고 뜨거운 것이, 로제타의 손바닥 안에서 불끈거렸다. 로제타는 거짓말, 하고 중얼거렸다.

이렇게 큰 것이 제 안을 드나들고 있었다니, 믿어지지않았다.

"거짓말이라니요. 지금이라도 넣어 드릴까요?"

비누칠이 된 손을 뻗어 로제타의 몸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이미 흥분한 몸은 뜨거웠다. 로제타의 말랑하고 부드러운 나신을 품에 안자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 기분이었다.

"하읏…."

미카엘의 집요한 손길에 로제타의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사랑스러워서 미카엘은 그 뺨에도 입 맞추고 가볍게 깨물기까지했다.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자, 자꾸 깨물지마세요."

"음. 귀여워서…."

"하아…. 응……. 아흠…."

다리 사이로들어온 손이 로제타의 은밀한 곳을 매만졌다. 지난 3개월 동안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도 하지않았는지매우 좁아져 있었다. 마음이 급한 미카엘은 제 손가락을 밀어 넣어 바쁘게 풀어 주기시작했다.

길고 우아한 손가락이 들어와 질벽을 탐닉하는 것에 허리가 곱아들었다.

"아앙, 으흥…. 자꾸 거기만……. 아앗!"

손가락이 자꾸 늘어나며 로제타를 달콤하게 괴롭혔다. 미카엘은 버둥거리는 로제타를 고쳐 안으며 속살거렸다.

"너무 좁아졌어요. 저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도 하지않은 겁니까? 저는 매일…. 로제타를 생각하며 제 것을 달랬는데."

"하응, 음…. 그런 것…. 아앙, 아하아아앙!"

"으음…. 빨리 제 것을 넣어 확인해 보지않으면…."

미카엘도 로제타도 마음이 급했다. 서로에게 닿아 있는 부분이 전부 기분 좋은 탓에 그들은 굶주린 사람처럼 서로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장시간 떨어져 있었지만, 미카엘은 로제타가 좋아하는 곳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절묘하고도 집요한 애무에 로제타는 황홀한 듯 미카엘의 목을 끌어안았다.

"앗, 아아……. 흐으앙, 아학!"

바르르 떨며 절정을 맛본 로제타의 모습에 미카엘은 입맛을 다셨다. 그녀의 안을 집요하게 쑤셔대며 풀어낸 손가락이 흥건한 꿀과 같이 빠져나왔다.

미카엘은 로제타의 다리를 벌리고 여린 꽃잎을 훔쳐보았다. 씰룩씰룩 벌름거리는 것이 그녀 또한 자신을 원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 바로…, 해도 되겠습니까?"

너무 오래 기다려서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침대까지기다릴 수 없다.

로제타도 그것은 마찬가지인지늘어진 와중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엘은 로제타의 입술에 기쁜 듯 키스를 퍼부으며 제 것을 가져갔다.

미카엘의 페니스는 아까부터 선단에서 새하얀 액체를 흘리며 꺼떡거리고 있었다. 무섭게 달아오른 그것에 로제타는 긴장되는 한편 기대도 컸다.

이 와중에도 제 페니스에 물을 끼얹어 거품을 씻어 낸 미카엘이 로제타를 욕조 가장자리에 앉혔다. 한껏 다리를 벌리게 하고는 경련하는 입구에 제 것을 가져갔다.

"흐읏…."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도 크다는 생각에 로제타는 깊은 한숨을 흘렸다. 미카엘은 참을성을 한계까지끌어모으며 느리게 로제타의 안으로제 것을 밀어 넣었다.

정말 이곳에 아무 짓도 하지않았는지, 로제타의 처음을 다시 받아 가는 것 같았다.

"아앙…. 계속 들어와……. 하으…. 읏……."

무서울 정도로뜨겁고 커다란 것이 꾸역꾸역 안으로밀고 들어왔다. 어느 정도 다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자 미카엘은 로제타를 끌어안았다.

"허리로제 다리를…."

"하아……."

로제타는 용케 알아듣고는 미카엘의 허리를 제 다리로감았다. 얼핏 너무 삽입이 깊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웠으나, 빨리 미카엘을 느끼고 싶었다.

"응."

가느다란 두 팔이 자신의 목을 끌어안자 미카엘도 로제타의 엉덩이를 감싸 쥐고는 그녀를 들어 올렸다.

'헉!'

너무 오래간만이어서 이 체위를 잊고 있었다. 미카엘이 좋아하는 체위중의 하나이며 그녀가 자지러질 만큼 흐트러지는 체위인 것을.

"히익!"

스스로의 체중으로엉덩이가 내려오며 페니스가 한계까지집어삼켜졌다. 로제타는 기겁하며 미카엘에게 매달렸으나, 그의 허리를 감고 있느라 다리가 한껏 벌어진 상태였다. 그 무방비한 비부를 미카엘의 페니스가 황홀한 듯 뒤적거렸다.

"아아……. 로제타…. 이것이 너무 그리웠습니다."

"하으으응…. 제발……. 깊이 들어왔…. 아앗!"

"오래간만이라 그럴 겁니다. 금방 익숙해질 거예요."

절대 거짓말이었다. 이전에도 로제타는 이 체위로미카엘을 맛보면 정신을 차리지못하고 그에게 농락당했었다.

그러나 생각할 틈을 주지않겠다는 듯이 미카엘의 허릿짓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 아아아! 아아!"

"읏, 너무 조여…. 조임이 더 좋아진 것……. 아아! 내가 더 좋아졌군요. 그렇죠?"

"으응, 아앙! 미카엘 님……."

"흐읏…. 저도 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페니스가 녹을 것…. 같…. 으음……."

참을 수 없는지미카엘이 격하게 찔러대기시작했다. 로제타는 앓는 소리를 내며 미카엘의 어깨에 매달렸다. 그가 지적한 대로전보다 감정이 커진 듯했다.

마법이 착실하게 효과를 발휘하며 미카엘의 페니스가 움직일 때마다 가 버릴 것 같았다.

"아앙! 아앙! 너무 좋아…. 좋아아! 아앗, 아아아!"

"로제타……. 저도…. 으읏, 크흐……."

로제타와 미카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을 포개며 정신없이 서로를 맛보았다. 위쪽도 아래쪽도 황홀하게 결합되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으읏, 아앗…. 몰라……. 아앙! 안쪽이 이상…. 아아! 앗앗!"

"이상, 하긴요…. 이렇게……. 내 것을 사랑해, 주시면서……. 하악…."

미카엘의 격렬한 몸짓에 몸이 아래위로좌우로흔들렸다. 로제타는 음탕하다 못해 파렴치하기까지한 미카엘의 피스톤질에 흐느끼며 온몸으로그에게 매달렸다. 탐욕스럽게 쑤셔대는 페니스에 거기가 온통 녹아 버릴 것 같았다.

"안 대, 아앗! 참을 수가…. 으흐으응! 앙, 아앗!"

"아…. 로제타 조금만 더……."

첫 절정은 함께 맛보고 싶었지만, 로제타의 민감한 몸이 그것을 허락하지않았다. 미카엘도 가 버리지않으려 참고 있었으므로먼저 도달한 로제타와 약간의 엇박으로절정을 맛볼 수 있었다.

정액을 분출하면서도 허릿짓하는 미카엘에 로제타는 기겁했다.

"흐아, 응……. 아아아, 아! 거기…. 그렇게 하면……. 으응!"

"하아……. 로제, 로제타……. 으읏……!"

사정했음에도 전혀 줄어들지않은 페니스가 여전한 기세로, 아니 그 이상의 열기를 드러내며 로제타를 탐하고 있었다. 로제타는 바르르 떨며 미카엘의 욕망을 받아 냈다.

그동안 전혀 할 수 없어 잊고 있었지만, 미카엘은 이런 남자였던 것이다. 심지어 3개월간의 금욕 때문에 이성의 끈이 끊어진 것 같았다.

"하하……. 로제타…. 조금 엇갈렸지만…. 몇 번이든 다시 하면 되니까요."

속삭이는 미카엘의 말에 로제타는 쾌락으로나른해진 눈빛을 보냈다. 이성으로는 죽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몸이 전해 주는 감각이 이성을 배신하고 있었다.

"아….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으음…."

끈적한 키스를 퍼부은 미카엘이 속살거렸다.

"물론입니다, 부인. 부인의 몸은 내가 가장 잘 아니까……."

다시 입을 맞추며 어루만져 오는 손길에 로제타는 황홀해졌다. 그들은 다시 침대로자리를 옮겨 그동안의 회포를 듬뿍 풀었다.

철썩! 철썩! 철썩!

밤새도록 로제타를 괴롭히던 미카엘이었으나, 아직도 성에 차지않은 듯했다. 로제타는 엎드린 채로 미카엘의 것을 받아들이며신음했다.

'좋아, 너무 좋아…. 으응……. 으으응….'

이건 좀 위험한 게 아닌가싶을 정도로 기분 좋았다. 그런데도 미카엘을 제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않아 고스란히 안기고 있는 것이다.

"앗! 아아……. 아앙!"

이불은 침대 밑으로 떨어져 있고, 침대 시트는 어느 곳 할 것 없이 두 사람의 체액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미카엘은 그러고도 만족하지못했는지로제타의 안으로 깊숙이 허리를 묻고는 정액을 쏟아 냈다.

"하으, 앗……. 아아아!"

그들의 결합부 사이로 왈칵 넘친 액체가로제타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그 음란한 광경에 신음하며미카엘이 다시 허릿짓하기 시작했다.

"읏, 으응! 아앙! 아앗, 앗!"

중간에 몇 번인가마법을 걸어 로제타의 몸을 치료해 주었을 것이다. 그 순간이 너무 절묘해서 로제타는 자신의 몸 상태가어땠는지도 몰랐다.

그저 미카엘의 페니스가제 안을 쑤시는 것이 기분 좋았고, 그의 손길에 달콤하게 농락당하며절정을 맛보는 것이 황홀했다.

"아아, 아아아……!"

너무 느껴 미칠 것 같았지만, 3개월의 전쟁 후에 돌아온 미카엘이었다. 그가원하는 만큼 자신을 탐하게 내버려 두고 싶었다.

미카엘이 이 정도로 자신을 원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그가주는 쾌락이 좋았다.

'벌써 아침인데….'

중간에 잠깐 잠들었던 것 같지만, 정신을 차리자마자 안겨 버린 탓에 잤는지안 잤는지조차 생각이 나지않았다.

"흐읏, 로제타…. 그렇게 조이면……!"

"아앙! 앗……. 아아……."

로제타는 또 한 번의 절정에 신음하며무너졌다. 미카엘은 그런 로제타를 온몸으로 끌어안으며격렬하게 허릿짓했다. 로제타가한 번의 절정으로 만족하게 두는 일이 없는 미카엘이었다.

"흐아, 아앗! 으으응! 아앙!"

퍽퍽 쳐대는 허릿짓에 2차, 3차로 절정이 계속 밀려왔다. 로제타는 음란하게 경련하며미카엘의 품에서 몸부림쳤다. 사람이 이 정도로 쾌락을 느낄 수 있는 건가싶을 정도로 기분 좋았다.

"앗, 아아아아아……!"

한바탕 폭풍 같은 정사가끝나고 로제타는 미카엘의 품에 늘어졌다. 피곤해서 그대로 잠들고 싶었지만, 미카엘은 로제타와 대화하고 싶은 듯했다.

로제타는 눈을 꿈먹거리며미카엘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이 가슴이, 이렇게 품에 안긴 채 대화하는 것이 그리웠었다.

"하나도 다치지않고 돌아온다는 약속…, 지켰지요?"

"네에……."

"소원……, 들어주실 겁니까?"

"으응……."

반쯤 잠에 취해 대꾸하는 로제타에 미카엘이 웃음 지었다. 이것조차도 너무 달콤하고 그리웠어서 이 순간이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생각해 봤는데…. 우리가신혼여행을 보냈던 그 섬말입니다."

"네에……."

"거기서 1년간 로제타를 듬뿍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밖에 없으니 장소도 가리지말고요."

소곤소곤 속살거리는 말이 꿈결인 듯 달콤하게 울렸다. 이미 비몽사몽인 로제타는 미카엘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르고 끄덕였다.

"네에……"

"후후…. 섬에서 1년, 약속한 겁니다? 무르거나 변경하지않을 테니까요. 그곳에서…. 로제타를 밤낮을 가리지않고 귀여워해 드리겠습니다."

이미 잠이 든 로제타는 대답이 없었다. 미카엘은 로제타의 뺨에 입 맞추며

'노력할게요.'

하고 속삭였다.

***

기분 좋은 꿈을 꾼 것 같았다. 로제타는 달콤한 여운에 취한 채로 부스스 눈을 떴다. 바로 곁에 미카엘이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도 마냥 체력이 남아나는 것만은 아니었는지, 아직 잠들어 있는 채였다.

실은 로제타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그녀를 만지작거리며쳐다보고 있다가늦게 잠들어서 그런 것이었지만. 로제타가그것까지는 알 리 없었다.

'행복해.'

미카엘이 돌아왔다. 변함없이 그녀를 사랑해 주었으며지금도 곁에 있었다. 그 사실에 로제타의 가슴이 한없는 기쁨으로 물들었다.

이제는 이만큼 미카엘을 사랑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그는 로제타의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이가되어 버렸다.

"눈으로만 기뻐하지말고 만져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미카엘이 슬며시 웃으며로제타를 끌어안았다. 로제타의 입에서 행복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웃음소리에 미카엘은 황홀해졌다. 얼마나 기다려 왔던 로제타인가.

지금 죽는다면 이 행복을 놓친 것이 억울하여 지옥에서라도 기어 올라올것 같았다.

"로제타…. 로제타……. 사랑합니다."

"저도 사랑해요, 미카엘 님."

마주 고백하며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입술을 포갰다. 혀가뒤엉키고 서로를 맛보는 것만으로도 오싹한 전율이 일었다.

미카엘이 굶주린 손길로 로제타의 몸을 탐하며다시금 정욕을 불태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로제타는 미카엘의 품에 안긴 채 까르륵 웃었다. 혀와 입술이 뒤섞이고 서로의 점막이 얽혀 들며마주 비벼지기 시작했다.

"하아…. 아……."

"로제타…. 아아……, 내 사랑…."

다시금 타오르는 열기에 로제타도 미카엘도 그대로 몸을 맡겼다. 공작저의 고용인들은 눈치 빠르게도 그들의 침실로 접근조차 않았다. 침실로 가는 시간까지도 참지못하고 찰싹 달라붙어서 쪽쪽대던 그들이었다.

'필요하면 부르시겠지.'

드디어 평화로워진 아덴 공작가였다.

***

-이…, 일 년?! 아니, 일 년은 지나친 거 아니냐….

로제타가깊이 잠든 사이 미카엘은 통신용 수정구슬을 통해 알렉시스에게 통보하고 있었다. 로제타를 데리고 그 섬으로 가서 1년간 안 나오겠다는 얘기였다.

"전쟁터에서 3개월을 허비해 버렸으니 당연합니다. 3년도 아니잖습니까? 신혼의 한 달은 1년과 같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자제한 겁니다."

자제는 개뿔!

알렉시스는 수정구슬 너머로 보이는 미카엘의 눈이 돌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제 부인을 다시 만나고는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공작령은 어쩌고! 그동안도….

"폐하의 명에 의해 대부분 비워 놓았던 공작령이니, 제가1년 자리를 비운다 해도 문제없이 돌아갈 것입니다."

미카엘의 말대로 미카엘은 황제의 명으로 여러 임무를 수행하느라 아덴 공작령을 비우는 때가많았다. 그때마다 유능한 대리인들이 그의 역할을 대신 수행해 주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중요한 서류는 미카엘이 결제하기는 했다.

-그것도 한계가있잖느냐!

-미카엘, 로제타의 허락은 받은 거야?

곁에서 아네트가묻자 미카엘은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받았습니다."

미카엘의 얼굴은 당당했으나 황제 부부는 믿는 눈치가아니었다. 저거, 저놈…. 정신없는 틈을 타서 날치기로 허락받은 게 분명하다고 속닥거렸다.

그동안 속을 썩이던 흑막이 자하르임이 밝혀졌고, 전쟁까지치러 그들을 처리했으니 이제 여유로워진 것은 사실이었다.

-로제타의 허락을 받은 게 맞는다면…. 들어줘야죠. 신혼이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1년이라니….

아네트의 말에 알렉시스는 누그러진 듯은 했으나 여전히 내키지않는 눈치였다. 여러모로 쓸모가많은 동생이었다. 유능하기도 하고 영리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당장은 며칠 휴가를 줄 테니, 1년을 쉬는 것은 좀 생각해 보고….

"저희 부부 사이의 일에 왜 폐하의 허락이 필요합니까?"

-얌마! 그래도 귀족들 정기 일정에는 참석해야 할 거 아냐! 네가공작이지황제냐!!

"쳇."

미카엘의 불손한 태도에 알렉시스는 쯧쯧쯔…, 하고 혀를 찼다. 저런 태도를 보이면서도 알렉시스는 미카엘이 절대 황제가되지않으려 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황제가되면 더 바쁜 데다가, 피할 수 없는 직무가많으니까. 제가사랑하는 부인과 같이 지낼 시간이 부족하다면서 일찌감치 제 자식에게 황위를 물려줄 놈이었다, 저건.

-발레르 소공작이 협약을 맺고 돌아오면…. 승전 무도회를 열 거야.

-그건 절대 참석해야 한다! 다른 나라의 왕족들도 올거야. 국왕 본인이 온다고 한 곳도 많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미카엘의 태도를 보아하니 이대로 로제타를 데리고 섬에 틀어박히고 싶은 모양이었다. 알렉시스는 끙 하고 신음했다.

-공작부인에게도 따로 초대장을 보낼 테니, 초대장 빼돌릴 생각 마라. 내가사람을 보내 확인할 거야.

로제타라면 귀족의 의무라 생각하고 반드시 참석할 것이다. 그걸 알기에 초대장을 보내도 몰래 빼돌릴 작정이었던 미카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미카엘의 모습에 알렉시스는 뒷목을 잡고 싶어졌다.

***

승전 무도회날이 가까워지자 많은 이들이 라스탄으로 향했다. 라스탄에서 타국의 귀빈을 초청하여 무도회를 여는 일은 드물지않았으나, 이렇게 많은 나라와 동맹이라는 형태로 얽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라스탄은 교역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동맹을 맺을 이유가없는 나라였다. 모든 것이 풍족했고, 나라가넓기에 자급자족이 가능했다. 거기다 뛰어난 마법사들을 보유하고 있어 나날이 번창하고 있었다.

알렉시스는 라스탄이 이 풍요로움에 취해 태만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많은 마법사와 기사, 학자들을 배출하고 국가의 부가백성들을 발전하게 했다. 그것은 나아가나라의 부로 돌아왔다. 소득이나 소출이 늘어남에 따라 세금의 양도 자연히 불어났으므로.

풍요로운 열매에는 많은 벌레가꼬이기 마련이었으므로, 현재 알렉시스는 라스탄에 붙으려는 안팎의 벌레들을 쳐내는 중이었다.

공교롭게도 로제타와 관련된 일로 많은 귀족들이 처단되었고, 남아 있는 자들도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자하르를 정벌한 것도 타국에 본을 보이는 일이 되었다.

'이제 후계자만 생기면 되는데….'

미카엘이 자하르에서 긁어모아 온 나머지자료까지다시 확인했지만, 알렉시스의 저주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었다.

예상했던 바였기에 실망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저주를 푼다 해도 아네트와 헤어질 것도 아니니, 그가평생 자손을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미카엘에게 자식이 생겼으면 한다만….'

당분간은 신혼이니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다고 할 만한 미카엘이었다. 그도 로제타도 젊으니 아직 많은 날이 남아 있을 터였다.

사실 알렉시스와 아네트도 매우 젊었다. 한쪽은 소드마스터고 다른 쪽은 정령왕과 계약한 정령사여서 보통 사람보다도 노화가늦었다. 미카엘 부부 또한 그럴 것이다.

양위가이루어진다고는 해도 매우 늦게…, 미카엘 부부가자식을 낳아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을 때까지미뤄질 가능성이 컸다.

'그래. 어떻게 얻은 행복인데, 한참은 더 누려야지.'

그들 형제는 이미 많은 고통을 겪었다. 알렉시스의 곁에는 아네트가있어 행복한 순간이 많았지만, 미카엘에게는 마음을 줄 배우자가없었다. 그런 점에서 알렉시스는 로제타에게 매우 감사하고 있었다.

미카엘이, 제 품에 안겼던 그 작은 아이가누군가를 사랑하고 온전히 그에게 마음을 빼앗겨 행복해하는 날이 올줄은 몰랐다.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는 있었으나, 자라며묘한 성정을 보이는 미카엘을 보고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폐하, 율리아의 티르 여왕이십니다."

신하를 거느린 푸른 머리카락의아름다운 여인이 어전으로걸어왔다. 알렉시스는 점잖게 예를 표시했다. 우아하게 인사를 하는 여왕은 아직 여왕이라기보다는 왕녀였을 때의버릇이 남아 있는지 움직임이 가벼웠다.

젊고 아직은 어리기 때문일 것이다. 검을 들고 전장에서 활약했다고 하니, 모든 것이 아직은 어색할 때였다.

옥좌가 익숙해질 만큼 여왕으로군림하다보면 저 또한 익숙해지리라 생각했다.

알렉시스는 적당한 인사말로여왕을 환영했다. 그녀의뒤로또 다른 나라의왕족이 들어오고 있었다.

덕분에 외국의귀빈을 위한 궁전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한동안, 몇 개의궁전을 제외하고는 사용하지 않은 곳이라, 며칠 전까지도 새로단장하느라 소란스러웠다.

오늘 드디어 손님을 모시게 되었으니, 황실의궁인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바르하 국의…."

시종이 목소리 높여 다음의왕족을 소개하는 것에 알렉시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정신 사나워라….'

로제타도 미카엘과 같이 수도로올라온 참이었다. 그들 또한 황궁에 있는 새벽궁에 머물고 있었다.

알렉시스와 아네트의건강 상태에 대해서 확신할 수는 없다지만, 타국의많은 귀빈들까지도 다음 대 라스탄은 미카엘이나, 그의자손이 이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타국의왕족들이 가장 친교를 맺고 싶어 하는 이가 이들 부부였다.

황제인 알렉시스나 아네트와도 친분을 쌓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들은 위치가 위치인 만큼 접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반면 미카엘이나 로제타는 황족이기는 해도 공작 부부이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물도 많이 날아왔고 초대장이며 편지도 쌓이고 있었다.

그들 또한 황제만큼이나 만나기 어려운 줄도 모르고.

바빠서가 아니었다. 바쁘기는 바쁘지만, 그것 외에도 할 일이 너무 많아서였다. 가령 어제 새벽궁에서 짐을 풀자마자 침대에서 한 일이라든가….

"로제타, 그선물이 저보다마음에 드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직도 가운 차림의미카엘이 로제타의곁으로와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익숙한 듯이 로제타를 들어 올려 기어이 제 무릎에 앉혔다.

처음에는 로제타도 몇 번 저항하기는 했으나 미카엘이 너무 좋아해서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로제타의엉덩이가 내리누르자마자 일어서는 그것은 그러려니 할 수 없지만.

"더, 더는 안 돼요! 이따가 승전 무도회에 참석해야 하잖아요. 아침에도 잔뜩 하시고는…. 으응…."

"승전 무도회는 저녁때이지 않습니까. 지금은 아직 점심때도 되지 않았어요. 부인께 제 것을 맛보여 드릴 시간은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로제타도 아직 가운 차림이었기에 미카엘의손이 수월하게 그녀의옷자락 사이로파고들고 있었다. 벌써부터 제 가운의허리끈을 푸는 미카엘에 로제타의얼굴이 달아올랐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그날부터 미카엘은 시도 때도 없이 로제타를 안고 싶어 했다. 그동안의나날이 오히려 참고 있었던 것이라는 듯, 밤낮으로사랑해 주는 것에 로제타는 매일 지나칠 정도로느끼고 있었다.

"아앙, 안 돼…. 다, 다리가 풀려 버리잖아요……. 싫어…."

"마법으로회복시켜 드리면 되잖습니까. 제 이것도 로제타 안으로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그대의남편을 살려 주세요."

가운 자락 너머로미카엘이 슬슬 제 페니스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이미미카엘이 무엇을 해도 느껴 버리는 몸이 된 로제타는 약한 신음을 흘리며 울상이 되었다.

미카엘에게 안기는 것이 기분 좋기는 한데, 요즘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네? 나의로제타……."

로제타가 도망이라도 갈 거라 생각했는지, 양팔로꼬옥 끌어안고는 로제타의목덜미에 입 맞추며 속삭였다. 미카엘의입술도, 손길도, 그의목소리와…, 하다못해 매일 그녀를 괴롭히는 엉덩이 아래의욕망까지도 로제타가 사랑하는 것들이었다.

"그, 그럼 조금만…."

또 홀딱 넘어가 버리는 로제타에 미카엘이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네. 조금만…. 그대를 조금만 사랑하는 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제해 보겠습니다."

속삭이며 미카엘은 로제타의가운 자락을 젖혔다.

***

로제타의힐난하는 눈빛에 미카엘은 웃음을 터트렸다.

"제가 부인을 조금만 사랑하는 일이 가능할 리 없잖습니까."

드레스 차림의로제타를 끌어안고 미카엘이 소곤거렸다. 달콤한 목소리는 간지러울 정도로다정했지만, 로제타의기분은 전혀 풀어지지 않았다. 그의치유 마법으로치료를 받았음에도 다리가 후들거렸으니까.

거기나 허리가 아픈 것은 아니었지만, 누가 잡아 주지 않으면 넘어지기 쉬운 상태였다.

승전 무도회인데! 외국의귀빈들도 많을 텐데!

로제타는 미카엘이 일부러 그랬을 거라고 확신했다. 로제타가 그외에 다른 남자들과 춤이라도 출까 봐 사전에 막아선 것이다.

'누가 그럴 거라고….'

미카엘의부인 사랑은 이제 꽤 유명한 것이 되고 있었다. 아직도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이는 있지만, 그런 사람들조차도 조심했다.

괜히 로제타를 건드렸다가 미카엘의보복을 받고 싶지 않아서.

이그네시아 공작가의반역으로엮여, 로제타를 괴롭혔던 영애와 그영애의가문은 죄다멸문을 당했으며, 이자벨 카룰리아스 또한 추악한 꼴로죽임을 당했다.

흑태자 로드리고 또한 미카엘 황자의손에 죽었으며, 자하르도 남아나지 않았다.

이제 대륙에는 자하르라는 나라가 지워진 지 오래였다. 동맹을 맺은 나라들이 알렉시스의요구 조건을 철저하게 들어준 탓에, 그왕조의역사는 모두 파괴되어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거기다로제타에게 해를 끼치려 했던 성녀의추종자들도 아름아름 모습을 감췄고, 로제타를 암살하려 모의했던 친귀족파들도 사라진 뒤였다.

밧줄로엮어 새우잡이 배에 태웠다든가, 마법사들의인체 실험 재료가 되었다는 등, 소문도 제각각이었다.

심지어 성녀 또한 법황의부름으로교단의총본산으로떠났다고 했다. 그녀의추태에 크게 실망한 법황이 직접 그녀를 교육시키겠다고 나선 것이다.

법황과 친분이 있는 귀족의말에 따르면, 어느 산맥에 있는 신전에서 나이 지긋한 신녀들의감시를 받으며 수련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듯 로제타에게 적대적이었던 자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나니, 무성한 소문과 추측이 난무하는 것이다.

"아덴 공작! 아덴 공작부인…."

이제는 여왕이 된 왕녀가 로제타들에게 다가왔다. 전장에서 단 한 번도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기에 직접 얼굴을 보려고 온 것이다. 그는 미카엘에게 큰 도움을 받은 터라 한 번쯤 인사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폐하."

로제타는 호기심 반, 긴장 반으로티르 여왕을 바라보았다. 그녀의등장에 많은 이들의시선이 집중되었다. 전장에 도는 소문에 대해서는 그들도 알고 있었을 터였다.

"드디어 얼굴을 보게 되는군! 그대의도움은 잊지 않고 있다."

"과찬의말씀이십니다."

미카엘은 생각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그렇게 대꾸하며 로제타의눈치를 보았다. 그로서는 여왕에게 도움을 주기는 했으나, 딱히 친해지고 싶지는 않은 상대였다. 소문 때문에 조금이라도 로제타가 오해할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티르 여왕은 돌려서 말하는 법이 없는 이였다.

"공작과 나 사이를 두고 하는 말에는 신경 쓸 것 없다. 나는 오늘로공작의얼굴을 처음 보는 것이니까. 그대의남편은 만나기 매우 어려운 자더군."

로제타를 향해 직접 해명해 주는 말에 로제타는 빙긋이 웃었다.

"알고 있습니다. 매우 바쁘신 분이니까요."

미카엘은 이 말에 안도한 것 같았다. 티르 여왕은 그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전장을 주름잡는 이라 할지라도 부인 앞에서는 어쩔 수 없구나! 하긴, 너와 같은 자도 약점 한 가지는 있어야 하는 법이지!"

"제 부인은 약점 같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은 사내로서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미카엘이 능청스레 대꾸하자 티르 여왕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나도 공작부인의환심을 사야겠구나. 그대들은 황제의총애를 받는 자들이니 말이야."

"여기 계셨습니까?"

다가온 로건의모습에 티르 여왕이 눈을 반짝였다. 길버트와 같이 로건도 티르 여왕의후보자 명단에 오른 사내들 중 하나였다. 다만 로건은 순위권 밖이었는데, 그의성품이 여왕의취향과 거리가 먼 탓이었다.

"아아…. 내게 소개시켜 주고 싶은 이가 있다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답하며 로건은 미카엘과 로제타에게 차례로인사를 올렸다. 그는 공작가의자제이기는 하나 공식적인 신분은 백작이었고, 공작 작위를 이을 가능성이 적은 사람이었다.

아덴 공작인 미카엘이나, 공작부인인 데다가 후작이기도 한 로제타에게는 함부로말을 놓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공작님, 공작부인. 오래간만에 뵙겠습니다."

"그래."

"오래간만이에요. 발레르 경."

로건은 두 사람의대답을 들으며 힐끗 로제타의눈치를 살폈다.

발레르 공작가는 최근 황실과의관계를 우호적으로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로신경을 쓰고 있었다. 로제타도 발레르 공작부인이 여는 파티에 여러 번 초청을 받고 있었다.

황비에게도 그리하는 모양이었지만, 아무래도 나이대가 많지 않아서 가까워지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남은 것은 미카엘과 친분을 쌓는 것이지만 쉽지 않는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사촌 여동생을 내세워 친분을 쌓아 보려 했지만 이 또한 여의치 못했다.

로건은 아쉬운 눈빛을 전하며 티르 여왕을 데리고 저쪽으로가 버렸다. 분위기로보아 발레르 공작가의사람을 소개시켜 주려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어?'

그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람을 보고 로제타는 놀랐다. 제럴드였던 것이다.

'잠…, 티르 여왕한테 제럴드를 소개시키겠다고?!'

길버트와 제럴드는 큰 카테고리에서 비슷한 타입이라고는 할 수 있었다. 티르 여왕보다신분은 낮기는 하나, 로제타의오빠이니 라스탄과 돈독한 관계를 맺을 수도 있고, 휘르센 백작가로서도 딱히 손해 보는 결혼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로건이 어느 틈에 제럴드와 저렇게 친해진 거지?'

제럴드는 로건의속셈을 까맣게 모르는 표정이었다. 티르 여왕이 공개석상에서 길버트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으니, 그와 맺어지겠거니 하는 모양이었다.

"……."

에라, 모르겠다. 알 게 뭐야?

결혼하면 라스탄 밖으로나가는 것이기는 해도 로제타가 알 바는 아니었다.

휘르센가는 로제타가 자식을 더 낳아서 잇게 할 수도 있었다. 차라리 로제타의자식으로가문을 이으면 백작이 아닌 후작 작위를 잇게 할 것이니, 더 나은 결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휘르센 가문의이름이 사라져도…. 난 상관없기도 하고.'

힐끗 셀리나와 엔디미온이 있는 방향을 보자니, 셀리나는 벌써 기미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엔디미온은 큰 관심이 없는 눈치였고, 셀리나는 흥분한 것이 눈에 보였다.

로제타는 주변으로눈길을 돌렸다. 시선이 지나가는 곳마다로제타에게 아부성을 띤 웃음을 보이는 이가 많았다.

미카엘의서슬에 차마 다가오지는 못하고 눈으로만 인사하는 자들이었다. 그런 이들 사이에서 로제타는 패트릭을 보았다.

경직된 표정이었으나 패트릭은 애써 눈인사를 보냈다. 약간 얼굴이 붉은 것이 그날 일에서 아직은 벗어나지 못한 표정이었다.

로제타도 가볍게 인사를 보냈다. 아마도 이제 패트릭이 먼저 알은체를 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맞지.'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는 손길에 고개를 돌리니 미카엘이 웃고 있었다. 미카엘은 악단이 있는 방향으로눈짓을 하며 속삭였다.

"이제 곧 음악이 바뀔 텐데…, 한 곡은 추셔야죠?"

"누구 때문에 춤도 못 추고 있는데요?"

로제타가 삐죽거리자 미카엘이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저 때문이지요. 그러니 제대로잡아 드릴 겁니다. 부디…, 저와 춤을 춰 주시겠습니까, 부인?"

허리를 굽혀 로제타의손등에 입 맞추며 정중히 요청하는 것에 로제타의표정이 누그러졌다.

"정말 잘 잡아 주셔야 해요?"

"절대 놔드리지 않을 테니, 염려 마세요. 내 사랑."

다정하게 속삭이며 미카엘은 로제타와 같이 플로어로향했다. 다정한 한 쌍의모습에 멀리 황제 부부가 흡족한 듯 웃었다.

-<집착 황자에게 사로잡혔다!> 본편 마침

외전1. 8개월의 약속

로제타는 매년 한 달간은 섬에서 둘만의 휴가를 보내기로 약속하고, 미카엘과의 약속을 1년에서 8개월로 줄일 수 있었다.

미카엘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은 로제타도 기대하고 있던 바였다.

많은 국가적인 사안이 지나가고 라스탄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미카엘은 믿을 만한 이에게 아덴 공작가의 대행 업무를 맡겼다.

물론 그상황에도 중요한 서류는 섬으로 보내 주기로 되어 있었다. 물자 등을 수송하기 위한 순간이동 마법진을 아예 설치했으므로, 수월한 일이 되었다.

그래서 로제타는 소환수나 배가 아닌, 순간이동 마법진을 통해 섬으로 돌아왔다.

섬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미카엘의 사역인형들은 여전한 모습으로 성과 섬을 관리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님. 주인마님."

사역인형은 여전히 무표정이기는 하나 깍듯한 태도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로제타는 미카엘과 같이 침실로 돌아가 씻고, 옷부터 갈아입었다. 같은 집이라고는 해도 사역인형들만 있는 이곳이 좀 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보는 눈이 없었으니까.

사역인형들은 로제타와 미카엘이 어떤 행동을 해도 주의를 기울이는 법이 없었다. 그들이 관심을 줄 때는 두 사람이 무언가를 명령할 때였다. 그외에는 제 할 일만 했고, 할 일이 끝나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미카엘은 얇은 드레스 차림의 로제타를 끌어안고 눈을 반짝였다. 그는 이곳에서 로제타와 하고 싶은 일들이 참 많았다.

막 결혼식을 치렀을 무렵에는 관계를 맺은 지 얼마 되지 못해서, 더 개방적인 곳에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의 로제타는 부끄러워하기는 해도 따라 줄 것 같았다.

이곳은 둘만의 파라다이스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미카엘은 이를 위해 섬의 마법진과 방어막을 보강했다. 원래도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안쪽에서도 그게 티가 나도록 바꿨다.

이제는 안쪽에서 바라봐도 그저 투명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일부가 오로라 빛으로 반짝이도록 했다.

로제타가 혹시나 관계 중에 불안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두근두근하고 기대하고 있는 것은 로제타 또한 마찬가지였다. 미카엘과의 관계는 달콤한 열락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크흠. 모처럼이니까…. 이곳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을 해 볼까요?"

"뭔데요?"

두 사람이 나중에 아이를 가지게 되면 지금처럼 휴가를 오기 쉽지 않을 터였다. 최소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그러했다. 그래서 미카엘은 이 장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고 싶었다.

"우선은…."

***

미니스커트가 허벅지 위에서 살랑거렸다. 조금만 세게 걸어도 스커트 자락이 팔랑거려 엉덩이가 다 드러나 보였다. 로제타는 거울 앞에서 제 모습을 살펴보고는 얼굴을 붉혔다.

'미카엘이 부탁해서 입어 보기는 했지만….'

역시 너무 짧았다. 이곳의 치마는 기본이 발목까지 덮이는 것이었기에, 이런 초미니의 스커트가 있는 줄은 몰랐다. 틀림없이 따로 주문했을 거라는 생각에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다 입었습니까?"

들어오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미카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로제타는 화들짝 놀라서 스커트 자락을 눌렀다. 돌아보는 행동에도 스커트가 팔랑거리며 떠올랐던 것이다.

"미, 미카엘님…."

"역시 잘 어울리는군요."

로제타가 입은 것은 짧은 검은 치마와 흰 블라우스로 된 메이드복이었다. 미카엘이 부끄러워하며 이 옷을 내밀었을 때 로제타는 이런 취향이냐고 물었었다.

미카엘은 당황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게 아니라! 로제타가…. 이걸 입으면 귀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확히는 한입에 집어삼키고 싶을 만큼 먹고 싶어질 것 같았다. 그예상은 적중해서 미카엘은 흥분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태였다.

"이 모습을 나만 보고 있어서 다행이에요. 귀여운 메이드님."

이것 외에도 로제타에게 입혀 보고 싶은 의상이 참 많았다. 앞으로 8개월이나 남았으니 그것을 하나하나 입혀 가며 즐겨 볼 작정이었다.

반대로 미카엘도 로제타가 원하는 차림을 하고 있었다. 로제타가 바란 차림은 미카엘의 것보다 간결했다. 앞을 풀어헤친 셔츠와 바지를 입을 것. 앞머리는 약간 물에 젖어 헝클어진 채였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아예 상의를 벗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 아뇨! 단추가 다 풀려 있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로제타의 열성적인 태도에 미카엘은 피식 웃었다.

'부인이 원하신다면 기꺼이 하겠습니다.'

그래서 미카엘은 로제타가 바란 그모습이 되어 있었다. 로제타가 어설프게 설명한 것보다도 더 선정적인 모습이었다.

"부인은…, 마음에 드십니까?"

다가온 미카엘이 천천히 확인하라는 듯이 멈춰 섰다. 로제타는 잠시 숨을 멈추고 미카엘을 바라보았다. 그는…, 마냥 근사했다. 이런 남자가 자신의 남편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서로 원하는 것을 말하기는 했어도, 어쩐지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옷도 차려입었는데…, 역할극이라도 할까요?"

"역할극이요? 음. 주인님이라고 불러 주기를 원하세요?"

공작저의 시녀나 하녀들은 미카엘에게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렇게 부르는 것은 남자 고용인들뿐이었다. 미카엘이 싫어해서.

반면 지금은….

"어…."

얼굴이 확 달아오른 듯 미카엘이 조금 고개를 숙였다. 로제타의 그말에 자신이 반응할 줄은 스스로도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 저…. 그건…."

곤란한 것인지, 부끄러운 것인지 모를 표정으로 미카엘이 당황하는 것이 보였다. 로제타는 그런 미카엘의 모습이 좋아서 눈을 반짝였다.

"주인님?"

"지금의 저를 놀리는 건 부인께 좋지 않을 텐데요?"

다가온 미카엘이 로제타의 블라우스에 달린 리본을 풀며 말했다. 겨우 리본의 끈을 잡아당겨 블라우스에서 빼냈을 뿐인데도, 앞섶이 크게 벌어지며 가슴이 드러났다.

"앗. 지금 이러는 건 치사해요."

"저도 가슴을 다 드러내고 있잖습니까? 그리고…."

미카엘은 로제타의 팔을 뒤로 해서 리본으로 결박했다. 어떻게 묶었는지, 팔을 풀 수는 없는데 또 아프거나 많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부인은 제 포로인 겁니다. 저는 사악한 마법사여서, 사랑스러운 메이드에게 한눈에 반해 아무도 없는 이 섬으로 잡아 온 거죠."

원작1의 미카엘이 아이리스에게 했던 짓이라 미묘해졌다. 물론 원작1에서 미카엘이 아이리스를 가둔 것은 섬에 있는 성이 아니라, 공작령에 있는 자신의 저택이었다.

'그게 원래 미카엘의 취향이구나.'

큰 상관은 없었다. 로제타는 지금의 이것보다 더 엄한 모습을 나중의 미카엘에게 시킬 작정이었으니까. 그것에 미카엘이 싫어할지, 부끄러워할지…, 아니면 좋아할지는 모를 일이었다.

'왜인지 엄청 좋아할 것 같지만….'

"그럼 저…. 저를 어떻게 하실 건가요?"

로제타가 뺨을 물들이며 묻자 미카엘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차마 로제타에게 손을 대지 못한 채로 물었다.

"속옷은…."

"입지 않았어요."

미카엘도 로제타도 그렇게 하기로 합의했다. 서로 약속한 사항이었으나, 말을 내뱉자마자 두 사람 다 얼굴이 빨개졌다.

다가온 미카엘이 로제타의 턱을 잡아 고개를 들게 했다. 포개지는 입술은 촉촉하고 감미로웠다. 미카엘은 로제타의 입술 틈새로 제 혀를 미끄러트려 부드럽게 핥았다.

쪽- 하고 입술이 떨어졌다가 다시 포개지는 것도 감미로웠다. 미카엘은 로제타의 혀를 옭아매며 고개를 기울였다. 자연스레 로제타의 허리에 미카엘의 팔이 감기고, 나머지 한 손이 그녀의 허벅지로 움직였다.

'앗….'

속옷을 입지 않았으니 허벅지를 따라 올라온 손이 자연스레 그녀의 엉덩이를 그러쥘 수 있었다. 맨살에 닿는 손가락이 부끄러웠으나 로제타는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이 섬은, 이 섬에 있는 성은 그들 말고 아무도 없는 것이다. 누구도 신경 쓸 필요 없다.

'그, 그래도 부끄러운 것 같은….'

미카엘은 퍽 로제타의 몸을 만지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의 엉덩이를 주무르는 것도, 몸의 다른 부분을 만지작거리는 것도 미카엘에게는 행복한 일 중의 하나였다.

엉덩이를 주무르다 다리 사이로 손을 미끄러트리자 로제타가 화들짝 놀라는 것 같았다.

'기분 좋았을 테지.'

그가 건 주문은 아직도 유효하고, 로제타는 과거와는 달리 그를 상당히 많이 사랑하고 있었다. 그감정이 미카엘의 것만은 못하지만, 두 배로 증폭된 쾌감은 여전할 것이다.

"…젖었네요. 아직 엉덩이밖에는 만지지 않았는데."

화르륵 익어 버리는 로제타의 얼굴에 미카엘은 짓궂은 시선을 보냈다. 미카엘은 자신의 타액으로 젖은 로제타의 입술을 빨며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음란한 메이드로군요. 어떻게 귀여워해 드릴까."

로제타의 다리 사이에서 떨어진 손가락이 그녀의 치맛자락 속에서 나왔다. 손가락에 묻은 미끈하고 투명한 액체가 그녀의 쾌락을 증명하고 있었다.

미카엘은 보란 듯이 그것을 로제타의 앞에 들어 보이더니 날름 핥았다.

그모습이 꿀꺽 침이 넘어가게 유혹적이어서 로제타의 얼굴이 더 뜨거워졌다. 더는 빨개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로제타가 머뭇거리고 있자 미카엘이 로제타를 침대에 넘어트렸다. 그러며 로제타의 다리를 크게 벌려 마법으로 고정했다. 애초에 지나치게 짧은 스커트였으므로, 침대에 누워 다리를 벌린 것만으로도 로제타의 은밀한 곳이 전부드러나 보였다.

"하. 움찔거리네요. 제가 핥아 드리기를 바라는 겁니까?"

활짝 벌어진 다리 사이로 젖은 꽃잎이 가늘게 경련했다. 긴장 때문일지도 몰랐다. 부끄러운 생각에 로제타는 다리를 버둥거렸으나, 마법으로 고정된 무릎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히양!"

미카엘이 혀를 내밀어 갈라진 틈새를 길게 핥아 올렸다. 로제타는 움찔 허리를 튕기며 달콤한 자극에 반응했다. 미카엘은 참을 수 없다는 눈으로 로제타의 꽃잎을 벌리고는 씰룩거리는 속살을 마구 핥아대기 시작했다.

"아, 아아……. 미카엘 님…. 으응!"

"귀여운 로제타, 내가 얼마나 당신의 이곳을 사랑해 주고 싶었는지, 몰랐을 겁니다. 오늘부터 당신은 내것이에요."

짜놓은 시나리오에 충실하게 미카엘이 속삭였다. 두툼하고 뜨거운 혀가 속살을 음탕하게 파헤치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하으…. 아하아앙……. 으으응! 아앗…."

간지러운 듯 달콤하기 짝이 없는자극에 로제타는결박된 몸을 꼬았다. 혀가 안으로 들어와 속살을 비벼대는느낌에 녹을 것 같았다.

"아흥…. 앗, 좋아……. 흐으앙……."

"아, 로제타……."

더 괴롭히며 귀여워해 줄 생각이었는데, 쾌락을 담뿍 즐기고 있는로제타를 보고 있자니 참을 수 없어졌다. 미카엘은 급히 바지를 내리고는제 페니스를 드러냈다.

안을 기분 좋게 해 주던 혀가 빠져나가자 로제타는무슨 일인가 싶어 미카엘을 바라보았다. 미카엘은 씩 웃었다.

"미안해요. 로제타가 너무 귀여워서…. 벌써 한계가 왔네요."

"앗."

무서울 정도로 커진 페니스가 불끈거리는것이 보였다. 핏줄이 불거진 그것을 기대 어린 눈으로 바라보자 미카엘이 당장에 허리를 가져갔다.

"아아아, 앗!"

출발하기 전에 아덴 공작저에서도 사랑을 나누었으니, 전희는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단숨에 제 안을 꿰뚫는미카엘의 열기에 로제타는허리를 튕겼다.

제 것을 꽉 조이는로제타의 속살에 미카엘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전쟁에서 돌아온 그날부터 느낀 것이었지만, 로제타의 안이 너무 좋았다. 이전보다도 로제타를 더 사랑하게 되어 이런 것 같다는생각이 들었다.

"크흣…. 로, 로제타……. 흐윽!"

"앗, 아아…. 미……. 미카엘, 님! 아앗! 앗!"

한계까지 밀어 넣어 안을 넓힌 미카엘이 퍽퍽! 쳐대기 시작했다. 안을 질주하는관능적인 쾌락에 로제타는허리를 튕기며 신음했다. 무방비하게 벌어진 그녀의 다리 사이로 거대한 페니스가 오가며 기쁨을 선사하는것이 느껴졌다.

"흐아, 으, 아앗……. 아아아…. 다…. 다리……. 으응, 풀어 주…. 아학!"

"학! 음…. 불편…. 합니까……. 으음…."

로제타는고개를 저었다. 불편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활짝 다리를 벌리고 있는것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미카엘이 너무 마음대로 찌를 수 있는것 같기도 하고.

"그럼…. 안 됩니다, 지금은……. 내포로니까…."

"에? 앗, 아! 아! 아!"

격렬해진 허릿짓에 로제타의 허리가 튀어졌다. 미카엘은 로제타의 허리까지도 마법으로 고정하고는그녀의 속살을 달콤하게 유린하기 시작했다. 마구 밀려드는음탕한 자극에 로제타의 입이 벌어졌다.

"아앙! 앙! 아앗, 아! 그만…. 머릿속이……. 아학!"

허리와 무릎이 고정되어 종아리를 버둥거리고 발끝에 힘을 주는것밖에는할 수 없었다. 엉덩이가 미카엘이 쳐대는허릿심에 가늘게 앞뒤로 흔들렸다. 속살이 찌걱이는소리를 내며 미카엘의 것을 조이고 있었다.

"힉! 으앙, 앙! 앗! 아아아…. 벌써……. 아앗!"

상체가 활처럼 휘어졌으나 미카엘의 허릿짓은 멈춰지는일이 없었다. 재차, 삼차로 이어지는절정에 로제타는바르르 떨며 휘어지고 튕겨졌다.

"하으으, 아앙! 앙…. 싫어……. 처음부터 이런…. 아흐흑! 아흐아앙!"

마침내미카엘 또한 절정을 맛보며 사정했을 즈음에는로제타는축 늘어진 채로 여운에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너무 깊고 진한 절정을 맛본 탓에 거기가 아직도 움찔움찔 떨리고 있었다.

"하아…. 로제타……. 이제 시작이니까요."

늘 침대에서 사랑을 나누었으면서, 이런 장소에서까지 첫 섹스를 침대에서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미카엘은 로제타에게 진득한 키스를 퍼붓고는다시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아직 너무 많은 날들이 남아 있었고, 미카엘은 그날들을 모두 로제타의 몸에 깊은 쾌락으로 새겨 줄 작정이었다.

***

"아학! 응, 아앙! 미카엘 님! 아앗! 아앙!"

복도에서 엉덩이를 내민 채로 미카엘을 받아들이며 허덕였다. 복도에는아무도 없었지만, 장소가 거기라는것만으로도 기분이 이상했다. 더욱이 이곳이기에 마음껏 야한 소리를 낼 수 있었다.

"하아…. 로제타……. 너무 조이는데요. 그렇게 여기가 좋습니까? 처음도 아닌데…."

신혼여행으로 왔을 때도 이런 복도에서 한 적이 있었다. 정확히 여기는아니었지만, 성의 곳곳에서 서로를 탐닉했었다.

"아, 몰라요. 미, 미카엘 님이 자꾸 그런…. 하아앙!"

기분 좋은 곳만 골라서 찔러대고 비벼대면서 왜 조이냐고 물어봐도 곤란했다. 미카엘은 흔들리는로제타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페니스를 꿈틀거렸다.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반응이 돌아오는것이 사랑스러웠다.

"으음, 버릇 들겠습니다. 공작저의…. 복도에서도, 한번 해 볼까요?"

그러자 로제타가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면 모를까, 공작저에서 이런 짓을 하다니 절대로 싫었다.

미카엘은 그런 반응을 예상한 듯 피식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곳에서 더 듬뿍 즐기도록 할까요?"

"하아, 아앙! 응! 으으응, 아앙, 앙!"

로제타의 허리를 끌어당겨 깊숙이 농락하자 로제타의 교성도 높아졌다. 너무 깊이는안 된다며 흐느끼는로제타를 어르고 달래, 절정까지 맛본 미카엘은 그녀의 안에 사정하며 신음했다.

"하읏, 하읏…. 으음……."

왈칵 쏟아진 정액이 로제타의 다리를 타고 흘렀다. 미카엘은 입맛을 다시며 다시 로제타의 엉덩이를 제 허리로 쳐대기 시작했다. 살이 맞부딪히며 찰진 소리를 내는것도 미카엘의 흥분을 부추기고 있었다.

'더 야한 옷도…, 입어 줄까?'

속옷 없는메이드복에 제법 익숙해진 것 같으니, 단계를 더 높여도 될 것 같았다.

***

"흣, 앗! 아아앙……."

허리에 달랑 금으로 된 허리띠 하나만을 두른 채로, 엉덩이와 앞쪽으로 부드러운 붉은 천을 한 장씩 늘어트린 모습이었다. 그나마 위쪽에는장신구만을 두른 채로, 아무것도 걸치지 못하게 했다.

이건 안 된다고, 이 차림으로는절대 침실 밖으로 못 나간다고 버티는통에, 미카엘은 발코니의 의자에서 사랑을 나누는것으로 만족하려고 했다.

성을 둘러싼 숲이 고스란히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탁 트인 발코니였다. 멀리 섬을 둘러싸고 있는해변과 바다도 엿보였다.

그 발코니에 쿠션이 두툼한 옆으로 긴 의자를 놓고, 그 의자 위에서 로제타를 듬뿍 탐하고 있는것이다. 로제타는미카엘의 허리에 앉은 채로 그를 받아들여 쾌락을 맛보고 있었다.

복도로 나가 주지 않은 벌이라면서, 미카엘은 미약까지 가져와 로제타의 느끼는곳에 바르고 즐겼다.

"본래는홀에서 벌을 주듯 그대를 탐할 생각이었는데, 말입니다."

"읏, 으응! 아흐앙……. 아앗!"

로제타의 안에 깊숙이 파고든 페니스에도 예의 미약이 진득하게 발라져 있었다. 사내에게는효과가 없고 여인에게만 음란한 반응을 이끌어 내는미약이었다.

덕분에 로제타는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미카엘의 품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미카엘은 제 후궁을 귀여워해 주는황제처럼 의자에 앉은 채로 몇 시간이나 로제타를 탐하고 있었다.

뾰족해진 유두를 만지작대는음란한 손길에, 로제타는못 견디겠다며 앙앙 울었다. 몸의 이곳도 저곳도, 모두 지나칠 정도로 느껴져 죽을 것 같았다.

"벌이니까요. 귀여운 로제타…."

"하으응! 앙, 아앙! 앙! 아앗, 아아아!"

미카엘은 로제타의 온몸을 만지작거리며 허릿짓했다. 발코니의 전망을 향해 활짝 다리를 벌린 채로 그를 받아들이고 있자니, 수치심으로 몸이 달아오르는기분이었다.

"부인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것은 나뿐이니까…. 후후……. 마음 놓고 즐기도록 해요. 나의 로제타…."

"아앗!"

정신을 잃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쾌락에 시달리며 로제타는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때까지 미카엘에게 사랑받았다.

***

'아니, 너무 폭주하시는거 아닙니까?'

이번에는이것으로 해 보자는듯이 다음 의상을 들이밀려는미카엘을, 로제타는쫙 째려보았다. 침대에 엎어진 채로 이불로 몸을 둘둘 말고 있는상태였다. 미카엘이 만지기 시작하면 기분 좋아져서 금세 그에게 휘둘려 버리니까!

"어, 로제타. 화났습니까?"

"너, 너무 많이 하시잖아요! 벌써 섬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되었는데, 그, 그것만…."

마치 황제의 허락을 받고 공작저에 틀어박혔던 그때 같다. 전쟁에서 막 돌아왔던 그때에 미카엘은 지난 3개월간 떨어져 있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듯 로제타를 탐하는것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분 좋게만 해서 내버려 두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몇 주 정도가 아니라 장장 8개월간을 섹스만 하면서 보낼 수는없었다!

"그랬나요? 미안해요. 로제타를 8개월이나 독차지할 수 있다는사실에 흥분해서…. 오늘은 다른 걸 하고 놀까요?"

미카엘이 얼른 침대 위로 올라와 이불째로 로제타를 끌어안았다. 상냥한 눈으로 바라보며 달래는말에 로제타의 기분도 스르르 풀어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좋아하는상대인 데다가, 그렇게 느끼게 하는데 싫을 리가 없었다.

로제타가 금세 풀어져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자 미카엘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나갈 줄 몰랐다.

"뭘 할 건데요?"

"수영을…, 가르쳐 드릴 수도 있고. 혹시 승마를 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전처럼 섬을 산책 다닐까요?"

단둘만 있을 수 있는공간이기는하나, 한번 여행 왔던 곳이었다. 빼곡하게 전부를 들여다본 것은 아니어도 드문드문 대강은 살펴봤다.

"음. 수영은…. 수영만 할 거죠?"

"그게…."

"수영만 할 거죠?"

로제타가 반짝반짝 빛나는눈으로 압박을 주었다. 그 눈빛에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짓던 미카엘이 이내굴복했다.

"윽, 네…. 부인께서 원하신다면."

"원해요! 그것 저녁에 침실에서도 할 수 있는거잖아요."

"바다에서 하는건 또 다릅니다만…. 아, 아뇨! 수영만 가르쳐 드릴 수 있습니다! 많이…. 아쉽겠지만요."

눈에 쌍심지를 켜는로제타에 미카엘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러나….

"하읏, 응! 아앙…."

수영을 하기 위해서 따로 맞춘 짧은 반바지와 소매가 없는 셔츠를 입고 물에 들어갔을 것이다. 미카엘과 물장난도 치고, 수영도 배우고, 참 즐겁게 놀았다.

즐겁게 놀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미카엘이 그녀에게 키스하고 있었고, 그의 손이 로제타의 옷 속으로 들어오고, 어찌어찌 하다보니 다시 이 사태가!

'수영은 실수였어!'

해변가에서 바지만 벗어 던진 채로 실컷 미카엘과 즐긴 로제타는 반성했다. 성으로 돌아온 이후에 안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미카엘의 치유 마법으로 체력을 회복한 뒤에 또 잔뜩 해 버리고 말았다.

'이러려던 게 아닌데!'

다행히 다음 날에는 섬에 비가 내렸다. 밖으로 나가 놀 분위기가 아니었으므로, 로제타와 미카엘은 성에 틀어박혀서 그의 선물을 구경하기도 하고, 침실로 돌아왔다.

또 야릇한 분위기가 돌았으므로 로제타는 얼른 카드를 꺼냈다. 트럼프로 카드 게임을 하자는 거였다.

미카엘은 순순히 로제타의 뜻에 따랐다. 처음 몇 판은 잠잠했으나, 게임의 열의를 키우기 위해 소원 내기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섹스는 안된다고 하니, 미카엘은 소원권으로 키스해 달라고 청했고, 자꾸 키스해 주다보니 다시 그런 분위기가 된 것이다.

그들은 카드는 내팽개치고 다시 침대로 올라갔다. 침대 시트가 푹 젖을 정도로 사랑을 나눈 미카엘은 매우 만족스럽고 행복한 모양이었다.

'기분은 좋지만…. 이건 뭔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그러나 그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결말은 같았다. 다른 것을 하면서 분위기 좋게 놀다가 껴안고 키스하게 되고, 그다음은…. 질척하게 뒤엉키고 마는 것이다.

심지어 야외로 소풍을 나가서도 그렇게 되어 버린 탓에, 로제타는 피크닉을 위해 깔아 놓은 천 위에서 미카엘에게 듬뿍 안겼다.

"응, 하앙! 앙! 아아아……!"

저 멀리 풀숲이 흔들리는 듯싶더니 토끼 한 마리가 그들을 힐끗 쳐다보고 사라졌다. 단지 그뿐이었지만 로제타는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졌다.

물론 미카엘이 그것을 허락해 주지는 않았다. 로제타는 천 위에서 큰 대자로 늘어진 채 미카엘의 허릿짓에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다.

질척질척하게 안을 비벼대는 페니스에 죽을 만큼 기분 좋았다.

'으아아아! 창피해!'

그렇지만 미카엘이 껴안아 주는 것도, 키스해 주는 것도 좋았다. 그건 로제타로서는 도무지 거절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미카엘은 키스도 능숙해서, 그저 키스받은 것뿐인데도 아랫도리가 흥건하게 젖을 때도 드물지 않았다.

"많이 부끄러웠습니까?"

음탕한 피크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미카엘이 쿡쿡 웃으며 물었다. 로제타는 토마토처럼 붉어져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피크닉을 위해 깔아 둔 천이 미카엘의 정액으로 흥건해질 때까지 해댔으니,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도 기분은 엄청 좋았다.

"으으~, 이러려고 했던 게 아닌데! 왜 자꾸 이렇게 되는 거예요!"

난처함에 발을 동동 구르는 로제타를 보고 미카엘은 속으로 웃었다. 왜 그렇게 되겠는가? 그녀의 엉큼한 남편이 분위기를 전부 다그쪽으로 몰고 가니 그렇게 되어 버리는 것이지.

미카엘은 웃음을 삼키며 다정히 로제타의 뺨을 보듬었다.

"미안해요. 제가 키스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로제타를 보면 자꾸 껴안고, 입 맞추고 싶어져서…."

"저도 미카엘 님이 키스해 주시는 거 좋은걸요. 그만두지 마세요."

금세 누그러진 로제타가 미카엘의 품에 안겼다. 미카엘은 행복에 오싹한 전율을 느꼈다. 남은 몇 개월도 정말이지 충만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외전2. 성녀의 복수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아이리스의 손에는 대신전의 금지된 서고에서 찾아낸 오래된 문서가 들려 있었다. 그 문서와 같이 발견된 서류에 따르면, 빙의된 자의 영혼을 본래의 육신으로 되돌리는 신성 마법이, 그 문서에 잠들어 있다고 했다.

고대에서 만든 스크롤인 셈이었다.

'이걸 로제타에게 사용하면!'

로제타의 몸에 있는 아이리스의 영혼은 그녀의 본래 육신으로 돌아올 게 뻔했다. 그렇다면 자신도 이 몸에서 튕겨질 테고, 그때로제타의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일명 로제타의 몸을 빼앗을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 나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그만이야!'

이 문서를 발견하고 얼마나 감격했던가! 자신은 역시 이 소설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고문서를 읽고 고대의 스크롤을 손에 넣은 아이리스는 그 즉시 교단의 총본산을 빠져나갈 궁리만 했다.

그동안너무 힘들었었다. 음식도 고기 한 점 들어가지 않은 풀 쪼가리에, 외워야 하고 배워야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지! 거기다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야 하는 생활은 아이리스에 빙의된 진풀잎으로서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이제 그 나날에서 벗어날 수 있어! 미카엘의 사랑은 내 것이다! 아이리스 흉내에는 일가견이 있는 이 몸이란 말씀!'

몸을 바꾼 후에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소설을 완독하고 있는 자신이니 펼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이리스는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서 도망쳤다.

감시라고는 해도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감시였다. 죄인을 감시하는 것과는 다르다. 비록 그 상대가 꼬장꼬장하고 연배가 높은 신녀들이라 할지라도, 아이리스를 성녀라 우대해 주는 이들이었다.

아이리스(진풀잎)는 미리 대신전에서 돈이 될 물건도 훔친 참이었다.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게 된 아이리스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는 할 테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남의 사정 봐주게 생겼어?!'

서브남들도 모두 자신에게 등을 돌렸다. 일편단심으로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마음들이 그녀에게서 떠나간 것이다.

물론 그렇다한들 그 가문들이 지원을 끊은 것은 아니었다. 황실조차 아직까지도 아이리스에게 지원을 해 주고 있으니, 완전히 등을 돌렸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진풀잎은 저 하나만을 향하던 애정이 사라져 버려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미카엘과 이뤄진 후에도 자신을 바라봐야 할 서브남들이 이렇게나 빨리 등을 돌릴 줄은 몰랐다. 심지어 지금은 미카엘과 이뤄지기 전이 아닌가!

'뭐가 잘못되었어. 이래서는 안되는 거라고! 빙의됐으니까, 내가 주인공인 게 당연하잖아.'

수도로 올라올 때까지는 모든 일이 예정대로 잘 흘러가는 것 같았다. 로제타에게 빙의된 아이리스만 아니라면.

'그나저나 로제타의 영혼은 어떻게 됐을까? 조무래기 악녀니까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윤승아의 몸으로 살고 있는 로제타는 승아의 재산을 다까먹고 고생 좀 하고 있었다. 그래도 경력과 기억은 있으니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악착을 떨고 있었다.

그게 자잘한 경범죄라서 그렇지.

반면 진풀잎에 빙의된 아이리스는 잘 살고 있었다. 아버지에 오빠, 엄마의 사랑까지 듬뿍 받으며, 내 딸이 이제야 철이 들었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가족의 사랑을 동경했던 아이리스에게 진풀잎에 빙의된 상황은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고생하기는 했으나, 그녀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이였다.

거기다다정하고 부드러운 성품이 더해져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지금은 대학에 진학해서 처음으로 남자친구도 사귀고 행복해하고 있었다.

반면 아이리스(진풀잎)는 제 가족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의 운명이었다. 이대로 성녀 역할을 계속하기 싫었다.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서 성물을 훔쳐내어 대신전을 탈출했다. 아직 말은 탈 줄 몰랐으므로 산길을 따라 내려가야 했다.

'성물을 훔치는 건 조금 찝찝한데…. 어쩔 수 없지!'

신전이다보니 금으로 되어 있거나, 보석이 박힌 것은 죄다성물이었다. 신에게 바치는 물건이나 그렇게 치장하지, 자신들이 사용하는 물건은 대개 소박했다.

가끔 화려한 장식을 다는 것은 예복이나 마차 정도였다. 그 외에는 의식 때에 사용하는 성물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리스는 정말 열심히 도망쳤다. 신전에서 누군가 따라올까 겁이 났던 것이다. 그러나 신전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아이리스가 성물을 훔쳐 달아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녀가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니 도망 자체를 예상 못 한 것이다. 거기다성녀라 추앙받으며 대우받는 것이 있는데, 성물을 훔치다니! 황당해할 만한 사건이었다.

'이쪽 길이 맞는…. 히익?!'

급하게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던 아이리스는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갈색의 거대한 생명체를 바로 알아보았다.

'곰….'

동물원에 있는 곰 외에 진짜 곰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야생 곰이었다. 다행히 곰은 아이리스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아이리스는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어디든 곰에게서 먼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

묘한 낌새에 뒤를 돌아보니, 소리도 없이 곰이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끼야아아아악!"

아이리스는 비명을 지르며 산을 따라 달려갔다. 곰도 크아앙! 소리를 지르며 아이리스를 쫓아오고 있었다.

그때사냥꾼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이리스는 곰의 뱃살이 되어서 장렬한 삶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녀는 신성력은 대단했으나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서 신성 마법 실력은 형편없었다.

원작2에서는 미카엘과 친해져 그에게 신성 마법의 요령을 익히지만, 여기서는 미카엘과 전혀 친해지지 못한 탓이었다.

사냥꾼은 아이리스의 차림을 보고 그녀가 성녀임을 알아보았다. 아이리스는 사냥꾼의 도움으로 산 아래쪽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성물을 팔았으나, 당연히 제대로 된 값은 받을 수 없었다. 간신히 아덴 공작가로 갈 수 있는 여비만을 받은 아이리스는 짐마차를 얻어 타고 가까운 도시로 갔다.

도시로 가야 루긴까지 가는 마차를 찾을 수 있어서였다.

그렇게 자잘한 고난과 사람들의 호의를 받거나, 사기를 당하며 아이리스는 루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성녀복을 챙기기를 잘했지!'

성녀라는 것을 알아본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무료로 여관에 머물게 해 주는가 하면, 밥값을 대신 내 주고 마차에 태워 주는 귀족도 있었다.

홀로 루긴으로 향하는 것을 성녀님이 순례 여행길에라도 오른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미안한 감도 있지만, 진짜 아이리스를 되돌리기 위함이니까! 로제타의 몸에 깃들어 있는 아이리스의 영혼이라면 성녀의 역할을 아주 충실히 잘 해낼 거라 보았다.

더불어 자신은 미카엘과의 결혼생활을 어떻게든 유지하며 그와 행복한 여생을 보낼 작정이었다.

루긴에 도착한 아이리스는 어느 마부의 도움으로 아덴 공작가까지 갈 수 있었다. 마부는 고맙게도 마차 삯을 받지 않았다.

이따금씩 순진한 성직자에게 사기를 치려는 이도 있었으므로, 그런 자들의 친절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아이리스는 제가 배운 것을 써먹어 축복을 빌어 주고는 아덴 공작가의 성 앞에서 내렸다. 문지기는 아이리스를 알아보았다.

"…약속 없이 왔지만, 공작부인께 전하거라. 정말 중요한 할 말이 있다고."

자못 비장한 어조로 아이리스가 고하자 문지기가 동료 한 명을 본성으로 보내는 것 같았다.

아이리스는 응접실로 안내되었다. 성녀가 수행원이나 호위기사 없이 문 앞까지 왔으니 보통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듯싶었다. 아이리스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때는 늦은 시간이었고, 공작저의 성에도 불이 밝혀져 있었다.

시종은 아이리스를 방으로 안내하고 자리에 앉도록 권했다. 시녀들이 다가와 아이리스에게 간단히 손과 얼굴을 씻을 물과 수건을 주었다.

아이리스는 그제야 자신의 꼴이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창피함과 동시에 분노가 밀려왔다. 대신전에서 탈출한 것은 그녀의 자의였으나, 다른 누구에게라도 책임을 묻고 싶은 기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녀는 상냥했고 차를 드실 것이냐고 물었다. 그런 대접이 간절했던 아이리스는 기꺼이 차를 주문했다.

시녀는 아이리스의 반응을 보고 공복임을 알았는지, 3단 트레이가 딸린 차를 준비했다.

달콤한 케이크와 과자, 샌드위치가 놓여 있는 접시에, 아이리스는 예의를 차리는 척 열심히 배를 채웠다.

시녀들은 아이리스가 편히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운 참이었다.

'이제 조금만 남았어. 오늘 이후로는 저 사람들도 내 사람들이 된다!'

아이리스는 결의를 다지며 품에서 고대의 스크롤을 꺼내 제대로 있는지를 확인했다. 스크롤은 매우 낡은 것이었지만 질기고 튼튼해 보였다. 찢을 때에 상당한 힘이 필요해 보일 정도였다.

"…안에 계십니다."

바깥에서 시녀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아이리스는 얼른 스크롤을 품에 숨겼다. 실내복 차림에 가운을 걸친 로제타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그녀의 모습이 완벽한 공작부인의 자태 그대로인지라 아이리스는 심술이 났다.

저건 내 모습이어야 하는데!

"이 늦은 시간에, 수행원도 없이 어쩐 일이십니까?"

로제타는 아이리스의 소식을 사교계에 도는 소문으로 알고 있었다. 성녀 수업에 진전이 없어서 법황이 한숨을 쉬고 있다고 했다. 아무리 엄청난 신성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를 사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공작부인의 신변에 관한 일입니다. 중요한 일이니 시녀들을 물러 주시겠습니까?"

아이리스의 진지한 말에 로제타가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낌새가 음흉해 보이기는 했으나 지금의 로제타에게는 빛의 정령왕이 있었다.

"그러지요."

로제타가 시녀들을 힐끗 쳐다보자 그녀들은 알아서 물러났다.

응접실 문이닫히고로제타는 자리를 권하며 소파로 다가갔다.

"앉으시지요. 제 신변에 대한 게 무엇…."

이즈음 아이리스는 품속에 숨겨 두었던 스크롤을 꺼내고있었다. 스크롤의 종류는 알 수 없으나 자신을 해치려고한다는 판단이든 순간, 먼저 나선 것은 빛의 정령왕이었다.

【이간악한!!!】

로제타의 몸에서 튀어나온 빛의 정령왕이날갯짓으로 제 깃털 하나를 쏘아 보냈다. 황금빛 깃털이화살보다도 빠르게 스크롤에 박히는 듯싶더니 화악! 푸른 불꽃이일어나 삽시간에 타들어 갔다.

아이리스가 스크롤을 찢으려고손을 옮긴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안 돼! 꺄아악!"

기겁하며 스크롤에 붙은 불을 꺼 보려고했지만, 정령의 기운으로 공격받은 고대의 스크롤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여 귀퉁이만 남았다.

아이리스는 울음을 터트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기사들이방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물었다. 그중에 미카엘이없는 것은 이런 사태를 예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저 성녀라는 것이, 스크롤로 로제타를 공격하려 했다!】

뒤늦게 정신을 수습한 아이리스는, 제 행동이어떤 것인지 파악했다. 당장에 검을 뽑아 드는 기사들의 모습에 아이리스는 기겁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아니에요! 나는 그냥…. 그냥 아이리스의 영혼을 원래 자리로…. 흐흑…."

사람들이성녀가 미친 게 아닌가 의심스럽게 보는 가운데, 로제타는 대강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이기심과 뻔뻔한 책략에는 기가 막혔으나 측은하기도 했다.

"잠시 나가 있거라."

"위험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기사가 걱정스러운 듯 묻자빛의 정령왕의 호통이이어졌다.

【내가 곁에 있는데, 내 계약자가 위험할 성싶으냐!】

"실례했습니다, 정령왕이시여. 그럼 문밖에서 대기하고있겠습니다."

선두에 선 호위기사의 명령에 다른 기사들 또한 방 밖으로 나갔다. 시녀와 하인들 또한 방을 비우자아이리스는 훌쩍이며 로제타의 눈치를 보았다.

탁.

문이닫히는 소리에 로제타는 아이리스에게로 몸을 돌렸다.

"아이리스의 영혼이라니? 무슨 의미입니까? 지금 거기 계시는 분은 성녀님이시잖습니까?"

"시, 시치미 떼지 말아요! 당신은 로제타가 아니라아이리스잖아요! 난 다 알고있어! 아니면 원작이이렇게 훼손될 리 없으니까…."

"……."

"나, 난 해치려던 게 아니었다고요. 그냥…. 당신을 원래 몸으로 돌려보내 주려고온 것뿐인데…. 너무해."

"원래 몸이라? 그러니까 그 몸을 내게 주려 했다?"

로제타가 묻자아이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리스의 눈에서 연신 닭똥 같은 눈물이떨어지고있었다. 로제타는 그 눈물이진짜 똥 같다고생각했다.

"…그럼 이몸은 당신의 혼이들어가고?"

되묻자아이리스는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로제타가 힐난의 눈으로 보자아이리스는 발끈했다.

"어, 어차피 이몸이진짜 당신 몸이잖아요! 당신 걸 받아 가라는 것뿐인데…."

"틀렸습니다. 왜 그런 망상을 하시는지는 모르나 저는 로제타이고, 아이리스라는 이름의 평민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거짓말! 그럴 리 없어요!"

"거기다…. 당신 얘기를 듣고있자니 참으로 뻔뻔하고탐욕스럽기 그지없군요. 남의 몸으로 실컷 이남자, 저 남자농락하면서 즐기다가, 흥미 떨어지니까 돌려준다고요?"

"벼, 별로 농락한 적은…."

또르르 눈을 굴리는 아이리스의 모습에 로제타는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럴드, 내 양오빠가 그 어장 속의 물고기 중 하나였는데, 아니라고?"

홱 아이리스의 앞으로 걸어간 로제타가 아이리스의 양 뺨을 꽈악 꼬집었다. 원작2에서 진풀잎의 엄마가 그녀를 야단 칠 때 많이했던 동작이었다.

"너만 세상의 주인공이고, 너만 행복해져야 해?!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을 궁리만 하지 말고, 니 인생 니가 책임지라고!!"

"아야, 아야야야!"

아이리스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로제타를 건드리지는 못했다. 빛의 정령왕이서슬 퍼런 눈빛으로 곁에서 지켜보고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머리털을 쥐어뜯고싶었지만, 명색이성녀였다. 로제타는 분이풀릴 때까지 아이리스의 얼굴을 쥐고흔들어 주고는 놓아주었다. 그리고기사들을 불러 아이리스를 끌고가게 했다.

***

다음 날.

공작가의 한 방에 감금되어 있던 성녀는 루긴에 있는 대신전으로 잡혀갔다. 공작가의 연락을 받고자초지종을 들은 대신관은 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다시는, 다시는 이런 일이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번 일에 대해서는 제발…."

신전과의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함구해 달라는 얘기였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미카엘은 그럴 생각이없는 모양이었다.

"신전에서 적절한 처벌을 한다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미 교단에서도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 아이리스였다. 하필이면 성물을 팔아 여기까지 온 데다가 아덴 공작부인을 해치려 하다니…. 법황도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

아이리스는 성녀인지라대신전의 지하 감옥에는 갇히지 않았다. 그러나 신전의 초라한 기도실에 갇혀서 교단의 총본산으로의 압송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대신전의 누구도 아이리스를 동정하지 않았다. 성녀의 몸으로 성물을 팔아치운 데다가, 짝사랑 상대의 부인을 스크롤로 해치려 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법황은 이사실이밖으로 새어 나갈세라루긴의 대신전으로 얼른 마차를 보냈다. 그리고아이리스를 다시 교단의 총본산으로 불러들였다.

"…언젠가는 바뀌실 줄 알았습니다! 여신의 선택을 받으신 분이니까요! 그러나 이무슨 무도한 일입니까! 성물을 훔치고! 아덴 공작부인을 해하려 하다니! 이것을 어느 교단에서 용납할 것이며, 여신께서 성녀님을 어찌 생각하시겠습니까?!"

80대였으나 어린 소년처럼 보이는 용모의 법황이아이리스를 꾸짖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아이리스도 할 말이많았다.

"나도 되고싶어서 성녀가 된 게 아니라고요! 더는 그런 공부도 하고싶지 않고, 여기도 싫어요! 허어엉…."

아이리스가 엉엉 울면서 하소연을 했으나 여느 때와는 달랐다. 누구도 아이리스의 응석을 들어 주지 않았고, 그녀를 달래려는 이또한 보이지 않았다. 냉랭한 분위기에서 사람들 모두 깊은 한숨을 쉴 뿐이었다.

"정 뜻이그러시다면…. 신성력을 내어놓고성녀의 자리에서 물러나시겠습니까?"

"법황님!"

법황이그렇게까지 말할 줄은 몰랐던 듯 신관들 몇몇이기겁하는 것 같았다. 아이리스 또한 울음을 멈추고눈을 굴렸다.

'성녀의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그러면 성녀 특수로 누리던 모든 것이사라질 터였다. 황제의 지원과 발레르 공작가, 란스필드 후작가에서 받던 지원도 더는 받을 수 없게 된다.

"그, 그건…."

"이미 양녀로 남작가의 딸이되셨으니, 이후의 삶은 힘들지 않을 겁니다. 신성력을 모두 내어놓고가신다면 이번 일도 불문율에 붙일 것이고, 아덴 공작가에서의 만행도 신전에서 책임지고덮어 줄 것입니다. 그리하시겠습니까?"

리온 남작가는 사정이어려운 가문은 아니었다. 비교적 부유한 축에 속했다. 그러나…. 성녀가 아니게 된 아이리스를 여전히 반겨 줄까?

아이리스는 저를 예뻐해 주던 리온 남작 부부를 떠올렸다. 원작1에 묘사된 그들은 양심적이고선량한 이들이었다. 아이리스를 내치지는 않을 거라는 얘기였다.

"그, 그러면…."

다들 아이리스가 울면서 그건 안 된다고비는 것을 예상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아이리스가 하겠다는 뜻을 밝히자더 놀란 듯싶었다.

법황 또한 반 정도는 그것을 기대하고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잔뜩 화가 난 것을 누른 채로 날을 잡자고했다. 여신께 청하여 허락을 받아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었다.

***

아이리스의 몸에 들어 있는 것이진풀잎이기 때문일까? 여신은 신성력을 되돌려 받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이는 성녀로서의 자격을 거두어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사람들은 또 한 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매우 큰 일이었으나, 아이리스는 모르는 것 같았다.

아이리스와 친한 몇몇 신녀가 그녀를 설득하려 했으나, 이미 리온 영애로 돌아가 놀 생각이만만인 아이리스는 신이나 있었다.

드디어 의식 날이잡혔다. 법황과 같이의식장으로 들어간 아이리스는 무언가 잘못되고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이미 때를 놓쳤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단 앞에 나란히 무릎을 꿇고여신에게 기도를 올리고의식을 치렀다.

아이리스는 제 몸에 있는 모든 신성력을 빼앗기는 느낌에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신이내린 축복을 거두어 가는 것과 비슷했다.

의식을 마친 아이리스를 신전의 사람들은 냉정하게는 대했으나 잔혹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아이리스에게 돌아갈 마차와 여비를 내주었다.

아이리스는 신전에서 내어준 사복을 입고마차에 올랐다. 성녀의 복장은 더는 그녀가 걸칠 수 없는 것이되었다.

신전의 덜컹거리는 마차는 길고고된 여행을 의미했다. 교단의 총본산은 산에 있었으니 수도로 가는 길이험하고어려웠다.

며칠만의 길고긴 여행 끝에 수도에 도착한 아이리스는 초라한 모습으로 리온가의 저택으로 향했다.

법황이그녀가 성녀로서 받은 선물을 빼앗아 가지 않을 거라약속했지만 불안했다. 리온가에서도 자신을 쫓아내지는 않을까 불안했다.

"아이리스!"

리온 남작 부부는 의외로 따스하게 아이리스를 받아 주었다. 아이리스는 그제야 자신을 양녀로 받아 준 이부부에게 미안했고, 고마운 마음이들었다.

법황은 약속을 지켰다. 그녀가 받은 호화로운 선물은 여전히 리온가에, 그녀의 몫으로 남겨져 있었다. 소설 속에서 선량하다 묘사되었던 리온 부부는 아이리스의 물건을 탐내지도, 빼앗지도 않았다.

"이제는 정말 잘할게요. 두 분의 딸로…. 노력할 거예요."

자신을 예뻐해 주던 부모님과 오빠 생각이정말로 많이났다. 아이리스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철없던 시절을 후회했다.

리온 남작 부부는 황제로부터 어명이내려왔음을 설명해 주었다.

교단과 황실이논의해서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아이리스 리온이생전에 다시 이쪽 대륙을 밟지 않는 것이었다.

"대, 대륙을 떠나라고요?"

너무나 엄청난 말에 아이리스는 덜컥 겁이났다. 수도 밖으로 떠나라는 것도 큰일인데, 라스탄 밖도 아니고대륙을 떠나라고했다니.

두려움에 왈칵 눈물이쏟아졌다. 리온 부부는 아이리스의 손을 잡고위로했다.

"혼자가라는 게 아니란다. 바다 건너 먼 대륙에 라스탄과 교역을 하는 나라가 있단다. 폐하께서는 고맙게도 네 아버지께 사신단의 일원으로 일할 기회를 주셨어."

아마도 평생 라스탄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신성력을 잃은 성녀는 라스탄에서도 수치스러운 존재일 테니.

다른 나라에서, 현대로 치자면 외교관의 자식이되어 사는 것이었다. 현대의 외교관보다는 입장이좋지 않은 편이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네. 노력해 볼게요…."

아직 자신은 없었지만 그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리스는 리온 남작부인의 품에 안겨 남은 울음을 쏟아 냈다.

소설의 주인공은 되지 못했지만 인생은 남아 있었다. 아이리스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 보겠다 결심했다.

외전3. 공작가의 임신

로제타가 임신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황실이 가장 먼저 들썩였다. 경사스러운 소식이었으며, 장차 나라의 대를 잇게 될 자가 생겼다는 소식이기도 했다. 반면 미카엘은 로제타가 안쓰러워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휘르센 백작 부부가 부모로 있다지만, 미카엘이 보기에 그들은 딱히 자식에게 정이 없는 자들이었다. 로제타 또한 그들을 딱하게 생각해서 관계를 끊지 않을 뿐, 그들에게 기대려는 마음이 전혀 없음이 뻔히 보였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들로 하여금 부모님을, 특히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일이었다.

몸을 빼앗긴 채로 자신의 세계와 동떨어진 곳에서 아이를 가졌으니, 얼마나 두렵고 혼란스러울까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에는 기뻐하던 로제타도 점점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거기다입덧을 시작하며 자꾸 그 세계의 음식을 먹고 싶다고 했다.

로제타가 음식을 먹지 못한다고 하니 황제와 황비 또한 근심이 컸다. 그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수석 요리사셋을 아덴 공작가에 보내 주었다. 휘르센 백작부인인 셀리나 또한 로제타를 살피겠다며 아덴 공작령으로 오겠다했으나, 하늘의 보살핌인지 발목을 삐어 오지 못하게 됐다.

신에 맹세코 미카엘이 한 짓은 아니었다.

미카엘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극정성이었다. 그저 로제타에게 얘기만 들었을 뿐인 음식을, 어떻게 해서든 재료를 공수해서 요리사가 만들게 했다.

배추김치, 깍두기는 물론이요, 마른 오징어, 버터구이 오징어, 갈비, 떡볶이, 순대에 온갖 과자와 초코파이, 메로나에 바나나 우유까지 대령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할 만했다.

덕분에 로제타는 입덧을 비교적 수월하게 넘겼다. 빛의 정령왕은 그것이 제 덕이라며 로제타의 몸에 깃들어, 로제타를 살펴 주었다.

【빛의 정령은 모든 생명을 돌보는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쌍둥이들이 태어날 때까지 순탄히, 건강히 자라게 할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

자신만만하게 선언하는 빛의 정령왕의 목소리에 미카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쌍둥…. 쌍둥이란 말입니까?"

【그렇지. 아이가 둘이면 쌍둥이라 하지 않느냐? 둘이다.】

미카엘의 얼굴이 삽시간에 흙빛으로 물들었다. 로제타가 아이를 가진 것은 기쁘지만 쌍둥이라니! 산모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반면 로제타는 다른 부분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럼 아들인지 딸인지도 알 수 있나요? 그리고 출산은요?! 출산에도 관여할 수 있다고 말해 줘요, 제발!"

【아이는 딸하고 아들이고…. 순산하게 해 줄 테니, 걱정 말거라.】

"딸하고 아들! 무, 무통 분만! 무통 분만으로 부탁드려요!"

로제타는 무통 분만이 뭔지도 모르는 채로 빛의 정령왕에게 말했다. 빛의 정령왕은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난감한 듯했다.

【무통은 좀….】

"……."

로제타가 바로 울 듯하자 미카엘의 기세가 사나워졌다. 빛의 정령왕 또한 태세를 바꿨다.

【최선을 다해 보마!】

나중에 어떻게 되든지 간에 지금 로제타를 안정시키는 것은 중요했다. 그래서 빛의 정령왕은 이렇게 말하고야 말았다.

***

배는 나날이 남산만 해졌다. 그래서 운신도 어려워졌으나, 로제타는 낳을 때 힘들다면서 운동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그래서 미카엘은 마법으로 로제타가 운동하기 쉽게 몸을 띄워 주는 것을 선택했다.

"나…. 보기 흉하지 않아요? 배가 너무 불렀어."

"배가 나왔어도, 부인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여인이십니다."

로제타는 아이의 태동이 느껴질 만큼 배가 부풀자 차츰 안정을 찾았다. 아이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자신이 단단히 바로 서야 아이를 지킬 수 있다판단한 것 같았다.

미카엘은 그런 로제타가 장하고 사랑스러웠다. 배나 몸의 다른 부분이 트지 않게 열심히 로션도 발라 주고, 산모운동도 빠지지 않고 같이 했다.

아덴 공작가는 로제타 덕분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사업이 순항을 거듭하고 있었다. 로제타가 입덧 때 찾던 그 독특한 음식들을 상품으로 만들어 대박을 친 것이다.

또한 미카엘이 로제타를 위해 만든 여러 가지 산모용품들이 임신한 귀부인들 사이에서 유행을 타서 큰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라스탄의 국민들은 태어날 아기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컸다. 라스탄에서는 임신 중에 산모가 특이한 음식을 찾으면, 특출 난 아이가 태어난다는 속설이 있었다.

그래서 저런 희한한 음식을 찾는 아이는 얼마나 뛰어난 아이일까 궁금해하는 것이다.

미카엘은 이런 소문이 도는 것조차 로제타에게 부담이 될까, 일체 전하지 않았다. 공작가의 고용인들에게도 입단속을 시켜 부담을 주는 것을 삼갔다.

산달이 가까워지자 가장 안색이 안 좋아진 것은 미카엘이었다. 로제타 앞에서는 태연한 척했으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황실에서는 벌써 황궁 의원 여럿을 아덴 공작가로 보내서 그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황제는 업무 중이라 오지 못했고, 아네트가 아덴 공작가로 찾아왔다.

로제타는 그사이 아네트와 퍽 친해진 참이었다. 셀리나보다도 아네트가 훨씬 더 정이 갔다. 아네트는 로제타의 몸을 걱정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로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

의외로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로제타는 만삭이 된 이후에는 미카엘이 마법으로 운신을 도와주었음에도 꽤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래서 얼른 낳고 싶어 했다.

낳는 순간은 두려웠으나 빛의 정령왕이 어떻게든 해 주겠거니 했다.

미카엘은 창백해진 얼굴로 로제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로제타가 무심결에 미카엘의 손목을 쥐었는데,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는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그런데도 미카엘은 그저 로제타만 보았다. 끙끙거리며 아파하는 로제타의 식은땀을 훔쳐 주며 다시 그녀를 임신시키면 자신은 세상의 쓰레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로제타, 미안해요. 미안해요…."

로제타는 미카엘이 속삭이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정말죽을 만큼 아파서 눈물이 났다. 이걸 두 번 해야 하다니! 세상은 썩었어!!!

하고 절규하고 싶은 것을, 너무 아파서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러나 빛의 정령왕이 순산을 약속해서인지 진통의 시간은 '비교적' 짧았다. 거기다쌍둥이 둘이 연속적으로 나와서, 로제타가 걱정한 긴 진통 시간은 겪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비교적이었지만 말이다.

"세상에…. 너무 예뻐요, 마님."

다소 짙은 금갈색 머리카락을 지닌 아이들은 미카엘을 꼭 닮아 있었다. 갓난아기인데도 이목구비가 선명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로제타는 지친 얼굴로 아이들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둘이나 낳다니…. 새삼 놀랄 일이었다. 저쪽 세상에서 회사원으로 살 때에는 결혼해서 애까지 낳을 줄은 몰랐었다. 평생독신으로 살 줄 알았는데….

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하혈했다든가, 몸이 안 좋았던 것은 아닌데, 기력과 체력을 소모해서였다.

로제타가 기절하자 큰소리를 지른 것은 미카엘이었다. 아이들은 그 소리에도 놀라지 않고 말똥말똥 제 부모를 쳐다보았다.

황실 의원의 멱살을 잡는 미카엘을 진정시킨 것은 빛의 정령왕이었다.

【애 놀라게! 그러다로제타가 일어나면 뭐라 변명하려고 그러느냐! 로제타는 얌전히 자고 있으니 네가 곁에 있어 줘야지!】

빛의 정령왕이 칭한 애는 그들의 쌍둥이가 아닌 로제타였다. 미카엘은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 침대로 올라갔다. 쌍둥이들은 벌써 유모의 품에 안겨 스르르 잠들고 있었다.

미카엘은 로제타를 다시 살피고 마른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로제타의 손을 조용히 보듬고는 눈물을 흘렸다.

"미안해요, 로제타…. 이런 고생을……."

눈물을 흘리는 미카엘의 모습에 황궁 의원이고 시녀, 유모고 모두 옆방으로 달아났다. 빛의 정령왕은 미카엘이 진정된 것을 보고 다시 로제타의 몸에 깃들었다.

"다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너무 고생했어요."

조심스럽게 로제타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며 미카엘은 울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노심초사한 날이었다.

***

"우!"

오래간만에 조카들을 보러 아덴 공작가를 방문한 알렉시스는 남동생알렌의 머리털을 쥐고 흔들고 있는 트리샤의 모습을 보고 직감했다.

아. 쟤가 내 황위를 물려받겠구나.

아직 조카들의 나이는 0살. 고작 5개월 남짓 되었을 뿐이지만 성향은 분명했다.

트리샤는 알렌이 제 장난감이며 물건을 탐하면 절대 빼앗기는 일이 없었다. 반대로 트리샤가 알렌의 것을 원하면 알렌은 빼앗기고 말았다.

다만 로제타가 안 된다고 하면 곧바로 알아듣는 편이었다. 알렌은 이 부분에 있어서는 다소 늦은 편이었다.

많은 이들이 트리샤가 여자이고, 알렌이 사내라고 알렌이 물려받을 거라 생각했지만, 알렉시스의 견해는 이러했다.

물론 속으로만 생각하고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은 없었다. 일단 쌍둥이들의 생각이 분명해질 때까지는 침묵하고 있어야만 했다.

로제타가 가진 정령의 친화력은 알렌이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래서 알렌은 철이 들기 전부터 바람과 빛, 두 가지 성향의 정령과 친했다. 반면 트리샤는 마법에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미카엘은 조금 당혹스러워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뭐가 되고 싶다고, 우리딸?"

"대마왕! 세계 정복!"

장난감용 작은 칼을 힘차게 흔들며 트리샤가 선언했다. 알렉시스로부터 트리샤에게 황위를 물려주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넌지시 들은 미카엘은 난감해졌다.

지금이야 어리니 별 뜻 없는 말이라 넘어갈 수 있지만, 장차 트리샤가 저걸 진짜로 하게 되면 곤란했다. 특히나 트리샤의 자질이면 나중에 대마왕을 소환하는 것도 가능했다.

알렌은 바람의 정령이 띄워 준 인형을 붙들고 꺄꺄거리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알렌은 로제타의 유한 면을, 트리샤는 일부 난폭한 부분을 닮았다싶었다.

"우리딸…. 대마왕은 조금 힘들지 않을까?"

"대마왕!"

정확한 발음으로 분명하게 뜻을 전했다. 공작부인으로서의 업무를 끝낸 로제타가 총총히 방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의 시선이 엄마에게로 쏠렸다.

미카엘이 꽤 많은 시간을 놀아 주고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우선인 모양이었다. 로제타는 달라붙어 오는 아이들을 안아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이마에 입 맞춰 주었다.

"부인."

어쩐지 응석 부리고 싶은 기분이 되어 다가오자 로제타는 미카엘의 뺨에도 키스해 주었다. 미카엘의 얼굴이 기쁨으로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대마왕? 용사놀이 하는 거야?"

로제타가 묻자 트리샤가 붕붕 고개를 돌렸다. 제 딴에는 젓는다고 저러는 모양이었다.

"대마왕! 대마왕이 될 거야!"

"흐음~, 대마왕이라…. 대마왕은 이빨이 이렇게 자라나 있어 입을 다물기 힘들다던데. 트리샤도 힘들게 되겠네."

"……."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트리샤에게 대마왕은 그저 강한 존재였다.

"대마왕…. 못생겼어?"

"글쎄. 이빨이 날카롭고 이마에 뿔이 나 있다는 소문은 들었어."

놀이방이라 바닥에 앉을 수 있도록 두툼한 카펫이 깔려 있고, 쿠션과 방석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로제타는 방석에 앉으며 말했다. 트리샤는 로제타의 무릎에 앉았다. 고민하는 눈치였다.

"뿔?"

"이렇게 큰 뿔이 나 있다고 하더라고. 엄마도 보지는 못했어. 하지만 이빨보다도 훨씬 큰 뿔이래."

손가락으로 뿔을 만들어 보이며 로제타가 속삭였다. 트리샤의 고민은 깊어진 듯했다. 대마왕은 되고 싶지만, 이빨이 날카로워지거나 뿔이 나는 것은 싫은 것이다.

"…그럼 대마왕 안 할래."

"그래?"

로제타는 동화책 속에 묘사된 대마왕의 모습을 표현한 것뿐이었다. 대마왕이 너무 무섭게 묘사된 동화책은 애들이 무서워할까 봐 뺀 것뿐인데, 대마왕을 인간처럼 생각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그래도 세계 정복 할 거야!"

"호오, 세계 정복?"

미카엘은 그저 귀만 기울이고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트리샤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아서였다.

"그래그래, 귀여움으로 세계 정복하면 인정해 줄게."

"귀여움?"

"귀여움."

로제타가 방긋웃으며 트리샤에게 말했다. 트리샤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으나 로제타의 인정에 힘이 났다.

"귀여움으로 세계 정복할 거야!"

"응응."

장난감 칼을 들며 호기롭게 외치는 트리샤의 뺨에 로제타가 입맞춰 주었다. 그걸 본 알렌이 로제타의 무릎으로 기어 올라와 제 뺨을 내밀었다.

미카엘은 그런 세 사람을 끌어안으며 행복해했다. 오늘도 아덴 공작가는 평화로웠다.

외전4. 공작가의 일상

뒹굴, 옆으로 구르려 했더니 저항을 받았다. 바로 옆에 누워 있던미카엘이 로제타의 허리를 끌어당긴 거였다.

"…제게서 벗어나기는 이른 시간이 아닙니까?"

그랬나? 아무튼 미카엘이 없는 반대편으로 움직이려 했는데, 미카엘에 의해 그의 가슴에 더욱 밀착되고 말았다.

"더 자요…. 이대로 더 있고 싶어."

간지러울 만큼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미카엘이 로제타의 등을 토닥였다. 다정한 손길에 그대로 솔솔 잠이 밀려드는데….

…각하와 마님께서는 아직이냐?

문밖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로제타는 미카엘의 품에 안긴 채로 중요한 일정이 있었나 하고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최소한 공작부인의 일정에는 없었다. 그러니 미카엘 쪽이라는 의미인데….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미카엘의 표정에 점차 짜증이 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미묘하게 입매라든가, 눈매가 달라지고 있었다.

이걸 알아차린 시점에서, 로제타는 자신이 참 미카엘에게 익숙해졌다싶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저것들을 정리하고 올 테니."

감히 부인과 함께하는 아침 시간을 방해한다싶었는지, 미카엘의 기세가 자못 사나웠다. 저들도 여차하면 로제타가 미카엘을 말려 줄 거라 생각하고 저리 뻔뻔하게 나오는 참이었다.

로제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미카엘의 허리를 잡고는 도로 주저앉혔다. 미카엘은 난처한 듯 로제타를 보았다.

"심하게 하지 않을 겁니다. 그저 조금 머리카락 끝만 태울 생각입니다."

"머리카락에 불을 붙인 시점에서 다타잖아요! 머리카락의 강도를 믿으면 안 돼요!"

대부분 결혼했지만, 그렇다고 머리카락이 없어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뜩이나 일이 많아서 부인에게 잔소리를 듣고 있는데, 대머리까지 되어 버리면 소박맞을지도!

"그, 가, 같이 목욕하고 싶으니까…."

"목욕이요?"

로제타를 떼어 놓지 못해 움찔거리던몸이 다시금 침대에 자리를 붙였다. 미카엘은 약간 달아오른 얼굴로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목욕 중에 그…, 해도?"

"응응. 괘씸하니까…. 조금 늦게 출근해도 되잖아요."

미카엘의 구겨졌던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미카엘은 홱 이불을 젖히고는 로제타를 번쩍 안아 들고 욕실로 향했다. 욕실에서 로제타의 온몸을 씻기고 섹스까지 하는 것은 미카엘이 좋아하는 것들 중의 하나였다.

다만 로제타의 허락을 받아야 했기에, 욕심만큼 자주 할 수 없어 섭섭해하던것이었다. 로제타도 변명할 말은 있었다.

미카엘이 원하는 만큼 해 주면 몸이 남아나지 않으니까…. 매일하루에 두 번이나 목욕을 할 수는 없잖은가! 밤에 맨날 하고 아침에도 가끔 하면서!

***

행복한 얼굴로 식사까지 마친 미카엘을 집무실로 보내는 데 성공한 로제타는, 그녀 역시도 공작부인의 집무실로 향했다.

최근 현대의 일처리 방식을 도입하여 직원을 몇 명 더 고용하고 시스템을 바꿨다. 덕분에 로제타는 부쩍 일이 줄어든 참이었다. 그러면서도 돌아가는 상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 자신이 그 시스템을 개발한 게 아니라, 현대의 방식을 옮겨다썼을 뿐인데도, 칭찬을 듣는 것은 자신이어서 기분이 미묘했다.

'이건 뭐…. 어떻게 설명할 수 없으니까.'

몇 시간 만에 결재 서류를 처리하고, 로제타는 다음 달 예산안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제 어느 계절에 무슨 행사가 있고 뭐가 필요한지를 다기억하고 있어 일처리가 쉬웠다.

아덴 공작가는 규모가 엄청난지라 하나의 대기업 같았다. 회사원으로 일했던나날이 이런 방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몰랐기에, 로제타는 조금 기뻤다.

그쪽 세계에서의 노력이 소용없는 것이 된 게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일처리를 마치고 로제타는 쿠키 몇 개와 같이 차를 마셨다. 생각 같아서는 케이크도 같이 곁들이고 싶었지만, 점심 식사 시간이 멀지 않은 때였다.

이제 로제타의 전속 시녀가 된 비비안이 신이 나서 공작가의 시녀와 기사의 소문을 떠들고 있었다. 규모가 큰 만큼 많은 사람들이 상주하고 있기에 그들 사이의 떠도는 소문이나 가십도 굉장히 많았다.

최근 어느 시녀가 애인인 기사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그를 걷어찬 얘기가 화제가 되고 있었다.

'TV가 없으니까….'

그나마 비슷한 공연 매체는 연극이나 오페라가 전부였다. 오페라는 거의 귀족이나 돈 많은 상인들의 전유물이라 보통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고 봐야 했다.

그래서 유행을 선도하는 것은 고위 귀족이나 그때 흥행하는 연극이었다. 로제타나 미카엘은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든가, 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최근 루긴의 유행을 선도하는 것은 주로 극작가들이었다.

다른 지방에서는 연극의 여배우들을 희롱하는 귀족들이 있어 골머리를 썩지만, 여기 루긴에서 그런 일은 없었다. 그래서 극단에서도 안심하고 극을 공연하고 있었다.

로제타도 미카엘과 가끔은 연극을 보러 다녔다. 로제타가 좋아하는 연극 류가 스릴러나 추리물이었기에 그런 연극만 봤더니 미스테리물이 유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녀들은 로제타가 로맨틱 코미디에 재미를 붙이게 하려고 열심이었다.

공작 부부가 봤다고만 하면 그 연극은 대개 대박을 치니까. 그러면 비슷한 내용의 연극이 또다시 공연되기 마련이었다.

요즘은 주마다하루 이틀을 제외하고는 죄 미스테리물뿐이었다.

그러나 로제타의 취향은 대쪽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로맨스물은 오후 3~4시까지 하고, 미스테리물은 그 시간 이후에 많이 공연했다.

미카엘도 로제타도 바빠서, 3~4시 이후에나 데이트할 시간이 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따로 짬을 내어 볼 만큼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 로맨스 연극은 아저씨 취향이라….'

차라리 수도에서 유행하는 로맨스 소설 쪽이 로제타의 취향이었다. 그래서 로제타도 시녀들의 노력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점심때가 되자 미카엘이 로제타를 부르러 나타났다. 아침 식사는 대개 침실이나 식당에서 하지만 점심 식사는 다른 장소에서 했다.

볕이 잘 드는 테라스나 온실, 가끔은 발코니로 테이블을 가져와 식사할 때도 있었다.

미카엘 딴에는 로제타가 자신과 매일식사하는 것을 지루하지 않게 신경 쓰는 모양이었다.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언젠가는 자신을 지루해하지 않을까, 조심하고 있었다.

귀부인들과 약속이 잡힐 때면 밖에서 따로 식사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미카엘과 같이 식사하는 때가 훨씬 많았다.

"로제타."

오늘은 발코니였다. 길게 뻗은 지붕이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고풍스러운 테이블이 옮겨져 있었다. 미카엘은 손수 의자를 빼 주며 로제타를 앉혔다.

"부인의 일정은 어떻습니까? 오늘은 제 일이 일찍 끝날 것 같은데…. 외출할 수 있을까요?"

대개 아침에 서로의 일정을 교환하지만, 미리 데이트 약속을 잡아 놓지 않았을 때는 이렇게 묻기도 했다.

로제타는 기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저도 일이 일찍 끝났거든요."

"그럼 어디로 가 볼까요?"

미카엘이 손짓하자 시종이 다가오더니 테이블 한가운데에, 최근 새로 생긴 카페와 레스토랑에 대한 팸플릿이 쫘악 깔렸다. 공작 부부가 방문했다고만 하면 많은 손님이 몰려들었으므로, 대부분 기꺼이 공작의 시종에게 팸플릿을 내밀었다.

"여기 케이크가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여긴 어떻습니까? 레스토랑 주인이 남쪽 지방의 특선 요리를 잘한다고 하더군요."

팸플릿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식사 후 올라오는 디저트까지 맛있게 음미한 후에 로제타는 주방장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손을 잡고 정원으로 향했다. 지금은 꽃이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아덴 공작가의 성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많았으므로, 정원사들의 노고를 모르는 척하는 것도 아쉬운 일이었다.

다만 꽃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무슨 꽃인지 전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웠다. 로제타는 미카엘과 같이 노란 꽃으로 뒤덮인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달콤하고 상쾌한 향기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미카엘은 터널을 이루고 있던꽃을 살피더니 한 송이를 꺾어 로제타에게 수줍게 내밀었다. 로제타는 그 향기를 맡고는 미카엘의 뺨에 입맞췄다.

미카엘의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미카엘은 로제타의 뺨을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감싸고 입술을 포갰다.

그들이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미카엘은 여전히 로제타를 애지중지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로제타를 행복하게 했다.

"돌아가는 게 아쉽네요. 이대로 모르는 척 저택을 나가서…, 데이트라도 할까요?"

미카엘이 로제타의 손을 감싸 그 손등에 입맞추며 유혹했다. 로제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잠깐의 일탈은 아침에 이미 해 버렸다.

또다시 도망쳐 버린다면 미카엘의 부관인 카일이나, 비서인 로이가 이번에야말로 울음을 터트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늘은 말고 나중에요. 오늘만 날은 아니니까."

로제타는 받은 꽃을 미카엘의 귀 뒤에 꽂아 주며 말했다. 이렇게 보니 참으로 꽃이 잘 어울리는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미카엘을 끌어안으며 진한 키스를 퍼붓자 미카엘의 얼굴에 황홀한 미소가 떠올랐다. 같이 도망치지 못해 아쉬웠던마음이 키스로 조금 달래진 모양이었다.

"그럼 들어갈까요?"

미카엘이 로제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말했다. 로제타는 웃으며 그의 팔짱을 꼈다.

오후 업무는 순조롭게 끝이 났지만 데이트는 나가지 못했다. 외부 순찰을 나간 경비대가 공작가에 도움을 청해 온 탓이었다.

산맥을 넘어 내려오던 상단이 섣부르게 마물의 둥지를건드렸고, 그것들이 루긴의 근처까지 내려온 모양이었다. 미카엘은 그 즉시 공작가의 기사단을 보내어 경비대의 일을 돕게 했다.

상단이 경비대에 신고하며, 제 일행 중에 돌아오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도 말한 모양이었다. 미카엘도 그들의 수색을 돕기 위해 기사단과 합류했다.

로제타도 걱정되어 미카엘과 같이 가려고 했으나 미카엘이 만류했다.

"금방 돌아올 겁니다."

하는 수 없이 로제타는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갔다. 오늘 하지 못한 데이트는 내일로 미뤄야 하는 법이었다. 그래서 내일 치의 일거리를꺼내, 오늘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처리했다.

일을 마칠 즈음이 되자 날이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미카엘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다행히도 상단과 떨어진 일행은 나무 위에 올라가 목숨을 건졌다고 했다.

"나무에 기어오를줄 모르는 마물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물론 항상 공작이 나가 주지는 않았다. 지금처럼 인명이 걸려 있는 경우, 마법사인 미카엘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휘하의 마법사를보내도 되는 일이었지만, 나타난 마물의 종류가 심상치 않은 것이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모두 잘 끝났다는 소식에 로제타는 안심하고 미카엘을 욕실로 들여보냈다. 씻고 나온 미카엘은 소파에 앉아책을 읽고 있는 로제타를보며 웃었다.

"이번에는 새로운 소설이군요. 재미있습니까?"

"재미있어요. 남자주인공이…."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로제타의 말에 귀 기울이며 미카엘이 로제타의 곁으로 와서 앉았다. 로제타는 미카엘의 손에서 수건을 받아그의 머리를말려 주었다.

시녀나 시종을 시키면 되는 일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시되어 버렸다. 로제타도 미카엘도, 상대의 몸에 다른 이의 손이 닿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머리카락은 덜 말랐지만, 미카엘은 로제타의 손을 잡고 수건을 빼앗았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상을 기대해도 될까요?"

바라보며 야살스러운 눈웃음을 보내는 미카엘에 로제타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 아름다운 용모에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어, 어떤 상이요?"

"매일 밤, 저를황홀하게 하고 행복하게 해 주는 상이지요."

말하며 미카엘이 슬금슬금 로제타의 잠옷을 벗겼다. 로제타가 그런 미카엘의 얼굴을, 정확히는 입술을 매만지자 그가 살짝 로제타의 손가락을 깨물고 핥았다.

간지러운 웃음이 터지자 미카엘은 그 틈에 로제타를안아들고 침대로 자리를옮겼다. 곧 행복에 겨운 신음 소리가 침실을 가득 메웠다.

***

드디어 노아가 휴가를떠나고, 로제타가 완전히 시종 일을 물려받게 되었다. 노아의 휴가 기간은 무려 3주였다. 현실에서 노아의 고향은 아덴 공작령에 있는 도시 중 하나였는데, 꿈속에서는 꽤 먼 곳에 고향이 있는 모양이었다.

로제타는 기운차게 미카엘의 전속 시종 일에 돌입했다. 그 첫 번째로….

'음?! 이래도 되는 건가?'

결혼 전의 미카엘은 시종의 시중을 받아목욕을 했을 것이다. 로제타 또한 시녀나 하녀의 시중을 받으며 씻었으니까. 그러나 남장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는 해도 다소 양심에 찔렸다.

'어, 뭐…. 현실에서는 내 남편이니까. 자기 전에도 잔뜩 했고.'

그러고 보니 꽤 긴 꿈이다싶었다. 노아에게 시종 일을 배운 지도 일주일이나 지났고.

이미 욕조에 들어가 있던 미카엘도 로제타가 욕실로 들어오니 당황한 것 같았다.

"…네가 목욕 시중을 들건가?"

단정한 얼굴에 다소 곤혹스러운 표정이 어렸다. 로제타는 혹시 미카엘이 자신이 남장한 것을 눈치챈 것이 아닌가 싶었다.

"불편하시면 다른 사람을 불러올까요?"

미카엘은 잠시 망설이는 것 같았다. 빤히 로제타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결론을 내렸다.

"아니. 너로 충분해."

담담한 미카엘의 얼굴은 로제타로서는 별로 볼 수 없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현실에서는 말이다. 현실에서의 미카엘은 로제타와눈만 마주쳐도 표정이 풀어지고는 했으니까.

사랑스럽다는 시선도, 달콤한 눈길이나 다정한 태도도 사라지고 나니, 로제타는 새삼 자신이 얼마나 미카엘에게 사랑받았었는지를알 수 있었다.

'아, 또 섭섭해졌어….'

조금 시무룩해진 로제타는 심술이 났다. 이건 꿈이 아닌가! 내 꿈인데, 나한테 냉정한 미카엘이라니! 정말 섭섭했다!

"공작님. 씻겨 드려야 하니, 욕조에서 나오시지 않겠습니까?"

로제타는 태연한 낯을 하고 미카엘에게 이렇게 물었다. 미카엘은 또 한 번 당황하는 것 같았다.

"욕조… 밖으로 말인가?"

지금의 미카엘은 한쪽 다리를세워 교묘히 자신의 것을 가리고 있었다. 워낙 커서 잘 가려지지도 않는 것이었지만, 그런 태도가 로제타의 정체를아는 건 아닌지 하는 의심을 키웠다.

로제타는 뭐가 문제냐는 태연한 얼굴로 미카엘을 마주 보았다. 그 정도로 부끄러워하기에는 밤낮없이 시달린 시간이 너무 길었다.

미카엘은 그에 약간 발끈했는지, 순순히 욕조에서 나왔다.

'어…. 좀 큰 듯.'

시종 노릇을 하느라 일주일간 미카엘에게 안기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오래간만에 보니 미카엘의 것은 과연 컸다.

저도 모르게 빤히 쳐다봤는지 미카엘의 얼굴이 목덜미까지 붉어져 있었다.

"너무 빤히 쳐다보는 것 아닌가?"

외전5. if. 미카엘의 진짜 시종이었다면

"잘 자요, 내 사랑."

미카엘의 다정한 속삭임을 들으며 로제타는 나른한 한숨을 쉬었다. 그날 밤은 참으로 집요하게 미카엘의 괴롭힘을 받았던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쾌락에 휩싸였으므로, 로제타는 쉬이 잠들수 있었다.

.

.

.

'로제타….'

분명 목소리는 들리는데, 누군가 날 부르는 것 같은데 미카엘이 아니었다. 공작부인이 된 이후로 그녀의 이름을 부를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므로 로제타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 목소리는…. 부모님은 아니었고, 아네트 황비님도 아니었다. 들어 본 적 있는 목소리인데….

"로제타!!"

로제타는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돌아보았다. 어라? 나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말끔한 차림을 하고 복도에 서 있었다. 평소 자주 입는 실내용 드레스가 아닌 바지 정장…. 시종의 차림이었다.

"로제타, 어디다정신을 파는 거야?!"

노아의 호통에 로제타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충실한 시종인 노아는 죽었다깨어나도 로제타의 이름을 마구 부르는 만행을 저지르지 않을 이였다.

"노아?"

"그래. 공작님은 공명정대한 분이시지만, 너그러운 분은 아니란 말이야. 작은 실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실 때가 있어. 정신 바짝 차려야지."

로제타는 멍하니 노아를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방금 전까지 미카엘의 품에서 자고 있었는데? 이건 뭐지? 꿈?

'아. 꿈인가?'

"정신 바짝 차리라니까! 또 내 말 안 듣고…. 로제타 네가 시종 생활을 오래 했다는 건 알아. 그치만 본성은 처음이잖아. 자칫 실수했다가는…."

이어지는 노아의 잔소리를로제타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로제타는 그저 노아가 이렇게 잔소리가 많은 타입이었나 싶었다.

'어….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내 말 듣고 있어? 공작님의 전속 시종이 되면 일은 힘들겠지만, 봉급도 많이 오르고 네 지위도 올라갈 거야. 너처럼 일을 잘하는 시종이 내 조수가 되어 주면 나도 편하고 말이야."

로제타는 여자라는 것을 숨긴 채로 아덴 공작저에서 시종 일을 한다는 설정인 듯싶었다. 꿈이니 혹시 여자가 아닌 남자인가 싶어 가슴께를눌러 보니, 천으로 꽁꽁 싸맨 가슴의 존재가 새삼 느껴졌다.

'그런데…. 이름이 로제타인데, 아무도 여자인 걸 모른다고?'

과연 꿈이라고 생각하며 로제타는 노아의 잔소리에 귀를기울였다. 이제 막 잔소리가 설명으로 넘어갈 무렵이었다.

"나는 여동생의 결혼식 때문에 휴가를받았어. 당장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사이 네가 일을 제대로 배워 주지 않으면 곤란해."

미카엘은 노아에게 휴가 기간을 넉넉하게 준 듯했다. 고향으로 가는 시간과 오는 시간이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노아는 떠나기 전에 로제타에게 일을 가르치고, 자신을 대신하게 할 생각인 듯했다.

돌아왔을 때 미카엘로부터 괜찮다는 평가를받으면 로제타는 그대로 미카엘의 시종 중의 하나가 되고, 아니면 도로 북쪽 성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우선 노아에게는 여동생이 없었다. 형만 다섯으로 모두 결혼해서 조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로제타는 역시 꿈이구나 싶었다.

길고 긴 잔소리와설명을 마친 노아는 로제타를재촉했다.

"공작님께 인사를드릴 거야. 너를눈여겨보시지는 않겠지만, 실수하면 흠을 잡힐 수가 있으니까…."

로제타는 수긍한 듯 고개를끄덕였다. 귀족들이 시종이나 시녀를눈여겨보지 않는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많은 귀족들이 다른 가문에 세작으로 시종이나 시녀를밀어 넣는 것이다.

"공작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익숙한 문 앞에서 노아가 공손하게 물었다. 집무실 문 뒤에는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들어와."

허락이 떨어지자 노아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로제타 또한 뒤따라 들어가며 안을 살펴보았다. 집무실은 지금과 크게 다를바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책상 앞에 앉은 미카엘이 이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는다는 점이 달랐다.

'조금 섭섭해졌어.'

꿈속에서의 로제타는 귀족이 아니었다. 작은 상점을 하는 평민의 막내딸이었다. 아버지가 재혼을 하면서 집에 머물러 있기 힘들어서 남장을 하고 일거리를찾다가, 우연치 않게도 허버트의 눈에 들어 시종이 된 몸이었다.

'흠. 이런 기억이 제대로 있다니 이상하지? 쓸데없는 디테일 같으니라고.'

"제가 휴가 가 있는 동안 제 일을 대신할 시종입니다."

"로제타입니다. 여,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팔락, 서류를넘기던 미카엘이 눈을 들어 힐끗 로제타를보았다. 그저 스치듯 지나가는 시선일 줄 알았으나, 미카엘은 그대로 로제타를뚫어질 듯 쳐다보았다.

'음?!'

노아의 얼굴에 순간 당황한 표정이 스쳤다. 로제타가 살짝 말을 더듬기는 했으나 그런 것으로 트집을 잡을 미카엘이 아니었다.

그러나 미카엘의 시선은 금세 이전으로 돌아왔다. 그는 다시 서류로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무심한 태도였다.

"가 봐."

"네. 실례했습니다."

노아가 대답하고 로제타를데리고 집무실을 나왔다. 노아는 방금의 상황을 이상하게는 생각했으나, 로제타가 실수했다고 여기지는 않았는지 추가로 잔소리를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로제타의 시종 생활이 시작되었다.

***

'일이 많잖아?! 엄청 많아!'

흑태자나 이자벨의 눈을 속이기 위해 시종 노릇을 했을 때와는 달랐다. 그때는 하는 시늉만 하고 노아가 전부 했었지만, 지금은 일을 배운다는 핑계로 노아의 감시를받으며 미카엘의 시종 노릇을 하고 있었다.

일은 생각 외로 많았다. 그저 미카엘의 시중을 드는 것인데도 그랬다.

'봉급이 높은 데는 이유가 있었구나.'

로제타가 아덴 공작가의 안주인이었기에 봉급이 얼마나 되는지는 다꿰고 있었다. 아덴 공작가는 공작가들중에서도 봉급이며 대우가 좋은 편에 속했다.

'아니지. 다른 곳에도 이 정도로 일은 시킬 것 같은데….'

그저 아덴 공작가에서 적절한 대우를해 줄 뿐. 로제타는 시종 일은 힘든 일이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노아는 미카엘이 까다로운 주인이라 평했지만, 그렇지만도 않았다. 로제타가 무언가 실수를해도 한 번 화내는 일 없이 그저 넘어가 주었던 것이다.

미카엘은 실수한 로제타를힐끗 쳐다보고는, 그녀가 그 실수를수습할 때까지 그저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그래서 로제타는 처음의 잦았던 실수도 만회하고, 차츰 시종 일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앗, 아, 네! 너, 너무 커서! 으아아! 죄송합니다!!"

당황한 나머지말이 헛나왔다. 로제타의 얼굴에도 화르륵 불이 붙었다. 미카엘은 할 말을 잃고 고개를 돌렸다.

"…됐으니 얼른 씻어 주기나 해."

로제타는 모든 실수의 원흉인 입을 다물고 거품부터 충분히 냈다. 미카엘의 팔부터 씻겨 나가기 시작하자니 기분이 묘했다.

'오래간만이다.'

미카엘의 피부에 닿는 것도, 이 몸을 만지는 것도 그랬다. 현실에서는 매일 그의 팔에 안기고 만지고 있었으나, 꿈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어느 쪽이 현실이고 어디가 꿈인지분간이 가지않았다.

'이게 현실이면 어쩌지?'

만약 그렇다면 로제타는 남장을 한 시종으로 아덴 공작저에 근무하며 미카엘이 다른 여자와 선을 보고 결혼을 하는 것을 지켜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로제타는 괴로운 생각이 들었다.

'내 현실이 꿈인 거면….'

미카엘과 결혼하여아덴 공작부인이 된 현실이 진짜라는 증거가 필요했다. 로제타는 문득 미카엘의 등으로 손을 옮기며 그가 민감하게 반응하던 몇몇 곳을 떠올렸다.

지금의 그는 여전히 여성에 대해서는 담백한 상태였다. 연애는커녕 애인도 없었다. 이쪽은 리디아와 약혼한 적도 없는 데다 춤을 추는 것도 싫어해서, 여자의 손을 잡은 횟수도 드물 것이다.

'아마 자신의 성감대도 모르겠지.'

로제타는 미카엘의 넓은 등에 비누칠을 하며 그가 좋아하는 곳을 스윽 어루만졌다. 파들! 미카엘의 몸이 반응을 보이는 게 느껴졌다.

"공작님?"

로제타는 뚝, 시치미를 떼고 미카엘을 불렀다. 미카엘은 방금의 자극에 당황한 것 같았다. 노아가 목욕 시중을 들었을 때는 이런 기분이 들지않았는데, 로제타의 손은 곤란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무슨 속셈이지?'

미카엘은 처음 소개받았을 때부터 로제타가 여자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이름도 로제타이니 알아볼 수밖에 없잖은가!

그가 의혹을 품게 만든 것은 주변의 반응이었다. 분명 로제타라 부르면서도 로제타가 여자라고 인식하지않았다. 미카엘을 제외한 모든 이가 그러했다.

그래서 미카엘은 로제타가 현혹 마법을 사용했을 거라 판단했다. 그를 제외한 공작가의 모두가 걸려들 정도였으니, 엄청난 능력을 가진 마법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마법사라면 내버려 두는 것은 위험했다. 반대로 섣부르게 자극했다가는 다른 사람들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미카엘은 그래서 로제타의 정체를 밝히지않고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자극하지않기로 생각하고….

그러나 로제타는 미카엘의 예상과는 달리…, 허술했다. 실수도 많고, 도대체 어떻게 아덴 공작가에 시종으로 취직했는지모를 정도였다. 미워할 수 없는 점은 그래도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꿍꿍이는 보이지않는데…. 거기다 마법사로서의 자질도 없어 보이고.'

그렇다면 더더욱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미카엘은 노아가 휴가를 가는 것을 기다려 찬찬히 뜯어보리라 생각했다. 감시하는 노아가 사라지면 본색을 드러내지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모, 목적은 나였던가?!'

제 몸을 야릇하게 쓸어 올리는 손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기분 나빠서가 아니라 로제타의 손길이 자극적이라서였다. 이렇게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생각해보면 드문 일은 아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그에게 접근하는 영애들은 흔했으니까.

이미 로제타의 인적 사항을 따로 조사하게 시켰던 미카엘은, 로제타가 부인할 수 없는 평민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으…."

로제타의 상대적으로 작고 부드러운 손이 미카엘의 옆구리를 쓸었다. 겉으로는 씻는 시늉을 하고 있었으나, 애무하는 것을 모를 만큼 눈치가 없지않았다.

미카엘은 벌겋게 얼굴을 물들였다. 분명 불쾌하게 생각해야 하는 순간인데도…. 창피하고 당황스러운 감정 사이로 기쁘다는 마음이 있었다.

"읏, 아…."

로제타는 미카엘이 간헐적인 신음을 토해내면서도 거절하지않자 좀 더 대범하게 움직였다. 이건 자신의 꿈이 아니던가. 거기다 미카엘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내 남편 내가 좀 만진다는데 어때서!'

미카엘은 로제타가 이렇게 만져 주면 굉장히 기뻐했었다.

허리를 지분거리며 미카엘을 괴롭히던 손이 그의 엉덩이로 내려왔다. 미카엘이 자주 그랬던 것처럼 로제타가 그의 엉덩이를 움켜쥐자, 기어이 미카엘의 페니스가 섰다.

"……."

"……."

꿈속임에도 여전히 무시무시한 크기를 자랑하는 그것에 로제타는 할 말을 잃었다. 미카엘의 얼굴을 슬쩍 훔쳐보자니 더할 나위 없이 붉어져 있었다.

로제타가 찔리는 것이 많아서 슬그머니 손을 떼자 미카엘이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허…, 허벅지."

"네?"

"마저 씨, 씻어 줘야지."

목소리 끝이 부끄러움으로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로제타는 떼구루루 눈을 굴렸다. 슬슬 더 만지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반대로 만지고 싶었다. 일주일이나 손대지못한 몸이 아닌가!

"그,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로제타의 손이 떠나가는 게 아쉬워 마저 씻으라 시키기는 했으나, 미카엘은 로제타가 무릎을 꿇자 당황했다. 낮아진 그녀의 눈높이에 그의 페니스가 고스란히 들어올 것이므로.

살짝 붉어진 얼굴로 그의 페니스를 보는 로제타에 미카엘은 수치심에 도망치고 싶어졌다. 그러나 여기서 굴복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했다.

'어디, 어디까지하나 보….'

"흐…."

허벅지로 내려온 손이 그의 다리를 매끄럽게 어루만지자 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미카엘은 제 것이 더욱 팽창하자 당황스러웠다. 원래도 이렇게 커지는 줄은 알았지만, 평소보다도 더 무섭게 달아오른 것이 눈에 보였다. 거의 배에 닿을 듯했다.

"윽, 크흐…."

그런 와중에도 로제타의 손길은 감미로웠다. 미카엘은 달뜬 표정을 숨기지못한 채로 그런 로제타를 바라보았다. 정말 나를 좋아하는 걸까? 그래서 이런 짓을…. 로제타의 자그마한 한숨에도 미카엘의 가슴은 쿵쾅거리고 있었다.

저 조그만 입술에 입술을 맞대고 싶었다. 새어 나오는 숨결을 빼앗고, 저 새빨간 혀를 그녀가 헐떡일 때까지맛보고 싶었다.

오른쪽 다리를 끝내고 왼쪽 다리마저 끝낼 즈음이 되자 선단에서는 새하얀 액체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로제타가 힐끗 훔쳐보자니 미카엘은 수치심 가득한 얼굴로 한 손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느끼지않으려 했겠지만, 미카엘이 로제타의 몸을 모두 아는 것처럼 로제타도 미카엘이 어떻게 만져 주면 반응하는지알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만져 주면 갈 것 같은데.'

팽팽하게 흥분한 미카엘의 페니스는 보기에도 딱할 정도였다. 그래서 로제타는 손끝으로 미카엘의 분신을 부드럽게 훑어 주었다.

순간 불시의 기습을 당한 미카엘의 몸이 화들짝 튀었다.

"흐앗?! 으헉…."

절정을 느낀 듯 그대로 사정했다. 끈적한 백탁액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비켜선 곳에 무릎을 꿇고 있던 로제타의 몸에도 튀었다.

"아……. 아…."

여운으로 바르르 떨던 미카엘은 뒤늦게 제가 처한 상황을 깨닫고 확 붉어졌다. 수치심이 밀려온 모양이었다.

미카엘이 노려보는 눈길에 로제타는 너무 심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우와앗! 화났다! 이제까지중에 제일!!'

로제타가 어떤 실수를 해도 화내지않던 미카엘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꿈이니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 거기도 씻기려고…. 흐, 흐르기에…."

변명이라고 내뱉은 말도 겨우 그거였다. 로제타는 제 머리털을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미카엘은 의외로 노려보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그러다가 홱 고개를 돌리고는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여전히 더러우니 마저 씻기든가."

네?

로제타는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렸다가 미카엘의 눈치를 보았다. 미카엘도 힐끗 로제타를 쳐다보고는 다시 홱 고개를 돌렸다. 미카엘의 목덜미며 귀까지빨갰다.

'반응이…, 이상하다? 만져도 되는 건가?'

슬금 손을 뻗은 로제타가 미카엘의 페니스를 쥐자 이번에는 그의 몸이 다시 움찔 크게 반응했다. 차마 이쪽을 쳐다보지는 못하지만 놀란 눈치였다. 마저 씻기라고 했다고 저리도 대담하게 나올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미카엘은….'

이쪽도 어떻게 만져 주면 금방 느끼는지알고 있었다. 현실에서 둘의 결혼 생활은 10년을 넘긴 지오래되었으니까.

손바닥에 다 쥐어지지도 않는 것을 부드럽게 감싸며 조이고 비비자, 미카엘이 크게 당황한 것이 보였다.

"자…. 흐, 으읏! 아…."

거대한 페니스가 로제타의 손아귀 안에서 놀아났다. 로제타는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것을 장난감처럼 만지작거렸다.

거기에는 꿈이라 해도 자신을 좋아해주지않는 미카엘에 대한 원망과 심술이 담겨 있었다. 거기다 어디까지참아 주는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끄으…. 그만, 헉!"

참지못한 미카엘이 또다시 사정해버렸다. 이번에는 로제타가 정면에 있었기 때문인지뒤집어써 버렸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미카엘의 것인 탓에 그리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않았다.

"하아……. 하…."

미카엘은 쾌락에 젖은 멍한 눈초리로 로제타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정액을 뒤집어쓴 로제타의 모습이 묘하게 그의 욕정을 자극했다. 엉망이 되도록 그녀를 탐하고 싶었다.

"이게…."

로제타를 바라보는 미카엘의 목울대가 크게 꿀렁였다.

"씻기는 건가? 아까보다 더…. 더러워진 것 같은데?"

한껏 달아오른 얼굴과 몸과는 달리 미카엘은 제법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점을 지적해올 줄 몰랐기에 로제타는 살짝 당황했다.

"그, 그건 미카엘 님이 자꾸 느끼시니까…!"

"그렇게 주물러대는데, 느끼지않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얼굴이 빨개진 미카엘이 불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에 대해서는 로제타도 할 말이 없었다.

"시중도 제대로 들지못했을 뿐만 아니라……, 주인의 몸을 이렇게까지농락하다니. 대단한 시종이로군. 노아는 뭘 가르친 거지?"

"죄송합니다."

로제타는 재빨리 사과했다. 여기서 더 미카엘의 탓을 해도 소용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카엘은 그런 로제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벗어."

"네? 어, 어째서…."

미카엘이 슬며시 얼굴을 붉혔다.

"그러면 내 정액을 뒤집어쓴 채로 시중을 들겠다는 건가? 내 수치심을 자극하려는 생각이라면…."

"아, 아닙니다! 벗겠습니다…."

로제타는 허둥지둥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옷을 벗으면서도 여자인 게 들통날 텐데, 하는 생각과 꿈이니까 적당히 넘어가지않을까 싶었다.

미카엘은 그저 조끼를 벗고 얼굴을 닦았으면 해서 한 말에 로제타가 전부 벗기 시작하자 당황했다. 정액은 로제타의 얼굴과 조끼에 튄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바지에는 무릎을 꿇고 있어서 오히려 거의 묻지않았다.

'헉….'

셔츠를 벗어 버리고 바지까지끌어 내리는 로제타에 미카엘은 눈 둘 곳을 찾지못했다. 심지어 속옷까지전부 벗었다. 그런데….

'왜 저 천은 풀지않는 거지?'

그 와중에 가슴을 동여맨 천은 풀지않는 게 이상했다. 로제타의 반라를 훔쳐보던 미카엘은 가슴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납작하더니…. 천을 둘러맨 거였구나. 가슴이 없는 줄 알았더니.'

"그 천은 왜 동여맨 거지?"

로제타는 당연히 미카엘이 여자의 몸으로 왜 시종을 한 거냐, 날 속인 거냐는 둥의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물어 온 것은 엉뚱한 것이었다.

'설마…. 내가 남자로 보이나?'

힐끗 제 다리 사이를 살핀 로제타가 다시 미카엘을 보았다. 뭐라고 말하지?

"어. 이, 이건…. 살이 쪄서……. 여, 여성형 유방이 와서 숨기느라고!"

"뭐라고?"

아차 싶었다. 이쪽 세계에서는 여성형 유방이라는 말은 없을 테니까. 현실의 미카엘도 들어 보지못한 말이었다.

"남자가 유방이라니…. 풀어 봐라. 내가 확인해야겠다."

미카엘의 뻔뻔스러운 말에 로제타는 빨갛게 물들었다. 힐끗 눈치를 보던 그녀는 가슴을 동여맨 끈을 천천히 풀었다.

다소 크다 싶은 가슴이 드러나자 미카엘의 뚫어질 듯한 시선이 쏟아졌다. 미카엘은 당황스러우면서도 로제타에게서 눈길을 돌리고 싶지 않았다.

'나도 마법에 걸려 자신을 남자로 볼 줄 아는 건가?'

그 말은 다른 사내 앞에서도 이렇게 벗었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 사실에 미카엘은 불쑥 화가 치밀었다.

"…평소에 다른 기사들의 목욕시중도 이리 들었던 거냐?"

"아, 아닙니다. 기사님들은 목욕시중까지는 받지 않으셔서…."

로제타가 허둥지둥 답하자 미카엘은 조금 기분이 누그러졌다. 그러나 아직 의심은 남아 있었다.

"시종들과 목욕탕을 같이 썼을 텐데? 서로 등을 밀어 주지는 않았던 거냐?"

"저는 가슴이 이래서…. 다른 이에게 몸을 보이기를꺼립니다. 한 번도 다른 사람과 목욕을 같이 한 적이 없습니다. 철이 든 이후에 이렇게 벗은 건 공작님 앞이 처음입니다."

"……."

불쾌했던 기분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로 간질간질한 감정이 차올랐다. 미카엘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로제타를다시 보았다.

"그렇다면…. 내가 어찌 시중을 드는지 가르쳐 주마."

"네? 아니, 그, 그러실 것까지는…."

"그러면 매일, 이렇게 내 목욕시중을 들 셈이냐? 시중 없이는 내가 불편해지니, 이리 와라. 어떻게 씻어 주면 되는지, 보여 주지."

그러나 로제타의 목욕시키는 방법은 죄다 미카엘이 가르쳐 준 거였다.

'자기가 그렇게 만져 달라고 해 놓고는!'

이미 곁으로 다가온 미카엘은 로제타의 팔로 손을 옮겼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손끝으로 로제타의 몸을 씻기는 것에 로제타의 몸이 굽어 들었다.

"하으…. 가, 간지러워요. 공작님…. 으응…."

"이상한 소리 내지 마."

꿈속이라 해도 미카엘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여전했다. 로제타가 움찔움찔 반응하며 몸을 꼬자 미카엘의 허리춤으로는 더 힘이 들어갔다.

"자꾸, 그러면…. 껴안고 싶어지잖아. 가만히 있어."

등으로 손을 옮기며 미카엘이 말했다. 가슴 앞쪽도 씻기기는 했으나 차마 유방은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는지, 어깨와 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하, 하지만…. 아아앙……."

로제타의 입에서 흘러나온 달콤한 목소리에 미카엘은 헉, 숨을 들이켰다. 그의 눈이 혼란스러운 듯이 로제타를보았다.

"그 소리는? 내 손길이 기분 좋은가?"

확 붉어진 로제타가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미카엘은 간절한 얼굴로 로제타를바라보았다.

"싫은가?"

"그…. 그건 아니고……. 앗."

미카엘이 성큼 한 걸음다가왔다. 순식간에 품에 안긴 로제타가 미카엘을 올려다보았다. 미카엘의 손이 로제타의 허리를따라 미끄러졌다. 그가 로제타의 엉덩이를쥐고 자신의 몸으로 끌어당겼다.

그들의 배 사이에 갇힌 페니스가 한층 뜨겁게 부푸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이렇게 껴안는 걸 묻는 것인지, 그의 페니스가 싫은 거냐고 묻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로제타는 뭐든 싫다고 말할 수 없었다.

"조…, 좋아요."

눈을 피하며 고백하자 미카엘의 얼굴이 화르륵 타들어 갔다. 그의 손이 엉덩이에서 떨어져 앞쪽으로 파고드는 것에 로제타의 몸도 파르르 떨렸다.

"거, 거기는…."

"너도 내 거길 실컷 만졌잖아."

"아, 하지만…. 씻기라고 하셨……. 아응…."

거품에 싸인 손이 로제타의 점막을 간질이듯 문질렀다. 로제타가 다리를오므리자 미카엘은 갈라진 틈새로 손가락 하나를밀어 넣었다.

"으응, 미카엘 님…. 아앙…."

"씻기라고 했지, 언제 주무르라고 했나? 씻는다는 건 이렇게…."

"아, 아아……!"

파고든 손가락이 구부러지며 로제타의 속살을 달게 괴롭혔다. 꿈속의 미카엘과 관계하는 것은 처음인데도, 미카엘의 손길이 너무 기분 좋았다.

"점점 녹아내리고 있어. 뜨겁고 부드러워서…. 내 손가락이 녹겠어. 기분 좋아, 로제타?"

"아앙, 앙! 아흑…. 몰라요. 그렇게…. 으응……."

점막이 문질러지는 음탕한 소리에 온몸이 달아올랐다. 고작 꿈속의 일주일간 안기지 못했을 뿐인데도, 벌써 미카엘의 것이 그리워졌다.

삽입된 손가락의 개수가 늘어나며 안도 점점 넓어졌다. 미카엘은 신음하는 로제타를황홀하다는 듯이 들여다보았다. 반쯤 벌어진 입술이 사랑스러웠다.

"로제타…. 키스해도 될까?"

은밀한 곳을 부끄럽게 만져대고 있는 주제에, 키스를물어 왔다. 로제타는 쾌락에 젖은 눈으로 미카엘을 쳐다보았다.

"으응…. 흡?!"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입술을 빼앗겼다. 미카엘은 이것이 처음인 듯 다소 거칠고 조급하게 로제타의 입술을 탐했다. 로제타가 그의 혀를달래며 부드럽게 휘감자 미카엘의 입술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 로제타…."

그녀를안고 싶었다. 정체가 뭐든지 간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제타를흉내 내어 부드럽게 키스하자 금세 녹아내릴 것 같은 달콤한 표정을 짓는 로제타에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두근두근두근!

'이게 사랑인 건가?'

그가 혀를부드럽게 옭아맬 때마다 로제타의 안이 반응하는 것도 사랑스러웠다. 한시라도 빨리 그녀의 안으로 제 것을 넣고 싶다는 생각에 안달이 났다.

"해도…, 될까?"

놀라는 로제타의 눈초리에 미카엘이 유혹하듯 손끝으로 로제타가 약한 곳을 긁어내렸다. 아흑, 하고 몸을 꼬는 로제타의 귓가로 미카엘의 입술이 다가왔다.

"너를더 느끼고 싶다.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아……. 내게 허락해 주면 안 되겠나?"

미카엘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이 현실의 미카엘이 아닌, 꿈속의 그일지라도.

"하아…. 아프게 하지 않으면…. 하으으……!"

안을 달게 괴롭히던 손가락이 속살을 긁어내리며 빠져나왔다. 미카엘이 섣부르게 페니스를들이대자, 로제타는 저를껴안고 있는 그의 팔을 풀었다.

"제가 돌아설 테니까 뒤에서…. 미끄러우니까 다칠 수 있어요."

처음인 그를가르치듯 말하자 미카엘이 머뭇거렸다.

"네 얼굴을 보면서 하고 싶은데…. 절대 떨어트리지 않을 거다."

거절할 거라 생각했는지, 덧붙이는 말에 로제타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미카엘은 정말로 처음하는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그들의 첫 밤을 떠올리게 했다.

"그, 그러시다면…."

로제타는 주위를두리번거리다가 하얀 서랍장을 발견하고 거기에 엉덩이를걸쳤다. 조금 다리를벌리자 미카엘이 금세 다가왔다.

"내 목을 껴안아."

미카엘이 로제타의 다리를벌리며 속삭였다. 로제타는 꿈속이니, 혹시 자신도 처음일까 불안해졌다. 미카엘의 것이 워낙 크다 보니, 처음이면 힘들 것 같았다.

"응…!"

크고도 묵직한 것이 흠뻑 젖은 점막으로 파고들었다. 로제타는 헐떡이며 미카엘의 목을 끌어안았다. 미카엘이 표정을 흐리며 허리를밀어붙였다. 뜨겁고 거대한 것으로 안이 점점 벌어지는 느낌에 로제타의 숨이 거칠어졌다.

'다행이다! 처음은 아닌 것 같아!'

오래간만이라 안이 벅차기는 했으나 끔찍한 고통은 없었다. 그보다 깊숙이 파고들어 오는 그것에 야릇한 쾌감이 배 속을 가득 메웠을 뿐이다.

그대로 허릿짓할 줄 알았던 미카엘은 의외로 잠잠했다. 그는 가쁜 숨결을 흘리며 로제타를쳐다보고 있었다.

'어?'

"미카엘, 님…. 흡?!"

목을 끌어당기더니 집어삼킬 듯한 입맞춤이 이어졌다. 그러면서도 내내 형형한 눈빛으로 잡아먹을 듯이 로제타를노려보고 있었다.

'뭐지?'

그러나 미카엘의 키스는 단기간만으로도 성장했는지, 강렬할 만큼 달콤했다. 그는 로제타를부둥켜안더니 로제타의 엉덩이를끌어당겼다.

'어?!'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위기감이 일었다. 처음이면서 들어 올린 채로 하겠다고?! 거기다 이 몸으로는 오래간만….

"흐아아앙! 미카엘 님! 안 돼!"

"로제타…."

그러나 이미 미카엘은 허릿짓하고 있었다. 체중으로 엉덩이가 내려오며 한층 미카엘의 페니스가 깊숙이 들어오는 것에 로제타의 눈이 커졌다. 찌를때마다 제 것을 무섭게 조여 오는 로제타의 속살에 미카엘의 허릿짓이 거칠어졌다.

"앗, 아아아! 앙 대…. 아앙! 아앗, 아! 아흐! 아아……."

기겁하며 몸부림쳤으나 로제타는 이미 어디로도 달아날 수 없는 상태였다. 미카엘은 로제타를부둥켜안고는 마구 허릿짓하기 시작했다. 로제타가 달콤한 반응을 보이는 곳마다 집요하게 찔러대며 그녀의 교성을 이끌어 냈다.

"흐앙! 응, 아아앙! 아앙……."

흘러넘치는 쾌락도, 로제타의 교성도 모두 사랑스러웠다. 미카엘은 홀린 듯 로제타의 모습을 음미하며 몸을 움직였다. 생에 이렇게 행복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아아…. 로제타……. 으음…. 흐윽……!"

"앗, 싫어! 너무 깊어…. 아흑, 으응! 제발……."

생리적인 눈물이 새어 나왔지만 미카엘은 로제타의 눈물을 입술로 훔치기만 할 뿐, 허릿짓을 멈춰 주지 않았다. 절정이…, 동시에 찾아왔다.

음탕하게 도달하며 늘어지는 로제타를, 미카엘은 간절히 품에 안았다. 사정하면서도 그녀를놓칠 수 없었다.

'아……. 맙소사…. 이렇게 좋다니….'

미카엘은 욕정과 더불어 깊은 소유욕을 드러내며 로제타를보았다. 그녀가 평민인 줄은 알았으나, 상관없다 여겨졌다. 이 여자와 결혼해야겠다 싶었다.

***

정신을 차렸을 때는 미카엘의 침대에 눕혀져 있었다. 가슴도 새로운 끈으로 동여매어져 있고, 옷도 모두 입고 있는 상태였다.

로제타는 미카엘과의 섹스 도중에 정신을 잃었음을 깨닫고 후다닥 일어났다.

"정신이 들었나?"

침실 안에는 미카엘뿐이었다. 그는 소파에 앉아서 서류를읽고 있었다. 서류를내려놓은 그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로제타를쳐다보는 미카엘의 시선에, 로제타에게 익숙한 그 표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온화하고 다정한 표정. 사랑에 빠진 남자의 얼굴이었다.

'응? 이렇게 쉽게? 꿈이라서?'

침대로 올라온 미카엘은 상냥한 눈으로 로제타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며 다소 얼굴을 물들였다.

"미안…, 하다. 처음이라 여유가 없었어. 다음번에는 조금 더 조심하겠다."

"다, 다음번이요?"

로제타가 놀라서 묻자 미카엘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우리 사귀는 거잖아?"

"네?"

정적이그들 사이로 가라앉았다. 로제타가 또르륵 눈을 굴리자 미카엘의 표정이심각해졌다. 로제타의 마음이자신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눈이었다.

"날 좋아해서…, 그렇게만진 거 아니었나? 그, 그런 짓도 했잖아. 나는 당연히 네가 날 좋아해서 안긴 거라고생각했는데?"

"좋아는 하지만…. 각하는 황족이시고저는 평민이라…."

"그건 상관없어! 나는 너와 결혼할 거다!"

무심결에제 욕심을 드러낸 미카엘이당황한 듯 로제타의 눈치를 살폈다. 로제타가 부담을 가지면 어쩌나 하는 눈치였다. 로제타는 미묘한 표정이었다.

이걸 좋아해도 되나…, 하는 얼굴.

"폐하가 싫어하실 거예요. 어쩌면 절 해치려고하실지도 모르고…."

로제타가 아는 알렉시스라면 그렇게하고도 남겠다 싶었다. 현실에서 알렉시스가 로제타와 미카엘의 결혼을 허락한 것은 미카엘이리디아의 일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아니었다면 반대가 심했으리라.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내가 전부 알아서 할 거야."

미카엘은 그리 말하며 애원하듯 로제타를 바라보았다.

"내가 널 지켜 줄 거다. 신분 문제도…. 그냥 내게맡겨다오. 누구도 네게,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게만들겠다."

"아, 아닐 텐데요? 카룰리아스 공녀도 가만있지 않을 테고…."

"카룰리아스? 그 공녀의 이름이왜 여기에나오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로제타는 이꿈속에도 이자벨이있는지 여부는 알지 못했다. 시종이라고는 해도 기사들의 시종이었으니까. 하늘같이높은 공작가의 공녀에대해서는 소문으로도 접하기 어려운 위치였다.

"아, 아무튼…. 정 그러시다면 사귀기로 해요. 하지만 결혼은…."

로제타는 고개를 저었다. 꿈이라 해도 곤란을 겪는 것은 질색이었다. 신분이란 상상했던 것보다 만만치 않은 문제였다.

"하지만 나는 너와 결혼하고싶어. 네가 아니면 죽는 게나아."

와락 끌어안은 미카엘이그렇게애원했다. 로제타는 꿈속이라 해도 미카엘이기특했다. 이래야 내 미카엘이지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이자벨이나 폐하한테 괴롭힘받는 건 싫단 말이지….'

"마음만 받을게요. 각하께서도 시간이지나면…."

"기다려 줘."

팔을 약간 느슨하게한 미카엘이진지한 눈으로 로제타를 보았다.

"내가, 전부 처리하겠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기다려 줘. 반드시 너랑 결혼해 보일 테니까."

미카엘은 그렇게속삭이며 로제타에게키스했다.

***

그 후로 로제타의 업무는 상당수 줄어들었다. 로제타가 시종 일을 하려고들면 반드시 방 안의 모두가 밖으로 나가고미카엘과 단둘이됐다. 그러면 미카엘은 마법으로 로제타의 시종 일을 대신 해 버리고그녀에게손을 뻗었다.

"로제타…."

이제 막 키스를 배운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기술로 로제타를 녹이고는, 연신 품에서 놓아주지를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로제타와 첫 경험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래서 키스만 하고껴안을 뿐, 별로 만지지는 않았다.

낮 동안은.

"어…. 보초요?"

"네. 공작님께서 로제타를 지목하셨습니다. 별일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작님의 방에앉아 있다가 공작님이악몽을 꾸시는 것 같으면 깨우는 것뿐이니까요."

시종의 설명에도 로제타는 석연치 않은 기분을 느꼈다. 여기서는 리디아의 일이벌어지지도 않았는데, 무슨 보초란 말인가!

아니나 다를까, 미카엘과 단둘만 방 안에남게되자 미카엘이침대에서 일어났다. 로제타는 시종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

"뭐 필요한 게있으세요?"

"너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침대에서 내려온 미카엘이로제타에게로 다가왔다.

"네가 필요해, 로제타…. 재워 줄래?"

로제타의 손을 잡은 미카엘이그녀의 손을 들어 올려 그 손바닥에뺨을 대며 속삭였다. 이요망한! 미카엘은 제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알고있는 것이분명했다.

"크험험…."

헛기침을 한 로제타가 순순히 끄덕였다.

"자, 잠만 재워 드릴 거예요."

"잠만? 다른 건 안 돼?"

"다, 다른 거…."

야릇한 눈빛으로 로제타를 바라보며 미카엘이달라붙었다. 끌어안는 팔에로제타는 두근거리며 미카엘을 보았다.

"아까보다 잘할 수 있게노력할 테니까…. 한 번 더……. 안 될까?"

그때도 진짜 기분 좋았는데요? 하는 말은 차마 내뱉지 못했다. 미카엘의 요염한 모습에로제타는 이미 고개를 끄덕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그럼 너무 심하게하시면 안 돼요. 또 기절해 버리면 안 되니까…."

"내 침대에서 자도 되는데. 아침까지 아무도 못 들어오게말해 놨어."

다 계획하고있던 거였냐?! 그러나 미카엘이었다. 미카엘과의 잠자리는 로제타로서는 피할 이유가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 그럼…."

로제타가 허락하자 미카엘은 로제타를 번쩍 안아 올려 침대로 향했다.

***

그날 이후로 로제타는 매일 밤 미카엘의 침실에서 보초를 서게되었다. 물론 로제타가 진짜로 보초를 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날이기술이증가하는 미카엘에게안겨 듬뿍 쾌락을 맛보았을 뿐이다.

"하읏! 하읏, 하읏! 아앙…. 미카엘 님…. 너무 세요…. 아아아……!"

"여기는 세게문질러 주는 걸 좋아하잖아? 여기는…."

파렴치하기 짝이없는 허릿짓에로제타의 몸이움찔움찔 튀어 올랐다. 미카엘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로제타의 허리를 쥐고제 페니스를 움직였다.

"흐아아, 앙! 앙 대…. 그렇게! 아앗……."

"이렇게비벼 주는 걸 좋아하고…. 로제타, 지금 굉장히 조여……."

탐욕스레 로제타의 속살을 찔러대며 미카엘이속삭였다. 로제타는 쾌락에허덕이며 그저 달콤하게울 뿐이었다.

이런 나날들이반복되니, 미카엘은 슬금슬금 낮 시간에도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키스나 포옹은 기본이었다.

"아흑, 읏…. 아앙……."

"로제타, 더 목소리를 죽이지 않으면 문밖에들릴 거야."

속삭이며 미카엘은 로제타의 속살을 비벼댔다. 로제타는 헐떡이며 신음을 삼켰다. 그들은 집무실에나란히 서 있었다. 책상 뒤에자리 잡은 책장에등을 기댄 채로 미카엘의 손길을 받고있는 로제타는 표정을 흐렸다.

바지 속으로 들어온 크고우아한 손가락이로제타의 갈라진 틈새로 들어와, 그곳을 한껏 괴롭히고있었다.

"안 돼, 제발…. 마, 마법을…. 소리를 차단하는…. 흐읏…."

"나랑 결혼한다고약속하면 소리를 차단하는 마법을 걸어 줄게. 아니면 이대로 바깥의 기사들에게네 목소리를 들려줄 거야."

미카엘이그럴 리 없다는 것은 알고있었지만 불안했다. 로제타는 안을 헤집는 달콤한 손끝에허덕이며 미카엘의 옷깃을 잡았다.

"이제 괜찮아졌잖아. 네 신분 문제라면 알렉시스가 해결하겠다고했어…."

불과 며칠 사이이자벨 카룰리아스는 추락했다. 아니, 이자벨뿐만이아니라 카룰리아스 가문 전체가 '그림자'라는 조직을 가지고있었던 것이밝혀져서 황제의 진노를 샀다. 카룰리아스가는 모든 것을 잃고나라 밖으로 추방당한 것으로 알고있었다.

"로제타…. 나와 결혼해 줘. 내가 행복하게해 줄게…."

속삭이며 좋아하는 곳을 괴롭히자 로제타는 견디지 못하고도달하고야 말았다. 높아지려는 교성에미카엘이재빨리 입술을 붙여 로제타의 신음을 막았다. 혀가 입안으로 파고들며 신음조차도 집어삼키는 것에로제타의 몸이늘어졌다.

"음, 으읏…."

집요한 키스는 현실의 미카엘과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 미카엘은 한껏 로제타의 입술을 탐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손가락은 여전히 로제타의 안을 애무하고있었다.

"나와 결혼해 줄 거지? 로제타…. 제발 그러겠다고대답해."

선택의 여지 따위는 어디에도 없는 질문이었다. 로제타는 달콤한 쾌락에신음하며 미카엘을 바라보았다.

"정말, 폐하가…. 으응……. 거짓말 아니에요?"

"정말이야. 로제타와 결혼하게만 해 주면 황태자 직위를 받아들이겠다고하니까…. 기뻐하며 허락해 줬어."

미카엘은 황제 같은 것은 되고싶지 않아 했는데. 로제타는 그 사실을 알기에미카엘에게미안해졌다.

"그, 그런 건 되고싶지…, 않아 했잖……, 아요. 흐읏…."

"네가 곁에있어 준다면…. 상관없어. 너와 결혼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할 거야."

미카엘이녹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속삭였다. 로제타를 바라보는 눈 속에는 그녀와 함께하고싶다는 간절함만이담겨 있었다.

로제타는 뺨을 물들였다.

"나중에후회하면 어쩌시려고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네가 내 곁에있어만 준다면, 무엇도 할 수 있어."

이처럼 믿으면 안 되는 거짓말이또 있을까? 그러나 로제타는 미카엘을 알기에, 그와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있기에알았다. 이말이한 점의 거짓 없는 사실인 것을. 미카엘은 실제로 그렇게살았고, 지금도 그렇게살고있었다.

그의 애정은 아직까지도 변치 않았다. 더없이빛나는 아름다운 보석처럼, 그는 여전히 로제타를 사랑해 주고있었다.

"로제타, 사랑해. 늘 너만을 사랑할 거야. 이런 날…."

믿어 주지 않을래?

속삭이는 목소리는 달콤하고진지했다.

로제타는 이미 미카엘을 사랑하고있었다. 이꿈을 꾸기 전부터 그를 사랑하고있었으니, 지금의 미카엘과 만난 그 어느 순간도 그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없었다.

단지…. 자신을 잊어버린 미카엘이야속해서 청혼을 거절했을 뿐이다.

"아…. 저도 사랑해요. 결혼…, 할게요."

감미로운 쾌락에휩싸여 대답하자 그녀를 바라보고있던 녹색 눈동자가 기쁨으로 물들며 황홀하게빛났다. 미카엘은 로제타를 부둥켜안으며 깊이입 맞췄다. 벌써 그녀의 점막을 매만지던 손은 그녀의 바지를 끌어 내리고있었다.

"앗, 잠깐…. 청혼 받아들였는데…."

"방어막은 벌써 펼쳤으니…. 약속은 지켰잖아. 나의 로제타…, 이제 이기쁨이꿈이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해 줘."

기어이로제타의 바지를 벗긴 미카엘이그녀를 집무실 테이블 위에눕혔다. 그가 이미 마법으로 커튼을 꼭꼭 쳐 두었으나 방 안은 여전히 밝았다.

"엣, 바, 바로 넣는 게아니고요?!"

"최고로 기분 좋게해 줄게. 로제타…. 내 사랑. 다리를 벌려 줘."

로제타가 머뭇머뭇 다리를 벌리자 미카엘이그녀의 무릎을 잡아 활짝 열었다. 다리가 그대로 테이블 밖으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미카엘은 로제타의 다리 사이를 황홀한 듯이바라보더니 곧바로 얼굴을 묻고혀로 위로하기 시작했다.

"아…. 흐으……. 아흑…."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자극에얼굴이달아올랐다. 로제타는 제 다리 사이에서 살랑거리는 미카엘의 머리카락을 보며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꿈인데도 이건 여전히 부끄럽네…. 미카엘은 여전하고….'

쪼옥쪽, 빨아대는 것으로 부족한지 갈라진 틈새로 혀가 들어오는 게느껴졌다. 로제타는 달게신음하며 허리를 비틀었다.

'이꿈…. 너무 오래 꾸는 거 같아. 현실의 미카엘이걱정하면 어떻게하지?'

새삼 실제 자신은 의식불명의 상태에빠진 것은 아닌가 불안해졌다. 그러면 여기의 미카엘은 어떻게된 거지? 미카엘도 자신과 같이의식불명의 상태에빠진 건가?

'그러면 안 되는데…. 아아……, 미카엘은 무사해야 해…!'

"흐아아앗!"

멈칫하는 사이절정이밀려와 몸이경련했다. 미카엘은 바지를 풀어 페니스를 꺼내고곧바로 제 것을 밀어 넣었다. 배 속이달콤한 쾌감으로 가득 차는 것에로제타는 손을 뻗었다.

불안했지만, 이렇게미카엘의 품에안겨 있는 동안은 안심할 수 있었다.

"로제타……. 로제타, 사랑해……!"

헐떡이며 그녀를 열락으로 보내는 미카엘의 목소리를 들으며 로제타는 잠에서 깼다.

***

어?

밝은 햇살이비쳐 들고있었다. 고개를 별로 돌리지 않아도 바로 곁에미카엘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단하게끌어안은 팔과 나지막한 숨소리만 들어도 알았다.

곁에미카엘이있다는 것을.

"내 사랑…. 내 생명……. 일어났습니까?"

나신의 미카엘이행복한 듯 만면에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로제타는 웃었다. 그녀의 미카엘이여기에있었다. 꿈속에서도 현실에도 그는 그녀만을 사랑해 주었다.

"일어났어요, 미카엘 님."

로제타가 찰싹 달라붙자니 유달리 건강한 그것이배로 느껴졌다. 미카엘은 미안하다는 듯이뺨을 물들였다.

"커흠. 요, 욕실에서 빼고올 테니까요…."

"괜찮아요."

얼핏 볼을 붉히며 말하자 미카엘이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전날 그가 로제타에게한 짓이있으니 더 그랬다.

"네? 괜찮다니…."

"기분 좋았으니까요. 그러니 이어서 해도…. 꺅!"

이불로 확 자신들 두 사람을 덮은 미카엘이끈적한 키스를 퍼부었다. 로제타는 그의 굶주린 듯한 손길에신음하며 행복해했다. 언제나와 같은 행복한 아침이었다.

외전6. if. 빙의가 아닌 환생이었다면

"오라버니!"

로제타가 손을흔들며 달려오자 제럴드가 활짝 웃었다. 처음 이 세계에 로제타로 환생했을때는 어떻게 사나 싶었으나, 제대로 잘되고 있는 것 같았다.

가족들과는 사이가 좋았고, 사촌이었다가 양자가 된 제럴드와도 잘 지내고 있었다. 특히나 돌아가시기 전인 큰아버지와도 사이가 좋았었다. 그분은 여자를 특히나 싫어한다고 해서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나쁘지 않은 취급을받았다.

그래서 한때는 양자인 오빠와 약혼 이야기가 오갔다고 알고 있었다. 큰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무산되었지만. 그래도 제럴드와는 사이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로제타는 그 사실에 안도했다.

어쨌든 제럴드는 그녀의 가족이었으니까.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던 상대에게 경멸을받는다면 많이 우울했을것 같았다.

"로제타."

다른 사람과 있을때는 무뚝뚝한 얼굴을보여 주는 제럴드였지만, 로제타와 같이 있을때는 다정한 미소를 보여 주었다. 로제타는 그 사실이 기뻤다. 제럴드에게 가족으로 인정받는 것 같아서.

"무슨 일이에요? 오늘은 저녁때가 되어야 돌아오는 줄 알았는데."

"이걸…. 발견해서."

제럴드가 내민 것은 막 피어난 장미꽃 한 송이였다. 아직 장미가 피기에는 이른 시기였기에 로제타의 눈이 커졌다.

"어? 어떻게…."

"황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에 띄길래…. 집 주인에게 양해를 받고 꺾어왔다.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설명을하는 제럴드의 얼굴이 붉었다. 그답지 않은 일을하느라 많이 부끄러웠던 모양이었다. 로제타는 키득키득 웃으며 발돋움해서 제럴드의 뺨에 입 맞췄다.

"고마워요! 오라버니 덕분에 올해 첫 장미를 제가 가지게 됐네요."

"큼. 네가 기뻐하니 됐다."

"방에 꽂아 두고 올게요!"

로제타는 장미를 소중히 감싸 안고 2층의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치맛자락을휘날리며 달리는 로제타의 모습에 셀리나가 주의를 주는 것 같았지만, 로제타가 얌전해진 것은 잠시뿐이었다.

"정말 어쩌려고 저러는지…. 제럴드 너도 너무 응석을받아 주면 안 돼. 이제는 어린아이도 아닌데, 누가 데려가려는지."

"아무도 데려가지 않으면 제가 책임질 테니…. 괜찮습니다."

제럴드의 말에 셀리나가 놀란 듯쳐다보자 제럴드가 헛기침을하며 자리를 떠났다. 방으로 올라간 로제타는 마리에게 꽃병을부탁해서 장미를 꽂고 있었다.

올해 처음 핀 장미는 싱그러웠다.

기쁘게 그것을바라보던 로제타는 마차가 오는 소리에 창밖을바라보았다. 오후에 로건과 약속한 것을깜박 잊고 있었다. 로제타는 허둥지둥 마리에게 부탁해서 외출할 준비를 마쳤다.

***

"…안녕하십니까, 휘르센 백작부인."

"어서 와요, 발레르 영식."

셀리나는 만면에 웃음을띠며 로건을맞이했다. 뭐든 노력하는 아이였지만, 뭐든 특출 나게 잘하는 것은 없었던 로제타였다. 다행히 성격은 좋으니 어찌어찌 결혼을시킬 수 있을거라 생각했건만, 의외의 사람들과 친분이 있었다.

'로건 발레르라니! 아쉽게도 둘째지만…. 백작 작위를 가지고 있으니, 이 영식과 맺어지기만 해도 본전은 치는 셈이지!'

로건 발레르를 발판으로 로제타가 길버트와 친해질 수도 있었다. 지난번 무도회 때, 길버트와 로제타가 같이 춤을추기도 했고, 영 가능성이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로제타는 금세 내려올 거예요."

"인내심은 신사의 소양이죠."

로건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셀리나는 능청스레 대답하는 로건을보고 그가 어느 정도 로제타에게 관심이 있는지 가늠해 보려 애썼다.

방에서 옷을갈아입고 있었던 제럴드는 로건이 왔다는 소식에 홀로 나왔다.

"정말로 와 있었군. 발레르."

"제럴드."

일부러 로건이 그의 이름을부르자 제럴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제럴드가 뭔가 말하려는 찰나 로제타가 계단을내려왔다. 급하게 달려오는 모습에 셀리나가 혀를 찼다.

반면 두 남자들은 로제타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붙잡아 주려는 듯반쯤 앞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나 로제타는 아무 탈 없이 계단 끝까지 내려왔다.

"발레르 영식, 내가 오래 기다리게 한 건 아니죠?"

"아닙니다, 휘르센 영애. 오늘도 아름다우시군요."

"로제타, 이자와 외출하려는 거냐?"

제럴드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로제타는 달려오느라 붉게 상기된 얼굴이었다.

"황궁 도서관에 데려가 주시기로 했거든요."

황궁 도서관은 직원이 아닌 자는 고위 귀족과 동행을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로제타도 엔디미온과 동행하면 들어갈 수는 있지만, 엔디미온은 바빠서 그럴 짬이 나지 않았다. 제럴드는 아직 평기사 신분이었고.

로제타가 책을좋아하는 것은 제럴드도 알고 있었다. 라스탄 황궁의 도서관은 세상 모든 책이 모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로제타로서는 꼭 가 보고 싶은 장소일 것이다.

제럴드는 차마가지 말라고는 하지 못하고 로건을노려보았다. 로건은 태연한 얼굴로 로제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서두를까요?"

황궁 도서관은 일반인이 드나들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있었다. 로제타는 급한 얼굴로 셀리나와 제럴드를 보았다.

"네! 다녀올게요, 어머니. 오라버니!"

"그래, 일찍 돌아와야 한다!"

"안전히 집까지 모시겠습니다."

로건은 걱정말라는 듯이 로제타를 에스코트해서 마차에 태웠다. 제럴드는 이를 갈았다. 그는 이 시간 후에 오도록 되어있으니, 아마도 그가 없는 틈에 로제타를 꾀어내어황궁 도서관에 갈 생각이었을것이다.

'로건 발레르!'

***

흔들림이 거의 없는 마차 안에서 로제타와 로건은 즐겁게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로제타는 다소 상식이 부족한 아가씨이기는 했으나 깨인 생각을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앞선 사고방식을가지고 있다 자부하는 로건에게는 '대화가 통하는 아가씨'였다.

'보고 있으면 귀엽기도 하고….'

눈에 띄는 미인이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같이 있으면 즐겁고 사랑스러웠다.

이 정도로 사고방식이 통하는 이는 남자들 사이에서도 찾기 어려웠으므로, 로건은 로제타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발레르 공작가에 비하면 격이 떨어질지도 모르나, 로건도 지금은 백작이었다. 그는 더 높은 작위까지 올라갈 자신은 있었지만, 결혼으로 그것을이룰 마음은 없었다.

그러니 로제타는 적당한 결혼 상대였다.

발레르 공작이나 공작부인이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것임은 알지만, 결국 그녀와 같이 사는 것은 자신이었다.

형이 공작가를 물려받을테니, 자신은 이 정도는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길버트가 로제타에게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빼앗기지 않을거야.'

그는 상대적으로 자유롭지만 길버트는 그렇지 못했다. 설사 길버트가 로제타를 마음에 둔다고 해도 결국 이루지 못할 것이다.

로건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었다.

로제타는 로건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를 따라서 황궁 도서관으로 향했다. 기사들의 퇴근 시간과 2~3시간 정도 차이를 두고 폐관하기에 책을빌리려면 서둘러야만 했다.

***

로건과 책을고르는 것은 즐거웠다. 로제타는 아이리스의 서브남과 이렇게 친해진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제럴드는 친인척 관계이기라도 했지, 로건과 가까워진 것은 뜻밖이었다.

로제타는 마음에 드는 책을보물처럼 품에 안고 로건과 나란히 황궁 도서관을나섰다. 이 신작 로맨스 소설을빌릴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무겁지 않습니까? 제가 들어드리겠…."

"이런 곳에서 로건과 너라니…. 뭐야? 데이트일 리는 없고. 벌칙 수행?"

불쑥 계단 앞을가로막은 시커먼 형체에 로제타는 눈살을찌푸리며 상대를 노려보았다. 그는 패트릭 란스필드였다.

'아웅다웅 소란을피우는 게…. 꼭 오렌지빛 고양이 같지 않아?'

라는 말을친구들과 떠드는 것을보고 로제타가 뒤에서 그의 다리를, 정확히는 무릎을걷어찬 이후로 내내 눈만 마주치면 싸우는 앙숙이었다.

"패트릭. 내가 에스코트하는 영애에게 시비를 걸면 곤란해."

로건이 슬쩍 패트릭과 로제타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로제타는 로건의 말이 맞는다는 듯이 로건의 뒤에서 고개를 내민 채로 끄덕이고 있었다.

패트릭은 그 모습이 마땅치 않다는 듯이 눈살을찌푸리며 로제타를 쳐다보았다. 로건은 패트릭이 여기까지 달려왔다는 것을눈치챌 수 있었다.

태연한 척 노력하고 있지만 숨이 거칠고 약간 땀을흘린 것이 보였다. 아마도 황궁의 입구에서 아는 기사들 중 누군가 소식을전했을것이다. 그 말에 부리나케 황궁 도서관이 있는 곳까지 달려왔을것이고.

'역시….'

패트릭 란스필드 또한 로제타를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겉으로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고는 있으나 무도회장이든, 파티장에서든 시비를 걸듯말을거는 것이 그 증거였다.

현재로서는 눈치챈 이가 자신과 제럴드뿐이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패트릭의 마음을눈치챌 것이다.

여기의 로제타조차도. 더 라이벌이 늘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로건으로서는 한없이 늦추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이건 시비가 아니라 그냥 대화겠지. 여기까지는 무슨 볼일이야?"

"영애에게 황궁 도서관을구경시켜 준 것뿐이야."

"흐응~, 도서관을? 그럼 거기 안고 있는 책은 빌린 건가?"

쑥 손을내밀어책을빼내 가려는 듯한 모습에 로제타가 잽싸게 로건의 등 뒤로 다시 몸을감췄다. 그 바람에 로건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반면 패트릭의 기분은 다시 하강했다.

"왜? 제목 정도는 보여 줘도 되잖아?"

"패트릭. 아직 근무 중인 거 아닌가? 근무지로 돌아가야지."

"어차피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서 괜찮아. 대장님은 가장 먼저 돌아가셨을거라고."

패트릭은 로건과 대화를 나누는 척하다가 방심하고 있는 로제타에게서 잽싸게 책을빼앗아 들어올렸다. 로제타는 화들짝 놀라 패트릭을쳐다보았다.

"뭐 하는 거예요?!"

"이게 뭐야? 황태자는 밤 벚꽃 레이디를…. 악!"

참지 못한 로제타의 킥이 패트릭의 무릎에 다시 작열했다. 패트릭이 떨어트린 책을능숙하게 잡아채는 것은 로건의 몫이었다.

"야, 너! 황궁 기사를…. 으윽!"

"먼저 시비를 건 것은 너잖아, 패트릭. 휘르센 영애."

패트릭이 로제타에게 정중하게 책을돌려주고 팔을내밀었다. 로제타는 패트릭을흘겨보고는 그의 팔에 손을얹고 돌아섰다. 그나마혀를 내밀지 않은 것 하나는 어렸을때보다 발전된 모습이었다.

'또 로맨스 소설인가….'

로제타가 좋아하는 책인 듯하니 일단 읽어는 봐야 할 것 같았다. 패트릭은 호되게 차인 다리를 문지르며 피식 웃었다.

"이거 멍 들겠네."

로건과 같이황궁의 시종들이마차를 가져오기를 기다리던 로제타는 뜻밖의 소식에 당황했다. 발레르 공작가의 마차가 바퀴 축이부러졌다는 얘기였다. 평소에 관리가 잘 되고 있는 마차였으므로 로건은 누군가 일부러 그런 것이라 판단했다.

"휘르센 영애.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금방 마차를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호감을 가지고 있는 영애를, 황궁이라고 해서 한쪽에 그냥 세워 둘 수는 없었다. 로건은 아는 누군가에게라도 마차를 빌리기 위해 급히 자리를 떠났다.

다그닥다그닥….

느릿하게 다가오는 마차 소리에 로제타는 흠칫 고개를 돌렸다. 황실의 문장이선명하게 박힌 화려한 마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황궁 안이니 황실의 마차가 다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마차를 타고 다닐 수 있는 이는 몇 되지 않았다.

'누, 누구? 설마 폐하나 황비님이신 건…….'

신년 무도회에 먼발치에서 쳐다보았던 두 사람을 떠올리고 로제타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마차는 그대로 지나치지 않고 로제타의 앞에서 멈춰 섰다.

"휘르센 영애…. 맞나?"

"각하."

로제타는 살짝 고개를 들어상대를 확인했다. 마차의 창문으로 보이는 이는 아덴 공작인 미카엘이었다.

'히익?! 왜 남주가 여기에.'

"…발레르 영식이부탁하기에 급하게 와 보았더니. 오래 기다리게 한 것이아니었으면 좋겠군."

"네?"

로건이미카엘에게 부탁했다고? 로제타는 당황한 눈으로 미카엘을 보았다. 패트릭, 로건, 미카엘은 친척지간이맞았다. 패트릭과 미카엘이사촌이고, 로건은 좀 더 먼친척이었지만, 공작가의 자제인 만큼 어릴 때부터 안면이있었을 것이다.

'왜 그런 짓을! 미카엘은 부담스럽다고!'

로제타가 기겁하는 사이시종이마차의 문을 열었다. 마차 위에서 미카엘이몸을 일으켜 로제타에게 손을 내밀었다.

"왜 그러지?"

"어? 고, 공작님이시야말로 왜……?"

"드레스 차림으로는 마차에 오르기 힘들지 않나?"

마차에 오르기 힘들기는 했다. 그마차에 탈 생각이있는 거라면.

"바, 발레르 영식은…."

"발레르 영식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입구에서요?"

다른 마차를 타고 먼저 갔다고 한다면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로제타는 뭔가 미심쩍다생각하면서도 미카엘의 손을 잡았다.

마법사의 손이라고 해서 여자의 손처럼 매끄럽고 부드럽기만 할 줄 알았는데, 제법 단단하고 큰 손이었다.

"…가볍군."

"네?"

"아냐."

로제타는 미카엘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올랐다. 맞은편 자리에 앉자 시종이재빨리 마차의 문을 닫고 출발했다. 마주 앉은 미카엘은 그런 로제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부, 불편해….'

언젠가는 아이리스와 맺어지게 되어있는 남주인공이라는 사실 외에도, 미카엘에게는 불편하게 할 만한 요소 같은 것이있었다.

가령 원작1에서 아이리스를 감금한다든가 하는 부분에서.

'원작2에서는 그런 미카엘을 갱생시켜서 로코로 만들지만 말이야.'

"영애."

"네."

"발레르 영식이황궁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야."

"네에?!"

휘둥그레진 로제타를 미카엘은 흥미롭다는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로제타는 당황하며 미카엘을 마주 보았다.

"발레르 영식에게는 내 시종이사정을 설명했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대체 왜…? 왜 그런 거짓말을 하신 거예요?"

"영애와 한번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어서."

"평범하게 초대장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셨나요?!"

그말에 미카엘은 책망하는 눈빛을 보냈다.

"초대장은 모조리 무시하고, 나와 눈이마주치면 도망친 영애가 할 말은 아닐 텐데?"

"……."

그랬다. 로제타는 혹시나 셀리나가 그초대장을 볼까 봐 발견하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읽어본 후에 깡그리 태워 증거를 인멸했던 것이다.

'아니, 왜? 대체 왜? 나 아무 짓도 안 했고, 아무 짓도 안 할 건데?!'

미카엘이라고 하면 로제타를 형장의 이슬로 만드는 데에 한몫을 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엮이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심지어미카엘은 저주를 내리는 것도 가능하기에 그의 집에 가는 것만은 최대한 거절하고 있었다. 미카엘이마법으로 기억을 지우기라도 하면 대항할 방법이없어서.

"어, 어째서요? 저와 공작 각하는 나눌 얘기 같은 게…, 없을 텐데……."

"글쎄. 가령…."

스윽 고개를 숙인 미카엘이로제타와 진지하게 눈을 맞췄다.

"나는 영애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나를 무서워하느냐 같은?"

"저는 각하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로제타가 그자리에서 답했으나 미카엘은 납득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럼 왜 내 초대는 전부 거절했지?"

"그…. 각하는 무섭지 않지만, 각하를 사모하는 영애들은…, 많이……, 무서워서."

이건 절반 정도의 진실이었다. 미카엘을 사모하는 영애들은 다소 광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특히나 이자벨은 원작1, 2의 중간보스 급인데도 살벌했었다.

"그럼 내가 그영애들을 조용하게 만들면…. 나와 얘기해 줄 건가?"

조용하게 만들겠다니? 어쩌려고? 미카엘도 보통이아닌 성미이기에 순간 식은땀이흘렀다.

"어. 저, 저하고 무슨 얘기를 하시려고 그렇게까지…. 공작님을 피한 것에 대해서라면 전부 대답을 한 것 같은데요?"

"……."

침묵하는 미카엘의 얼굴이조금 빨갛게 물들었다. 단정한 용모인지라 그모습마저 묘하게 색기가 있어로제타는 무심코 눈길을 빼앗겼다.

"그저 영애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을 뿐이야. 그것만으로는…, 이유가 부족할까?"

"부족하지 않습니다!"

미카엘의 미모에 홀려 로제타는 무심코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물론, 말하고 나서 아차 싶기는 했다.

'앗. 이게 아닌데….'

대답이튀어나오자마자 미카엘의 얼굴에 실리는 묘한 웃음이, 그는 이미 로제타가 그의 용모에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끄앙!'

"약속은 지킬 테니까…, 겁먹지 말고 기다려 줘. 난 영애를 잡아먹으려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아직은, 이라고 덧붙이며 미카엘은 환하게 웃었다. 로제타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것이꽤나 기뻤던 모양이었다.

로제타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눈을 굴리는 사이마차는 휘르센 백작가에 도착했다.

***

그동안 로제타가 아덴 공작가의 초대장을 열심히 숨긴 것도 무색하게, 미카엘의 관심이전부 다들통나고 말았다. 셀리나는 벌써부터 아덴 공작가와의 미래를 망상하며 꿈에 부풀어있었고, 제럴드는 근심이가득했다.

"로제타. 미카엘 황자는 속을 알 수 없는 자야. 조심해야 한다."

"아, 알고 있어요. 오라버니."

현재의 미카엘은 원작과는 다르게 성녀에게 후원을 해 주지 않고 있었다. 황족인 미카엘이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이리스는 발레르 공작가나 란스필드 후작가에서도 후원을 받지 못한 채였다.

다른 고위 귀족 몇몇이후원해 주고 있다는 소문이었지만 그뿐이었다.

황제가 황실 연회나 무도회에 초청하지도 않았으므로 수도 밖의 신전에서 수련하고 있다는 소문만 들릴 뿐이었다.

'원작이이상하게 바뀌고 있어. 대체 왜?'

그녀가 환생한 로제타라는 캐릭터는 주요 인물이아니었다. 대단한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악녀1인 이자벨 카룰리아스의 역할이었다. 로제타는 그런 이자벨에게 이용이나 당하다가 죽는 조무래기 악녀인 것이다.

그마저도 아이리스가 수도로 올라오지 않았으니 원작은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다.

'설마…. 내가 환생해서 주인공이됐나?'

이불에 드러누워 잠시 그런 생각을 했던 로제타는 에이, 하고 손을 내저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제럴드와 사이가 좋기는 하다만 딱 그정도였다. 패트릭은 얼굴을 볼 때마다로제타에게 시비나 걸고, 로건과는 약간의 우정을 나누는 사이였다.

반면 미카엘은….

'황자님 반응이가장 이상했어!'

왜 자신에게 얘기하다말고 얼굴을 붉힌단 말인가? 누구 상상을 하다가?

'무슨 속셈이지? 설마 이자벨이휘두르듯 날 휘둘러서 무슨 일을 도모하려는, 음모를 획책하려는 중인가?!'

로제타는 휘둘리기 좋은 단순무식한 악녀로 나왔으니 미카엘이그렇게 파악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가능성이있는 얘기다!

"아, 왜?!!! 문제 안 일으키고 잘해 왔는데!"

이불 속에서 발차기를 한 탓에 이불이붕 떴다가 내려왔다.

로제타는 심히 억울했다. 가족 관계를 회복시키고, 지금의 관계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나한테 이런단 말인가!

'이대로는 안 당해! 힘껏 저항하고 말 테다!'

아득바득 이를 갈며 로제타는 쉽게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 몸은 내가 지킨다!

***

아는 사람들만 알고, 대부분은 모르고 있던 미.

사.

모(미카엘을 사랑하는 모임)가 소리 소문도 없이해체되었다는 소식에 로제타는 경악했다.

그뿐만이아니었다. 미카엘과 관련된 일로 타 영애들에게 협박과 위협을 일삼던 영애들도 하나둘씩 수도를 떠나 지방의 영지로 내려가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로제타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카룰리아스 가문의 몰락이었다. 암암리에 소유하고 있던 비밀 조직인 '그림자'가 들통나서 가문 전체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소문이돌았다.

황제 폐하가 매우 진노하여 직접 사건을 맡으셨다고 하니, 카룰리아스 가문의 멸문은 정해진 수순이라 할 수 있었다.

'히이이이익!'

이게 마차 안에서의 그대화와 연관이있는 것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로제타가 그러기를 바란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건 아니었다.

'역시 미카엘 소행인 것 같아!'

과연 계략 남주랄까. 무서운 사람이었다. 이런 인간에게 찍힌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대항 의식을 불태우던 마음도 있고 오들오들 떨고 있자니 초대장이날아왔다.

[저와의 약속을 지켜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무슨 약속?"

초대장에 쓰인 문구를 읽자마자 셀리나는 눈을 번뜩이며 물어왔다. 로제타는 필사적으로 모르쇠로 일관해야만 했다.

'사람을 난처하게만 하고…. 두고 보자!'

이한 번의 만남을, 영원한 끝으로 할 생각이만만했던 로제타였으나, 세상일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만남에서 로제타는 미카엘의 화려한 용모와 다정한 태도에 녹아, 돌아오는 황실 사냥대회에 같이가겠다는 약속을 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대회에서 다른 영식의 실수로 로제타가 발목을 접질리는 사고가 있었고, 미카엘은 그길로 로제타를 자신의 별장으로 옮겨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주었다.

그어떤 영애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미카엘이었다. 그가 로제타에게 마음이있는 것이분명해지자, 황제는 미카엘과 로제타 사이를 주선했다.

셀리나가 기쁨으로 그관계를 환영했으므로, 로제타가 정신을 차렸을 즈음에는 이미 그둘은 웨딩마치를 올리고 있었다.

'이게 아닌데?!!!'

하고 로제타가 후회했을 때는 이미 늦은 일이었다.

-<집착 황자에게 사로잡혔다!> 외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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