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주인공을 위한 이벤트
"그 단검이 마신의피에 적신 것이었다고?"
알렉시스의얼굴에 절망이 어렸다. 그는 이미 마신의저주를 받았고 아직도 그 저주를 가지고 있기에,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동생이 살고 있는 세상을 지키기 위해 그 모든 일을 해냈음에도, 동생마저저주에 걸렸다는 사실에 알렉시스는 괴로워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 것이냐? 너는…. 당연히 무사한 거겠지?"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아닙니다."
미카엘은알렉시스에게 걸린 저주를 풀기 위해 온갖 저주에 관해 연구했다. 그럼에도 마신의저주를 완전히 풀지 못해 알렉시스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미카엘이 저주를 비틀어서 제명대로 살 수 있게 만든 것이지, 미카엘이 아니었다면 그는 서른도 넘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마신의피는 마신의마력이 담긴 정수이자 가장 강력한 매개체입니다. 아마도 제핏속을 돌면서 저주를 강력하게 만들고 있을 겁니다."
마물의뼈로 만든 단검에는 저주의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제마력으로 저주를 늦출 수는 있으나 완전히 멈출 수는 없습니다. 빠르면 열흘 뒤, 길면 한 달쯤 후에 저는 죽을 겁니다."
'뭐?'
순간 맥이 탁 풀렸다. 만약 로제타가 미카엘이 누워 있는 침대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면, 미카엘이 로제타의허리를 끌어당긴 것이 아니었다면 바닥에 주저앉았을 것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방법이 없는 것은아닙니다."
달래듯 다정한 목소리로 미카엘이 로제타에게 속삭였다. 이미 얼굴이 납빛이 된 알렉시스가 미카엘에게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 방법이 무어기에, 이리도 뜸을 들이는 것이냐! 얼른 말해 보아라!"
"그 방법이…."
미카엘은난처한 듯 낯빛을 흐리며 입을 열었다.
"마신의기운을 누를 수 있는 강한 신력이나 마력을 지닌 자의정기를 받는 것입니다."
정기라는 부분에서 로제타는 조짐이 좋지 않음을 느꼈다. 미카엘의말을 듣고 있는 알렉시스와 아네트의표정도 심각해졌다. 두 사람이 힐끗 자신의눈치를 보는 것을 보고, 로제타는 나쁜 예감이 들어맞았음을 깨달았다.
"그 정도 힘을 지닌 자는…."
"최상위급 성직자와 천신의혼혈, 빛의최상급 정령과 계약한 정령사…. 정도겠지요."
알렉시스는 미안한 듯 로제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미카엘의굳은표정을 보고 설득하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다행히도 성녀가 네게 깊은마음을 품고 있는 듯하니, 그녀에게 부탁…."
뭐?!!!!!
로제타는 일이 돌아가는 방향을 깨달았지만, 안 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버려 두면 빠르면 사흘 내에 미카엘이 죽는다는데, 이를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폐하…."
"미카엘, 내 말을 들어다오. 일단 살아야 할 것이아니냐!"
알렉시스는 버럭 성을 내며 말했다. 로제타에게는 정말 미안했으나, 그에게있어서는 하나뿐인 혈육이었다.
"성녀가 무엇을 요구할지 모릅니다. 저는…."
"듣기 싫다! 네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뭐란 말이냐! 일단 성녀의 비위를 맞춰 살아난 다음에 후일을 도모하면 될 일이다!"
알렉시스의 기분은 알지만, 진풀잎이빙의된 아이리스였다.
'이일을 빌미로 나와 미카엘을 이혼시키고 그와 결혼하려고 들겠지.'
그러나 로제타는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설사 막을 힘이있어도 그러지 않을 생각이었다. 알렉시스가 말한 것처럼 미카엘이사는 것이가장 중요했으므로.
알렉시스가 일단 살아난 이후에 다시 맺어지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기는 했으나, 로제타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미카엘을 살리기 위해 그런 일까지 했는데…. 살아났다는 이유로 곧바로 그녀를 버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자신이미카엘을 포기하는 것이낫지.
"미카엘 님…. 저는, 제가 물러설…."
돌아가는 상황을 깨닫자 눈물이나왔다. 태연히 말해야 하는데, 온몸이떨리고 왈칵 눈물이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알렉시스가 당황했고 아네트 또한 창백하게질려서 로제타 곁으로 다가왔다. 아네트는 아까부터 조용한 것이불의 정령왕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성기사나 신관과 할 것입니다!!!"
순간 나오던 눈물이쏙 들어갔다. 얼이빠진 것은 미카엘의 고함을 들은 알렉시스나 아네트도 마찬가지였다.
"뭐, 뭐라?"
"정기에 남녀가 달라야 하는 것은 아니니…. 사내도 될 것입니다! 그러니, 성녀가 아닌 대신관이나…."
상상만으로도 싫은지 미카엘의 입가가 씰룩씰룩 경련했다.
부탁을 받은 대신관이나 성기사에게도 안된 일이었으나, 성녀와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죽기도 싫고, 성녀와 관계하는 것은 더 싫었으며, 로제타를 잃느니 차라리 죽는 게천번 만번은 더 나았다!
"물론 이또한 다른 이와 관계하는 것이니…. 로제타가 싫다고 한다면…."
미카엘이처연한 얼굴로 로제타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로제타는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에 휩싸였다. 미카엘이살아야 할 상황이니, 아이리스와 그걸 하는 것만 아니라면…. 한 번 정도는 봐줄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어, 그…. 그래……."
로제타보다도 더 큰 충격을 받은 알렉시스는 말을 잇지 못한 채로 더듬거렸다. 그래. 인공호흡 같은 것을 받는다 치고 남자랑 한다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타격이큰 상황에 알렉시스는 창백하게질렸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가능하기는 할 것 같았다.
교단에서 남자끼리 관계하는 걸 금하지도 않았고, 미카엘은 아름다운 용모 때문에 남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거기다 아이리스보다 신성력이약하기는 해도 대신관이나 성기사의 숫자가 많다 보니 상대를 찾기도 수월했다.
【저기…. 심각한데 미안하지만. 저기 저 인간을 정령사로 만들면 되잖아?】
"네?"
아네트의 몸에서 불쑥 튀어나온 불의 정령왕이말했다. 정령왕은 불꽃으로 만들어진 듯한 날개를 퍼덕이며 로제타 주변으로 날아왔다.
【물론 이인간은 정령과 계약할 수 없는 신체를 가지고 있지만, 이인간은 요하네스와의 계약이남아있지 않으냐!】
아…….
순간 얼빠진 표정의 세 사람이정령왕을 쳐다보았다. 소원으로는 마신의 저주는 풀 수 없다기에, 그런 쪽으로는 생각지도 못했던 알렉시스와 미카엘, 로제타였다.
이중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미카엘이었다.
"그, 가, 가능하겠습니까? 빛의 정령왕은 정령과의 친화력이높다고는 해도 계약할 수 없는 이라고 들었습니다."
【가능할 거다! 소원은 세 개나 남아있으니까! 요하네스 놈은 많은 정령들에게해악을 끼쳤지만, 특히나 빛의 정령왕에게끼친 해악이크니, 반드시 들어줄 것이다! 일단 요하네스 놈을 불러서 소원부터!】
정령왕의 대답에 알렉시스는 마음이급해졌다. 그는 다급히 시종을 불러서 황실 금고에 있는 유리병이든 상자를 가지고 올 것을 명했다.
***
미카엘의 상태를 들키지 않는 것이좋을 거라는 정령왕의 충고에 로제타는 아네트와 같이자리를 옮겼다. 황제인 알렉시스는 아직 몸이완전히 회복된 것이아니어서 미카엘의 곁에 있기로 했다.
【말해 두지만, 놈에게빛의 정령왕과 계약을 맺을 생각인 건 밝혀서는 아니 된다! 놈도 제가 빛의 정령왕에게증오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불의 정령왕이말하는 것에 로제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르면 사흘이라고 했으니 지체하고 있을 시간이없었다. 로제타는 미카엘에게받은 열쇠를 손에 쥐고 시종이돌아오는 것을 기다렸다.
"…황비 전하, 폐하께서 말씀하신 상자를 가져왔습니다."
"들라."
시종이비단 쿠션 위에 얹어진 보석함을 들고 다가왔다. 아네트는 보석함을 들어 로제타에게넘겨주고 시종과 시녀들에게나가 볼 것을 명령했다.
로제타는 보석함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열쇠를 밀어 넣었다.
달칵.
보석함을 열자 그 안에 든 유리병이보였다. 유리병 안에는 몸이구겨진 채로 갇혀 있는 요하네스가 보였다. 로제타를 발견하고 절박한 표정이되었지만, 로제타의 눈빛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못했다.
아네트가 유리병을 집어 들고 뚜껑을 열었다.
쉬이이익….
푸른 연기가 유리병 속에서 빠져나오더니 요하네스의 모습이되었다.
【드디어 나를 부르다니…. 또 소원이생긴 모양이지?】
번뜩이는 눈동자가 소원만 다 빌면 어디 두고 보자는 것 같았다. 로제타는 요하네스의 말을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요하네스야, 내 소원을 들어다오. 세상에 그 어떤 정령왕과도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정령사가 되고 싶다."
이문구는 정령왕과 같이상의해서 만든 것이었다. 요하네스는 불만스러운 듯했으나 움직이지 않으려는 손을 들어 로제타를 가리켰다. 그 손가락에서 발사된 반짝이는 빛이로제타의 온몸을 감싸고 퍼져 나갔다.
【오오! 굉장하군!】
로제타는 온몸이두둥실 떠오르는 느낌에 당황했다. 생전 마력이라고는 느껴 보지 못한 몸이었으나 갑자기 마력이느껴졌다.
불의 정령왕에게서 느껴지는 엄청난 존재감과 그에 못지않은 아네트의 마력, 거기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미카엘의 강대한 힘이나 알렉시스의 존재감까지 느껴져 당황스러웠다.
【이제 됐지?! 이렇게나 내 은혜를 받고도…. 으아아악!】
듣고 싶지 않은지, 아네트는 유리병으로 요하네스를 빨아들이고 얼른 뚜껑을 닫았다. 불의 정령왕으로부터 요하네스가 인간계를 오가면서 많은 정령사들이살해당하게만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요하네스가 더 싫어진 참이었다.
아네트는 날렵하게요하네스가 든 병을 상자에 집어넣고 뚜껑을 닫았다. 병 속의 요하네스가 아우성쳤지만, 이미 뚜껑을 닫은 뒤라 들리지도 않았다.
시종을 부른 아네트가 상자를 황실의 보물창고로 돌려보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불의 정령왕은 감탄했다는 듯이로제타의 주변을 날아다녔다.
【호오! 대단하군! 그놈에게이런 능력이있다는 것이안타까울 따름이야!】
"이제 빛의 정령왕을 불러내면 되는 건가요?"
【그 녀석은 800년 전에 마지막 계약자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지. 짐작하는 대로 요하네스 그놈의 짓이야. 다시는 계약자를 가지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이건 계약이아닌 거래가 될 테니 녀석도 거절하지 않을 거야!】
"거래가 된다니?"
아네트가 묻자 불의 정령왕은 생각만 해도 신이난다는 듯이투레질을 했다.
【녀석에게요하네스의 소원 하나를 주고 계약해 달라고 할 참이니, 당연히 거래지! 하니, 내가 정령계로 가서 녀석을 설득해 데리고 올 거다!】
지난번과는 달리 수없이많은 비석을 뒤져야 하는 일이아니어서 금방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빛의 정령왕은 800년 전부터 하염없이한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앞으로 요하네스가 겪게될 운명이고소한지 불의 정령왕은 기쁘게정령계로 사라졌다.
***
"……."
"……."
침대에 앉아있는 미카엘과 그 맞은편에 의자를 놓고 앉아있는 알렉시스. 두 형제는 말이없었다. 문득,
"풋…."
"형님."
"크큭…. 으하하하하하하하!!!"
아까의 상황이돌이켜 생각해 보니 웃긴지 알렉시스가 폭소를 터트렸다. 미카엘은 벌겋게물든 채로 이마를 짚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습니까!"
"크크크…. 그래,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는 했지. 너 네 부인을 진짜 사랑하는구나?"
"형님이시면 다르실 것 같습니까?!"
약이오른 미카엘이언성을 높였으나 알렉시스의 입꼬리는 씰룩씰룩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다르겠지. 나는 그놈이단도로 찌르기 전에 목을 베었을 테니까."
"그 말을 하는 게아니잖습니까!!"
"아아…. 그래그래. 나도 결국 너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기는 하다. 크크크크…."
아마도 평생 이일로 놀림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미카엘은 낯을 찌푸렸다. 그러나 성기사나 대신관과 그걸 할 필요가 없는 것만은 다행이었다. 아마도 서로에게.
***
로제타는 퍽 안도하고 있었다. 아직 안심하면 안 될 급박한 상황이기는 했으나, 미카엘이아이리스와 관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기뻤다.
'한순간 소설의 역학이작용하는 줄 알았네.'
꼭 그런 게있잖은가.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맺어지기 위해 나오는 이벤트. 이경우는 단순한 재난에 가까웠지만, 로제타는 원작의 억지력이발휘되는 줄로 알고 가슴이철렁했었다.
아이리스라면 틀림없이저를 위해 발생한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그 기회에 미카엘을 붙잡으려고 열심이었을 것이다. 로제타는 도의상, 양심상으로라도 미카엘 곁에 남아있지 못한 채로 그를 포기했을 터이고.
'진짜 소원을 다섯 개로 불려서 다행이다! 소원 한 개로 만족했으면 아웃이었어!'
그때는 제 인생을 빼앗고도 뻔뻔하고 당당하게나오는 요하네스가 미워서 괴롭히기 위해 한 선택이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그 이후에 요하네스가 보인 태도를 봐서는 더더욱 후회할 수 없게되어 버렸고.
【돌아왔다!!】
불의 정령왕이화려한 날개를 가진 황금빛 새와 같이나타났다. 겉으로 보기에는 꽁지만 긴 초라한 카나리아처럼 보였다.
【내 오랜 숙원을 풀어 줄 수 있다는 것이너인가?】
빛의 정령왕이었다.
그가 눈에 띄게침울해하고 있다는 것도, 의심하는 것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정령과의 친화력이높은 몸이된 다음부터는 주변에서 하늘하늘 날아다니고 있는 작은 정령들까지도 보였으므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네, 네에."
【인간의 말은 신뢰할 수 없으니, 네 기억을 들여다보려 한다. 수락하겠느냐?】
여전히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빛의 정령왕이물었다.
로제타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엘이 나이 든 대신관과 관계하느냐, 마느냐가 걸린 문제였다.
빛의 정령왕은 포르르 로제타의 앞으로 날아와 그녀의 머리 위에 앉았다. 기대한 것과는 다른 행동에 로제타는 잠시멈칫했다.
【음….】
머릿속이 읽힌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 들 줄은 몰랐다. 빛의 정령왕이 보고 있는 기억을 로제타도 같이 보게 되는 것인지, 머릿속으로 여러 기억들이 펼쳐졌다.
그의 인지 능력은 인간의 것을 상회하는지, 순식간에 수많은 기억들이 지나갔다. 다행스럽게도 미카엘과의 민망한 기억을 들춰 보지는 않았다.
【그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냐?】
빛의 정령왕은 아까보다도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로제타가 요하네스의 술수로 인해 몸과 인생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아네트나알렉시스는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좋다. 너와 계약을 하겠다. 단, 요하네스를 봉인하기 위해 남겨 놓은 마지막 소원은 나를 위해 빌어야 한다. 알겠느냐?】
"어떤 소원을 비시려고요?"
로제타의 질문에 빛의 정령왕의 부리에서 콧바람이 새어나왔다.
【영원한 소멸?!!! 그 정도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 놈을 영원토록 내 종으로 만들어억겁의 시간 동안 벌을 받게 할 것이다!!!】
빛의 정령왕이 불을 토해 낼 기세로 외치자 아네트가 놀라는 듯했다. 불의 정령왕은 아네트 곁으로 와서 슬쩍 속삭였다.
【마지막 계약자는 5살이었거든. 요하네스 놈의 농간으로 끔찍하게 죽었지.】
아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빛의 정령왕이 주는 벌이 요하네스에게 고통스러운 것이 되기만을 바랐다.
***
로제타와의 계약 때문인지 빛의 정령왕은 계약을 마치자마자 깃털에서 윤기가 흘렀다. 비록 흐흐흐…, 하는 낮은 웃음소리를 흘리고는 있지만 기분은 좋은 것 같았다.
【네 덕분에 지난 수천 년간의 원한에서 헤어날 수 있을 것 같으니, 약속을 지켜 주기만 한다면 너와 그자의 사이에서 나온 자손까지도 돌봐 주마!】
"감사해요."
세상의 균형을 지키는 올곧은 자와 계약을 하는 일이 잦기 때문인지, 빛의 정령왕은 요하네스와 많이 부딪혔다. 그 과정에서 빛의 정령왕과 계약한 정령사가 죽어나갔기에, 그가 가진 원한은 큰 것이었다.
시종이 두 사람이 돌아왔음을 알렸다. 문이 열리자 미카엘보다도 먼저 입을 뗀 것은 어쩐지 유쾌해 보이는 황제 쪽이었다.
"정령왕과의 계약에 성공했는가?!"
【무례한 인간이로군.】
로제타의 어깨에 앉은 정령왕을 보고 알렉시스는 씩 웃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빛의 정령왕이시여."
【그래.】
황금빛 깃털을 가진 새가 오만하게 고개를 까닥했으나알렉시스는 불쾌한 기색도 없이 아네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네트의 정령왕은 느긋하게 날개를 펄럭이며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성공했군요."
미카엘의 말에 로제타는 밝게 미소를 지으며 그가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아까 신전의 신관들이 와서 신성력을 불어넣어준 터라 이전보다도 안색이 나아진 편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둘만 있을 시간을 주면 되나?"
아네트의 물음에 로제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정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결국 그런 의미이기에.
"당분간은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만큼 정기를 받아야 하는지, 확실치도 않으니까요."
부끄러워하는 로제타와는 달리 미카엘은 눈썹 하나까딱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 얼굴을 보고 아네트는 재미없다면서 툴툴거렸다.
"그럼 너희는 새벽궁으로 들어가거라. 뒷일은 나에게 맡기고."
알렉시스에게 있어가장 중요한 일은 미카엘의 회복이었다. 반역자들을 제국에서 몰아내고, 자하르의 잔당을 소탕하는 일은 황제인그의 영역이기도 했다.
알렉시스가 아네트를 데리고 방을 빠져나가고 미카엘과 로제타 둘만 남았다. 미카엘은 이곳이라도 좋으니 곧바로 일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로제타를 위해서는 장소를 새벽궁으로 옮기는 것이 좋을 듯했다.
【…험험. 나는 계약자의 몸에 깃들어잠시잠들어있을 것이다. 그동안 필요한 일을 하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빛의 정령왕이시여."
미카엘의 대답에 정령왕은 고개를 까딱하고는 로제타의 몸속으로 사라졌다. 아직 방 안에는 시녀들이며 시종이 남아서 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만류할 사람도 없는 데다가, 새벽궁으로 가야 하는 터라 미카엘은 침대에서 내려왔다.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기대에 로제타를 안아 올리려고 했건만, 미카엘을 아직 환자라 생각하는 로제타가 만류했다.
"아프시잖아요."
"괜찮습니다. 그치만 이런 취급도 좋군요."
미카엘은 로제타의 뺨에 입 맞추고는 시종들에게 새벽궁으로 갈 것이라고 일렀다.
***
수풀 사이로 떨어진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흑태자는 이빨 사이로 새어나오는 신음을 삼키며 품에서 최상급 포션을 꺼내 마셨다. 몸에도 바르고 싶었지만 포션이 부족했다.
간신히 미카엘 황자에게서 도망치기는 했다만, 황실의 군대가 자신을 추적해 올 것임을 알았다. 움직여야 했다.
그가 몸을 일으켜 세우자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통증에 이가 갈릴 지경이었으나당장은 손쓸 방법이 없었다.
미카엘 황자의 옆구리에 쑤셔 넣었던 저주의 단검은 처음부터 그를 해치우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마지막 남은 마신의 피를 모조리 쏟아부은 물건이었다. 이마저도 통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도를 찾아내야 했다.
'설마….'
이번에야말로 죽었을 것이다. 죽었어야 했다. 그를 죽이지도 못한 채, 전 황제 부부에 대한 비밀을 털어놓은 것을 안다면…. 부왕이 먼저 그를 죽이려 할 터였다.
'아니지. 미카엘 황자가 먼저 자하르를 치려 할까?'
어찌 되었든 미카엘 황자에게 남은 시간은 길어야 한 달 정도였다. 그 저주에는 마신의 힘을 누를 정기를 받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으니, 아마도 성녀를 찾아갈 것이다.
'미카엘 황자가 성녀를 확보하게 둘 수는 없다.'
자신이 먼저 성녀를 손에 넣거나, 미카엘 황자에게 넘어가기 전에 죽여야만 했다. 비틀거리는 몸이 어두운 숲속을 걸어갔다.
***
몇 주 보지 못한 사이 두 사람이 사용했던 침실은 새 단장이 되어있었다. 첫날밤에 선물했던 속옷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황비님의 소행일 것 같았다.
천장에서부터 내려오는 아스라한 붉은 천과 붉은 비단이 깔린 둥근 침대, 침대까지 이어지는 장미꽃잎까지…. 신혼여행이라도 온 듯한 야릇한 분위기를 폴폴 풍기고 있었다.
로제타는 당황했으나내색하지 않고 시녀들을 내보냈다. 그녀들은 이러한 침실의 꾸밈새를 이미알고 있었던 눈치였다.
'우선은 씻어야 할까?'
미카엘의 상태가 걱정되는 만큼 마음이 급했다. 저주라고는 들었지만, 그게 무슨 효과를 나타내는지, 얼마나고통스러운지는 알지 못했다.
시시각각 창백해졌던 미카엘의 표정으로 보아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 뿐이다. 미카엘에게 물어보아도 괜찮다고만 하고 제대로 된 답을 해 주지 않으니 속이 상했다.
"로제타."
시녀들에 의해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한 미카엘이 로제타를 끌어당겼다. 그야 시녀들이 보고 있든 말든 상관없으나, 로제타는 다를 터였다.
"괜찮습니다. 당장 죽는 것이 아니에요. 신관들에게 치료받은 효과가 떨어지면 조금…, 괴롭기는 하겠지만 두어시간은 괜찮을 겁니다."
"…정말이지요?"
로제타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미카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미카엘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로제타의 손을 끌어당겨 그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뉘 앞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부인께서 제 주인이신데요."
"그거야말로 거짓말이시잖아요. 거짓말하시면서."
뾰로통하게 답하자 미카엘이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에는 정말 아닙니다. 진짜로 괜찮아요. 그 두 시간이 지나기 전에 안게 해 주실 거 아닙니까…."
속삭이며 미카엘이 로제타를 끌어안았다. 키스를 할 듯 고개를 숙인미카엘이 녹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로제타를 보았다.
"키스해 주실 거지요? 로제타…."
로제타의 입술까지 딱 1mm 정도만 남겨 두고 미카엘이 졸라 왔다. 로제타가 슬쩍 입을 맞추자 미카엘이 황홀한 듯이 웃음을 지으며 로제타의 입술을 뒤덮었다.
내내 그녀가 그리웠다. 그녀가 곁에 없어걱정이 커질수록 더 간절히 원했다.
황비님께서 대단히 강하다는 것은 알지만, 모든 상황을 통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 간단한 이치에 미카엘은 계속 불안했던 것이다.
"무사해 주셔서, 이렇게 제 품으로 돌아와 주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속삭이는 말에 로제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혼자 위험한 일은 전부 도맡아 놓고, 그래서 저주까지 걸려서 돌아온 주제에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로제타는 무사히 돌아와 주어감사하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미카엘은 무사히 돌아온 것이 아니었으니까.
"…저주가 풀릴 때까지 계속 사랑해 드릴 테니까, 옷부터 벗으세요."
그런 위험한 발언을, 하는 말을 삼키며 미카엘은 웃음을 흘렸다. 귀여운 말을 하는 로제타를 사랑해 주고 싶어안달이 난 느낌이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이 저주를 좋아하게 될 것 같습니다만."
미카엘의 철없는 발언에 로제타는 그의 등짝을 찰싹, 소리가 나게 때렸다.
***
손가락이 끊임없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거부하기에는 미카엘이 너무나로제타가 좋아하는 곳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이미미카엘의 그 어떠한 손길에도 쾌락을 느낄 만큼 민감해져 있었다.
"흐으…. 아흣! 자꾸 그곳만…."
미지근한 욕조의 물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맞닿은 피부며 자신의 몸까지도 열이 오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카엘은 자꾸만 몸을 꼬는 로제타의 다리를 잡아 벌리며 사랑스러운 속살을 만지작거렸다.
"마음이 급하니까요. 이 귀여운 곳으로 빨리 제 것을 밀어넣고 싶습니다. 제 것을 넣으면 부인께서는 오물오물 사랑스럽게 저를 맛보시겠지요."
"응, 으음…. 앙!"
파고들어온 손가락이 로제타가 좋아하는 곳을 긁어내렸다. 음탕한 자극에 튀어오르는 소리를 잡으며 미카엘은 재차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부드러운 속살에서 점점 끈적하고 미끈거리는 액체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미흥건하게 젖었지만 제 것을 쏟아부어더 축축하게 만들고 싶었다.
"이제 되겠지요? 이제 제 손가락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시는 듯하니…."
그저 기분 좋기만 했으나미카엘의 것을 준다는 말에 로제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드럽게 녹아내린 안으로 그의 뜨겁고 단단한 것을 받아들이기를 바랐다.
"으으응…. 아아……."
벌어진 다리 사이로 미카엘의 페니스가 파고들었다. 로제타는 미카엘이 인도하는 대로 그의 단련된 허리를 제 다리로 감았다. 그의 목에 매달리자 여릿한 쾌락에 젖은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
"키스, 해 주시겠습니까? 부인을 즐겁게 하는 것은 제가 할 테니까…."
로제타는 약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카엘의 목을 끌어안았다. 미카엘이 손을 뻗어로제타의 포동포동한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음, 하앗! 아아앙!"
입술을 맞부딪히자마자 미카엘이 허리를 흔들며 밀어붙였다. 녹을 듯 음란한 쾌락에 로제타는미카엘의 가슴에 매달리며 흐느꼈다.
"아! 아, 아아…. 아앙! 아아앗, 으응…!"
"로제타…. 키스해야지요."
"앗! 아아…. 미카엘, 님! 아앗!"
그리 오래간만에 하는것도 아닐진대 미카엘의 것은 여전히 크고 흉포했다. 기다렸다는듯이 로제타의 안을 맛보며 날뛰는것에 로제타는키스에 집중하지 못하고 허덕였다.
미카엘은 못 말리겠다는듯이 웃으며 로제타의 몸을 아래위로 흔들었다. 페니스가물과 같이 푸욱푸욱 박히며 로제타를 즐겁게 했다.
"아앗, 앗! 아아아아……."
죽겠다는듯 자지러지는로제타가사랑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 일단 욕조에서 로제타를 녹일 생각이었으나 안 되겠다. 욕조 안에서 하는체위에는한계가있으니, 침대로 자리를 옮겨야겠다는생각이 들었다.
"아흥?! 아아앗, 무슨…."
"조금만…."
로제타를 안아 든 미카엘이 허릿짓을 하며 일어섰다. 꼼짝없이 그에게 매달린 로제타가안을 헤집어대는굵직한 페니스에 몸을 꼬았다.
"응응! 아흐앙…. 지금 뭐 하는, 아앙…. 싫어……. 앗, 아아…!"
그저 욕조를 빠져나가는것뿐인데도 페니스가이리저리 꿈틀거리며 이상한 곳을 찔렀다. 기겁하며 자신에게 매달리는로제타의 조임에 미카엘의 신음도 깊어졌다.
"이상한 것을 하지는…. 으음, 로제타……!"
조여 오는감촉에 참을 수 없었는지, 욕조를 다 빠져나온 미카엘이 푸욱푸욱 소리가날 정도로 맹렬하게 박아대기 시작했다. 완전히 들어 올려 평소보다도 깊숙이 삽입되기에, 로제타는기겁하며 버둥거렸다.
"아아, 아아아아! 앙 대! 앙 대, 그거…. 으흐! 으으응! 아흐아흐앙!"
앙앙 울어대며 신음하는로제타의 모습에 허리춤에 한결 피가쏠렸다. 미카엘은 로제타가절정을 느낄 때까지 미친 듯이 몰아세웠다. 흐느끼며 황홀경을 맛본 로제타의 몸이 휘어졌다. 튕겨지는허리를 붙잡고 미카엘도 홀린 듯 퍽퍽 쳐댔다.
"아! 아아아아……."
절정에 이르러 축 늘어진 로제타의 안으로 정액이 쏟아졌다. 주르륵 흘러넘치는음탕한 액체에 부끄러워할 새도 없이, 미카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아…. 앙 대, 앗……. 아아……."
신음하는입술에 키스를 퍼부으며 미카엘은 그대로 욕실을 나갔다. 움찔움찔 씰룩대는내부를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려 했으나, 쫀득하게 감겨 오는질내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으으음…."
참아 보려 하던 미카엘은 문득 참을 필요가있을까, 싶었다. 어차피 로제타의 정기를 듬뿍 받아야 했으니 되도록 많이 해야 할 터였다.
'도움이 될 법한 물건들도 잔뜩 준비되어 있고….'
침대 옆의 협탁에는자양강장제를 비롯하여 포션에 고농도의 미약까지 좌르륵 진열되어 있었다. 미카엘은 그 누군가에게 감사하며 느릿하게 움직이던 허릿짓에 박차를 가했다.
"흐으, 하아아앙! 으응…."
안을 탐하는페니스의 달라진 움직임에 품속의 로제타가꿈틀거렸다. 그럼에도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꼭 감고 있는것이나, 그의 목에 매달린 절박한 손길이 미카엘을 기쁘게 했다.
"아! 아! 아!"
기분 좋았다. 안을 파고들어 끊임없이 자극하는것에 허리 아래쪽이 녹아 버릴 것 같았다. 로제타는키스를 받으며 목욕물이 미지근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뜨거웠다면 이 열기에 금세 기절했을지도 모르니까.
***
푸욱, 퍽! 퍽퍽!
엎어진 채로 엉덩이만을 든 로제타의 뒤로 쉼 없이 페니스가파고들었다. 로제타는헐떡이며 그저 미카엘이 하는대로 앞뒤로 흔들렸다.
"으응, 응! 아앙! 아아앙…."
굵고 뜨거운 페니스가밀고 들어올 때마다 안쪽이 부르르 떨리는것 같았다. 로제타는타액이 흐르는줄도 모르고 시트에 손톱을 세웠다.
'아앗, 미칠 것 같아….'
미카엘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 정기를 주려고 관계하는것이었는데. 이제는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카엘은 로제타가뭘 주의해야 하는지도 가르쳐 주지 않은 채로 그저 그녀를 탐하는데만 몰두하고 있었다.
"흐아! 아아아아아앗!"
움찔움찔 경련하며 또다시 절정에 이르자 미카엘의 절박한 신음 소리가울렸다. 그는로제타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페니스를 깊숙이 묻었다.
"히익…."
선단에서 쏟아지는끈적하고 뜨거운 액체의 감촉에 허리가부들부들 떨렸다. 미끈거리는액체가페니스와 속살 사이로 퍼져 나가는것이 느껴졌다.
"아흐응……. 아앗…."
어차피 둘 다 피임 반지를 껴서 아이가생기는것도 아니건만, 왜 매번 이렇게 깊숙이 사정하려고 드는지 모르겠다. 왈칵 쏟아진 정액은 이전의 것과 뒤섞이며 입구까지 넘쳐흘렀다. 엉덩이를 타고 흐르는그것을 점막에 비비듯 미카엘이 다시 허릿짓하기 시작했다.
"흐아, 으…. 앙! 아앗…."
끌어당겨지는손길에 엉덩이를 들게 되자, 또다시 페니스가질퍽이는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로제타는신음하며 앞뒤로 흔들렸다.
미카엘은 내 정기를 받고 있는걸까? 지금 기분으로서는정기를 나누어 주기는커녕 미카엘에게 정액만 받고 있는것 같았다.
'뭔가기운이 빠지는것도 같은데….'
중간에 숨 돌릴 시간마다 미카엘이 뭔가마법을 걸어 주는것도 같았고, 마개를 뽑아 건네주는대로 병에 든 액체도 마셨다.
"응, 아앗! 앗! 아앙…."
이렇게 느끼기만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제가미카엘을 간호해야 하는입장인 것 같은데, 되레 봉사를 받는기분이었다.
로제타는쾌락으로 흐려지려는머리를 흔들어 이성을 되찾으려 애썼다. 너무 기분 좋았다.
***
'아직인가….'
과연 마신의 피가섞인 저주는지독했다. 단도에 찔린 자리에서부터 독이 퍼지듯 검은 기운이 기어 올라가는것이 보였다. 이는상급 마법사나 겨우 볼 수 있는광경으로, 이제 막 정령사가된 로제타의 눈에는보이지 않는듯했다.
그녀는미카엘의 허리춤에 약간의 흉터가남은 것을 보고 아팠겠다면서, 안타까워했을 뿐이다.
성녀나 신관이었다면, 효과적으로 저주를 누를 기운을 정사 도중에 방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로제타는정령사이기에, 그것도 정령사가된 지 몇 시간밖에 안 됐을 뿐인지라, 그것을 할 줄 몰랐다.
그래도 로제타가절정을 맛볼 때마다 빛의 정령의 기운이 미카엘에게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으음, 읏…."
기분 좋았다. 저주를 누르는정령의 기운을 비롯하여, 로제타의 젖은 속살이 그가이미 걸어 놓은 마법까지 더해져 그를 황홀하게 했다.
저주를 푸는속도는더뎠으나, 뭐가문제일까 싶었다.
배후를 몰랐다면 모를까, 이제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몰아내야 하는지 알았다. 황제와 황비 전하께서는순식간에 라스탄에서 버러지 같은 것들을 몰아낼 터였다.
이제 그가해야 할 일은 사랑스러운 아내를 듬뿍 안아 주어 제 몸에서 저주를 없애는것뿐이었다.
"로제타…."
"앗, 아아……. 미카…. 엘, 님…. 으으응……."
헐떡이는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제 퍽 미카엘을 많이 사랑하게 된 로제타이기에 조금만 만져 주어도 쾌락에 녹아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도 그의 것이 황홀한 듯 몸을 비틀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귀여운 내 아내."
바르르 떠는로제타가귀여워 엎드린 채 엉덩이를 세우고 있는로제타를 부둥켜안았다. 침대에 눌려 있는가슴을 크게 움켜쥐고 빳빳하게 선 유두를 괴롭히자 로제타가달게 헐떡였다.
"아앙, 거기 지금…. 으흐응……."
"기분 좋다고요?"
기분 좋았다. 좋기는좋은데…. 너무 민감해서 머릿속이 이상해질 것 같았다.
"아, 아니…. 으응! 그렇게 꼬집지 말고…. 아앗!"
뒤덮듯 끌어안겨진 몸이 미카엘의 팔 안에서 이리저리 버둥거렸다. 달콤한 자극을 피하기 위함이었지만, 사랑스럽다는듯이 꼭 껴안은 팔 안 어디로도 도망칠 곳은 없었다.
"하지만 제가이렇게 만져 드릴 때마다 이곳이…."
"히익!"
허리를 움직여 여봐란듯이 페니스로 속살을 비벼대자 로제타가몸을 꼬았다. 미카엘은 제 허리에 문질러지는엉덩이가기분 좋은 듯 페니스로 질척질척 쳐댔다.
"이렇게 조이니…. 계속 만져 드릴 수밖에요. 기분 좋다는거겠지요, 로제타?"
"아아, 읏! 아니…. 아앙…."
민감해진 유두가이리저리 굴리고 잡아당겨지고, 꼬집히기까지 했다. 미카엘의 타액으로 흠뻑 젖은 곳이기는하나 그래도 자극적이었다.
"으응! 아흐으음…."
"하아……. 로제타…. 좋아요. 더…."
가슴을 괴롭히는손길이 한층 집요해지며, 무르익은 속살을 맛보는허릿짓도 빨라졌다. 로제타는미카엘의 품에서 헐떡이며 허리를 꼬았다.
"응응! 앙! 하으앙, 아앙! 아아아아아앗……."
활처럼 허리가휘어지며 엉덩이가튀어 올랐다. 몇 번이고 반복된 반응이었지만 한결같이 사랑스러웠기에, 미카엘은 마지막까지 로제타를 달게 몰아세웠다. 씰룩씰룩 수축하는속살을 탐하는피스톤질에 로제타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 아아아아……. 지금, 지금 그거 안 돼엣……!"
사랑스러운 교성을 음미하며 미카엘은 로제타가더한 절정에 흐느낄 때까지 괴롭혀 주었다. 이내 축 늘어진 로제타의 안으로 폭발하듯 사정하며 그도 황홀경에 오르자 로제타의 몸이 움찔움찔 경련했다.
'귀여워….'
미카엘은 흐뭇하게 웃으며 신음하는로제타의 뺨에 키스했다. 제가저주를 받은 자리를 만져 보니 여전히 뭉클한 기운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직은 한참 더 로제타를 안아야 할 테지만, 이런 식이라면 하루 이틀 정도가아니라 일 년 열두 달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황실의 한 방으로 안내되어 그곳에 갇혀 있었던 이그네시아 공녀는황제가일어났다는소리에 주저앉았다. 그녀는사실 황실의 무도회장이나 연회장에서 황제에게 인사를 올린 적이 있었을 뿐, 개인적으로는말도 몇 번 붙여 본 적이 없었다.
'다 끝났다.'
황제가정신이 들었다고 해도, 그곳이 이그네시아 공작령이었다면 얘기는달랐을 것이다. 병든 황제를 위협하여 그녀 배 속의 아이가친자임을 인정하는서류에 사인을 하게 하고, 병사를 위장해 죽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부친과 귀족들은 황제를 납치하는데도 실패한 데다가, 그녀 배 속의 아이도 황제의 자식이 아니었다.
이제 그들은 반역자가될 터였다.
이그네시아 공녀는머리를 굴렸다. 그녀는이자벨 카룰리아스처럼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풍문으로 들리는소문에 의하면 이자벨은 감옥 안에서 혀를 인두로 지져지는형벌까지 받았다고 들었다.
'설마 내게도? 아, 안 돼!'
그저 치욕스러운 취급을 받지 않고, 그 머저리 같은 자식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분'께 협력했을 뿐인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그래, 그래! 난 모르는일이다!'
가면을 쓴 남자가자신의 침실에 들어오는것을 아버지에게 목격하게 했으니, 그가증인이 되어 줄 것이다. 자신이 황제라 지칭하는남자의 말을 믿고 그와 관계했다고 둘러대면 그만인 것이다!
'아버지와 오빠들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일단 목숨을 건질 수 있을지 몰라!'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애초에 그들이 진실을 알았을 때에,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줄 만한 이들이었다면 거짓말은 하지 않았을 거였다. 그러니 그들의 죽음에는 그들의 잘못도 있는 거였다.
그녀는 단지 두려웠고, 살아남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이건 날 속인 그분의 잘못이야! 난 속았을 뿐이라고!'
이그네시아공녀는 두려움에 떨면서 홀로생각했다.
***
황궁에 침입한 대다수의 반역자들은 황제와 황실 기사들의 손에 목이 잘렸으나, 나머지 자들은 투항하여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이그네시아공작의 꾐에 넘어갔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공작이 먼저 폐하를 구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덴 공작님이 범인이라는 증거를 보여 주어그것을 믿었을 뿐입니다, 폐하!"
"이그네시아공녀가 폐하의 자식을 가졌다는 말을 들었기에…. 신은 폐하의 핏줄을 살리려 그리했을 뿐입니다!"
앞다투어변명을 늘어놓는 그들의 모습에 알렉시스는 픽 웃었다.
"오늘내일하는 것으로알려진 나를 구출한다? 데리고 나오는 도중에 내가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지 않던가?"
"폐, 폐하의 암살을 도모한 아덴 공작의 곁에 있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판단이 섰기에…. 충심으로그리했을 뿐입니다! 헤아려 주시옵소서!"
"헤아려 주시옵소서, 폐하!!"
일부가 살아남았다고는 하나 목숨을 건진 이는 스무 명이 조금 넘었다. 기사들은 어차피제 신분이 낮아투항해도 죽을 거라 생각했는지, 마지막까지 저항하다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는 귀족들뿐이었다.
이그네시아공작의 요구로어쩔 수 없이 참여한 자들.
본래 그들은 가문의 기사들만을 보내려고 했으나, 이그네시아공작이 협력의 증거를 보이라 요구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대들이야말로헤아려 주게나.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는 규율이 필요한 법. 감히 이 황궁에 침입하여 내게 검을 겨누었으니…, 반역자가 분명한데. 변명 몇 마디 들었다고 살려 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보는 눈도 있는데."
"폐하!!!"
"아, 아닙니다, 폐하! 저희는…."
"듣기 싫고. 살고 싶은 자가 있다면 네놈들의 일당에 대해 아는 대로털어놓아야 할 것이다. 네놈들을 소탕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따라 너희들의 처우를 결정할 테니."
황제는 그리 말하고는 망토 자락을 휘날리며 떠나 버렸다. 감옥 복도의 문이 닫히는 것을 보며 귀족들은 절망했다. 저 문처럼 자신들의 미래가 닫히고 있었다.
'이런 일에 몸을 담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러나 이미 쏟아버린 물이었다.
***
이그네시아공작 일가가 반역으로몰렸다는 소문은 일파만파로퍼져 나갔다. 심지어는 타국인 자하르와 결탁했다는 소문에 사교계는 다시 한번 뒤집혔다. 가장 놀란 것은 로건을 설득하려 했던 발레르 공작이었다.
발레르 공작은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닌가 초조해하면서도 로건의 말대로했다. 이그네시아공녀가 후궁이 된다 해도, 황제가 다른 황비를 보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로건의 말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황실 사냥대회에서 그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는 이그네시아공작 일가를 경계했다. 미리 세력을 만들려 한 것을 알았기에, 이그네시아공작가가 황제를 해한 것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발레르 공작은 로건의 말대로아무런 증거를 만들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여겼다. 발레르 공작가는 이그네시아공작가의 몇 가지 편의를 봐준 것 외에는 아무 혐의점이 없었다.
그 몇 가지 편의를 봐준 것으로도 황실 관리의 조사를 받았으므로, 발레르 공작은 속으로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들놈을 영리하게 키운 덕을 보았다.'
이미 쥐고 있는 것이 많은데, 역시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니었다. 발레르 공작은 이번 일을 교훈으로삼자며 깊이 머릿속에 새겼다.
한편, 이그네시아공작의 편에 섰던 스물여섯 개의 가문은 반역자로몰리게 되었다. 황제가 쓰러지자마자냉큼 이그네시아공작에게 붙었던 그들이었다.
그나마 아덴 공작령으로갔던 미르세 후작은 반역에 가담하지 않을 뻔했으나, 수도에는 후계자인 그의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이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 싶어, 냉큼 서류에 사인을 한 것이다. 그것은 이그네시아공작가에게 협력한다는 서류였다.
겨우 마물의 게이트가 될 뻔한 사건에서 휘말리지 않았다 싶었는데, 이쪽은 아들 때문에 망하게 되었다.
황실 기사들에게 끌려가며 미르세 후작은 아들의 머리털을 쥐어뜯었다.
일찍부터 수도 밖으로도망쳐 이그네시아공작령으로몸을 숨겼던 이그네시아공작가였으나, 반란군을 숙청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온 아네트의 모습에 얼이 빠졌다.
아네트는 알렉시스를 암살하려 한 것이 자하르의 왕자인 로드리고이고, 그 로드리고와 이그네시아공작가가 협력했다는 사실에 단단히 화가 난 상태였다.
불의 정령왕과 계약한 정령사는 단 이틀 만에 이그네시아공작가의 사병을 분쇄시켰다. 저택은 불타올랐으며, 저항한 이들은 모두 숯덩이가 되었다.
공작은 제 딸의 배 속에 차기 황제가 있으니, 자신은 차기 황제의 외할아버지라고 고함을 질렀다가 아네트에게 주먹으로맞았다.
"어디서 남의 남자에게 모함질이야!!"
공작은 마음으로는 남편을 모른다고 비웃고 싶었으나, 아네트의 기세가 너무 살벌하여 차마 입 밖으로옮기지는 못했다.
산 채로타 죽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
"…남은 건 자하르 놈들인가."
자하르 왕인 일리야는 발 빠르게도 로드리고를 버렸다. 그는 오래전에 로드리고 왕세자를 내쫓았다면서, 로드리고와 자하르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 말만으로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쫓아냈다고 주장한다 치더라도 로드리고가 자하르의 왕실 혈통인 것은 마찬가지였고, 미카엘이 죽인 자하르의 기사들이 있었다. 자하르의 왕실 기사는 문신을 하도록 되어있었다.
뱀을 낚아챈 매의 문신은 자하르의 기사임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 또한 생포한 자하르의 기사들 또한 증거가 되었다.
알렉시스는 자하르에 정식으로항의하는 문서를 보내고, 자하르의 상단을 모조리 라스탄 밖으로쫓아냈다. 또한 수도에 머물고 있던 자하르의 외교관과 첩자들의 목을 베어그 상단주의 손에 들려 주었다.
"너희 왕에게 일러, 다음번에는 그놈의 아들 머리를 보낼 것이라 말해 주거라!"
상단주는 피에 젖은 보자기를 받아든 채로벌벌 떨기만 했다.
자하르의 왕자가 어느 편으로자금을 조달받았을지는 뻔한 노릇인지라, 목을 보존한 채로돌려보내는 것만 해도 크나큰아량을 베푸는 것이었다.
"며, 명심하겠습니다…."
상단주가 허둥지둥 어전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알렉시스는 혀를 찼다. 물론 그는 이 정도로보복을 그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자하르는 그렇잖아도 야금야금 주변 나라들을 침략하여 제 크기를 키우는 터라 거슬렸던 나라였다.
그 주변의 나라들을 전부 삼키더라도 라스탄에는 비할 바가 못 되기에, 설마 이러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줄은 몰랐다.
'하나 지금은 내실을 다져야 할 때….'
주요 공작 가문 중에 두 가문이 지위를 잃었다. 카룰리아스는 언젠가 도려내야 할 썩은 부위였다고는 해도, 이그네시아는 유서 깊은 가문이었다. 귀족들의 동요가 클 터였다.
다행히 이그네시아에게 협력한 대부분의 가문은 이미 사교계에서 외면받던 이들이었다. 로제타의 일로이미 황제의 눈 밖에 난 이들이었기에, 이때가 기회다 싶었을 것이다.
'그들이라면…, 차라리 잘되었을지도 모르겠군.'
알렉시스는 언젠가 미카엘과 로제타 사이에서 나온 조카에게 황위를 물려줄 생각이었다. 만약 그 아이가 황위에 오른다면, 로제타를 괴롭힌 자신들의 입지가 불리해질 것은 명확한 일…. 그 가문들은 어차피방해가 됐을 터였다.
명분도 분명하니, 이 기회에 싹 다 쓸어버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로제타로변신한 미카엘을 지키려 로제타의 호위기사 몇몇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미카엘은 그러한 인명 피해를 예측하고, 일이 터지기 며칠 전에 호위기사를 교체했다. 아이리스의 추종자들로, 과거 로제타에게 폭력을 휘두르려 했던 전적이 있는 자들이었다.
알렉시스는 그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기에,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한 아까운 죽음이라 생각하고 혀를 찼다.
***
'왜 안 돌아오는 거지?'
아이리스는 아직도 아덴 공작가에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신전의 마차를 강탈당한 그날 큰충격을 받고 쓰러졌다는 핑계였다. 그것도 2~3일 정도 머물고 신전으로돌아갈 만한 정도의 일이었지만, 아이리스는 아직도 버티고 있었다.
'소문으로는 황제에게 큰일이 났다고 하고….'
이것은 원작1에는 없는 사건인지라 당황스러웠다. 로제타가 누명을 쓰는 사건 자체도 원작에는 없는 일이라 여러모로놀라기는 했다.
'로건은 가 버렸고, 패트릭은 연락도 없고….'
제럴드는 첫날은 와서 상태를 살피기는 했으나 바쁜 것 같았다. 맡은 일이 있는지, 시녀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을 뿐이었다.
강도를 당할 때에 놀랐다는 것으로는 며칠씩 머무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아서, 은근슬쩍 발을 접질린 척을 하고 있으나…. 그녀에게 나가라고 하는 이는 없었다. 주인인 미카엘과 로제타가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성녀이니 딱히 눈치 주지 않고, 적당한 때가 되면 나가겠거니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이리스도 이 상황이 곤혹스럽기는 했다.
'이대로수도로떠난다면 다시 여기는 못 들어올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이대로죽치고 있을 수도 없고.'
이그네시아공작가가 반역을 일으켰다고 하니 수도는 어수선할 것이다. 황제의 힘이 되어야 할 미카엘은 한동안 수도에 머물 테니, 공작저로는 몇 개월 후에나 돌아올지도 모른다. 아무리 낯이 두껍다 한들, 몇 개월이나 비비고 있을 자신이 없는 아이리스는 축 어깨를 늘어트렸다.
'좋은 기회인 줄 알았는데.'
납치된 줄 알았던 로제타는 무사히 돌아왔다고 하고, 겨우 공작가에 입성했다 싶었더니 미카엘은 떠나가 버렸다.
아아…, 역시 주인공이 되는 건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카엘은 원작 아이리스의 얼굴이 아니라 다른 면을 본 거였나 봐.'
이렇게 노력했는데도 돌아오는 것이 없으니, 아이리스는 슬슬 진력이 나기 시작했다. 애초에 떠받들리는 것에 익숙한 그녀였다. 미카엘의 얼굴에 혹해 그에게 연심을 품었다고는 해도, 냉랭한 태도가 이어지니 그 감정이 계속될 리 없었다.
'아이리스 따위 좋아해 봤자, 결국 배신당하고 죽을 텐데. 미카엘은 바보라니까…. 하아~, 하지만 그런 미카엘을 포기하기 싫은 나도 바보일까?'
지친 마음과 납득할 수 없는 욕심이 한데 뒤섞여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아이리스는 슬슬 눈치가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에 공작저에서 보인 추태가 있어선지, 공작저의 고용인들이 저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신전에서도 더 이상의 추태는용납하지 않겠다고 압력을 넣고 있었다. 조만간 이공작가의 성을 나와야 할지도 모른다.
"성녀님!"
노크도 없이뛰어 들어오는신녀의 모습에 아이리스는눈썹을 찌푸렸다. 약간 짜증이났지만, 그녀는아이리스와 같이여기까지 와서 눈칫밥을 먹는사이였다.
"왜?"
"아덴 공작 각하의 소식을 들으셨어요?"
신녀가 방문을 닫더니 아이리스에게 달려왔다. 그러고는누가 엿들을세라 소곤소곤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리스의 얼굴이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그게 진짜라고?"
"네에! 조만간 신전에 연락을 넣지 않을까요? 지독한 저주라고 하더라고요."
신녀는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으나 성녀가 미카엘 황자에게 마음이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하는짓도 그렇고, 원래도 그런 쪽으로소문이났으니 모르는게 더 이상했다.
미카엘 황자, 아덴 공작은 유부남이니 내키는일은 아니었지만, 성녀와 미카엘 황자가 이어지면 신전에는좋은 일일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우선 미카엘 황자가 지금의 부인과 이혼해야 할 테지만.
"연락을 넣는다 해도 그분은…. 유, 유부남이시잖아."
"상황이어쩔 수 없잖아요. 그쪽도 성녀님의 위치가 있으니, 함부로요구하지는못할 테고…. 아마도 공작부인과 이혼하고 청하지 않을까요? 목숨이걸린 일이니까."
미카엘은 제 목숨을 함부로할 수 있는위치가 아니었다. 그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라스탄 황실의 대가 끊어지고 말 테니까. 신녀는아직까지 소식이없는것이이혼 문제가 길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추측했다.
'평범했던 백작 영애가 이런 행운을 잡았는데, 쉬이이혼해 줄 리가 없지. 나 같아도 물고 늘어질 거야!'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다. 그리 평범한 이에게 그런 행운이가다니.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신녀가 전해 온 소식에 아이리스는한껏 들떴다. 그런 일이생기다니. 마치, 마치….
'여주인공인 날 위한 이벤트 같잖아!'
아이리스는기쁨에 들떴으나 겉으로는태연한 척하려 애썼다. 신녀의 말대로라면 미카엘은 로제타와 헤어진 뒤 그녀에게 청혼하려 할 터였다.
아마도 소설 속의 많은 남자주인공처럼, 처음에는나를 싫어하겠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안는거라고 하면서….
'자존심은 많이상하지만…. 상대가 미카엘이라면! 거기다 그런 이벤트라면 한 번으로끝날 리도 없을 테고! 로제타 속에 들어간 아이리스는패트릭이라도 붙잡아 위로받겠지!'
로제타는패트릭과 이어져 원작과 같은 결말을 맞고, 자신은 미카엘과 이어져 천년만년 잘 사는거다! 자신이생각해 낸 완벽한 엔딩에 아이리스는눈을 반짝이며 좋아했다.
***
바로눕혀진 다리 사이로뜨겁고 커다란 것이끊임없이드나들며 질척이는소리를 만들어 냈다. 달콤한 쾌락에 로제타는몸을 비틀고 싶었지만, 미카엘과 침대 사이에 갇혀 다리를 꼼지락거리는것이다였다.
"흐응, 아흐앙…."
지척에서 들여다보는미카엘의 시선이부끄러웠다. 귀여워 죽겠다는듯이애정 가득한 눈으로들여다보며 키스를 퍼붓고, 그러면서도 허리는멈추지를 않았다.
"으음…. 아흐! 아아앗…."
몇 번이나 절정을 맛보고, 절정을 맛보는와중에도 안겼는지 셀 수도 없었다. 로제타는미카엘의 팔 안에 갇힌 채로허덕였다. 지나친 자극에 엉덩이를 빼면, 어림도 없다는듯이미카엘이허리를 세워 밀어붙였다.
그 탓으로가장 민감한 깊은 곳을 자꾸 괴롭혀져서 몇십 분간이나 절정을 느낀 적도 있었다.
"응, 음…. 아앙! 아흑……. 이제, 더는, 아흐…. 아앙…."
"제 저주는아직인데요. 벌써 저를 포기하시려는겁니까?"
"아…. 아아, 아니…. 그건……. 으흐으응!"
뺨으로흐르는로제타의 타액을 맛보며 미카엘이귀여운 입술 틈새로혀를 밀어 넣었다. 다디단 로제타의 혀를 제 혀로감아 부드럽게 희롱하며 쪽쪽 입술을 빨았다.
"으흡, 응…."
제 아래에서 꼼지락거리는허리 아래에 손을 밀어 넣어 로제타의 엉덩이를 그러쥐었다. 손에 잡히는말랑말랑한 그것을 주무르자 로제타의 입술에서 신음이흘러나왔다.
"응흣! 아흐…. 아앗, 아앙! 미카엘 님, 그거 싫…. 앗, 아아아!"
크게 벌어진 로제타의 발끝에 힘이들어갔다. 바동거리는두 다리를 사랑스럽다는듯이훔쳐보며 미카엘은 입맛을 다셨다. 손아귀에 들어온 로제타의 엉덩이를 당기며, 깊숙이파고든 페니스를 좌우, 아래위로움직이며 안을 비벼대자 질척질척한 소리가 울렸다.
"안돼! 그거…. 하앙, 앙! 아흐, 아학! 으흐으으응!!"
이를 악문 로제타가 자극을 견디려는듯 고개를 좌우로흔들었다. 그러나 이내 쾌락에 약한 몸이황홀경에 도달해 버리고 안이씰룩씰룩 수축하는것이느껴졌다. 기회라는듯, 크게 빠져나갔던 페니스가 돌진하며 안을 긁어내리자 로제타의 허리가 튀어 올랐다.
"아아아아! 아아……."
안이부들부들 수축하며 미카엘의 페니스를 조여대는게 느껴졌다. 흘러넘친 애액이정액과 뒤섞이고 미끈미끈한 감촉에 힘입어 페니스가 퍽퍽! 로제타의 안을 탐했다.
"으흥! 읏! 하으응! 아앙!"
삽입될 때마다 진저리를 칠 듯한 쾌락이배 속을 가득 메웠다. 안을 온통 긁어내리며 빠져나갈 때는자극에 배 속이오그라드는느낌이들었다.
'아아……, 죽을 것 같아!'
벌써 나흘째, 이침실에 갇힌 채로미카엘에게 탐해지고 있었다. 식사도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잠도 자고, 휴식 시간도 있었지만…. 그 외의 모든 시간을 미카엘과 사랑을 나누는데 사용하고 있었다.
"흐아, 으…. 아아아아아, 앗! 아앗……."
크나큰 절정을 맛보며 부들부들 경련하는로제타의 안으로미카엘이사정했다. 로제타는벌써 몇 번이나 사정하고도 여전히 크기만 한 미카엘의 그것에 울상이되었다. 미카엘은 그런 로제타의 표정도 귀여운지, 뺨을 감싸 쥐고는진득한 키스를 퍼부었다.
미카엘로말할 것 같으면, 행복에 취해 이나날이계속되었으면 하는마음뿐이었다.
저주 때문에 로제타가 이렇게 며칠씩 안는것을 허락해 주고 있다는것은 알지만, 이순간이너무 기껍고 행복했다.
"사랑해요, 로제타…. 너무 사랑합니다……."
황홀한 듯 미소 지으며 거듭 입 맞춰 오는미카엘에 로제타도 녹아내릴 것 같은 쾌락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쾌감이너무 강렬하여 무서웠지만, 미카엘이이렇게 단단히 안아 주는동안에는그것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럼 또…."
"아앗! 으응…."
또다시 질척이며 허릿짓을 하는미카엘에, 로제타의 얼굴이음탕한 쾌락으로얼룩졌다. 미카엘은 세상에 다시없을 아름다운 것을 본다는듯이, 그런 로제타의 모습에 눈길을 주며 황홀한 시간을 보냈다.
결코 멈추고 싶지 않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고 짖는기분이이러할까? 패트릭은 비참한 심정으로닫혀 있는새벽궁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는며칠 전에 수도로돌아왔다.
아덴 공작의 명에 따라 윌리엄과 많은 다른 기사들과 같이로제타를 납치했던 자들을 추적했지만, 한 명도 생포하지 못했다. 성공은 했으나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는결과였다.
그리고 수도로돌아오라는명령에 따라 어제 입성한 것이다.
납치범들을 쫓아 멀리까지 갔기 때문에 중요한 사건에는하나도 개입하지 못했다.
수도에서는황제가 암살될 뻔하고, 황궁으로반역자들이침입했으며, 미카엘 황자가 자하르의 음모를 파헤쳤다고 알려져 있었다.
현재는그러다 입은 부상으로새벽궁에 칩거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결혼한 지 얼마되지 않은 부인의 간호를 받으며.
그들은 애초부터 황제의 명을 받고 공작 부부를 지키기 위해 파견되었기에, 수도로돌아온 이후로도 같은 임무를 배정받았다. 새벽궁에 머무는공작 부부를 지키는일이었다.
패트릭은 미약한 기대로로제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아덴 공작가의 성에서보다 로제타와 마주치는것은 쉽지 않았다. 그녀는정원으로나오는가벼운 산책조차 하지 않는것 같았다.
들리는소문에 따르면 침실에 틀어박혀 미카엘 황자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미카엘 황자가 부상을 입었다는소문이거짓이라는얘기도 있었다.
설마, 그럴 리는없겠지만.
황제가 내린 어려운 임무 하나를 해결하고 부인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남자의 모습이연상되어, 패트릭은 상당히 많이불쾌해졌다.
저 방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미카엘 황자는로제타를 속여 결혼을 한 것만으로는성이차지 않는것일까?
역시 미카엘 황자도 로제타를 좋아하고 있다는확신과,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는간절한 바람이뒤섞였다.
패트릭은 로제타의 곁으로다가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가 결코 곁을 주지 않을 것 같다는불길한 예감도 들었다. 그녀가 그의 거절을 알아듣고 곧바로모든 관계를 끊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그날, 로제타가 그에게 그렇게 화를 내고 난 이후, 패트릭은 그녀에게 가벼운 인사 한마디도 건네지 못하고 있었다.
시작은 가벼운 안부 인사 정도가 적당할 것 같았다. 차근차근 관계를 쌓아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생각이들었다.
'왜 이리도 자신감이사라지는지 모르겠군.'
미카엘과 로제타가 다정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피가 바짝바짝 말라 가는기분이들었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강을 건넌 것만은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
저주의 흔적을 눈으로확인할 수 있는이는, 미카엘과 같이대마법사의 칭호를 받았거나 법황이거나, 그와 비슷한 저주를 받은 이뿐이었다.
미카엘에게 셔츠를 젖혀 상처 부위를 보여 달라 요구했던 알렉시스는미간에 주름을 세웠다.
"완전히 없어지지는않았군."
"네."
"너는그게 기뻐 죽을 일인 것처럼 굴고 있고 말이야."
기가 막혀 비꼬았으나 미카엘의 얼굴에 어린 행복해 죽겠다는표정은 가시지 않았다. 미카엘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대꾸했다.
"저주를 사라지게 할 적절한 처치를 받을 테니까요."
처치 좋아하네, 하고 중얼거리는알렉시스에 아네트가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자리에 로제타는없었다. 그녀는미카엘에게 정기를 쪽 빨린 탓에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스물일곱 개의 가문 중의 스물여섯 개 가문이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렸기에, 재판은 최소한도로진행될 거다."
딱 하나 남아 있는가문은 라로쉬 영애가 있는라로쉬 백작가뿐이었다. 그녀는이미 감옥으로들어가기 전에도 모든 죄를 인정하고 겸허하게 징역형을 선고받겠다 맹세한 이였다.
나머지는모두 반역을 저질렀기에, 라로쉬 영애와는비교도 되지 않을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역모에 가담한 자는한 사람도 빠짐없이감옥에 처넣어졌고, 작위 박탈과 영지 몰수는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벌써 수도에 있는그들의 모든 재산이동결되고 압류 절차가 실시되고 있었다.
모든 죄 중에서 반역이가장 무섭고 빠르게 확실한 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성공했을 경우에 얻는것이큰 탓인지, 많은 귀족들이그 어리석은 길에 눈을 돌렸다.
"라로쉬 영애가 반사 이익을 얻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평민과 결혼해도 작위는 받을수 있지. 라로쉬 백작은 납치라는 중죄를 저질렀기에 그 작위가 다음 대로 옮겨 가게 될 것이다. 물론…, 라로쉬 영애 또한 감옥에서나온 뒤에야 제 의무를 다할 수 있을테니, 당분간 라로쉬 영지는 나라의소유가 될 거다."
귀족의평민 납치는 유야무야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만약 그것이 공론화되었을경우에는 큰 벌을받았다. 18세 미만의아동을납치했을때는 더더욱.
라로쉬 백작의경우 피해자 중 하나가 손자이기는 했으나, 어리석게도 그는 재판정에서그 아이가 손자라는 것을인정하지 않았기에 중범죄를 범한 꼴이 되었다.
"카룰리아스영애에 대한 것은 어떻게 되었느냐?"
"그 잔당들을일부 소탕하기는 했으나 본인은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이자벨은 제럴드가 쫓고 있었다. 아덴공작저에 보내졌던 황실 기사단은 단장인 윌리엄과 부단장인 제럴드를 필두로 두 개의부대로 찢어져 각기 다른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윌리엄은 현재 수도로 복귀하여 자하르의왕자인 로드리고를 추적하는 일을맡고 있었고, 제럴드는 이자벨을추적하고 있었다.
미카엘의보고에 알렉시스는 끄응~, 하고 신음했다.
"잔당들만 잡아서는 끝이 나지 않는다. 머리를 쳐야 하는데…."
소득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무슨 짓을벌일지 모르는 그 두 놈들이 거슬렸다. 이자벨도, 로드리고도 궁지에 몰렸다 할 수 있으니 최악의경우를 생각해야 했다.
"이번에는 저희 쪽에서덫을놓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덫?"
흑태자는 제가 저주의단검으로 찔렀으니 미카엘이 꼼짝없이 저주로 고통받는 줄로만 알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는 성녀 외에는 답이 없으니 성녀를 노릴 터였다.
"성녀라면…."
"현재 아덴저에서머무르고 있습니다."
"아덴저에 말인가? 왜?"
"……."
성녀인 그녀가 주인도 없는 공작가의저택에서왜 머문단 말인가? 생뚱맞다 여겨졌는지, 알렉시스가 물었으나 미카엘도 대답할 말이 없었다. 추측되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입 밖으로 내기 곤란했다.
"무도회 때의일로 놀라서겠지요."
아네트는 알 만하다는 듯이 말을거들었다. 알렉시스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으나 더 묻지 않았다.
"해서…. 황비 전하께서는 교단에 성물을빌려달라 청해 주셨으면 합니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폐하의병환 때문이라 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주를 늦추려는 것처럼 보이려는 거구나. 알겠다."
아네트가 선선히 수긍하자 미카엘은 이번에는 알렉시스를 보았다. 알렉시스는 말하지 않아도 눈치챘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계속아픈 척을하고?"
"강건하신 모습을여럿이 보았으니, 그 모습이 헛소문이라는 소문을퍼트리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전의부상이 워낙 치명적이었던 터라, 사람들은 차라리 그 소문을더 믿을것이다. 로제타가 소원을빈 정령의힘은 그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로제타가 정령사라는 소문도 돌았으나, 그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냥 정령사도 아니고 정령왕과 계약한 정령사라고 하니, 아무도 믿지 않았던 탓이다.
원래 로제타의능력치가 낮은 탓도 있어서휘르센 백작 부부조차도 의심하지 않았다.
누군가 물어오면 확인도 안 해 보고
'그거 헛소문이에요. 저희 딸은 아덴공작과 결혼한 것으로 모든 운을다 써 버렸답니다.'
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그리고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미카엘은 친귀족파에 심어 놓은 첩자가 알려온 사실을내놓았다. 알렉시스는 짜증스러운지 얼굴을구겼다.
"당장은 그만두었겠지만…. 거슬리는 놈들이로군."
이그네시아 공작가가 반역자로 몰려 모두 잡혀 간 상황이니, 당장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을것이다. 지금 로제타를 죽여 봤자, 황비 후보로 올라가는 것은 친귀족파가 아닌, 친황제파의여식일 테니 말이다.
알렉시스는 옥좌의팔걸이를 손끝으로 두드리다가 문득 아네트를 보았다.
"이그네시아 공녀는 아직 감옥으로 옮기지 않았던가?"
"반역자의딸이기는 하나, 임신 중이기에 잠시황궁의방에 연금시켜 둔 상태입니다만…."
아네트가 대답을마치기도 전에 미카엘이 사납게 알렉시스를 노려보았다.
"안 됩니다."
"하지만 그놈들을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 네가 심어 놓은 자라면 어느 놈이 문제인 것도 알고 있을터…. 네 부인에게 강력한 수호자가 붙은 것을아무도 모르는 이때가 바로 기회다."
알렉시스의말은 일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싫었다. 몇 번이나 위험에 처했던 로제타였다. 다시그녀가 미끼가 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다.
"그래도 안 됩니다."
"이게 맞다. 한번 본보기를 보이는 편이 나중을위해서라도 현명한 일이야."
"……."
재차 설득했으나 미카엘은 고집스러운 얼굴로 입을다물 뿐이었다. 아네트는 잠시망설이다가 두 사람을보았다.
"그럼 그들로 카룰리아스공녀를 잡아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네?"
"뭐?"
자신을쳐다보는 두 미남자들에게 아네트는 싱긋 웃었다.
"성녀는 아덴공작령에 있으니 자하르의왕자는 그곳으로 갔겠지요. 그러니 공작께서도 자하르의왕자를 잡기 위해 루긴으로 돌아가셔야 할 겁니다."
"저는 로제타를 남겨 두고 갈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데려가야지. 비공식적으로. 이미 한 번 로제타의역할을맡았던 마법사가 있잖니?"
"오, 그래! 가짜를 미끼로 세워 두면 될 거 아니냐!"
알렉시스가 거들자 미카엘의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그러나 미카엘은 여전히 석연치 않다는 얼굴이었다.
"그들이 카룰리아스가에 죄를 씌우려 한다는 것은 맞지만, 그걸로 카룰리아스영애를 잡을수 있겠습니까?"
"카룰리아스영애는 로제타에게 악심을가지고 있으니, 접근할 기회만 노릴 거다. 그들도 카룰리아스가에 뒤집어씌우기 위해서는 카룰리아스후작가에 접근할 테고."
어떤 방식으로든 접촉이 이루어진다면, 이자벨은 금세 그 속내를 눈치챌 것이 분명했다. 정치에는 감이 빠른 여자였으니.
"저주에 관한 것은 교단만이 조금 알고 있는 상태니…. 친귀족파에서는 성녀를 차기 공작부인의후보로 생각조차 않고 있을거다."
로제타가 정령왕과 계약을맺기 전, 미카엘의저주를 늦추기 위해 신관의도움을받아야 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교단도 금세 미카엘의저주를 파악했을터이니, 아마도…. 며칠 안에 성녀에게 그 정보가 갔을것이라 보았다.
'그러니 공작저에서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일 테고.'
미카엘은 로제타와 결혼한 이후에도 보내왔던 아이리스의노골적인 시선을떠올리고는 눈살을찌푸렸다. 결혼 전에야 있을수 있는 일이라 여겨졌으나, 결혼 후가 되니 그 시선이 혐오스럽게 여겨졌다.
"정 그러시다면 맡기겠습니다. 저는 로드리고 왕자를 꾀어내 보도록 하지요."
"그래. 그놈 목은 자하르 왕에게 보내 주어야 하니, 머리는 남겨 주었으면 좋겠구나."
"…상황이 따른다면 그리하겠습니다."
말을마치고 미카엘은 돌아섰다. 다시돌아올 즈음에는 아마도 알렉시스에게 바칠 흑태자의머리가 들려 있을것이다.
'아니…. 로제타가 징그러워할 테니, 머리는 심부름꾼 손에 들려 보내야겠다.'
***
방으로 돌아온 미카엘은 차근차근히 황제와의대화를 얘기해 주었다. 로제타는 자신이 미끼가 되는 것임에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전의마법사가 자신의대역을할 거라는 얘기에 곤혹스러운 표정을지었다.
"또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많이 미안했다. 그러나 미카엘은 괜찮다는 표정이었다.
"그에게는 그만한 보상이 따를 겁니다. 호위도 붙일 테고요."
거기다 황실을보호하는 것이 원래 그들의역할이기도 했다. 로제타는 황실의피가 흐르지는 않으나 미카엘의부인이었으니 황족이었다.
"그는 무사할 테니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그보다…, 아덴공작저로 돌아갔을때의변장 말인데, 제 시종으로 꾸미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항시곁에 있고 사람들의눈에 띄지 않는 역할은 역시시종이었다. 미카엘의전속시종인 노아는 원래도 서너 명의시종을거느리고 있으니, 하나쯤 추가한다고 해도 눈에 띄지 않을것이다.
"노아는 믿을수 있는 자이니, 그에게는 언질을줄 것입니다. 변신 반지가 있으니, 여자라는 것을숨길 수도 있고, 항시저와 같이 있을수 있으니, 그게 좋겠습니다만…. 로제타의생각은 어떻습니까?"
"해 볼 수 있겠지만….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실수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귀여울 테니 괜찮을겁니다."
"그…, 그런 말을하는 게 아니에요! 들키면 안 되잖아요!"
로제타가 뺨을물들이며 항의했지만, 미카엘은 위장을한 로제타와 보낼 시간이 기대되는 모양이었다.
"신입 시종이 실수를 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지요.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미카엘은 다정히 말하며 로제타의뺨에 입 맞췄다.
***
라스탄 황실의사정을생각해서인지, 교단 측에서는 적절한 기부금을받고 성물을단기 임대 형식으로 황실에 빌려주었다. 표면적으로는 알렉시스의병환을이유로 했으나, 교단 측에서는 미카엘이 그 성물을지니고 있을거라 생각하는 듯했다.
'로드리고 왕자 또한 그렇게 생각하겠지.'
미카엘은 황제의상처에 좋을약을연구한다는 핑계로 아덴공작령의루긴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흘렸다. 그러며 가짜 로제타를 새벽궁에 남겨 두었다.
로제타는 '아틴'이라는 가명으로 미카엘 곁에서시중을들게 되었다.
무려 로제타가 미카엘의감시를 위해 붙여 놓은 시종이라는 핑계였다. 덕분에 미카엘과 같이 마차도 타게 되었고, 24시간 내내 붙어 있을수 있게 되었다.
"시종의차림도 잘 어울리는군요. 귀엽습니다, 부인."
마차가 출발하자 얼른 로제타의옆으로 자리를 옮긴 미카엘이 속삭였다. 마차 안의커튼을내려 둔 상태였다.
"제 모습이 이상하지는 않으세요? 제대로 얼굴이 다르게 보이나요?"
로제타는 손가락에 낀 변신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미카엘이 만들어 준 반지는 로제타를 은발 머리칼을가진 어린 청년의모습으로 변하게 해 주었다. 다만, 키나 체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체격을변화시키는 것은 고급 마법에 속하기에 마도구로는 이 정도가 한계였다.
"이상하지 않습니다. 저와 같은 대마법사라면 본 모습이 보일 테지만…. 그 정도 급의마법사라면 마탑에 칩거하고 있을테니, 안심하셔도 좋을겁니다."
더더군다나 로제타가 이제는 정령왕과도 계약할 수 있는 급의정령사가 된 탓에, 그 정도 수준 높은 마법사여야 알아볼 수 있을터였다.
"저기 그런데…."
"네. 말씀해 주십시오."
"왜, 바, 바지 속에 손을…."
로제타의곁에 달라붙은 미카엘은 은근슬쩍 로제타의바지 속에 손을집어넣은 상태였다. 이미 다리 사이까지 진입한 손이 속옷 속으로 파고들어 로제타는 다리를 오므렸다.
"그야 부인의귀여운 곳을만지고 싶으니까요?"
"아, 안 돼요! 바지가 젖어 버리잖아요!"
"흐으응~, 바지가 젖어 버릴 정도로 흥분할 것 같습니까?"
다리를 오므렸건만 기어이 파고든 손가락이 로제타의 꽃잎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키스할 듯 가까이 들이댄 얼굴로 로제타의 표정을 음미하며 애무하는 손길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흐, 흐으…. 아흣…."
"조금만 만질게요, 로제타. 이 사랑스러운 얼굴에 쾌락이 떠오를 때까지…. 아주 조금만."
그러니 다리를 벌려 주세요, 하고 미카엘이 소곤거렸다.
로제타는 절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저었다. 손가락을 허락하면 미카엘은로제타가 절정을 맛볼 때까지괴롭힐 것이 분명했다.
"귀여워라."
신음하는 입술을 느긋하게 핥더니, 달싹이는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어 로제타의 안을 음란하게 핥았다.
"으흡…."
쪼옥, 하며 입술을 빨아들이는 미카엘과의 키스는 언제나 달콤했다. 부드럽게 감겨 오는 혀에 로제타의 무릎에서 힘이 빠져나가자 미카엘의 손가락이 갈라진 틈새로 파고들었다.
"흐으응!"
길고 수려한 손가락이 로제타의 안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문질렀다. 섬세하게 원을 그리는 손끝에 로제타가 허리를 떨자, 미카엘이 로제타의 혀를 음란하게 혀로 희롱해 왔다.
"후으…. 응! 아흑…."
혀를 빨리며 두 뺨을 물들이자 미카엘의 손가락이 야릇하게 움직였다. 긴 손가락이 내부를 달게 괴롭혀 주는 것에 로제타의 허리가 들썩였다.
"응, 응읏…. 아흐……. 으응…."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신음도, 쾌락으로 물들어 가는 얼굴도 사랑스러운지, 미카엘의 입가에서 미소가 떨어지지않았다. 로제타는 미카엘의 그런 시선이 부끄러운데도 느끼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앗, 아아아!"
달콤한 괴롭힘에 엉덩이가 튕겨지고 절정을 맛본 몸이 늘어졌다. 미카엘은로제타의 안에서 손가락을 뽑아내며 그녀의 꽃술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만지작거렸다.
"하으…. 응, 으음……."
"귀여워요, 로제타."
벌써 속옷이 젖은것 같다. 이대로라면 바지까지젖어 버리겠지. 울상이 된 로제타의 표정에 미카엘이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바지를 벗을까요? 그대로라면 젖어 버릴 텐데."
역시 그쪽이 목적이었던 모양이다. 로제타는 얄미운 마음에 미카엘의 뺨을 세게 꼬집었다.
***
"아, 흐아!"
애초에 목적은미카엘의 바지를 더럽히지않은채로 조금만 하려던 거였다. 그런데 왜 지금은미카엘의 무릎에 앉아서 신음하고 있는 걸까? 미카엘도 벌써 두 번째 사정한 뒤라 그의 허벅지도, 바지도 엉망이 된 뒤였다.
로제타는 셔츠 자락 사이로 보이는 페니스에 눈길을 주었다. 제 아래쪽으로 미카엘의 커다란 것이 드나들며 질척질척한 소리를 낼 때마다 그것이 엿보였다.
"아앙! 응, 으응…."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미카엘이 허리를 움직이면 기분이 좋아져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졌다. 아…, 이러려던 게 아닌데. 처음에는 엉덩이를 뒤로 내민 채로 한 번만 하고 끝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진짜 한 번만.
"로제타…."
미카엘이 받은저주 때문에 정기를 잔뜩 그에게 주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뒤로는 자제력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지나치게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저주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이 떠올라 쾌락에 몸을 내맡기게 되었다.
"읏, 응응! 아앙, 앙…."
지금도 미카엘의 허벅지위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쾌락을 맛보고 있었다. 껴안아오는 팔이 옷 속으로 들어와 저를 매만지는 손길이 너무도 좋았다.
"기분 좋습니까, 부인?"
"앗, 아아…. 네에……. 으응! 아앙!"
속삭이며 목덜미에 입 맞추고 가슴을 동여맨 천 위를 손끝으로 할퀴었다. 사실은풀어내어 그 사랑스러운 것들을 잔뜩 귀여워해 주고 싶었지만, 한번 풀면 다시 동여매기 힘들다고 로제타가 거절했다.
"저택으로 돌아가도…. 이렇게 계속, 저를 원해 주시는 겁니다. 약속해 주시는 거겠지요?"
미카엘은로제타의 용모가 사랑스럽다고 생각했지만, 그것 외에도 로제타에게는 사람을 끄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이의 모습을 하고 있어 아덴 공작부인인지모를 테니, 발칙하게도 그녀를 유혹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경계하는 것이었지만, 로제타는 그저 의아한 듯 미카엘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 아아아…. 네, 그럴…. 그럴게요. 으으응! 하응, 앗!"
그대로 절정에 오르는 로제타의 안을 듬뿍 즐기며 미카엘 또한 절정을 맛보았다. 순간이동 마법진이 설치된 곳까지이제 얼마 남지않았으므로, 슬슬 준비해야 했다.
'소환수를 타고 가면 편했을 테지만….'
시종을 데리고 소환수를 타는 모습을 보인다면 의심을 샀을 것이다. 거기다 저주를 받아마법을 사용하는 걸 꺼린다는 모습도 보여 주어야 했다.
미카엘은절정에 늘어진 로제타의 몸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매만지며 깊은한숨을 쉬었다. 좀 더 마음껏 로제타를 사랑해 주고 싶은마음이 간절했다. 감히 로제타나 그의 주변인을 해치려는 흑태자나 이자벨의 존재가 증오스러울 따름이었다.
'이번에야말로 빠져나가지못할 것이다.'
로제타의 안에서 제 것을 빼내 그녀를 돌려 앉힌 미카엘은, 가벼운 숨을 흘리는 로제타의 입술에 길게 키스했다.
***
미카엘 황자에게 당한 상처는 쉬이 아물지않았다. 불꽃의 촉수로 상처를 지져 출혈을 막았다고는 해도 안의 상처까지아문 것은아니었다. 흑태자는 이전처럼 움직여 주지않는 몸에 분노하며 치유술사를 밀쳤다.
부왕이 그를 내쳤다는 소식은자하르를 넘어 이곳, 라스탄에 있는 자하르의 모든 수족에게까지전달되었다.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들은여전히 그의 발아래에 머리를 조아렸지만, 황제의 추적에 조금씩 입지가 좁아지고 있었다.
흑태자는 수도에서 다소 떨어진 위치에 자리한 상인의 집에 기거하고 있었다. 아직 황실 기사단의 추적이 여기까지미치지는 않았으나, 그의 오른팔이 잡혀 들어가 고문을 당하고 있으니 얼마 남지않았다 여겨졌다.
미카엘 황자가 대마법사가 된 뒤부터, 심문에 최면과 약을 더한 라스탄의 취조는 훈련을 받는다고 해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잡히기 전에 자결했어야 옳지만, 황실에 심어 놓은첩자들이 모두 목을 베였다는 것을 보니, 자결에 실패한 것 같았다.
"전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차라리 자하르로 돌아가서 후일을 도모하심이…."
"자하르로 돌아가라고?"
자하르의 왕 일리야는 왕위에 오른 뒤로 욕심만 키운 자였다. 왕자 시절 대륙을 아우르며 음모를 획책하던 기개는 어디다 버렸는지, 안락함에 취했다. 그런 주제에 탐욕스럽기까지해서 모든 자식들을 쥐어짤 궁리만 했다.
로드리고는 부왕의 그러한 욕심을 채워 주기 위해 각국을 돌아다녔다. 왕실에서 부왕의 터무니없는 야망을 듣고 있는 것보다는, 다른 나라를 돌아다니며 그 나라의 약점을 캐내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쪽이 즐거웠다.
'부왕은…, 지금 잔뜩 겁에 질렸을 것이다. 내가 돌아간다면 내 목을 잘라 라스탄의 황제에게 바치며 진노를 풀어 달라 간청하겠지.'
제가 황제의 부모를 죽인 것이 들통났으니, 라스탄의 황제가 저를 가만두지않을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그렇게 겁을 먹을 것이면 평생 비밀로 할 것이지. 자랑스럽게 그 전리품을 그에게 주며 야망을 가지라고 부추길 게 아니라!
"그것의 위치는 알아냈느냐?"
"전하, 전하의 몸 상태는 지금 정상이 아닙니다! 이런 상태로 그것과 마주하시기에는…. 컥!"
내뻗은손이 기사의 멱살을 잡았다. 중상을 입었으니 힘이 없을 줄 알았으나 목이 조이며 숨이 턱 막히는 것이 과연 흑태자라 불릴 만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태이니 필요한 것이다! 내가 이 이상으로 떨어질 곳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자하르는 애초부터 작은나라였다. 그 작은나라가 큰 나라를 정복하려면 평범한 방법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부왕 일리야가 마신이 남긴 유물에 집착했던 것이다.
흑태자 로드리고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않았다. 그가 아직 어린아이이던 시절에 라스탄의 황제가 그것을 하나하나 빼앗아서 부쉈던 것이다.
일리야는 그런 알렉시스에게 증오심을 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그를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깟 놈!'
황실의 모든 첩자들이 목이 잘려 흑태자는 알렉시스의 건재함을 몰랐다. 그저 소문으로만 그의 소식을 들을 뿐이었다.
"알겠느냐! 내가 그것을 손에 넣지못한다면 자하르의 미래도 없는 것이다! 라스탄의 황제가 자하르를 내버려 둘 리 없을 터이니!!"
흑태자의 말에 기사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것의 위치는 이미 알아내었다. 다만 자하르의 왕인 일리야가 지시한 것이 있어 말을 전하지않았던 것뿐이다.
'그놈은오만에 빠져 있다! 몇 가지대수롭지않은일을 해낸 것으로 제가 무엇이라도 된 것인 양 착각을 하고 있으니…. 그놈이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에는 그것을 절대 가르쳐 주어서는 안 되느니라.'
자하르의 왕 일리야는 비열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놈이 몰릴 대로 몰렸을 때! 그때 알리거라! 그 절박함이 그것을 녀석의 것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때 본 왕의 얼굴은흑태자의 성공을 짐작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가 실패하여 자하르 왕국에 크나큰 피해를 안기게 될 거라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흑태자의 말대로 다른 방법은없었다. 또한 자하르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왕의 말을 따라야만 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전하!'
"아, 알겠습니다, 전하…. 안내하겠습니다."
기사는 겁에 질린 눈빛을 감추며 그렇게 답했다.
***
아덴 공작가의 집사인 허버트는 미카엘의 전갈을 받고 당황했다. 그 안에는 성녀의 호위를 강화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호위를 강화하라니? 그분을?'
성녀의 신분이기는 하나 그분은주책맞은식객이 아닌가!
이미 무도회 날에 입은부상으로 공작가에 머물던 귀족들은모두가 돌아간 뒤였다. 가장 위중하여 길게 머물렀던 귀족과 그 가족분들이 떠난 뒤에까지도, 끈질기게 머물렀던 분인데. 당장 내쫓으라는 것이 아니라 호위를 강화하라니?
더더군다나 신전 측에서도 성녀의 안위를 걱정하여 성기사들을 보내왔다. 기가 막혀서!
'그냥 신전으로 데려가라고!'
수십, 어쩌면 수백일지모르는 성기사와 신전 병사들이 앞다투어 지키고 싶어 하는 성녀였다. 신전으로 데려가면 오죽 잘 보호할까!
'물론 아덴가의 기사들이 뛰어나기는 하다만….'
공작님과의 소문도 있고, 노골적으로 안 나가려고 버티는 성녀가 집사는 영 마음에 들지않았다. 성녀가 유부남에게 찝쩍거리는 것부터가 부도덕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나 주인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으니…. 집사는 공작가의 기사단장들을 불러 공작의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각 기사단장들은성녀에게 호의적인 기사 몇몇을 차출하여 성녀의 호위기사로 붙였다.
아덴 공작저의 고용인들이나 기사들은 대체적으로 성녀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예외는 있었다.
아이리스의 용모가 워낙 출중한 탓이었다. 얼굴이예쁜 여자는 마음도 예쁠 것이라는 철석같은 믿음 하나로, 아이리스에게 호감을 품은 자들이었다.
성기사들 또한, 공작저에 눌러앉은 아이리스의 뻔뻔함에도 불구하고, 그 아름다운 용모에 대놓고 면박은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도 우리 마님께서 오시면 다 끝날 일이지!'
저주니 뭐니 하는 사정을 모르는 허버트는 미카엘이로제타와 같이돌아오면 결국 성녀가 내쫓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공작님께서 마님을 여간 애지중지하시는 것이아니니까.
이상한 소문이돌거나, 마님께서 언짢아할 만한 일은 허용하지 않는 분이신 것이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공작 각하께서는 전갈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오셨다. 공작저의 마차가 도착하는 것을 보고 허버트는 기쁘게 맞이했다.
그러나…. 마차에서 내린 것은 공작 각하와 시종뿐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각하."
허버트는 고개를 숙이면서도 또르륵 눈을 굴려 빈 마차를 쳐다보았다. 가장 중요한 분이보이지 않았다.
"…집사님. 이쪽은 각하의 시중을 들 아틴입니다. 마님께서 특별히 공작님께부탁한 자이지요."
"안녕하세요."
마차에서 내린 노아가, 미카엘과 같이마차에서 내린 로제타를 가리키며 말했다. 로제타의 인사에 허버트는 의아한 낯을 했다.
'마님이각하에게 시종을 붙이셨다고?'
이미 미카엘의 시중을 드는 시종은 있었다. 노아 하나가 아니라, 그 휘하의 시종이여럿 있고, 바쁠 때는 사람을 차출해서 쓰기까지 했다.
"아틴은 하루 종일 내 곁에 붙어 있을 테니, 다른 일은 시킬 것 없다."
한숨을 쉬는 듯한 목소리로 미카엘이말하자허버트는 혼란스러워졌다. 신입 시종인데, 하루 종일 공작님 곁에 붙어 있다고?! 허버트는 당황한 나머지 공작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저, 마, 마님께서는?"
"황비 전하를 위로하기 위해 황궁에 남았다."
허버트는 그제야 일이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았다. 마님께서 사정이있어 공작가로 내려오지 못하고 공작께감시를 붙이셨구나! 마님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공작님께서는 그 감시를 허락하셨고!
슬쩍 본 아틴은 양순한 표정이었다. 긴장한 것도 같았고, 자신의 역할에 곤혹스러워하는 것도 같았다.
감히 아덴 공작님을 감시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으니 당황스러울 만도 하지.
그사이미카엘은 허버트를 지나쳐 저택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시종인 노아와 아틴이재빨리 그런 미카엘의 뒤를 쫓았다.
***
들키지 않은 것 같다. 노아와 몇몇 기사들 외에는 사정을 모르니, 로제타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긴장하고 있었다. 미카엘이그런 로제타를 훔쳐보며 속으로 히죽대고 있었다는 것은 유능한 시종인 노아만 눈치채고 있었다.
'…소름 끼칩니다, 주인님.'
그러나 입이찢어져도 사실을 말할 수 없는 노아였다.
필요 이상으로 로제타를 쳐다보는 것이들켰다가는 미카엘의 제재를 받을 수도 있었다. 자연히 노아의 시선은 미카엘에게 향해 있었다.
"돌아오셨군요, 공작님."
예의를 차린 목소리에 미카엘의 시선이돌아갔다. 아이리스가 자신이거느리고 있는 신녀와 같이나타났다.
미카엘은 복잡한 시선으로 아이리스를 보았다.
아직 신전 측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상태였다. 신전에도 자하르의 첩자가 있을지 모르는 데다가, 아이리스 본인도 비밀을 속에 담아 두고 있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서였다.
거기다 자신이위험할 수 있는 일의 미끼로 이용당한다는 것을 안다면 이쪽으로서는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할 수도 있다고 여겼다.
'기우였다면 좋겠지만.'
자신을 보고 환하게 웃는 여자를 보며 미카엘은 표정을 갈무리했다.
"…아직도 계셨습니까?"
왜 아직도 여기 있냐는 뜻을 내포한 말에 아이리스는 살짝 당황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래야 미카엘이지, 싶었다.
상황이그렇게 되었다 뿐이지, 미카엘이자신을 내켜 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집착남 설정이니 죽어도 아이리스를 포기하고 싶지 않겠지.
그래도 제가 어쩔 것인가 싶었다. 거부하면 목숨이위태로운 상황이었다. 황제인 그의 형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결국 못 이기는 척 아이리스가 빙의된 로제타와 헤어지겠지.'
아이리스 안에 있는 진풀잎은 어떻게든 해 볼 작정이었다.
비록 육체일 뿐이라 해도 이쪽도 아이리스라면 아이리스였다. 거기다 아이리스의 성품에 그런 식으로 미카엘과 헤어지고 나면 다시 그와 합치려 들지 않을 터였다.
'미카엘이아이리스에게 집착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잖아!'
이소설에 빙의한 것은 자신이었다. 그러니 주인공도 그녀, 진풀잎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이소설의 많은 서브남들이이미 그녀에게 빠져들었고, 빠지고 있었다.
미카엘이아직 그녀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은…. 그가 이소설의 진정한 남자주인공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쉽게 빠져들면 이야기가 끝나 버리니까.
"아직 숲을 빠져나가는 것이두려워서요. 그날의 일 때문에…."
"……."
공작저로 들어오기까지 거쳐야 하는 숲과 정원이상당히 넓기는 했다. 미카엘은 별말 하지 않고 돌아섰다. 어차피 아이리스가 기거하고 있는 곳은 서쪽 성이었다. 미카엘이머물고 있는 본성이아니라.
아이리스는 그 태도를 암묵적인 허락으로 받아들이고 싱긋 웃었다.
미카엘의 곁에서 노아와 로제타도 그 모습을 보고 있었으나, 아이리스는 그녀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몇 년 사이귀족의 생활에 길들어 시종에게는 관심이없었기 때문이었다.
'본성으로 왜 찾아왔느냐는 추궁이없었으니 되었어! 저주가 심해지기 전에 내가 먼저미카엘을 덮치자! 나중은 그 뒤에 생각하는 거야!'
기쁜 듯 발랄하게 돌아서는 아이리스를 로제타는 힐끗 쳐다보았다. 빨리 일이해결되어야 할 텐데…. 싫은 여자라고 해도 미끼로 삼는 것은 역시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