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황자에게 사로잡혔다-11화 (11/21)

제11장. 서브남의 마음

수치심이나 이성은 그가 주는쾌락 앞에서는명함도내밀지 못했다. 로제타는달콤한 자극에 듬뿍 취한 채로바들바들 떨었다.

"하아, 하……. 아앙…. 으음……."

엉덩이 아래쪽으로그녀가 흘린 꿀과 미카엘의 타액이 뒤섞인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카펫 위에 이미 음란한 얼룩을 만들었지만, 거기에 신경 쓸 여력도없었다. 미카엘의 입술과 혀에 몇 번이나 도달했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런…. 계속 느끼네요. 제가 빨아 드리는것이 그렇게 기분 좋았습니까? 남편으로서 반성해야 할지도…. 부인이 이렇게 좋아하는것을 그동안 안 해 드리고 있었다니……."

"으, 으으응……. 아니…."

"섭섭해하지 않으셔도됩니다. 이제부터라도아침저녁으로해 드릴 테니. 로제타의 그곳은 혀가 녹을 듯이 달아서…, 맛보는보람도있으니까요."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머릿속이 뿌옇게 흐려져 숨을 쉬는것만이 전부였다. 미카엘은 파르르 떨리는로제타의 허벅지를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더 빨아 드릴까요? 아니면, 제 것을 듬뿍 맛보게 해 드리는것으로벌을 마칠까요? 물론…, 로제타가 반성하기는커녕, 즐기기만 했으니 이것으로도벌을 드릴 겁니다."

말하며 미카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바지춤에서 제 페니스만 꺼내는광경에 로제타는멍히 시선을 주었다.

그의 혀와 입술로즐거움을 잔뜩 맛보았지만 그래도하고 싶었다. 미카엘의 저것이 주는기쁨을 로제타는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되겠습니까, 로제타?"

진득한 욕망이 묻어나는녹색 눈동자에 로제타의 모습이 비춰졌다. 음란한 여인의 자태에 부끄러우면서도로제타는감미로운 행복을 느꼈다.

"해요…. 돼……."

한숨을 쉬듯 대답하자 미카엘이 로제타에게로몸을 굽혀 진하게 입을 맞췄다. 파고든 혀가 음탕하게 뒤엉키는것에 머리끝까지 달콤한 기분이 차올랐다.

"그럼…, 제 것이 가라앉을 때까지 할 겁니다."

말은 저렇게 해도자신이 피곤해하는기색이 있으면 멈출 거라는걸 안다. 미카엘은 늘 그래 왔었다.

"네에…."

로제타가 긍정하자 고개를 든 미카엘이 허리를 세웠다. 그의 타액으로흥건하게 젖은 곳으로뜨거운 열 덩어리가 파고들었다.

"아아앙!"

달콤한 열락에 녹아내린 그곳은 그것만으로도절정을 맛보려 했다. 그러나 미카엘은 그대로두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고 뜨거운 페니스가 무르익은 속살을 비벼대는느낌에 로제타는몸을 꼬았다.

안쪽 깊숙이까지 음탕하게 문질러 주는그것이 너무 좋았다. 부끄러워 미칠 만큼.

"하앙! 아아앗, 아앙!"

"아……. 로제타…."

그리고….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미카엘이 아니었다. 기쁨으로점점 더 파렴치해지는허릿짓에 로제타는발가락 끝까지 경련하며 신음했다.

질척이는소리가 집무실 내를 요란하게 울리고, 로제타의 음란한 웅덩이 위로미카엘의 정액이 투둑거리며 쏟아졌다.

"아아아……."

한 차례로만족할 미카엘이 아님은 로제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계속되는황홀한 열락에 로제타는달콤하게 신음했다. 이전보다 더…, 미카엘이 자신을 좋아하는것 같다고 기뻐하며.

***

달칵.

문이 열리고 발그레하게 뺨을 물들인 공작부인이 미카엘의 팔에 안겨 나왔다. 얼마나 격렬하게 하셨는지, 제 다리로는걸으실 수 없는상태인 듯했다. 부끄러운 듯 미카엘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모습이, 지켜보기에도사랑스러워 호위기사들은 눈을 돌렸다.

뚫어질 듯 공작부인의 얼굴을 쳐다보기라도했다가는질투에 찬 미카엘의 보복이 떨어질 터였다.

감히 괜찮으시냐는말도여쭈어보지 못한 채로대기하고 선 시녀들에게 눈도주지 않고 미카엘은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시간을 보냈으니, 향하는곳은 당연히 두 사람의 침실이었다.

"…허리가 아프지는않습니까? 또 치유 주문을 걸어 줄까요?"

미카엘이 소곤소곤 말하였으나, 주변이 워낙 조용한지라 귀가 예민한 몇몇에게는들렸다. 로제타는미카엘의 가슴에 묻고 있던 얼굴을 들고 약하게 고개를 저었다.

'또, 란다. 또.'

'저거 분명 침실에 가서 또 하시려는속셈이야.'

요 몇 주간 잠잠하다 싶었다.

심보가 고약한 자들은 신혼의 불꽃이 이 정도에서 가라앉을 것이다, 공작님께서 곧 저분께 질려 하실 거다 속살거렸지만. 웬걸, 알아서 또 활활 타고 있었다.

이전에는미카엘 품에 안겨 이렇게 가는것을 부끄러워하던 로제타였으나, 이제는그러려니 하는것 같았다. 후들거리는다리로걸어가나, 미카엘의 품에 이렇게 안겨서 침실로돌아가나 그게 그거이기도했고.

지나가던 하인들이 서둘러 자리를 비키고 고개를 숙였다. 병사며, 기사들까지 힐끗 쳐다보았다가 눈길을 내리까는것을 보며 로제타는미카엘의 품으로더 파고들었다.

창피하기는창피한데, 나쁜 기분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이미카엘과 자신을 어찌 보는지, 로제타도 알고 있었다.

둘만 있는자리에서나, 다른 사람들이있는자리에서 로제타의 사랑을 구걸하는쪽은 미카엘이었지만, 사람들은 눈에 보여도 잘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다들 미카엘에게 무언가속셈이있겠거니 했다.

로제타 또한그런 생각을 했으니 말해 무엇 하겠나. 일일이쫓아다니면서 사실 황자님이저를 더 좋아한다고 설명하는것만큼 없어 보이는일도 없었다.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복도를 지나는것만으로도 둘이지내는침실이있는구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본래 공작의 방과 공작부인의 방은 따로 있었지만, 로제타는아직 공작부인의 방에서 자 본 적이없었다.

미카엘이안 놔줘서.

"방으로 돌아가도…. 해도 되는거지요? 저는아직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로제타는힐끗 시녀며 호위기사들의 눈치를 보았다. 태연한그들의 얼굴로 보아 듣지 못한것 같았지만, 또 모를 일이었다.

"이, 이따가대답할래요."

어차피 허락할 것임을 아는데도 미카엘은 이순간에 애가탔다. 미카엘이유혹해 왔을 때, 로제타가거절하는일은 거의 없었다.

단순히 로제타가상냥하거나 마음이약해서가아니었다. 로제타의 마음이뭉근히 풀어졌을 때 미카엘이유혹하기 때문이었다. 항상 그녀만 보고 있는미카엘은, 로제타가저에게 흔들리는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공작이공작부인을 안아 든 채로 바쁘게 침실로 들어갔다. 이때 눈치 없이두 사람을 따라 침실로 들어가는이는없었다.

마음이급한미카엘 대신에 재빨리 문을 닫고는각자의 업무를 위해 흩어졌다. 물론 하녀를 불러 집무실을 청소하라는말도 잊지 않았다.

***

해도 된다는말을 듣자마자 미카엘은 침대에 로제타를 눕히고 그녀의 옷부터 벗겼다. 집무실에서 만족할 만큼 안지 못해서 몸이안달이난 참이었다. 로제타는듬뿍 즐거움을 맛보았지만, 미카엘에게는아무래도 부족했다. 집무실이라는장소의 한계도 있었고.

"미카엘 님도…."

옷자락을 당기며 로제타가말한것만으로도 알아들었다. 미카엘은 얼른 제 셔츠를 벗어 던지고 바지까지 끌어 내렸다. 맨살에 로제타의 피부가닿는것은 그도 바라던 일이었다.

집무실에서 로제타만 벗긴 것은 그녀의 수치심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 부끄러워하는로제타를 달게 괴롭히는것은 그에게 있어 황홀한일이었다.

"흐앗!"

침대 위로 올라온 미카엘이, 침대 한가운데로 엉금엉금 기어가는로제타의 뒤를 끌어안고 페니스부터 들이댔다. 그저 자리를 옮기려던 것뿐인데, 그 모습이미카엘을 더 흥분시켰던 모양이었다.

"하윽…. 으음, 아앙!"

로제타의 허리를 잡은 미카엘이급하게 찔러대기 시작했다. 푹 젖은 안쪽을 농락하는허릿짓에 로제타는달콤한열락에 휩싸여 흐느꼈다.

"앙! 아아…. 아앗…. 아아아……."

몸이앞뒤로 흔들리고 허리가튀어 올랐다. 안이워낙 젖은 터라 밀어 넣고 뺄 때마다 질척질척한소리가요란했다. 미카엘은 로제타의 엉덩이에 허리를 바싹 붙이며 더 깊숙이밀어 넣고 싶다는듯이허리를 움직였다.

"음, 으응! 하으앙…. 아앙, 앙! 좋아…."

타액을 흘리며 신음하는로제타의 모습에 미카엘은 미칠 지경이었다. 이것을 며칠씩이나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겠다. 몸을 꼬는로제타를 온몸으로 끌어안고는굶주린 손으로 주무르며 그녀의 쾌락을 자아냈다.

보드라운 유방과 민감하고 사랑스러운 꽃술을 괴롭히자 로제타가죽겠다며, 미카엘의 품에서 버둥거렸다. 미카엘은 그것이귀여워서 더 괴롭혀 주었다.

"죽지 않잖습니까. 좋아서 이렇게 내 것을 빨아대면서."

"하으으…. 아앙! 아흐앙! 앗, 아아아……아아앗!"

몇 번이나 절정을 맛보며 로제타가허리를 튕겼으나 미카엘은 멈춰 주지 않았다. 그녀가이전보다도 자신을 좋아하는게 분명해 보이는모습에, 좀 더 그 모습을 만끽하고 싶었다.

"응응, 하앙! 앙…."

로제타를 일으켜 자신의 무릎 위에 앉게 하고는그녀의 온몸을 애무하며 즐거움을 맛보았다. 끝없이절정을 맛보는로제타가귀여워서 허리가멈춰지지 않았다.

"아…. 좋아, 좋아요……. 으응, 아하앙!"

"저도 좋습니다, 로제타……. 이렇게 느낀 건…. 으음……."

또다시 절정을 맛보는로제타의 안으로 제 것을 밀어 넣으며 미카엘 또한도달했다. 한껏 부푼 페니스가그녀의 안에 정액을 쏟아 내자, 그 감촉으로 로제타가움찔거리는것이느껴졌다.

"로제타……."

"앗, 지금 만지면……. 으으응…."

뾰족하게 선 것이귀여워서 유두를 만지작거리자, 로제타가울상이되어 신음했다. 미카엘은 군침을 삼키며 허리를 세웠다.

"…그러니 내가멈출 수 없는겁니다."

"흐아앙앙!"

다시 로제타를 엎어 놓고 허리를 세우는것에 로제타가기겁하는것이느껴졌다. 그러나 로제타의 속살은 씰룩씰룩 오물거리며 그의 페니스를 삼켜 가고 있었고, 미카엘의 페니스도 여전히 빳빳하기만 했다.

"오늘은 내가만족할 때까지 하기로 했으니까요."

속삭이는말에 로제타의 귓불이빨갛게 물들었다. 사랑스러워 그것을 가볍게 깨물자 품속의 로제타가몸을 꼼지락거렸다.

"하아…, 로제타……. 더 기분 좋게 해 줄게요."

이어지는허릿짓에 로제타는미카엘이말한대로 황홀한열락을 맛보았다.

***

빨래터에서 수군거리는하녀들의 말은 공작부인과 공작의 정사에 대한것이었다. 그들이감히 그 장면을 훔쳐볼 수는없었지만, 두 사람이어지럽혀 놓은 침실이며, 집무실을 청소하는것은 그들이었다.

그러니 공작 부부의 정사를 상상은 해 볼 수 있는것이다.

"어후~, 침대 시트는…. 말도 마. 마님께서 공작님의 그 욕구를 어떻게 다 감당하시는지 상상도 안 된다니까?"

"나는지난번에 집무실 청소했잖아. 카펫에…."

그 근처를 지나치다가하녀들의 대화를 엿들은 패트릭은 까닭 모를 분노에 휩싸였다. 그는아직까지도 미카엘이로제타를 이용하기 위해 결혼했다고 여겼다.

로제타를 속이는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녀의 몸까지 농락한다는판단이들자 분노로 손끝까지 힘이들어갔다.

결혼 후 한달이나 신혼여행을 가고 돌아왔으니, 잠자리는당연한거였다. 당연한건데도, 패트릭은 왜인지 두 사람이깊이몸을 나누는사이는아닐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왜 이리 화가치미는지 모르겠다.'

꼭 자기 여자를 빼앗긴 것처럼.

이런 분노는아이리스가미카엘과 같이있었을 때 느꼈던 감정과도 달랐다. 아이리스의 시선에서 미카엘에 대한애정을 눈치채고 배신감과 강렬한열망, 그리고 미카엘에 대한질투심을 느꼈다면, 지금은 오롯이분노뿐이었다.

분노의 대상이미카엘인지 로제타인지도 불분명했다. 속였다고는하나 상대가미카엘이라는사실을 알았으면서도 결혼생활을 유지한로제타에 대한원망도 섞여 있었다.

'대체 내가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보다 짬을 내어 아이리스를 만나러 가야만 하는데, 자꾸만 그 일정을 미루게 된다. 로건과 같이있을 아이리스가거슬리면서도 선뜻 발길이떨어지지 않았다.

며칠 전만 해도 아이리스와 로건이같이있을 거라는사실에 가시방석이었던 그였다. 한데 지금은 멀리 있는아이리스와 로건보다 가까이에 있는로제타와 미카엘에게 더 신경이쓰였다.

'내가왜 이러는지 모르겠군.'

아니, 알 것도 같았지만 그것을 자각하는것이두려웠다. 그럴 리가없잖은가! 바보도 아니고….

수없이후회를 한다 해도 돌이킬 수 없는일이있었다. 그는이미 그 일을 저질러 버렸고, 그의 손아귀에 있었던 많은 기회를 밀어내 버렸다.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애달픈 마음에 패트릭의 입에서는절로 한숨이새어 나왔다.

그들은 아무 관계도 아니었다. 차라리 남보다 못한존재. 그가아무리 원한다 해도 친구조차도 되기 어려운 관계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것 자체가비열하다고 여겨졌지만, 언젠가미카엘이로제타를 버려 그녀가혼자가되는때를 기다리는수밖에 없었다.

내가그걸 기다릴 수 있을까? 바로 곁에서 미카엘이그녀에게 거짓 사랑을 속삭이는것을 보고, 그 거짓말에 로제타가속는것을 감내하면서….

'아니, 아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거냐! 정신 차려라, 패트릭….'

패트릭은 고개를 젓고는소리도 없이그 자리를 떠났다. 한순간 스친 망상이었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얼굴이달아올랐다.

'내가무슨 생각을…. 뭐에 씐 것이분명하다!'

한시라도 빨리 아이리스를 만나야겠다는생각이들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망상이떠오르는것은 아이리스를 만난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었다.

***

'왜 답이없지?'

아이리스는초조하게 아덴 공작가의 회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카엘이언제부터인가자신과 거리를 둔다는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방문은 의례적인 것이었다.

물론 사심이담겨 있기는했으나, 겉으로 보아 문제가되는것은 없었다. 성녀인 그녀는대신관급 거물이었으니까. 그 정도의 성직자가부임을 하면 그 지방의 가장 세력이큰 귀족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교단을 운영하는데에 있어 귀족의 세력은 큰 힘이될 뿐만 아니라, 귀족의 입장에서도 유능한치료사를 곁에 두고 있는것이니 서로서로 좋은 일이었다.

한데도 카드를 보낸 지 일주일이넘도록 방문을 허락하는말이없는것이다. 이는얼핏 무례로 비춰질 수도 있는일이었다.

"성녀님!"

루긴의 신전에 부임한후 그녀의 시중을 들게 된 신녀가바쁜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녀는공작가에서 온 답장을 들고 있었다.

신녀는아이리스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아이리스는그 자리에서 뜯어보았다. 마지막으로 보여 준 미카엘의 모습이의례적인 것이었기에, 큰 기대는할 수 없다는걸 안다. 그러나 원작의 내용이있기에 기대가되었다.

'아….'

오늘 이시간에 방문해 주면 좋을 것 같다는, 예의를 차린 답장이었다. 미카엘의 필체를 알고 있는아이리스는이것조차 미카엘이쓴 것이아니라는것을 알았다.

'아니, 괜찮아! 이걸로 미카엘을 만날 수만 있다면….'

성녀라 해도 공작을 만나는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번 부임을 계기로 자주 왕래할 수 있는친분을 쌓기만 한다면, 반은 성공한셈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계기를 만들지?'

로제타의 상처가거짓이라는것은 미카엘도 알고 있는점이었다. 거기다 그는마법사. 치유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니

'내 아내의 상처는내가살피겠다.'

고 하면 할 말이없었다.

'…그 내용을 가지고 협박을 하면?'

황실 무도회에서의사건은충격적인 것이었다. 여론이 순식간에 로제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돌아선 것도 그 때문이다. 만약 아이리스가 양심을 이유로 그 사건이 거짓이었다고 공표한다면, 황실에서도 꽤나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만약 미카엘이 로제타를 지키고자 한다면 그녀의입을 막고 싶어질 것이다.

'으으~, 하지만 그래서는 미카엘과 좋은분위기로 발전할 수 없는걸! 날 나쁜 여자로 생각하게 될 거야.'

협박범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는 없었다. 미카엘 같은계략집착남이라면 더더욱 그것을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아니! 그래도 계기가 필요하잖아! 이런 식으로 북부 대공을 협박해서 계약결혼을 했던 로판도 있으니까, 분명히통할 거야!'

처음에는 미친 여자 취급을 받고 냉대를 당하겠지만, 버틸 수 있었다. 미카엘의잘생긴 얼굴이 있으면. 아이리스는 미카엘의얼굴만 보고 살아도 배가 부를 자신이 있었다!

"왜 그러시나요, 성녀님? 뭔가 안 좋은내용이라도?"

시시각각 변해 가는 아이리스의표정에 신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이리스는 의례적인 미소를 띠며 신녀를 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오늘 공작가를 방문해도 좋은모양이야. 외출 준비를 해 주겠니?"

"네!"

신녀는 눈을 반짝이며 대꾸했다. 아덴 공작가라니! 멀리서도 엿보이는 그 거대한 성에는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다. 이런 인사차 방문하는 것에는 자신보다 급이 낮은신관이나 신녀를 데려가기 마련이니, 그녀도 동행할 수 있을 것이다.

***

"오늘 신전에서 의례적인 방문이 있을 예정입니다만…. 대신 맞이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미카엘이 이런 말을 한 것은처음이었기에 로제타는 조금 놀랐다. 이자벨의일이 있어서 외부 사람들의방문을 거절하고 있는 아덴 공작가였다. 그래서 가신 가문의사람들을 초대하여 로제타에게 소개하는 자리도 아직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대신관이 방문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성녀가 이곳 루긴의신전에 부임했다고 하는군요."

그제야 로제타는 미카엘의고뇌를 이해했다. 그도 아이리스와 자신의소문을 알고 있기에, 그녀가 접근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와의거슬리는 소문도 있으니…. 되도록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리스 때문에 로제타에게 오해를 받을 생각은추호도 없었다. 성녀가 중요한 인물이기는 하나 예의를 차리면 그만이지, 공작이 반드시맞이해 주어야 하는 이는 아니었다.

로제타는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리온 영애와는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으니 괜찮을 거예요."

"…불편하지는 않겠습니까?"

걱정스러운 미카엘의시선에 로제타는 싱긋 웃었다.

"성녀님은따로 저와 말한 적이 없어요."

로제타를 비난하고 괴롭히려고 든 것은그 추종자들쪽이었다. 아이리스는 경악한 눈초리로 로제타를 쳐다보았을 뿐이었다. 네가 그렇지, 하는 눈빛이 지나가는 것을 보기는 했으나, 원작도 알고 아이리스가 빙의자인 진풀잎인 걸 알아서 그러려니 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아무리 미카엘이 이 소설의남주였다고는 해도, 그것은그가 결혼하지 않았을 때의얘기였다. 지금은자신과 버젓이 결혼해서 유부남이었다!

'로판 여주의법칙을 모르는 건가? 로맨스 소설 여주인공은유부남에게 집적거리지 않는다고!'

거기다…. 진풀잎이 아는 원작은원작1이었다. 거기서는 미카엘이 아이리스와 패트릭에게 살해당하고, 아이리스는 패트릭과 맺어졌다.

하니, 그녀의남자주인공은엄연히패트릭인 것이다. 미카엘이 아니라!

'진풀잎도 원작을 바꿨는데, 나라고 못 할 거 있어? 물론 내 자의는 아니었지만….'

로제타는 원작1도, 원작2의내용도 전부 알고 있었다. 물론 원작1은진풀잎이 작중에서 서술한 정도만 알고 있었다. 로제타가 읽은것은원작2니까.

원작1에 진풀잎이 빙의해서 미카엘과 이루어진다는 내용이 원작2였다.

로제타는 그 원작2에 또 빙의한 셈이었고.

'정확히는 거기 등장하는 악녀2에게 몸을 빼앗긴 거지만 말이야.'

이쯤에서 다시떠오르는 먹튀 정령의존재에 로제타는 새삼 분노를 느꼈다. 몸도 빼앗기고 사기도 당하고, 집단 따돌림에 누명에…. 참 가지가지 당했다 싶었다.

'거기에 남편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추가하긴 싫어! 너는 내가 격퇴한다!'

다행히진풀잎은이자벨처럼 집착적인 성미도 아니었다. 빙의후에 피폐물을 로코로 만든다는 설정의캐릭터였으니, 적당히말하면 물러나지 않을까 싶었다.

"로제타? 역시불편하겠습니까? 허버트에게 적당히접대하고 돌려보내라고 할까요?"

허버트는 집사였다. 로제타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제가 할 수 있을 거예요!"

로제타는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

황제가 보내어 공작가를 호위하고 있었지만, 당연히이들에게도 휴일이 있었다. 패트릭은오늘이 휴일이었기에,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말을 꺼내 왔다.

머릿속에서 로제타를 털어 버릴 일이 필요했다. 아이리스를 만나고, 그녀의목소리를 듣고, 그녀의눈을 바라보면 로제타에 대한 생각이 사라질 것 같았다.

말에 올라탄 패트릭은바쁘게 루긴의신전으로 향했다.

지나치는 도시의풍경이 수도와 그리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번화해 있었기에, 패트릭은심사가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미카엘이 이 도시의좋은군주 노릇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눈에 보일 때마다 더욱 그러했다.

이전에도 미카엘을 질투하지 않았던 것은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감정의결이 달라진 기분이었다.

'아니! 더는 그를 질투할 이유가 없다! 그는 이제 아이리스와 이어질 일이 없으니…. 그가 로제타 휘르센과 헤어지면 모를까!'

복잡한 마음에 그는 혼란스러워졌다. 자신의입장에서는 그가 로제타와 헤어지지 않고 오래 계속 사는 것을 바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자신은….

떠오른 생각에 패트릭은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 생각을 도저히인정할 수 없었다.

지금의그는 억울한 누명을 썼던 로제타가 다시금 누군가에게 이용되는 상황에 분노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한때라고는 하나 자신에게 첫 마음을 품었던 여인이었다. 마음이 아주 안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 그것뿐이다!'

그것뿐일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

아이리스는 패트릭이 자신을 만나러 루긴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로 마차에 올랐다. 본디 신전에도 상징하는 마크가 달린 마차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나 사용하는 마차였다.

본디 신전은검소한 삶을 지향하기에 평소에는 아무런 문장이 새겨져 있지 않은평범한 마차를 사용했다. 물론 그 또한 병자나 노인, 혹은신분이 매우 높은성직자에 한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이리스는 성녀이기에 당연히마차를 사용할 수 있었다.

'패트릭이나 로건이었다면 가문의마차를 보내 주었을 텐데.'

의전용 마차면 모를까, 신전의마차는 품질이 형편없었다. 방석이 깔려 있기는 하나 엉덩이가 얼얼한 것은마찬가지였다.

'로건도 데려오지 못했고….'

미카엘을 협박할 생각이었으니, 당연히로건은떼어 놓고 왔다. 퍽 섭섭해하는 눈치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로건 앞에서 미카엘을 협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사실 아이리스는 황실 무도회에서의사건이 거짓이라는 것도 그들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황비님은좀 무섭거든.'

아이리스는 설사 미카엘이 거절한다 해도 그 사실을 털어놓아 황실의눈 밖에 날 생각은없었다. 원작 소설에도 나와 있었지만, 알렉시스와 아네트는 무서운 사람들이었다.

성녀의존재가 아무리 귀하다 해도 미카엘보다 귀히여기지는 않을 것이었다.

'미카엘이 내 말을 들어줘야 할 텐데….'

아이리스 곁에 있는 신녀는 그녀의속도 모르고 즐거운 듯 재잘거리고 있었다. 아덴 공작령의수도인 루긴에 산다고는 해도 아덴 공작가의성을 방문하는 것은전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오늘의이 일이 그녀에게는 매우 흥분되는 일인 모양이었다.

'나중에 내가 여기서 살게 되면 자주 초대해 줄게.'

아이리스는 조금 우쭐해진 기분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

마차는 유유히정원을 가로질러 본성의저택 앞에 세워졌다. 문 앞에는 집사가 나와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녀는 대신관급의대우를 받는다지만, 성녀의숫자가 줄어든 지금은대신관보다도 나은대우를 받는다.

아이리스는 새삼 그 점을 실감하며 신녀와 같이 마차에서 내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성녀님."

허버트는 아이리스와 그녀의동행에게 인사를 올리며 저택으로 안내했다. 아이리스의동행은모두 넷이었다. 신녀 하나와 성기사 하나, 신관병 둘이 호위로 붙어 있었다.

신관병 둘은시종을 따라 대기실로 안내되고, 아이리스를 쫓아 안으로 들어간 것은신녀와 성기사뿐이었다.

"이쪽입니다."

아이리스는 두근거렸다.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미카엘이었던 것이다. 로제타가 같이 나와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은있었지만, 아닐 거라 생각했다.

이제까지 무도회장에서 로제타는 늘 아이리스를 피했으니까.

"마님. 성녀님이 도착하셨습니다."

'뭐?'

응접실 앞에서 허버트가 말하는 것에 아이리스는 경악했다. 마님이라니! 그렇다면 미카엘이 아닌 로제타라는 것 아닌가!

"모시도록 해."

"들어가십시오."

허버트가 비켜서며 문 앞에 선 시종에게 문을 열라고 지시했다. 시종이 문을 열자 환한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워낙 넓은데다가 로제타가 앉아 있는 소파 세트는 문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제까지 로제타가 아이리스를 피한 것은, 이자벨이 짜 놓은함정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자벨의함정에는 늘 아이리스가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이자벨이 도망친 지금 로제타가 아이리스를 피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아이리스는 쭈뼛거리며 응접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로제타의몸에 빙의된 것이 진짜 아이리스라는 판단이 선 순간부터 로제타를 보는 것이 두려웠다.

자의는 아니라 해도 남의몸을 빼앗은셈이 된 것이다. 혹시나 로제타와 접촉했다가 순식간에 지금의몸을 빼앗길까 봐 두려웠다.

'안 돼! 내가 아이리스 리온으로 생활하면서 일궈 놓은게 몇 년인데! 빼앗기는 건….'

그러나 몸의원주인이 달라고 한다면 자신도 방법은없을 것 같았다.

'으으~, 왜 갑자기 태도가 바뀐 거지?'

아이리스로서의연기를 유지하지 못한 채로 터벅터벅 응접실로 들어오는 그녀의모습에 성기사와 신녀는 당황한 것 같았다.

로제타는 의아한 듯이 아이리스를 보았다. 예상했던 것과는 태도가 달랐다.

"…어서 와요. 리온 영애."

"아, 네!"

퍼뜩 정신을 차린 것처럼 아이리스가 로제타를 보았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로제타의시선에서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 터라 아이리스는 일단 안도했다.

'화가…, 난 건 아니지? 하긴, 원작의아이리스는 성녀로서의삶을 잘 따르는 듯이 보였어도, 사실 그 삶을 싫어했으니까….'

로제타의몸에빙의된 것을 좋아했을 수도있겠다 싶었다. 그렇다면 원래 몸으로 돌아갈 생각도없을 것이다.

'뭐야. 괜히 겁먹었네.'

"오래간만입니다. 고…, 공작부인."

"앉으세요."

자리를 권하는 것에아이리스가 우아한 걸음으로 로제타의맞은편으로 가서 앉았다. 신녀와 성기사는 한쪽에서 있었다. 공작가의시녀가 못지않은 절도있는 태도로 다가와 로제타와 아이리스의앞에찻잔을 내려놓았다.

아이리스는 힐끗 로제타의눈치를 살폈다.

"오늘 방문한 것은…. 제가 이곳 루긴의신전에부임하게 되어 인사를 올리기 위함입니다. 또한, 수도에서의그 일이…. 고, 공작부인께 큰 충격을 안겨 주었을 듯하여 위로차…."

태연한 낯으로 차를 마시고 있는 로제타의모습이 너무 귀부인스러워서 아이리스는 당황했다. 원작의로제타 휘르센은 더 경망스러웠을 것이다.

'하긴. 아이리스니까….'

미카엘을 협박하여 공작가에자주 드나들 작정이었다. 핑계를 대고 계속 미카엘과 만남을 가지면 그와 저절로 가까워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보면 유부남과의만남이었다.

원작 아이리스는 미카엘의집착을 끔찍하게 여겨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 그 과정에서 그녀 곁의많은 사람들이 살해되고, 결국 아이리스가 미카엘을 죽이는 것으로 끝나게 되니…. 둘의결합은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일 것이다.

'이건,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이 길이야말로 미카엘도구하고, 원작 아이리스도구하는 길이니까….'

그러나 마음 한구석이 콕콕 찔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미카엘의부인이 된 로제타를 보니 더더욱 마음이 그러했다.

"공작부인. 긴히 해야 할 말이 있으니…. 사람들을 내보내 주시겠습니까?"

진지한 진풀잎, 아이리스의말에로제타는 의아한 듯 그녀를 보았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러나 그녀는 패트릭과는 달랐다. 로제타는 선선히 끄덕이고는 시녀들을 쳐다보았다.

시녀들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는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아이리스는 신녀와 성기사에게도시선을 돌렸다.

"미안하지만, 바깥에서 기다려 주겠어?"

"알겠습니다, 성녀님."

신녀와 성기사가 뒤늦게 빠져나가고 문이 닫혔다. 로제타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요즘 단둘이 할 말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 많네.'

아이리스는 무안해진 얼굴로 로제타를 보았다. 미카엘이 아닌 게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도들었지만, 역시 민망했다.

"무례한 청을 하나 드릴까 합니다."

"해 보세요."

듣기만 하는 거야 돈 드는 일도아니었다.

"부인의상처를 본다는 구실로 자유롭게 공작저에드나들 수 있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패트릭을 보고 싶다는 핑계를 들 수도있었지만, 원작을 아는 아이리스는 패트릭이 본성에머무를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카엘을 보려면 본성에드나들어야 했다.

"그런 일이라면…. 제 남편이 마법사이기에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쯤은 아이리스도예상한 답이었다. 아이리스는 찔끔했지만 강하게 밀어붙이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자신은 로제타에게 있어 악녀가 될 수밖에없었으므로!

"사적으로 친분을 쌓고 싶다는 핑계도좋습니다. 공작가에는 제 청을 들어줘야만 하는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성녀께서 제 상처를 치료해 주신 일을 말하는 겁니까?"

로제타가 콕 찍어서 묻자 아이리스의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남이 자신에게 죄지은 것을 들어 압박한 적은 있어도, 누군가를 협박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그렇습니다."

"내 남편을 자유롭게 만나고 싶어서?"

커억!

강하게 한 방 얻어맞은 느낌에아이리스는 할 말을 잃었다. 정곡이었으나, 그 부인에게 듣기로는 민망한 말이었다.

"그, 그그, 그건…."

당황하는 아이리스 앞에서 로제타는 말간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리스는 그녀에게 있어 원작2의여주였다.

아이리스 몸에빙의한 대학생 진풀잎.

작품 설정상 아버지와 오빠로부터 듬뿍 사랑을 받고 자라난 것으로 되어 있어, 왜 자신의몸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지 이상하게 여겨질 뿐이었다.

'난 기다려 주는 가족이 없는데도돌아가고 싶었는데.'

겉으로야 로제타의모습일지는 몰라도그녀, 윤승아는 30대 후반의직장인이었다. 단체로 사람을 두들기는 거나 누명을 씌우는 것은 무섭지만, 아이리스 개인은 무섭지 않았다. 심지어 속 알맹이는 세상 물정 모르는 진풀잎이고.

지금의진풀잎은 왜 일이 갑자기 이렇게 돌아가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피폐물이었던 원작1과는 달리 원작2는 진풀잎이 주위 남자들을 휘두르는 로코였다.

그녀가 손대는 것마다 술술 잘 풀리고, 어려운 것도없다. 악녀 이자벨의괴롭힘이 있었다지만 일이 심각해지기 전에늘 남자들이 나서서 보호해 주었다.

그래서 진풀잎은 두려워하지도, 미래에대한 걱정도없었다. 그저 아이리스 리온의흉내를 어디까지 잘 낼 수 있는가에대한 고민만 있을 뿐.

원작2의미카엘은 아이리스 리온의가면 뒤에서 이따금씩 드러나는 진풀잎의모습에끌렸지만, 지금은…. 어째서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 로제타도모르고 있었다.

"무, 무례하시군요! 저는 단지 미카엘 님과 우정을…."

"성녀이시기는 하나, 제 남편이 이름을 허락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로제타가 지적하자 진풀잎이 빙의된 아이리스의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녀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처럼 입술을 질끈 깨물며 로제타를 노려보았다.

"지금 미카엘 님의사랑을 받고 있다고 우쭐해지지 말아요! 그 사랑은 결국 주인공에게 가는 거니까!!"

분한 마음에소리친 아이리스는 순간 헉했다. 발끈해서 주인공 운운하는 소리를 해 버린 것이다. 힐끗 눈치를 보는 아이리스의모습에로제타는 이자벨이 진풀잎의진실을 알았다면 꽤 억울해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허술해서야.'

성녀 아이리스의모습은 가짜라는 것을 미카엘이 눈치챌 즈음이어서 이런 허술한 모습을 보이는지도모르겠다.

로제타는 해맑은 웃음을 보이며 아이리스에게 말했다.

"음. 주인공은 불륜 같은 거 안 할 텐데요?"

추하니까.

사실 좀 역겹기도했다. 드라마나 소설에서 미화하는 것과는 달리. 로제타가 덧붙이는 뒷말에아이리스는 하얗게 질렸다.

자신이 여주인공이고, 미카엘이 남자주인공이니 언젠가 그는 자신에게 돌아올 거라는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진풀잎이 원작1의줄거리를 믿고 그러는 거라면, 원작1의남주는 패트릭이었다.

비록 비중이 작고 마지막에구원자로 등장하는 것뿐이었지만, 어쨌든 아이리스가 결혼하는 이는 그였으니까.

로제타는 진풀잎이 등장하는 원작2의내용도알고 있지만 뭐….

'진풀잎도내용을 바꿨잖아?'

거기다 그녀가 미카엘을 유혹한 게 아니라, 굳이 말하자면 미카엘의덫에걸려든 것에가까웠다. 진풀잎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는 몰라도원작은 걷잡을 수 없이 틀어져 버렸다.

'아니면 고작 악녀2에불과한 로제타의악녀 짓이, 둘 사이의관계에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뭔가가 있었나?'

있었다 해도지금의로제타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그 순간은 지나가 버렸으니까.

딱히 돌이킬 생각도없고.

'아…. 우네.'

우는 여자를 보면 달래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녀는 예외였다. 남의남자한테 꼬리 치려고 찾아온 불륜녀가 운다 한들, 그걸 달래 주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아침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상호구 여주인공이나 할 짓이랄까?

'난 주인공은 아니니까.'

로제타는 미카엘도어차피 남주는 아니었으니, 자신과 이루어진 것으로 기둥 줄거리에서 탈락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아이리스가 이렇게 질척거리는 것을 보면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지만.

똑똑….

뭐가 그리 서러운지 눈물을 쏟고 있던 아이리스가 노크 소리에힐끗 문을 돌아보았다. 로제타도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지?"

"휘르센 경이 오셨습니다."

로제타는 아이리스를 쳐다보았다. 아이리스의눈에얼핏 구원자를 만난 것 같은 교활한 빛이 스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 상황에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것도우스운 일이었다. 마치 로제타가 아이리스에게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을 숨기는 듯한 모양새였으니까.

"들여보내."

내가 가라고 하면 도움이라도청할 생각이었는지, 입을 벌리려던 아이리스가 놀란 듯 로제타를 힐끗거렸다. 즉각 문이 열리고 방 안으로 들어온 제럴드는 아이리스를 보고 흠칫 놀랐다.

"영애!"

성큼성큼 아이리스를 향해 다가가던 제럴드가 문득로제타의시선을 느낀 듯 멈춰 섰다. 그러자 아이리스의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흐흑…. 제럴드 님…."

"이게 대체…."

전처럼 무턱대고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지는 않았으나 이유를 묻는 듯한 눈이었다. 로제타는 제럴드의시선에무뚝뚝한 어조로 답했다.

"날 협박해 자유롭게 공작저를 드나들고 싶다기에, 불륜하고 싶어서 그런 거냐고 물으니까 우네?"

비밀이 약점을 만든다. 무도회에서의그 일이 큰 비밀이기는 했으나, 미카엘과 아이리스의만남을 묵인할 정도는 아니었다. 로제타에게는 이미 자신에게 여러 번 등을 돌린 적 있는 세상의여론보다, 미카엘이 더 중요했다.

아이리스는 로제타의말에희게 질렸다. 자신이 은근슬쩍 협박한 것은 맞지만, 로제타가 고스란히 말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 아니에요! 거짓말이야! 제가 어떻게 그런…."

'창피한 줄은 아나 보네.'

무덤덤한 로제타와 울고 있는 아이리스.

어느 쪽이 거짓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제럴드는 어렴풋하게 짐작하고 있었다. 굳이 아덴 공작령을 콕 찍어서 부임한 아이리스의행동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으므로.

"저는 패트릭 님과 제럴드 님을 방문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 거지, 그럴 의도는…. 오해세요."

마치 로제타가 의부증이 있어 자신을 몰아가는 것처럼 아이리스가 말했다. 로제타는 딱히 노여워하는 기색을 드러내지도않았다. 불쾌하기는 했으나, 미카엘이 신경도안 쓰는 이런 여자는 날파리에불과했으므로.

"그렇다면 란스필드 경과 제럴드를 성녀님의호위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카룰리아스 영애가 탈출하여 여러모로 위험한 상황이니까요."

이자벨이 노린다면 자신을 노리지, 굳이 미카엘의관심 밖으로 밀려난 아이리스를 노릴 것 같지 않았지만, 이렇게 말했다. 이 기회에패트릭을 쫓아낼 수 있다면 편할 것 같아서.

기뻐할 줄 알았던 제럴드는 지금 이 상황이 당혹스러운 모양이었다.

아이리스는 이러다가 공작저에 발 디딜 수 없을거라 판단했는지 다급해졌다.

"저, 저는 두 분뿐만 아니라 로제타 님과도 친해지고 싶어서!"

"제가 왜 영애와 친해져야합니까? 제 남편과의 소문만으로도 불쾌한데요."

거기다 대놓고 미카엘에 대한 호감을드러냈던 이였다. 로제타는 이제까지 드러내지 않았던 노여움을한꺼번에 표출시켰다.

"여러 차례 경고했습니다만, 이번에는 제 이름도 부르시는군요. 성녀가 되었다고 해서 황족과 같은 지위가 되었다고 착각하십니까?"

신분으로 찍어 누르려는 듯한 로제타의 모습에 제럴드는 당황했다. 성녀는 새파랗게 질려서 제럴드에게로 시선을돌렸다.

"아덴 공작부인, 성녀님께서는 그저 실수를 하셨을뿐입니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십시오."

'실수라고 하기에는 쟤가 한 말이 꽤 많은데?'

아이리스의 어장에서 팔딱거리는 한 마리에게 그점을굳이 이해시켜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당하기만 하는 것도 억울하니 말해 줘야겠다 싶었다.

"내 남편의 사랑이 언젠가는 식을테니 우쭐하지 말라는 말도 실수였나요, 성녀님?"

'고자질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괴롭히는 놈들의 논리지.'

고자질이야말로 흙탕물을청정수로 만드는 신의 한 수였다. 뒤에서 괴롭히는 음습한 짓거리를 하는 놈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고.

로제타의 말에 아이리스는 기겁하며 제럴드를 쳐다보았다. 제럴드는 믿을수 없다는 눈으로 아이리스를 보고 있었다. 아이리스는 양손을흔들었다.

"아니! 아니에요! 새빨간 거짓말이야!! 저는, 그런 말을한 적이……. 아…."

"영애!"

갑자기 현기증이라도 느낀 듯 쓰러지는 연기를 하는 아이리스를 보고 로제타는 기가 막혔다. 제럴드는 놀라 쓰러지는 아이리스를 붙잡았다. 아이리스는 완전히 정신을잃은 듯 눈을감고 축 늘어졌다.

'가지가지 하네.'

"으, 의원! 의원을!!"

무슨 속셈인지는 알 것 같았다.

여기서 정신을잃으면 일단 공작저에 방을내어주고 간병해 주어야하니까. 공작저에 방이 없는 것도 아니고, 상대는 성녀이니 꼼짝없이 그렇게 되었을것이다.

소란에 방문이 열리며 신녀와 성기사, 공작저의 고용인들까지 뛰어 들어왔다. 제럴드는 그들에게 의원을부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로제타는 옷에 달려 있던 브로치를 빼내며 그런 제럴드의 곁으로 다가갔다. 제럴드는 한 팔로 아이리스를 안은 채로 사람들에게 소리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틈에 그의 품에 안긴 아이리스의 손을잡은 로제타는 브로치의 바늘 부분으로 아이리스의 엄지손가락을사정없이 찔렀다.

"악!"

기절한 척하고 있던 아이리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비명에 제럴드는 물론, 성녀님! 하고 외치며 달려들던 신전의 사람들까지도 우뚝 멈춰 섰다.

로제타는 브로치를 다시 옷에 달며 태연하게 말했다.

"제나, 의원은 필요 없을것 같다. 부르러 간 하인에게, 데려올 필요가 없다고 사람을보내 주겠니?"

"아…. 네, 마님!"

시녀장인 제나가 가까이에 있던 시종에게 눈짓을보냈다. 시종이 허둥지둥 응접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제럴드는 아직 이게 무슨 상황인지 눈치채지 못한 표정이었다. 로제타는 혀를 차며 신녀와 성기사를 돌아보았다.

"성녀님을모셔 가려무나. 방금 꾀병이 들통나서 꽤나 무안하실 테니, 얼른."

괴롭힘을당했다고는 해도 로제타와는 달리 따귀 한 번 맞아 본 적 없는 모양이었다. 고작 바늘에 찔렸다고 그리도 큰 소리를 지른 거 보면.

힐끗 찌른 자리를 보자니 피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제럴드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제 품에 안긴 아이리스를 쳐다보았다. 아까까지는 정신을잃고 축 늘어져 있었던 그녀였으나, 지금은 수치심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

"그, 그게 아니라…. 바늘로 찌르신 걸로……. 정신이 돌아와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변명하는 것에 제럴드는 깊은 실망감을느꼈다. 민망해진 신녀가 허둥지둥 제럴드의 품에서 아이리스를 데려갔다. 그들을보호하는 입장인 성기사도 방금의 아이리스에게 상당히 실망한 눈치였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창피해 고개도 들지 못하는 아이리스 대신에 신녀가 로제타를 향해 인사를 전했다. 로제타는 차가운 얼굴로 살펴 가라고 답했다.

***

'후우~, 드디어 보냈다. 이제 미카엘 얼굴로 힐링해야지!'

기쁘게 손을턴 로제타였으나, 아직 응접실에 제럴드가 남아 있었다. 그는 복잡한 심경을고스란히 드러낸 얼굴이었다. 아마도 아이리스가 몇 번이나 그앞에서 기절한 척했는지를 가늠하는 것일 거다.

'알 게 뭐야.'

제럴드는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로제타를 믿어 주지 않았던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솔직히 그가 얼마나 오래 아이리스의 어장에 머물든 관심 없었다. 아예 둥지를 틀고 살림을차린대도 내 알 바 아니다.

패트릭만큼 불편한 상대는 아니었으나, 딱 그정도일 뿐이었다.

로제타는 제럴드가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든 자신에게 등을돌릴 수 있는, 경계해야하는 대상이라고 여겼다.

자신의 행동을판단하고 비판의 날을세울, 남인 것이다.

가만히 서 있는 제럴드를 무시하고 로제타는 그대로 응접실을나가려고 했다. 그런 그녀를 불러 세운 것은 제럴드였다.

"공작부인. 아까는…."

아이리스의 편을들기는 했어도 로제타에게 적대했다고 말하기 모호했다. 굳이 말하자면 상황이 미묘해 판단을유보시켰다.

울고 있는 아이리스가 보였지만, 전처럼 무턱대고 로제타를 의심할 수가 없었으니까. 더더군다나 로제타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그가 추측한 것과 같았다.

그러나 로제타 앞에서 또다시 아이리스의 역성을든 것은 같았다. 제럴드는 그사실이 한없이 불편해졌다.

"경이 성녀와 우정을나누고 있다는 것은 압니다. 새삼 제게 변명할 것은 없습니다."

로제타는 담담하게 말하고 돌아섰다. 호적상 남매이기는 해도 제럴드와 그녀는 아무 사이가 아니었으므로.

돌아서는 그모습이 비수가 되어 제럴드를 찔렀다는 것도 로제타는 눈치채지 못했다. 제럴드가 시선을떨구는 것을보지 못한 채로 로제타는 걸음을서둘렀다.

싫은 사람과 쓸데없이 긴 시간을보내서인지 미카엘이 보고 싶었다.

***

"로제타."

미카엘은 두근거리며 팔을벌렸다. 로제타가 이 품으로 와 줄까, 하고 기대하며.

그를 본 로제타의 얼굴이 환해지며 쪼르르 달려와 안기는 것에 미카엘은 얼른 그녀를 끌어안았다. 제 가슴이 쿵쿵 뛰고, 로제타의 야트막한 심장소리가 들렸다. 두근두근 뛰는 소리마저 사랑스러웠다.

"…성녀를 만났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녀가 혹여 로제타에게 무례를 저지르지는 않았습니까?"

로제타는 아이리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으나 고개를 저었다.

"딱 예상했던 대로였어요. 괜찮아요."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을보아 맞는 모양이었다. 미카엘은 로제타를 향해 웃는 얼굴을보였으나 미미하게 낯을찌푸렸다.

'건방진….'

로제타가 과거 백작가의 영애였을지라도 지금은 공작부인이었다. 성녀가 제 지위를 가지고 흔들 수 있는 상대는 교단의 인물들뿐이었다. 황실은 그결을달리했다.

성녀를 추앙하는 교단과는 달리 황실에서는 대신관 정도의 예우를 약속할 뿐이었다. 그정도로는 공작부인 앞에서 함부로 고개도 들 수 없어야했다.

한편, 로제타는 제럴드와 패트릭을아이리스의 호위로 보낼 수 없을까를 생각했다. 아마도 미카엘이 황제의 허락을받으면 가능은 할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 다 제국의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었다. 이자벨이 언제 무슨 짓을할지 모르는 상황에 그들을내보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 생각했다.

미카엘이 로제타와 결혼한 시점에서 이자벨은 아이리스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을것이므로, 그들의 차출은 쓸모없는 짓이었다.

로제타는 꾸물꾸물 고개를 들어 미카엘의 얼굴을올려다보았다. 워낙에 키 차이가 져서 마주 끌어안으면 이렇게 된다.

무엇을말할까? 미카엘 앞에서 다른 여자를 흉보는 모습을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러했다. 아이리스가 자신보다 월등히 아름답고 평판이 좋은 것만은 사실이었으므로….

'미카엘이 그걸로 날 나쁘게 볼 리는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싫어.'

지금처럼 미카엘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생에 누구도 이렇게 그녀를 아껴 준 적이 없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일은 다 끝나셨어요? 이제 저랑 시간 보낼 수 있으세요?"

오후 시간에는 늘 로제타와 함께 보냈다. 그럼에도 늘 그시간이 부족하다 느꼈던 미카엘이었다. 그러며 로제타가 자신을지루하게 여기지는 않을까 불안했었다.

"오늘 해야할 일은 다 끝냈습니다."

식사를 할 때까지 일을하는 것은 로제타의 개인 시간을지켜 주기 위함이었다. 필요한 하루 업무는 일을시작한 후, 3~4시간이면 다 끝낼 수 있었다. 시찰이 필요한 일을제외하고는.

"데이트…, 할까요?"

로제타의 이마에 입 맞추며 정중하게 묻자 로제타가 활짝 웃었다. 꽃처럼 피어나는 미소에 미카엘도 눈을반짝였다.

"네!"

기쁨에 미카엘이 로제타를 번쩍 안아 올리자 까르르 웃음이 쏟아졌다.

***

'제럴드 앞에서 망신당했어.'

심지어 그녀와 같이 공작저로 갔던 신녀 또한 아이리스를 창피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공작저로 갈 때에는 한시도 입을다물 새가 없었던 그녀가 지금은 조용한 것이 그증거였다. 제럴드를 실망시킨 것이야나중에 만회하면 된다지만, 신녀가 실망한 것은 어떻게 변명해야할지 아이리스는 감도 잡히지 않았다. 여자들은 늘 아이리스에게 냉정했었다.

신녀는 제가 모시는 성녀의 추태에 고민하고 있었다. 아이리스가 미카엘을조심스럽게 연모해 오고 있었다는 것은, 이미 루긴의 대신관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두꺼운 안경 너머로 진지한 눈을빛내며 대신관이 이렇게 경고했던 것이다.

'…혹여 성녀님과 동행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그분을잘 부탁드립니다. 성녀님께 삿된 마음을품고 있는 자들이 있을터이니…. 그런 자들에게 흔들리지 않도록 잘 이끌어 주셔야할 겁니다.'

잔소리에 가까운 길게 이어지는 말을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었다.

이 세계의 교단에서는 혼인을금지하지 않았다. 신관이나 신녀가 되어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결혼을권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니 성녀에게 삿된 마음을품고 있다는 자들에 대한 경고도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저 정도로 아름다우신 분이라면 따르는 사내가 있는 게 당연하지!'

다만 결혼을하게 되면 성녀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 보통이라, 교단에서는 성녀의 결혼을늦추려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녀 또한 대신관의 말이 그것의 연장선이라 생각했다. 또한 루긴의 대신관은 비교적 젊은 40대임에도 불구하고 잔소리가 많았다.

'삿된 마음을품기는 무슨…. 성녀 자체가 그런 마음으로 가득한 것 같은데!'

마차 안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아이리스를 보며 신녀는 속으로 코웃음을쳤다. 성녀님, 성녀님! 이라고 부르며 아이리스를 잘 따르는 듯 보이는 그녀는, 태도만큼 순진한 이는 아니었다.

신전으로 들어와 신녀가 된 것도 10대 후반의 일이었다. 어릴 때는 구걸을, 나이가 좀 들어서는 좀도둑질로 배를 채우며 살았다.

세상의 풍파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왔기에 아이리스가 꾀병을 부린 이유도 금세 눈치챘다.

'아덴 공작에게 마음을 품었다는 소문이 사실이구나!'

그렇다한들 아덴 공작은 엄연히부인이 있는 남자였다. 그런데 이렇게 질척거리다니….

'설마 소문대로 정말 두 사람이 연인관계였던 건가?'

아덴 공작령까지 따라온것을 보면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아이리스에게는 추종자가 많았고, 공작이 그에 질려서 그녀를 버렸을 수도 있었다.

연인사이의 싸움이란 흔한 것이었다. 그녀는 성녀의 편이었으나 그녀와 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아덴 공작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다. 미카엘이 이 공작령의 공작으로 임명된 이후에 공작령이 한층 살기 좋아졌던 탓이다.

아덴 공작령에 사는 대부분이 그러할 것이다.

'설사 성녀님이 차인거라고 해도 이러는 건 옳지 않지!'

루긴의 대신관이 빙빙 돌려 말하기는 했으나, 그가 당부하려고 했던 것은 결국 이것이었을 것이다. 아이리스가 공작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으라는 것.

'앞으로 신경 좀 써야겠어.'

신녀는 얼굴을 붉히고 있는 아이리스의 옆얼굴을 훔쳐보며 생각했다.

***

아이리스가 아덴 공작저로 갔다는 말에 패트릭은 반사적으로 그녀가 자신을 보러 공작가의 성으로 갔다는 생각을 했다.

이성적으로 그럴 일은 없다는 것을 안다. 아마 그녀는 '인사'라는 핑계로 미카엘의 동태를 파악하러 갔을 것이다. 아이리스가 좋아하는 것은 미카엘이었으니까.

그 사실에 늘 그의 심장을 아릿하게 했던 통증이 퍼져 나갔으나, 이전만큼 그 사실이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지는 못했다. 여전히마음은 불편했으나 딱 그 정도였다.

대신에 그는 짜증스러움을 느꼈다. 그를 번거롭게 만드는 존재에 대해서.

신전에서 아이리스가 오는 것을 기다릴지, 아니면 공작저로 돌아가 아이리스와 미카엘의 만남에 끼어들 것인지 사이에서 그는 선택해야만 했다.

아이리스가 걱정된다면 응당 그가 선택할 것은 후자였다. 그러나 그는 아이리스를 찾으러 가는 것이 짜증스러웠고, 반대로 신전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것조차 불쾌하게 여겨졌다.

대체 미카엘이 뭐기에, 성녀라는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저러는 것일까 싶었다.

한없이 순수하고 아름답게만 느껴졌던 꽃에 더러운 얼룩이 묻어 있는 것을 목격한 기분이었다. 그는 급히그 얼룩을 지우려 애썼으나 문지를수록 그 얼룩은 주변으로 번져 갔다.

"…돌아가겠다."

패트릭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이리스 대신에 패트릭을 맞이했던 신관은 당황하며 패트릭을 보았다.

"지금 말씀이십니까? 성녀님께서는 인사만 하고 돌아오실 것이니 오래 걸리시지 않을 겁니다."

그럴 리가. 아이리스는 미카엘과 더 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여러 가지 구실을 붙여 공작저에 남아있으려 할 것이다.

코웃음을 치던 패트릭은 문득 아이리스에 대한 감정이 전과 같지 않음에 불편함을 느꼈다.

그녀를 변명해 주던 마음은 다어디 갔단 말인가?

아이리스의 철없고 예의 없는 행동을 순수함의 발로로 여기던 마음의 불꽃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어 가고 있었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그 불꽃을 다시 피우려 했건만. 아이리스는 자리에 없었다.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미카엘에게 인사를 하러 공작저로 갔다고 했다.

그가 아덴 공작가의 성에 머물게 되었다는 편지에는 아직 답장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오래 걸릴지 아닐지는 당사자만이 알 일이지."

패트릭은 차갑게 내뱉고는 자리를 떠났다. 귀빈을 모시는 응접실로 안내된 지 10분 만의 일이었다.

***

신전으로부터 아이리스가 자리를 비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제야 로건은 아이리스가 자신을 따돌리고 외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아덴 공작가의 성에.

계획적인행동이었다.

많이 화가 날 거라고 생각했건만 생각보다화가 나지는 않았다. 어이가 없었을 뿐이다.

'리온영애가 미카엘 황자를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거짓말을 해서 자신을 신전 밖으로 보내 놓은 다음 찾아갈 정도인줄은 몰랐다. 이후 사실을 알게 된 자신이 그녀에게 화를 낸다해도, 사과하면 용서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 듯싶었다.

그 추측은 반만 맞았다.

성녀가 자신에게 어떤 행동을 한들 사과하면 용서해 주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그녀가 그에 걸맞은 이유가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용서해 주기는 할 테지만, 그녀에게 실망하게 될 것이다.

'리온영애는 그녀에 대한 내 마음이 영원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그가 그녀에게 구혼자인것은 맞지만, 그 마음은 영원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마음이든 그러했다.

서로 좋아하게 된 마음도, 꾸준히노력하여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 주지 않는다면 시들어 가는 것이 당연한데, 외마음이야 말할 것도 없다.

'오늘 일은 꽤 실망스럽군.'

그래서 사정을 알게 된 이후로도 신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서성이고 있었다.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서…. 아덴 공작령이 수도 못지않게 번화한 곳이기는 하나, 수도와 완전히같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었다.

건축 양식에서조차 다름이 보이니, 지방색이 뚜렷하다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 마음이 변한 건 아니지만 말이야.'

성녀가 자신을 그리대한 것도 그 사실을 눈치채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게 깊은 마음이라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씩 천천히깊고 넓게 퍼져 있던 마음이 움츠러드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영영 안 되는 것인가….'

그녀의 마음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는 뚜렷했다. 자신의 추종자에게 곁을 내어 주는 것은 사실이나 결정적으로 마음을 허락한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애매모호한 태도 뒤에는 누구도 상처 입히고 싶어 하지 않는 상냥한 마음이 있는 거라고…. 이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그 마음을 대가로 속은 것을 생각하니 그것이 과연 그렇게 상냥한 마음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자신을 연모하는 이를 마음껏 휘두르며 즐거워하는 어린 영애의 잔혹한 마음은 아닐지, 의문이 생겼다.

'아니, 고백하지 않고 시간을 끄는 것은 내 쪽이다.'

고백을 하여 거절당하면 아이리스가 전처럼 곁을 내어 주지 않을까 봐. 그를 멀리할 것이 두려워 제 마음을 숨기고만 있었다.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며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은 그 자신도 마찬가지인지라, 로건은 아이리스를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뚜렷이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패트릭과는 달리, 로건의 태도에는 불분명한 것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줄곧 곁을 지켜 온행적을 생각하면 그 또한 그녀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로건은 벤치에 앉아길게 한숨을 쉬었다. 대놓고 제 마음을 드러내는 패트릭이나 묵직한 바위처럼 곁을 지키며 제 존재감을 드러내는 제럴드와는 달리, 그는 아직 아이리스에게 마음을 고백한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각종 파티나 연회에서 아이리스의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

어렴풋하게 마음을 드러낸 적도 없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지만. 그들만큼 뚜렷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겁쟁이의 말로인가….'

로건은 패트릭이나 제럴드처럼 아이리스에게 고백 후, 거절당하고도 여전히그녀의 곁을 지키며 매달릴 자신은 없었다.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생각했건만.'

아이리스의 태도에는 어딘가 벽이 있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답해 주기 모호한 벽이.

아마도 그와는 이 이상 가까워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왜 나는 안 된다는 거지?'

패트릭처럼 후작가를 물려받을 것은 아니라 해도 그도 충분히괜찮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공작가의 아들인데다가 이미 백작작위를 가지고 있었고, 많은 재산을 물려받아부유했다. 작위가 문제인거라면 후작까지는 올라갈 자신도 있었다.

'미카엘 황자가 아니면 안 된다는 건가….'

음울한 고민에 눈길을 내리깔고 있을 무렵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남녀의 즐거운 웃음소리만으로도 로건은 기분이 나빠졌다.

'연인인가?'

찌푸리며 고개를 든 로건은 의외의 사람들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미카엘 황자와 로제타였다.

'당신도 적당히하는 게 좋을 겁니다.'

로건은 로제타에게 제가 했던 말이 떠오르자 민망해졌다.

로건과 로제타.

그들 둘 사이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제럴드는 그녀와 의붓남매 사이였고, 패트릭은 로제타가 짝사랑하던 이였다. 그 자신은 성녀의 추종자라 할 수 있으니, 만나게 되면 로제타가 일방적으로 자신을 적대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막상 마주친 로제타는 겁내고 있었다.

패트릭에게 그러하듯 로제타는 그와 단둘이 되는 것을 꺼렸다. 로건은 성녀의 추종자들 중에 꽤 거친 영식이 있음을 떠올리고는 주의했다.

아무리로제타가 아이리스에게 잘못한 것이 있다고 해도, 그녀의 추종자가 로제타에게 험한 짓을 했다가는 아이리스의 평판에도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로건이 신경 쓴 것은 그 점이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기 전에 제럴드에게 먼저 알렸었고, 그가 나서서 영식들을 돌려보낸 적도 있었다.

그때 딱 한 번, 로제타와 대면할 기회가 생겨 그렇게 말했었다.

영식들에게 둘러싸여 위협받고 있던 영애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고, 후회하고 있었다.

'물론 나 역시 속고 있었지만….'

스스로의 명석함에 자신 있었기에, 그 누명에 대해서는 자존심 상하는 부분도 있었다. 미카엘 황자가 알아차린 것을 자신은 읽어 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도 했다.

'진짜 연인들 같군.'

묘한 기분이었다. 미카엘 황자는 알아볼 법도 하건만, 로제타에게 집중해 이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로제타야 먼저 알아볼 것 같지도 않고.

미카엘의 눈에서 보이는 선명한 애정에 로건은 기분이 이상해졌다. 미카엘 황자가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할 리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서까지 저런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설마 내 존재를 눈치채서?

'아니면 그녀의 환심을 사야 할 만한 이유가 있단 말인가?'

자신도 모르게 무례라는 사실도 잊고 빤히눈길을 주고야 말았다. 이미 공작가의 호위기사들은 그를 알아차린 듯싶었다.

한발 늦게 미카엘이 그에게 시선을 보냈고, 로제타에게 속삭였다. 로제타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는것에로건은 예의를 갖춰 두 사람에게 목례를 했다.

데이트 중인 것 같은데, 가까이 다가가 일부러 말을 거는것은 방해만 될 뿐이었다. 로건의 이런 태도에미카엘은 만족하는것 같았다. 로제타는….

무표정한 얼굴로 로건을 힐끗 바라볼 뿐이었다. 그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는표정이었다.

'하긴. 아무런 접점이 없으니….'

그때 자신이 먼저 알아차렸다면, 그랬다면 무언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이자벨 카룰리아스가 그런 방식으로 손을 쓰고 있는줄 알았더라면, 제럴드에게 귀띔을 해 줄 수도 있었을 테고, 어쩌면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도의상 맞는일이기 때문에.

'그랬다면 나도 미카엘 황자처럼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문득 드는생각에로건은 당황했다. 그는아직 미카엘 황자가 진심이라고 확신하지 못하는상태였다. 그런데도 이런 생각이 들다니.

웃으며 미카엘을 바라보는로제타의 모습이, 그녀답지 않게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생각이 들었다.

미카엘 황자야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일이지만. 로제타가 그를 좋아하는마음만큼은 분명하게 엿보였다.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고 하니,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를 일이지.'

로건은 또다시 아이리스를 떠올리고는씁쓸한 미소를 감췄다. 그녀가 그리도 아름답게 보이는것은, 미카엘 황자를 좋아해서일지도 모른다는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

'루긴이 그렇게 좁은 도시는아닐 텐데.'

오히려 라스탄 제국 안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드는큰 도시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 여기서 만나다니. 패트릭이 아닌 것만도 천만다행이었으나 저들 중 하나의 얼굴을 본다는것은 로제타에게 있어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로제타는휘휘 고개를 저었다. 간만에하는미카엘과의 외출에다른 생각은 끼어들 틈이 있어서는안 되었다.

'착하고 바른 생각까지는아니래도, 다른 남자는생각하고 싶지 않아!'

얼른 고개를 돌려 미카엘을 쳐다보니 로건에대한 생각은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로제타는새삼 제남편의 미모에두근거리며 눈을 반짝였다. 미카엘이 피식 웃었다.

"왜 그리 귀엽게 쳐다보십니까?"

가슴 설레게.

공작가의 성으로 돌아갈 때까지는손대면 안 된다는것을 아는데, 자제력을 약하게 하는눈빛이었다.

"그냥 조금…."

설레서이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는것은 어려웠다. 대신에미카엘의 귀엽다는말에얼굴만 붉게 달아올랐다.

로제타의 반응에미카엘은 곧바로 로제타를 데리고 공작가의 성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침실로 들어가 그녀를 만지면 그에대한 감정이 얼마만큼 자라났는지를 바로 알아낼 수 있을 터였다.

전보다 더 그를 생각하게 되었다는것이 보였다. 이제2.5배로 줄여 놓은 감도를 또다시 2배로 줄여야 할지도 몰랐다.

'2배 이하로는줄이지 않을 생각이지만.'

로제타가 그와의 관계에서 많이 느끼는것이 좋았다.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자신과의 잠자리에푹 빠져서 헤어나지 못했으면 좋겠다. 정말 그렇게 되기를, 미카엘은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키스 할까요?"

"네?"

"해도 되겠습니까?"

바싹 붙어서며 속삭이는말에로제타의 얼굴이 머리끝까지 붉어졌다. 공작가의 사용인들이 보는앞에서 입 맞추는횟수가 꽤 늘기는했으나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거기다, 여기는공작가의 저택이나 성이 아니잖은가!

"아, 안 돼요. 마차에서…."

쩔쩔매며 대답하는로제타에미카엘은 피식 웃었다. 그녀가 당황하는이유가 짐작되기 때문이었다. 부끄러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가 거절했을 때에미카엘이 마음 상해하는것이 신경 쓰이니 어려운 것이다.

전보다 많이 좋아졌으니까. 잘 보이고 싶으니까.

자신과 같은 기분이니 알 수 있었다. 그 사실에무한한 기쁨을 느끼며 미카엘은 로제타의 뺨에가볍게 입 맞췄다. 놀라 쳐다보는시선에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참을 테니까, 이건 봐주십시오."

무엇을 봐달라는건지, 멍해 있다가 뒤늦게 뺨에키스한 것을 말하는것임을 알았다.

더 달아오르는로제타의 얼굴에미카엘은 그녀의 뺨으로 손을 가져갔다. 손끝이 뺨에닿자 로제타가 움찔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손가락에묻어나는뜨거운 열기가 미카엘의 심장에서 고스란히 옮겨져 오는듯했다.

무섭게 달아오르는열기에미카엘은 저도 모르게 로제타를 끌어안고 말았다. 귀여워서, 아까보다도 더 입 맞추고 싶어졌다.

"미, 미카엘 님."

당황한 로제타가 품속에서 꼼지락거렸지만 미카엘은 놔주지 않았다. 아직 로건이 자리를 뜨지 않았으니, 이런 모습이 보일 터였다.

보라지.

로제타는그의 여자였다. 그가 로제타의 남자인 것처럼. 제여자라고 모두에게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로제타가 너무 귀여워서 숨도 크게 쉬지 못하겠습니다. 저 좀 살려 주세요."

"노, 놀리지 마세요."

귓가에대고 속삭이자 뾰로통한 반응이 돌아왔다. 미카엘은 로제타의 달아오른 뺨에입술을 부비며 속삭였다.

"진심입니다. 정말 죽을 것 같아요."

로제타는미카엘의 행동에부끄러움 반, 의심 반인 것 같았다. 여전히 놔주지 않는미카엘의 품에서 로제타는머뭇거리다가 속삭였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였다.

"제가 어떻게 하면…, 살아나실 것 같은데요?"

"숨이 부족한 거니…."

슬쩍 자신의 입술을 두드리며 웃자 로제타가 의심스러운 듯 미카엘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미카엘은 섭섭하다는듯이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진짠데."

속삭이며 미카엘은 로제타를 안은 팔에힘을 주었다. 심술궂은 마음에그의 입술에키스해 주지 않으면 놔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공원 한쪽에자리 잡고 있던 로건은 슬그머니 자리를 뜬 지 오래였다. 두 사람의 애정 행각에자리를 지키고 있기 민망해졌기 때문이었으리라.

"마차로 돌아가면 얼마든지 해 드릴게요."

로제타가 한참 만에타협점을 내놓자 미카엘은 잠시 고민했다.

"침실에서도?"

"침실에서도요."

더 빨개질 수 없을 것 같은 얼굴을 미카엘의 가슴에숨기며 로제타가 속삭였다. 미카엘은 고개를 숙여 로제타의 귓가에속살거렸다.

"하는도중에도 해 줄 겁니까?"

미카엘의 말을 알아들은 로제타가 믿을 수 없다는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미카엘은 짓궂은 눈으로 로제타를 쳐다보기만 했다.

"아얏!"

옆구리를 대차게 꼬집힌 미카엘이 약한 비명을 울렸다. 그럼에도 놔주지 않는미카엘에, 로제타는한 번 더 같은 자리를 꼬집었다.

"아야야야…. 로제타의 사랑이 너무 아픈 것 같은데요?"

"사랑이 아니니까요!"

"저는전부 사랑인데요?"

미카엘은 분명한 어조로 말하며 로제타에게 눈웃음을 쳤다. 로제타가 당황한 눈으로 미카엘의 녹색 눈을 올려다보자 녹아내릴 듯 달콤한 어조로 속삭였다.

"사랑합니다, 로제타."

"……."

완전히 방심한 표정에미카엘은 얼른 로제타의 입술에가볍게 키스했다. 덕분에놀란 로제타에게 한 번 더 같은 자리를 꼬집힐 수 있었다.

***

아덴 공작가의 성으로 돌아온 패트릭은 실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로제타에대한 마음 때문만이 아니었다. 아이리스가 로건까지 떼어놓고 미카엘을 만나러 갔다는사실이 괜스레 원망스러워졌다.

터무니없는감정이라는것은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오늘이어야 했는지 묻고 싶었다.

'처음부터 괜한 마음을 품은 것은 아니었나?'

미카엘이 로제타와 결혼을 했으니 이제아이리스가 마음을 돌려 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기대와는달리 아이리스의 행동은 자꾸 어긋나기만 했다.

패트릭은 자신이 아이리스에게 품은 감정이 예전만 못하다는것을 깨닫고 갈팡질팡했다.

여기까지 온 것은 오로지 아이리스 때문이었는데, 이곳에와서 다른 여인에게 마음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심지어아이리스보다도 더욱 터무니없는상대였다.

북쪽 성에있는자신의 거처로 돌아간 패트릭이었지만 마음은 어지러웠다. 로제타의 얼굴을 보고 제감정이 진짜 그런지 확인하고 싶었으나, 상대는공작부인이었다. 같은 성에머물고 있다 한들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는이가 아니었다.

다 포기하고 수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돌아갈 수 없다 싶었다. 표면적으로는억지로 청한 임무를 인제와서 무를 수 없다는것이었다.

무려 황제가 차출하여 보낸 기사단에스스로 청하여 들어갔으니, 성과를 내기 전에는빠질 수 없었다.

거기다 로제타가 걱정스럽기도 했다.

'미카엘 황자는마법사지, 기사는아니니까….'

미카엘이 강하다는것은 알지만, 기사인 패트릭은 근접전에서는자신이 미카엘보다 강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악랄한 술수를 쓸지 모르는이자벨이기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휘르센 영애의 얼굴을 보고 싶다 생각하는때가 올 줄이야.'

그 스스로도 믿어지지는않았지만, 로제타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

미카엘은 마음이 급했다. 로제타와는전날 밤에도 잠자리를 했었고, 오늘도 그와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무언가 특별한 사건이 벌어진 것도 아니었다.

듣자 하니 성녀가 로제타에게 망신을 당하고 돌아갔다는것. 그거 하나뿐이었다.

이 일은 로제타가 미카엘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수그러들면 모를까, 그를 더 좋아하게 될 계기가 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로 인해 생긴 성가신 사건이었을 뿐일 테니까.

그러나 그들은 오늘 데이트를 했고, 그때 보인 로제타의 반응이 이전보다도 한층 달콤해졌다는생각이 들었다.

거의 매일같이 로제타와 관계하고 있으니, 그녀의 기분이 달라지면 알 수 있었다. 그의 것으로 인해 몸서리쳐질 만큼 느끼는로제타를 보고 싶어안달이 났다.

"오늘은 같이 씻을까요?"

루긴의 한 레스토랑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돌아오며 청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로제타가 침대로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아서. 한시라도 빨리 로제타를 만지고 싶었다.

로제타는 멈칫하며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미카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기분에, 또한 미카엘이 그녀를 얼마나 기분 좋게 해 주는지를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엘은 두둥실 떠오른 듯한 기분으로 로제타를 품에 안고 그녀의 입술을 마음껏 만끽했다. 아덴 공작성 밖이라고, 로제타에게 키스하지 못한 시간들이 아쉬웠다. 이렇게 달고 부드러운데, 참아야 하다니!

"음…. 미카…. 엘, 님…."

가쁜 숨소리조차 그에게는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이 마차 안에서 로제타의 드레스를 벗길 태세라 미카엘은 마부에게 서두르라 재촉했다.

마차는 급하게 달려 아덴 공작가의 성으로 들어갔다. 미카엘이 마부를 재촉했을 즈음에는 이미 도시 외곽으로 빠져 공작가의 숲으로 들어서고 있었으니, 마차의 속도를 올리기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본성의 저택에 마차가 세워지고 시종이 문을 열었다. 미카엘은 로제타의 입술에 키스하며 그녀를 안아 든 채로 마차에서 내렸다. 흡사 신혼여행을 막 다녀온 부부 같은 모양새였으나, 공작가의 고용인들은 점잖게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목욕물은 준비되어 있나?"

성큼성큼 저택으로 들어간 미카엘이 으르렁대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바로 몸을 씻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돌아간다고 하인을 보내 알렸을 것이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미카엘의 전속 시종인 노아가 답하는 것에 미카엘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팔 안에 안겨 있는 로제타는 부끄러운 듯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미카엘은 그런 로제타의 이마에 입술을 누르고는, 그녀를 안아 든 채로 계단을 올라갔다.

몇 개의 계단과 복도를 지나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공작 부부가 돌아올 것임을 알렸기에 그들의 거처에서 얼쩡거리고 있는 하인은 없었다.

미카엘은 시종과 시녀들을 물리치고 로제타와 같이 욕실로 들어갔다. 공작의 침실에 딸려 있는 욕실은 그 침실 못지않게 넓었다.

중앙에는 반원형의 커다란 욕조가 놓여 있고, 세면대와 거울이 있는 공간과 마사지를 위한 침대,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와 샤워실, 탈의실 등등의 공간이 반시계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미카엘은 로제타를 의자 위에 내려놓고 제 옷부터 훌훌 벗어 버렸다. 속옷과 신발까지 벗어 던진 그는 드레스를 벗고 있는 로제타를 도왔다. 드레스며 코르셋의 매듭을 풀고, 그 안에서 불쑥 로제타를 안아 든 미카엘은 발로 드레스 뭉치를 밀어내고, 한 손으로 로제타의 속치마며 남은 속옷을 급하게 벗겨 버렸다.

로제타를 알몸으로 만들어 버린 미카엘은 그녀를 안고 샤워실로 향했다. 놀랍게도 이 공작저의 욕실에는 샤워실이 있었다.

현대의 것과 같은 형태는 아니고, 고정된 곳에서 물이 쏟아지는 형태였다.

미카엘은 마음이 급했으나 로제타의 머리부터 감겨 주겠다고 청했다. 로제타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다. 서로의 머리를 감겨 주는 것은 다소 성가시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지만, 참았다. 로제타가 제 머리를 감겨 주는 느낌이 꽤 괜찮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곳도 서로 씻어 주기로 할래요?"

긴 머리를 말리는 것은 나중의 일이라, 일단은 끈으로 묶어 고정한 로제타가 물었다. 미카엘은 그 말에 꿀꺽 침을 삼켰지만 안 될 일이었다.

로제타가 자신의 몸을 만지기 시작하면 참을 자신이 없었다.

"일단 샤워부터…."

미카엘은 말을 회피하고 물부터 틀었다. 적당히 따스한 물이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몸이 적당히 물에 젖은 듯싶자 미카엘은 얼른 로제타를 끌어안았다. 뒤에서 끌어안은 형태라 로제타는 미카엘을 만지기 어려운 자세였다.

"아…. 미카엘 님…."

"미안해요, 로제타. 참을 수 없어서…. 지금은 제가 만지게 해 주십시오."

"앗!"

양손으로 유방을 쥐고는 크게 주무르는 손길에 감미로운 자극이 퍼져 나갔다. 이제는 가슴을 조금 만져지는 것으로 느낄 만큼 미카엘이 좋아졌기에, 로제타는 몸을 꼬았다. 마음이 급했던 미카엘은 성급하게 로제타의 다리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다.

"로제타…. 무릎을…."

"아앙, 응…."

얼굴을 붉히며 다리를 벌리자 미카엘의 길고 우아한 손가락이 물에 젖은 점막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다리를 움찔거리며 그 애무를 견디던 로제타는 신음을 흘리며 다리를 오므렸다.

"하읏, 미카엘 님…. 서 있을 수가…."

"로제타, 나한테 기대요."

돌아선 로제타가 미카엘의 품에 안기자 그가 스윽 로제타의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다시금 다리 사이로 손을 뻗었다. 물에 젖은 틈새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더니 안쪽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으흣…. 힉!"

파고든 손가락이 평소보다 야릇하게 느껴졌다. 질척이며 내부를 괴롭히는 손끝은 어젯밤과 크게 다를 바 없건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속살은 다르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아…. 기분 좋아.'

고작 손가락 하나가 들어와 안을 헤집는데도 그러했다. 미카엘은 찌걱이는 소리를 내며 로제타의 속살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로제타는 입술을 떨며 미카엘의 가슴에 달라붙었다.

"로제타, 키스해 준다고 했잖아요."

나른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미카엘이 고개를 숙였다. 로제타또한 그에게 입 맞추려 바르르 떨면서도 고개를 들었다.

"히윽! 읍…."

입을 맞추려는 순간 두 개째의 손가락이 들어오며 로제타의 약한 곳을 긁어내렸다. 파르르 떨며 신음하는 입술을 집어삼킨 것은 미카엘이었다. 혀가 파고들어 오며 아래쪽과 마찬가지로 집요하게 안을 헤집기 시작했다.

"흡, 읏! 으응…."

이상한 느낌에 로제타가 가늘게 경련했으나 미카엘은 단단한 팔로 끌어안고, 도리어 손가락 개수를 하나 더 늘렸다. 역시나 평소보다 민감하게 느껴지는 것에 안이 흘러넘쳐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히익! 읏, 아앗…."

약한 곳만을 집요하게 문질러대는 손길에 로제타가 허리를 젖히며 도달했다. 바르르 떨며 경련하는 로제타의 모습에 미카엘은 마른침을 삼켰다. 안이 수축하며 그의 손가락을 조이는 감촉까지도 그를 미치게 하는 것 같았다.

"하아…. 응……."

이내 미카엘이 로제타의 입술을 놓아주고 안을 괴롭히던 손가락마저 뽑았다. 절정을 맛본 여운으로 멍해져 있는 로제타를 미카엘은 다시 돌려세웠다.

"침실로 돌아가기 전에 한 번 정도는 괜찮겠지요?"

파르르 떨며 한숨을 몰아쉬고 있던 로제타는 그 물음에도 그저 듣기만 했다. 요즘 들어 미카엘의 손길에 한번 가고 나면 여운이 오래 남았다.

미카엘이 로제타의 뺨에 입 맞추며 대답을 기다리듯 페니스로 흠뻑 젖은 입구 부근을 문질렀다. 음란한 자극에 신음하던 로제타는, 그것을 가지고 싶은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아아아아아, 앗!"

꽤 오래 기다리고 있었는지 말을 마치자마자 파고들어 왔다. 뿌리까지 완전히 박혀 들기 무섭게 달라붙어 오는 속살의 감촉에 미카엘은 숨을 삼켰다.

"아아아…… 아!"

촉촉하게 젖은 속살이 제 것을 뜨겁게 감싸는 느낌에, 미카엘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흔들었다. 페니스가 크게 꿈틀대며 안을 벌리는 느낌에 로제타는 순간 멍해졌다.

'히익!'

가볍게지만 순간적으로 간 것 같았다. 배 속까지 전해지는 진동에 주춤할 찰나 로제타의 엉덩이를 잡은 미카엘이 움직였다. 뜨겁고 커다란 페니스가 오물거리는 속살을 비비며 빠져나가는 느낌에 얼굴에 열이 올랐다.

"아학…. 으…. 아아앗!"

강하게 밀어붙이는 페니스에 안이 크게 벌어졌다. 내부를 빠듯하게 채우는 음탕한 열기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달라붙어 오는 질벽에 미카엘이 허리를 뺐다.

"아흐흐…. 앗! 아아……!"

소실감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차오르는 타액을 삼키며 그것을 견디려는 순간 미카엘이 한계까지 뽑았던 것을 단번에 밀어붙였다.

"아아아!"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며 허리가 튀어 올랐다. 로제타는 다시 절정에 이른 것을 알았으나 입술을 떨면서 그저 느낄 뿐이었다. 흉포하게 달아오른 페니스가 제 자리라는 듯이 파고들며 연이어 찔러 들기 시작하자 눈앞으로 불꽃이 튀는 듯했다.

"아! 아아…. 아학, 아앙…. 읍, 응읏! 아앗……."

안이 술렁이며 미카엘의 페니스에 달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로제타는 미카엘이 움직이는 대로 흔들리며 신음을 흘렸다. 마치 쾌락 덩어리가 배 속을 가득 메우고 그녀를 탐하는 것만 같았다. 한번 밀고 꽂을 때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느끼게 되어 버린다.

'아…. 또 갈 것 같아…….'

절정과 절정 사이의 간격이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미카엘과 관계할 때마다 좁혀지는 간격에 로제타는 불안해졌다. 이러다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쾌락을 탐닉하게 될 것 같았다. 전보다 미카엘이 더 좋아져서 흉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은데….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흐아, 아하아아앙!!"

몇 번째일지 모를 절정에 이르며 로제타가 축 늘어지자 그에 맞춰 절정을 맛본 미카엘이 그녀의 안에 사정했다. 뜨겁게 쏘아진 음란한 액체가 결합부를 타고 주르륵 흘렀다.

"하아, 아아……. 으응…."

휘청이는 로제타를 단단히 끌어안으며 미카엘은 그녀의 어깨에 입술을 가져갔다. 수십 번은 절정을 맛본 터라 약간의 스킨십에도 몸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욕조로 가서 다시 할까요? 아니면 침실에서?"

미카엘의 속삭임에 로제타는 힐끗 욕실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둥근 욕조를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장미 꽃잎이 띄워진 목욕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거기서 한껏 즐기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 될 테지만, 로제타는 좀 더 편안한 곳에서 미카엘에게 안기고 싶었다.

'몸이 너무 예민해져서….'

"치, 침실에…. 서……. 으응…."

로제타의 움찔거리는 몸을 만지작거리던 미카엘은 수긍했다. 오늘따라 한층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로제타에게 욕조보다는 침대 쪽이 그를 받아들이기 수월할 터였다.

"알겠습니다."

말하며 미카엘이 로제타의 안에서 페니스를 뽑았다. 주르륵 쏟아지는 정액의 감촉에 로제타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미카엘의 잔재이기는 했으나 어쩐지 그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미카엘은 아랑곳없이 로제타를 안아 올리고는 곧바로 욕실을 가로질렀다.

"하아아……."

아직도 절정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나른하고 달콤한 쾌락에 이대로 잠들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미카엘에게 더 안겨 즐거움을 맛보고 싶기도 했다.

침실은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다. 창문은 모두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고, 침대 주변에 등불 하나만이 밝혀져 있었다.

미카엘은 로제타를 침대 한가운데에 눕히고 그녀의 다리를 벌렸다.

"으응, 하으아아앙!"

곧바로 파고들어 오는 페니스에 로제타는 몸을 떨며 신음을 흘렸다. 제대로 물기를 닦지 않고 침대에 누웠지만 둘 모두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두 사람의 체액으로 엉망이 되어 버릴 것임을 알고 있었다.

로제타가 팔을 뻗어 미카엘의 목을 끌어안았다. 매달리는 듯한 그 손길에 미카엘은 더운 숨결을 토해 내며 그녀에게 입 맞췄다. 혀가 뒤섞이고 끈적한 소리가 울렸다.

서로에게 느끼는 쾌락이 큰 만큼 그들은 떨어지지 않고 서로를 맛보았다.

로제타도 미카엘이 저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미카엘 또한 로제타가 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사실이 기껍고 황홀했다.

사랑하는 이가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사랑은 시작하는 것도 이루는 것도 어려운 법이었다.

미카엘도 로제타도 이것을 알았다. 알기에 서로가 더 소중하고 애틋했다.

"하아…. 로제타……."

입술을 떼며 미카엘이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해지는 열기와 관능적인 쾌락에 로제타는 황홀한 듯 신음했다. 지금 이 순간이 무서울 정도로 행복했다.

'빼앗기기 싫어….'

왜 언젠가는빼앗길지도 모른다는생각을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아직 미카엘을 포기하지 않은 아이리스 때문에?

'미카엘은 남자주인공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아이리스에게 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주인공이라 해도 뭐든 가져야 하는것은 아니잖은가! 세상 전부가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손가락질했을 때, 그녀를 돌아봐 준 것은 미카엘 하나뿐이었다.

"사랑해요, 로제타…."

격렬하게 허리를 움직이며 속삭이는미카엘의 말에 로제타는눈물을 흘렸다. 이것이 지나치게 느껴 생리적으로 흘린 눈물인 건지, 기뻐서 흘리는것인지 로제타 본인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열락에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아아, 아앙…. 나도! 나도 사랑해요……. 아아앗!"

흥분한 미카엘이 로제타의 가느다란 몸을 끌어안고 좌우 아래위로 허리를 썼다. 약한 곳을 사정없이 공략하는미카엘의 허릿짓에 로제타는엉덩이를 튕기며 신음했다.

"흐아앙! 좋아, 아앗! 아아아앙, 아앙!"

"아…. 로제타……."

쫀득거리며 달라붙는속살이 한층 그를 황홀하게 조여 왔다. 미카엘은 로제타의 절정이 가까워졌음을 눈치채고, 한층 깊이 허리를 묻었다. 선단이 가장 깊은 곳을 농락하는느낌에 로제타는고개를 흔들며 몸부림쳤다.

"응앗! 앗! 아아아…. 아흐흑! 아흑…. 거기 그만……. 흐앗!"

"여기, 좋아하면서……. 으음…. 멈, 춰 주지……. 않을 거예요."

귀여운 로제타.

"그렇게 기분 좋다는듯이 조이면서…. 멈출 수 있을 리……. 으흣!"

단정한 얼굴 위로 떠오른 쾌락의 표정에 로제타는미카엘의 목을 끌어안고 그에게 입 맞췄다. 바들바들 떨리는다리를 들어 그의 허리를 조이면, 그가 더 흥분한다는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하아, 로제…. 로제타……."

이성을 잃고 제게 매달려 오는미카엘의 페니스를 받아들이며 로제타는활처럼 몸을 젖혔다. 벌써 절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패트릭은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들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미친 짓이라는것은 알지만 로제타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미카엘 황자와 같이 침실에 있을 텐데.'

낮은 확률이지만 바람을 쐬러 발코니로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패트릭은 막연한 기대를 품고 침실에서 나왔다. 옆방의 제럴드는그의 기척을 읽어 내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이런 시간까지 그를 감시하는게 의미 없다고 본 것인지 따라 나오지 않았다. 안도하며 패트릭은 계단을 내려갔다.

북쪽 성을 나와 본성으로 향한 패트릭이지만, 본성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북쪽 성도 그러했지만 본성은 야간에도 지키는병사들이 있었다.

이자벨의 일이 있으니 병사나 기사의 충원은 당연한 일이었다. 패트릭은 마주친 병사들에게 낮에 떨어트린 물건이 있어서 그런다며 변명을 하고는정원으로 향했다.

'이 방향이면…. 로제타의 침실이 보일 거다.'

공작부인의 침실은 불이 꺼져 있었다. 두 사람은 겉으로 사이좋은 부부를 연기하고 있으니, 혹시 불이 밝혀져 있더라도 공작의 방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역시나였다.

'희미하지만 불이 밝혀져 있다.'

지금 이 시간까지 잠들지 못하고 있는것이다. 미카엘일 수도 있지만 로제타일지도 모른다는생각에 패트릭의 가슴은 세차게 뛰었다.

***

아…. 좀 지나치게 해 버린 것 같다.

미카엘은 파르르 떨고 있는로제타의 나신을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마지막까지 느끼게 한 것은 맞지만, 로제타의 사랑한다는말에 이성을 잃고 그녀를 탐해 버렸다. 물기는물론 그들의 체액으로 엉망이 되어 버린 침대 시트를 돌아보며 여기서 자는건 불편하겠다는생각을 했다.

"…부인의 방에서 잘까요?"

아직도 뾰족하게 서 있는로제타의 꽃눈을 만지작거리며 속삭이자 로제타가 신음이 뒤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앙, 응…. 좋아……. 요, 아흐응! 거기 그만…."

꽃눈을 아래위로 부드럽게 흔들다가 꽃술을 주무르고 움찔움찔 수축하는젖은 입구까지 만지작거렸다. 다리를 오므리며 몸을 꼬는로제타에 미카엘은 벌이라는듯이 손가락을 밀어 넣어 가득 차 있는정액을 긁어내렸다.

"하으읏! 아앗!"

"로제타의 침대까지 적셔 버리면 곤란하잖습니까? 그러니…."

속살의 씰룩이는부분을 손끝으로 자극하며 미카엘이 속살거렸다. 로제타는헐떡이며 안을 달콤하게 괴롭히는미카엘의 손가락에 버둥거렸다.

"으으응, 더는…. 제발……. 더 가 버리, 면…. 아흑……. 으음…."

"로제타의 아랫입은 다른 말을 하는데요?"

그가 삽입된 두 개의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미카엘의 말대로 로제타의 속살은 그의 손가락을 놓기 싫다는듯이 조이고 있었다. 확 붉어진 로제타가 허리를 꼬며 부인했다.

"아앙, 그건 미카엘, 님이…. 아흐흑!"

"제가 어떻게 했는데요?"

로제타의 몸을 끌어안고 있던 손까지 내려 꽃술을 괴롭히며 미카엘이 물었다. 꽃눈을 비벼대는능란한 손길에 로제타는흐느끼며 시트를 움켜쥐었다.

"하응! 으흐응, 아앙…. 거기……. 그만…. 아!"

"아, 이런…."

오늘 밤에야말로 페니스가 힘을 잃을 때까지 했을 것이다. 로제타의 몸을 조금 만진 것만으로도 다시 힘을 되찾은 그것에 미카엘은 잠시 망설였다.

"후아, 으…. 아앗! 아아앙……."

바르르 떨며 도달해 버린 로제타의 몸이 가라앉았다. 엎드린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로제타의 모습에 미카엘은 마른침을 삼켰다.

"…부인의 침실로 가기 전에 미리 빼는게 좋겠지요. 로제타의 안에 제가 사정한 것이 고였을 테니…. 빼 드리겠습니다."

"무…. 슨……. 아아아앗!"

엉덩이가 들리는듯싶더니 손가락과는비교도 되지 않는것이 파고들어 왔다. 미카엘의 것이 드디어 힘을 잃는것을 보았었으므로, 로제타는기겁했다.

"흐아앙! 왜, 벌써…. 아앗! 반칙…. 아! 아앙, 읏……."

"이렇게 하면 정액을 긁어낼 수 있을 테니…. 흐읏……. 로제타…. 조이면……. 아…."

"아흣! 거기 찌르지…. 아아아……!"

안의 정액을 긁어내기 위한 것이라면 왜 꽃술을 만지작거린단 말인가! 로제타는앞뒤로 흔들리며 시트에 손톱을 세웠다. 그가 말한 대로 페니스의 선단이 안을 긁어대고 있었지만, 이게 정액을 도로 밀어 넣는것인지 빼는것인지 알 수 없었다.

"흣, 읏! 응, 으응…."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것은 미카엘이 그녀를 기분 좋게 한다는것이었다. 로제타는시트에 뺨을 댄 채로 신음했다.

"응, 앙, 아앙…."

"아…. 로제타……. 다시…. 다시 말해 줘요. 아까…."

"아……? 으응…."

미카엘이 말하는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로제타는응, 이라고 했다. 미카엘은 로제타의 엉덩이를 잡아당겨 더욱 깊숙이 묻으며 선단이 그녀의 가장 깊은 곳을 헤집는느낌을 즐겼다.

"아아아……!"

민감한 곳이 파헤쳐져 고개를 젖히는로제타의 모습에, 미카엘의 입가에 신음이 걸렸다.

"허억…. 사랑, 한다고……. 으읏…."

"앙…. 응……, 사랑…. 해…. 앗……!"

허리를 세운 미카엘의 피스톤질이 빨라졌다. 로제타는시트를 움켜쥐며 허리에 힘을 줬다. 반사적으로 미카엘의 페니스를 조였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거였다.

"사랑, 해……. 사랑…. 으응……!"

"큭…. 나도 사랑, 해요……. 아아…. 로제타……."

자신의 고백에 속살이 한층 그의 페니스에 달라붙는느낌이 들어 미카엘은 감격했다. 뒤덮듯 로제타를 끌어안고 미카엘은 몇 번이고 사랑을 속삭이며 허릿짓을 했다. 신음과 고백이 뒤섞인 목소리에 로제타는전율을 느꼈다.

"아아, 흐으…. 아흐아아앙!"

오래간만에 동시에 절정을 맛보았지만 미카엘의 페니스는아직이었다. 안이 바르르 떨릴 만큼 사정했으면서도 여전히 크고 뜨거웠다.

"아…. 로제타……. 더 사랑해 줄게요."

그의 목소리가 좋은지, 그가 하는말이 좋은지…, 아니면 계속되는이 음탕한 쾌락이 좋은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로제타는그저 미카엘의 팔과 맞닿은 피부로 전해지는온기가 좋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자 깊이 몸을 숙인 미카엘이 입술을 포갰다. 다소 무리한 자세이기는했어도 끈적하게 혀가 얽혔다.

"음, 아앙! 으응…."

"이 정도로는…. 잠시만……."

페니스가 쑥 빠져나가 로제타는당황했다. 미카엘의 열기를 더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카엘은 곧바로 로제타의 몸을 뒤집더니 다시 삽입했다.

"이렇게 하면…. 더 키스할 수 있으니까, 으음…."

말을 끝맺기도 전에 포개지는로제타의 입술에 미카엘의 녹색 눈동자가 황홀하게 달아올랐다. 미카엘은 진득하게 키스하며 로제타를 일으켜 제 위에 앉혔다.

"음응, 아앙…. 아앗!"

가볍게 흔들듯 이어지는피스톤질에 로제타는신음하며 미카엘의 몸에 매달렸다. 미카엘은 제 페니스가 한층 달아오르는것을 느끼며 로제타를 부둥켜안았다.

밤은 깊었지만 새벽까지는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더 사랑해 주리라는생각에 미카엘은 그녀의 전신을 애무하며 키스를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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