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토끼 앞에는 사자가 버티고 있다
물과 피가 섞인 액체가 후드득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자벨이채찍질을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집행관들은 지체 없이찬물을 끼얹었다. 정신을 차린 이자벨에게는 연이은 채찍질이가해졌다.
27번.
더하지도빼지도않은 숫자였다.
고문관이채찍을 휘두르는 동안 집행관이큰 소리로 숫자를 세고 있었으니, 집행에 문제가 생겼을 리 없었다.
이자벨의 사지를 결박했던 끈을 풀자 그녀의 몸이늘어졌다. 병사들은 이자벨의 다리가 바닥에 끌리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그녀를 질질 끌고 갔다.
가련한 모습이었으나, 그것을 동정하는 이는 없었다. 그녀가 어린 귀족 영애는 물론이거니와 많은 평민들을 파멸시켰다는 소문이멀리 퍼져 나간 탓이었다.
그녀의 신형은 곧바로 타고 왔던 검은 마차에 밀어 넣어졌다. 치료를 받고 며칠은 안정을 취해야 할 상처였으나, 그녀는 바로 내일 출발하게 될 것이었다.
이자벨을 태운 마차가 출발하자 광장에 모인 이들도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가장먼저자리를 떠난 것은 귀족들이었고, 나머지는 평민들이었다.
'드디어 끝났군.'
아무 문제 없이형이집행된 것에 안도하며 제럴드는 돌아섰다. 카룰리아스가에는 사병이있으니 그들 중 일부라도이자벨을 구하려 나타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걱정은 기우였다.
카룰리아스 공작이연금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황제가 일찌감치 카룰리아스 공작가의 사병들을 흡수한 것인지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형을 집행하기 전에 이자벨에게 썩은 음식 따위를 던지려던 평민들이약간의 소란을 일으켰을 뿐이다.
아직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오늘 일은 카룰리아스 가문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 주었다고는 해도목숨이걸린 일은 아니었기에.
내일 이자벨을 호송하는 도중 그녀를 탈취하려는 세력이있을 수 있었다.
이때문에 제럴드는 이자벨을 호송하는 일에 자원하려 했으나, 백작 부부가 말렸다. 이자벨이향하는 곳은 가는 것만 해도열흘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기사인 그에게는 할 만한 일이라 생각되었으나, 양부모님의 눈에는 탐탁지 않게 여겨진 모양이었다.
'제럴드, 그 일은 폐하께서 임명하신 자가 맡아서 할 거란다. 카룰리아스 영애가 뒤에서 일을 지시했다고는 하나…, 가담했던 영애들의 소송이남아 있지 않니?'
'그래. 너라도우리 곁에 있어 주어야지. 저들의 무도함을 봐라. 내가 일로 바쁜 이때, 너라도어머니 곁에 있어 주어야지….'
셀리나와 엔디미온이번갈아 하는 말에 제럴드는 결국 굴복당하고 말았다.
휘르센 가문에 접근하지 말라는 황제의 명이떨어진 이후에도, 은근한 압력을 가하고 있는 가문이많았다. 예민한 셀리나는 그 때문에 신경증이도질 것 같다며 의원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실정이었다.
'불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당장은 어머니나 아버지 곁을 지키며 힘이되어 드리는 것이우선이었다. 로제타에게는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생겨 버렸으니, 로제타 대신 양부모님께라도잘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하는 제럴드였다.
'그러고 보니…, 란스필드 영식을 보지 못했군.'
아이리스가 형장에 나오지 않은 것은 짐작한 바였다. 동정심이많고 마음이약한 그녀에게 이런 장면은 좋지 못할 것이니, 로건이나 패트릭이나서서 말렸을 것이다. 그러나 로건이나 패트릭 중 누군가는 나와서 확인해 보는 것이맞았다.
'아니면 심부름꾼을 보내서 형이제대로 집행됐는지 확인했을지도모르겠어.'
로건은 공작가의 둘째고, 패트릭은 유서 깊은 가문이었다. 둘 다, 이런 형 집행을 구경하러 나오는 것은 천박하다 여기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휘르센 경."
후다닥 달려오는 어린 소년의 모습에 제럴드는 의아한 낯을 했다. 그가 아는 이였다. 리온 남작가에서 일하는 소년이었다.
"너는…. 심부름을 나왔느냐?"
"네. 이것을…."
소년이제럴드 앞으로 다가와 편지를 내밀었다. 제럴드가 받아 들자 소년은 꾸벅 인사를 하고는 도도도달려가 버렸다.
제럴드는 얼른 편지를 뜯어 보았다.
[…얼굴을 뵙고 소식을 전하는 것이예의인 줄은 압니다만, 제가 떠난다는 소식을 듣게 되신다면 틀림없이말리실 거라는 생각에 이렇게 편지로 씁니다.]
'떠난다고?'
당황한 제럴드의 손에 힘이들어갔다. 그는 빠르게 편지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동글동글한 귀여운 글씨체로 아이리스는 자신이아덴 공작령으로 부임되었으며 오늘 아침에 떠난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아침이라면!'
제럴드가 반사적으로 광장한쪽에 세워져 있는 시계탑을 보았다.
형이집행된 시간은 아침 11시였다. 마차에서 내려 형벌장에 이자벨을 묶는 등의 행위에 시간이걸려, 형을 집행하고 나니 11시 45분가량이되어 있었다.
'어디에서?!'
제럴드는 편지의 내용을 건너뛰고 출발하는 장소를 확인했다. 근처에 그가 세워 둔 말이맡겨져 있었다. 제럴드는 말을 맡아 준 이에게 동전을 던져 주고 급히 말에 올랐다.
'제발 늦지 않았기를!'
***
쪽….
여리고 민감한 피부 위로 부드러운 키스가 쏟아졌다. 늦은 아침 로제타가 어렴풋하게 잠이깬 것을 보고 욕실로 데려가 목욕을 시켰으니, 이제 거의 다 정신이돌아왔을 것이다. 미카엘의 음탕한 손길에 두 번이나 절정을 맛본 로제타였다.
'들키지는 않은 것 같군.'
요즘 로제타가 너무 느끼는 것 같아서 주문을 풀었다가 다시 걸었다. 3배로 더 느끼던 것을 2.5배로 줄였지만, 로제타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겉으로 보아도미카엘이로제타보다 그녀를 더 사랑함은 분명한 일인지라, 로제타의 쾌감이너무 높아진다 싶으면 주문을 다시 걸어야 했다. 이제까지는 로제타의 몸이민감해서 그런 것 같다며 둘러댔지만, 언제까지 통할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조심해야 해.'
아직은 주문에 대한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더…, 로제타가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될 때까지만이라도…, 이주문을 좀 더 유지하고 싶었다.
"응…."
미카엘의 손길과 키스가 기분 좋은지 로제타가 달콤한 한숨을 흘렸다. 미카엘은 그런 로제타의 허벅지를 쓸어 만지며 속삭였다.
"그동안 노력한 보람이있네요. 오늘 아침에는 그래도꽤 잘 참았어요."
그랬나? 미카엘의 감미로운 손길에 취한 채로 로제타는 기억을 더듬었다. 불과 몇 분 전의 일이었지만 미카엘의 손길에 그저흐느끼느라 자신이그런 줄도몰랐다.
'듣고 보니 그런 것도같고….'
정확히는 밤사이미카엘이주문을 다시 걸었기 때문이지만, 로제타가 그런 것까지 알 리가 없었다. 미카엘은 혹시라도로제타가 차이를 알아차렸을까 봐 이렇게 연막을 치고 있었다.
"노력하는 게 성과를 보이기도했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연습해 볼까요?"
"여, 연습이요?"
로제타가 놀라 미카엘을 보자 미카엘이부끄러운 듯 뺨을 물들였다.
"로제타에게 삽입하면 나도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리를 움직이니까…, 로제타에게 전혀 연습이되지 못하는 것 같아서요. 좀 더 느긋하게 느끼면서 참아 보면, 실전에서 더 잘 참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음…."
미카엘의 제의에 로제타는 고민했다. 그렇잖아도요즘 너무 느끼기 시작해서 고민하던 참이었다. 주문을 풀기는 해야겠는데, 느껴서 풀 수가 없으니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연습을 한다면 역시나 그걸 하겠다는 건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하루 종일 그것만 하게 될 것 같았다.
'하긴. 이제 와 새삼스럽지.'
최근 이자벨의 재판이있어 뜸하기는 했으나, 일주일 전만 해도낮에도자주 침실에서 시간을 보냈던 그들이었다. 밤에는 말할 것도없고.
점점 더 미카엘이좋아지고 있는데, 이대로라면 몸이버텨 내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저주를 풀기는 해야 했다.
"조, 좋아요. 그치만 너무 오래 하지는 말고 하루에 몇 시간씩만…."
"알겠습니다. 로제타의 체력도생각해야 하니까요."
미카엘은 웃으며 로제타의 허벅지를 만지던 손을 미끄러트려 그녀의 엉덩이를 가볍게 그러쥐었다. 그 손길도자극적인지라 로제타는 움찔 몸을 떨었다. 그저잡았을 뿐인데도기분이좋다니…. 제 감정이어디까지 자라났는지 모르겠다.
"내친 김에 당장할까요?"
"지, 지금요?"
"좀 더 한가한 시간에 하면 멈출 수 없을 것 같아서…. 괜찮겠지요?"
마침 둘 다 벗고 있으니 준비는 다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로제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미카엘은 로제타에게 엎드리라고 했다. 미카엘은 커다란 쿠션을 여러 개 가져와 로제타의 배 아래쪽에 밀어 넣었다.
엉덩이가 들린 묘한 자세에 힐끗 미카엘을 훔쳐보자니 그가 짓궂게 웃었다.
"일단…, 5분 동안 참는 걸 해 보겠습니다. 여러 번 시도할 테니 무리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즐기지는 마십시오."
"읏."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사실은 매일 밤 미카엘에게 안기는 것을 기다리게 되어 버렸으니, 부인할 말이없었다.
"으응…."
허벅지를 따라 엉덩이까지 올라오는 손길에 몸이가늘게 떨렸다. 이손길이주는 기쁨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카엘은 욕정 어린 시선으로 로제타의 나긋하고 고혹적인 몸을 훑어보았다. 지난 두 달여에 걸쳐 사랑해 준 몸은 몰라보게 요염해졌다. 엉덩이사이의 옴찔거리는 작은 구멍과 그 아래쪽으로 엿보이는 갈라진 틈새에 미카엘의 숨결이거칠어졌다.
욕실에서 달게 괴롭혀 주었기에 그곳은 여릿한 꿀을 흘리고 있었다. 두 번이나 즐거움을 맛본 몸이었다. 삽입하지 않고 손가락으로만 사랑해 주었기에 아직 부족할 것이다.
느긋하게 로제타의 엉덩이를 주무르던 미카엘은 손가락으로 로제타의 젖은 틈새를 벌렸다. 쿠션 위에 얌전히 엎드려 있었던 로제타가 당황한 듯 그를 돌아보았다.
"미, 미카엘 님!"
"매일 제 것을 밀어 넣는 곳이아닙니까? 어젯밤에도자지러질 때까지 귀여워해 드렸기에 어디 상처가 있을까 싶어…."
"부…, 부드럽게 해 주셨잖아요! 그러니 상처 같은 건…. 아앙! 더 벌리지 마세요!"
그 와중에도그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귀여웠다. 목소리에서 당황이그대로 묻어나는지라 미카엘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가지 못했다.
"안쪽까지 씰룩거리는 것이…, 먹음직스러워 보이네요. 핥아도되겠습니까?"
"아, 안 돼요! 그런 건 싫어……."
몇 번이나 핥아 준 적이있었지만, 매일은 아니었다. 아직 그와 같은 희롱은 익숙해지지 않았는지, 로제타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거절했다.
'흐음~.'
부끄러움에 울어 버리는 로제타도참을 수 없이귀여우니 그냥 저질러 버릴까, 싶었으나 아직 사랑받는 것이아님을 되새겼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그건 로제타가 이연습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의 벌로 남겨 두도록 하지요."
"버…."
벌이라니?! 그저 즐기는 것의 연장선이라 생각했던 로제타는 당황하며 미카엘을 보았다. 미카엘은 속내를 숨긴 채로 싱긋 웃었다. 다정하고 친절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벌이 있으면 연습에 더 집중하기 쉬우니까요. 벌이라고는 해도…, 로제타도 실컷 즐길 수 있는 것이고."
뻔뻔하고 음탕한 언변에 로제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그런 벌은 필요 없어요! 열심히 할 테니까…."
"네. 열심히 해서 참으시면 되는 겁니다. 식사 시간 전까지…, 열 번 정도 기회를 드릴 테니, 그중 한 번이라도 5분 이상만 견디면 벌은 없던 걸로 해 드릴 거니까요."
'5분….'
로제타는 미카엘에게 안기며 매번 즐거움을 맛보고 있었지만. 정확히 몇 분 만에 자신이 절정에 도달하는지 몰랐다. 생각하기로 5분은 충분히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2분도 못 넘기는 로제타이니…. 5분이면 충분하겠지.'
섹스 전에 열 번은 가게 할 생각을 하니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갈 것 같았다. 완전히 녹아버린 로제타는 미카엘이 삽입하는 것을 거절하지 않을 터였다. 마음이 약한 그녀는 혼자만 즐긴 것을 미안해할 테니.
"아…, 알았어요. 5분! 버텨 볼 테니까!"
"기대하겠습니다."
여유로운 미카엘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오기가 생겼다. 5분, 참아보이고 말겠어!
***
"아, 하앙! 아아앙!"
로제타는 자신의 몸이 이렇게 느끼기 쉬운 줄은 몰랐다. 미끈미끈하게 젖은 손가락으로 꽃술을 주물린 것만으로도 온몸으로 쾌락이 퍼져나갔다. 뾰족하게 솟은 꽃눈을 매만지고 손가락을 삽입하여 안을 파헤치자, 그녀의 몸은 놀랄 만큼 쉽게 도달해 버렸다.
"하으…. 아흑! 아앙……. 안 돼, 또…. 아아아아앗!"
절정을 맛본 로제타가 쿠션을 끌어안은 채로 부들부들 떨었다. 미카엘은 심술궂게도 도달하는 로제타의 꽃잎을 벌리며 안이 씰룩거리는 광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싫어어……. 보지…. 마…. 세요……. 으응……."
"그렇게 야하게 가 버려 놓고는 보지 말라니요."
"아흐흑!"
수축했다가 이완하는 순간을 노려 손가락을 밀어 넣은 미카엘이 그것을 밀고 꽂으며 로제타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이곳이 제 손가락을 오물거리는 것도 귀엽군요. 후후…. 벌써 아홉 번째예요. 로제타, 많이 기분 좋아요?"
"몰라……. 전부 미카엘 님 때문이에요. 그, 그렇게 기분 좋게 하는 게 어딨어. 아앙…."
"로제타의 이곳을 실컷 빨아주고 싶으니어쩔 수 없어요. 후훗, 이따가 로제타에게 듬뿍 벌을 줄 순간이 기대되네요."
사기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기대로 눈을 반짝이는 미카엘을 보니저항할 수 없었다. 거기다 누구에게 하소연을 한단 말인가!
'으으~, 왜 5분도 못 참는 거지?'
미카엘은 위의 모래가 아래 칸으로 다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 모래시계를 다시 뒤집었다. 로제타는 그것을 보고 엉덩이를 긴장시켰다.
"이제 마지막 한 번입니다, 로제타. 끝내고 나서 같이 샤워한 후에 아침을 먹도록 해요."
기분 좋아보이는 미카엘의 얼굴을 흘겨보며 로제타는 각오를 다졌다. 고작 5분일 뿐이니, 이번에는 참을 수 있을 것이다.
***
'어째서! 왜야!'
마지막 열 번째까지도 살뜰하게 느낀 로제타는 미카엘의 팔에 안겨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절정을 맛보는 로제타의 비부를 괴롭히며 즐긴 미카엘은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벌은…. 오후 중에 아무 때나받는 것으로 할까요? 제가 생각해 둔 장소가 있습니다."
하루 종일 안을 것 같다면서 아침부터 그걸 하자고 한 것과는 말이 달랐다! 그러나로제타는 굳이 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래 봐야 거길 빨리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어, 어딘데요?"
만약 야외라고 한다면 미카엘의 명치를 발로 차 줄 작정이었다.
"이따가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앗!"
안아올려져엉덩이가 떠 있는 로제타의 비부로 페니스가 뭉근하게 문질러졌다. 단단하고 뜨거운 그것의 형태에 로제타는 야릇한 입구가 욱신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로제타를 연습시키는 동안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다만…."
"아…. 미카엘 님……."
헐떡이는 로제타의 입술을 느리게 핥으며 미카엘이 초조한 눈을 했다.
"식사 시간까지 시간이 촉박하니…, 넣은 채로 씻겨 드리면 안 될까요? 격렬하게 움직이지는 않을 테니까…."
넣은 채로 샤워하자니, 그걸 할 수 있다고? 그러나선단이 축축해진 꽃잎을 문지르니까 로제타도 하고 싶어졌다. 손가락으로 아무리 몇 번이나느꼈다고는 해도, 안쪽 깊숙한 곳까지 채워지는 것과는 다른 법이다.
"으응, 그럼 조금만…."
"조금만, 입니까? 자신은 없지만…."
로제타를 욕실 바닥에 내려서게 한 미카엘이 그녀를 돌려세웠다. 엉덩이를 붙잡고는 느리게 삽입하는 것에 숨결이 거칠어졌다.
'아아……. 역시 좋아.'
미끈하게 파고들어 오는 커다란 것에 의해 안이 벌려졌다. 로제타는 뜨거운 것으로 안이 가득 차는 것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하아…. 이제 씻겨 드리겠습니다."
'이대로? 움직이지 않고?!'
이건 또 무슨 신종 괴롭힘이란 말인가. 미카엘은 한 팔로 로제타를 끌어안은 채로 비누를 집어 들었다. 거품을 가득 만들어 내어 맨손으로 피부를 문지르는 것에 로제타는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나도 미카엘을 만지고 싶은데.'
로제타가 만지기 시작하면 미카엘은 참지 못하고 허리를 움직일 것이다. 그러나이렇게 뒤에서 삽입된 채로는 미카엘이 좋을 대로 느끼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앙, 으응…."
머뭇거리는 사이 미카엘이 로제타의 가슴을 크게 그러쥐고 미끈미끈하게 주물렀다. 톡 튀어나온 유두를 엄지와 검지로 능숙하게 굴리자 저절로 허리가 움직였다.
"으흐응, 아앙…. 앙……. 미카엘 님…."
"하아…. 기분 좋아. 로제타……."
자극에 미카엘의 것을 조이자 그도 조금씩 허릿짓하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미끈거리는 것이 제 페니스에 착 달라붙어서 오물거리는 느낌에 미칠 것 같았다.
미카엘은 양손으로 로제타의 몸을 끌어안으며 그녀의 전신을 어루만졌다. 제 것을 물어 크게 벌어진 비부에도 손가락을 가져가자 로제타가 진저리를 치며 신음했다.
"귀여워요, 로제타……. 더 느껴…."
거품에 싸인 손가락이 꽃술을 주무르기 시작하자 로제타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졌다. 본디 미카엘의 손길을 감당하지 못하는 몸이었다.
"하우으…. 아으응!"
달콤한 자극에 몸을 꼬자 더는 참을 수 없는지 미카엘이 허릿짓을 했다. 엉덩이를 타고 흘러내린 거품이 페니스에 맺히면서 안쪽까지 흘러들자 더 야릇한 자극이 퍼져나갔다.
"아학! 앙!"
미카엘의 집요한 손길은 한시도 쉬지 않고 로제타의 쾌락을 자아내고 있었다. 로제타는 미끈거리는 거품에 감싸인 채로, 미카엘의 페니스를 받아들이며 몇 번이나절정을 맛보았다.
언제나와 같은 아침이었다.
***
수도의 북문으로 나왔지만 이미 신전의 행렬은 멀어지고 있었다. 작은 점처럼 벌어지는 행렬을 바라보며 제럴드는 아쉬움에 한숨을 쉬었다.
지금이라도 쫓아가면 인사는 할 수 있을 테지만, 그녀의 연인도 아닌 자신이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었다.
'왜 하필이면 오늘….'
이자벨이 채찍질형을 받는 날이 아니었다면 그도 집에 있었을 테고, 제시간에 아이리스의 편지를 받아보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늦지 않았을 텐데.
"지금 나타난 건가?"
말을 걸어온 것은 패트릭 란스필드였다. 미카엘 황자가 결혼했으니아이리스와 맺어질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기도 했다. 제럴드로서는 로제타의 일까지 더해서 만나고 싶지 않은 자이기도 했다.
"늦었군. 아이리스는 벌써 떠났다."
"알고 있네."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을 이용해서 로제타에게 접근할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더더욱.
그대로 돌아서는 제럴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패트릭이 입을 열었다.
"…아이리스가 발령된 곳은 알고 있나?"
아마도 편지에 쓰여 있겠지. 그러나제럴드는 오늘 떠난다는 말을 보자마자 제대로 읽지 못하고 달려온 참이었다.
"아덴 공작령이다."
패트릭의 말에 제럴드의 눈이 커졌다. 한순간 농담인 줄 알았으나패트릭의 복잡한 표정을 보아하니정말인 모양이었다. 제럴드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은 실망감을 맛보았다.
"자네들은 그걸 막지 않았단 말인가?"
"아이리스가 미카엘 황자에게 도움을 받은 것만은 사실이잖은가."
그렇다 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 행보였다. 미카엘을 돕고 싶다면, 그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라면, 더는 그 두 사람의 가까이로 접근하지 않는 것이 옳다.
"…납득할 수 없군."
더더군다나그녀는 평범한 영애가 아닌 성녀였다. 제럴드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아이리스답지 않았다.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 그만하지."
더 물어보려던 제럴드는 마음을 바꿨다. 그 이유를 알게 된다면 아이리스를 돕겠다면서 나서게 될 것 같아서였다.
그런 제럴드를 패트릭은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전이라면 경쟁자 중 하나가 나가떨어진 것을 기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지금의 아이리스는 무언가 잘못된 느낌이 들었다.
그녀 자체가 이상하다기보다는, 그녀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눈이 가리어 간과했던 부분을 알아버렸다.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이리스와 실제 아이리스의 행동에 차이가 나자 그는 혼란스러워졌다. 아이리스를 생각하는 마음은 여전했지만, 전처럼 뜨겁게 달아오르지는 못하는 듯했다.
"자네는 이제 아이리스 앞에 나타나지 않을 작정인가?"
패트릭의 질문에 제럴드는 입을 다물었다. 영원히 보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성녀였으니, 신전의 행사에 나오는 모습을 볼 수는 있으리라.
"…되도록이면 그럴 생각이다."
"아덴 공작부인의 일 때문이라면, 자네가 그럴 필요는 없을 텐데? 모든 사람들이 이자벨 카룰리아스에게 속았다."
"그리고 난 그 애의 오빠지. 자네들과는 입장이 달라."
제럴드는 그렇게까지만 말하고 등을 돌려 걸어갔다. 패트릭은 멀어지는 제럴드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로제타휘르센. 지금은 아덴 공작부인이었으나, 그녀만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직도 반감이 들기도 하고.
'역시 사과해야 하는 것인가?'
아이리스나로건을 따라 아덴 공작령으로 향한다면…, 결국 그녀와 부딪혀야만 했다. 지방 영주와 혼인한 것도 아니고 공작부인이 되었으니, 사과하지 않으면 내내 껄끄러울 것이다.
고위 귀족이 어울리는 무리는 의외로 좁았으니.
"젠장…."
미카엘을 떠올리며 패트릭은 혀를 찼다. 미카엘의 품에 안겨 있을 로제타를 생각하니왜인지 기분이 나빴다.
매우 만족한 표정의 미카엘을 보고 있자니 로제타는 어딘가 억울했다. 분명 실컷 즐긴 것도 맞고, 기분 좋은 것도 맞는데….
'왜 나만 창피해야 해!'
몸은 굉장히 만족스러웠지만 정신적으로 뭔가 데미지를 입은 기분이었다. 거기다가 오후에 미카엘이 준다는 벌도 받아야 하고.
'창피하지만 기분은 좋겠지.'
그건 알지만, 왜 손해 보는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사실 그건 벌이라고 할 것도 없는데. 벌이라면 그걸 하는 데 기대가 되지도 않고, 기다려지지도 않을 것이다.
미카엘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로제타를 끌어안은 채로 그녀의 뺨에 입술을 문질렀다. 그렇게하면 로제타가 살짝 뺨을 붉히며 이쪽을 흘겨본다는 것을 알아서였다.
'좋군….'
이리도 행복한 기분을 맛본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아니, 이런 행복을 맛보는 것은 처음인지도 몰랐다.
미카엘은 로제타의 손을 들어 그 손등에 입술을 눌렀다.
만족스러운 섹스를 하고 맛좋은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그러니 사랑스러운 부인께서는 기분이 좋으셔야 할 텐데, 어쩐지 심통이 난 얼굴이었다.
그 얼굴도 귀여워서 오싹오싹했지만, 역시나 기쁘게해 주고 싶었다.
"왜 토라졌습니까?"
"토라지지 않았어요."
대답하려 입술을 오물거리는 것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이렇게뭐든 예뻐 보이니 큰일이라고 생각하며 미카엘은 웃음을 흘렸다.
"그렇다면 어떻게해 드려야 제 부인께서 기분이 좋아지실까요?"
"…오후의 벌을 없었던 것으로 하면?"
로제타가 사랑스러운 갈색 눈을 반짝이며 말하자 미카엘이 씩 웃었다.
"안 됩니다."
"너무해."
"너무한 건 로제타지요. 이미 허락하신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하려 하시니."
미카엘은 삐죽거리는 로제타를 다시 품에 안고는 그녀의 뺨이며 입술에 가벼운 키스를 퍼부었다. 주변에 시녀나 시종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르는 척 거리를 벌릴 뿐이었다.
아덴 공작이 제 부인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모르는 하인이 없었다. 그들은 그래서 매사 조심하려고 노력했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미카엘보다 로제타에게말하고 싶어 했다.
하늘 같으신 황자 전하보다는 아덴 공작부인이 더 부드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만만히 볼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부탁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들어주었다.
"이제 일하러 가실 시간 아니에요?"
결혼한 지 두 달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공작으로서의 업무는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니었다. 신혼여행 기간 자리를 비우기도 했으니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여기에 입 맞춰 주지 않으면 일 안 할 겁니다."
제 입술을 두드리며 미카엘이 조르는 것에 로제타는 자신의 입술을 눌렀다. 미카엘이 얼른 로제타의 입술을 빨려고 들었으나 로제타가 물러났다.
"그걸로는 안 되지요. 이제 점심때까지 부인과 헤어져 있어야 하는데, 그리 냉정하게제게서 도망치시다니요."
도망친 적도 없고 헤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 저택 안에 있는데, 뭐가 헤어져 있는 거란말인가! 물론 저택이 지나치게넓기는 하다만.
"자꾸…."
로제타가 힐끗 멀리 떨어져 있는 시녀와 시종의 위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혀를 넣으시니까 그러는 거잖아요."
혀만 넣는 게아니었다. 로제타가 키스로도 민감하게느끼는 것을 알아서인지 로제타가 넋을 잃을 때까지 쪽쪽거리며 키스를 퍼부어댔다.
"그야…. 아래쪽에다 넣을 수는 없잖습니까."
로제타를 따라 목소리를 낮춘 미카엘의 말에 로제타의 눈이 커졌다. 반사적으로 미카엘의 팔을 꼬집었으나 그는 아야, 하고 말하면서도 웃는 얼굴이었다.
"키스해 줄 거죠, 로제타? 조금만 넣을게요."
거짓말.
절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로제타는 그가 밉지도, 심지어 얄밉지도 않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로제타가 망설이자 미카엘은 얼른 시종에게눈짓했다. 시녀들을 데리고 나가라고. 저들이 방 밖에 있다면 로제타가 결정을 내리기 수월해질 터였다.
눈치 빠른 시녀들이 소리도 없이 몸을 움직였다. 시종이 마지막으로 나가며 조용히 문을 닫자 로제타가 먼저 움직였다. 부드러운 입술이 제 뜨거운 입술 위에 포개지자 미카엘은 얼른 로제타의 허리부터 잡았다.
이러면 어디로든 도망가지 못할 테니까.
그러며 로제타의 부드러운 입술을 마음껏 빨았다. 고작 몇 시간 헤어져 있는 것뿐이었으나, 그 시간이 며칠이라도 되는 듯 괴로웠다.
'집무실로 데리고 들어갈까….'
로제타에게도 공작부인으로서의 업무가 있기는 했다. 아직 갓 결혼한 공작부인이니 좀 더 쉬기로 하고 업무를 배우지 않았을 뿐이다.
이자벨의 사건도 있고 여러 가지로 피로할 테니. 미카엘 본인도 매일 밤 로제타를 귀찮게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었다.
'미카엘. 네가 네 부인을 사랑하는 건 알겠다만. 적당히 귀찮게하지 않으면 미움받는다?'
나처럼.
알렉시스가 과거의 어두운 한때를 들먹이며 충고한 것을 한 귀로 흘리기는 했지만, 아주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구라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는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참아야겠지.'
혀를 조금만 넣겠다고 했는데…. 생각대로 안 되었다. 로제타의 입안을 맛보다가 그녀의 몸을 기울인 채로 허겁지겁 입 맞추고 말았다. 로제타의 눈이 몽롱하게풀리는 것을 보며 그녀의 입술을 맛보는 것은 다시없을 만큼 행복한 순간이었다.
"하아……. 로제타…."
끓어오르는 욕정에 미카엘은 간신히 키스를 끝냈다. 이대로면 로제타를 이곳에서 안게될지도 몰랐다. 로제타는 미카엘의 타액으로 젖은 입술을 달싹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부지런히 업무를 끝내고 돌아오겠습니다."
미카엘은 공작가의 어마어마한 일거리를 거의 오전 중에 끝내고 있었다. 부관의 반응으로 보아 대충 결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처리하는 듯하니, 놀랄 일이었다.
"무리하지 마세요."
굳이 일찍 올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한 거였지만, 미카엘은 다르게받아들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알겠습니다, 로제타."
기쁜 듯이 속삭이며 로제타의 뺨에 입 맞춘 미카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며 시선은 로제타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탁.
미카엘이 방을 나가고 로제타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진득한, 달콤한 감촉이 오래도록 입가에 맴돌았다.
***
'하아…. 겨우 여기까지 왔군.'
사돈의 팔촌까지, 가지고 있는 인맥이란인맥은 겨우 동원하여아덴 공작의 가신 가문에 찾아갈 수 있었다. 사촌이 써 준 소개장을 가지고 갑작스럽게찾아온 후작과 그 딸을 그들은 딱히 내치지 않았다. 탐탁지 않게쳐다보기만 했을 뿐.
"놀라지는 않는군."
"미르세 후작가가 처음은 아니라서요. 제 친우도 사돈의 팔촌의 친구인 사람이 딸까지 데리고 와서 손님으로 머물고 있습니다."
"……."
백작은 그의 사정을 딱하게생각하지는 않았다. 소개장을 써 준 사촌의 얼굴을 봐서 집으로 받아들였을 뿐. 어차피 그 가문의 문장을 달고 여기 루긴에서는 제대로 된 방도 잡을 수 없을 터였다.
'저 영애의 재판 날짜가 있을 테니 오래 머물지는 못하겠지.'
"머무시는 동안만이라도 편히 지내십시오."
어찌 되었든 그는 후작이었고 자신은 백작이었다. 카룰리아스가와는 달리 미르세 후작가는 이 일로 작위를 빼앗기거나 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 명예는 크게실추되겠지만.
"그…, 아덴 공작가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평안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 공작부인을 미카엘 황자가 아주 물고 빨고 하는 모양이었지만, 거기까지 가르쳐 줄 생각은 없었다.
후작은 그 말을 듣고 놀란모양이었다.
"이자벨 카룰리아스의 사건이 터졌는데도 그렇단 말인가?"
"그 악녀야 처벌을 받았고, 며칠 뒤에 귀양을 가지 않습니까? 무기징역이라 하니 다시 얼굴 볼 일도 없을 테고, 그 가문도 낯이 있다면 다시는 사교계에 발 들이지 않을 테지요."
카룰리아스는 단지 황족에서 쫓겨난 정도가 아니었다. 간신히 후작의 작위는 지켰다지만, 이전과 같은 위세를 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황제의 이름으로 황족으로서의 지위가 복권되지 않는 한은 힘든 일이었다.
"신혼이니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수도의 많은 귀족들이 미카엘이 사랑에 빠진 눈으로 로제타를 바라보는 것을 목격했지만, 아직도 그에 회의적인 귀족이 많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미카엘 황자인 것이다.
이유가 있거나, 뭐에 씌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로제타휘르센은 평범해도 너무 평범했으니까.
"사이가…, 좋으시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백작이 흐뭇한 얼굴로 긍정하자 미르세 후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판단하기로 미카엘의 결혼은 동정심에서 한 충동적인 것이었다. 그러니 지금쯤 그 결혼을 후회할 거라 여겼다. 로제타도 미카엘의 그런 눈치를 알아차렸을 거라 보았다.
타인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미움을 받게되면, 눈치는 빨라지기 마련이었다. 로제타도 그런 시간을 1년이나 보냈으니, 빠르게그런 기미를 알아차렸으리라.
그래서 미르세 후작은 로제타에게동정심 많은 착한 공작부인을 연기하지 않으면, 지금의 지위도 미카엘의 마음도 잃게될 거라고 압박을 가해 볼 작정이었다.
미르세 후작이 아는 로제타휘르센이라면, 그 정도의 속닥거림에 굴복하여그들의 서류에 사인해 줄 것 같았으니까.
실상 미르세 후작은 단 한 번도 로제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지만, 이제까지 들었던 풍문으로 그렇게판단했다.
어리석고 성급하고 지레 겁을 먹는 젊은 영애로.
'일단 방문하고 싶다고 편지를 보내야겠구나!'
자신의 지위가 현재의 로제타보다 못하기는 하지만, 그는 후작이었다. 로제타는 공작부인이 되었다지만 이전에는 백작가의 영애였고.
미르세 후작은 로제타가 자신의 편지를 받으면 거절하지 못하리라 여겼다. 수도에서부터 이렇게먼 길을 달려왔으니까!
"…각하. 미르세 후작으로부터 마님께 편지가 왔습니다."
집무실에서 한참 집중하고 있던 미카엘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누구라고?"
미카엘은 물론 미르세 후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간악하게도 로제타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워 놓고, 무도회장에서 로제타를 욕하고 비웃던 미르세 후작 영애의 낯짝을 기억하고 있는 탓이었다.
"미르세 후작입니다. 루긴에 도착한 모양입니다."
그들이 관문을 통과했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다. 다른 여러 귀족 가문들도 표면상으로는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혹은 친구를 방문하기 위해 온다고는 했으나 그목적이 무엇인지를 미카엘들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낯도 두껍지.
그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공작령의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로제타를 용에게 사로잡힌 가련한 영애로, 미카엘은 용을 쓰러트리고 그를 구해 낸 용감한 기사쯤으로 미화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로제타가 진상을 알았다면 민망하게 여겼을 망상이었다.
"…이리 줘."
내용을 읽고 싶었지만, 미카엘은 아내의 편지를 몰래 뜯어보는 몰상식한 짓은 할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사랑받고 있는 남편이라 할지라도 미움받을 짓이었으니까! 대신….
***
"로제타, 이거 미르세 후작이 부인께 보낸 편지인데, 제가 읽어 드려도 되겠습니까?"
'미르세 후작?'
아덴 공작령에서 유행한다는 통속소설을 읽고 있던 로제타는 갑자기 서재에 나타난 미카엘을 보고 놀랐다.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데…. 아!'
수도에서 도망쳐 한적한 소도시에서 살다 보니 잊고 있었다. 딱히 기억하고 싶을 만큼좋은 일로 얽힌 것도 아니었으니. 개미 콧구멍만큼의 친분도 없는 탓에 로제타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허락했다.
"읽어 보세요."
'한두 명이 그런 것도 아니니, 잊어버리게 되는 일도 있구나. 나한테 그런 순간이 왔어.'
그또한 미카엘 덕분에 누릴 수 있는 순간일 것이다.
이제는 누구도 로제타에게 그런 누명을 씌울 수 없을 테니까. 더는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주변을 경계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
제법 담담해진 로제타와는 달리 미카엘은 미간에 주름이 잡혀 있었다. 감히 이쪽에서 만나자는 말을 꺼낸 것도 아닌데, 제가 먼저 당당하게 편지를 보낸 것이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후작의 머리통을 열어 그안에 든 것을 확인해야겠군.'
속독으로 순식간에 편지 내용을 확인한 미카엘이 생각했다. 이건 로제타에게 읽어 줄 수가 없었다.
"왜 그러세요? 이상한 내용이라도 있어요?"
"음. 후작이 편지 봉투를 착각했던 모양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내려던 편지를 이쪽으로 보낸 것 같습니다. 알아차렸다면 지금쯤 매우 당황했겠지요."
어투는 정중했으나 아직도 로제타를 백작 영애로 보고 있다는 것이 선명히 드러나 보이는 내용이었다. 네가 언제까지 공작부인일 수 있을 것 같으냐, 나중을 생각하라는 둥의 내용이 미카엘의 신경을 긁었다.
이따위 편지로 말미암아 로제타가 조금이라도 불안해한다면, 후작의 목을 뜯어 버릴 작정이었다. 마수를 소환해서 진짜로 그렇게 할 생각이 있었다.
"그래요? 그쪽에서 결례를 한 것이니 편지를 돌려줄 필요는 없겠지요. 내용을 보지 말고 태워 버려야겠네요."
다행스럽게도 로제타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미카엘은 로제타의 시선이 책의 페이지로 넘어간 사이 입술을 비틀며 이를 악물었다.
그멍청이가 다른 편지를 보내기 전에 불러들여서 본보기를 보여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언제까지 로제타의 편지를 먼저 읽어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
감옥 안으로 보내는 것은 하급 포션이 한계였다. 그이상의 포션을 보내면 죄인의 신분에 걸맞지 않다는 이유로 모두 압수당했다. 그래서 이자벨의 등에 뿌려진 것도 하급 포션이었다.
'무능한 것!'
자신이었다면 간수를 매수해서라도 상급 포션을 보냈을 것이다. 그랬다면 자신이 이렇게 고통에 괴로워하지도, 이 상처가 흉터로 남을 일도 없었다.
실상 자신이 아닌 베아트리체가 감옥에 갇혔더라면 그렇게까지 신경 써 주지도 않았을 거였으면서 이자벨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의 등이 이렇게 찢긴 것은 카룰리아스 공작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으면서도 능력이 없는 제 아버지 탓이었고, 감옥에 갇힌 것은 주제넘게 나선 황비 탓이었으며, 미카엘을 로제타 같은 덜떨어진 계집에게 빼앗긴 것은….
'로제타! 로제타! 그멍청한 년이!'
아이리스 리온이라 해도 인정하지 못할 판국에, 로제타라니! 겨우 그런 계집에게 자신이 밀린다는 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자신은 이자벨 카룰리아스였다. 카룰리아스 공작가의 공녀!
'미카엘 황자에게 다른 계획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니라면 그런 신분도, 용모도, 능력도 안 되는 계집애에게 마음을 줄 리가….'
그러나 다년에 걸쳐 미카엘을 지켜봐 온 이자벨이기에 더 잘 알 수 있었다. 도저히 믿어지지는 않지만 미카엘은 로제타를 사랑하고 있었다.
리디아에게 가졌던 어렴풋한 동정심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진득한 감정이었다. 한 사내로서 여인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로제타를 원한다는 것은 그눈길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이제껏 그누구에게도 그런 눈길을 주지 않았던 미카엘이었다.
'누구도 사랑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리스도 아닌 로제타, 그계집애가 해냈다. 그어려운 일을 해내고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그의 곁에서 웃고 있었다.
그계집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던 미카엘의 표정이란.
참을 수 없이 아름다워서 이자벨은 제 눈을 뽑아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째서 저 계집애여야 했냐고 아우성칠 수도 없었다. 한 번도 자신에게는 여지조차 주지 않았던 이였다.
'미카엘이 나쁜 것이다! 로제타, 그것이 주제를 몰랐던 탓이다!'
이자벨은 용서할 수 없었다. 실상 그녀의 용서를 받아야 하는 이는 아무도 없고, 그녀가 용서를 빌어야 할 처지임에도 그러했다.
죽여야 하는데. 그계집애의 얼굴을 잔혹하게 짓이겨 놓고, 그녀의 마음을 받아 주지 않았던 미카엘의 눈앞에 들이밀어야 하는데, 이 손에 힘이 없었다. 언제 그녀의 손아귀에 다시 권력이 쥐어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로제타 그년만은 죽어야 한다!'
피눈물을 흘리고 싶은 심정으로 로제타를 죽일 방법만을 생각하는 이자벨의 귀로 묘한 소리가 잡혔다. 정확히는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뭐지?
귀가 먼 것은 아니었다. 그녀 스스로가 움직이며 내는 기척은 분명하게 귀에 들어왔으니, 청각은 멀쩡했다.
「…공녀님.」
탁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이자벨은 몸을 돌렸다. 분노로 흉하게 일그러져 있던 얼굴에 기이한 웃음이 번졌다.
"시릴."
간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릴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나 싶었다. 이자벨이 아는 시릴의 능력이라고는 강력한 마물을 소환하여 조종하는 것뿐이었다.
「내일 호송 마차가 수도 밖으로 나오면 구출해 드리겠습니다. 수도 인근에서는 경비대가 출동할 것이니…, 호송 마차가 수도에서 완전히 멀어질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그래! 그래, 시릴!"
이자벨은 먼저 로제타를 죽이라고 명령하고 싶었지만, 역시나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었다.
헉.
정신을 차리자 박쥐를 연상케 하는 작은 마물이 좁은 창살 틈에서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그마물을 통해 이자벨의 정신으로 말을 건 것이 분명했다.
잠시 깊은 꿈을 꾼 것 같았다.
마물은 빨갛고 작은 눈으로 잠시 이자벨을 쳐다보더니 등을 돌려 날아가 버렸다.
'내가 진짜 꿈을 꾼 건 아니겠지?'
아니어야 했다. 로제타 그년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
하인을 시켜 미르세 후작이 보낸 편지를 태우게 하고 미카엘은 곧바로 집무실로 돌아갔다. 미카엘이 직접 찾아올 만큼미르세 후작이 대단한 인물이었나? 하고 로제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원작의 내용에는 없는 설정이었다. 그러나 원작과 이 세계는 이미 너무도 달랐기에, 자신이 모르는 사이 미르세 후작이 중요한 인물로 떠올랐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잘 모르는 사람인데.'
휘르센 백작가와도 아무런 친분이 없는 이였다. 로제타와 미르세 후작가의 관계라고는 그집 딸이 일방적으로 해를 끼친 것밖에는 없었다.
'사과 편지가 아니었구나.'
이자벨의 재판이 끝났으니 다른 영애들의 수사가 재개되고 있을 것이다. 이자벨의 재판이 그렇게 빨리 열렸던 것은, 황제 일행이 펼쳤던 그작전 때문이었다.
그사건이 주는 무게가 있어 이자벨의 재판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졌을 뿐, 본래 고발과 재판까지는 여러 달의 시간이 걸렸다.
'나와 관련이 있으니 다른 재판도 비교적 빨리 시작되려나?'
신분제 사회가 그러하듯 라스탄 제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황족이 관련된 재판이 최우선으로 올려지고, 그다음이 고위 귀족이 연관된 사건이었다.
평민과 관련된 재판은, 그숫자가 많아서 재판정도 재판관도 다른 관리가 맡으므로 귀족의 재판과는 상관이 없었다.
'그영애는 어떻게 지내려나….'
모든 영애가 이자벨의 협박 편지를 받고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잠깐 거기에 몸을 담고 로제타에게 사과 편지를 보낸 영애도 있었다. 그영애는, 이름도 가문도 밝히지 않은 편지에서 거듭 미안하다고만 써 놓았었다.
명확히는 알 수 없었으나 짐작 가는 이가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로제타가 그랬다고 말을 거들던 아가씨였다. 차마 로제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던 사람.
이후 그녀가 사교계를 떠나 시골로 내려갔다는 소문을 접했으므로 그녀가 아닐까 하고 짐작하고 있었다.
'소환장을 받았을까?'
이자벨의 장부가 발견되었다고 하니 연루된 영애들은 모두 조사를 받을 것이다. 신분이 높은 경우는 수사관이 직접 찾아가지만, 신분이 낮으면 반대로 수도로 올라오라는 소환장을 받는다. 그녀는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로제타."
드디어 업무가 끝났는지 미카엘이 찾아왔다. 아까와는 다른 싱글벙글 웃는 얼굴에 로제타의 얼굴에도 미소가 어렸다.
"보여 주고 싶은 곳이 있다고 했었지요?"
아덴 공작가의 성이 워낙 넓고 방대한 탓에 로제타는 아직 모든 성을 돌아보지 못한 터였다. 미카엘은 로제타의 손을 잡고 방 밖으로 이끌었다.
"여긴…."
보여 주면서도미카엘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혹여 로제타가 그를 징그러워하면 어쩌나 하는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도그럴 것이, 여기는로제타의 방이니까.
공작부인의 침실이 아니라 휘르센가에 있는로제타의 방을거의 대부분 옮겨 와 만든 방이었다. 같은 구조를 가진 방을골라 똑같은 벽지를 바르고 등을달고, 휘르센 백작가에서 공수해 온 로제타의 가구를 배치했다.
물론 그 안의 짐은 로제타의 것인지라 가져오지는못했지만 말이다.
"이게…."
"로제타가 언젠가 친정을그리워하게 될지도모른다는생각이 들어 만든 방입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조금 소름 끼쳤다. 방을러브호텔풍으로다시 꾸몄다 싶었더니, 가구를 전부 아덴 공작가로보낸 거였냐! 싶기도하고.
"그…, 그럴 필요까지는…."
"수도에서 여기까지는그리 자주 오갈 수 있는거리가 아니니까요."
말은 그렇게 해도미카엘의 소환수를 이용하여 몇 시간 만에 오가는것을봤기에 신뢰가 가지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방은 원작의 로제타가 아닌, 지금의 로제타가 꾸민 방이었다. 빙의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 정령에게 먹튀당하고, 몸을빼앗겼다는분노에 로제타의 손길이 닿은 것이라면 뭐든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가구와 커튼, 옷까지 전부 버리고 죄다 새로꾸몄었다.
그래서 여기에 원작 로제타의 손길이 닿은 것은 없었다. 전부 지금의 로제타가 손수 고르고 사용하던 물건들뿐이었다.
"기분…, 상하셨습니까?"
미카엘은 조마조마한 기분으로로제타의 표정을살폈다. 사실 여기는미카엘만의 소중한 곳으로로제타에게도보여 줄까 말까 했던 곳이었다.
이 방에 있으면 결혼 전의 로제타를 만날 수 있을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온통 그녀에게 둘러싸인 듯한 느낌이 들어 좋았던 것이다.
그러나 미카엘은 여기서 로제타에게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기분 상했다기보다는조금 놀랐어요."
미카엘의 걱정과는달리 로제타는자신이 휘르센 백작가를 그리워하지 않을것임을알았다. 그곳은 겨우 1년도안 되는시간을보낸 장소였으니까. 곧바로이자벨의 음모에 휘말려 시골 도시로피신했으므로그다지 정이 들지도않은 곳이었다.
'이곳을이런 식으로다시 만나게 될 줄은….'
어떤 의미에서는휘르센 백작가에 남아 있던 마지막 남은 로제타의 것들을완전히 도려낸 것이라고도할 수 있었다.
완전한 단절.
이제 그곳에 내 흔적이란 아무것도남아 있지 않겠구나, 하는생각이 들었다.
"고마워요. 내 방이 그리워지면…, 여기 오면 되겠네요."
그런 일은 없을것 같지만. 로제타는뒷말을삼키며 그렇게 말했다. 미카엘의 음흉한 속내를 전혀 모르니 할 수 있는말이었다.
미카엘은 로제타가 변태를 보는눈으로자신을보지 않아서 안도했다. 그러나 다음 말을해야 했으므로아직 안심할 수는없었다. 로제타가 어떤 반응을보일까? 화를 낼까? 아니면 어이없다는반응을보일까?
"여기서 부인을안아도되겠습니까?"
"네?"
왜 하필 여기서? 라는물음이 눈에 보이는듯했다. 미카엘은 뺨을물들이며 로제타를 끌어안았다.
"저희는중매결혼이지 않습니까? 데이트도몇 번 해 보지 못했고…. 수도에서 제 본래의 신분으로만난 적도한 번도없었지요. 그러니 해 보고 싶었습니다."
애인 집에 와서 몰래 하는섹스…, 말입니다.
그제야 미카엘이 여기까지 데리고 온 이유를 깨달은 로제타는새빨갛게 물들었다. 아니, 그 생각으로이 많은 가구들을다 공수해 온 거라고?! 수도에서 루긴까지 거리가 얼마인데!
로제타는기가 막혔지만 미카엘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로제타의 흔적으로가득 찬 이곳에서 로제타를 안는것이야말로미카엘의 로망이었다. 이제까지는로제타가 변태 같다고 생각할까 봐 말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안 되겠습니까?"
"아, 안 될 건 없는데…."
아름다운 녹색 눈을가진 금발의 초절정 미남이 애처로운 얼굴로묻는말에 로제타의 마음은 휘청이고야 말았다. 그 내용이 수상쩍어도평소에 하는짓과 다를 바 없기에, 뭐가 잘못되었나 싶기도하고.
"그렇다면 벌칙까지 여기서 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되는건가요?
로제타는당황했지만 미카엘이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망설이다가 로제타가 거절할 수도있겠다고 판단한 듯싶었다.
방문이야 들어올 때 이미 닫아 놓았고, 시종이나 시녀는방 밖에서 대기하고 있게 했다. 요컨대 아무도방해하지 못하도록 언질을주었다.
미카엘은 슬쩍 방어 마법진까지 깔았다. 안의 소리가 바깥으로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더불어 마음대로방에 침입하지 못하는마법진이었다.
마법에 문외한인 로제타는미카엘이 뭘 하는지도눈치채지 못했다. 마법진을마무리한 미카엘은 로제타의 관자놀이에 입 맞췄다.
"잠깐 주문을걸었습니다. 소리가 밖으로새어 나가면 내 사랑스러운 부인께서 부끄러워하실 것 같아서요."
다정한 눈빛에 두 뺨이 달아올랐다. 로제타가 반쯤 눈을감자 허락의 뜻으로받아들인 미카엘이 점잖게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마치 사귄 지 얼마 되지 않는연인처럼.
로제타가 의심스럽게 쳐다보자 미카엘은 다시 입을맞추며 로제타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대로침대로자리를 옮겨 풀썩 그녀를 안은 채로쓰러지는것에, 로제타가 까르륵 웃음을터트렸다. 미카엘도키득거리며 웃었다.
달콤한 웃음소리가 서로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미카엘은 이 순간 정말 로제타의 연인이 된 기분에 두근거렸다. 여기서 로제타를 안아 보고 싶다는음흉한 속셈으로로제타를 데려온 것이지만, 지금은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좋았다.
이대로계속 로제타와 같이 있고 싶었다. 영원히 그녀를 사랑할 수만 있다면 무엇을주어도아깝지 않을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로제타, 사랑해요."
속삭이는말에 로제타의 얼굴이 기쁨으로달아오르는것이 보였다. 솔직하다면 솔직한 반응에 미카엘은 그녀를 부둥켜안고 입을맞췄다.
어느 때고 달지 않았던 때가 없었던 입술이었지만, 그때만큼은 온몸이 황홀하도록 달콤했다. 오래도록 그의 기억에 남을정도로.
***
미르세 후작은 전령이 가져온 메시지를 읽고 당황했다. 그것은 일방적인 통보였다. 내일공작저로오라는. 상대가 공작인지 공작부인인지도적혀 있지 않았다.
'당연히 로제타겠지!'
그가 부러 신경을박박 긁는말을넣어서 적어 놨으므로약이 바짝 올랐을터였다.
미카엘 황자와 결혼하여 공작부인이 되었다지만, 로제타는20대 초반의 어린 영애였다. 갓 결혼하였으니 그 미숙함이 어디 가지 않았을것이다. 그런 어린 귀부인 하나쯤 눈 감고도요리할 자신이 있었다.
'서류에 사인만 받으면 되는일이다! 그깟 계집애를 구슬려야 한다는사실이 거슬리지만…. 우리 가문의 미래를 위해서는할 수 없는일이지.'
우선 콱 겁을주고 그녀가 보잘것없다는것을각인시켜준 이후에 살살 달래 주어 사인을받으면 그만이었다.
하인들이 곁에 있을테지만, 고위 귀족들의 대화에 감히 끼어드는어리석은 놈은 없을터….
'혹 그것이 공작과 같이 나를 부른 것은 아니겠지?'
미르세 후작은 딸을데려오기는했으나, 이번 만남에는데려가지 않을작정이었다. 그의 딸은 미숙한 데다가 제 감정을잘 숨길 줄도몰랐다. 로제타를 설득시키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될 것이 분명했다.
딸을데려온 것은 만약을생각해서였다. 최악의 경우 정말로그 계집애에게 빌어서라도사인을받아 내야 했으므로.
'멍청한 것이 바로걸려들어 주는구나! 다행이야!'
미르세 후작은 그 메시지를 누가 보낸 것인지도모르고 낄낄거리며 웃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후작을보고 백작은 속으로혀를 찼다.
그냥 공작저 앞으로가서 싹싹 비는것이 좋을텐데. 저리도어리석어서야.
듣자 하니 그의 친우가 소유한 별장에 머무는귀족도저렇다고 했다. 수도의 귀족들이 보는미카엘 황자가 어떤 인물인지는모르나, 그들은 꽤 자신들의 주군을잘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제 주군은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데다가 비틀린 인간이었다. 로제타가 곁에 없을때는100% 그러했다. 그래서 아덴 공작가의 가신들은 모두 로제타를 좋아했다.
고슴도치 같은 성격이 밍크로바뀌었으니까. 지금도쌀쌀맞기는하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부드러워진 거였다.
'멍청한 건 나라님도못 구하는법이지.'
백작은 동방에서 들여왔다는녹차를 후룩 마시며 생각했다.
***
끌어안고 키스만 하다가 잠이 들었다. 서로쳐다보는것만으로도웃고 손끝에 입 맞추고 그러다가 잠들었던 것 같다.
정신을차렸을때는그 방이 아니라 원래의 침실에 누워 있었다. 잠옷으로갈아입혀진 것으로보아 미카엘의 솜씨라고 짐작되었다.
"깼습니까?"
다정한 목소리에 로제타는눈을떴다. 오후 내내 미카엘과 어울려 놀기만 했다. 방이 완전히 어두워진 것을보면 밤이 된 것 같았다.
"너무 행복하게 자는것 같아서 깨우지 않았습니다. 배는안 고파요?"
"배는안 고프지만 저녁은 먹을거예요!"
저녁을안 먹으면 한밤중에라도배가 고픈 법이었다. 미카엘과 사는이상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것은 매우 중요했다. 어쩐지 오늘 밤에 그런 건 안 할 것 같지만.
미카엘이 매우 고요하면서도따뜻한 얼굴로로제타를 보고 있었다. 그 방에서 보낸 시간이 미카엘에게도좋았던 모양이었다.
로제타는몰랐지만, 그 시간은 미카엘의 단단하게 굳어 있던 마음의 균열 하나를 스르르 사라지게 만드는것이었다.
"미카엘 님은요? 저녁 드셨어요?"
"저는내내 로제타 곁에 있었습니다."
정확히는그의 팔에서 행복하게 잠들어 있는로제타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보고 있기만 해도가슴이 따뜻해져서, 바라보는것만으로도좋았다.
"배고프지 않아요?"
자고로몸이 근육질이면 연비가 안 좋다고 했다. 미카엘은 마법사인 주제에 기사들을서럽게 만드는몸을가지고 있었으므로배가 고팠을것이 분명했다.
"배고팠지만 로제타하고 같이 먹고 싶었습니다."
미카엘이 반짝이는눈으로로제타를 바라보았다.
"야단치실 겁니까?"
"야단은 아니고…. 고마워할래요."
고마운 감정은 입술로표현해 달라는듯이 미카엘이 제법 거만한 표정으로제 입술을두드렸다. 로제타는피식거리며 그의 입술에 부드럽게 입 맞췄다. 늘 미카엘의 키스를 받기에 로제타도제법 키스를 잘할 줄 알게 되었다.
로제타가 고개를 들자 미카엘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얼굴로로제타를 보았다.
"저녁 조금 더 늦게 먹어도되겠습니까?"
당신이 더 급해졌어요…, 하고 속삭이는말에 로제타는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카룰리아스 영애."
여전히 욱신거리는 등에 이를 악물며 이자벨은 철창 밖으로나왔다. 익숙한 듯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간수를 따라 몇 개의 문을 빠져나오자 곧 감옥 건물 밖으로나올 수 있었다. 건물 앞에는 죄인을 호송하는 마차가세워져 있었다.
까맣게 칠이 되어진, 죄인이 탔다는 것을 알리는 마차.
2인용의 마차는 창문 하나에 문 하나만 달려 있었다. 이자벨은 치욕스러운 기분을 누르며 마차로향했다. 병사가마차 문을 연 채로대기하고 있었다.
마차는 마주 보는 좌석으로되어 있었다. 맞은편에는 간수가타서 이동하는 내내 이자벨을 감시하게 된다. 이번 호송을 담당하게 된 간수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죄수와 같이 마차를 타는 역할은 어떤 간수라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좁고 불편한 마차 안에서 죄수와 며칠씩 얼굴을 맞대는 것은 누구라도 원치 않을 것이다. 더더군다나 이번 죄수는 작위를 빼앗겼다고는 해도 후작가의 여식이었다.
간수들은 귀족가의 죄수를 호송하는 일을 특히 싫어했다. 그들의 신분이 떨어졌다고는 해도 간혹 어떤 계기로다시 복권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황권이 안정되어 있는 시대에는 드문 일이지만, 또 모를 일이었다.
"타시죠."
간수가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이자벨에게 자리를 권했다. 물론 말만 정중했을 뿐이지, 이자벨이 꾸물거리는 듯싶자 방망이로그녀의 등을 찔렀다.
"큭!"
상처가건드려진지라 하마터면 비명이 튀어나올 뻔했다. 홱 간수를 노려보았으나 간수는 어마, 실수, 라는 듯한 표정으로해죽 웃을 뿐이었다. 이자벨은 눈을 부라리면서도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마차에 올라탔다.
간수가아깝다는 얼굴로마차에 오르고 문이 닫혔다. 여자 죄수를 옮기는 것이기에, 간수도 당연히 여자였다.
법원의 제복을 입은 남자가마부석에 올랐다. 마차가이내 덜컹거리며 교도소의 대문을 빠져나갔다.
***
미르세 후작은 이른 아침부터 시종을 닦달하여 옷매무새를 살피고 있었다. 차림새에서부터 주눅이 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로제타는 이제 공작부인이 되어 화려한 드레스를 걸치고 나타날 것이다. 아덴 공작가의 부는 황실에서도 인정할 정도니. 황제가광산을 한두 개 줬어야지! 차림새에서부터 밀리면 절대 안 되었다.
'그런 단순한 것들은 옷차림새와 마차로눌러야 하는 법이다.'
제국 내에서 1, 2위를 다투는 부를 가진 아덴 공작가를 옷차림으로누를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미르세 후작은 자신이 있었다. 그래도 자신이 입어 주면 맵시가나는 편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중년 귀족들처럼 배가나온 것도 아니고 머리털도 풍성했다. 사냥으로다져진 몸은 자신이 보기에도 제법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타고 온 마차는 뒷바퀴의 축이 두 동강 나서 고치는 데만 두어 달이 걸릴 거라고 했다. 그러니 믿는 것은 수도 최고의 의상실에서 가져온 이 슈트와 자신의 몸뿐이었다.
"후작님, 더 조일까요?"
남성용 코르셋의 끈을 당기고 있던 시종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이미 배에 힘을 주고 있던 미르세 후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만 당겨! 숨은 쉬어야 할 거 아니냐!"
"알겠습니다…."
비록 보정 속옷에 의해 만들어진 몸이었지만, 결코 미카엘 황자에게 뒤지지….
'뒤질 수밖에 없지. 그 몸에는….'
빳빳하게 쳐들고 있던 미르세 후작의 고개가조용히 내려갔다. 대체 황자는 마법사인 주제에 어떻게 그런 몸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마법인가! 역시 그렇겠지?!
'불공평한 세상 같으니….'
억울함에 혀를 찼으나 미르세 후작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세상은 공정했다. 그 미모와 몸매와 부와 권력을 지니고도 결국 맞이한 아내가로제타 휘르센이지 않나. 황자는 많은 것을 가지는 대가로여자를 보는 눈은 갖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하필이면 로제타 휘르센이어서! 다른 여자도 많잖아!'
내 딸이라든가.
미르세 후작은 혀를 차며 셔츠와 재킷을 걸쳤다. 옷을 입고 나니 안에 남성용 코르셋을 걸친 것은 티도 나지 않았다.
"커흠."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숨을 쉬기 불편하지 않은지도 확인했다. 역시 약간 힘들었다.
'오래 앉아 있지는 못하겠군.'
그러나 로제타 앞에서는 태연한 표정을 유지해야 할 터였다. 거울 앞에서 자세를 잡던 미르세 후작은 단단한 결심을 한 얼굴로시종들을 돌아보았다.
"역시 구멍 하나는 풀어야겠다."
시종들은 즉시 움직였다.
***
백작가에서 마차를 빌려주는 것을 내켜 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내주었다. 그로서는 자신의 집에 미르세 후작을 머물게 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대놓고 광고하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미르세 후작은 후작으로서의 권력을 이용해 그의 마차를 얻어 타고 아덴 공작 성으로향했다.
'대체…, 정원이 어디까지 이어지는 거지?'
체통도 잊은 채로창문에 매달려 정원의 규모를 확인하는 사이 본성의 담장이 나타났다. 화려한 조각으로장식되어 있는 그것은 담장이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아름다웠다.
마차가저택 한쪽에 세워지고 오만한 얼굴의 시종이 나타났다. 감히 시종이면서 미르세 후작을 벌레를 보는 듯한 눈길로쳐다본 시종은 무표정한 얼굴로말했다.
"…시간보다늦게 오셨군요."
감히.
라는 말이 빠진 것 같다고 후작의 시종은 생각했다. 공작가의 시종은 시종일관 시종의 표본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나, 왜인지 눈길이며 표정이 고압적이었다.
가볍게 치뜨는 눈빛에서 '쓰레기'라는 단어가보이는 듯했다. 미르세 후작은 그저 불쾌하게만 느끼는 것 같았지만.
"따라오십시오."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공작가의 시종이 앞장섰다. 후작은 공작가의 시종에게 잔소리를 할까 말까 망설이며 그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공작가의 시종이라 해도 시종은 시종인 법이었다. 그에게 직접 하기 어렵다면 자신의 시종을 잡는 것으로그를 돌려서 비난하는 방법도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도리어 비웃음을 사는 방법이기는 했지만.
"이쪽입니다."
높은 천장을 가진 넓은 복도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후작은 기가죽었다. 황성에 못지않은 규모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니, 살이 떨릴 지경이었다.
'뭐 이리 크고 높아?'
한때 황자였다고는 해도 지금은 황자가아니잖은가! 황제 폐하와 황비님의 사이에서 자식이라도 생기면 더는 황자로불리지도 못할 것이다.
일설에는 두 사람이 아직까지 자식을 갖지 않는 것이 미카엘에게 황위를 물려주려고 그러는 거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미르세 후작은 그것만은 아니기를 바랐다.
'그랬다가는 우리 집안은 끝장이지!'
그것만은 목숨 걸고 방어할 작정이었다. 황비 전하께 임신이 잘 되는 약을 다달이 바쳐서라도!
응접실에 도착한 시종은 문을 열고 미르세 후작을 기다렸다. 차가운 시선이 등골을 서늘하게 했지만, 미르세 후작은 오만하게 턱을 세우며 방 안으로들어갔다.
커다란 벽난로에 소파 세트가있는…, 광활한 응접실이었다. 미르세 후작은 딸꾹질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소파로다가가앉았다. 소파 밑에 깔려 있는 카펫만 해도 푹신하고 부드러웠다.
시종은 눈빛으로말하고 있었다.
너 따위가앉기는 참 아까운 자리라고.
미르세 후작의 시종은 다른 귀족의 저택에 방문했을 때처럼 벽에 가서 서려고 했다. 그러나 벽이 너무 멀었다. 주인이 부를 때 재빨리 나타나 시중을 드는 것이 시종의 역할이었으므로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곤란했다.
시종은 잠시 두리번거리다가어느 서랍장 옆에 섰다.
'거참 눈에 띄는구먼….'
귀족가의 하인이란 없는 듯 있어야만 하는 것이 본질이었다. 미르세 후작은 마땅찮다는 듯이 눈길을 주고는 로제타를 기다렸다.
5분….
10분….
35분….
2시간 40분….
이미 기다린 지 8분쯤 되었을 때 차가내어져 오기는 했으나, 로제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화가머리끝까지 난 후작은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으나, 지금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공작저였다.
'이것이 나를 상대로기선을 제압하려는 것인가?!'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의 진을 빼놓기 위해 기다리게 하는 것은 비열한 수작 중의 하나였다. 후작은 숱하게도 많이 써 보았지만, 제가당할 줄은 몰랐던 듯 붉으락푸르락했다.
"오십니다."
발소리도 내지 않고 다가온 공작가의 시종이 후작에게 전달했다. 미르세 후작은 이를 갈며 자세를 바로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로제타가자신의 무서운 눈초리에 눈물을 쏟을 수 있도록, 눈에 힘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 성깔 하는 그의 딸조차도 후작의 이런 눈빛을 받으면 알아서 꼬리를 내릴 정도니 후작은 자신 있었다.
뚜벅…. 뚜벅뚜벅….
활짝 열린 문 밖으로화려한 미남자의 신형이 드러났다. 너무 놀란 나머지 후작은 눈에 힘을 푸는 것도 있고 그를 째려보고 말았다. 미카엘은 싸늘한 목소리로말했다.
"그 눈빛은 뭐지? 눈을 뽑아 달라는 건가?"
왜, 각하가여기에?
미르세 후작은 단 0.2초 만에 하얗게 탈색되었다.
"왜 로제타가아니라!"
아까까지가그저 북쪽의 찬바람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북극의 차디찬 회오리바람이 몰려오는 게 아닌가싶은 정도의 냉기가흘렀다.
"…방금 내 아내의 이름을 부른 건가, 후작?"
황족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당연히 허락이 필요했다. 후작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로미카엘을 쳐다보았다. 얼간이 같은 얼굴이었다.
그는 네, 라고 대답했다.
***
뚜벅뚜벅하는 발소리가들릴 때부터 눈치챘어야만 했다. 시종은 그런 발소리를 낼 수 없게 되어 있었으니까. 여자인 로제타의 발소리는 좀 더 가벼웠다.
'그러고 보니…, 편지에는 발신인의 이름이….'
쓰여 있지 않았다. 미카엘 황자가그걸 의도하고 이름을 빼놓은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요, 용서해 주십시오, 전하!"
황족의 이름을 부른 것만으로도 징역형을 살 수 있었다. 황족 모욕죄로. 다급해진 후작은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카펫 위에 무릎을 꿇었다. 맨바닥은 아프니까.
"전하? 가지가지 하는군."
미카엘은 벌써 2년 전에 황궁을 나와 공작이 되었다. 그러니 전하라고 불리는 것은 예법에 맞지 않았다. 그저 황제 부부가아직도 미카엘을 황자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 데다가, 미카엘 황자라 부르는 것을 제지하지 않을 뿐이었다.
황제나 황비가부르면 다른 귀족들도 따라 하고 싶어지는 법.
미카엘 황자라는 명칭은 그가없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오르내리는, 일종의 별명 같은 것이 된 지 오래였다.
"가, 각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후작이 죄 갚음을하기 위해 죽는다고 하는구나. 카펫에 피를 쏟으면 하녀들이 힘들어질 테니, 기사들의 연무장으로 데려가 자결하는 걸 도와줘라."
다른 귀족이었다면 농담으로 생각했을테지만, 공작가의 고용인들은 아니었다. 저 말이 티끌의 농담도섞여 있지 않은 진심임을알았다.
그래서 어디 있는 줄도몰랐던 하인들이 우르르 튀어나와 후작을끌고 가려고 했다. 후작은 기겁했다.
"아, 아니다! 이놈들아! 어디다손을대느냐!!"
파드득 몸부림치며 자신을향해 뻗어진 하인들의 손을때리고 난리였다. 얼마나 놀랐던지, 버둥거리던 그의 옷에서 '투두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응?'
공작저의 시종과 하인들은 물론 미카엘까지도그 소리를 들었다. 후작의 시종과 후작은 사색이 되었다.
옷을맵시 있게 입으려면 어느 정도타이트하게 입어야 하는 법이었다. 후작에게는 불행히도현재 수도에서 유행하는 슈트가 그런 디자인이었다.
부욱! 투두둑!
가죽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후작의 옷이 터졌다. 끈과 단추가 튀어 오르며 가까이에 있던 공작가 하인의 이마에 부딪혔다.
"……."
슈트의 앞부분이 터진 후작과 그대로 굳어 버린 하인들. 새파랗게 질린 후작의 시종과 눈살을찌푸린 미카엘.
모두가 조용해졌다.
시선은 터진 옷자락 사이로 드러나 보이는 후작의 맨살로 향했다. 후작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중년 귀족 남성들의 평균치보다자신이 낫다는 거였다.
후작은 완벽한 D라인이었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연 것은 미카엘이었다. 그는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눈살을찌푸렸다.
"자네…. 내 아내 앞에서 나체쇼라도벌일 작정이었던 건가?"
내용은 전혀 달랐지만, 죽고 싶어서 탭댄스라도추는 건가? 라는 말로도해석되었다. 이글이글 타는 눈빛이 이 자리에서 미르세 후작을때려죽이기라도할 법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각하! 이, 이것은 실수…, 실수입니다! 저놈이 옷을잘못 가져오는 통에…."
말도안 되는 변명이었으나 후작의 시종은 제 잘못이 아니라는 말도할 수 없었다. 여기서 살아 나간다해도후작이 자신을죽이려 할 것이므로.
후작은 얼른 바닥에 머리를 박다시피 고개를 숙였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여기서 목이 잘린 채로 시신만 돌아가게 생겼다.
"후작에게 걸칠 것을내어줘라."
물론 후작을위해서는 아니었다. 자신과 고용인들을위한 조처였다. 미카엘이 방 안에 있는 하인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자에게 말하자, 그가 재빨리 자신의 겉옷을벗어 후작에게 내밀었다.
공작의 옷도아니고 하인의 옷인지라 후작은 속으로 발끈했으나, 이 꼴로 아덴 공작 앞에 있을수는 없었다.
후작은 얼른 옷을받아 들고 제 옷 위에 껴입었다. 옷이 터졌다고는 하나, 아덴 공작 앞에서 벌거벗은 상체를 드러내고 옷을갈아입을수는 없는 노릇이어서였다.
"가, 감사합니다. 각하…."
"이제 옷을입었으니 꺼지게. 오늘의 추태는 하루도지나지 않아 수도사교계까지 알려지도록 내가 손을써 주지."
비웃는 얼굴도나오지 않는지 짜게 식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후작은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안 됩니다, 전하!!"
급한 나머지 예법도잊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그런 추문이 퍼져 나가면 저희 집안은…."
"사교계에서 얼굴을들고 다닐 수 없게 되겠지."
소문이 어떤 식으로 불어날지는 알 수 없으나, 아덴 공작 앞에서 벌인 추태였다. 두고두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회자되리라.
"내 알 바 아니다. 내보내!"
"아, 안 됩니다!!"
후작은 애타게 소리쳤으나 이미 하인들이 그를 끌어다나르고 있었다. 반면 후작가의 시종은 점잖은 얼굴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미카엘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자신의 시종인 노아를 보았다.
"…로제타는 어디 있지?"
"마님께서는 정원에 산딸기를 따러 나가셨습니다."
시녀와 호위기사들도같이 갔다. 미카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응접실을나섰다. 그러며 시종에게 이 말을하는 것도잊지 않았다.
"저 카펫과 소파도처분해."
"네."
시종이 보기에도미르세 후작이 앉고 무릎 꿇었던 소파와 카펫이 찝찝했다. 하녀들에게 쓸고 닦으라고 말하기 미안해질 만큼.
복도에서는 미르세 후작의 고함 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
"공작님! 공작니임!!!"
철컹! 문이 닫힌 공작가의 철문에 매달려 애타게 부르짖었으나 소용없었다. 마부는 떨떠름한 얼굴로 후작의 추태가 끝나기만을기다리고 있었다. 시종은 약간 떨어진 위치에서 후작의 눈치만 보았다.
혹 떼러 갔다가 붙이고 온다는 말이 딱 이 짝일 것이다.
한참을애원하던 후작은 이내 혼이 빠진 얼굴로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시종과 마부가 당황한 얼굴로 달려오는 것도보이지 않았다.
하필이면 공작 앞에서 옷이 터지다니…. 그 번드르르하고 반짝반짝한 젊은 공작 앞에서 보인 추태에 후작은 수치심을넘어 화가 날 지경이었다.
"네놈 때문이다!"
분노한 후작이 시종의 머리를 갈겼다. 시종은 화들짝 놀라며 후작에게서 물러섰다. 후작은 이를 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히 이따위 옷을추천해서 내가 그 망신을사게 해?! 코르셋이 낡은 걸 알았다면, 교체했어야 하지 않느냐!!"
그 코르셋은 구입한 지 얼마 안 된 신상이었으나, 지금 그 변명은 통하지 않을터였다.
"후, 후작님 진정을…."
"내가 진정하게 생겼냐, 이놈아!! 너 죽고 나 살자!"
달려드는 후작을피해 시종은 달아났다. 꼬라지를 보아하니 자신을자를 것 같은데, 그 손에 잡혀서 맞아 줄 이유는 없었다.
후작은 곁에서 멀거니 서 있는 마부에게까지 호통을쳤으나, 마부는 적당히 시종을쫓는 시늉만 했다. 그는 백작가의 마부였던 것이다. 후작가의 마부는 마차를 수리하는 곳에 가 있었다.
"이놈! 왜 이리 빨라! 아이고, 나 죽는다!!"
얼마 달리지도못하고 볼썽사납게 땅바닥에 털퍼덕 주저앉는 후작을보고 마부는 혀를 찼다. 시종은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
후작은 가만히 있으니 다시 아까의 망신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이제 나는 어쩌냐! 우리 집안은 어쩐단 말이냐! 아이고오오오오!!"
신경질이 뒤섞인 후작의 한탄이 울려 퍼졌지만, 누구도답을내어주지는 못했다. 후작은 한참 동안이나 그 앞에 죽치고 앉아 한탄을하다가 물벼락을뒤집어썼다.
***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간수는 용케도졸고 있었다. 지난번 형벌대로 가고 올 때를 제외하고 이런 불편한 마차를 타 본 적 없는 이자벨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왜 빨리 나타나지 않는 거야!'
수도의 관문을통과하여 벌써 한참은 달린 것 같았다. 엉덩이가 너덜너덜해지다못해 터져 버릴 것 같은데도자신을구출할 자들은 보이지조차 않았다.
시릴이 자신을배신한 것은 아닐까 싶었으나, 그럴 속셈이었다면 감옥까지 그 마물을보내지도않았을것이다.
'대체 언제….'
으아아아악!
바깥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간수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이자벨은 자신만만한 웃음을감추지 못했다. 이 비명 소리야말로 무엇보다도확실한 신호였다.
하나밖에 없는 창문에는 두꺼운 커튼이 달려 있었다. 간수가 허겁지겁 그 커튼을젖히자마침 기사의 머리를 씹어 삼키고 있던 마물과 눈이 마주쳤다.
"아악!"
간수는 저도모르게 비명을질렀다. 그 비명에 반응하듯 마물이 간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사방으로 유리 파편이 튀고, 마물이 간수의 머리를 물어뜯었다.
이자벨은 마차 안쪽으로 바싹 몸을붙이며 그것을쳐다보았다.
우득, 우드득!
마물이 간수의 목을비틀기까지 5분도걸리지 않았다. 파충류를 연상시키는 노란 눈으로 이자벨을노려보던 마물은 홱 고개를 돌려 마차 밖을쳐다보았다.
속도를 죽이지 않고 덜컹거리며 달리던 마차가 서서히 느려지고 있었다.
마물은 이자벨 쪽으로는 눈길도주지 않고 마차 밖으로 뛰어내렸다. 이자벨이 조심스럽게 부서진 창문 밖을쳐다보니 로브를 입은 마법사와 한 무리의 기사들이 보였다.
기사들의 갑옷에 가문의 문장은 없었으나, 이자벨은 그들을알아보았다. 기사들 뒤편에서 말을타고 있는 마법사는 손가락 두 마디만 한 피리를 입에 물고 있었다.
인간에게는 들리지 않는, 마물에게만 들리는 소리를 내는 피리였다.
이자벨의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가 떠올랐다. 곧 그녀가 탄 마차가 기사들 중 누군가의 손에 의해 세워지고 문가로 그가 아는 이가 다가왔다.
"공녀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건틀릿을낀 손이 내밀어진 것에 이자벨은 고개를 들었다. 형벌대 위에서 고통받던 초라한 영애는 이미 이곳에 없었다. 그녀는 마차의 좌석에서 일어나 기사의 손을잡았다. 그녀가 마차에서 내리자, 다른 기사가 죽은 간수의 몸을뒤져 수갑 열쇠를 찾아냈다.
챙그랑!
수갑이 풀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자벨은 손목을매만지며 기사들을돌아보았다. 고작 여섯 명이었다.
그리고 그 6명은 온전히 그녀의 사람들이었다.
"말을가져왔습니다."
이자벨은 기사가 잡아 주는 말을탔다. 고작 몇 주가 흘렀을뿐인데도, 몇 개월은 그 시궁창 같은 곳에서 썩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카엘.
그리고…, 로제타.
복수의 시간이 되었음을알았다. 그녀는 결국 그녀의 것을손에 넣을테고, 적들은 늘 그래 왔듯이 진창을구르게 되리라.
이자벨의 눈동자가 잔인하게 빛났다. 이제는 찬란한 빛 아래서가 아닌 어두운 곳,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곳에서 적들의 공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자."
사냥을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자그마한 바구니라 해도 바구니가 가득 찼다. 수확은 늘 기쁜 일인지라, 로제타는 시녀들과 어울리며 흠뻑 즐거움을맛본 참이었다.
그녀가 시녀들과 같이현관홀로 들어오니, 시녀들이다가와 산딸기가 든 바구니를 받는다, 외투를 받는다, 소란스러웠다.
쿵쾅쿵쾅쿵쾅!
널찍한 계단을뛰어 내려오는 미카엘의 모습에 로제타의 고개가 돌아갔다. 멀리서 보기에도 창백한, 묘한 낯빛이었다.
뭐지? 폐하께 무슨 일이있나? 당황하며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찰나,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미카엘이로제타를 확 끌어안았다.
"어머!"
지근거리에 있던 시녀들이작게 탄성을흘렸다. 그러고는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이순식간에 주방이며 복도로 사라졌다.
현관홀에 남은 것은 뒤늦게 미카엘을따라서 내려온 자들뿐이었다.
호위기사들과 집사, 비서와 시종들이었다. 집사와 시종은 이해하지만, 공작저 안에서 저만한 수의 호위기사들을본 것은 처음이었다.
"미카엘 님? 무슨 일 있어요?"
로제타를 꽉 끌어안고 있던 미카엘이비로소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이사실을어떻게 전해 주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이자벨의 탈출 사실이빨리 알려진 것은 호송단의 기사 중 하나가 신호탄을쏘아 올렸기 때문이었다. 습격을받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의미였다.
그를 본 가까운 거리의 마을에서 경비병이출발하여 빨리 그 사실을확인할 수 있었다. 마을의 인력으로는 도망친 죄수를 쫓을수 없었으므로, 그들은 수도의 경비대에 보고부터 올렸다.
경비대장은 추적단을조직하는 한편, 황제에게 이사실을알렸다. 황제의 명으로 미카엘에게 소식이전해진 것이불과 5분 전의 일이라는 게, 비서의 설명이었다.
자리를 옮겨 비서의 설명을듣는 내내 로제타는 미카엘의 팔에 안겨 있었다. 실은 호위기사들이며 시종의 시선이있어 창피했지만 일단 참은 거였다.
미카엘의 표정이너무 불안해 보였기에.
'이자벨이도망쳤다는 소식 때문에 놀랐구나.'
한 번 이자벨에 의해 부인을잃었던 미카엘이었다. 소식을들었을당시에 로제타가 성안에 없었으니 당황한 것도 당연했다.
로제타는 시종과 비서에게 나가 보라고 손짓했다. 비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종과 같이조용히 방을빠져나갔다. 호위기사들은 이방에 들어올 때부터 문밖을지키고 서 있었다. 공작가의 성 안이니 그 정도로도 충분히 안전할 것이다.
"…계속 곁에 있을게요."
로제타의 속삭임에 미카엘이팔을조금 느슨하게 하며 로제타의 얼굴을들여다보았다. 로제타는 잔잔한 눈으로 미카엘을보며 말했다.
"떨어지지 않고 항상 곁에 있을게요. 그러니까 불안해하지 마세요."
말하며 로제타는 미카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한 줄기 눈물이미카엘의 뺨을타고 흘렀다. 그가 곁에 있었다면, 리디아는 그렇게 죽지 않았을것이다. 그러니….
"지켜 드리겠습니다. 아무 일도 생기게 하지 않을겁니다."
속삭이는 그 말은 그 스스로에게 하는 맹세와도 같았다.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소중한 사람을잃고 싶지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로제타만은 그럴 수 없었다.
로제타는 믿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자신이살해될 경우 미카엘이받을상처를 생각해서. 만약 자신의 그 말을듣고, 그녀가 살해되기라도 한다면 미카엘은 다시는 회복하지 못할 것 같았다.
'죽기는 싫지만…. 세상일이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그나저나 이먹튀 정령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