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뒤돌아보면 낭떠러지
마차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그들의 얼굴은 침울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황비의 다과회에 초대받기 위해서는 고위 귀족의 여식이든가, 어느 정도 공을 세운 집안의 여식이어야 함을 간과하고 있었다.
"대체 그 협박자를 어떻게 잡아내냐구…."
우울한 얼굴로 중얼거린 누군가의 말을 시작으로 한 영애가 누군가를 홱 노려보았다. 그녀는 당황한 듯 그녀를 보았다.
"벤슨 영애께서는 알고 계시지요? 그 협박자가 누군지."
넓은 계단을 우르르 몰려서 내려가던 영애들의 시선이 일제히 벤슨 영애에게 향했다. 벤슨 영애는 당황하며 그녀들을 돌아보았다.
"무슨….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하지만 황비님께서 협박자를 언급하실 때 눈을 피하시던걸요! 제가 봤어요! 짐작되는 이가 있으신 거겠지요?"
그들이 협박당한 비밀은 나름대로는 은밀한 것이었다. 가장 친한 영애나 전속 시녀만이 알 수 있는 것. 그로 인해 그들은 그 편지를 받은 날부터 주변인들을 의심하고 있었다. 죄 없는 하녀나 시녀에게 매를 든 영애도 있었다.
"의심이 가는 이가 있다면 말해! 아니면 네가 주모자라고 황비님께 말씀을 올려, 그 다섯 사람 중 하나가 되게 하겠어!"
후작 영애가 큰소리로 말하는 것에 벤슨 영애는 기겁했다.
"제가 왜! 저는 두 번 망을 본 적밖에 없잖아요!"
"거짓말! 그 협박자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와 내통한 거죠?! 아니면 말해요! 그 사람이 누군지!"
안달이 난 영애들이 압박해 오자 벤슨 영애는 난처한 듯 낯을 흐렸다. 그녀도 친한 하녀를 통해서 간신히 알아낸 이름이었다. 물론 그 이름을 듣자마자 대항할 마음을 버렸지만 말이다.
"너무…, 엄청난 분이어서…. 저도 의심만 하고 있을 뿐이지, 증거는 없어요."
"그러니까 누구냐고!"
당장이라도 머리채를 휘어잡을 기세로 어느 영애가 소리를 질렀다. 마차가 있는 곳까지 안내하던 그들의 시종이나 시녀들은 떨어진 곳에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자벨… 카룰리아스 영애요."
벤슨 영애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에 영애들의 눈이 커졌다. 몇몇은 그럴 리가! 거짓말 아니냐며 속닥거리는가 하면, 몇몇은 의심하고 있던 바인지 눈을 빛냈다. 나머지들은 당황한 눈치였다.
"카룰리아스…."
"세상에, 우리를 감쪽같이 속이고…."
그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가장 오랫동안 협박을 당한 영애는 분노했다.
"그럴 수가! 카룰리아스의 장미라 불리면서…, 사람을 이용해서 그런! 다들 이자벨 카룰리아스의 명성이 어떤지는 알고 계시겠지요?"
그 영애의 말에 모든 영애들이 조용해졌다. 그녀들은 억울하기도 했지만, 이자벨 카룰리아스가 가증스러웠다.
그 모든 것. 집안과 권력, 재력과 아름다운 용모에 명성까지 가지고 있었으면서…. 뒤로는 이러한 행위를 사주했던 것이다. 심지어 제 손을 더럽히지 않고!
"…황비 전하께서 말씀하신 증거도 얻어야겠지만, 이대로 우리만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당하는 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나요?"
"맞아요! 혼자 고고한 척은 다 하면서! 공작가의 영애면 다인가?"
분노한 영애들이 한마디씩 했으나 처진 눈을 가지고 있는 영애가 불안한 듯 주위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카룰리아스라고요. 저희가 황족의 일원이라면 모를까…, 카룰리아스에게 어떻게 대항하겠어요?"
그 한마디에 다들 조용해졌다. 그러나 영애들 사이에서는 억울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었다. 그녀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다 아는데도 이대로 침묵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왜 대항을 못 합니까? 우리들에게는 그녀가 가르쳐 준 방법이 있는데요."
어느 영애가 꺼낸 말에 모여 있는 여인들 사이로 열기 어린 시선이 오갔다. 그들은 다수였고, 힘이 없는 다수라 해도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있었다.
"카룰리아스에서 그 사실을 알기라도 한다면…."
"안다 해도 당장은 못 할 거야. 제가 저지른 짓이 있는데!"
"결국 카룰리아스는 황비 전하께 처벌을 받을 테니, 힘이 약화되지는 않을까?"
수군거리는 목소리에 카룰리아스 공작가와 어느 정도 연이 있는 몇몇의 영애들이 당황했다. 그들 중 한 명이 목소리를 냈다.
"그래도 카룰리아스가입니다! 공녀가 처벌을 받는다 한들, 그 힘이 약화될 것이라고 보십니까?"
"하지만 저희도 스무 가문이 넘지요."
"그러면 영애께서 그 다섯 명 중의 하나가 되시겠습니까?"
날카로운 목소리로 추궁하는 말에 그 영애는 당황했다. 카룰리아스가 두렵기는 해도, 이자벨 대신에 혀에 낙인을 찍히는 형벌을 받을 생각은 절대 없었다. 애초에 이자벨은 그녀 역시도 이 더러운 일에 밀어 넣지 않았던가!
아까의 영애가 입을 다물자 추궁하던 영애들은 코웃음을 쳤다.
"이것으로 모두의 의견은 모였다고 봅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일단 자리부터 옮겨서…."
후작 영애의 말에 모여 있던 영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모의하고 있던 것이 카룰리아스가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으므로.
* * *
한 달간의 신혼여행은 빠르게도 흘러가 버렸다. 그사이 미카엘의 팔 안에 안겨 있는 것이 익숙해진 로제타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자꾸 이상한 것이 보이기에.
'뭐지?'
하늘에 빨간 물감이 든 물풍선이 팍 터지기라도 한 듯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푸르스름한 불꽃과 함께. 제가 뭔가 잘못 본 것인가 싶어 눈을 비벼 보면, 아주 잠깐인지라 또 보이지가 않았다.
'이상하네.'
미카엘에게 저것 보라고 가리키기도 전에 사라져 버리는 통에 로제타는 애꿎은 제 눈만 의심하고 있었다.
"로제타. 가져가고 싶은 물건은 이것이 다입니까?"
사역인형들이 챙겨 준 짐을, 미카엘은 제가 가지고 있는 마법 주머니에 담았다. 가볍기 짝이 없는 얄팍한 배낭은 보이는 것의 수만 배로 속이 넓었다.
로제타가 이번 여행에서 마음에 들었던 원피스며 구두는 물론 장롱까지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물론 장롱은 넣지 않았다.
"네에…. 근데 자꾸 뭔가."
"뭐가요?"
"앗!"
놓칠세라 로제타가 하늘 저편을 가리켰다. 마치 보이지 않는 유리막 너머로 산딸기를 으깬 것처럼 빨간색이 펼쳐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푸른 불꽃에 휩싸여 사라져 버렸다.
"저거 봐요! 미카엘 님, 보셨어요?"
"아…. 네. 봤습니다."
미카엘은 그게 뭔지 알고 있는지 머쓱한 표정이었다. 로제타가 발견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표정. 요 한 달간 그에게 꽤 익숙해져 버린 로제타는 그 표정을 바로 눈치챘다.
"왜요? 저게 뭔데요?"
"음. 로제타…. 이 섬을 보호하기 위해 제가 마법진을 설치해 놓은 것은 설명했었지요?"
로제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섬에는 미카엘이 설치해 놓은 여러 가지의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첫 번째가 빛과 관련된 마법을 이용해 섬을 보이지 않게 감춰 놓는 것이고, 두 번째가 섬 전체를 방어하는 마법진이었다. 세 번째는….
"섬을 보호하는 마법진이 워낙 강하기에, 마물이 몸을 부딪쳐도 부서지거나 금이 가는 일은 없습니다."
세 번째 마법진은 섬으로 침입할지 모르는 마물을 죽이는 것이었다. 방어막을 부수려고 몸을 부딪치는 마물이나 침입자 위에 겹쳐지는.
요컨대 두 개의 모양이 같은 그릇이 겹쳐지며 그 사이의 과일…, 이 아닌 마물이 으깨지고, 피떡이 된 마물을 다시 마법의 불꽃으로 태우는 모양새였다.
"으엑?!"
미카엘의 설명을 들은 로제타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러니까 저 멀리 보이는 새빨간 무언가가 마물이었던 피떡이란 말인가!
"본래도 숲이나 섬에 마물이 침입하는 일은 있습니다만…. 근래 들어서는 많아졌군요."
그 이유는 짐작하는 바가 있었지만, 굳이 말할 이유는 없었다. 누군가의 소행이라고 한다면 로제타가 불안해할 테니.
"그럼 결계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괜찮습니다. 제가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넌 괜찮으실지 모르지만 저는 아닌데요. 로제타는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밀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미카엘은 제국 최고의 마법사이니 바깥에서 도사리고 있는 마물쯤은 아무것도 아닐지 몰랐다.
"아무 일 없을 겁니다."
로제타의 탐탁지 않다는 반응을 눈치챈 것인지 미카엘이 자신의 손목에서 팔찌를 풀어 로제타의 손목에 채워 주었다.
"…이게 뭐예요?"
은색에 사파이어가 박힌 팔찌였다. 팔찌의 옆면에는 꼬리가 긴 새의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파란 깃털에 꼬리 끝이 붉은 새였는데, 작은 보석 조각으로 그것을 형상화하고 있었다.
"보호 주문과 부유 주문이 걸려 있는 마도구입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로제타가 가지고 있다면 안심이 되겠지요."
요컨대 마물의 공격과 추락시에 도움이 된다는 뜻일 것이다. 로제타는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팔찌를 보았다. 자신보다는 미카엘에게 어울리는 팔찌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절대 돌려주지 않을 테다! 미카엘은 대마법사잖아! 나는 악녀2라고…. 그것도 중간에 악녀1의 꾐에 빠져 사형당하는….'
"이제 출발할까요?"
그들은 처음 이 성에 도착했을 때 왔던 발코니에 서 있었다. 미카엘의 소환수도 그 자리에 앉아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로제타는 미카엘의 도움을 받아 소환수의 등에 올라탔다. 미카엘은 로제타의 등 뒤로 오르더니, 소환수의 머리에 연결되어 있는 고삐를 당겼다.
부우우우우!
소환수가 길게 울음을 토해 내는 것에 로제타는 움찔했다. 이번 소환수는 지난번 녀석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새와 낙타를 섞어 놓은 듯한 형상에 붉은 깃털을 가지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얌전한 녀석이에요."
뒤에서 단단히 끌어안는 미카엘의 팔에 로제타는 안심했다. 소환수가 긴 목을 들어 올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흡사 낙타를 탄 듯한 느낌에 로제타는 눈살을 찌푸렸다.
전처럼 용을 타고 가는 거라면 좋으련만, 이미 불러낸 마당에 이전의 소환수로 바꿔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가 단단히 잡고 있습니다."
로제타에게 바싹 몸을 붙이고 있는 미카엘이 속삭였다. 로제타는 끄덕이며 미카엘의 팔을 잡았다. 그것을 보고 미카엘은 기쁜 듯 웃었지만, 앞을 보고 있는 로제타는 보지 못했다. 곧 소환수가 거대한 날개를 퍼덕이며 발코니 끝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으악!'
낙타를 닮았다 했더니 하는 짓은 타조 같았다. 그러나 소환수가 날개를 퍼덕이며 움직일 때마다 그의 몸이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힉."
소환수의 몸이 발코니 밖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추락하는 높이는 매우 얕았고, 큰 날개가 움직이는 것에 따라 순식간에 하늘로 치솟았다.
"…로제타는 떨고 있는 것도 귀엽네요."
질끈 눈을 감고 있는 로제타의 얼굴을 훔쳐보며 미카엘이 속삭였다. 로제타가 실눈을 뜨고 주변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들의 몸이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소환수는 상승기류라도 탄 것인지 날갯짓을 별로 하지 않고도 고도를 높였다.
"놀리시면 꼬집을 거예요."
로제타가 힐끗 그를 흘겨보자 미카엘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토라진 것도 귀엽네요."
이미 바싹 끌어안고 있었으므로 머리에 그의 가슴이 닿았다. 고개를 숙인 그가 뺨에 입술을 누르는 것을 느끼며 로제타는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늘 높이 날아서인지 섬을 둘러싼 보호막이 보이는 듯했다. 보호막 너머로 작고 까만 점이 무수히 떠 있는 것에 로제타의 눈이 커졌다. 미카엘은 묘한 웃음을 머금으며 속삭였다.
"…지금부터는 눈을 감고 있는 게 좋겠군요.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내 사랑."
까만 점처럼 보이는 것은 분명 마물일 터였다. 로제타는 겁먹었으나 미카엘의 설정값을 믿고 눈을 감았다. 여차하면 팔목에 건 마도구가 있으니까….
'그래도 소환수 등에서 떨어지는 건 싫어!'
소환수가 몸에 달라붙은 마물을 떨구려 몸부림치고, 그 와중에 떨어진 자신이 마물에게 끌려가 난도질당한다는 망상을 하고 있던 로제타는 실눈을 뜨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마물의 거친 울음소리가 많이 잦아든 탓이었다.
그때에는 검은 불꽃이 긴 혀를 내뿜어 핥듯 마물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마물은 화염 방사기에 쏘여진 모기떼처럼 후드득 바닥으로 떨어졌다.
섬의 방어 마법진은 그들이 성을 나섰을 때 해제된 모양이었다. 마물의 사체가 섬으로 떨어지는 모양새에 로제타는 근심스러워졌다.
'저걸 나중에 어떻게 치워! 아…. 사역인형들이 치우려나?'
방어막이 생성되어 있었다면 사체가 으스러진 후에 불태워졌을 테지만…, 반대로 실수로 방어막 위로 떨어진 로제타가 피떡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쪽으로 생각을 옮겼던 로제타는 오싹한 감정에 몸서리를 쳤다.
'이래서 고래 사이에 끼는 게 아닌데! 이자벨하고 미카엘의 싸움에 끼었어!'
자신은 애매한 조연이니 싸움 중에 소환수 등에서 떨어져, 그렇게 웃기게 죽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제타? 눈을 감고 있으라니까요."
로제타의 이런 망상을 알 길이 없는 미카엘은, 로제타가 마법을 보고 놀란 줄로만 알았다. 로제타는 제 허리에 감겨 있는 미카엘의 팔을 꽉 끌어안으며 미카엘을 보았다.
"저, 저 안 놓칠 거죠? 꽉 잡아 주고 있을 거죠?"
"……."
미카엘 시점으로 로제타의 애처로운 시선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무서워하지 않도록 달래 주고 싶었으나, 자신에게 매달리는 로제타가 너무 귀여웠다.
"…물론이죠. 이렇게 평생 안아 드릴 수도 있습니다."
'평생까지는 필요 없고.'
짜게 식은 시선을 보내는 로제타였으나, 미카엘은 귀 끝까지 빨갛게 물들이며 기뻐하고 있었다. 주변으로 눈길을 돌리니 마물은 이제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응…. 강하기는 강하구나.'
미카엘은 턱 아래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정수리를 보며 키스할까 말까로 고민하고 있었다. 로제타의 몸을 옆으로 기울이면 얼마든지 키스할 수 있지만, 로제타가 겁내는 것을 봐서는…. 원망을 들을 것 같았다.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하나?'
로제타의 뺨에 입술을 누르고 그녀의 귀를 아프지 않게 깨물며 미카엘은 생각했다. 로제타는 미카엘의 팔을 잡은 채로 꼼지락거렸다.
말 위였다면 누가 볼까 기겁해서 못 하게 했을 테지만, 여기는 소환수 위였다. 하늘 높이 날고 있으니 이 광경을 볼 사람은 없겠다 싶었다. 그렇다 해도….
"잠깐, 거기에 혀 넣지 마세…. 히익, 으응…."
귓구멍까지 혀가 들어오는 감촉에 로제타는 미카엘의 팔을 꼬집었다. 마법사인 주제에 단단한 팔뚝을 가지고 있는 미카엘은 간지럽지도 않은지, 더욱 정성을 들여 혀를 놀렸다.
"응…. 싫어……."
질척거리는 소리를 내며 민감한 곳을 농락하는 희롱에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미카엘은 옅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욕망 때문인지 꿀처럼 달기만 한 목소리가 그르렁거리는 것처럼 울렸다.
"그렇게 귀엽게 굴면 당신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잖습니까……. 자꾸 이러면 지상에 도착하자마자 가까운 침실로 데려가 버릴 거예요."
"내가 언제…. 읏, 아흥…."
귓바퀴를 살짝 깨물고 내려온 입술이 로제타의 뺨을 핥았다. 끌어안고 있던 손이 로제타의 가슴께로 올라가는 것에 한숨이 흘렀다.
소환수는 미카엘의 명령에 따라 서서히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수도 안으로 수환수를 타고 들어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친분이 있는 수도 근처의 영지에 내릴 작정이었다.
저 멀리 작은 점처럼 보였던 도시의 집들이 지붕의 형태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지고 있었다.
"안 돼…. 이제 사람들 눈에도 보일 거예요. 미카엘…."
로제타가 헐떡이며 애원하자 미카엘은 아쉬운 듯 고개를 들었다. 옷자락 위로 로제타의 가슴을 자극하던 손길도 허리로 내려왔다.
환한 대낮이었다. 그래서 하늘을 가로지르는 붉은 깃털의 소환수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로제타는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을 보고 미카엘을 말린 것을 다행이라고 여겼다.
저 사람들이 모두 미카엘이 로제타에게 하는 짓을 보았더라면, 창피함에 미카엘을 소환수의 등 밖으로 차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소환수가 땅으로 착지했을 때에.
영주는 마법사를 통하여 이미 연락을 받은 뒤였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황자와의 관계를 과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을 기뻐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황자님!"
소환수가 영주의 성 근처에 나 있던 공터에 내려서자 영주가 소리 높여 말했다. 공터 주변에는 공작 부부를 호위하기 위한 기사단이 대기하고 있었다. 영주의 기사단이 아니라 황제가 보내어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공작님. 공작부인."
미카엘은 로제타 먼저 소환수의 등에서 내려 주고 자신도 내려왔다. 소환수 곁에 선 두 사람을 향해 기사단의 단장인 윌리엄이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그의 곁으로 뱃살이 통통한 영주도 허둥지둥 달려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눈치 없게도 미카엘의 손을 덥석 잡으려고 했으나 윌리엄이 그것을 가로막았다. 자작은 성난 얼굴을 윌리엄에게 향했으나 윌리엄의 싸늘한 시선과 맞닿고는 수그러들었다.
'하긴. 황족에게는 허락 없이 닿아서는 안 되는 법이지…. 내가 그걸 잊고 있었네!'
미카엘과 친분이 있다고는 해도 그의 아들이 미카엘 밑에서 일을 한다는 것 정도였다. 겨우 그 인연으로 황자님께서 이 영지에 방문해 주셨으니, 그 기회를 이용해야만 했다.
"긴 여행으로 피곤하셨을 줄 압니다! 성에서 가장 좋은 방을 마련해 두었으니, 성으로 들어가시지요!"
하지만 미카엘은 이 영지에 착륙할 만한 땅을 바랐을 뿐, 하룻밤 머물게 해 달라는 요구를 했던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수도에서 5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차를 타면 저녁이 되기 전에 수도에 도착할 텐데, 여기서 머물 이유는 없었다.
"폐하께서 마차를 보내셨습니다. 가장 빠른 군마를 붙여 주셨으니, 4시간 안에 휘르센 백작가에 도착하실 수 있을 겁니다."
윌리엄은 그렇게 설명하고는 힐끗 자작을 보았다. 자작은 당황한 눈치였다. 황제가 마차를 보내 준 것은 보았지만, 그걸 타고 바로 가야 하는 줄은 몰랐다.
'휘르센이라면….'
이번에 미카엘 황자가 결혼한 상대가 휘르센 영애라고 들었다. 사교계에서 말썽이 많던 여인이라 들어서 자작은 기웃 로제타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부드러웠던 미카엘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자작은 제가 실수했음을 깨닫고 얼른 눈길을 내리깔았다. 미카엘은 그 틈에 소환수를 돌아가게 하고는 윌리엄을 돌아보았다.
"마차는 어디에 있지?"
"지금 가지고 오게 하겠습니다."
윌리엄이 손짓하자 기사들 중 몇 명이 바쁘게 움직였다. 자작은 이대로 미카엘을 놓칠세라 윌리엄의 뒤에서 열심히 눈빛을 보냈다. 그 애타는 시선에 로제타가 슬쩍 미카엘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그에 스르르 미카엘의 시선이 풀어지는 것에 자작의 입이 벌어졌다.
'허어….'
그 시선 하나로 자작은 미카엘이 로제타에게 단단히 빠졌음을 눈치챘다. 세간에 퍼진 것처럼 휘르센 영애가 약점을 잡아 감히 황자님과 결혼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로제타가 미카엘의 귓가에 무어라 속닥거리자 미카엘이 내키지 않는다는 눈으로 자작을 노려보았다. 자작은 그 눈빛을 받고 헉, 하고 숨을 삼켰다.
"…신경 써 준 것은 기억해 두도록 하지."
그 말만으로도 자작의 눈이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커졌다. 아이고, 황공합니다! 하고 소리치려는 찰나 황실의 마차가 흙먼지를 날리며 나타났다.
기이하게도 흙먼지는 자작이 있는 방향으로만 날아가는 것 같았다. 로제타는 그 광경을 보고 속으로 혀를 찼다.
'저분도 엑스트라였구나….'
자작은 황족 앞인지라 차마 흙먼지를 뱉어 내지도 못한 채로 입을 다물었다. 로제타는 황급히 손수건을 꺼냈다.
"자작님. 이것을…."
"이렇게 친절하실 데가! 감사합…."
이미 미카엘의 반응으로 실세가 누구인지를 파악한 자작은 얼른 손수건을 받아 들었다. 왜인지 얼굴 옆이 서늘한 느낌이 들어 미카엘을 보았더니, 살기가 느껴졌다.
'히이이이익!'
이상한 기분에 로제타가 미카엘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섭게 자작을 노려보았던 미카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봄바람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흐어어억! 이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도 되는 것인가….'
자작은 미카엘의 시선에서 죽음의 위기를 느끼고 양손으로 고이 손수건을 접었다.
"이, 이 손수건은 반드시 빨아서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당황하는 로제타의 반응에 미카엘의 시선이 더욱 무서워졌다. 자작은 히이익! 하는 신음을 삼키며 말을 바꿨다.
"대대손손! 대대손손 보물로, 아니! 자랑으로 삼겠습니다, 공작부인!!"
자작이 소리치는 사이 황실 마차에서 내린 시종이 조용히 마차 문을 열고 있었다. 미카엘은 그제야 자작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로제타를 보았다.
"마차가 도착했습니다, 로제타."
"엇, 네."
로제타는 미카엘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차에 올랐다. 미카엘은 로제타를 따라 마차를 타며 힐끗 자작을 보았다. 여전히 차가웠으나 아까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시선이었다. 자작은 그 사실에 안도했다.
'휴우~. 사, 살아난 건가?'
시종이 마차의 문을 닫고 재빨리 마부의 옆자리에 앉았다. 황제가 보내 준 기사들도 모두 말에 오르고 있었다. 자작은 로제타의 손수건을 고이 손에 쥔 채로 목소리를 높였다.
"살펴 가십시오, 황자님! 공작부인!"
마차 안에서 로제타가 가볍게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황실 마차와 그를 호위하는 기사들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자작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으나, 왜인지 이편이 나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 *
빙의된 주인공들이 그러하듯 아이리스에게도 원작의 줄거리를 적어 놓은 노트가 있었다. 노트는 온통 한글로만 적혀 있기에 그녀 외에는 누구도 읽을 수 없었다.
'이상해. 왜 이렇게 된 거지?'
페이지를 팔랑팔랑 넘기며 아이리스는 고민했다. 자신의 성격이 본래의 아이리스와는 차이가 있는 만큼 어느 정도 원작 파괴는 가능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원작이 틀어질 줄은 몰랐다.
'정말 로제타의 몸에 진짜 아이리스가 빙의된 거야? 진짜 로제타는 어쩌고?'
그러고 보니 몇 개월 전의 로제타는 이상해지기는 했다. 단순한 성격의 악역에 가까웠던 로제타가 꽤나 어른스러워진 것 같았다. 거기다 매번 그녀를 괴롭히는 것치고는 아이리스의 그림자만 보아도 자리를 피하려 했다.
원작의 아이리스였다면 로제타를 만나 왜 자신을 괴롭히는지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빙의된 아이리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원작을 기억하고 로제타의 단순하고 억센 성격을 알고 있었다.
'대화를 했으면 뭔가 달랐을까?'
아이리스는 노트를 덮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로제타의 몸에 아이리스가 빙의되었다고는 해도 이상했다. 아이리스가 왜 그런 방식으로 자신을 괴롭힌단 말인가? 몸을 빼앗았으니 미워한다고는 해도 그런 식의 괴롭힘은 납득 가지 않았다.
'그럼 아이리스가 아닌가? 아이리스에 빙의된 내가 달라졌으니…. 악녀2인 로제타에게도 뭔가 변화가 생겼나?'
고민하던 아이리스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 로제타가 무언가 계기가 생겨 감화된다니, 말도 되지 않는 얘기였다.
이자벨이 잔혹함에 특화된 악녀라면, 로제타는 단순하고 어리석은 쪽으로 특화되어 있는 엑스트라 악녀였다. 깊이 생각하는 걸 싫어하고,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이가 참견하는 것을 질색했다.
만약 아이리스가 로제타에게 충고를 하려고 들었다면, 로제타는 따귀부터 때리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 역시 그 몸에는 아이리스가 빙의된 거야. 그거 말고는 납득이 안 돼! 아마도…, 아이리스는 로제타인 척하느라고 날 괴롭혔던 걸 거야.'
그리고 미카엘은 로제타 안에 있는 아이리스의 내면을 보고 반한 것이 분명했다. 그 사실을 확신한 아이리스는 입을 내밀고 삐죽거렸다.
"체…. 그럼 나한테 미카엘은 무리인가? 미카엘이 더 좋은데."
거기다 아이리스는 끝끝내 미카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캐릭터가 아닌가! 종국에는 패트릭과 로건을 끌어들여 미카엘을 죽이기까지 했고….
'가만가만…. 지금 패트릭하고 로건이 좋아하는 건 나잖아. 그럼 로제타가 된 아이리스가 미카엘을 죽일 수 없는 거 아닌가?'
그건 그 나름대로 다행이라고는 해도, 완전히 다행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녀가 진짜로 남편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은 미카엘이었으니까. 패트릭과 로건은 자신을 짝사랑하는 채로 곁에서 친구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랐다.
"이 소설은 애초에 역하렘이었다고~. 이건 원래 줄거리가 아니잖아."
하기야 원래 줄거리대로라면 아이리스는 패트릭과 커플이 되어야 옳기는 했다. 미카엘에 의해 감금되어 있다시피 한 아이리스를 구출하고 그녀와 결혼하는 것은 패트릭이었으니까. 로건이 아이리스의 애인이 되어 곁에 남긴 하지만.
"가만…."
아이리스는 반짝 눈을 떴다.
"그래! 아이리스는 결국 패트릭을 좋아했잖아! 지금 아이리스가 깃들어 있는 로제타의 몸도 패트릭을 좋아했었고…. 몸이 가진 기억이 있을 테니, 패트릭과 아이리스! 아니, 로제타를 이어 주면 돼!"
그쪽이 본래의 원작이 이어지는 흐름이니, 그 둘도 무시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문제는 미카엘의 마음인데….
''그' 미카엘이 로제타가 된 아이리스를 포기할까?'
절대, 절대 무리였다. 세상이 두 동강 세 동강 나고, 하늘이 가라앉아 땅이 된다고 해도 미카엘이 로제타를 포기하는 일 같은 건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아이리스는 자신이 포기하는 편이 더 빠를 거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대로는 너무 억울했다. 자신이 있는 이 몸이 주인공이 아닌가!
"그, 그래! 노력은 해 보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포기하는 건 너무 억울하잖아! 그러니까…."
패트릭과 로제타를, 일단 이어 줘 보는 걸로!
'…미카엘에게 걸리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지만.'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했으나 아이리스는 밀어붙여 보기로 작정했다. 최애를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잖은가!
좀 무섭긴 해도 손 놓고 빼앗길 수는 없었다.
* * *
황궁의 마차는 빠르게 수도로 향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자작가의 작은 영지가 멀어지고 들판 한가운데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마차가 달렸다.
미카엘의 말에 따르면 오늘 밤은 로제타의 친정이라 할 수 있는 휘르센 백작가에서 보내고, 내일은 황제가 열어 주는 파티에 참석하면서 시댁인 황궁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이튿날에 다시 수도를 떠나 공작령으로 내려가는 것이 그들의 일정이었다.
'다시 수도로 돌아오다니….'
물론 필립과 결혼했어도 인사를 드리러 수도로 돌아오기는 할 거였다. 그러나 그때는 잠깐 수도에 있는 휘르센가의 저택에서 잠만 자고 가는 것이지, 황궁에서 열리는 커다란 파티에 참석할 예정은 없었다.
'사람들과 만나기 싫어.'
미카엘과 있을 때는 거의 의식하지 않았지만, 수도가 가까워져 오니 불편해졌다. 수도의 사교계에 있는 대부분의 귀족들이 로제타를 악녀라 욕하며 수군거렸다. 그 사람들 앞에 다시 설 생각을 하니 섬을 떠나기 전에 먹은 아침이 얹힐 것 같았다.
"로제타."
불안이 표정으로 다 드러난 모양이었다. 다정하게 부르는 미카엘의 목소리에 로제타는 고개를 돌렸다. 로제타는 필립과 결혼해서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할 작정이었다. 수도의 사교계에 다시 발붙이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필립이 소유한 지방 영지나, 혹은 그와 이혼한 이후에 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정착하며 사는 것도 생각했었다.
결혼한 이후 황제가 여는 파티에 다시 참석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않는 한미한 지방 영주의 부인이 아니라, 황자이자 공작인 미카엘의 부인으로.
'분명 날 끌어내리고 싶어 안달을 하겠지.'
"로제타."
바싹 몸을 붙인 미카엘이 로제타를 끌어안았다. 강인한 팔이 등을 감싸고 그녀의 몸을 미카엘의 품에 밀착시켰다. 옷자락 너머로 느껴지는 단단한 가슴 뒤에는 두근두근 뛰고 있는 미카엘의 심장 소리가 전해져 왔다.
"제가 당신의 곁에 있습니다. 누구도 당신을 해치지 못할 거예요. 당신이 다시는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제가 모든 힘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 며칠만 참아 주세요."
대신 그는 평생에 걸쳐 로제타를 행복하게 하는 데 온 힘을 쏟을 계획이었다. 로제타는 흐렸던 표정을 풀며 미카엘을 보았다.
"아니에요. 어차피 결혼하고 나서 며칠은 휘르센 백작가에서 보내기로 했었잖아요. 황제 폐하께서 파티를 열어 주신다고 해서 놀랐지만….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일이니까요."
만약 필립이 미카엘이 아니었어도 아주 가끔은 수도로 올라왔을 터였다. 거기다 자신이 진짜 가해자인 것도 아닌데 마냥 피해 다니는 것은 억울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밝혀내냐고.'
두어 명이 입을 모아 거짓말을 하는 것도 밝히기 힘들었다. 하물며 여기는 핸드폰도, 감시카메라도 없는 중세 마법세계였다. 수정구슬에 녹화하는 방법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법사를 고용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휘르센 백작가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이다. 더더군다나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뒤집어씌우는 영애가 수십여 명에 달했다. 그것을 알게 된 로제타는 자신의 힘으로는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각개격파할 생각도 해 보긴 했는데.'
잠깐 영애 하나를 물고 늘어진 것 가지고 아버지가 한 달간 방에 가두어서 포기했다. 영애 한 명의 자백을 받는 것도 몇 개월이 걸릴 판국에, 자꾸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는 영애가 늘어나니 기가 막히는 노릇이었다.
"사람들이, 미카엘 님 앞에서 제 욕을 할지도 몰라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미카엘이 단호하게 말했으나 로제타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악녀라고 불리는 여자와 사귀어 본 적이 없었다. 로제타가 요양을 가 있던 지방 도시에서 로제타는 그저 수도에서 온 귀족 영애였을 뿐이니까.
"그럴 거예요. 미카엘 님과 결혼을 했다고 해도 제가 로제타인 건 변함이 없으니까요. 미카엘 님이 절 아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에 대해 미카엘에게 참으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이런 종류의 일은 각오를 해도 쉽지 않은 일이기에 미리 경고해 주고 싶었다.
"로제타."
팔을 푼 미카엘이 진지한 얼굴로 로제타의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로제타는 지금 그 눈을 보면 울 것 같아서 시선을 피했다.
"로제타 아덴."
미카엘에게 그렇게 불린 것은 처음이어서 무심코 그를 보았다. 미카엘의 녹색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 당신은 휘르센이 아니라 아덴입니다. 제 부인이고 황족이지요. 설사 당신의 누명이 풀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당신은 이제 황족입니다."
로제타가 뒤집어쓴 혐의는 대부분 파티장에서의 은밀한 것들이었다. 드레스에 술을 끼얹거나, 머리를 망가트리고, 창고에 가두고…. 계단에서 떠밀었다는 누명까지 썼었다. 그때는 다행스럽게도 제때 나타난 패트릭이 아이리스를 받았다.
그 일로 고발까지 당할 뻔했으나, 복도에서 나타난 시종이 아이리스를 떠민 것이 로제타가 아니라고 증언해 주었었다. 물론 그 시종은 로제타를 걱정해서 미카엘이 그녀의 감시로 붙여 준 시종이었다.
몇몇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것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것들은 신분이 높은 영애라면 너그럽게 보아 넘길 수 있는 것들뿐이었다.
신분제 사회란 그러했으니까.
"황족에게 그런 것들은 흠도 되지 않습니다. 설사 앞으로 로제타가 실제로 그런 짓을 벌인다 하더라도 제가 당신의 방패막이가 되어 줄 겁니다."
만약 로제타가 황녀였다면, 그런 행동들은 젊은 날의 치기 어린 행동으로 가볍게 넘겨졌을 것이다. 계단에서 아이리스를 떠밀었던 행동조차, 몇 주의 근신이나 별장에서 한두 달 요양 정도로 끝날 수 있었다.
"그러니 로제타…. 아무것도 겁먹을 필요 없습니다. 당신은 이제 황족이, 나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미카엘의 그 말에 로제타는 멍하니 그를 보았다. 사실 로제타는 보호까지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저는…. 저를 믿어 주는 사람이 생긴 게 기뻐요. 아무도 안 믿어 줬는데. 제 시녀인 마리 말고는 진짜 아무도…."
눈물을 터트리는 로제타를 미카엘은 품에 안았다.
로제타는 그저 저를 믿어 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 생긴 것으로 만족했는지 모르지만 미카엘은 아니었다. 내 귀한 사람의 눈에 눈물을 뽑았으니…, 저들의 눈에서는 피눈물과 고름을 뽑아낼 차례였다.
* * *
황궁의 전령으로부터 미카엘과 로제타가 오늘 도착할 거라는 소식에 휘르센 백작가는 매우 바빴다. 그들의 결혼을 축하하는 파티는 내일 황실에서 열리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니 백작가에서 따로 축하연을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머물기도 하루만 머물 것이고.
그러나 황족이 된 딸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준비할 것은 많은 법이었다.
휘르센 백작부인인 셀리나는 바쁘게 저택 안을 오가며 지시를 내리는 시녀장을 기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엔디미온은 심정이 복잡한 모양이었지만, 셀리나는 달랐다.
'그래. 내 딸인데, 그 애의 예쁜 용모가 어디로 가겠어?'
그들의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들은 나름의 애정을 가졌으나 퍽 무심하게 대했다.
셀리나는 지극히 귀족적인 여인으로 육아는 온전히 하녀와 보모의 몫이었다. 그녀는 임신과 출산으로 그동안 못 해 본 것을 하고 몸을 원상태로 만드는 것으로 바빴다.
반면 엔디미온은 막 백작가를 물려받아 사업과 영지 경영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아이에게 나름의 애정은 보였으나 딱 그 정도였다. 육아에 신경 쓰기에는 각자 중요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아이가 보모 손에서 사랑을 받고 여덟 살이 되었을 무렵 교육이 시작되었다. 엔디미온은 로제타가 그 어떤 것에도 재능이 없고 참을성이 없음을 깨달았다. 제 자식의 어리석음에 실망한 엔디미온은 그 이후로 로제타에게 관심을 끊었다.
이즈음 백작가로 제럴드가 입양되었으므로 엔디미온의 관심은 제럴드에게 옮겨졌다. 엔디미온은 죽은 형과 사이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엔디미온의 형은 여자를 싫어하는 이였고, 특히나 아둔한 이를 경멸했다. 그는 백작가를 어리석은 로제타가 물려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제 핏줄에 나름대로 애정을 가지고 있던 엔디미온이었으나, 로제타가 백작가를 망하게 할 거라는 형의 말에 완전히 반기를 들 수는 없었다. 엔디미온이 보기에도 로제타는 경솔해 보였으며, 예쁜 것 말고는 소용이 없다 느껴졌다.
그럴 즈음, 제럴드에게 경쟁의식을 느낀 셀리나가 로제타의 교육에 힘을 써 보았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로제타는 놀러 다니는 것만 좋아했다.
그래서 엔디미온은 순순히 형의 말에 따랐다. 로제타에게는 억울한 일이 되겠지만, 이대로 휘르센 백작가가 몰락의 길을 걷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럴드가 로제타를 좋아해 주면… 나름대로 온건한 끝을 맺을 수 있다 여겼지만, 로제타는 어딘가에서 먼발치로 본 란스필드 영식에게 꽂히고 말았다.
그 이후로는 망신스러운 일의 연속이었다.
로제타는 수백 통에 달하는 연서를 패트릭에게 보냈으며, 패트릭이 아이리스를 좋아한다는 소문에 그녀에게 칼을 갈았다.
그러다 이런저런 사고가 터지고, 수도를 떠나오게 된 것이다.
물론 그녀의 '요양'에 그녀의 부모는 함께하지 않았다. 엔디미온은 수도에서 진행하는 사업이 있었고, 셀리나는 사교 모임으로 바빴으니까. 가끔 로제타가 다른 사고를 치지 않나 살펴보느라 사람을 보내고, 용돈을 부쳐 주는 것이 전부였다.
대부분의 귀족가의 가정이란 그런 식이었으므로.
'이렇게 잘될 아이를…. 괜한 걱정이었어!'
예쁘게 낳아 놓은 자신의 덕이라는 생각에 셀리나의 가슴이 펴졌다. 이들은 자식에 대한 믿음도, 대단찮은 애정도 없었지만, 로제타의 용모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뛰어났다. 묘하게도 사교계에서 내로라하는 미인 못지않게 로제타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빙의된 로제타는 그 반응이 설정값인가 했지만.
"마님! 오십니다!"
바쁘게 응접실로 달려온 시녀가 셀리나에게 전했다. 셀리나는 얼른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에게 로제타는 금의환향하는 미운 오리 새끼와 다름이 없었다.
'내 딸!'
백작저 앞에는 이미 엔디미온과 제럴드가 나와 있었다. 엔디미온은 공작의 장인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로 고심하고 있었다. 제럴드는 근심스러운 표정이었다.
패트릭과 로건으로부터 들은 말이 머릿속을 떠나가지 않았다. 그는 로제타가 감히 미카엘을 협박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역시 미카엘 황자가 뭔가 속셈이 있어 로제타를 이용하려는 거겠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리스를 괴롭히는 영애들은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던 미카엘이었다. 로제타가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거라면, 오라버니인 자신이 로제타를 지켜야 했다.
로제타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조카딸이자 혈육이었으므로.
지금은 큰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 그분을 제럴드는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평민인 자신을 나쁘지 않게 대해 준 양아버지와 양어머니와는 별개였다.
천천히 속도를 줄인 마차가 백작저의 앞마당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황실의 것이 분명한 마차는 물론 그를 호위하는 기사단의 존재만으로 저택 앞마당이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마차에서 뛰어내린 시종이 백작가의 가족들에게 예의를 표시하고는 마차 문으로 달려갔다. 재빨리 마차의 문을 여는 시종의 몸놀림조차도 절도 있어 보인다고, 백작가의 식솔들은 수군거리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안에서는 여행용의 가벼운 차림을 한 로제타가 미카엘과 같이 내려오고 있었다. 로제타의 눈이 약간 부은 것처럼 보였으나, 엔디미온과 셀리나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서 오렴, 내 딸!"
셀리나는 앞으로 나서며 로제타를 끌어안았다. 로제타는 셀리나의 팔 안에서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사실 원작의 로제타는 지금의 로제타에게는 원수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이 두 사람은 원수의 부모인 셈인데….
'로제타의 부모님은 미묘하게 우리 부모님과 비슷해 보여.'
빙의된 윤승아의 부모님은 로제타의 부모님보다도 무심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분들은 아이가 생겨서 결혼을 했고, 승아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이혼했다. 그 후로 승아는 할머니와 고모의 손에 의해 자랐다.
생활비와 학비는 보내 주었지만, 그 외에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들에게 각자 애인이 있고 취미생활을 즐기는 데 바쁘다는 것을 안 이후로 승아도 만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SNS가 은인이었지.'
그것으로 그들의 삶을 엿보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부모의 관심을 끌려 소용없는 노력을 거듭하고 있었을 것이다.
로제타의 부모님은 그들보다는 나았다. 최소한 로제타의 상태를 가끔은 살피기도 하고 걱정도 해 주니까. 그래서 원작 로제타의 부모라는 것을 알면서도 함부로 대하기 어려웠다.
"잘 지낸 거야? 응? 편지 한 장 안 보내고…. 이 엄마는 섭섭해지려고 했어."
"장모님, 장인어른."
로제타의 뒤에 선 미카엘의 모습에 셀리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세상에 엔디미온만큼 잘생긴 남자는 없다고 생각하는 이였지만, 미카엘의 모습에는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커흠. 부인."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미카엘을 쳐다보는 셀리나의 모습에 엔디미온이 눈치를 주었다. 겨우 정신을 수습한 셀리나가 화사한 미소를 띠었다.
"어서 오세요, 아덴 공작님."
셀리나의 안내를 받아 들어가는 미카엘을 제럴드는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아이리스와 같이 있는 미카엘을 몇 번이나 보았지만….
'저게 미카엘 황자라고?'
아이리스에게는 몇 번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었지만, 매우 냉정한 황족이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 있는 미카엘은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냉정한 구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따금씩 다정한 모습이 보였다. 로제타를 바라볼 때는 다른 사람인 것 같았고.
'설마 미카엘 황자가 진심으로? 그럴 리 없을 텐데….'
제럴드는 로제타가 갑작스럽게 결혼한다는 얘기를 듣고 걱정이 되어 필립과 로제타가 만나는 것을 몰래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때의 필립은 다정했지만, 어딘가 억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수상하게 여겼었는데, 지금 보니….
'로, 로제타에 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정찬이 준비된 식당에 모여 식사를 하는 사이 미카엘이 몇 번이나 로제타를 챙기는 것이 보였다. 식사 시중을 들어 주는 것이 익숙한 듯, 아예 고기까지 잘게 잘라서 접시째로 건네주는 것을 백작 부부와 제럴드는 멍하니 지켜보았다.
로제타는 별생각 없이 받아먹다가 가족들이 쳐다보는 것을 보고 머쓱해했다.
"커흠. 미, 미카엘 님도 드세요."
"로제타 먹는 거 보고요. 크기는 적당합니까? 먹기 불편하지는 않습니까?"
"딱 좋아요."
쳐다보는 눈이 없다면 아예 먹여 줄 태세였다. 로제타가 주변의 눈치를 보는 듯싶자 미카엘의 시선도 주변으로 돌아갔다.
백작 부부와 제럴드는 재빨리 자신들의 식사로 돌아갔다. 엔디미온은 가장 좋은 와인을 대접하면서 미카엘에게 말을 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셀리나는 미카엘이 로제타를 대하는 것을 보고 완전히 안도한 듯했다.
'저게 다 연기인 건 아니겠지.'
연기라고 친다면, 대체 뭐에 이용하려고 저렇게 공을 들이는지 무서울 지경이었다. 로제타를 악마에게 제물로 바치기라도 하는 건가?!
디저트까지 살뜰하게 챙겨 먹은 로제타는 미카엘과 같이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셀리나로부터 그녀의 침실을 새로 꾸몄다는 얘기를 들은 뒤였다.
"황자님께서 우리 로제타에게 푹 빠지신 것 같지요?"
"…신분을 속이고 결혼식을 치러서 설마 싶었는데. 다행이야."
태평하게 웃고 있는 백작 부부를 보는 제럴드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저 미카엘 황자가 로제타를 좋아할 리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도, 로제타를 바라보는 미카엘의 눈빛은 진심인 것만 같고….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인데…. 계속 지켜봐야 하나?'
어차피 그들은 황제가 열어 주는 파티가 끝나면 아덴 공작령으로 내려갈 예정이었다. 제럴드는 기사단의 일이 있으니 로제타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래. 그때까지만이라도 주의 깊게 살펴보자.'
혹시 로제타에게 위험한 일이 생긴다면 그는 로제타를 보호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 휘르센 백작가의 후계자이자 오빠기는 했으니까.
* * *
고작 1년하고 몇 개월 살았을 뿐이지만….
'내 방이었는데!'
로제타는 집을 비운 한 달 사이에 러브호텔풍으로 바뀐 침실을 보고 좌절했다. 셀리나가 혹여 미카엘과 로제타 사이가 안 좋으면 어쩌나 해서 꾸민 방이었다.
하트 모양의 침대에 붉은색 레이스의 야시시한 커튼을 바라보며 로제타는 이걸 쥐어뜯어 놓아도 되는가로 고민했다.
'안 되겠지. 그래도 신경 써 주신 건데….'
침실 문을 닫은 미카엘이 다가오는 기척에 로제타는 홱 돌아보았다.
"제 원래 방은 이렇지 않아요! 이건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제멋대로…!"
미카엘은 피식 웃으며 로제타부터 끌어안았다. 실은 마차에 올라탔을 때부터 이렇게 하고 싶었지만, 로제타가 기운이 없는 듯해서 할 수 없었다.
"흡?!"
고개를 숙인 미카엘이 부드러운 키스로 입을 막는 것에 로제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에 대해서 변명할 생각으로 말을 꺼냈는데, 미카엘은 이 방이 퍽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로제타의 입술을 느릿하게 빨며 미카엘은 제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저녁때까지 참아 보려고 했지만. 방을 이렇게 꾸며 주신 것을 보면 낮에도 괜찮다는 의미겠지요?"
황제가 여는 파티는 내일 저녁쯤에 열린다. 그러니 오늘은 집에서 느긋하게 체력을 회복하는 줄 알았더니?!
"그, 그그그그래도! 이따 저녁 먹으러 내려갈 거잖아요!"
중간에 엔디미온이 미카엘을 부르러 사람을 보낼 수도 있었다. 뭔가 상의하고 싶은 게 있다는 핑계로. 로제타가 다급히 그 사실을 지적하려는 찰나 미카엘이 환하게 웃었다.
"아까 로제타가 방을 구경하는 사이 시종에게 전해 두었습니다. 긴 마차 여행으로 피곤해서 쉴 테니 방해하지 말라고…. 미리 말해 뒀으니, 장인어른도 장모님도 부르지 않으실 겁니다."
그 두 사람이라면 로제타가 미카엘의 아이라도 가져 빼도 박도 못해야 공작부인의 위치가 안전하다고 생각할 터였다. 그래서 침실도 이렇게 꾸며 놓았을 테고.
미카엘이 이 침실을 보고 천박하다거나, 휘르센 백작가는 수치심이 없다는 말을 하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던 로제타는 안심했다. 미카엘이 그런 심한 말을 할 리 없을 테지만,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람들은 쉽게도 로제타에게 그런 말을 해댔으니까.
"…사람이 생각하는 틈에 옷 벗기지 마세요!"
"그럼 어떨 때 옷을 벗기면 됩니까? 이렇게 귀여운 표정으로 절 쳐다보고 있을 때?"
속삭이며 미카엘은 이미 버클이 풀려 있던 로제타의 바지를 끌어 내렸다. 소환수를 타고 다시 마차로 갈아탔다고는 해도 5시간 넘게 이동했다. 당연히 땀이 났을 것이므로 로제타는 당장 미카엘에게 안길 수는 없었다. 먼저 씻어야 했다!
"자, 잠깐만요! 땀 났을 텐데, 목욕부터…."
"그럼 같이 들어가죠. 피곤할 테니 내가 씻겨 줄게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미카엘에 로제타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전이야 기진맥진해질 때까지 안겨서 얼렁뚱땅 그의 목욕 시중을 받았다지만, 여기는 휘르센 백작가였다. 신혼여행을 위한 그 성에서라면 모를까, 집에서는 그런 짓을 하는 게 창피했다.
"……."
"시, 싫어요. 시녀를 불러서 씻고 나올 테니까…."
부끄러워하는 로제타를 미카엘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귀 끝까지 붉어진 얼굴을 보고 있자니 한입에 냉큼 집어삼켜도 부족할 것 같았다.
'더 부끄러워해도 좋을 것 같은데….'
이상한 취향에 눈떠 버린 것 같았지만, 상대가 로제타이니 어쩔 수 없다 싶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취향이 되어 버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소환수를 타고 40분가량, 마차에서 4시간, 백작저에서의 식사로 3시간…."
바지가 무릎 아래로 내려간 상태로 미카엘과 대치중이었던 로제타는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싶었다. 미카엘은 뺨을 물들이며 항의했다.
"무려 8시간이나 참았잖습니까! 아직 키스 한 번밖에 못 하게 하고! 너무하시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십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아, 아침에도 하시고는…."
"그때도 물론 죽을 만큼 행복했지만! 소환수 위에서 너무 귀여운 모습을 보여 주셔서,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장인 장모님 앞에서 추태를 보일 수 없어서 내내 참고 있었지만, 더는 무리예요, 로제타!"
로제타를 덥석 끌어안은 미카엘이 안 놔주겠다며 비비적거렸다. 반쯤 바지만 내린 로제타와는 달리 미카엘은 벌거벗은 상체에 바지만 입고 있는 상태였다.
"지금 하게 해 주든가, 목욕 시중을 들게 해 주세요! 아니면 로제타의 그곳을 한 번 빨…."
미카엘의 입에서 음탕한 말이 튀어나오려는 기척에 로제타는 자신도 모르게 미카엘의 입을 막고 말았다. 신혼여행지에서야 그들 둘뿐이었지만, 휘르센 백작가의 침실은 누군가 대화를 엿듣고 있을지도 몰랐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들어도 망신을 당하는 건 저뿐이니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저도 부끄럽다고요!!"
말하는 사이 로제타를 한 팔로 안아 든 미카엘은 능숙하게 그녀의 바지를 벗겼다. 늘씬한 두 다리를 바라보며 미카엘은 야릇하게 눈꼬리를 휘었다.
"거길 핥아 드리는 게 부끄러우시다면, 발을 핥는 건…."
"절대 싫어요!"
* * *
로제타의 걱정대로 그녀의 방 근처에서는 엿듣는 이가 있었다. 휘르센 백작가의 안주인인 셀리나였다.
'알겠니, 이에나? 미카엘 황자가 겉으로야 친절한 모습을 보이고 있을지 모르지만. 단둘이 방에 남아 있는 경우는 다른 모습을 보일지도 몰라.'
'혹시 우리 로제타를 구박하는 것 같으면 엄마인 내가 알아야 하지 않겠니?!'
그렇다고 엿듣기에는 백작부인 체면이 있으니 시녀인 이에나를 동원한 것이었다. 이에나는 시녀이기는 했으나 휘르센 백작가로 들어오기 전에는 신관병이었으니, 몸이 제법 날렵했다. 기척을 숨길 줄도 알았고.
'구박은커녕 사랑받고 계신데요?'
그것도 듣기만 해도 코피 터질 것 같은 목소리로 애걸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듣는 쪽이 다 몸이 간지러워질 지경이었다.
이에나는 엿듣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부디 변태처럼 보이지 않길 바라며 귀를 쫑긋 세웠다. 저러다 침대로 가는 듯하면 그만 엿들어야 할 테지만….
'크험험! 이것도 다 아가씨의 안전을 위한 일이야! 미카엘 황자님이 언제 태도를 바꾸실지 모를 일이니까.'
하고 충혈된 눈으로 벽을 훔쳐보며 귀를 바짝 붙였다. 긴장감에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데, 그 순간 소리가 딱 끊어졌다. 벽 너머의 방에서 말을 멈췄다기보다는 안쪽의 소리가 갑자기 싹 다 사라진 느낌이었다.
'앗!'
그러고 보니 미카엘 황자는 마법사였다. 그것도 대마법사!
'엿듣고 있던 게 들켰나?'
이에나는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고는 벽에서 떨어졌다. 마법사인 미카엘이 방 안에 방음 마법을 걸었다면 벽에 귀를 붙이는 것 정도로는 엿들을 수 없었다.
'뭐…. 마님이 바라시는 대로 미카엘 황자님이 아가씨를 잘 대해 주시는지는 확인했으니까.'
발뒤꿈치를 든 이에나는 살금살금 로제타의 옆방을 빠져나갔다.
* * *
이대로 침대에 눕혀질 수 없었던 로제타는 미카엘에게 목욕 시중을 받는 것으로 합의했다. 그에게 사랑받는 장소가 그들만의 보금자리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다.
'욕실은 방음이 잘 안 되는데….'
미카엘에 의해 모든 옷이 벗겨진 로제타가 꾸물거리며 그를 돌아보았다. 미카엘은 로제타의 허락을 받아 낸 것에 만족하고 바지를 벗고 있었다. 무시무시할 만큼 단단하게 솟은 미카엘의 페니스를 보고 홱 고개를 돌렸다.
당황하는 로제타를 보고 미카엘은 피식 웃었다. 벗은 바지를 놔두고 로제타의 곁으로 온 미카엘은 그녀를 품에 안으며 뺨과 입술에 키스를 쏟아 냈다.
"…더는 참을 수 없다고 말했잖습니까. 로제타."
속삭이며 로제타를 안아 올린 미카엘은 욕실로 향했다. 수도에 있는 귀족가의 저택은 대부분 수도가 연결되어 있었다. 휘르센 백작가의 저택은 대저택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일반적인 귀족의 저택이었지만, 수도 시설은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다만 방이나 욕실의 크기는 공작저보다는 당연히 몇 배는 작았다. 하나 미카엘은 도리어 그 크기가 마음에 든 듯했다.
'로제타가 멀리 도망 못 치겠어.'
저 좁은 공간 안에서 이리저리 몸을 뺄 로제타를 생각하니 온몸의 피가 들끓는 듯했다.
성큼성큼 욕실로 들어간 미카엘은 로제타를 내려놓고 방음 마법진을 펼쳐 주변을 감쌌다. 로제타의 귀여운 목소리는 그만의 것이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들려줄 수 없다. 특히나 제럴드는 로제타의 친오빠도 아니었으니, 요주의 대상이었다.
'아이리스 리온을 짝사랑하고 있다고 들었지만, 그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모를 일이지….'
욕실 문을 걸어 잠그고 돌아서자 로제타가 발갛게 얼굴을 물들인 채로 주춤거리고 있었다. 귀여워서 미카엘은 마른침을 삼켰다.
"음. 머리부터 감겨 드릴까요?"
혼자 몸을 씻는 것을 귀찮아하는 로제타였다. 특히 여인이라는 이유로 길게 유지하고 있는 머리카락을 감는 것을 성가셔했다.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좋아하는 것 같긴 했지만.
로제타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미카엘은 가볍게 입 맞추고는 욕조 안으로 들어가 길게 눕게 했다.
"춥습니까? 물을 틀어 놓을까요?"
"조금…."
미카엘은 그 즉시 욕조에 달린 수도꼭지의 물을 틀었다. 욕실 한쪽에는 사시사철 따스한 물이 담겨 있는 물통도 놓여 있었다. 마석을 달아 물의 온도를 유지하는 그것은, 매일 아침 새로운 물로 채우도록 되어 있었다.
욕실에서 물 주전자를 찾아낸 미카엘은 그것으로 물을 떠서 로제타의 머리카락을 적셨다. 선반에는 로제타가 좋아하는 향기의 샴푸와 목욕 용품이 놓여 있었다.
'오늘은 이 향으로 할까?'
점심식사의 디저트로 나온 레몬타르트를 로제타가 맛있게 먹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상큼한 향을 좋아하는 것을 보았으니 이 향도 좋을 것 같았다.
레몬향 샴푸로 머리를 감기자 로제타가 힐끗 미카엘을 보았다. 달콤하고 상쾌한 향기가 기분 좋았다.
'바로 덮칠 것처럼 말하더니….'
즐거운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감겨 주고 있는 것을 보니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미카엘이 로제타의 시중을 들기 시작한 것은 며칠 안 되었지만, 제법 능숙한 손길이었다.
'기분 좋아. 이런 것에도 마법이 작동하는 걸까?'
머리카락에 거품을 내고 두피를 마사지하는 것임에도 온몸의 피로가 씻기는 듯했다. 나른해진 로제타의 표정을 보며 미카엘은 입맛을 다셨다.
"불편하지는 않습니까, 로제타?"
"응. 기분 좋아요. 으음…."
눈을 감으며 한숨을 쉬자 로제타의 머리카락을 만져 주던 미카엘이 고개를 숙여 뜨거운 입술을 포갰다. 혀가 보드라운 입술을 가르며 로제타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혀를 휘감아 끈적하게 달라붙는 것을 느끼며 로제타는 신음을 흘렸다.
미카엘은 키스까지도 감미로웠다.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한숨마저 달콤하게 느껴질 정도로. 미카엘은 한 손으로는 로제타의 머리를 감기며 다른 손으로는 로제타의 턱을 잡은 채로 정신없이 입 맞췄다.
그녀의 장밋빛 입술은 아무리 탐하고 맛을 보아도 그를 허덕이게 만들었다. 숨 쉬는 시간마저도 아까울 정도로 그녀와 입술을 맞대고 있는 시간이 달콤했다.
"으음, 아흣…."
어느새 내려온 손바닥이 그녀의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욕조에 틀어 놓은 적당히 따스한 물이 벌써 허리께까지 차올랐다. 손에 묻어 있던 거품이 가슴을 적시는 게 간지러운지 로제타가 몸을 비트는 것이 보였다.
"로제타…."
안타까운 듯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미카엘은 온몸으로 욕조 속의 그녀를 끌어안았다. 거듭 포개진 입술에 로제타가 헐떡이는 것을 보았는데도 입술을 떼기 어려웠다.
나는 너를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아. 그래서 이렇게 온몸이 네게만 반응하는 게 아닐까?
머리를 감겨 주고 몸을 씻겨 줄 때까지는 참으려 했건만. 이미 안달이 나 있는 몸은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미카엘은 뜨거운 한숨을 토해 내며 욕조 속으로 들어갔다. 일인용의 비교적 넓은 욕조라고는 해도 건장한 남자 하나가 들어오자 물이 가슴께까지 차올랐다.
"앗, 미카엘 님…."
당황하여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로제타의 몸을 뒤덮듯 끌어안으며 거듭 입술을 포갰다. 부드러운 입술을 마음껏 빨며 로제타의 몸을 어루만지자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하읏, 음…. 으으응……."
작은 유두가 빳빳하게 일어서며 자극에 대항하는 것이 귀여웠다. 손에 거품도 묻었겠다, 마음껏 비비고 굴리고, 아프지 않게 꼬집기까지 하며 괴롭히자 로제타의 표정이 흐려졌다.
"아앗!"
마침내 놓여진 입술에서 높은 교성이 새어 나오자 로제타는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미카엘은 웃으며 로제타의 두 다리를 들어 올려 욕조 벽에 걸쳤다. 좌우로 다리를 크게 벌린 자세에 로제타의 입이 벌어졌다.
"그 표정도 귀여워요, 로제타."
"하으응!"
거품기가 완전히 빠지지 않아 미끈거리는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왔다. 마음이 급한지 파고든 손가락이 집요하게 안을 비비는 것에 허리가 움찔 튀었다.
"앗, 아아…. 안 돼, 으응…. 아하앙…. 으읍!"
표정을 흐리며 입을 다무는 로제타에 미카엘이 피식 웃었다. 아침 동안 듬뿍 사랑해 주었던 탓인지 안은 금세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그래? 하긴, 백작가의 저택이 방음이 잘 되는지 아닌지는 주인인 로제타가 더 잘 알겠지…."
"흐으으응…."
달콤하다 못해 관능적이기까지 한 손가락 놀림에 로제타는 얼굴을 붉히며 눈빛으로 애원했다. 조금이라도 입을 벌리면 큰 소리가 나 버릴 것 같았다.
"그래도 입술은 깨물면 안 돼. 귀여운 입술에 상처를 냈다가는 로제타가 너무 기분 좋아서 비명을 지를 만큼 느끼게 해 줄 테니까…. 알겠지?"
미카엘과의 잠자리는 두 가지 버전으로 나눌 수 있었다. 아직 이성이 남아 있는 채로 흥분했을 때와, 실낱같은 이성까지도 날아가 버렸을 때. 로제타가 지난번에 요구한 존댓말을 지키고 있을 때는 가늘게라도 이성이 남아 있을 때였고, 지금은….
"아, 귀여워. 로제타…. 이렇게 조금 부풀어서. 괴롭혀 주고 싶어. 그만큼 기분 좋은 거지? 그렇지?"
물속으로 들어온 또 하나의 손이 통통하게 부푼 꽃술을 주물렀다. 그 아래쪽에 뾰족하게 솟은 꽃눈을 발견하고는 손끝으로 음미하기 시작했다.
"으흐흐…. 으응, 앙 대에…."
손끝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떨릴 만큼 기분 좋아진 곳이었다. 그곳을 그렇게 문질러 버리면 교성이 새어 나오고 만다. 전신을 빨갛게 물들이며 쾌락을 견디는 로제타의 모습에 미카엘의 녹색 눈동자가 욕정으로 번들거렸다.
"하아…. 만지는 것만으로도 가 버리겠어. 미칠 것 같아, 로제타…. 빨리 넣고 싶어. 어서 넣고 로제타가 미칠 때까지 비벼대고 싶어. 로제타는 그러면 앙앙 울면서 내게 매달리겠지…."
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도, 저택 사람들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로제타의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미카엘은 얼른 그런 로제타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된 로제타…. 완전히 그의 것이 된 로제타였다.
"사랑해, 사랑해…. 로제타. 내 사랑……."
"하읏! 음, 으흐으으응……!"
허벅지까지 부들부들 떨며 로제타는 신음을 삼켰다. 미카엘의 달콤한 괴롭힘에 입구가 녹아내릴 것 같았다. 젖은 속살을 헤집고 비벼대는 손끝에 허리가 들뜨고, 안이 술렁이며 씰룩씰룩 수축하는 것이 느껴졌다.
'안 돼! 이러다가는 진짜 소리가….'
"읏, 아앗! 아아…. 흐읍!"
큰 소리가 새어 나갈 찰나 미카엘의 뜨거운 입술이 로제타의 입술을 뒤덮었다. 로제타는 안도하는 마음에 눈물까지 흘리며 그의 키스를 받았다. 달콤한 손가락 놀림에 도달한 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을 느끼며 키스를 받자니 몸속 깊이 감미로운 감각이 퍼져 나가는 듯했다.
그게 안도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미카엘이 주는 쾌락이 좋아서인지 알 수 없었다. 로제타가 멍히 키스를 받고 있자니 미카엘이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이제는 로제타가 키스해 줘. 나는 로제타 안에 내 것을 넣으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니까."
이전보다 더 로제타를 좋아했다. 결혼하기 전보다 더.
그래서인지 그녀와 관계를 거듭할수록 이성을 잃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로제타가 완전히 이성을 잃은 그보다는 상냥한 태도를 유지한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안간힘을 다해 참고 있었다.
안을 부드럽게 헤집던 손가락이 빠져나오고 그것보다 몇 배는 더 큰 것이 비집고 들어왔다. 이미 한 달이나 받아들인 것이건만, 처음 밀어 넣을 때는 이렇게도 조였다.
"으음, 로제타…."
압박감에 두려움을 느낄 법하면서도 미카엘이 이렇게 불러 주면 두려움이 날아가 버렸다.
로제타는 미카엘의 목에 팔을 두르며 그의 입가에 입술을 눌렀다. 다급히 입술을 맞대려다가 실수한 것이다. 그에 흥분해 버린 미카엘이 로제타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깊숙이 허리를 묻었다.
"아흐흑!"
커다란 것이 속살을 벌리며 깊숙이 자리했다. 기어이 뿌리까지 들어와 안을 문지르기 시작한 것에 허리가 파들거렸다.
'무, 물이 들어와서….'
가뜩이나 감당하기 버거운 것이 물까지 같이 딸려 들어오니 더 크게 느껴졌다. 안이 황홀하게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에 반사적으로 조이자니 미카엘의 표정이 흐려졌다.
"으윽, 로제타…!"
"히익!"
흥분한 미카엘이 거칠게 허리를 쳐대기 시작했다. 물이 출렁이며 욕조 밖으로 쏟아졌으나 신경 쓰는 이가 없었다.
"으앗! 아아, 앙 대…. 아흐흐…. 조금만 천천히…. 아앗!"
키스해야 하는데, 그래야 신음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을 텐데도 그럴 여유가 없었다. 커다란 페니스가 안을 휘젓고 구석구석까지 맛보는 느낌에 배 속이 음란한 자극으로 오그라드는 듯했다.
"기분 좋아, 로제타…. 너무 부드러워서……. 흐윽!"
"아! 아앗! 안 돼! 앗…."
미카엘에게 키스할 수 없다면 손으로 입을 막으려 했는데, 미카엘의 허릿짓이 격해지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어졌다. 그저 미카엘의 가슴에 매달린 채로 몸부림치는 것이 전부였다.
"아…. 녹겠어……. 로제타…. 으읏, 더…. 더 기분 좋게 해 줘."
"흐앙! 읏…. 아아아……. 배 속이 이상…. 으응……."
흥분이 극에 달한 미카엘이 키스해 올 때까지도 로제타는 그저 흐느끼고만 있었다. 미카엘의 뜨거운 키스를 받으며 절정에 도달하자 정신이 약간 돌아왔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안으로 분출되는 미카엘의 정액을 느끼며 로제타는 혀를 놀렸다. 뒤엉킨 미카엘의 혀도 온몸이 달콤하게 오싹거릴 만큼 좋았다. 방금의 소리가 어딘가로 새어 나갔을까 두려우면서도,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제타의 새끼손가락에는 백금으로 만든 가느다란 실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결혼 전에 구입한 피임반지였다. 이걸로 미카엘이 얼마든지 사정해도 임신이 되지 않을 테지만.
'하는 짓을 보면 자꾸 애가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지.'
가쁜 숨을 헐떡이며 로제타는 욕조 벽에 늘어졌다. 미카엘은 로제타의 이마로 흘러내리려는 비누 거품을 훔치더니 느릿하게 페니스를 빼냈다.
"…마저 씻겨 줄게요, 로제타. 나머지는 침실에 가서 해요."
역시나 그 한 번으로 끝낼 마음이 없는 미카엘이었다.
* * *
부드럽고 나긋한 몸을 욕조에서 안아 올리며 미카엘은 탐욕스레 시선을 주었다. 매일 온몸으로 그녀를 느끼고 있는 미카엘이었으나, 그녀의 나신을 보는 것도 매우 좋아했다.
그의 시선을 받고 부끄러워하는 로제타를 보고 있노라면,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아름다워요, 로제타."
"가, 감상 같은 거 말해 주지 않으셔도 돼요!"
미카엘의 팔 안에 들려 있으니 내려올 수도 없었다. 바닥이 미끄러운 욕실 안에서 버둥거렸다가 미카엘이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미카엘도 걱정되지만, 로제타 자신도 무사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예쁜데…. 피부가 장밋빛으로 달아올라서 먹음직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말하며 미카엘이 날름 로제타의 유방을 핥았다. 당황한 로제타의 표정에 짓궂은 시선을 보이며 유두를 소리 내어 빨아들였다.
"읏, 아아…."
마법의 영향으로 느끼기 쉽게 되어 버린 몸은 황홀한 듯 반응했다. 미카엘만큼은 아니었으나 로제타도 미카엘과 지내면서 그에 대한 감정이 더 좋아져, 핥는 것만으로 몸이 떨렸다.
"흐읏, 응…. 그만…."
찌르르하게 번져 나가는 야릇한 자극에 가느다란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미카엘은 형형한 눈으로 로제타를 바라보며 이빨을 세웠다.
"아흑! 앙, 아아…. 미카엘!"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지만 자극에 온몸이 움찔거렸다. 거기다 깨문 자리를 느릿하게 핥기까지 하니 한때 미카엘의 정액으로 젖었던 곳이 다시 넘쳐흐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빠져들 것 같은 기분에 로제타는 필사적으로 쾌락을 억눌렀다. 이대로라면 아까 욕조에서 보였던 추태를 다시 보이게 될 것 같았다.
'으으~, 이미 다 새어 나간 것 같지만!'
그렇다고 나머지 소리도 다 들려줄 수는 없잖은가!
"흐음? 분명 기분 좋은 표정인데…. 왜 소리를 참으실까?"
짓궂게 웃은 미카엘이 로제타의 눈을 바라보며 속살거렸다. 로제타는 울상이 되어 미카엘을 노려보았다.
"소리가 새어 나가잖아요!"
"부부인데, 그것이 문제가 됩니까? 오히려 사이가 나쁘면 모를까."
천연덕스럽게 대꾸하고는 어이가 없어 노려보는 로제타의 입술에 쪼옥 입 맞췄다. 로제타는 그런 미카엘이 얄미워서 그의 팔뚝을 꼬집었다. 단단해서 잘 꼬집히지도 않았다!
"내, 내려 주세요!"
토라진 로제타의 표정에 미카엘은 웃음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내려 주었다. 아직 한 번밖에 하지 않았기에 다리가 풀릴 정도는 아니었다.
내려서기는 했으나 미카엘에게서 벗어난 건 아니었다. 미카엘은 그대로 몸을 밀착시켜 로제타를 끌어안았다.
"몰라요. 저리 가세요."
"목욕 시중까지 들어 드렸는데도 저를 내치시는 겁니까?"
귓가에 간지럽게 속삭이며 미카엘은 로제타의 목을 깨물었다. 그가 눈에 보이는 흔적을 만들 것 같다는 생각에 당황하며 몸을 빼자 다시 유방을 잡혔다. 커다란 손바닥에 가득 채워진 유방을 미카엘은 음탕한 손길로 주물거렸다.
"앗, 잠깐…."
이 정도로도 로제타는 많이 느꼈다. 본래라면 이런 지방 덩어리가 만져지는 것으로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이상해. 미카엘이 조금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느낄 만큼 좋아하고 있었다니. 잘생기고 자신에게 친절해서?
애써 부인하며 고개를 돌리니 벽에 설치되어 있는 커다란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음란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청년이 황홀한 표정으로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는 광경에, 얼굴이 다 뜨거워졌다.
당황하여 시선을 돌렸으나 그를 눈치챈 미카엘에 의해 거울로 몸이 돌려세워졌다. 바싹 몸을 붙이고 있었기에, 흥분된 미카엘의 욕망이 로제타의 허리에 눌렸다.
"한 번 더… 하지요. 로제타에게 내게 사랑받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요."
에? 무슨…. 하고 돌아보려는 찰나 엉덩이가 뒤로 당겨졌다. 허리를 굽힌 미카엘이 곧바로 선단을 밀어 넣는 것에 민감한 입구가 벌어졌다.
"아앗…."
한차례 격렬하게 안긴 그곳은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술렁이며 미카엘의 것을 맞이하는 그곳에 온몸이 달아올랐다.
"로제타, 거기가 아니라 거울을 봐야지요."
나긋한 속삭임에 로제타는 반사적으로 눈길을 돌렸다. 수증기가 맺히지 않도록 특수 처리된 거울로 두 사람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연한 복숭앗빛으로 몸을 물들인 여인이 반쯤 뒤로 엉덩이를 내민 채로 사내를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아아…….'
붉은 장밋빛으로 물든 속살이 크게 벌어지며 거대한 페니스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그로테스크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음란하여 로제타는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귀엽게도, 내 것이 맛있는 모양입니다."
그가 허리를 움직이는 것에 따라 로제타의 속살이 씰룩거리며 페니스를 삼켰다. 한동안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은 광경에 로제타는 질끈 눈을 감았다.
"로제타, 눈을 떠야지요. 아니면 내가 더 음탕한 짓을 할지도 몰라요?"
미카엘이 꿀 같은 목소리로 속삭였지만 로제타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부끄러워서 거울 속의 자신과 미카엘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런 로제타의 모습에 미카엘은 키득거렸다.
"아아앗!"
강하게 밀어붙이자 거울에 그의 거대한 페니스가 로제타의 좁은 속살로 파고드는 것이 전부 비쳤다. 제 것을 밀어 넣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좁은 그곳으로 자신의 것이 전부 들어가는 것이 신기했다.
'귀여워….'
아직도 눈을 뜨지 않은 채로 헐떡이고 있는 로제타를 보며 미카엘은 흥분했다. 거울에는 전부 비춰지고 있었다. 로제타가 얼마나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그녀의 음란한 입구가 어떻게 우물거리며 그의 것을 빨고 있는지.
밀어 넣은 것만으로도 단단하게 일어선 유두까지도.
미카엘은 짓궂은 생각이 들어 손을 뻗어 그것을 꼬집었다. 아프지 않게 조절했으나 로제타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튕겼다. 그들의 키 차이가 확연했으므로, 선 채로 뒤에서 삽입하면 허리 높이가 맞지 않았다.
'그러니….'
"잠깐, 아아앗?!"
로제타의 허리를 한 팔로 안은 미카엘이 허리를 세웠다. 로제타의 몸이 들리며 발끝이 타일 바닥에서 떨어졌다. 깊어진 삽입에 놀란 로제타가 눈을 떴다.
"흐아흣! 아흑! 아하아앙, 안 돼!"
이렇게 큰 소리를 내면 안 되는데, 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돌아보니 미카엘이 황홀한 표정으로 허릿짓하기 시작했다. 배 속 깊이 파고든 페니스가 길게 휘어지며 안을 탐하는 느낌에 로제타의 눈이 커졌다.
"하으으…. 아아앗!"
기분 좋아…. 그러나 신음 소리가 욕실 내를 울리는 것에 로제타의 얼굴은 금방 울상이 되었다. 소리가 새어 나가면 안 된다고 했건만, 미카엘은 들어주지 않을 작정인 모양이었다.
"아흥, 응! 아앗…."
그뿐만이 아니라 들어 올려진 로제타의 엉덩이를 음란하게 찌르기 시작하는 것에 의식이 날아가 버렸다. 버둥거리는 발끝이 허공을 차고 그녀의 야릇한 자태가 거울 안에 비쳤다.
"하응! 이게 무슨…. 아아앗, 아앗! 아학! 으응!"
느릿하게 안을 헤집은 것은 처음뿐이었다. 이어지는격렬한 피스톤질에 로제타는신음에 대한 생각도 잊고 소리를 질렀다. 미카엘이 허리를 안지 않은 손을 내려 꽃잎을 벌리는것에 화들짝 놀랐다.
거울을 보니 무지막지해 보이는미카엘의 것이 쑤욱, 쑥 그녀의 안을 파고들고 빠져나오는것이 똑똑히 보였다.
"흐앙, 응! 싫어…. 아앗! 미카엘 님…. 그거 그만…. 히익!"
로제타가다리를 오므리려 하자 미카엘이 엄지로 능숙하게 꽃눈을 비볐다. 꽃잎을 벌린 손가락 사이로 파고드는페니스의 움직임도 한층 바빠지고 있었다.
"아! 아아아아! 안 돼, 안 댔! 흐읏, 으흐으응! 아앙, 미카엘……!"
몸부림치며 신음하고 몇 번이나 애원했음에도 미카엘은 이 체위가마음에 든 듯했다. 로제타가세 번이나 절정을 맛보았는데도, 내버려 두지 않고 탐했다. 미카엘도 그 와중에 두 차례나 절정을 맛보면서 뿜어낸 정액이 주룩거리며 흘러내렸다.
"아흐…. 아! 아앗……."
미카엘의 팔 안에서 아래위로 흔들리며 로제타는신음 소리를 울렸다. 아마도 백작저 안에 이 소리가다 새어 나갔을 거라는생각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졌다.
***
"괜찮습니다, 로제타. 미리 방음 마법을 걸어 두었어요."
한참의 섹스 후에 로제타의 온몸을 씻어 주며 미카엘은 그렇게 속삭였다. 저녁 식사 때 백작가의 사람들을 어떤 얼굴로 보나, 풀이 죽어 있던 로제타의 눈이 커졌다. 미카엘은 웃는낯으로 로제타를 보며 말했다.
"로제타의 귀여운 신음 소리는저 혼자만의 것이니까, 들려줄 리 없지요. 설마 제가아무런 방비 없이 로제타를 안았다고 생각한 겁니까?"
"으으~."
내내 혼자 부끄러워하고 고민했던 로제타가미카엘을 노려보았다. 미카엘은 어라? 하는얼굴로 로제타를 마주 보았다. 순간 분기를 참지 못한 로제타가미카엘의 뺨을 꼬집었다. 팔뚝과는달리 얼굴은 단련할 수 없는지 꼬집기 편했다.
"너무해! 괜히 고민했잖아요!!"
"하지만 부끄러워하는로제타가너무 귀여워서…."
"그, 그런 말로 넘어갈 생각 하지 말아요! 당분간 섹스 금지!"
여유롭게 로제타를 바라보던 미카엘의 녹색 눈동자가일순 흔들리는것이 보였다. 이 정도로 동요한다고? 싶었으나 로제타는놀란 기색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미카엘은 난처한 듯이 수건으로 로제타를 감싸 끌어안았다.
"그런 말을…. 저는하루라도 로제타를 사랑하지 않으면 죽는몸인데요?"
"그 사랑, 섹스 말고 다른 것으로 표현해 주시면 되잖아요."
"흐으음~, 로제타가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인하는수단도 되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그쪽의 이유가더 컸다. 로제타가느낄 때마다 자신에 대한 감정이 얼마나 자라났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더 집착적으로 섹스에 매달리게 되는것 같기도 했다.
"다른 건 뭐든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그것만은 제발…."
'아니, 밤마다 그렇게 하면서 며칠 쉬는게 무슨 대수라고.'
로제타는다소 어이없어졌지만, 미카엘이 부드러운 시선을 주며 얼굴과 목덜미에 키스를 떨어트리자 기분이 누그러들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미카엘은 늘 로제타가느끼는것을 우선으로 해서 미워할 수가없었다.
"그럼 저 나중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미카엘이 반짝이는눈으로 로제타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는한 점 의심도 없는애정이 담겨 있어서 로제타는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저런 얼굴로 보는데, 이혼 얘기를 어떻게 꺼낸단 말인가?
괜히 좋은 분위기를 망치게 될까 봐 두려웠다. 로제타가망설이는듯싶자 미카엘이 웃음을 보였다.
"괜찮습니다. 뭐든 들어드릴게요."
"그게…. 호, 혹시라도 이혼…."
말을 꺼내기가무섭게 얼어붙는미카엘의 표정에 로제타는흠칫 입을 다물었다. 미카엘은 낯을 흐리며 로제타를 보았다.
"누군가무슨 말을 했습니까? 왜 갑자기…. 로제타와 내가이혼하는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수도로 돌아왔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 보면 미카엘 님의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로제타, 당신을 사랑하는제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이렇게 매순간 당신만을 원하고 있는데…, 그런 말을 하다니……."
기분이 많이 상한 듯한 미카엘의 표정에 로제타는당황했다. 혹여 미카엘과 이혼하는일이 있더라도 온건히 이혼할 생각에 말을 꺼낸 것뿐인데, 그가이렇게 화를 낼 줄은 몰랐다.
"그, 그런 게 아니라…. 사람 일은 모르는거잖아요. 제 마음이 달라질 수도…."
상심한 듯한 미카엘의 눈이 커졌다. 뚫어질 듯 바라보는미카엘의 시선에 로제타는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미안해요. 제가경솔했어요."
"…아닙니다."
미카엘은 자신이 방심했다고 생각했다.
로제타가그에게 안기며 정신없이 느끼는것을 보고 그녀 또한 자신만큼 사랑이 자라난 것은 아닐까 착각했다. 그녀의 감정으로 인해 더해지는쾌락을 3배로 조정해 놓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으면서도.
'로제타는나를 사랑하는게 아니야. 그저 호감이 생긴 것뿐이지…. 필립으로 변장하지 않았더라면 나와는연을 맺지 않았을 사람이다.'
그 사실을 되새기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토록 행복할 수 있다는것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것을 빼앗길 수도 있겠다는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는….'
몰랐던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없었다. 지금은 이전보다도 로제타를 갈망하게 되었다. 로제타를 이 손에서 놓아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게 낫다는생각까지 들었다.
"이, 이혼하고 싶다는게 아니에요. 수도에서 저를 경멸하는사람들과 만나게 되면 아무래도…. 제가창피해질 수도 있고."
거듭 이런 말을 해야 하는상황이 민망했으나,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었던 미카엘이기에 말해야만 했다. 다정히 웃는얼굴을 보였던 그가냉정하게 돌아선다면, 정말로 상처받게 될 것 같았으니까.
"제가당신을 창피해하는일은 없을 겁니다. 설사 당신을 험담하는자가있더라도 그 입을 찢고 혀를 뽑아 버리면 그만입니다."
로제타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며 미카엘이 속삭였다. 뜨거운 목소리에 멍히 쳐다보고 있자니 미카엘이 슬픈 낯빛을 했다.
"저를 버리겠다든가하는말은…. 제발 하지 말아 주십시오. 로제타…, 저는이제 당신을 알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당신을 이 품에 안는기쁨을 알아 버렸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시는지…."
"버리, 겠다는게 아니라…… 제가버려질까 봐."
대답하는목소리가저절로 기어들어 갔다. 휘르센 백작 부부가외면하고, 제럴드가경멸하듯 쳐다보았던 것처럼 미카엘도 그럴까 봐 무서웠던 것뿐이었다.
"그런 일, 없을 겁니다. 당신이 이 손을 놓으려 해도 제가필사적으로 매달릴 테니까요."
로제타…. 날 버리지 말아요.
하고 속삭이며 미카엘은 로제타에게 입 맞췄다. 그가어느새 로제타의 몸에 둘러졌던 수건을 벗겨 내리고 안아 들고 있었으나, 그의 끈덕지고 집요한 키스에 녹은 로제타는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대로 침실로, 침대 위로 자리를 옮긴 미카엘은 저녁 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로제타의 몸을 탐하며 놓아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