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그런데 왜 무인도인가요?
소환수가 고도를낮추자 어두운 밤바다로부터 해풍이 밀려왔다. 싸늘한 바람에 몸을 움츠리는 로제타를미카엘이 제 외투 속으로 끌어들여 온기를나누어 주었다.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가자 서서히 해안선이 엿보였다.
당연히 바닷가에 있는 어딘가의 불빛으로 향할 줄 알았건만, 소환수가 향하고 있는 곳은외따로 떨어진 불빛이었다.
'섬? 설마 섬으로 가고 있는 거야?'
신혼여행지로 섬을 고르다니 미카엘답다고 생각했다. 집착남의 본성이 어딜 가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미카엘이 집착하는 대상은내가 아닐 텐데?'
물론 그와 결혼한 것은자신이지만 말이다. 로제타는 아직까지도 미카엘이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 자신과 결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에 잠긴 사이 소환수는 커다란 섬에 보이는 크고 작은불빛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몇 개의 불빛으로 보였던 것이 가까워지며 수없이 많은불빛이 보였다.
야간 비행을 할 것을 생각해서 온 성과 저택에 다 불을 밝혀 두라고 지시한 모양이었다.
'오오!'
방금 전 떠나왔던 별장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두 배는 더 크고 화려한 성의 전경이 엿보이자 로제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를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미카엘은로제타의 표정을 보며 웃었다.
"마음에 듭니까?"
"어…. 예쁘네요."
뾰족한 지붕과 성을 둘러싸고 있는 일곱 개의 첨탑, 화려한 저택과 스테인드글라스의 창문에, 우아한 덩굴과 꽃문양, 신과 정령을 조각한 조각상까지…. 로제타의 취향이었다. 무서울 정도로.
'화려하면서도 적당히 유치한 게…. 완전 내 취향! 이게미카엘의 취향일 리는 없을 텐데?'
로제타가 놀란 얼굴로 미카엘을 돌아보자 그가 화사하게웃었다.
"내 결혼 선물이에요, 로제타."
넹?
순간 머릿속이 백지가 되어 버린 로제타가 또르륵 눈을 굴렸다. 이거 농담이 아니라 진심인 거겠지? 선뜻 기뻐하지 못하는 로제타의 모습에 미카엘은불안해진 듯했다.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너무 과해서…."
로제타의 말에 미카엘은안도한 듯했다. 로제타의 목덜미에 입술을 누르며 속삭였다.
"이제는 공작부인이 되었으니 이 정도는 당연한 겁니다."
저 성의 첨탑 하나만 가지고도 수도에 번듯한 저택 다섯 채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로제타는 미카엘과 이혼하면서 이 섬과 성도 받을 수 있을까를재 보다가 생각을 접었다.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니야. 분명 꿍꿍이가 있어서 나와 결혼한 걸 텐데….'
첫날밤부터 내내 미카엘은다정하기만 했다. 워낙 많은로맨스 소설을 읽어서 기억은흐릿하지만, 미카엘이 이런 성정이 아니라는 것쯤은알고 있었다.
'대체 날 얼마나 위험한 일에 밀어 넣을 작정이길래 이렇게친절한 거야?!'
일이 끝난 후에 위자료로 섬과 성을 줄 정도인가? 그 정도인 거야?
로제타는 자신이 짐작한 대로 미카엘이 어떤 목적이 있어 자신과 결혼한 것이고 다정하게대해 준 것이라면…. 일이 끝날 즈음에는 나쁘게헤어지지 않을 것임은알고 있었다. 쌀쌀맞기는 해도 미카엘은그 정도 쓰레기는 아니니까.
최소한 그가 선물한 것은전부 가지고 나가게해 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로제타는 그와의 결혼이 그리 나쁘지 않은것 같은생각이 들었다. 미카엘의 속셈이 뭔지 모르겠다는 것만 아니면.
'내가 죽는다든가, 위험에 처한다든가…. 그런 걸 것 같은데.'
가령 이자벨을 끌어낼 미끼로 삼는다든가.
그의 입으로 미카엘은로제타가 쓴 누명이 모두 이자벨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그 발언으로 로제타에게이자벨에 대한 원한을 심어 주고…, 이자벨을 잡는 데 이용할 미끼로 삼는 거라면 얼추 이야기는 맞는다.
이자벨에게저주는 걸었지만, 합법적으로 그녀를끌어내릴 수 있는 증거는 아직 확보하지 못한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굳이 내게이렇게다정하게대해 줄 필요가 있을까? 내가 미카엘에게반하기라도 하면 곤란할 테고.'
고민하는 사이 소환수가 성의 발코니에 착륙했다. 처음부터 이런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곳인지 발코니치고는 지나치게넓었다. 집채만 한 소환수가 다섯 마리는 내려앉을 수 있을 정도였다.
"로제타."
먼저 소환수에서 내린 미카엘이 조심스럽게로제타를잡고 내려 주었다. 아직 다리가 후들거리는 상태였기에, 소환수의 등에서 그녀를안아 올린 것에 가까웠다.
소환수는 미카엘을 향해 가볍게고개를끄덕이더니 순식간에 빛으로 화해 사라졌다. 미카엘은익숙한 일인 듯 로제타를안은채로 발코니의 문으로 몸을 돌렸다.
"주인님."
발코니의 유리문은이미 열려 있었다. 모두가 똑같은복장에 비슷비슷한 얼굴을 한 시녀와 시종들이 무릎을 꿇은채로 대기하고 있었다. 복장이야 지급품이니 당연하다지만, 얼굴이 같을 수는 없기에 로제타는 약간 놀랐다.
'저 사람들은뭐지?'
로제타의 시선에 미카엘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제가 만든 사역인형입니다. 진짜 인간 같지요?"
"인형이라고요? 저 사람들이요?"
"네. 바다 건너 대륙의 도사나 수인들이 저와 같은것을 부린다는 소문을 듣고 참고해 봤습니다. 단둘이 있고 싶지만, 시중들 자가 없으면 불편해지니까요."
그 말은….
"이 섬에 다른 사람은없다는 얘기예요?"
"그렇습니다."
말하며 미카엘은그 사실이 기쁜 듯 로제타의 입술에 부드럽게키스했다. 로제타는 놀랐지만 키스는 받았다. 키스 자체는 훌륭했으니까.
'진짜 날 좋아해서 결혼했나?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로제타가 갸웃거리는 사이 사역인형들이 길을 내주었다. 미카엘은당연하다는 듯이 사역인형들 사이를지나 침실로 향했다. 줬다고는 해도 언제 빼앗길지 모르는 성이건만, 자신의 성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침실은적당히 크고 아늑했다. 신혼여행지의 침실이라선지 어쩐지 아스라한 분위기를풍기고 있었다. 특대형의 거대한 침대도 그렇고.
기둥 없이 그저 넓기만 한 타원형의 침대는 어떤 체위도 가능할 듯 보였다.
"로제타, 피곤해요?"
속삭이는 목소리가 어떤 의도를담고 있는지 모를만큼 로제타는 순진하지 않았다. 미카엘과의 밤은꽤 황홀했기에 로제타는 조금 망설였다. 그러나 미카엘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그와 친밀하게지낼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기분도 좋고….'
애초에 그를필립으로 알고 몇 차례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그저 아이리스의 몫인 남자주인공으로 생각하고 멀리하던 때와는 달랐다.
"벼, 별로요? 읍…."
그 말이 허락이라도 된다는 듯이 입술이 포개졌다. 미카엘은로제타의 부드러운 입술을 한껏 만끽하며 그녀와 같이 침대로 올라왔다. 침대 한가운데에 로제타를내려놓고 키스하며 자신의 옷을 벗었다.
"으흡, 으으음…."
자신의 옷을 다 벗은이후에는 로제타의 드레스 차례였다. 미카엘은거칠게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드레스의 장식이며 매듭이 거추장스러웠다.
'대체….'
여자들은이런 옷을 어떻게입고 벗는가 싶었다. 첫날밤이야 로제타가 속옷 차림이니 쉬웠으나 겹겹이 싸인 옷이 야속할 정도였다.
로제타는 이런 것을 입지 않아도 아름다운데. 자신 외에 누구도 봐서는 안 될 몸이지만. 그 사실을 떠올리며 미카엘은전율했다. 이 섬에는 이제 그들 외에 사람이라고는 없으니, 다른 누구의 눈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로제타를사랑할 수 있었다.
이 넓은성과 저택을 오가며 사랑을 나누는 것은물론…, 섬의 곳곳을 안내하며 로제타의 몸에 자신의 흔적을 새길 생각을 하니 온몸이 뜨거워졌다.
"로제타…."
겨우 드레스를풀어헤치고 로제타의 몸에서 벗겨 낸 미카엘이 욕정 어린 한숨을 흘렸다. 그의 비틀린 듯한 듣기 거슬리는 목소리에 익숙한 로제타에게, 미카엘의 목소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미약과도 같았다.
녹아내릴 듯한 달콤한 목소리에 가슴 끝이 단단해졌다. 긴장으로 인한 것이기도 했지만 미카엘은그 사실이 너무 기뻤다.
"귀여워요, 로제타."
로제타의 타액으로 젖은입술을 들어 봉긋한 가슴에 입 맞추며 혀로 날름 그 끝을 핥았다. 아흑! 하고 몸을 비트는 로제타의 얼굴을 황홀한 듯이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허리를매만지다가 그 뒤로 손을 밀어 넣자 로제타가 달아오른 얼굴로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이날을 위해 만들어 놓은주문이 있는데…."
설마?!
원작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로제타는 멈칫했다. 원작의 미카엘이 아이리스와 결혼한 이후의 에피소드에 그가 아이리스에게주문을 거는 내용이 있었다.
"로제타가 싫다면 걸지 않을게요. 이건 로제타를지키기 위한 주문과 다르니까…. 하지만 로제타가 내 마음을 믿지 않는 것 같으니 허락해 줬으면 좋겠어요."
"무, 무슨 주문인데요?"
미카엘은빳빳하게선 로제타의 유두를만지작거리며 속삭였다.
"고대 주문을 개량한 거예요. 상대를좋아하는 만큼 그에게느끼게되는 주문이죠. 이 주문을 걸면 나는 로제타를사랑하는 만큼 느끼게돼요. 몸도 민감해지고요. 로제타도 나를좋아하는 만큼 그렇게될 테고요…."
또한, 오직 주문을 걸고 곧바로 삽입한 상대에게만 그렇게반응하게되는 주문이었다.
로제타는 미카엘이 자신에게이런 주문을 걸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우면서도 궁금해졌다. 미카엘이 자신을 어떻게생각하는지.
실은첫날밤에 이 주문을 걸고 싶었지만, 이자벨의 저주를완성시켜야만 했다. 거기다 처음일 것이 분명한 로제타를심하게안게될까 봐 뒤로 미뤘다. 오늘은로제타도 자신도 첫 밤이 아니었고, 저주도 완성되었으니 하루빨리 제 감정을 로제타에게알려 주고 싶었다.
자신이 얼마나 로제타를사랑하는지.
"싫습니까, 로제타? 안 될까요?"
로제타의 눈을 들여다보며 미카엘은부드럽게속삭였다. 로제타는 갈색 눈동자를깜박이며 머뭇거렸다. 미카엘의 감정은알고 싶지만, 자신이 미카엘을 어찌 생각하는지가 들통난다는 게걱정스러워졌다.
'괘, 괜찮겠지. 필립으로 만나서 미카엘이 꽤 좋아졌으니까…. 거기다 그게아니라 해도 미카엘과의 섹스는 기분 좋았고….'
그 주문은이전에 느끼던 쾌락에, 좋아하는 만큼 더 느끼게되는 것이어서 쾌락이 불어난다는 것만큼은분명했다. 그러니 미카엘에 대한 감정이 얄팍하다 한들 미카엘이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내가 미카엘을 어떻게생각하는지 모르겠고.'
필립일 때는 결혼하고 나서 서로 잘 맞지 않는다면 이혼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미카엘인 걸 알게된 지금도 그 감정은크게다르지 않았다. 솔직히 미카엘인 걸 알고 호감도가 더 떨어졌으면 떨어졌지 올라간 것 같지는 않았다.
아까 성이랑 섬 준다고 해서 약간 오르긴 했지만.
"해도… 돼요. 저도 궁금하고."
"고맙습니다, 로제타."
미카엘은속삭이더니 로제타의 심장 부근에 손을 댔다. 그가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우자 그의 손바닥이 닿아 있는 곳 너머의 피부 속으로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이 느껴졌다.
'어?'
서서히 피어오르는 음란한 열기는 로제타의아랫배로, 다시 손과 발,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미카엘이 손을 떼자 왼쪽 유방 위로 장미 문양의작은 마법 문자가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내게도…."
로제타의손을 잡은 미카엘이 제 가슴에 손바닥을 대게 했다. 마찬가지로 손바닥 너머로 펄떡펄떡 뛰고 있는 미카엘의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자신의것보다 크고 힘 있게 느껴지는 그두근거림에 집중하고 있자니 손바닥 아래쪽이 뜨거워졌다.
미카엘이 로제타의손을 떼어 놓자 미카엘의가슴 위에도 작은 마법 문자가 반짝였다가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이제 걸렸습니다. 나의로제타."
속삭이며 미카엘이 잡고 있던 로제타의손을 제 입가로 가져갔다. 가볍게 손끝을 깨무는 것에 오싹한 감각이 퍼져 나갔다.
어?
상상했던 것보다도 짜릿한 감각에 로제타는 당황했다. 그정도까지 미카엘을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빨리 넣고 싶어요. 로제타…. 아직 젖지 않았지요?"
"앗, 네…. 흐앗?!"
고개를 숙인 미카엘이 날름 유두를 핥자 손가락을 깨물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즐거움이 로제타를 관통했다. 달콤한 충격에 움찔움찔 떨고 있자니 미카엘이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하아…. 로제타가 이 정도로 날 좋아했을 줄은…."
"아, 아니…. 그럴 리…. 흐윽!"
당황하여 저도 모르게 부인하는 말을 하자 미카엘이 유두를 덥석 물어 쪼옥거리며 빨아대기 시작했다. 상상하지도 못한 쾌락에 가슴 속의심지까지 오물오물 빨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당황스러워졌다.
미카엘은 로제타의눈을 훔쳐보며 야릇하게 웃었다.
주문은 로제타에게 말한 그대로의것이었지만 약간은 달랐다. 미카엘은 좋아하는 만큼 느끼는 정도였지만, 로제타는 미카엘에 대한 감정의3배만큼 느끼게 되어 있었다.
'그렇다 해도 나에 대한 감정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생각에 미카엘은 온몸이 오싹오싹해졌다. 생각지 못한 열락에 휩싸인 로제타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로제타……."
"흣, 아아……! 아…, 그만……. 그렇게 빨면…. 흐읏, 읏…!"
반응하면 할수록 미카엘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게 되는 꼴이라 로제타는 참으려 했지만, 참을 수 있는 성질의것이 아니었다. 사랑스러운 마음에 미카엘이 강하게 들이마시자 로제타는 발끝으로 시트를 긁으며 버둥거렸다.
"흐아, 으…. 아앗……, 아아아……."
타액을 흘리며 도달하는 것만은 간신히 참고 있자니 미카엘의키스가 떨어졌다. 감도가 올라간다고 하더니 키스마저도 아까보다도 훨씬 좋았다.
"으응응……."
정신없이 미카엘의혀를 맛보고 있자니 다리 사이로 손이 들어왔다. 허벅지 안쪽의피부를 스윽 훑는 것만으로도 눈 안쪽으로 불꽃이 이는 듯하여 로제타는 허리를 튕겼다.
"하으…!"
"로제타……."
저를 생각하는 로제타의마음이 미카엘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강했던 것이 분명했다. 민감한 로제타의반응에 미카엘은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살그머니 꽃잎을 더듬어 보니 역시나 흠뻑 젖어 있었다.
"앗, 거기 안 돼…."
잠깐 사이에 민감하게 변해 버린 몸에 로제타는 당황했다. 이렇게까지 기분 좋다니, 반칙이었다.
'내가 이렇게 미카엘을 좋아했다고?'
혹시 미카엘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다른 주문을 건 게 아닌가 싶었으나, 미카엘의표정을 보니 그도 놀라고 있었다.
'말도 안 돼!'
"하아……, 로제타. 기뻐서…, 너무 기뻐서 미칠 것 같습니다. 당신이 그저 안정을 찾기 위해서 결혼을 택했다는 걸 아는데도……."
아주 어쩌면, 혹시나, 하고 기대했었다.
무도회장에서 스치듯 지나쳤을 때도 제대로 된 눈길 한번 받아본 적이 없었으면서도. 수많은 다른 영애들이 그의얼굴과 목소리를 아름답다 칭송했으니, 아주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이다.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자 희열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 마음을 어찌 표현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게 될 뿐이다.
그러다 자신에게도 같은 주문을 걸었음을 떠올렸다.
"로제타…. 저도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해 주십시오."
살그머니 꽃잎을 어루만지던 손가락이 로제타의틈새로 파고들었다. 삽입되는 감촉조차 요사스럽게 느껴질 만큼 기분이 좋아서 로제타의입이 벌어졌다.
"아아아……!"
이렇게 느끼다니, 삽입하게 된다면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미카엘이 자신을 어느 정도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이상으로 자신의감정이 두려워졌다.
"벌써 이만큼…. 내 손가락을 맛있다는 듯이 빨아대는 것이 느껴지십니까?"
삽입된 손가락이 두 개로 늘어나며 안을 음란하게 비벼댔다. 로제타는 그저 기분이 좋아서 허리를 벌벌 떨고만 있었다. 흘러넘쳐서 곧바로 넣어도 되겠다 싶을 정도였다.
"크읏…."
벌겋게 얼굴을 물들인 미카엘이 부들부들 떨었다. 로제타의음부로 페니스를 밀어붙여 넘쳐흐르는 액체에 페니스를 문지르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는 지경인 모양이었다.
로제타도 그저 느낄 따름인지라 미카엘은 낮은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아래위로 움직였다.
"로제타, 넣겠…습니다……."
"하아…, 읏……."
주문의작용으로 음부가 질척하게 녹아내렸음에도 미카엘의것은 여전히 크게 느껴졌다. 그러나 파고드는 감촉이 너무 좋아서 로제타는 헐떡이며 숨을 삼켰다.
"흐윽, 아흐…."
사정하지 않기 위해서인지 미카엘은 느리게 삽입하고 있었다. 마치 단단하고 뜨거운 쾌락 덩어리가 파고드는 느낌에 로제타는 그의어깨를 움켜쥐었다.
어젯밤이 첫날밤이건만, 마치 오늘이 처음인 것처럼 여겨졌다.
"흐으으……, 아아아아앗!"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미카엘은 강하게 밀어붙였다. 페니스가 뿌리까지 삼켜진 순간 장대한 그것이 울컥 뜨거운 액체를 쏟아내는 것을 느끼고 당황했다.
'사정했다고? 그미카엘이?!!'
첫날밤에 이어 아침에도 안겼기에 미카엘이 얼마나 절륜한지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기세 좋게 사정했음에도 그커다란 것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채였다. 오히려 더욱 흥분한 듯 불거진 혈관이 느껴질 정도로 음부를 압박해 왔다.
"하아…. 미안합니다, 로제타. 나 혼자……. 그렇지만 아직 단단하니까…."
"히익?!"
그가 허리를 끌어당기자 형용할 수 없는 쾌락이 로제타의배 속으로 밀려왔다. 반사적으로 그곳을 조이자 미카엘이 신음을 흘리며 허릿짓을 했다.
방금 사정했으면서도 너무 단단하고 컸다. 거대한 것이 속살을 찔러대는 느낌에 로제타는 기겁했다.
"읏, 아아…. 잠깐! 너무 빨…. 으응, 아앙!"
"으음, 으……. 로제타의안…. 너무 부드러워서…."
"흐아아아! 그만…."
로제타도 느끼고 있는 만큼 그곳이 금세 흥건해졌다. 이미 한참 쏟아버린 정액에 애액이 더해지며 미끈미끈해진 곳으로 미카엘의페니스가 격렬하게 박혀 들어왔다. 로제타는 지나친 자극에 허리를 비틀며 흐느꼈다.
고작 지난밤에 처음 쾌락을 알게 된 몸이었다. 느껴도 너무 느껴졌다.
3배의쾌락을 느끼게 되어 있는 로제타의주문과는 달리 미카엘은 그저 좋아하는 만큼 느낄 뿐이었지만, 그감정이 지나친 모양이었다.
그는 허릿짓을 멈추지 못하고 쑤셔대다시피박아대고 있었다.
"응, 응! 으응! 아아앙!"
쾌락 덩어리처럼 느껴지는 그것에 로제타는 속수무책으로 흐느낄 뿐이었다. 얼마 견디지 못하고 둘 모두 절정으로 치달았으나….
"안 돼…. 왜 작아지지 않는 거야?! 아아앗!"
사정을 하면서도 허릿짓을 해대는 미카엘에 로제타는 생각을 하나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기분이 좋아서 미카엘의아래에서 몸부림을 치고 도달하는 것이 전부였다.
"죽을 것…. 아앗, 앗! 미카엘…. 아앙……!"
흐느끼는 입술을 미카엘에게 빼앗기며 로제타는 전율했다. 이렇게 안기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았다.
***
"하아, 하아……. 흐으…. 으응……."
미카엘의집요한 키스를 받으며 로제타는 몸을 떨었다. 손끝이 닿아오는 감촉까지도 감미롭게 느껴져 무엇 하나 거부하기 어려웠다.
그가 몇 번이나 그녀의안에 사정했는지, 몇 시간 동안 절정을 맛봤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미칠 듯한 쾌락, 쾌락뿐이었다.
"아흐…. 읏……."
찐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한참 동안 로제타의속살을 괴롭히던 페니스가 빠져나갔다. 아직 세우려고 들면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었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았다.
그가 아니라 로제타가.
"잘했어요, 로제타…. 한 번도 기절하지 않고…….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다는 듯이 미카엘이 로제타를 끌어안고 쪽쪽거렸다. 로제타는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에 완전히 힘이 빠졌다.
지나칠 정도로 사랑받은 비부가 아직 움찔움찔 씰룩거리며 정액을 쏟아내고 있었다. 부끄러워서 다리를 오므리고 싶었지만, 하나도 힘이 없었다.
'졸려….'
살았다는 생각보다 피곤함이 몰려왔다. 기분 좋은 나른함에 로제타는 미카엘이 제 몸에 키스하든 말든 내버려 두고 눈을 감았다.
"벌써 자는 겁니까? 흐음…."
야속했지만 자신과는 체력이 다름을 인정해야 했다. 아니면 후회하는 것은 자신이 될 터였다. 미카엘은 잠이 드는 로제타의이마에 입 맞추며 속삭였다.
"사랑해요, 로제타. 좋은 꿈을 꿀 수 있도록…, 곁에서 계속 지켜 줄게요."
다정한 속삭임에 얼핏 로제타가 미소를 지은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도 기뻐서 미카엘은 흡족한 듯이 웃었다. 자신이 정신없이 느낄 것은 예상했던 일이었으나, 로제타의음란한 반응은 기대 이상의소득이었다.
'로제타도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니….'
단순한 호감 이상, 혹은 사랑의전조일지도 모른다.
그와는 달리, 약간의감정만으로도 많이 느끼게 된다는 것을 로제타는 몰랐다. 그러니 자신이 자각하지 못한 새에 미카엘에게 빠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의심을 반복하는 사이, 그가 주는 다정함과 야릇한 쾌락에 빠져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 미카엘의바람이었다.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아무런 근거 없이 희망적인 관측을 하는 것은 어리석다 느껴졌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을 품게 되면 어쩔 수 없다. 마음이 멋대로 희망을 품어 버리니.
"사랑해요, 로제타…."
몇 번일지 모를 고백을 속삭이며 미카엘은 로제타를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그에게 있어서는 숨 막힐 정도로 행복한 밤이었다.
연회의 말미에 지나가듯 꺼낸 황제의 말에 신하들은 모두 얼어붙었다.
로제타 휘르센이누구인가!
사교계에 무지한 자라 해도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 보았을 법한 악행을 떨친 영애였다. 비록 그 증거라 할 수 있는 것들이빈약한 데다, 직접 실행한 자들이사라져 버려 고발당하지는 않았다지만, 그녀의 품성은 명명백백했다.
거기다 집안 또한 황족에는 비할 바가못 되었다.
황제가아우인 미카엘 황자를 미워했다면나름대로 이해가갔겠지만, 둘의 사이는 제국의 모든 백성이알고 있을 정도로 좋았다.
미카엘의 일이라면황제가덮어놓고 편을 들어 줄 정도였다.
그런 아끼는 동생에게 로제타 휘르센을? 대체 왜?!
"…황자님께서 그 혼사를 원하신게 아니겠습니까?"
"황자님께서 왜 그런 결혼을 원하신단 말인가! 말이되는 소리를 하게."
"아니면다른 이유가무엇이겠습니까? 휘르센 백작가는 정치적으로도 아무런 가치가없는 집안이아닙니까."
백작가인 휘르센은 이렇다 할 부를 쌓지도, 그렇다고 명예롭지도 못한 집안이었다. 백작가를 물려받을 제럴드 휘르센이소드마스터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는 하나…, 딱 그뿐이었다.
고작 제럴드 휘르센 하나를 얻자고 대륙 최고의 마법사인 미카엘을 백작가에 넘길 일은 없다는 의미였다.
그렇다고 로제타를 원해 미카엘 황자가그 결혼을 했다고는 믿기 어려웠다. 로제타 휘르센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부족한 영애였던 것이다.
굳이그 추문이아니라 하더라도.
'아무튼 제국을 위해서는 아주 나쁜 혼사는 아니지.'
미카엘 본인은 그럴 뜻이없다고 하더라도, 힘이있는 자들이그의 곁에 모이면역심을 품었다는 의심을 받게 될 수도 있었다.
이미 황제는 8년째 치세를 이어 가고 있었다. 이제국에 새로운 황제는 필요 없다. 그러나 야심을 품은 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터였다.
'그렇잖아도, 황제께 미카엘 황자의 결혼을 말씀드려 보려 하고 있었건만…. 차라리 잘되었다. 황자께서 일찌감치 한미한 집안의 아가씨를 들인 것이니.'
황족이황위에 욕심이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 변변치 못한 집안의 영애와 혼사를 맺는 것은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다. 그 상대가로제타 휘르센이라는 것은 의외였으나, 그는 이결혼을 그 연장선으로 보았다.
'물론…, 이결혼이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말이야.'
카룰리아스 공작이겉으로는 태연한 얼굴로 지팡이를 휘두르며 걷는 모습이보였다.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낮게 가라앉은 눈빛이그가불쾌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공작은 제딸을 황자와 이어 주고 싶어 했다. 공공연한 욕구는 아니었으나, 연회나 파티장에서 분위기가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카룰리아스 공작가쯤 되면대놓고 그런 기색을 드러낼 수 없는 법이었다. 상대가황가이니 권력으로 찍어 누를 수는 없고, 노골적인 마음을 드러냈다가거절이라도 당하면체면이땅에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교계에서 은근히 그것을 당연시 여기는 분위기가마련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카룰리아스 공작가의 영향일 거라 짐작했다.
그 집안은 이전부터 그런 것 하나는 기가막히게 잘해 왔으니까!
'허나…. 황가는 마음대로 안 되는 법이지.'
카룰리아스 공작가는 이전에도 지금의 황제에게 황비감을 들이민 적이있었다. 당시 황태자였던 황자는 대놓고는 아니었지만, 뒤로 그 시도를 처참하게 박살 내었다. 젊은 황제로 즉위하여 3년 동안 제권력을 공고하게 하고, 그 후로 맞이한 것이지금의 황비 아네트였다.
'한동안은 시끄럽겠군.'
***
소음이거의 없는 마차가어두운 길을 느릿하게 달리고 있었다. 넓은 실내였으나 셋 모두 체격이좋은지라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한 느낌이들었다. 서로의 숨소리도 선명하게 들리고….
'저 낯짝을 가까이서 봐야 하다니….'
제럴드는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정면에 앉은 패트릭을 노려보았다. 로건은 패트릭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서 보이는 얼굴이내키지 않았으나, 그를 피해 옆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도 도망치는 것으로 보여 싫었다.
"우선, 어떻게 로제타 휘르센이미카엘 황자를 알게 된 거지? 둘은 접점이없을 텐데?"
패트릭의 뻔뻔스러운 질문에 제럴드는 미간을 구겼다.
"말이지나치군. 내가자네들의 심문을 받으려고 이마차에 탔다고 생각하는 건가?"
"물론 그건 아니지만. 황자가어쩌다가그 결혼을 결정한 것인지 알아야 하니, 처음부터 말해 주었으면좋겠군. 그것도 말하기 곤란한 건가?"
로건이다소 누그러진 말투로 다시 묻자 제럴드는 불편한 표정으로 그 둘을 바라보았다. 패트릭의 사나운 눈빛은 여전히 거슬렸지만, 그도 이상하게는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로제타가요양을 위해 시골에 내려간 후…, 몇 개월쯤 지났을 때 그 애가편지를 보내온 것으로 알고 있네. 자신도 이제결혼 적령기에 접어들었으니 혼인하고 싶다고 말이야."
백작도 쉬이가라앉지 않는 로제타의 추문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던 참이었다. 로제타의 모든 행동은 패트릭에 대한 연심에서 비롯한 것으로 추측되었으므로, 차라리 그녀가결혼을 해서 마음을 접었음을 보여 주면될 거라고 생각했다.
"마침 아버님도 같은 생각이셨기에 혼처를 알아보았지."
그러나 사교계에 나쁜 소문이퍼진 로제타의 혼처를 알아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또래의 영식이있는 가문에 말을 넣어 보아도 화를 내거나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휘르센 백작가에서 혼처를 찾고 있다는 소문이퍼지자 어디선가슬금슬금 청혼서가날아오기는 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혼처는 없었다.
자식이딸린 홀아비, 배불뚝이남작, 여자를 밝히는 늙은 후작 등…. 사고를 친 딸이기는 하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있었던 엔디미온 백작은 불같이화를 냈다.
'감히 어떻게 저런 자들이…! 양심이있는 건가!!'
백작은 생각다 못해 지방 영지 쪽으로 알아보기로 결정했다. 눈을 조금 낮춰 남작이나 자작 가문의 영식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수소문하고 있는데…, 청혼서가날아왔다.
"필립 아스트라 백작이라는 이름이었네. 아버님께서는 당장 인맥을 총동원하여 아스트라라는 가문에 대해서 알아보았지."
휘르센 백작가는 일단 친황제파에 가담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스트라가에 대해 알아봐 달라 부탁한 자들도 친황제파의 사람들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그들 또한 황제나 황자의 지시를 받고 거짓 정보를 가르쳐 준 것 같았다.
"서북쪽의 분쟁으로 공을 세워 아스트라의 이름과 영지를 받았다고 하더군. 그 전투로 얼굴과 목소리가많이상했고 말이야."
그래서 휘르센 백작가도 그가청혼서를 보내온 것을 이해했다. 신관의 치료를 받고는 있다지만 흉터가남을 수도 있고 후유증이없잖아 있었을 테니까.
"서로 초상화를 교환하고…. 다섯 번의 만남이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네. 모두 백작 쪽에서 로제타가요양을 가있던 도시로 방문하는 것이었어."
만남은 매우 건전하고 온건하게 이루어졌다.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고, 호숫가를 산책하는 식이었다. 시녀나 시종을 대동하고 있었으며 모든 대화는 백작에게 보고되었다.
물론 로제타는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다.
로제타는 백작에게 줄곧 상냥했으며 둘 사이의 분위기는 좋게 흘러갔다고 들었다. 다섯 번째의 만남에 백작은 로제타에게 청혼했고, 결혼이성사된 것이다.
"…거기까지만 들어서는 미카엘 황자 전하께서 휘르센 백작가를 의도적으로 속인 것으로 들리는데."
들리는 게 아니라 속은 게 맞았다. 황제가엔디미온에게 말해 줄 때까지 집안의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었으니.
"내가아는 건 여기까질세."
"황자가휘르센 영애에게 뭔가약점을 잡힌 건 아니고?"
패트릭의 말에 제럴드는 짜증스레 그를 노려보았다. 대체 로제타는 이자의 무엇을 보고 그렇게 연서를 보내댔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대로 만남을 가지자마자 그 가망 없는 짝사랑을 그만두었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녀가대놓고 패트릭을 쫓아다니기라도 했다면더 망신스러웠을 것이다.
"로제타가무슨 수로."
제럴드로서는 드물게도 그 한마디로 패트릭의 입을 다물게 만들 수 있었다. 그들이생각하기에도 로제타는 참 재주가없는 영애였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한때는 머레이영식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의 약혼녀였다는 것이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황자님께서 무슨 의도가있으신건 아닌가?"
긴 고민 끝에 로건이이런 결론을 내어놓자 그들은 다시 고민에 휩싸였다. 미카엘 황자가로제타 휘르센과 무려 결혼이나 해야 할 정도의 목적이무엇인지 알 수가없었던 것이다.
"…그 어떤 의도가있다 한들, 결혼까지 할 리가없잖은가! 이건 분명 약점을 잡힌 거야!"
"하지만 미카엘 황자 전하가아닌가. 그분이휘르센 영애에게 약점을 잡힌다는 것이상상이나 되나?"
로건의 말은 불쾌했으나 제럴드는 그것에 동의했다. 수도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건의 면면만 봐도 로제타의 음모라고 하는 것들은 하나같이한심했다.
영애들을 부추겨 발을 건다든가, 드레스를 찢고, 훔친 보석을 숨겨 둔다든가하는…. 질이낮은 괴롭힘뿐이었다.
"황자 전하가목적이있으신거라면그 목적이뭐지? 왜 얼굴을 숨겨서까지 로제타와 결혼을 해야 했고?"
제럴드의 물음에 로건은 난처한 낯을 했다.
그의 좋은 머리로도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무언가로제타를 미끼로 하려는 것이아닌가하는 생각은 들었으나…. 그것은 연인 흉내나 약혼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몰래 결혼을 할 정도는 아닌 것이다.
"휘르센 영애는 알고 있겠지. 그 황자 전하와 결혼을 했으니."
로건이말하며 묻는 듯이제럴드를 보았다. 제럴드는 낯을 찌푸렸다.
"그렇다 한들, 내게 그것을 말할 거라 생각하나?"
그는 휘르센 백작가의 양자였지만, 로제타와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
제럴드는 엔디미온 백작의 형인 뒤케 휘르센의 아들이었다. 뒤케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여자를 멀리한 인물이었다. 제럴드는 검에 소질이있는 평민 출신의 아이로 뒤케의 눈에 들어 그의 아들이되었다.
뒤케는 병으로 죽으면서 백작 작위를 엔디미온에게 넘겨주며, 때가되면백작 작위를 제럴드에게 넘겨줄 것을 맹세하도록 했다.
그게 안 된다면제럴드에게 곧바로 작위를 넘겨주며, 그 후견인으로 다른 이를 내세우겠다고 한 것이다.
로제타에게는 억울한 상황이었으나 엔디미온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또한 제럴드를 자신의 양자로 받아들여 나쁘지 않게 대했다.
그러나 아이들끼리의 사이까지 좋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로제타는 자신이시집을 가고 아버지가먼저 돌아가셨을 경우, 어머니의 처우를 생각해서 제럴드에게 함부로 대하지는 못했다. 제럴드 또한 자신의 출신을 아는지라 로제타에게 부채의식이있어 예의 바르게 행동해 왔다.
하지만 그뿐으로, 그들은 그저 인사나 나눌 뿐인 사이였다.
가장 바람직한 결말은 제럴드와 로제타가서로 좋아해 결혼하게 되는 것이지만, 로제타는 제럴드의 콧대를 눌러 줄 더 집안 좋은 남자만을 원하고 있었다.
패트릭 란스필드는 실패했지만 미카엘 황자를 잡았으니, 결과적으로는 성공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자네가 오라비가 아닌가? 자네가 묻는다면 얘기해 줄 것도 같은데."
포기하지 않고 패트릭이 고집을 부리자 제럴드는 짜증이 났다.
"그러는 자네는? 로제타가 자네를 짝사랑했다는 사실은 꽤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가. 자네가 한번 해 보지 그래?"
"뭐라고?!"
로제타가 한때 패트릭에게 많은 연서를 보내기는 했지만, 스치듯한 번 인사를 나눈 이후에는 그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그 시기에 승아가 빙의했기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로제타가 패트릭을 짝사랑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진 것은, 저 건방진 놈이 비열하게 입을 놀렸기때문일 거라고 제럴드는 확신하고 있었다.
사실 그 소문은 이자벨이 사람을 써서 퍼트린 것이었지만, 제럴드가 그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패트릭. 제럴드, 자네도 그만둬. 자네들끼리 싸움을 벌이면 누가 슬퍼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아이리스가 언급되자 패트릭도 제럴드도 조용해졌다. 로건은 입을 다문 채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할 수만 있다면 미카엘 황자에게 캐 봐야 할 테지만, '그' 미카엘 황자였다.
'대체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군.'
"…제럴드 자네의 말이 옳은 것 같네. 패트릭, 네가 나서 줘야겠어."
로건이 말하자 패트릭이 벌컥 화를 냈다.
"제정신이야? 나한테 뭘 하라고!"
"휘르센 영애는…, 리온 영애에게 적대적인 점을 제외하면 퍽 단순한 사람이지. 자네가 조금만 부추겨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쉽게 말해 줄 거야. 자네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이 아닌가."
"그래도 그렇지!"
쾅!
분노한 제럴드가 주먹으로 마차의 옆 벽을 쳤다. 한창 설명 중이던 로건이 아차 싶은 얼굴로 제럴드를 보았다. 패트릭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자네들 지금 뭘 하겠다고?"
듣고 있던 제럴드가 살벌한 시선을 보냈다. 그가 운을 떼기는 했지만, 진짜 그렇게 할 거라고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로제타는 이미 결혼을 했어. 그것도 황족과."
"그게 진짜 결혼이 아닐 거라는 점에서는 자네도 동의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로건이 교묘히 제럴드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제럴드는 흠칫 로건을 보았다.
"진짜 결혼이 아닐 거라니?"
"그 미카엘 황자 전하잖나. 진심으로 휘르센 영애와 결혼했을 리는 없을 터…. 아마도 모종의 계약이 오가지 않았을까 싶네."
로제타가 협박을 해서 미카엘과 결혼을 했든, 미카엘이 어떤 목적이 있어 로제타와 결혼을 했든지 간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 연합에서 공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벽은 로제타였으니, 로제타가 약한 패트릭을 내세우는 것이 당연하다 여겨졌다.
"미카엘 황자가 어떤 목적으로 휘르센 영애와 결혼을 하신 것이라면…, 그 결혼을 그대로 두는 것은 휘르센 영애에게도 좋지 않아. 미카엘 황자 전하께서 휘르센 영애를 걱정해 주실 거라 생각하나?"
"……."
제럴드는 식장에서 보았던 미카엘을 떠올렸다.
붕대로 칭칭 감은 얼굴은 겨우 눈과 입, 귀 정도만 드러나 있었다. 로제타를 보는 눈빛은 꽤 다정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마차를 세워."
제럴드의 차가운 목소리에 패트릭과 로건은 눈살을 찌푸렸다. 로건은 한 번 더 설득해 볼까 하다가 마부에게 마차를 세우라고 명령했다.
더는 한자리에 있고 싶지도 않은 듯했다. 제럴드는 시종이 문을 열기도 전에 벌컥 문을 열고 마차에서 내렸다. 마차 바깥에는 하인이 그의 말을 끌고 따라오고 있었으므로, 돌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휘르센! 오늘 있었던 일은…."
로건이 말에 오르는 제럴드를 향해 말했다. 제럴드는 쳐다보지 않은 채로 내뱉었다.
"자네들과의 더러운 대화는 입에 올리지 않을 테니 안심하게."
하인에게서 고삐를 받아 든 제럴드는 잘 가라는 인사말도 없이 돌아섰다. 로건은 혀를 찼고, 패트릭은 가벼운 욕설을 내뱉었다. 로건이 다시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 시종이 문을 닫았다.
마차는 다시 천천히 어둠 속으로 움직였다.
***
로제타를 만질 때마다 미카엘은 자신이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되새기게 되었다. 잠에서 깨지 않도록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느껴질 정도니, 품에 안겨 있는 이 여인이 저를 만지기라도 하면 얼마나 느낄지 가늠하기어려웠다.
"하아…."
이렇게 끌어안은 채로 그녀가 잠에서 깨는 것을 기다리는 것도 좋지만, 역시 눈을 뜨고 자신을 봐 주었으면 싶었다. 목소리를 들려주고 사랑스러운 갈색 눈동자로 쳐다봐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심장은 녹아 버릴 터였다.
'빨리 일어나요, 나의 로제타.'
애가 달아 살그머니 그 뺨에 입 맞추는 것만으로도 오싹한 자극이 퍼져 나갔다. 만지고 싶은데…, 로제타의 잠을 방해할 것이 두려워 하지 못하겠다.
'많이 지친 건가?'
로제타의 체력이 한계에 달할 때까지 탐했다. 그 이상은 어려울 것 같아서 잠들게 두었지만, 아까운 짓을 했다는 자각도 있었다.
'아니, 안 될 일이지. 로제타의 몸이 상하면 안 돼.'
아까 눈을 뜨자마자 한 일은 치유 마법으로 혹시 모를 로제타의 상처를 치료해 주는 것이었다. 정사 도중에 로제타를 다치게 하는 멍청한 짓을 벌이지는 않았으나, 혹여몸 어딘가가 상하지 않았을까 싶어서였다.
혹사시킨 허리라든가, 오랫동안 다리를 벌리고 있어야 해서 허벅지의 근육이 놀랐을 수도 있었다. 그가 사용한 치유 마법은 근육통에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미카엘은 첫날밤과 야릇한 아침을 보내고 난 이후에 로제타가 제대로 걷지 못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 모습도 꽤 귀여웠으므로 미카엘은 기대하고 있었다.
치유 마법을 건다고 해서 갑자기달릴 수 있을 만큼 몸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혹시 모를 상처는 사라졌을 테지만, 여파는 남아 있을 것이다.
'고용인들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없으니 스스로 걷겠다고 떼를 쓸까? 그것도 귀여울 것 같은데…. 생각보다 로제타의 몸이 빨리 회복된 것 같으면….'
로제타의 민감한 곳을 잔뜩 괴롭혀 주어 몇십 분 정도 도달하게 한다면 무릎이 풀릴 것이다. 로제타는 꽤 잘 느끼는 것 같았으니까.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은밀한 곳을 혀로 위로해 주는 상상을 하자 아랫도리가 달아올랐다.
'나를 좋아하는 만큼…느끼겠지.'
3배나 쾌감을 증폭시켰다는 것을 알지만, 역시 기뻤다. 로제타가 쾌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마다 자신에 대한 애정으로 이렇게 느끼고 있구나, 라는 사실에 이성을 잃게 된다.
사실 원래 느끼던 쾌감에 더해지는 것이니, 온전히 그에 대한 감정만은 아니었다. 그걸 알지만, 자꾸만 생각이 그리로 기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으음…."
잠투정을 하는지 로제타가 몸을 뒤척였다. 새벽녘이라 아직 서늘하여온기를 찾아 미카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피부에 눌러지는 부드러운 여체에 미카엘의 몸이 확 달아올랐다.
'이런.'
그 주문을 자신에게까지 건 것은 패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로제타가 가볍게 몸을 문지르는 것만으로도 하반신이 터질 듯이 단단해졌다.
"으응…? 이게 뭐…."
몸을 밀착하고 있으니 제 배를 강하게 찌르고 있는 커다란 것이 궁금해졌나 보다. 로제타가 그의 가슴을 더듬고 내려온 손이 주저 없이 페니스를 거머쥐는 것에 미카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흐읏…."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자 로제타가 가물거리는 눈을 뜨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단정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붉게 물들인 나신의 남자가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다.
어….
로제타는 순식간에 제 손아귀에 잡혀 있는 뜨거운 것의 정체를 눈치챘다. 미카엘은 얼어붙어 있는 로제타에게 고개를 숙여속살거렸다.
"더 만져도 되지만…. 뒤는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으아아아아아악!
로제타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미카엘의 것을 뿌리쳤다.
미카엘은 신음을 삼키며 짓궂은 미소를 흘렸다. 스스로를 위로했을 때는 이렇게 느낀 적이 없었는데…, 로제타의 손길은 전율이 올 만큼 기분 좋았다.
"뭘 그리 놀라십니까? 어젯밤에는 그리 좋아하셨으면서…. 부인의 아랫입이 절 놔주지 않아 난처했었지요."
덥석 끌어안으며 미카엘이 로제타의 귓가에 속삭였다.
녹아내릴 듯한 달콤한 목소리로 말하며 넌지시 제 욕망을 로제타의 음부에 누르는 것에 로제타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직 미카엘의 정액으로 젖어 있는지라 질척이는 소리가 났다.
"음, 으읏…. 하으응…. 전하……."
"전하라니요. 로제타, 어젯밤처럼 미카엘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하아…, 문지르기만 했는데도 갈 것 같네요. 넣으면 얼마나 기분 좋을지…."
로제타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뜨겁고 단단한 것이 갈라진 틈새를 비비며 젖은 꽃잎을 문질러대는 것에 안까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이 뜨겁고 단단한 것이 어젯밤 저를 즐겁게 해 주던 것까지 떠오르자, 로제타는 그의 것을 받아들이고픈 충동마저 느꼈다.
'안 돼! 아침부터……. 아, 하지만 기분 좋아.'
결혼한 지 고작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을 뿐인데도, 하루하루가 달콤하기만 했다. 필립과의 결혼을 생각했을 때는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로제타, 허리가 움직이고 있잖아요. 넣어 드릴까요?"
귓가로 숨을 불어 넣으며 미카엘이 말했다. 로제타는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들썩이고 있었음을 깨닫고 당황했다.
이렇게 휘둘리면 안 되는데.
"아, 아니에요! 화…, 화장실부터…."
허둥지둥 미카엘을 밀어낸 로제타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휘청였다. 자고 일어나니 피곤이며 근육이 아팠던 것이 말끔하게 사라져, 다리에 힘이 빠질 줄은 몰랐다.
이를 예상했던 듯, 뒤따라 일어나고 있던 미카엘이 재빨리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의 손끝이 우연인 듯빳빳하게 선 유두를 스치자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하읏!"
음란한 자극에 로제타는 양팔로 제 가슴을 가렸다. 그러나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미카엘의 손바닥이 피부를 쓸어 올리는 것에도 쾌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로제타, 느끼는 겁니까? 로제타가 이렇게까지 나를 사랑하고 있을 줄은…."
황홀한 듯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으며 로제타도 당황하고 있었다.
'대체 왜 이렇게 느껴지는 거냐고!'
물론 필립에게 호감이 있기는 했다. 몇 번 봤다고 아무나하고 결혼하고 첫날밤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다 필립이 미카엘이라는 걸 알았고….
'나 심각한 얼빠에 금사빠였던 거야?!'
고민하는 사이 미카엘의 손이 로제타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고 있었다.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음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 두 다리는, 미카엘의 손길을 전혀 막지 못했다.
"흐아, 으……. 아앙…. 미카, 엘…. 님……. 으으응…."
그가 꽃잎을 주무르는 것에 거기가 온통 녹아 버릴 것 같았다. 미카엘은 로제타의 몸을 돌려 저와 마주 보게 하고는 요염하게 웃었다.
"님은 붙이지 말아요. 로제타는 이제 내 부인이지 않습니까?"
"하으읏, 거기 안 돼…."
느끼는 로제타의 얼굴을들여다보며 미카엘이 손가락 두 개를 갈라진 틈 속에 부드럽게 밀어 넣었다. 손가락을움직여 내부를 벌리자 정액이 주르륵 흘렀다. 그 광경에 로제타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시, 싫어! 벌리지 마세요!"
"제 정액이 흐르는 게 부끄럽습니까? 그럼…."
"히익!"
뜨거운 페니스가 틈새에 선단을맞췄다. 들어갈 듯 말 듯 가볍게 문지르는 것에 로제타는 입술을떨었다.
"이걸로 막아 드릴 수 있는데."
'뭐 이런….'
음탕한 인간이 다 있나 싶었으나, 선단이 벌써 들어와 버렸다. 로제타는 미카엘의 어깨에 매달리며 가늘게 헐떡였다.
"으응, 앙…. 싫어…."
"싫으십니까? 뺄까요?"
선단만 넣고 질척이며 비벼대던 페니스가 쑥 뽑히며 정액이 흘렀다. 로제타는 울상이 되어 제가 끌어안고 있는 미카엘을쳐다보았다.
"그, 그게 아니라…. 아아아아앗!"
멈칫하자마자 미카엘이 단숨에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간신히 사정을참는 듯 표정을흐리며 로제타를 부둥켜안았다.
"미안합니다. 눈치가 없어서…. 엉망이 될 때까지 탐해 주지 않아서 싫다는 말씀이셨군요."
"아, 아니! 후읍!"
당황하여 거절하려는 입술로 뜨거운 키스가 쏟아졌다. 그대로 로제타의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린 미카엘이 허릿짓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깨기를 기다리느라 더욱 단단해진 페니스가 쾌락으로 부푼 내부를 밀어젖힐 기세로 박아댔다.
"힛, 읍! 응, 으흣! 음!"
자극에 허리가 튀어 오르고 내부가 씰룩씰룩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조이는 로제타에 미카엘은 넋을잃지 않으려 안간힘을쓰고 있었다.
부드럽고 뜨거운 내부가 페니스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조였다. 그녀가 처음이기에, 그녀 외에는 알지 못했지만 이렇게까지 기분 좋을리 없다는 것을알고 있었다.
미카엘에게 그저 호감을품었을뿐인 로제타와는 달리 미카엘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것도 본인이 제 감정을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갈망했다.
그래서 미카엘이 느끼는 쾌락이란 엄청난 것이었다. 그는 이성을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쓰며 허리를 움직였다. 페니스를 밀고 당길 때마다 느껴지는 자극에 사정할 것만 같았다.
'아…. 로제타, 크읏…….'
어젯밤과 같은 망신을당할 수는 없었다. 급한 마음에 미카엘은 로제타의 다리를 들어 올려 안쪽을후비듯 허리를 움직였다. 파고든 페니스가 크게 원을그리는 것에 로제타의 눈이 커졌다.
"아아아아!"
움찔움찔 속살을경련시키며 조이는 것에 미칠 것만 같았다. 미카엘은 더 깊이 밀어 넣고 싶다는 듯이 허리를 묻으며 로제타의 입술을빨았다. 혀가 뒤엉키는 감촉만으로도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벌써, 흐앗! 읏! 아앗…."
도달한 듯 늘어지려는 로제타의 안으로 미카엘이 격렬하게 허릿짓했다. 로제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버둥거렸다.
"앙 대! 도달, 도달했…. 으응! 아흐앗!"
미카엘또한 사정한 듯 안쪽으로 끈적한 액체가 뿜어졌으나, 피스톤질이 멈춰지지 않았다. 로제타는 흐느끼며 허리를 튕겼다.
"앗! 앗! 미카엘, 더는…. 아하아아앙!"
절정이 계속 밀려오며 몸이 경련했다. 미카엘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쉼 없이 이어지는 열락에 허리를 멈출 수 없었다.
"흐으……, 로제타…. 로제타……!"
퍽푹퍽! 철퍽철퍽! 하는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로제타의 나머지 다리도 들렸다. 미카엘의 팔에 완전히 들려 버린 로제타가 넋을잃은 채로 아래위로 흔들렸다.
"아! 아아아……. 아아아앗!"
정신을잃을듯한 절정에 시달리며 로제타는 미카엘의 팔 안에서 경련했다. 배 속을휘젓는 쾌락 덩어리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졌다.
***
침대 위에 다시 눕혀져 한참을탐해진 후에야 로제타는 미카엘의 페니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카엘은 축 늘어진 로제타를 소중히 안아 올려 욕실로 향했다. 침실에 딸린 욕실에는 이미 목욕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미안해요, 로제타…. 제가 참을수가 없어서. 대신 오늘 하루 종일 로제타의 시중은 제가 들겠습니다."
"하아……. 그러실… 건…. 으음…."
로제타를 안아 들고 욕조로 들어가던 미카엘이 그녀의 입술에 부드럽게 키스했다. 혀끝에 닿아 오는 감촉에 한숨이 절로 흘렀다.
"제가 하고 싶어 그러는 거예요."
천천히 욕조 바닥에 앉은 미카엘이 로제타를 제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그가 느릿한 손길로 피부를 쓸어 만지는 것에 한숨이 나왔다.
'기분 좋아.'
기분 좋지만 너무 느낀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렇게 안기다가는 몸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저어…, 미카엘님. 그 주문을이제 풀어 주시면… 안 될까요? 으음…."
피부를 오가는 미카엘의 손길도 그저 달게만 느껴졌다. 로제타가 신음하며 속삭이자 군침을삼키는지 미카엘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어째서……? 기분 좋았잖아요, 로제타."
"기분 좋지만…, 너무 느껴서……. 이래서는 일상생활이 어려울 거예요. 하앙!"
유방을덥석 그러쥐는 손길에 로제타는 움찔 몸을떨었다. 미카엘은 음란한 손길로 그것을주무르며 속삭였다.
"지금은 신혼여행 중이니 괜찮지 않습니까? 일상생활 때에는 아무래도 옷을걸칠 테고…."
"으응, 음…. 마, 마법이 아니어도…. 충분히 느꼈잖, 아요. 그러니 이런 주문까지는…."
그저 유방의 부드러운 부분을주무르고 있을뿐, 유두는 건드리지 않았음에도 느꼈다. 빳빳하게 선 그것이 아래위로 흔들리는 것도 자극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아…, 기분 이상해.'
로제타는 뺨을물들이며 미카엘의 대답을기다렸다. 이제까지 자신의 말이라면 웬만하면 다 들어주었던 미카엘이니 들어줄 거라 여겼다. 애초에 자신과 이런 주문을걸어서 좋을게 없잖은가!
"…이 주문은 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풀기는 까다로워서."
"앗! 아…. 으응, 거기는…."
유방의 살만 주무르던 미카엘의 손가락이 유두를 스치듯 괴롭히는 것이 느껴졌다. 찌르르하게 번지는 달콤한 자극에 로제타는 몸을꼬았다. 기분은 좋지만 이럴 때가 아닌데.
"아앙, 어…, 어떻게 해야……. 으흑…."
"페니스에 마력을담아 로제타의 가장 깊숙한 곳에 쏟아부으면 됩니다."
에?
놀란 얼굴로 미카엘을보았으나 그의 얼굴은 진지하기만 했다. 다만 손가락은 그렇지 못해서 유두를 달콤하게 주무르고 있었다.
"하으! 앙, 으응…. 지금 그렇게 만지면…."
"그게 끝이 아니에요. 내가 마력을쏟아부을동안 로제타는 절정을느끼면 안 됩니다. 절정으로 방출되는 에너지가 주문을푸는 것을방해하니까요."
물론 이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이 주문은 거는 것도 푸는 것도 미카엘에게는 까다롭지 않은 것이었다. 자신에 대한 감정이 얼마만큼 자라났는지를 매일 밤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주문을포기할 수 있을리 없다.
주문을푸는 것을핑계로 실컷 자신에게 안기다 보면, 로제타도 이 주문이 좋아져 포기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반면 로제타는….
'말도 안 돼!'
주문을푸는 방법을듣고 기가 막혔다. 미카엘이 그녀와 더 많이 섹스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거짓말을했을거라고는 생각지 못하는 로제타였다.
'19금 소설이라서?'
그렇다 하더라도 난 주인공도 아닌데, 왜 남주와 이런 이벤트가 있단 말인가! 역시 미카엘은 남주에서 떨궈진 건가?
"할 수 있겠습니까, 로제타?"
길고 우아한 손가락으로 로제타의 유두를 기분 좋게 괴롭히며 미카엘이 속삭였다. 말하며 귀를 가볍게 깨무는 것에 로제타는 으흣, 하고 몸을움츠렸다.
"미, 미카엘님이 도와주시면…."
미카엘이 격렬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절정을참는 것쯤은 쉬울 것이다. 미카엘의 페니스를 넣은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기는 해도, 움직이지 않으면 괜찮으니까. 그러나 미카엘은 로제타의 뺨에 입술을누르며 말했다.
"움직이지 말라는 주문이시라면, 어렵겠습니다…. 마력을쏟아부을때 반대로 저는 절정을맞이해서 로제타안에 사정해야 합니다. 마력과 같이 제 정기를 로제타안에 부어야 하니까요."
미카엘이 실컷 즐기는 동안 혼자 도달하지 말고 참고 있으라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로제타는 그 생각에 울상이 되었다.
"으으…. 어째서 이런 풀기 힘든 주문을……!"
"풀 필요가 없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로제타와의 밤이 즐겁기를 바랐으니까…. 물론 로제타가 이 정도로 날 좋아해 주고 있을줄은 몰랐기에 생긴, 기분 좋은 패착입니다."
가볍게 유두를 당긴 미카엘이 그것을주물렀다. 야릇한 자극에 치밀어 오르던 화가 누그러드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 그만 만지세요. 아흑…."
"하지만 만지지 않고 어떻게 씻기겠습니까? 거기다 로제타의 피부는 너무 부드럽고 사랑스러워서…."
유방을제멋대로 주무르며 기분 좋게 해 주던 손이 스윽 아랫배를 훑고 허벅지로 내려갔다. 미카엘의 음란한 손길에 로제타는 가만히 몸을떨었다.
"으읏…. 아응……."
"손이 떼어지지 않아요. 로제타, 내사랑…. 만지지 말라니. 그런 심술궂은 말은 하지 말아요. 어젯밤도, 오늘 아침도…, 내감정을확인하지 않았습니까?"
허벅지 위를 쓰다듬는 단순한 손길에도 느껴졌다. 로제타는 헐떡이며 미카엘의 아름다운 얼굴을올려다보았다. 어느새 몸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사랑해요, 로제타. 그대를 평생사랑할 수 있는 이 기쁨을…. 제게서 가져가지 말아 주십시오."
속삭이며 포개지는 입술에 로제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졌다. 마법으로 그는 자신의 마음을로제타에게 증명해 보였으니까.
미카엘이 그녀의 안에서 정신없이 느꼈음을로제타또한 분명히 목격하고 말았다.
'저 미카엘이 날…. 그럴 리가 없는데……. 아, 하지만 두근거려….'
자신도 미카엘을어느 정도 좋아하고, 미카엘은 그보다 몇 배는 더 자신을사랑하는 것 같았다.
미카엘은 그녀와 잠자리를 함으로써 이미 남주가 아니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니…. 이대로 그의 곁에 안주해도 되는 게 아닐까? 애초에 필립과도 잘 맞으면 계속 살 생각이지 않았던가.
'모르겠어.'
고민하며 로제타는 미카엘의 목을끌어안았다. 어찌 되었든 지금은 그들의 신혼여행 중이었고, 미카엘도 자신도 달콤한 시간을보낼 이유는 충분했다.
라울 카룰리아스는고민하고 있었다. 미카엘황자에 대한 이자벨의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도 찬성한 결혼이기는했으나, 미카엘황자의 마음을 돌리는것은 쉽지 않았다. 은근한 압력에는꿈쩍도 하지 않을 테고,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욕심을 드러내 보이기도 어려운 상대였다.
'언젠가는이런 일이벌어질 줄 알았지.'
한 번의 결혼이실패했다고는하나 결혼 시장에서 미혼과 다를 바 없이취급받던 황자였다. 현 황제와 황비의 슬하에 자식이없기에 더더욱 그의 인기가 치솟고 있었다.
카룰리아스 공작가 또한 같은 입장이기는했으나…, 이젠 어쩔 수 없었다. 황제가 될 수 있는기회를 차 버린 것은 미카엘황자쪽이었다.
'이자벨이어떻게 나올지….'
저주에 당한 바가 있으니 얌전하게 있는것이보통일 테지만, 그의 딸은 보통이아니었다. 미카엘황자의 결혼 소식을 듣고 미쳐 날뛸지도 모를 일이었다.
연회에 다녀온 밤에는조용했다. 카룰리아스 공작도 굳이이자벨에게 황제의 연회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 주지 않았다.
저주 문제가 있으니 당분간은 병이났다고 소문을 내고 집 안에 칩거하라는명령을 내린 것은 공작 자신이었다. 그러니 이자벨은 지금 집 안에 있을 것이다.
근심스러운 듯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카룰리아스 공작이고개를 들었다. 공작은 방 안에 대기하고 있던 시종에게 이자벨을 데리고 오라고 지시했다.
이자벨은 늘 그러하듯 곧바로 공작의 집무실로 올라오지 않았다. 그녀는한 시간쯤이지난 뒤에야 집무실로 올라왔다. 우아한 상앗빛 드레스를 차려입고 그의 앞에서 인사를 올리는이자벨의 모습에 공작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저리도 아름다우면 뭐 하나, 그토록 공을 들인 황자의 마음을 사로잡지도 못했는데. 짜증스러운 마음이들었으나 이미 떠나 버린 배였다.
"부르셨습니까, 아버님?"
"그래."
언젠가는시집보낼 딸자식이기는했으나 카룰리아스 공작가를 빛나게 해 주는자식이기는했다. 이자벨은 늘 라울 카룰리아스를 기쁘게 했으며, 그녀는카룰리아스 공작가의 자랑거리이자기쁨이었다.
그녀가 저주에 걸리기 전까지는.
이전에는이자벨이사람을 해쳐도 카룰리아스 공작가의 이름을 더럽히는일은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누군가 이자벨에게 저주를 걸었다면, 그이상의 일도 있을 수 있었다. 혹은 이자벨이한 짓에 대한 추문이나돈다든가.
라울은 이자벨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제까지는이자벨이원하는대로 공작가의 사람을 부리게 해 주었으나 앞으로도 그렇게 할 수는없었다.
"어제 황제 폐하의 연회에 참석했다는얘기는들었을 것이다."
늦은 밤에 열리는연회였기에 이자벨은 공작을 기다리지 않고 일찌감치 잠이들었다. 그시간에 열리는연회는늦은 시간까지 계속되는데다가, 공작저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잠이드는것도 종종 있는일이었다.
"폐하께서…. 미카엘황자께서 결혼을 했다고 하시더구나. 상대는로제타 휘르센 영애다."
그어떤 일에도 충격을 받지 않았던 이자벨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번개가 내리꽂힌 듯한 기분을 느꼈다.
로제타 휘르센. 그보잘것없는계집애가 미카엘과 결혼을 했다고?
"휘르센 영애는초혼이지만, 황자께서는그러하지 못하시니 결혼식은 조용히 치렀다 말씀하셨다."
"뭔가 잘못 아셨을 겁니다. 로제타 따위가 감히…!"
"폐하가 직접 모든 신하와 고위 귀족들 앞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거기에 거짓이끼어들 틈이있을 것 같으냐?"
깊은 한숨을 쉰 라울은 제 딸이그래도 이성은 잃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조용히 말했다.
"두 번째 결혼이라고는하나…, 황제가 아끼는동생의 결혼이다. 우리 집안에서도 선물을 보내야 할 것이다."
"……."
자신이사랑하는남자의 결혼식에 선물을 보내야 한다는상황 자체는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자벨은 오직 미카엘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와 있어야만 하는자신의 것.
'내 감시를 빠져나갔다고?'
황제가 어젯밤 연회에 사람을 불러 말하였으니 이미 결혼식은 끝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카엘도 로제타와 첫날밤을 치렀다는얘기가 된다.
'안 돼….'
미카엘의 모든 것은 자신의 것이어야만 했기에, 이자벨은 그상황에 끝없는분노를 느꼈다. 자신 외에는그어떤 여자와도 이어져서는안 되건만! 미카엘이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달아나려 하고 있었다.
"이자벨. 내 얘기를 듣고 있느냐?"
공작이언짢은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이자벨은 형형한 눈빛을 감추며 카룰리아스 공작을 바라보았다.
"듣고… 있습니다. 카룰리아스 공작가의 이름으로 선물을 보내야 한다는말씀이시지요?"
"그래. 네게는잔혹한 일일지도 모르나 어차피 벌어진 일이아니더냐. 미카엘황자에 대해서는잊거라. 세상에는뜻대로 되지 않는일도 있는법이다."
천만에. 내 뜻대로 되지 않는것은 없어.
이자벨은 분노 가득한 심정을 누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카룰리아스 공작은 딸의 그미소에 섬뜩한 느낌을 받았으나 기분 탓이겠거니 했다.
제 딸이라고는해도 한낱 계집에 불과한 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나 싶었다. 이자벨이가진 힘은 모두 그가 쥐여 준 것이었다.
"아무튼. 카룰리아스 공작가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선물을 준비해야 함을 잊지 말거라."
이자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부인이죽은 후로 카룰리아스 공작가의 집안일은 모두 이자벨에게 맡겨져 있었다. 선물을 준비하여 선물하는일도 당연히 이자벨의 몫이었다.
"염려 마세요. 실망시켜 드리는일은 없을 것입니다."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며 이자벨은 조용히 웃었다. 그웃음이가장 무시무시한 것임을 공작은 눈치채지 못한 채로 딸을 집무실 밖으로 내보냈다.
***
미카엘의 움직임은 오래전부터 이자벨에게 보고되고 있었다. 그녀는제가 사랑하는남자에 대한 감시를 소홀하게 한 적이없었다. 그가 그녀를 거절하기 이전부터 이자벨은 미카엘의 모든 것을 틀어쥐고 싶어 했다.
이자벨은 익숙한 듯 공작저의 북쪽 탑으로 향했다. 죄인을 처벌하거나 가두는곳으로 이용되는북쪽 탑은, 이자벨이제 수하들을 만나는장소로도 활용되고 있었다.
'황자가 결혼한다는사실조차 알지 못하다니….'
한때, 황자와 결혼했던 그어리석은 계집을 죽인 직후에는감시하는것이어려웠었다. 그러나 결국 그런 상황도 지나갔고, 미카엘은 이자벨의 감시망을 벗어난 적이없었다. 아니,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 감시에 구멍이있었단 말인가?'
아니면 그녀의 휘하 중에 황실의 세작이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이자벨을 섬기는자들은 하나같이십 년 이상 그녀를 모셔 왔던 자들이었다. 그들 중 누군가가 배신을 꾀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모두 제각기 이자벨에게 약점을 잡혀 충성하고 있었다. 시작은 약점으로 인한 것이었으나 십여 년 이상 악행을 거들어 왔던 자들이었다.
아닌 척해도 그들의 손 또한 피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기에, 이자벨은 그들이자신을 배신했을 거라고는생각지 않았다.
'어디서 실수가 있었던 거지?'
최근의 보고에서 미카엘은 북쪽의 마르카 산맥에 위치한 유적지에 자주 드나들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유적의 고대 마법을 연구하는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것이다.
그것이감시를 눈치채고 보인 연극이었다고 한다면 이야기가 들어맞는다.
'수도 밖에서 몰래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떠났다고 하면….'
최근의 행보를 숨겼다고는해도 모든 정보가 차단된 것은 아니었다. 미카엘은 몇 개월 사이무인도를 사들였고 거기에 성을 짓고 있었다. 섬으로 인부는들이지 않았으나 그를 위한 건축 자재가 섬으로 들어가고 있었으므로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신혼여행지는아마도 그섬일 것이다.
'차라리 잘되었다. 사람이살지 않는섬이니 마물의 습격도 잦을 터….'
같은 악몽을 재현시켜 과거의 기억을 되새겨 줄 생각이었다.
고작 2년의 시간이흘렀을 뿐이다. 아직 그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괴로움을 맛보고 있는줄 알았더니, 결혼을 꿈꾸고 있었다니…. 그것도 자신 외의 여자와!
'용서 못 해!'
***
"로제타."
다정하게 속삭이는목소리에 로제타는어깨를 움츠렸다. 그런 로제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는미카엘은 그마저도 사랑스럽다는듯이눈을 휘었다.
이사람은 왜 이러는걸까?
섬에서 보낸 요 며칠은 그저 달콤하기만 했다.
처음 며칠간은 성의 침실에서 내보내 주지 않고 사랑을 나누더니, 그녀가 조르니 조금씩 이곳저곳을 구경 다니기 시작했다.
성의 높은 첨탑과 수많은 홀, 보석과 비단으로 꾸며진 아름다운 방을 비롯하여, 마법으로 층계를 만들어 놓은 폭포와 수정 동굴, 사시사철 꽃을 피워 올리는숲까지도 보여 주었다.
미카엘은 그모든 것이로제타를 위한 것이라며 속삭였다. 로제타와의 결혼을 준비하며 때때로 이섬으로 와서 성을 만들고, 섬을 꾸몄다는것이다. 로제타는그사실이믿기지는않았으나 그의 선물을 거부할 수 있는방법은 없었다.
귓가로 속삭이는부드러운 목소리가 간지러워 어깨를 움츠리는것에도 귀엽다는시선을 보내주는사람이었다.
'이상해. 왜 나한테 이러는거지?'
미카엘의 감정을 의심하기에는그가 너무 많은 증명을 해 보였다. 성과 섬을 구경하다가 밤이되면 그들의 침실로 돌아와 사랑을 나누었다.
거의 매일, 모든 밤이그러했다.
실은 미카엘은 낮에도 하고 싶어 했으나, 낮에 사랑을 나누게 되면 하루 종일 침실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로제타가 시무룩해졌으므로 미카엘은 당황하며 사과를 했다.
'정말 날…. 조, 좋아하는것 같기도 하고.'
만약 미카엘이정말로 자신을 좋아하는거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로제타는고민했다. 사실 로제타의 능력치로 미카엘을 떨궈 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원작의 여주를 여주1이라 치고, 원작 여주1은 패트릭과 로건, 제럴드의 도움을 받아 미카엘을 죽였으니 해방된 것이었다.
즉, 미카엘이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면, 죽이지 않고는떼어 놓기 어렵다는얘기다.
죽이는것도 원작 여주나 되어야 가능한 일이지, 동원할 수 있는서브남주가 아예 없는로제타로서는불가능한 일이었다.
'큰일 났다.'
어차피 미카엘을 죽인다든가 하는짓을 할 자신은 없었지만, 퇴로가 완전히 막혔다는사실에 머릿속이멍해졌다.
이전에야 미카엘이진심이아니라 생각했으니, 때가 되면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미카엘과 보낸 시간이3주쯤 되니 아무래도 진심 같았다.
'아니아니아니! 이러다가! 여주한테 꽂힐 수도 있잖아! 그러면 난….'
이섬과 성을 받고 이혼할 수 있는건가?! 난 순순히 이혼해 줄 테니까 위자료도 많이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황자에 공작인 미카엘은 쩨쩨한 남자가 아니었다. 곱게 이혼해 주는로제타를 냉혹하게 쫓아내지는않을 것이다.
'그거 좋다! 그루트로 가자!'
눈을반짝이는 로제타의 모습에 미카엘이의아한 듯 시선을주었다.
"무슨 생각을그렇게 골똘히 하는 겁니까?"
"어…. 그게…. 아! 신혼여행 끝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고…."
미카엘이부드럽게 웃으며 로제타의 뺨에 입 맞췄다. 이쯤 되면 로제타의 얼굴이며 몸에 키스하는 게 버릇으로 굳은 것 같았다.
"수도로 올라가서 폐하께 인사를 드리고…. 다시 공작령으로 내려갈 겁니다."
"수, 수도로 돌아가야 하나요?"
겁먹은 로제타의 표정에 미카엘이달래듯 그녀의 머리칼을매만졌다.
"카룰리아스공녀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면, 제가 곁에 있을겁니다, 로제타. 이전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않을거예요."
'아니, 걘 미친년이고, 그정도로 끝나지않을것 같은데….'
이전에는 다른 영애들을동원해서 로제타에게 아이리스를 괴롭혔다는 누명을씌웠다면, 지금은 죽이려 들 것이다. 암살자를 동원하든, 마법사를 부려 하급 마물을보내든, 어떤 방식으로든 살해하려고 할 것이눈에 선했다.
"차라리! 이자벨 영애에게 저주로 저와 연결되었다는 걸 알리면! 당장 죽이려고 들지는 않지… 않을까요?"
"그방법을생각하지않은 건 아니지만…, 그카룰리아스공녀라면 로제타에게 증거를 보이라고 할 것 같아서요."
"보이면 되잖아요."
로제타가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이자 미카엘이미간을찌푸렸다.
"안 됩니다. 그여자라면 로제타의 몸에 상처를 내 보려고 할 테니까요. 그핑계로 무슨 수작을벌일지모르죠."
가령 손가락 끝에 상처를 내 보라며 독이발라진 페이퍼 나이프를 내밀지도 모른다. 이제까지한 짓을생각하면 그러고도 남을여자였다.
"이대로도…, 암살자를 보낼 것 같은데요? 지금쯤 미카엘 님과 제결혼 소식이전부 알려졌다면요."
황제에게 부탁하여 그날 밤에 고위 귀족들 모두에게 알려 달라고 했지만, 미카엘은 그런 사실까지로제타에게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그녀가 수도의 귀족들보다는 자신에게 집중해 주기를 바랐으니까.
또한 로제타와 마찬가지로 미카엘도 그부분을걱정하여 일부러 이섬을신혼여행지로 정했다.
이성의 지하에는 거대한 마법진이설치되어 있었다. 섬 전체를 감싸는 결계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로제타가 잠들어 있는 밤에 미카엘은 이결계를 발동시켰고, 현재는 섬 전체가 지워진 듯이바다 위에서 보이지않는 상태였다.
그러니 이자벨이로제타를 죽이려 무엇을보냈다고 해도 섬에는 도착할 수 없었다.
"로제타에게는 제가 있습니다. 절대 당신에게서 눈을떼지않을겁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말아 주십시오."
부드럽게 속삭이면서도 그목소리는 단호했다. 로제타가 어렴풋한 두려움이일렁이는 눈으로 바라보자 미카엘이강한 시선을보냈다.
이전과는 달랐다. 그때는 설마 제아내가 노려지리라고 상상도 하지못했지만, 지금은 모든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다시는 같은 괴로움을반복하지않도록-.
미카엘은 리디아 때와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미안했지만, 리디아의 죽음은 어찌어찌 견뎠다고 해도 로제타는 달랐다. 로제타를 잃는다면 그는 견디지못할 터였다.
"절대 당신을잃지않을테니…. 그러니……."
속삭이는 목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그의 물기 어린 목소리의 이유를 아는 탓에 로제타는 미카엘의 손을잡아끌었다.
"네. 믿을게요."
로제타는 그의 손을끌어당겨 제허리를 안게 하고는 미카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래.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지뭐. 내게는 가장 큰 원군인 미카엘이있다고!'
***
황비의 다과회에 초대되는 것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큰 영광이었다. 특히나 어느 모로 보아 고위 귀족이라 할 수 없는 영애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다과회에 참석하는 영애들의 표정은 썩 좋지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미카엘과 로제타의 결혼 소식을들어서였다.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겠지?'
'설마 보복하려고 들까?'
'그휘르센 영애가 설마 미카엘 황자님과 결혼하게 될 줄은….'
그녀들은 모두 로제타를 모함하는 데 한몫을거든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미카엘 황자를 사모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아이리스에게 반감을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누군가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것은 그들의 약점을알고 있다는 협박 편지였다. 치부를 들키고 싶지않으면 자신이지시한 내용대로 움직이라는 비열한 내용이었다.
그녀들은 그것이나쁜 짓이라는 것을알면서도 쉽게 움직였다.
첫 번째로 약점을잡혀서도 그러했고, 두 번째로 아이리스에 대한 미움 때문이었다. 세 번째로 이편지대로라면 누구에게도 들키지않고 아이리스를 괴롭힐 수 있어서였다.
단 한 사람.
로제타에게만은 자신의 악행을들킬 수밖에 없으나…, 모함당해 평판이땅에 떨어진 영애의 말을누가 믿어 줄까 싶었다.
얕은 죄책감은, 아무런 죄도 뒤집어쓰지않고 아이리스를 괴롭힐 수 있다는 쾌감으로 바뀌었다.
그녀들은 편지를 받을때마다 한 몸처럼 움직였다.
누구는 아이리스가 저를 괴롭힌 이를 보지못하게 시선을끌었고, 누구는 망을봤으며, 누구는 아이리스를 해치는 행동을했다. 어떤 영애는 로제타를 문제의 장소로 끌어들이는 역할을맡기도 했다.
로제타는 두 번 정도 같은 일이반복되자 그들을피해 다녔다. 그들 중 한 명을붙잡고 나한테 왜 이러냐고 따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들은 로제타를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여러 사람이한 사람을악녀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들은 점점 더 대담해졌으며, 다음 편지는 언제오나 기대하게 되었다.
그러다 로제타가 수도에서 도망쳐 버렸다. 더 심한 괴롭힘을할 수 있을줄 알았던 그들로서는 애석한 노릇이었다.
'그멍청한 휘르센 영애가 미카엘 황자와 결혼하다니! 무언가 잘못된 것이틀림없어!'
그들은 분노했으나 뒤이어 두려움이몰려왔다. 로제타가 백작 영애였을때와는 상황이확연히 다른 탓이었다.
로제타가 패트릭 영식을좋아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소문이었으므로,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미카엘과 결혼한 것이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쩌지?'
그들은 애써 태연한 얼굴로 시종을따라 내실로 들어섰다. 사실 초대장을가지고 황궁에 도착했을때부터 그들은 불안해하고 있었다.
초대받은 이들이모두 로제타를 모함하는 데 참여한 이들이었던 것이다. 모든 영애들이매번 괴롭힘에 참가했던 것은 아니었다. 각자 역할이다른 만큼, 사건별로 여섯 명에서 여덟 명까지의 영애들이동원되었다.
이번 다과회에 초대를 받은 영애들은 27명이었다. 모두 아이리스를 괴롭히고 로제타에게 그죄를 덮어씌우는 데 한 번 이상 참여한 자들이었다.
"이곳입니다."
시종이문 옆으로 비켜서며 문 앞에 선 시종들에게 눈짓을보냈다. 시종들은 공손히 인사를 하며 양쪽으로 되어 있는 문을열었다. 황궁의 다과회에 이렇게 초대된 것은 처음인지라 그녀들은 긴장 반, 설렘 반으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실내였으나 의외로 의자와 테이블은 얼마 되지않았다. 거기다가 벽에 힘깨나 쓸 것으로 보이는 시녀와 하녀들이도열해 있었다.
'뭐지?'
느낌이좋지않았다. 그러나 황궁의, 그것도 황비의 초대를 받은 입장에서 갑자기 방을빠져나가기란 쉽지않은 일이었다. 거기다 여기에 모인 영애들은 애매한 입장이었다.
하급 귀족보다는 신분이높은 자들이대부분이었으나 힘은 없었다. 고위 귀족가의 영애라고는 해도 집안의 이름만 알려져 있을뿐, 그녀 자체로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 매해 데뷔탕트를 치르기만 할 뿐, 사람들 기억 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그런 영애들인 것이다.
"황비 전하께서 오십니다!"
시종의 외침에 자리를 잡지못하고 서성이던 영애들이조용해졌다. 방 안에는 소파 세트가 딱 하나만 놓여 있었다. 자리로는 다섯 자리가 비어 있는 셈이었다.
그녀들은 애매한 집안의 영애들인 데다, 황비와 사적으로 아는 사이도 아니었기에 섣불리 행동하지못했다.
"황비 전하를 뵙습니다."
그나마 이름이알려진 집안의 영애가 재빨리 황비에게 인사를 올렸다. 스무 명이넘는 영애들이그렇게 인사하는 것을황비는 우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등 뒤로 십여 명의 시녀들을거느린 채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안내된 방이꽤나 넓었으므로 오십여 명의 인원이모였음에도 좁다는 생각이들지않았다.
황비인 아네트는 천천히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녀의 등 뒤로 시녀들이서고, 전속 시녀의 지시에 몇 명이방 밖으로 가서 다과가 든 트레이를 가지고 돌아왔다.
"……."
방 안은 쥐 죽은 듯이고요해졌다. 시녀가 가지고 온 트레이는 두어 접시의 과자와 하나의 찻잔과 찻주전자만이담겨 있었다. 스무 명이넘는 이들의 몫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시녀는 영애들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소파 테이블로 다가가 접시와 찻잔을내려놓고 황비의 찻잔을채웠다.
아네트는 가벼운 한숨을쉬고는 찻잔을들어 한 모금을머금었다. 그녀의 싸늘한 시선이영애들에게 와닿자 영애들은 당황한 듯 시선을내리깔았다. 설마, 설마…, 하는 두려움이그들 사이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서로의 얼굴을보았으니…, 내가 왜 그대들을불렀는지는 눈치챘겠지?"
헉. 누군가 숨을크게 들이쉰 것 같았다. 영애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그들은 왜 이곳으로 초대되었는지는 눈치챘으나, 증거가 없으리라 보았다.
거기다 그들은 다수였다.
로제타가 억울함을호소한다고 한들, 숫자가 많은 그들이더 유리하리라. 사람들이누구의 말을더 믿어 줄지는 뻔한 일이었다.
"황비 전하. 휘르센 영애에게 무슨 말씀을들으셨는지는 모르나! 그것은 모두 거짓입니다!"
모인 자들 중에서 가장 작위가 높은 후작 영애가 먼저 입을열었다. 그러자 모든 영애들이아우성치기 시작했다. 모두가 겁에 질려 있었으면서도 그녀들은 뻔뻔했다. 각자 말은 달랐으나 한목소리로 로제타를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달칵.
아네트가 찻잔을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고개를 드는 황비의 싸늘한 시선에 영애들 몇몇이눈치 빠르게 입을다물었다.
짝!
뒤에 선 시녀 중 한 명이말채찍으로 바닥을내리치는 소리에 영애들 모두가 조용해졌다. 아네트는 가볍게 한쪽 눈썹을치켜 올리며 말했다.
"이제야 조용해졌군. 뭐부터 지적해야 할까…. 우선 이제는 휘르센 영애가 아니지. 결혼을해서 아덴 공작부인이니."
아네트의 말에 후작 영애가 찔끔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뭔가 더 말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시녀가 든 말채찍이두려운 모양이었다.
"영애들은 참 용감해. 어리기 때문일까? 엄연히 국법이있는데 말이야…. 수잔. 황족을음해한 자에게는 어떤 형벌이내려지지?"
곁의 전속 시녀에게 눈길을주며 아네트가 물었다. 웃음기 하나 없는 시녀인 수잔이딱딱한 얼굴로 대답했다.
"혀를 뽑거나 자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영애들의 눈이화등잔만 해졌다. 야만적인 방법이라고 하여 최근 50여년간은 전혀 시행되지않고는 있지만…, 법에 그리 되어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영애들이겁먹은 듯 몸을움츠리는 것이보였다.
"아덴 공작부인은 이제황실의 가족이니 황족이라 할 수 있거늘…. 이리도 앞뒤 분간하지못하고 달려드니…."
"모, 모함입니다! 황비 전하!"
영애들 중 하나가 덜컥 황비 앞으로 달려 나오며 소리쳤다. 그녀는 자작가의 영애였으나 제법 이름 높은 기사를 배출한 가문이었다. 자작 영애는 억울하다며 황비 앞에 무릎을꿇었다. 아네트는 눈살 하나 찌푸리지않은 채로 그녀를 보았다.
"메리."
아네트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방 안쪽에 나 있던 문이 열렸다. 덩치가 좋은 황궁 하녀에 의해 시녀 하나가 끌려 나왔다. 모여 있던 영애들 중 몇몇이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고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아이리스를 괴롭히고 로제타를 모함하는 데 거들었던 시녀였다. 돈을 받고 수도 밖으로 도망쳤던.
'저 여자를 잡았단 말인가?!'
무릎을 꿇고 있던 자작 영애의 입이 벌어졌다. 그녀는 벌벌 떨면서 아네트의 눈치를 보았다. 아네트는 웃음을 보였으나 그것이 호의적인 웃음이 아님은 알 수 있었다.
"이제는 황비인 내가 그대들을 음해하고 있다고 모함할 차례로군. 그렇지 않은가?"
그대들에게 혀가 남아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
아네트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기가 가시기도 전에 영애들은 비명을 지르며 제 잘못을 고해바치기 시작했다.
시녀들 사이에 선 마법사는 조용히 그 모습을 수정구에 녹화하고 있었다.
* * *
다과회장에 모인 모든 영애들은 각자의 죄를 인정한 진술서를 쓰고 난 다음에야 그곳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영애들로부터 자신이 쓴 진술서에 서명을 받은 관리는 혀를 찼다.
"수법이 악랄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죄를 뒤집어씌우면 빠져나갈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지요. 괴롭힘을 당한 영애도 안됐지만, 아덴 공작부인께서도 굉장히 괴로웠겠군요."
영애들이 순순히 죄를 인정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다과회장에 불러들인 것은 여인들뿐이었다. 영애들에게 진술서를 받고 각자의 죄에 따라 서류를 분류하는 관리도 여인이었다.
레베카 윌슨.
평민 출신으로 어느 후작의 비리를 밝혀낸 것을 인정받아 기사 작위까지 받은 능력 있는 관리였다.
아네트는 레베카가 정리한 서류를 살펴보며 혀를 찼다.
"아덴 공작부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데 가담한 자들뿐인데도 너무 많군."
"지난 8년간 사교계에서 추방당한 영애는 몇 명이었습니까?"
"내 기억이 맞는다면…, 아마 두 명쯤일 거야. 아덴 공작부인을 제외한 숫자지. 모두가 리디아를 괴롭혔던 이들이었어."
그들이 로제타와 같은 피해를 봤다고 한다면, 그 괴롭힘에 가담한 자들의 숫자도 상당할 것이다. 오늘 다과회에 모인 영애들 중에도 그녀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이도 있었다.
"일단은 스물일곱 개의 가문이군요. 어쩌실 작정이십니까? 하나하나의 가문은 힘이 대단치 않지만, 모이면 그들도 세력을 가지는 셈입니다."
영애 대여섯 명 정도라면 죄를 묻기 쉬워도 그것이 스물일곱 명이나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녀들이 스스로 작성한 진술서가 있어도, 어린 영애를 황실에서 압박하여 진술서를 썼다고 주장할 것이다.
물론 대놓고 황실을 적대하지는 못할 테지만, 그들과 혈연을 맺고 있는 가문까지 나서면 골치 아파진다.
"그 영애들이 어찌 행동하는가에 따라 다르겠지."
아네트는 그들이 다과회장을 떠나기 전에 한 가지 제의를 해 두었다.
겁먹은 채 모여 있는 영애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으나 같지는 않았다. 체념하거나 두려워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제가 억울하다 생각하고 불만을 품은 자들도 있었다.
'저런, 많이들 두려운가 보군. 나와 폐하가…, 이 일을 어찌 처리할 것인지 걱정이 되는가 보지?'
영애들은 대답하지 못한 채로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모인 영애들 중에는 제법 머리가 굵은 자 한둘이 반항적인 시선을 숨기고 있었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자신들의 숫자가 제법 많으니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다수의 힘은 그만큼 무섭고 비열할 수 있었다. 그러니 흩어 놓아야 했다.
'나도 죄가 무겁지 않은 일부 영애들까지 한데 휩쓸려 죄를 뒤집어쓰는 것은 원치 않아. 자네들은 너무 어리지 않은가. 실수가 많은 나이지.'
로제타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데 가담하기는 했지만, 그 역할이 미미했던 자들이 반색하며 아네트를 보았다. 반면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소수의 영애들이 불안한 시선을 보냈다.
'거기다…. 황실에 오랫동안 충성을 다한 가문까지 있으니, 나는 이 일로 근심할 수밖에 없었어. 그대들은 이와 같은 일을 저지를 자들이 아니지 않은가? 가문의 이름이 있는데.'
아네트의 시선에 닿은 자들이 수치스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약점을 잡혔다고는 하나 모든 이들의 약점이 치명적인 것은 아니었다.
한 번 부모에게 꾸지람을 듣거나, 사교계에서 망신을 당하는 정도로 끝날 수 있는 비밀들. 그 비밀을 들키기 싫어, 그들은 비열한 일에 가담했다.
'해서 한 번의 기회를 주겠어. 그대들에게 편지를 보내 협박을 한 이가 누군지, 그대들 중 두어 사람 정도는 눈치채고 있을 것이야. 물론 나와 폐하는 그자가 누군지, 어떻게 그대들을 협박할 수 있었는지도 모두 알고 있지만….'
아네트의 말에 영애들은 술렁였다. 그들도 편지를 보내온 자에 대해서는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어떻게 그런 비밀을 알 수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편지를 보낸 자에 대해 짐작하고 있던 영애들은 당황했다.
'이대로는 그녀와 같이 자네들도 처벌을 받게 될 것이야. 그자의 집안을 생각할 때…, 자네들에게 죄가 뒤집어씌워질 가능성이 크지.'
편지를 보내온 자에 대해 짐작하고 있었던 영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분노한 듯 잘근 입술을 깨무는 모습을 보고 아네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제의할 것은 하나야. 그대들 뒤에 숨어…, 오명 하나 뒤집어쓰지 않고 자네들을 비웃고 있는 자를 끌어내는 것.'
난처한 기색이 그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그가 쥐고 있는 비밀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영애가 그자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자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잡는다면…, 죄는 모조리 그자가 가져가겠지. 물론 그대들도 완전히 책임을 피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절한 배상과 사과가 있다면 신전에서 한두 달 근신하는 정도로 그칠 거야.'
그녀들은 그 또한 억울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공작부인이 된 로제타가 그들에게 복수를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아네트가 방에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입을 열었던 후작 영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면…, 그 증거를 잡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잡지 못한다면…, 그대들 중 가장 죄가 무거운 다섯 명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혀에 죄의 낙인이 찍히는 형벌을 받게 될 거야.'
물론 나머지 영애들에게도 채찍형의 형벌, 혹은 감옥에 갇히는 등의 처벌이 내려질 테지만, 아네트는 그것까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자신들 모두가 아니라, 그중 일부만이라는 생각을 심어 주는 것이 중요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에 저들은 흩어지게 될 테니.
혀를 잘리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혀를 인두로 지지겠다는 말에 영애들은 새파랗게 질렸다. 치료를 받으면 낫기는 하겠지만, 평생 죄의 낙인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너, 너무 가혹한….'
'가혹해?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죄를 뒤집어쓴 이의 억울함에 비하면…, 터무니없을 만큼 가볍지 않나?'
아네트의 싸늘해진 표정에 영애들은 숨을 삼키며 눈길을 내리깔았다.
'그대들의 가문과 부모님을 생각하여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는 것이니…, 이 기회를 차 버려 가문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를 바라지.'
그 말을 끝으로 영애들은 모두 내보내졌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익명의 편지로 그들을 조종했던 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다.
"…정말 그 정도 처벌로 용서해 주실 작정입니까?"
레베카가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아네트는 태연히 찻잔을 집어 들었다.
"약속한 것은 지켜야겠지."
물론 그 처벌에는 황제와 미카엘과 아덴 공작부인인 로제타, 또는 휘르센 백작가의 고발이나 분노가 빠져 있었다. 어디까지나 황비인 그녀의 분노를 산 데에 대한 처벌이었으므로.
"나 혼자만의 용서가 무슨 힘이 있겠냐마는."
아네트의 새침한 대답을 알아들은 레베카는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아네트는 레베카가 작성하는 보고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아덴 공작의 결혼 선물로 충분할까?"
"기뻐하면서도 분노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새신부를 사랑하신다면요."
"흠. 많이 분노하겠지…. 처음으로 마음에 둔 여인인데."
차라리 개개인이 아이리스 리온을 괴롭혔다면, 어린 영애가 벌이는 한때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무고한 개인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웠기에 죄가 더 커지고 말았다.
"아덴 공작이 가만있지 않을 터인데…. 그러면 저들의 집안에서는 어떻게 나오려나? 울면서 폐하께 중재를 요청할까?"
아네트는 심술궂게 웃으며 찻잔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