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악녀]
[타타타타타탕--]
"으억-"
"사격 중지! 사격 중지!"
테일런의 지시에 26명의 대원들이 사격을 중단하고 긴장한 표정으로 천장을 쳐다보았다. 마리가 파괴한 천장의 장갑 사이사이에는, 연약한부분이 총탄에 뚫려 수십개의 구멍이 뚫려있었다.
물론 두꺼운 장갑을 뚫지 못하고 총알이 도탄되어 아군이 조그만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테일런은 의무병들에게 그들을 뒤로 후퇴시켜 응급 치료를 받게 했다.
"제길, 부상당한 녀석들 뒤로 빼고, 1분대와 2분대는 계속해서 경계해. 나머지는 재장전후에 장비 재확인하-"
"어딨어요?"
"....!"
차가운 차량의 장갑 너머로, 마리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차가운 바늘처럼 피터의 심장을 찌르며 그를 옥죄는 것이었다. 피터가 마리의 목소리에 반응하며 손을 살짝 떨자, 그의 손을 붙잡고 있던 에리는 피터에게 안심하라는 듯한 표정을 보여주며 말했다.
"걱정하지마. 널 다시는 빼앗기지 않을거야. 저 악마년은,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을거니까."
에리는 로쉐 장갑을 낀 그녀의 주먹을 꼬옥 쥐었다. 그녀는 바깥에 있는 자신의 연적戀敵이자 악마인 자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에리."
"소위님. 제 말 들려요? 어서 밖으로 나와요. 저와 함께 가요."
"...."
"쉿.. 다들 조용히 해."
칼리브레가 그의 기계 의수를 입에 가져다댄 뒤 쉬잇 소리를 냈다.
"소위님?"
"...."
[까가각-]
천장의 철판이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무언가에 의해 살살 긁히는듯한 소리는 차량 내부의 인원들에게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동시에 선사하고 있었다.
[까가가각---]
차량의 철판을 긁는 소리가 더욱 크고 주기적으로 들려왔다. 무언의 압박처럼, 마리는 피터의 존재를 자신에게 넘길 것을 그들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아. 이젠 제 인내심도 한계가 와버렸어요. 어떡하죠, 소위님?"
수송 차량의 천장을 한참 긁어대던 마리가 안타깝다는 말투로 속삭였다.
"(쉬잇, 대답하면 안돼!)"
마리에게 욕설을 내뱉으려는 피터를 제지하며, 에리가 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어머나. 소위님. 옆에 그 년이 있는거죠?"
"...."
"난 알 수 있어요. 우리의 사이를 갈라놓는 못된 년. 사지를 잘라버려서 타이니 밥으로 줘야했는데!"
"....(빌어먹을 년이 뭐라는거야?)"
"....(몰라, 씨팔.)"
칼리브레가 코리와 같이 뒷편에서 수근댔다.
"그쵸? 맞죠? 제 말이 맞죠? 피터 소위님. 그년이 저와 당신의 사이를 갈라놓는 장애물이라는거. 맞죠? 대답해줘요."
"....(대답해서는 안됩니다. 소위님. 무슨반응을 할 지 몰라요. 루이 포스터 때처럼 대화로 해결하겠다는 생각 따위는 쓰레기통에 버려버리십쇼.)"
테일런이 에리처럼 피터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대화가 통하고 안 통할 상대는 내가 더 잘 알아. 마리는 대화가 통할 상대가 아니지.)"
"대답해요. 피터 소위님."
"(거 잘 알고 계셔서다행이군요.)"
"(문제는 지금부터야. 우리로는 저 빌어먹을 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없어. 어떻게든 차에서 떨어트려놓아야--)"
"대답하라고-!!!!!"
[콰가가가악-]
분노가 담긴 마리의 말과 함께 천장에 구멍이 뚫리며 그녀의 팔이 쑥 들어왔다. 그녀의 팔은 보랓빛 갑주로 감싸여 보호받고 있었고, 손가락 끝은 갑주에 뒤덮여 날카로웠다. 그 위협적인 팔은 차량 내부를 헤집듯 움직여 피터를 낚아채려 들었고 이를막기 위해 검은 안개 연대원 몇몇이 그 팔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쉬잉!]
글라디오가 검집에서 자유로워지는 소리와 함께 마리의 팔 부분 갑주를 향해 글라디오 칼날이 충돌했다. 그러나 *글라디오의 무식한 절단력도 마리의 갑주를 살짝 파고드는 것만으로 그치고, 그녀의 팔을 잘라버릴 수는 없었다.
"!"
마리의 팔을 베려고 했던 대원이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마리의 팔은 그 대원의 헬멧을 단박에 붙잡아 쥐더니, 그가 비명도 지르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그의 머리를 사과처럼 쥐어 으깨버렸다.
"젠장! 1분대, 2분대. 당장 장갑 틈새를향해 발포해! 장갑판은 쏘면 안된다! 도탄에 의해 부상자들을 더이상 만들 순 없어!"
"예!"
[타타타타탕-!]
대원들의 일제 사격은 장갑의 찢어진 여러 틈새들 사이로 번개처럼 솟구쳤다. 마리는 이런 탄환에 피해를 입고 싶진 않았기에 옆으로 살짝 물러나 탄환들을 피하고 이들의 움직임을 빼앗기로 마음 먹었다.
[까각, 까각.]
"이 소린?!"
마리가 천장에서 움직이는 소리를 들은 테일런은 그 즉시 조종실의 병사들을 살피러 달려갔다. 그가 반쯤 열린 조종실의 문을 벌컥 밀어젖히고 들어갔을 때는, 2명의 운전병들이 바쁘게 계기판을 두들기며 무언가를 전하고 있었다.
"여기는 검은 안개 연대의 테일런 소대 소속 H-100 수송 차량 운전병 헤콥스다! 우리는 현재 브로취른 전선의 넓은 황야를 벗어나 귀소측으로 이동중이다! 다이아몬드 전선! 제발 응답하라!"
[치직-, 치직-,]
"빌어먹을! 다이아몬드 전선! 응답하라!"
"여-는 다이아몬드-..선이다. 당소, 무슨 문제 있는가?"
"현재 악마의 공격을 받고 있다! 당장 구출 병력을 급파해주길 바란다!"
"뭐라고?! 지옥 군세가 다시 공세를 시작하는건가?"
"적의 숫자는 정확히 모르지만, 현재 공격을 받고 있다고! 차량 내부에는 최중요 인물도 있단-"
"그만해. 헤콥스."
테일런이 헤콥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를 제지했다. 그는 헤콥스가 계기판을 두들기는 상황에서도 손에 들고 있던 통신기를 넘기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준위님?"
"통신은 내게 넘기게."
"아, 알겠습니다."
"여기는 검은 안개 연대 소속 테일런 소대의 테일런 준위다. 현재 우리는 포데스타급의 악마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 적은 단일 개체로 추정되며, 추가적인 지원이 없으면 여기서 괴멸당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우린 현재 이 전쟁의 최중요 인물이자 미래 예지 능력자인 인물을 호위중이기에, 이 자를 잃을수는 없다. 알겠는가?"
"알았다. 당소의 위치를 정확히 설명해줄 수 있겠는가?"
"(멍청한 새끼들. 막 호위팀으로 온 우리가 여길 어딘지 어떻게 알아.)"
"...정확한 정보는 알지 못한다. 브로취른 전선에서 약 20분 거리의 위치해 있고, 황야만이 넓게 드리워져 있다. 아마도 브로취른 전선의 동남쪽 부분일 것이다. 다이아몬드 전선을 향해 가고 있으니..."
"그런것으로는 위치를 특정할 수 없다. 보다 정확한 정보를-"
"진짜 지랄하네! 마키-203의 우주 궤도 기지가 정상화 됐잖아! 그럼 거기서 브로취른 전선 동남쪽 기준으로 위성사진을 전송해달라고 요청하면 되는거아냐?! 이 차량엔 연방의 중요 호위 인물이 있다고 말했을텐데!"
"그- 그게.. 그게 가능하긴 해도 시간이 조금 걸-"
"씨발, 그럼 닥치고 하라고! 지금 상황이 좆으로 보이나? 이대로 가다간 연방의 중요한 인재를 잃고말거다!"
[쾅!]
테일런이 분노를 삭히며 통신기를 쾅 내려놓았다.
"(빌어먹을 새끼들. 우리의 도움을 받아 궤도 기지를 수복했으면서도 멍청하게 행동하는 꼴이라니. 이래서 보안부말고는 믿어선 안돼. 무능력한 연방군 놈들.)"
"준위님, 어쩐뎁니까?"
"....지원군이 올거다. 우린 그때까지 바깥의 악녀에게서 소위를 호위하면 돼. 아까 내가 차량 속도 천천히 멈추라고 했지? 이젠그냥 멈춰도 돼. 섣불리 움직였다간 구조에 혼란을 줄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테일런은 차선의 선택을 하며 조종실에서 천천히 빠져 나갔다. 차량 내부에서 그의 대원들이 장비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을 본 그는 조종실에 있는 운전병들도 이곳으로 모이라고 말해주기 위해 뒤를 돌며 말했다.
"좋아. 그리고 너희들도..."
테일런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
"무슨 일이십니-"
테일런의 시선 끝에는 차량의 조종실이 있었다. 운전병들을 보호하기위한 조종실 전면의 장갑판들은 내부에서 밖은 보이지만, 외부에선 안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내부가 마치 까만 바다처럼 처리되는 장갑판들이었는데, 그 장갑판 건너편에는 테일런이 극도로 경계하던 빌어먹을 악녀가 달라붙어 있었다.
"씨팔, 헤콥스! 이리로 당장 와-!!"
상황을 깨닫고 도망치는대원 하나를 자신의 뒤로 넘긴 테일런이 막 조종석에서 빠져나오는 헤콥스를향해 손을 뻗었다. 헤콥스는 능숙하게 조종석을 벗어나 테일런의 손을 붙잡았으나, 그가 조종석을 벗어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장갑판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뭐야?!"
"무슨 소리지?"
조종실 밖의 대원들과 피터의 일행은 장갑판이 갑작스레 찌그러지는 소리에 경계를 강화하며 무기를 쥐었다. 테일런은 그들에게 당장 도와달라고 소리를 지름과 함께 헤콥스의 손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헤콥스! 당장 이리로 오라고!"
"주, 준위님- 저도 가고 싶지만 발목이--"
"!"
헤콥스의 발목을 본 테일런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장갑을 찌그러트리고 들어온 퍼플 윙의 팔이, 헤콥스의 발목을 단단히쥔 채 서서히 잡아당기고 있었다.
"망할!"
"으와아악--!"
헤콥스는 자신의 발목이 아스라지는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테일런은 그의 손을 붙잡은 채 놓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지만, 헤콥스의 장갑이 점점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제기랄!"
상황을 알아채고 달려온 대원들도 헤콥스와 테일런을 잡아당기며 그들의 동료를 구하기 위해 힘쓰기 시작했다. 피터와 그의 친구들도 비좁은 조종실의 입구로 들어오며, 찌그러진 전면의 장갑판 사이로 눈을 부라리는 마리를 마주하고 말았다.
"오오, 거기 있었군요! 소위님!"
"...아. 마리."
"걱정 말아요. 이 쓰레기들을 전부 죽이고.. 내가 곧 그곳으로 갈테니까, 저와 다시 사랑을 속삭이죠. 정말 행복할 것 같지 않아요?!"
"...저딴 년 말은 들어줄 필요도 없어."
에리는 피터의 앞으로 손을 뻗으며 그와 마리의 시선을 가로 막고는, 그대로 찌그러진 장갑 틈새로 총기를 난사했다.
[드드드드-!]
"!!"
한 손으로는 차량의 장갑판을 잡고, 한 손으로는 헤콥스의 발목을 쥐고 있는 마리는 자신의 안면을 보호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대로 왼쪽 눈과 안면에 사격을 받고 날카로운 비명을지르며 헤콥스의 발목을 놔버렸다.
"캬아아아악!"
"됐어! 헤콥스를 안으로 옮겨라! 조종실을 폐쇄해!"
테일런은 헤콥스를 자신쪽으로 잡아당기며 외쳤다. 그의 말을 들은 대원들이 신속히 조종실에서 빠져나와 조종실 문의수동 개폐 장치를 잡아당겨 문을 닫아버렸다.
"됐어. 일단은 숨 좀 돌렸군..."
차량의 장갑 너머로 들려오는 마리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테일런이 한숨을 내쉬었다.
"캬아아아악!! 죽여버리겠어. 에리. 네 팔다리를 잘라 소위님과 내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똑똑히 두 눈으로 보게 해주겠다고!! 비참함이 뭔지알게 해주지!!"
"...미친년. 해볼테면 해보라지."
에리는 마리의 위협적인 경고에도에리는 코웃음치며 냉소를 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