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보랓빛 기습]
"뭐야?!"
후미의 수송 차량 기관포가 울부짖자, 테일런이 화들짝 놀라며 뒤돌았다.
"테일런!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 아냐?!"
피터도 좌석에서 일어서 테일런에게 급히 달려오며 말했다. 그의 눈에 테일런이 심각하게 당황하고 있는걸로 보아, 예정된 일은 아닌듯 했다.
"제길, 난 사격 명령을 내린 적도 없어. 대체 누가 쏜거야?"
"잠시만요, 준위님. 연락을 취해보겠습니다."
운전병은 그의 계기판을 능숙하게 두들겨 후미의 차량 통신망에 접속했다. 그들의 통신망에서는 계속해서 기관포의 총성이 생생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테일런은 운전병을 옆으로 젖혀버리곤 계끼판에 얼굴을 가까이 대며 상황을 보고하라고 을러댔다.
"여기는 테일런이다. 후미, 무슨 일인가?"
[타타타탕-!]
[부아아아악--]
"후미! 당장 대답해!"
[치지직.]
통신망의 연결이 불완전해지며 지직거리는 소리를 냈다. 테일런은 현재 돌아가는 상황에 조그만 정보도 주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굉장히 답답했다.
"빌어먹을, 후미! 무슨 일이냐고!"
"여- 여기는 후미- 퍼플 윙입니다! 퍼플 윙이-"
통신기가 충격을 받았는지 다시 한번 지지직거렸다.
"제기랄! 저년이 중기관포대를 뜯어버렸어!"
"중사님! 퍼플 윙이 차량 장갑을 뜯어내고 있습니다! 이 안으로 들어올-"
[까가가각-]
차량의 두터운 금속 장갑이 찢어지며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통신이 두절되었다. 테일런과 그의 대원들은 끊어진 통신에 긴장하며 그들의 무기를 찾아 쥐었다.
[콰광-!!]
"!"
"뭐야?!"
밖에서 들려온 거대한 폭발 소리에, 차량 내부에 있던 20명의 대원들과 피터 일행이 수근거렸다. 커다란 폭발 소리의 근원지는 바로 그들의 뒤를 따라오던 후미의 수송 차량인 것 같았다.
테일런은 신속하게 차량 내부에 살아남은 자신의 마지막 소대원들을 재무장시켰다. 넓은 차량 내부에서 휴식을 취하며 기강이 빠진것처럼 보였던 검은 안개 베테랑 소대원들은 눈깜짝할새 장비를 착용하고 병사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테일런. 지금 나랑 내 친구들이 들은 소리, 우리만 들은거 아니지?"
"...그렇습니다. 아마도 적의 기습일거에요. 후미 차량은 이미 당한 것 같습니다."
"적의 기습이라고? 여긴 브로취른 전선에서 벗어나기도 했고, 쫓아오는 상대들은 없었잖아? 대체 우릴 쫓아올만한 자가..."
피터가 테일런에게 따지듯 묻다가 갑자기 멍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떡 벌렸다. 얼마나 얼이 빠졌는지, 옆에 있던 에리가 그의 떡 벌린 입을 쓱 닫아줄 정도였다.
"소위님, 뭔가 짐작이라도 가는게 있습니까? 그런 반응을..."
"어, 있거든.. 한 놈. 아니, 한 년..."
"...!"
에리가 피터의 말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녀도 피터의 마음을 순간 알아챈 것 같았다.
"여기까지 쫓아올 미친년이 하나 있거든.."
.
.
.
.
[끼릭끼릭...]
피터 일행의 뒤를 따라오던 수송 차량이 서서히 멈추었다. 장갑이 찢어지고 갈라져 완전히 반파된 수송 차량은, 상당 부분이 불에 타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내부의 생존자는 한 명도 없음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카강-]
미처 파괴되지 않은 장갑 부분을 쭈욱 찢으며, 퍼플 윙이 그녀의 찬란한 갑주를 입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참... 조금 즐거움을 주려고 했는데 바로 자폭을 하다니. 인류 보안부라는 녀석들은 타락할바엔 죽어버리겠다는건가?"
보라색 갑주의 그을린 부분을 슥슥 닦아낸 마리는 방금전의 일을 생생하게 뇌에서 재생시켰다. 자신이 수송 차량에 달린 중기관포를 제압하고 천장 장갑을 찢고 들어오자, 그들은 자신에게 일제히 사격을 가했다.
마리는 그런 저항하는 자들의 목숨을 순식간에 거두고 자비없이 짓밟았으며, 차량 안에 있을 피터만을 찾았다. 그녀가 마침내 3명의 병사를 남긴 채 모두를 찢어죽였을때도 피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남은 3명은 연방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구호와 함께 마리에게 욕설을 내뱉고는 그대로 수류탄을 터트려 자폭했다. 마리는 중상도 입지 않았으나, 그들을 두고두고 괴롭히며 즐거움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아.."
그녀는 저 멀리 속력을 올리며 내달리고 있는 수송 차량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중기관포에 인원을 급하게 배치하고 있는 저 차량은 마리의 습격을 대비하고 있는 듯 했다.
마리는 진정 자신이 찾고 있던 보물이 저 안에 들어있음을 확신했다.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이 감정. 이 기운! 마리는 이 힘이 진정한 사랑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먼 브로취른 전선에서 이곳까지 어떻게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찾아올 수 있었단 말인가?
마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능력과 힘이 전부 피터와의 사랑을 위한 것이라고 다시금 깨달았다. 그와의 인연은 자신과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그녀는 그렇게 혼자 확신했다.
"그럼, 제가 갈게요? 나의 반쪽이여."
퍼플 윙은 불타고 있는 수송 차량 속에서 그녀의 보랓빛이 감도는 날개를 활짝 폈다. 수송 차량의 장갑을 불태우는 불길들이 그녀의 날개가 일으킨 풍압에 의해 사그라지며 감히 그녀의 날개를 태울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
.
.
.
"그 녀석이 올거야. 다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피터가 똥씹은듯한 표정으로 한 자 한 자 힘겹게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코리는 누가 오는거냐며, 눈치없이 그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대체 누가 오는건데? 응? 테일런 쪽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 걱정 말라고! 이 형님이-"
[퍽.]
칼리브레가 그의 기계팔로 코리의 뒷통수를 때렸다. 코리는 한쪽 눈을 질끈 감으며 그의 뒷덜미를 쓰다듬었다.
"씨이.. 왜 때려?"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으니까."
"힝.."
"고마워. 칼. 코리, 지금 마리.. 아니지. 퍼플 윙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다들 저렇게 긴장하고 있는거지."
"...왠지 그럴것 같더라."
"(너만 모르고 있던 거야. 병신아.)"
칼리브레는 코리의 어깨를 툭 치며 조용히 말했다.
"어쨌든, 이제는 다시 준비를 해야-"
[쿵-]
"??"
묵직한 무언가가 차량에 내려앉는 소리와 함께, 차량 내부에 있는 약 30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굳었다.
"..씨발. 뭐지?"
"몰라. 뭔 묵직한게 갑자기..."
"쉿! 다들 조용히하라고..!"
"게슈말이 맞다. 다들 조용히하고, 차량 속도 천천히 늦춰. 자리에서 섣불리 움직이지 도 마."
테일런은 이와중에도 조용히 움직이며 차량 천장에 있는 해치 사다리를 향해 느릿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해치가 바로 위에 놓여있는 사다리를 향해 손을 뻗으며, 천천히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테일런이 사다리를 오르며 해치를 열려고 하는 그 순간엔 차량 내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철컥. 끼이익...]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손잡이를 잡아 위로 들어올린 테일런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고 말았다.
"니미.. 씨팔."
[지익-. 쫘아악-]
그의 눈앞에, 중기관포에 배치했던 대원이 죽어가고 있었다. 퍼플 윙의 부드럽고도 치명적인 손에 의해 가슴팍이 찢기고 심장이 파헤져진 그는 마지막까지 저항했는지 부들거리는 손에 그의 군용 나이프를 아직도 꽈악 쥐고 있었다.
그 외에도 저 뒷편에는 후미의 수송 차량이 반파된 채 불에 타오르고 있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주...준위님..."
죽어가는 대원이 자신을 보는 테일런을 향해 뚝뚝 끊어지는 말로 그를 불렀다.
"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눈치챈 퍼플 윙이 천천히 뒤돌았다. 그녀의 반짝거리는 눈이 해치를 열고 고개만 내밀고 있는 테일런을 마주 보았고, 테일런은 자신의 온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이 차량, 안에 소위님이 있지요?"
"..."
"아,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는 내가 데려갈거니까."
마리는 자신이 한손에 잡고 있던 대원들 쳐다보며 말했다.
"넌 이제 필요 없어. 잠깐 재미 좀 보려고 잡았으니까."
그녀의 다른 손 위에서 죽어가는 대원의 심장이 움찔댔다. 그녀는 그렇게 애처로이 발악하는 심장을 그대로 쥐어 터트린 뒤,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대원을 쓰레기 버리듯 달리는 차량 위에서 내던져버렸다.
"아아아...."
심장이 뽑힌 대원은 그대로 차량 밖으로 내던져져 흙바닥을 구르며 멀어져갔다. 마리는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고는 해치를 열고 그녀를 노려보는 테일런에게 나긋하게 말했다.
"피터는 내거야. 영원히 내거라고. 돌려받아주지."
[쾅!]
을러대는 마리를 뒤로하며 테일런이 해치를 쾅 소리나게 닫았다. 그가 사다리에서 내려오자, 그의 대원들과 피터가 다가와 밖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고 물었다.
"밖에 무슨 일이야? 이 위에 뭐가 내려앉은거지?"
"준위님, 기관포대에 배치한 인원이 응답하지 않습니다. 밖에 무슨 일이 벌어진거죠?"
"지금 당장 지원 요청해. 우리로서는 버틸 수가 없을-"
[까가가가가각-!]
"!!"
테일런의 말을 끊어버리며 끔찍한 금속음이 울려퍼졌다. 마치 날카로운 것으로 철판을 가르는 듯한 이 소음은 굉장히 듣기 버거운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차량의 두꺼운 철판이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찢기기 시작했다.
"씨발, 그 년이다. 퍼플 윙이다! 전 대원, 피터 소위를 호위해라!"
테일런의 날카로운 명령과 함께 대원들의 소총에서 일제히 불이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