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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화 〉[아드라말렉의 분노 3] (127/131)



〈 127화 〉[아드라말렉의 분노 3]

위리놈의 거대한 시체가 브로취른 전선의 넓은 전장에 버려져 있었다. 조그만한 *타이니들이 위리놈의 시신 주위에서 움직이며 그를 찔러보기도 하며, 물어뜯기도 하였다.

또한 그들은 이리저리 난도질 당하고 구멍이 뚫린 시커먼 위리놈의 심장을 만지며 놀고 있었는데, 이것은 라미엘이 그의 가슴팍에서 뽑아내 조각낸 것이 틀림없었다.
(*1m 크기의 어린아이를 닮은 악마들. 굉장히 장난끼있고, 순수한 악의로 유명함.)

[쿵- 쿵-]

육중한 발소리가 지면에 울리자, 위리놈의 시신 주위에서 뭉쳐있던 타이니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드라말렉은 위리놈의 검은 시체를 내려다보며 한심한 것을 보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콧구멍에서 위리놈을 비웃는 콧김이 핑, 튀어나왔다.

"검은 반역자라는 놈이, 이렇게도 한심하게 죽어버렸군."

아드라말렉은 위리놈이 자신에게 반역을 했던 때를 떠올려보았다.  브로취른 전선에서 멀지 않은, 어느 돌산에서 강림한 아드라말렉이 그의 군세를 이끌고 수백만명을 학살하고 있었던 기억을.

"위리놈. 네놈은 참으로 오만한 놈이었다."

브로취른 전선을 인간들의 손아귀에서 빼앗아온 그날 밤, 위리놈은 아드라말렉의 옥좌에 덤비며 그에게 도전했다. 위리놈의 날카롭고 위력적인 육신은 아드라말렉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히며 생각보다 고전하게 만들었으나, 단지 그뿐. 승자는 결국 위리놈의 뿔을 뽑아버린 아드라말렉이었다.

"차가운 땅바닥은 어떻지? 하아... 네놈을 괜히 풀어준 것 같구나. 고작 인간들 따위에게 가로막혀서 목숨을 잃다니."

아드라말렉은 안타깝다는 말투와 표정을 지으며 위리놈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위리놈의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콰삭-!]

아드라말렉이 죽은 위리놈의 머리를 짓밟아 으깨버렸다. 위리놈의 검은 살점들이 지면과 일체화되며 아드라말렉의 발에 늘러붙었다.

"여기서 죽지 않았어도 네놈은 내게 죽었을 것이야. 내게 덤빈 네놈의 용기가 가상해 높게 평가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던 자였던 것 같군."

"창녀와 돼지가 만들어낸 피조물 같으니, 위리놈. 넌 역시 쓸모없는 놈이었다."

"아드라말렉님."

"?"

아드라말렉 주위에서 칭얼거리는 타이니들을 밀치며, 어느 나이트 크롤러 하나가 걸어왔다. 아까 전 위리놈을 풀어준 그 나이트 크롤러였다. 그의 주위에는 각양각색의 악마들이 그들의 무기를  채 기다리고 있었다.

"미래 예지 능력자들을 빼돌린 자들은 전부 후퇴했습니다."

"...."

"어떻게 할-"

"당장 쫓아라."

"?"

"놈들이 후퇴해 몸을 맡길 곳은   곳 뿐이지. 다이아몬드 전선! 이 행성의 연방놈들이 가장 믿고 있는 그곳! 우리에게 복종을 약속한 인간들과 행성 전역에 퍼져있는 군세를 전부 불러모아라. 오늘 우리는 다이아몬드 전선을 깨부술 것이니.."

아드라말렉의 눈이 번쩍 빛났다. 그는 당장이라도 연방군의 전선으로 물밀듯 밀려들어가 학살을 벌이고 싶었다.

"알았습니다. 아드라말렉님."

악마들이 아드라말렉의 말에 무릎을 꿇으며 명을 받아들였다. 그들의 푹 숙인 얼굴에는 곧 있을 학살과 폭력의 물결이 감돌기 시작했다...

.
.
.
.

어두운 방. 축축한 습기가 가득한 방에 피터는 사슬에 묶인 채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속박에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의 사지를 움직여 보았으나, 살짝 꿈틀대기만 할  빠져나오기는 불가능에 가까워보였다.

"시, 시발. 여기는..."

피터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 진즉에 깨달아버렸다. 약 이틀간이었지만, 자신이 수없이 많은 고문과 강제적인 쾌락을 경험했던 곳. 빌어먹을 브로취른 전선의 지하.

[또각. 또각. 또각...]

청명한 하이힐 소리가 방 안을 메웠다. 피터는 그 소리에 긴장한듯 심호흡하며 사방이 어둠인 곳을 훑어보았고, 그의 눈앞에서 서서히 육감적인 모습의 다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머."

"!!!!"

마리, 자신 앞에 있는 것은 퍼플 윙이 되어버린 마리였다. 보랓빛이 감도는 갑주조차 걸치지 않고, 오직 보라색 하이힐만을 신은채 나체로 그를 바라보는 마리가 있었다. 마리는 흥미롭다는 듯이 피터와 시선을 맞추고는 그에게 춤추듯 다가왔다.

"이렇게나 아름답다니.... 소위님..."

"만지지마!"

그녀가 피터의 볼을 쓰다듬자, 피터가 질색하며 소리를 질렀다. 마리는 잠시 멈칫하는 표정을 짓고는 이내 다시 피터를 내려다보며 사랑스러운 것을 바라보는 미소를 지었다.

"소위님은 너무 딱딱한가요? 그럼... 피터씨? 피터님? 그냥... 피터?"

"으윽... 내 이름도 부르지 말라고... 네가 나한테 한 짓을 떠올리란 말이다. 마리!"

"피터, 피터."

"그만해-."

"피터. 피터. 피터. 피터. 피터. 피터."

"피터."

"허어억!"

피터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신을 부르고 있던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피터, 피터!"

"음...어.. 음?!"

"피곤했구나?"

에리가 피터의 이마에 맺힌 땀을 슥 닦아주며 그를 깨웠다. 이윽고 피터는 그가 수송 차량에 탑승해 잠시 졸았다는  깨달았다. 아마 긴장이 풀리고 안전하다는 생각에 몸이 추욱 늘어진 것이 분명했다.

"후, 후우...."

피터는 자신이 매우 안전한 곳에 있음과 자신의 옆에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그곳의 추악하고 불경스런 기억이 떠오르긴 했지만,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며.

"칼리브레?"

"?"

"제스는 어떻게 됐지? 후방에 남았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대체 어떻게 됐..냐?"

피터가 약간 불안한 눈빛으로 칼리브레에게 물었다. 그 순간 차량에 앉아서 빵을 씹고 있던 테일런이 피터에게로 다가왔다.

"피터 소위님."

"응? 테일런, 너라면 알고 있겠지. 제스는 어떻게 됐지? 그리고... 하겐은 어떻게 되었는지  수 있는거야?"

"한꺼번에 질문을 쏟아내진 마시죠. 모든 것에 대답할 수 있는 능력은 없으니까요."

"아, 알았어.."

"제스 준위는 현재 라이징 해머 4 중대장이자 당신의 호위팀 일원인 라미엘씨에게 구출되어 다이아몬드 전선으로 이동중입니다. 거기서 당신의 *소대원들과 항전하고 있던 앙펠이란 연대 지휘관도 같이 구출되었습니다."
(*코리는 피터를 쫓아가기 전, 자신들을 제외한 피터의 소대원 전부를 앙펠에게 맡겼다.)

"...다행이야. 그리고 내 마지막 질문은-"

"반역자 하겐 말이죠."

"...반역자라."

"사실이니까요. 그는 당신을 배신했고, 연방을 배신했으며, 종국에는 실종되어버렸습니다. 마인드 능력자인 루이가 폭발을 일으켰을때 사라졌다고 했는데.. 그들을 계속 보호하려고 했던 그녀의 특성상 그들을 죽이진 않았을겁니다. 다만."

"다만?"

테일런이 말을 끊고는 어찌 설명해야될까 싶은 표정으로 피터를 보았다.

"이 행성의 안전한 어딘가로 순간이동 됐거나, 혹은 그걸 넘어서 행성간 이동을 했을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사라진다는건 죽음 혹은 이동인데, 방금도 말했듯 그녀가 그들을 죽였을리는 없으니까요."

"......"

피터는 테일런의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루이는 옛 동료인 루크가 죽고, 자신을 위해 하겐이 몸을 던졌을때 펑펑 울면서 감정을 숨기지 못했던, 참으로 소녀같은 자였다. 루이는 죽기전까지도 하겐과 항상 붙어있었고 그와 대화를 나누던 자였다.

그렇게 다정한 이가 그렇게 사랑하는 남자를 죽일리가 없었다.

"지금은 그들을 찾지 못합니다. 이 행성 전체가 악마들의 손아귀에 넘어가기 직전이기도 하고, 솔직히 말해 이 행성은 구원받기엔 글렀으니 말입니다."

테일런의 말에 피터가 불쾌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말은 좀 조심해주지. 이곳이 우리 집이자 고향인 녀석들도 있으니까."

피터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이 테일런을 흘겨보았다. 테일런은 그들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시선을 돌리며 쩝하는 소리를 냈다.

"그래서 이제 우린 뭘 어쩔 생각이죠?"

피터의 볼을 매만지던 에리가 테일런에게 물었다. 테일런은 에리의 질문에 그의 턱을 쓰다듬으며 기억을 되짚어보는  같았다.

"...일단 저희는 피터 소위의 호위팀입니다. 호위팀의 모든 총 지휘권은 제스 준위에게 있습죠. 제스 준위는 아까 저와 통신했을때 다이아몬드 전선에서 상황을 살피자고 말했습니다. 그녀도 아직까지는 계획이 없을겁니다. 저희 임무는 이번 전쟁이 끝날때까지 피터 소위를 안전하게 호위하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다이아몬드 전선에서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도 있다는겁니까?"

기계팔을 끼릭거리며 수리하던 칼리브레가 넌지시 물었다.

"그럴수도... 있지. 지옥의 군세놈들이 우리를 공격해오지 않는다면 말이야."

"테일런 준위, 그럼 한가지만 더 물어봐도 될까?"

"말씀하시죠, 소위님."

"이번 전쟁은 대체 어떻게 해야 끝나는거지?"

"...."

피터의 갑작스런 질문에 테일런의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는 잠시 끙끙거리더니 영 시원찮은 해답을 툭, 내놓았다.

"그야.. 그건 저희쪽에서는 잘 모릅니다. 영 뭐하면 다이아몬드 전선의 총 사령관에게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그 양반이 일개 병사를 사석에서 만나주겠냐가 문제지만."

"...흐음."

피터는 해답이 풀리지 않자 약간 뾰루퉁한 얼굴로 좌석에 걸터앉았다. 그는 악마들과 싸우는 것이 참으로 고달픈 일임을 깨달았다. 물론 고달프지 않은 전쟁과 고달프지 않은 병사가 어딨겠냐만은, 악마들은 지옥과 악몽의 형상 그 자체들이니.

그들과 마주함은 거대한 어둠에 맞서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피터, 무슨 생각해?"

"응?"

에리가 피터의 볼에 손가락을 쿡 찌르며 말을 걸었다. 에리의 손가락과 얼굴을 보자, 피터는 괜스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마리에게 온갖 추악한 일들과 함락 직전까지 갔음에도 그가 포기하지 않은 이유가 그의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리 캐트. 피터는 그녀가 있었기에 지옥의 이틀을 견뎌낼  있었다.

"왜 웃어?"

"...그냥."

"그냥? 참.  수 없네.."

까르르 웃는 에리의 웃음 뒤로, 조종석의 병사가 계기판을 급하게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테일런은 자신의 운전병들이 당황한 낌새를 알아차리곤 그들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무슨 일있나?"

"그, 그게.. 준위님.."

"뭐가?"

"무언가 저희를 향해 날아오고 있습니다. 뭔지는 잘 모르겠-"

[부아아아아아악-!!]

피터가  차량 뒤를 따라오던 다른 수송 차량의 중기관포가 울부짖었다. 그것은 곧 날개달린 악녀의 침공을 시작하는 경고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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