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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화 〉[부탁] (122/131)



〈 122화 〉[부탁]

"으....으으아.."

이블린이 지끈거리는 그녀의 머리를 매만지며 눈을 떴다. 그녀의 가슴팍에는 하겐이 엎어져 있었고, 등에는 찢어진 장갑판들의 파편이 날카롭게 박혀 있었다.

"하, 하겐! 하겐!!"

이블린이 정신을 차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녀는 곧이어 차량이 뒤집혀져, 자신들이 차량의 천장에 앉아있었다는걸 깨달았다. 이블린은 하겐이 자신의 위에 엎어져 있는것도 차량이 뒤집히기 직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뛰어들었기 때문이란걸 알 수 있었다.


"하겐, 정신 차려! 하겐!"

당황하며 하겐을 흔들어 깨우려는 이블린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이블린.... 거긴... 괜찮아?"


"마르시?"

"콜록! 그래... 일단 넌 괜찮아 보이네. 하겐은, 하겐은 괜찮아?"

"...등에 상처들이 많아. 정신도 잃었구. 마르시는?"

"타하리알의 부상이 심각해. 나도 그리 좋지는 않고. 다행히 루이는 괜찮네."

"뭐라구?!"


"이블린, 하겐을 끌고 조종실 밖으로 나와."

"아, 알았어!"


이블린이 하겐을 질질 끌며 조종실에서 힘겹게 걸어나왔다. 하겐은 아직도 정신을 잃은채 이블린의 손에 맞춰 움직일 뿐이었다. 이블린이 조종실 밖으로 나왔을때는 벽 한쪽에 타하리알이 기대어져 있고, 그 옆에 마르시와 루이가 초조한 표정을  채 기다리고 있었다.

"하겐을.. 여기 옆에다가 눕혀."


"응!"

마르시의 지시대로 이블린이 하겐을 타하리알에게 기대어 눕혔다. 하겐이 쿨럭거리며 각혈하자, 마르시가 그의 가슴팍에 흘러나온 피를  닦아주었다.

"마, 마르시! 너 왼손이.."


"...알아."

마리스의 왼손도 깨끗이 잘려 사라져 있었다. 그녀의 손이 재생 때문인지 거먼 연기들을 내뿜고 있었긴 했으나, 완전한 재생까지는 상당히 오래 걸릴 것으로 보였다.


"아마 차체의 장갑을 뚫고 들어온 탄환이 날 이렇게 만든거겠지. 그래도 곧 재생될거야. 조금 걸리긴 하겠지만..."

"이젠 어떻게 하죠? 마르시씨..."


"루이, 이럴때일수록 진정해야해. 흥분해서 섣불리 행동하면 안된다구."

두꺼운 차량의 장갑 너머로, 자신들을 공격한 차량이 멈추는 소리가 그들의 귀에 들려왔다. 곧이어 탄창이 쩔럭거리는 소리와 군화가 두꺼운 땅을 밟는 소리도 함께 섞여 들렸다.


"밖에 놈들이 왔나 봐!"

이블린이 당황하며 하겐에게 달라붙었다. 이블린의 숨결이 하겐의 볼에 얼굴에 닿자, 하겐이 쿨럭거리며 눈을 떴다.

"....으. 머리야..."

"하겐!"

하겐이 눈을 끔뻑이며 정신을 차리는 모습에 루이와 이블린이 동시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블린? 괜찮은거냐? 루이도? 으윽..."


"나,  괜찮아! 하겐..."

"그럼 됐어. 제길, 등에 파편이 좀 박힌  같은데. 숨 쉴때마다 등에서 피가 배어나오는게 느껴질 정도야-. 콜록! 콜록-."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은 하겐이 쿨럭댔다. 그의 장갑에서 시뻘건 피가 묻어 흘렀다.

"괜찮은거 맞아?!"

"...괜찮다고. 오바하지마. 이블린. 그건 그렇고, 마르시. 지금 상황은... 대충 어떻지?"


"...차가 뒤집어졌다는 건 너도  알고 있을거고, 타하리알과 내가 좀 큰 부상을 입었어."

마르시는 타하리알의 깨끗이 구멍난 어깻죽지와 잘려나간 자신의 왼손을 들어보였다.


"그리고... 밖에 놈들이 왔어."


"놈들? 쿨럭-."


하겐이 다시 피를 토했다. 그는 마르시의 '놈들'이라는 말이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배신한 자신의 옛 친구들이 그의 목숨을 끊으러 왔다는것을.


"루, 루이를. 루이를 숨겨야 해."


"...아니야, 하겐."

"루이?"

"저 문이 열리면, 내가 모든  해결하겠어. 너희를 데리고 빠져나갈거야."


루이가 하겐의 손을 잡으며 굳은 의지가 담긴 얼굴로 말했다.

"타렌, 고리스. 절단기로 후미의 문을 조금씩 절단해라."

밖에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자신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곧이어 하겐이 탑승한 차량의 문을 무언가 긁는 소리와 스파크가 튀며, 장갑이 조금씩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스파크와 기이잉하는 금속음이 멈추고, 새빨간 노을빛이 차량 안으로 스며들었다. 차량 안에 있던 하겐의 일행들이 노을빛에 감탄할 새도 없이 검은 안개 연대원들이 작업을 마친 문짝을 뜯어냈다.

"움직이지 마라!"


검은 안개 연대원 하나가 하겐에게 먼저 총을 겨누며 그를 노려보았다. 하겐은 땅바닥에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대답할 뿐이었다.

"웃기시네."

"뭐라---"


하겐에게 말을 하려던 대원이 가슴팍에 강력한 충격을 받고 뒤로 멀찍이 나자빠졌다. 그는 순식간에 의식을 잃고 코와 입에서 피를 흘렸다. 루이의 염동력이  대원에게 작렬한 것이었다.


"고리스!"


장갑이 벌려진 사이로, 두명의 대원이 쓰러진 대원을 부축하며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루이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차에서 내려 자신들을 경계하고 있는 자들의 숫자가 20명도 안된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 지금 아니면 답이 없어!"

"루이? 지금 뭐라고 하는거야?"


이블린이 당황하며 그녀에게 물었으나 루이는 행동으로 즉시 보여주었다. 그녀는 염동력으로 부상당한 타하리알과 마르시, 하겐을 동시에 들어올렸다. 그녀는 한걸음 앞으로 나가며 차량의 장갑을 염동력으로 찢어 양옆으로 넓게 벌려버리고는, 그들의 일행과 차량에서 당당히 걸어나왔다.

"준위님! 놈들이 나옵니다!"

"곧바로 조져버리자고. 중화기 가져와. 그리고 타렌은-"


"아니, 잠깐."


피터가 테일런의 말을 끊어버렸다.


"소위님?"


"...아직 대화할 수 있어. 곱게 끝낼 수 있다고."

"미쳤습니까? 방금 제 대원 하나를 뇌출혈로 죽일뻔한 새끼들한테?"

"테일런, 어차피 루이가 염동력을 쓰면 우린 다 죽을걸. 울며 겨자먹기로 차라리 대화라도 해보는게 낫지 않겠어?"


"....빠르게 끝내십시오. 곧 지원이 도착할거니까요. 그때가 되면 저년의 염동력이 얼마나 강하든 화력으로 묻어버릴  있을겁니다."

테일런이 피터를 거추장스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의 대원들에게 멈추라는 제스쳐를 내렸다. 대원들이  지시에 살짝 반대했으나 그들은 곧 무기를 거두었다.

"실렌티온! 그 자리에서 멈추시지."

"...?"

루이는 자신을 가로막는 피터를 보며 천천히 그를 응시했다. 그녀는 이내 차갑게 말을 내뱉으며 피터에게 경고했다.

"넌 하겐이 풀어주었던.... 남자군. 내 이름은 실렌티온이 아니라 루이야. 하겐이 널 살려줬던건 이유가 있어서겠지. 널 죽이지 않을테니 당장 비켜."


"비키라고? 뭐하려는 속셈이지?"

"너희들의 차량을 좀 빌려야겠어. 그외에는 아무도 죽이지 않을거라고 약속은...하지."

"...협상은 그렇게 하는게 아니다. 루이. 지금 누가 불리한지 잊어먹-"

"루이!?"

피터의 뒤에서 칼리브레의 당황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는 막 기관포 포대에서 기어나오며 그의 친구들과 차량에서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곧이어 루이와 피터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칼리브레의 옆에서 서있는 코리는 그도 많이 놀랐는지 입을 떡 벌린채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  진짜 루이냐...?"


칼리브레가 양손의 손가락들을 쥐었다 폈다하며 부들부들 떨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아까 전... 피터가 하겐을 설득할때 루이니 뭐니해대서 피터가 정신이 나간 줄로만 알았는데... 진짜였던거냐..?"

"..."

"루이! 네가 어떻게 살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겐은 우리를 배신했어! 아마 너도 팔아먹을거란 말이다! 빨리 우리에게로 와!"

"...?"


루이는 칼리브레의 슬픔섞인 걱정에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칼리브레를 염동력으로 막아버린 뒤, 고개를 저었다.

"난 당신같은 남자 몰라. 내겐 오직 하겐이 다라고. 다가오지마. 죽고 싶지는 않겠지?"

"루, 루이.... 으으윽.."

루이의 염동력이 그의 목을 죄어오자 칼리브레는 신음을 냈다. 그의 눈에는 죽은줄로만 알았던 친구가 되살아왔지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슬픔이 담긴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만해! 우린 친구였잖아! 이게 뭐하는-"

입을  벌리고 당황하던 코리도 그들을 말리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곧 루이의 염동력에 붙잡혀 몇m를 날아갔다.


"우아아아아악--!"

"코리!"


"에리, 가서 코리를 살펴!"

"피터, 넌 어쩌려고?!"

"...아직 희망이 있기를 빌어야지."

피터가 루이에게 몇발짝 다가서며, 그의 장비를 땅바닥에 툭툭 떨구었다. 처음에는 헬멧을, 그 다음에는 메니셉 방탄복을, 그 다음에는 SK-2 소총을, 마지막으로 케일이 물려준 그의 글라디오까지.


"내 친구를 풀어줘. 루이."


"싫다면 어쩔거지? 너희들이 하겐과 내 친구들을 저렇게 만들었잖아!"

루이가 땅 위에 둥실둥실 떠 있는 자신의 동료들을 가리켰다.

"...그건 미안하다. 하지만 아직 하겐을 살릴  있어. 부상이 상당히 심각해도, 당장  다이아몬드 전선으로 이동해 치료받으면 된다고!"

"하겐만? 아니, 하겐도 치료해야하고,  친구들도 치료해야해."


"네 친구?"


"그래. 이블린.. 마르시.. 타하리알.. 전부!"

"저 악마들이 네 친구란 말이야..?"


피터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악마와 인간이 친구라니. 일반적인 인간의 두뇌로는 쉽사리 이해할 수 없을만한 우정이었다.

"전부 내 친구야. 그에 비해, 너희들은 우리를 가로막기만 하는 녀석들이지. 비키라고 했어. 너희들의 차량만 뺏고 우린 떠날테니까."

"이봐. 루이. 잠시 진정하라고. 우린 너희와 싸우고 싶지 않아. 너랑 하겐은... 우리의 소중한 친구였단 말이야.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


"응? 루이. 기억이 나지 않는거야?"

"...날 속이려고 드는가본데, 너희들과 내가 친구였을리 없어. 우리는 지금 처음 만난 사이야. 마지막으로 경고하지, 당장 비켜!"


"안돼. 절대 못비켜. 넌 우릴 기억하지 못하지만, 우린 널 기억하고 있어. 너도 떠올릴 수 있다고! 칼리브레, 로크, 코리, 에리, 그리고.. 피터.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거야? 우리가 어떤 일들을 함께 겪어왔는지도?! 우린 때묻지 않은 훈련병이기도 했고, 수송 차량에서 훌쩍거리는 신참들이기도 했고, 같이 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모른다고 했잖아-!"


계속되는 피터의 설득에 질린 루이가 분노하며 염동력을 발산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피터를 강하게 쥔  그를 들어올렸다.

"크-윽-."


"비키라고 말했지! 죽인다고 했지! 할  있다고-!"

"....커헉."


"끝내주겠어! 여기에 있는 너희들을 전부 죽이고, 차를 빼앗아 도망쳐주겠다고!"


흥분한 루이가 그녀의 염동력을 더욱 강하게 발산했다. 그녀의 볼에는 왜인지 모를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무언가, 자신에게 소중했던 사람을 다치게하는 느낌이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


"너는.. 날 죽이지 않을거야. 루이. 장담하지."


"뭐?"

"너도 어렴풋이 알고 있잖아.. 우리는.. 언제나 함께 했었다는걸. 아무것도 모르는 신참 병아리였을 때도... 전선에서 구르는 병사가 됐었을 때도... 너와 우린 함께였다."

"그런 헛소리는 더 이상 믿지 않는다고 했-"

"루이. 멈춰..라."


루이가 그녀의 어깨에 올려진 손을 보며 흠칫 뒤돌았다. 그녀의 뒤에는 언제 왔는지 모를 하겐이 피를 뚝뚝 흘리며 서있었다.


"하겐? 아직 일어서면 안돼. 곧 내가 탈출시켜줄테니까..."

하겐이 조용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니다. 루이.. 이제, 이제 그만해도 돼.."


"하겐...?"


하겐이 루이를 옆으로 젖혀 자신의 뒤로 오게 만들었다. 그는 피터를 바라보며 후회와 회한이 가득 담긴 표정을 지었다. 피터도 그의 행동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겐은 피터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 루이에게만 들리게 살짝 말하는 걸 잊지 않았다.

"루이. 칼리브레를 풀어줘."

"...알았어."

[후웅--]

염동력이 물리력을 잃고 사라지는 소리와 함께 칼리브레가 땅바닥에 털퍽 주저 앉았다. 그의 기계 의수에서 번쩍 거리던 붉은 빛들은 점차 초록 빛으로 바뀌며 칼리브레의 상태가 정상으로 바뀌었음을 알렸다.

"허억. 허억.. 커허억. 콜록!"


칼리브레는 숨을 고르며 침을 퉤 뱉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피터에게 비틀비틀 다가왔다. 피터는 그를 부축해주며 쓰러지지 않게 붙잡았으나, 칼리브레의 눈은 아직도 하겐을 향해 날카롭게 꽂혀 있었다.

"...그래서 하겐. 이제 어쩌겠다는거지?"

"피터."

하겐이 피터를 조용히 응시하며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런 하겐의 행동에 피터를 비롯한 모든 인원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미안하다. 이미 전락해버린 내가 너희들에게 사과를 한다는 것 자체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임을 알고있다.."

"...."


"칼리브레. 에리. 코리. 모두에게 미안해.... 난 루이를 죽음에서 되찾기 위해 악마들과 손을 잡았어.. 그리고 너희 모두를 배신해 되살려낸 루이는,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백치였지.."

"...제길. 멍청한 새끼야! 그럴거면 왜 배신했냐?! 왜 배신했냐고! 고작 악마들에게 속아서, 너를 믿었던 우리를 배신했던거냐?!"


칼리브레가 북받쳐 오르는 슬픔과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기관총처럼 쏟아냈다.

"네가 되살려낸 루이를 봐라. 너말고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녀석이 됐어! 넌 속은거라고! 멍청한... 새끼야..."


칼리브레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그의 입속에서 말들이 다 나오지 못하며 사라졌고, 피터는 어느 검은 안개 연대원에게 칼리브레의 부축을 맡겼다.

"그래서, 하겐.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난 네  사정 따위는 진작에 들었어. 대체 네가 원하는게 뭐란 말이냐."

"...저 셋을 도망갈 수 있게 허락하고,"

하겐이 저 멀리서 정신을 잃은 타하리알을 보살피고 있는 마르시와 이블린을 가리켰다.

"루이를 안전하게 보호해줘. 되먹지 못한 배신자가, 네게 마지막으로 하는 부탁이다. 제발.."

"..."


"피터, 제발... 난 죽어도 좋아. 난 죗값을 치루고 말테니까. 마지막, 마지막 부탁이야.."


"(제길,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대체 어떻게 해야....)"


피터는 굉장한 고민에 빠졌다. 루이는 어떻게든 자신이 보호하고, 도움을 줄  있을 것 같긴 했지만 저  악마들은 절대로 도망갈 수 잇게 배려해줄 수는 없을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테일런과 그의 대원들이  악마들을 살려둘 리가 없었다.


거기에 저 악마들을 도망가게 내버려두었다간, 자신과 동료들도 타락자라고 의심받기엔 충분했으니까.


"...테일런."


피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테일런을 불렀다.

"말씀하시죠."


"하겐의 뒷편에, 세 악마들이 보이지?"

"보입니다. 곧바로 처분할겁니다."


"...그들을 풀어줄 수 있나? 도망갈 수 있게 눈감아주면 안되나?"

"미쳤습니까?!"


테일런이 강하게 반발했다. 그의 목소리에 분노가 살짝 섞여들어갔다.

"다른건 몰라도, 악마들은 전부 죽어야합니다. 그게 저희가 있는 이유라고요. 헛소리는 자제하시죠. 할 말은 다 끝난  같은데."

"테일런? 그게 당신의 이름인가...?"


하겐이 무릎 꿇은채 테일런을 쳐다보았다.


"...그렇다.  타락자야. 내게 말을 걸지 마라."

"부탁이다. 제발, 제발 그들을 보내줘. 그들은 일반적인 악마들이 아니야-."


"헛소리. 일반적인 악마가 아니면, 더 악독한 자식들이란 소리군."


"아니! 그들은, 저들은! 인간을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나를 죽이려는 악마들 사이에서 날 구해줬고, 죽어가는 인간의 심장을 되살렸으며, 피터가 감금당한 곳을 알려준 자들이란 말이다-!"


"...."


"제발, 부탁이야. 그들은 아무런 죄가 없어. 악마인 주제에 나같은 인간을 선의로 도왔다는 죄 밖에 없단 말이야. 그들은 날 위해 희생했어!"


"...저 말이 사실입니까? 피터 소위님."


"적어도 내가 감금당해있던 곳을 알려준건 확실한 사실이다. 내가 탈출하는데 지대한 도움을 주긴했어."


"..."


테일런이 잠시 고민하며 그의 입을 다물어버렸다. 하겐은 그런 그에게 이젠 애걸복걸하는 수준으로 부탁하고 있었다.

"날 죽여. 차라리. 저 셋에겐 손대지 말아줘. 부탁이다. 저들은 죄가 없단 말이다..."


"...테일런, 결정해라. 어쩔 생각이지."

"..흐음."

"제발..."


"씨발... 내 생에 악마들을 살려준다는 선택지 따위는 없었는데..."

테일런이 욕지거리를 조용히 읊조리며 혼잣말했다.

"결정했소. 하겐. 당신은 죽을 것이지만,  셋은... 도망가는걸 허락하겠어. 단! 차량은 주지 않을거야.  황무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보라고."

"...고맙다. 고맙다. 고마워."

하겐은 비굴할 정도로 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이제 일어서서 피터와 눈을 마주치며, 살짝 미소지었다. 그는 피터에게 천천히 걸어오며 악수하기 위해 왼손을 내밀었고, 피터도 그런 그에게 여러가지 의미가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


하겐, 그는 비록 모두를 배신한 배신자였으나, 끝내는 다른 모두를 위해 모든걸 짊어지게 되었다. 피터는 그런 그의 최후가 통쾌하기도, 기쁘기도 했으나 사실은 슬픔과 상실감이 더욱 컸다.

"고맙다. 피터. 네게 사과하는 것조차 양심없는 일이지만.... 내 마지막 부탁을 들어줘서 고맙다. 이것밖에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래. 나도 네가 적절한 죗값을 치루길 바라겠어. 그러나, 언젠간.. 언젠간 우리에게 돌아와줬으면 좋겠다.."

피터와 하겐이 몇m를 남겨놓은  순간, 피터의 뒷편에서 쿠르릉하는 수송 차량의 둔탁한 엔진음이 울려퍼졌다.

"!!"

조그만 언덕을 넘어 나타난 수송 차량은 곧바로 중기관포의 탄환을 하겐에게로 쏟아냈다. 차량엔 모두 아까전 지하 터널에 있던 대원들이었기에, 추적 대상인 하겐을 공격하는 것은 오히려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마인드 능력으로 감각이 대폭 강화되어 있던 루이는 재빨리 하겐을 염동력으로 감싸 총탄을 방어했으나, 강력한 기관포의 탄환은 염동력의 방해를 받으며 위력이 약해졌음에도 결국 염동력을 뚫어버리고 말았다.

"허억-."

하겐의 오른쪽 옆구리가 커다랗게 잘려나가며 터졌다. 루이는 그 모습에 절망이 가득한 비명으로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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