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9화 〉[옛 친구들] (119/131)



〈 119화 〉[옛 친구들]

"이, 이런. 큰일..났다."

타하리알이 자신의 뒤로 하겐과 동료들을 숨기며 조용히 읊조렸다. 그들에게 매섭게 겨누어진 총구들은 더욱 차가워보였다.


"테일런 준위님, 어찌할까요?"

그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던 검은 안개 연대원 하나가 테일런에게 물었다. 테일런은 잠시 타하리알과 그의 뒤에 있는 하겐과 동료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먼저 공격해 오지 않긴 하나, 악마와 타락자들은 여기서 처리해버리는게 낫겠지."


테일런이 그의 방아쇠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가 최초로 발사한다면, 그의 대원들도 일제히 집중 사격을 가해 타하리알과 동료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었다.

"잠깐! 잠깐-!"


테일런과 그의 대원들이 집중 사격을 가하기 바로 직전, 피터가 그들의 앞으로 달려 나오며 막아섰다.

"뭐야?! 비켜!"

"잠깐! 쏘지 말라고!"

"피터! 무슨 짓이야?!"

"야!"

칼리브레와 코리가 달려나오며 피터의 어개를 붙잡았다.

"무슨 짓을 하시는겁니까? 상대는 악마들입니다!"

"비키시죠!"


검은 안개 연대원들도 피터에게 반발했다. 그러나 피터는 자신에게 잠시만 시간을 달라며, 그들을 최대한 뜯어말렸다. 검은 안개 연대원들과 대부분의 병사들은 피터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피터는 나이트 크롤러 뒤에 숨은 하겐과 루이를 똑똑히 보았었다.


"다들 멈춰."

테일런이 자신의 대원들을 제지하며 말했다. 그는 갑자기 끼어든 불청객인 피터를 아니꼽게 내려다보며 경고했다.


"...1분만입니다. 그 후에는 곧바로 화력을 집중할겁니다."

"..그렇게 말해주는것도 고맙군."


테일런의 경고를 대충 맞받아친 피터가 하겐이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나이트 크롤러 뒤에 살짝 숨어있는 하겐을 본 피터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대화를 시작하려고 들었다.

"하겐!"


"..."

"그 악마 뒤에 숨은 거 다 알아. 얘기 좀 하자고."


"하겐이 있다고?!"

"그 자식이 여기 있단말이야?"

깜짝 놀라는 코리와 달리 칼리브레가 그의 기계 의수로 주먹을 쥐며 분노했다.

"하겐! 어서 나오라고!"

"...나랑 말이냐?"


"진짜 있었잖아!"


놀라는 코리를 뒤로하며 타하리알의 등뒤에서 하겐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겐은 피터와 마주하는  순간에도 다른 한손으로 루이를 보호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래."


"나랑 무슨 할말이 남았다는거지?"

"...협상하자."

"....협상하자고??"

"그래. 그 악마들에게서 벗어나,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와. 네가 되살린 루이랑 함께!"


"..."

"다시 우리에게 합류한다면, 어떻게든 너희 둘은 보호하겠다고 약속할게. 연방에는 네가 이중 스파이였다고 말하면 되는 일이라고!"


피터의 말을 들은 하겐이 말없이 뒤돌아보았다. 루이, 이블린, 마르시와 동시에 눈이 마주친 그는 그들이 죽는 모습을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투항한다는 것은, 곧 그들이 죽음을 맞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연방은 악마가 만들어낸 루이와 악마들인 이블린, 타하리알, 마르시를 절대 살려두지 않을것이 분명했으니까.


"투항해. 어서...!"

이제 피터는 하겐에게 애원하듯 말하고 있었다.


"....그럴수는 없어."


"뭐..?"


"난 이미 배신자야. 그것은 아마도 영원히 바뀌지 않는 사실이겠지."

"하겐-"

"그리고,  다시 누군가를 배신할 수는 없어..."


"..."

"그렇다면 협상은 결렬이군."

칼리브레가 피터를 뒤로 밀친  그의 기계 의수로 글라디오를 뽑아들었다. 그의 눈이 복수심과 슬픔으로 번뜩였다.

"하겐. 난 네놈을  이상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를 배신한 개새끼니까 말이야. 넌 팔런을 죽였어. 녀석을 죽이지 않을 수 있었는데..."

"카, 칼리브레."

하겐이 칼리브레의 날카로운 독설에 당황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뭐해? 1분은 이미 지났어!"


칼리브레가 테일런을 돌아보며 외치니, 테일런이 그에 맞춰 고개를 끄덕였다.


"전 대원, 사격 준비!"

"!!"

타하리알의 눈이 일순간 반짝였다.

"위험해!"


"쏴!"

[타타타타타타탕!!]

[드르르르르륵!]

타하리알이 하겐과 그의 동료들을 감싸 안으며 총탄을 받아냈다. 그의 등의 살점이 이곳저곳에 튀며 피를 흩뿌렸다. 수십명이 쏘아대던 탄환을 받아낸 타하리알이 비틀거리며 쓰러지려고 들자, 하겐이 그를 부축했다.

"타하리알-!"


"으윽...으으.."

"중화기 분대! 유탄으로 한번에 날려버려!"


"예!"


유탄을 다급히 장전한 중화기 분대원이 타하리알의 등짝을 향해 유탄 발사기를 겨누었다. 하겐은 유탄 발사기의 시커먼 포구를 보며 절망의 비명을 질렀고, 루이는 그런 하겐의 손을 꼬옥 붙잡으며 질끈 눈을 감았다가 떴다.

[푸숭-]

유탄 발사기에서 유탄이 발사되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유탄은 총구에서 솟아나오는 자욱한 연기를 뚫으며 타하리알의 등으로 날아갔다.

"...?!"

그러나 유탄은 폭발하지 않았다. 유탄은 타하리알의 등에서 닿기 직전, 공중에서 그대로 멈춰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있는 것처럼.


"말도 안돼."

"이, 이게 무슨."


대원들이 당황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루, 루이..?"


놀란 것은 하겐을 포함한 그의 악마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하겐에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들어올린 루이의  주위로, 강력한 염동력이 일렁이며 유탄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었다.


"누구도. 내. 친구를. 다치게. 할 수. 없어."

"!"

테일런이 루이의 손을 유심히 보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뒤로 몸을 날리며 외쳤다.

"엎드려!"

루이의 염동력이 유탄을 천장 높이 집어 던졌다. 고폭발 유탄이 천장에서 폭발하며 붉은 화염으로 불태웠다. 다행히 파편이 아닌 고폭발 유탄인지라, 그곳에 있던 대원들이 몰살당하는 일은 없었다. 갑작스런 화염에 의해 다들 혼란에 빠졌을 뿐.


"우왓!"


"젠장, 부상자 발생! 부상자 발생!"


검은 안개 연대원들은 신속히 움직이며 유탄의 부상자들을 뒤로 이동시켰다. 피터와 그의 동료들도 폭발의 충격 때문에 주저앉았으나, 시선만은 하겐쪽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젠, 젠장! 놈들이 도망간다! 놈들이 도망간다고!!"

칼리브레가 다급히 외치는 소리가 지하 터널 주위를 시끄럽게 메웠다. 몇몇 대원들이 하겐 일행이 도망간 통로를 보며 후레쉬 라이트를 비추었다.

"피터! 어떡할거냐?!"

칼리브레는 이번에 피터의 멱살을 잡으며 다그쳤다.

"..."


"어떡할거냐고!"


"...쫓아갈거야."

"좋아. 야, 너!"


"옙?"


"앙펠 지휘관께 방금 그놈들을 쫓는다고 전해. 알았어? 매우 위험한 놈들이라 당장 여기서 끝내버려야한다고!"

어느 병사를 붙잡은 칼리브레가 속사포처럼 쏟아댔다. 그리고 그의 말을 끊은 것은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붙잡은 것 때문이었다.


"테, 테일런 준위님?"

"우리가 돕지.  놈들을 같이 쫓는다."

"같이 말입니까? 아뇨. 그 놈들은 우리 4명이서도 쫓을  있어요."


칼리브레가 피터를 비롯한 코리와 에리를 가리켰다. 그러나 테일런은 고개를 저은 뒤 담배를 하나 꺼내물었다.

"유탄을 막아낸 능력자가 하나 있었다. 그 자식이 얼마나 위험한지 당신들은 모르고 있어. 같이 간다."

"....그러시든지."

테일런에게 반박하지 못한 칼리브레가 마지못해 나지막히 말했다.


.
.
.
.

"헉, 허억.. 허억... 허어억.."

"타, 타하리알, 이제 됐어. 우릴 내려줘. 이제부턴 우리도 걸을 수 있다구."

타하리알에게 안겨있는 마르시가 그의 상처를 지혈하며 말했다. 마찬가지로 같이 안겨 있는 이블린도 타하리알의 상처를 불쌍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냐, 여기서, 여기서 벗어나야해! 방금은 운이 좋았어. 실렌티온이 마인드 에너지를를 사용해주다니!"

"실렌티온이 아니라 루이야! 타하리알! 그건 그렇고,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지?"


루이를 껴안으며 달리는 하겐이 타하리알에게 물었다. 타하리알은 숨을 고르며 방금전 자신들에게 총을 쏴댄 자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이곳에 걸어오진 않았을 것이다. 인간들이 타고다니는 수송선들은 소리가  편이니, 듣지 못했을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녀석들은 차량을 타고 왔겠지?"

타하리알이 하겐에게 물었다.


"뭐? 갑자기 그걸 왜 물어봐? 아니, 그것 말고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네 동료들이랑  타고 다녔는지 기억나?"

"...H-100 수송 차량이라는 거~대한 트럭을 타고 다녔지. 천장도 두껍고, 기관포도 달려있는.."

"좋아. 그럼 그걸 찾아서 여기서 당장 떠나는거야!"


"그게 여기 있다고?!"

"있을만한 곳이 있지! 그런 차량들이 어디 있겠어? 전선의 양끝에 있는 입구에 있겠지!"


"...헛소리긴 해도 지금은 그런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잖아, 제길."

"여기서 입구쪽으로 가자고! 동쪽의 입구가 이곳에서 제일 가까우니, 그곳을 먼저 확인할거야. 조금만  걸은 뒤 코너를 돌아 직진하면 돼!"


"이번엔 정말 믿을만한 정보야? 아니, 안전한 정보야?"

"....나만 믿어."


타하리알이 불안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벌어진 가슴팍의 상처에서 피가 배어져 나오자, 마르시가 손으로 그 상처를 틀어막았다.


.
.
.
.


[탁탁탁탁-]

어둡고 비좁은 통로를 달리는 4명의 연방 보병 뒤로, 8명의 검은 안개 연대원들이 곧바로 따라붙고 있었다. 어둡고 비좁은 통로 땅바닥에 흩뿌려진 핏자국들은 하겐의 일행이 이곳을 지나갔음을 확실히 알려주는 지표였다.


"망할, 얼마나 더 달려야 되는거지?"

에리가 수통의 물을 쭉 들이키며 입을 닦았다.

"핏자국을 계속 따라가! 생긴지 얼마 안된 것들이니, 이걸 따라가면 놈들을 따라잡을 수 있겠지!"

"야, 칼리브레.  너무 흥분했어!  진정하라고?"

코리는 핏자국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칼리브레를 달래며, 그의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칼리브레는 지금 이상하리만큼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흥분하다니! 난 흥분하지 않았어. 난 그저... 그저.."

"그저?"

"하겐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려는거야."


"자유롭게 해줘?"


"그래. 하겐은... 이미 악마들과 놀아날 정도로 전락해버렸어. 내 옛 친구가.. 그렇게 더럽혀진채 살아가는건 두고 볼 수가 없다고."


"..."


"하겐은 타락하지 않았어."

피터가 칼리브레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칼리브레는 피터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뭐라고? 타락하지 않았다니?"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하겐은  도왔어. 마리의 손길에게서 벗어날  있게 도와줬지."


"그건 착각일 뿐-"


"이봐요! 집중해요! 적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단 말입니다!"


검은 안개 연대원 하나가 칼리브레의 말을 자르며 경고했다. 칼리브레는 할말이 더 남아 있어보였지만, 속으로 삭인 채 달리는 것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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