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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화 〉[생명 회수자 2] (115/131)



〈 115화 〉[생명 회수자 2]

"어서 이리와!"

마르시는 하겐을 잡아당기며 아직도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휘날리고 있는 곳을 노려보았다. 천장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태양의 얕은 빛이 살짝씩 스며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이 모든 일을 일으킨 실렌티온이 무표정하게  있었다.

"실렌티온!"

"아냐, 바보야! 저건 실렌티온이 아니야!"


"뭐?!"


이블린을 부축해주던 마르시가 달려나가려는 하겐의 손목을 콰득하며 붙잡았다.


"벌써 잊었어!? 실렌티온의 몸속에 뭐가 잠들어 있는지를 잊었냐고! 지금 그게 깨어나려하고 있단 말야!"

"...생, 생명 회수자 말이냐?"


"그래! 어서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이러다간 우리 모두 다 죽게될 걸! 너도 마찬가지야, 하겐."


"..."


입구로 바쁘게 움직이는 마르시와 이블린과 공중에 조용히 떠있는 실렌티온을 번갈아 보던 하겐이 실렌티온쪽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마르시는 그를 보며 가면 안된다며 비명을 질렀지만, 하겐은 조금씩 실렌티온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하겐! 가면 안된다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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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리드 전선의 지하 터널에서 커다란 충격이 일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은 천지를 뒤흔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지하 터널에 있던 제스의 소대원들은 비틀거리며 제각기 한마디씩 내뱉었다.

"제길, 방금 뭐였어?!"

"모, 몰라!"

"준위님! 무슨 일이 일어난게 틀림 없습니다!"

"젠장, 다들 경계 태세 갖추고 흩어지지마!"

제스는 자신의 대원들에게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린뒤, 앙펠에게 다가갔다.


"앙펠씨,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은 잡힙니까?"

"아니? 하지만 별로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쯤은 알겠군."

"제스 준위님. 코리 부소대장의 무전입니다."

"알았어."


무전병에게 무전기를 건네받은 제스가 응답했다. 무전기에서는 이미 코리의 다급한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기는 코리! 아까 우리가 모였던 홀로 이동중이었는데, 바깥에서 보라색 섬광과 함께 뭔가 하늘로 치솟았어! 에너지 빔같은게 팍 솟아올랐다고!"

"에, 에너지 빔이라고요?"

"그래! 구름들이 아주 쩌억 갈라졌어! 여기 참호에서도 맨눈으로 보일정도라니까?"

"대충 위치가 어딥니까?"

"여기가 솔리드 전선의 참호니까, 아마 저기는 브로취른쪽이지 않을까?"


"..."


코리의 말을 들은 제스가 고민하며 무전기를 귀에서 떼어냈다.


"제스! 어떡할거야?"


제스는 다급하게 지시를 기다리는 코리를 생각하고, 이마를 짚었다. 그녀는 마침내 결심한듯 무전병에게 지시하며 무전기를 집었다.


"데른, *테일런 준위에게도 통신 연결해."
(*베테랑 소대의 소대장.)

"넵."

"여기는 제스 테니슨 준위. 테일런 준위, 들립니까?"


"잘 들린다. 우리는 현재 홀 주위의 게이트들을 점거하고 있다."

"방금 전 섬광이랑 굉음 들었습니까?"


"...하늘 높이 아주 이쁘장하게 솟아오르는거?"

"보셨군요. 지금부터 이 솔리드 전선의 수색은 전면 중단합니다. 전 병력은 이곳에서 10km 거리에 있는 브로취른 전선으로 이동하세요. 브로취른 전선에 도착하는 즉시 피터 소위에 대한 수색을 시작하고, 저항하는 적 세력은 꺾어버리세요. 솔리드 전선 바깥에 수송 차량들이 대기하고 있을겁니다. 저희를 기다리지 말고, 할 수 있다면 먼저 출발하셔도 좋습니다."

"알겠다."


"제스? 그럼 우리도 출발하라고?"


"네. 당장 하세요. 저희도 뒤따라갑니다."

"젠장, 알겠어! 조심히 오라고!"

코리의 무전이 끊어졌다. 제스는 끊어진 무전기를 데른에게 턱 넘겨버리고 앙펠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앙펠씨."


"왜."


"브로취른 전선은 언제 돌파당했습니까?"

"...이 솔리드 전선보다 훨씬 전에. 아마 악마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을걸."

"그곳으로 같이 가달라고 하면, 거절할거죠?"


"아니."


앙펠은 제스의 말을 단박에 잘라버렸다. 그의 의지가 담긴 눈이 반짝 빛났다.


"연방의 적을 하나라도 더 죽인다는 것은 인류 전체를 위한 길이다. 거기에, 이런 빌어먹을 곳과는 더이상 연관되기 싫거든."

"...고맙군요."

앙펠이 피식 웃으며 제스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몇발짝  걸어가기전 살짝 뒤돌아 제스와 그녀의 대원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뭐하나? 빨리 안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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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겐! 미쳤어?!"

하겐은 마르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불에 올린 나방처럼 실렌티온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공중에 떠있으면서, 부서진 천장으로 내려오는 햇살을 받던 실렌티온이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하겐을 내려다보았다.

"...실렌티온."


"바보야! 그건 네가 알던 녀석이 아니라고-!"

하겐에게 경고하던 마르시가 자신이 올라가려던 계단쪽으로 얼굴을 홱 돌렸다. 무언가가 계단 위에서 웅성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마르시에게 부축을 받고 있는 이블린도 긴장하며, 그녀의 가운속에 있는 날카로운 메스를 쥐었다.

"여기다! 여기로 아까 그놈들이 도망쳤어!"


타락자들이었다. 하겐과 이블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 그들은 계단 아래에 있는 이블린을 보고는 흥분하며 우당탕 계단을 달려내려오기 시작했다.

"아!"


"이블린?! 왜 그래?"


"저, 저놈들이.. 나랑 하겐을 공격한 녀석들이야.. 내가 하겐을 보호하니까, 우릴 죽이려고 들었어!"


"뭐?!"

타락자 한놈이 파괴 욕구를 참지 못하고 높은 계단 위에서 뛰어내리며 달려들었다. 마르시는 이블린을 다른곳으로 확 밀치고는 그녀의 가운에서 주사기를 꺼내들었다. 지금으로썬 그녀가 가진 무기는 이것밖에 없었다.

"아드라말렉님의 명령! 아드라말렉님을 위해!"


타락자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이블린을 보호하는 마르시를 향해 그의 글라디오를 높게 쳐들었다. 마르시는 그가 검을 내리치는 그 순간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검을 피했고, 놈의 검이 땅바닥에 박혀 낑낑거리는 때를 놓치지 않았다.

"에잇!"

마르시는 그녀의 주사기를 타락자의 경동맥에 꽂아 그어버리고는,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꺼어억하며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타락자가 절명했다. 하지만 타락자 하나를 처리했음에도 계단 위쪽에서는 쿵쾅거리며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녀가 쓰러트린 타락자의 동료들이 분명했다.


"망할!!"


문에 끼인 타락자의 시신을 안으로 끌어당긴 뒤 그대로 문을 닫아버린 마르시가 문을 걸어잠가버렸다. 문밖에서는 타락자들이 문을 쾅쾅 두들기며 어떻게든 들어오려고 분노가 섞인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진짜 좆됐네... 하..."


마르시는 두꺼운 문에 기대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무리 악마들보다 훨씬 미개한 인간들을 죽였다곤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타락한 인간들. 지옥의 군세의 일원들이자 악마의 수하들이었다. 이들을 죽인 것도 그저 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걸 동족들이 알게된다면, 마르시는 그리 좋지 않은 꼴을 당하게 될게 뻔했다.

"마르시? 괜찮아..?"

이블린이 그녀의 가슴팍을 쥔 채 마르시에게로 기어왔다. 마르시는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며 벽에 기대었고, 죽은 타락자의 시신에서 글라디오와 권총을 찾아냈다.

"ㄴ,너, 인간들의 무기 같은거 써본  있는거야?"

"아니. 하지만 없는것보다야 낫겠지. 하지만 이 검... 너무 무거워서 쓰기엔 애매해."


"이젠 어떡하지?"


이블린의 질문에, 마르시가 조용히 하겐쪽을 쳐다보았다.


"...하겐이 무언가 해내기만을 빌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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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렌티온..."

하겐이 떠 있는 실렌티온의 손을 향해 그의 손을 뻗었다. 아주 조금의 거리를 남겨두고, 하겐은 복부와 가슴팍에 느껴지는 충격과 함께 땅바닥을 나뒹굴렀다. 충격은 그의 숨이 순간적으로 턱 막혀오며, 생과 사를 오가는 고통을 맛보게 만들었다.

"욱, 우아아-"


하겐을 공격한 것은 바로 그녀, 실렌티온이었다. 실렌티온의 강력한 염동력이 하겐을 죽일뻔한 것이었다.

"시, 실렌티온, 대체 왜...??"

"난 실렌티온이 아니다. 인간이여."


"!"

"나는 어두운 심연의 짐승이자, 생명을 주고 다시 회수하는 존재이니. 이 자의 육신과 영혼은 모두 나의 것이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이를 악문 하겐이 자리에서 느릿하게 일어섰다. 그의 파열된 복부와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들은 그가 굉장히 심각한 부상을 입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하겐은 실렌티온을 되돌려받겠다는 일념으로 주먹을 쥐고 거대한 존재에게 맞서고 있었다.


"실렌티온을 되돌려 줘. 네놈이 지옥의 심연에서 기어나왔든간에, 아니면 좆같은 똥통에서 기어나왔든간에.... 실렌티온은 네놈이 갖기엔 너무 아까운 존재다."

"흐응. 참으로 매서운 집념이나, 이미 이년의 영혼은 반 이상이 내것이다. 이년의 육신도 내것이지.   몸에 기생시켜준 하후케크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구나. 난 이년의 몸에서 지능을 빼앗고, 위대하게 자라날 발판을 마련했다. 누구도 내 탄생을 막을 수는 없으리라."


생명 회수자가 실렌티온의 목소리로 하겐을 조롱했다. 그러나 하겐은 전혀 굴하지 않고 가만히 떠있는 실렌티온에게로 다가가는걸 멈추지 않았다.


"멈추라고 했을텐데."


생명 회수자의 강력한 염동력이 다시 한번 하겐을 강타했다. 하겐의 오장육부가 순간적으로 꼬이며 흔들렸고, 하겐의 입에서 피가 팍 튀어나와 땅바닥을 적셨다.

"이 육신 어딘가에는 이년의 영혼이 잠들어 있겠지. 깨어나면 아직 성장하지 못한 내가 주도권을 빼앗기게 될테니... 잠재워 주었다. 너도 이제 이 자를 포기하고 새로운 나를 받아들이거라."

그러나 그럼에도 하겐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발걸음에는 점점 더 힘이 붙고, 그의 입도 움직이고 있었다.

"실렌티온-!"

"..."

"실렌티온-! 내 말이, 내 말이 들리지?"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거지?"

"넌, 너의 진실은, 너의 본모습은!"


"...너, 설마."

생명 회수자가 실렌티온의 얼굴로 경악했다. 자신의 안에서 잠들어 있는 실렌티온의 영혼을 깨우기 위해서, 그녀의 본모습을 알려주기라도 하겠단 것인가?

"실렌티온이 아니야! 네 진짜 정체는-"

"닥쳐!"

생명 회수자의 염동력이 의자를 들어올려 하겐의 등을 강하게 후려쳤다. 하겐은 크악하는 신음과 함께 잠시 앞으로 비틀거렸으나 넘어지지 않았다.

"너는..."

"닥치라고!! 어차피 이년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아! 이름도 망각인년 주제에! 실렌티온은  너와 함께했던 기억조차 잃어버릴 것이다! 내가 집어삼켜 주겠어. 내가 이년의 모든 것을 갖고 탄생하겠다!!"


염동력이 그녀가 누워 있던 침대를 들어올렸다. 거대하고 무거운 침대가 그대로 하겐을 깔아뭉개도 목숨이 위험한 판에, 염동력까지 실렸다면 납작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 분명했다.

마침내 강력한 염동력이 실린 침대가 비틀거리는 하겐의 등을 향해 무겁게 떨어지는  순간, 하겐은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말을 내뱉었다.

"너는, 내가 최초로 사랑한 여자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한 여자인.."


"...루이 포스터다."

하겐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며 차분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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