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수색]
마키-203 행성의 낮이 밝았다. 피에 물든 인공 태양이 수십만명의 연방 장병들이 있는 다이아몬드 전선으로 붉은 햇살을 내리쬐고 있었다.
불침번을 서지 않고 밤동안 휴식을 취한 장병들은 막 알았겠지만, 어제 새벽에 4개 소대의 병력과 60명의 벨라토르들이 다이아몬드 전선을 벗어난것은 지금 몇시간째 전선의 병사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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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 그래서 이번 작전은 뭔데?"
덜컹이는 수송 차량 내부에서 칼리브레의 기계 의수를 봐주던 코리가 제스를 보며 말했다.
"그러게. 무슨 생각이길래 이렇게나 적은 인원만 데리고 가는건지."
칼리브레는 미심쩍은 얼굴로 차량 내부의 병사들을 돌아보았다.
"어차피 가면서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보세요."
차량 내부의 넓직한 벽에 지도를 펼쳐놓은 제스가 코리에게 눈치를 줬다. 코리는 툴툴거리며 좌석에서 일어나 제스가 펼친 지도의 한켠을 붙잡아주었다. 제스는 활짝 펼쳐진 지도를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가리키며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 그녀가 설명한 것은 그들이 출발했던 다이아몬드 전선이었다.
"여기는 저희가 방금전까지 있었던 다이아몬드 전선, 그리고 지금 여기서 여기로 올라가고 있죠."
제스는 그대로 손가락을 지도 위로 그으며 솔리드와 브로취른 전선을 가리켰다.
"이 두 전선이 저희가 수색할 곳입니다. 저 옆에 두 곳은 라미엘씨가 이끄는 벨라토르 중대가 수색을 진행할거구요. 저희는 저희가 맡은 곳만 완벽하게 해치우면 됩니다."
"...흐음."
그녀의 설명을 자세히 듣던 칼리브레가 좌석에서 일어났다. 그는 5개의 전선 가운데 끼어있는 커다란 돌산을 가리키며 이것은 뭐냐고 물었다.
"이건 뭐지? 별로 좋진 않아보이는 곳 같은데. 이곳도 가봐야하는거 아닌가?"
"아, 여기는."
제스가 바위산을 손가락으로 동그랗게 그었다.
"믿음직한 분에게 맡겼습니다. 걱정하지마세요. 저희는 저희가 할 일을 끝내면 되니까요."
"뭐... 알겠어."
"잠깐! 제스, 정말 피터가 이 4곳중에 있는거, 확실해요? 맞는거죠?"
궁금증을 대충 해결한 칼리브레가 좌석으로 도랑가자, 이번에는 에리가 바짝 일어나 제스에게 기관포처럼 쏘아댔다.
"맞지? 응? 있다고 해줘."
"잠, 잠깐만요."
"빨리! 있다고 해줘요. 어서!"
"야, 에리. 좀 진정해. 오케이?"
코리가 에리의 어깨를 잡으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어제부터 시체처럼 추욱 늘어졌던 그녀가 잠시 폭발하니, 모두가 당황스러울만도 했다. 코리가 에리를 진정시키자 제스가 고맙다는듯이 그에게만 살짝 엄지를 치켜세워주었다.
"진정해요. 에리씨. 저희는 지금 소위님을 찾으러가는 거잖아요? 그중에서 제일 있을만한 곳 먼저 털어보는거에요. 여기 있다고 확신은 할 수 없겠지만, 있을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있어요. 그것도 엄청나게 높은 확률로요."
"...알았어요. 미안해요."
에리가 살짝 슬픈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어깨에 올려져있는 코리의 손을 툭 쳐냈다. 코리는 칼리브레를 쳐다보며 어쩔까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칼리브레는 그저 한숨만을 내쉴 뿐이었다.
[치이익- 치직-...]
"준위님."
무전병이 제스에게 무전기를 가져다 주었다. 제스는 무전기에 귀를 기울이며 응답했다.
"말씀하시죠."
"여기는 라미엘이네. 우리는 스탁 전선에 도착했어. 바로 수색을 시작할것이네. 이쪽이 끝난다면 캠브렝도 들러볼 것이고. 자네들은?"
"저희도 곧 도착할겁니다. 그럼, 수고해주세요."
"알겠네. 자네들에게도 행운이 있기를."
[치익-. 툭.]
무전이 끊기고, 제스는 무전병을 바라보며 차량 조종실을 향해 턱짓했다.
"...우리는 언제 도착하는지 물어봐줘."
무전병이 그녀의 지시에 조종실에 가서 쑥덕대더니 곧 그녀를 돌아보았다.
"언제쯤이래?"
"곧 도착한답니다. 2분정도의 시간이 있으니, 준비하라고 하는데요."
"알겠어."
제스가 무전병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뒤를 돌았다. 그녀의 양옆 기다란 좌석들에는 자신의 대원들, 피터가 지휘하는 소대가 반씩 섞여있었다. 이 행성에 오고 나서, 피터의 소대나 그녀의 소대나 절반이 죽어나가는 피해를 입은 것이었다.
"...다들 들었죠? 각자 장비 챙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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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연방군의 전선. 이곳은 마치 격전이 벌어졌던 곳임을 암시하듯, 내부에서부터 파괴된 연방의 합성 콘크리트 가루가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와 같이 땅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시신들은 전부 재가공되고 깎아져 허수아비 같이 벽에 걸려있거나, 기이하게 훼손되어 보는 이의 불쾌감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런 '인간 예술품' 사이에서, 어느 나이트 크로울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양어깨에 날카로운 뿔이 자라난 그는 전선 내부 곳곳에서 자라나는 보라색 촉수들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구석에서 불경한 짓들을 벌이는 타락자들을 미개한 눈으로 내려다 보았다.
"해골... 더 많은 해골.."
"연방을.. 불태우자.."
"내장, 내장!! 내장!!"
지들끼리 낄낄대거나 불쾌하게 웃는 타락자들을 뒤로하며 걷던 나이트 크롤러에게 어느정도 군복과 장비를 갖춘 타락자가 다가왔다. 연방 장교의 상징인 망토를 휘날리던 그는 악마에게 충성하듯 무릎을 꿇었고, 나이트 크롤러는 자신에게 무릎 꿇은 이 남성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뭐냐. 빨리 말하거라."
나이트 크롤러는 그의 가슴팍에 아직도 달려있는 연방군의 마크를 불쾌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우피르님, 연방군의 정찰대가 이곳에 도달하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저희 병사 두어명이 놈들의 차량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
우피르라고 불린 나이트 크롤러가 귀찮다는 듯이 한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너희들끼리 알아서 처리해... 나와 내 전사들이 나서게 하지마라. 귀찮으니까. 우리는 아직 즐기고 싶단 말이다."
"...."
"대답하거라."
"알겠사옵니다."
"그럼.."
우피르가 다시 그가 나타났던 인간 예술품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의 뒷모습을 끝까지 노려보던 앙펠은, 이를 살짝 빠득 갈다 풋하고 비웃음이 담긴 웃음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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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솔리드 전선이야?"
"그래요. 다들 준비는 됐죠?"
코리가 솔리드 전선의 끝자락인 거대한 입구에서 문을 한번 쓱 문질렀다. 제스는 그런 그에게 손을 떼라는듯 손목을 툭 치고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계획대로 움직여요. 제 소대와 중화기 소대 절반이 같이 움직이고, 코리씨의 소대와 나머지 중화기 소대가 같이, 마지막으로 테일런 준위가 지휘하는 베테랑 소대가 각각 한개의 팀입니다. 총 지휘권은 제게 있으니, 무언가를 발견하면 즉시 보고하고 행동하기 전 통신하세요. 이상!"
제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문을 해킹하던 대원들이 뒤로 물러났다. 솔리드 전선 양쪽 끝에 존재하는 거대한 문이 구웅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테일런이 지휘하는 검은 안개 연대 베테랑 소대가 진입하며 어두운 내부를 후레시로 비추었다.
"저희도 가야죠?"
제스가 코리에게 슬쩍 다가와 말했다. 먼저 진입한 베테랑 소대는 벌써 어두운 전선 내부 깊숙히 진입하고 있었다.
"아, 알겠어. 일단 진입하는 건 다들 똑같은 곳으로 들어가는건가."
"그래요. 전선들의 내부에는 커다란 홀이 무조건 존재하니까, 그곳에서 모였다가 흩어지죠. 그리고..."
"그리고?"
"코리씨, 당신은 저희의 임시 부소대장이니까 죽으면 안됩니다. 알겠어요?"
"...엉."
말을 마친 제스의 소대가 먼저 앞장섰다. 그들의 뒤를 25명의 연방 병사들과 30명의 중화기 소대가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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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
"?"
앙펠의 옆쪽에 잔뜩 자라난 보라색 촉수들이 무언가를 느낀듯 꿈틀거렸다. 꿈틀거리던 촉수들은 자신들을 팔랑팔랑 움직이며 공기에 몸을 맡겼다가, 갑자기 날카로운 끝을 하늘로 세우며 판판히 몸을 굳혔다.
그 모습을 본 앙펠이 그의 군복 주머니를 뒤져 담배 하나를 꺼내물었다. 그의 담배는 일반적인 타락자들이 피는, 사람의 가죽으로 만든 담배가 아닌 일반적인 연방의 담배였다.
"(...구원자들이 왔군.)"
"대장님. 촉수들이 뭔가 감지한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앙펠에게 다가온 반나체의 여성이 몸을 숙이며 굽신거렸다. 앙펠은 그런 그녀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알아서하라는 것처럼 대꾸했다.
"난 잠시 바쁜 일이 있어서 말이지. 네녀석들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거다. 이만."
"대, 대장님. 어디 가는겁니-"
앙펠은 그녀에게 말도 없이 몸을 돌려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타락자들은 사라진 그를 보며 잠시 얼빠진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지만, 이내 그들의 폭력 욕구와 갖가지 욕망이 뒤섞여 폭발했다. 그중에는 자만심도 섞여있었다.
"뭐야? 저 좆같은놈. 대장이라고 좀 거들어줬더니, 이젠 아주 거들먹거리는구만!"
"좆까라고해! 저놈은 나중에 내가 뒷통수 쳐서 없애버릴테다."
"이곳으로 뭔가 침입했어.. 촉수들이 존나게 꿈틀거리는걸 보면..."
어느 타락자가 꼿꼿이 서있는 촉수들을 보며 그르렁거렸다. 그러나 다른 타락자들은 폭발하는 감정에 의해 흥분한 상태였기에,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뭐? 그럼 당연히 가보자고!! 마침 내 기타줄에 쓸 힘줄들도 떨어졌다고."
"붉은 지옥에게 영광을! 사악한 자들에게 영광을!!"
마침내 어느 타락자 하나가 날이 피로 더렵혀진 글라디오를 치켜들고 달려나갔다. 그의 모습에 다른 타락자들도 함성을 지르며 그를 따라갔다.
"...크크."
그런 그들의 소리를 숨어서 전부 듣고 있던 앙펠은 짧게 웃었다. 그는 다시 연방 장교의 상징인 망토를 휘날리며 전선의 모든 구역으로 연결되는 문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드디어 놈들에게 굽히지 않은 보람이 생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