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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화 〉[쓰라린 패배] (101/131)



〈 101화 〉[쓰라린 패배]

아드라말렉과 라미엘이 기다란 참호 내부에서 이리저리 부딪혀가며,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라미엘의 빛나는 섬광이 가득한 망치가 아드라말렉의 가슴팍을 내려찍으면, 아드라말렉은 그대로 그의 날카롭고 튼튼한 그의 손을 휘둘러 라미엘의 갑주에 상처를 입혔다.

정의의 반신과 악의 화신이 맞부딪히며 스파크와 굉음이 참호 내부로 퍼져나갔다. 일반인이나 마찬가지인 연방의 병사들은 두 강대한 자가 혈전을 벌이는 모습을 넋놓고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누구도 감히 그 사이에 끼어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옥의 돌격 대장 앞에서 빛나는 전사는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그가 아무리 의지를 붙태우며 반신의 육신을 움직인다고 하였을지라도, 지옥의 돌격 대장인 나이트 크롤러는 그보다도 수만년을 더 살아왔고 더 살아갈 자였다. 그리고 그만큼 더욱 강력한 자였다.

"네놈은 나를 막을 수 없다. 연방의 전사야."

"...닥치거라."

"네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10분? 5분? 1분? 아니면 10초? 네놈은 곧 내 손에 쓰러지게 되겠지. 그리고  해골은  날개들을 위해 장식될 것이다."


"불경한 자가 감히 입을 놀리는군!"

라미엘이 망치로 아드라말렉을 후려친 뒤에, 그의 갑주 사이에서 코발트 권총을 꺼냈다. 그는 아드라말렉의 벌어진 상처 사이로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캉! 타캉! 타캉!]


코발트 권총의 28mm 고속 철갑고폭탄이 아드라말렉의 상처 사이로 파고들며 폭발했다. 놈이 크악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어깨를 감싸쥐었다. 비록 1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으나, 이 시간은 라미엘에게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내 손에 죽거라. 악마야!"

라미엘은 그대로 아드라말렉의 머리를 망치로 내려치기 위해 망치를 높이 들어올렸다. 그의 마인드-에너지적인 번개가 망치와 그를 감싸며 노란 섬광을 주위에 흩뿌렸다.


"..아니!"


그러나 아드라말렉은 라미엘의 망치가 자신에게 닿기전에 자신의 두 날개를 움직여, 날개 끝 부분의 날카로운 발톱으로 라미엘의 갑주를 후벼 파버렸다. 라미엘이 재빨리 놈의 발톱을 쳐내었으나 그의 가슴팍에서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되지는 않을거다.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고."

아드라말렉은 그의 도끼로 라미엘을 두동강 내버리는 대신, 도끼 손잡이 끝에 달린 날카로운 창날로 라미엘의 복부를 깊숙히 찔러넣었다.


"크으으윽!"

라미엘이 비틀거리며 그의 양손에 들린 무기들을 놓쳤다.

"그래, 바로 이거다. 네놈은 이렇게 질 운명이란 말이다."

아드라말렉이 그의 강력한 손아귀로 라미엘의 멱살을 쥐어 들어올렸다. 라미엘의 멱살을 보호하고 있는 갑주가 악마의 손에 우그러뜨려지며, 기긱하는 금속의 소음을 내었다.

"죽기 직전에.. 할말은 없느냐? 네 목을 베고 그 해골에 네 마지막 말을 적어주도록하마."

"..."

"흥, 없다는 것이지. 좋아-! 이대로 목을 베어주-"


"..내 몸에 손대지 말거라. 추악한 자야."

"뭐라-"


라미엘은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내며 아드라말렉의 손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그의 눈에서 밝은 노란 빛의 섬광이 번쩍 빛났다.


그와 동시에, 강력한 마인드 - 에너지 번개가 라미엘의 손에서, 아드라말렉의 몸으로 전해졌다. 아드라말렉은 자신의 손목을 강하게 옥죄고 있는 라미엘의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그의 손을 자르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크아아악! 그아아아--!  새끼--!"

아드라말렉은 자신에게 통하고 있는 마인드 - 에너지 번개를 이악물고 견뎌내며, 그의 다른 한 손을 느릿하게 들어올렸다. 그는 그의 손에 흐르고 있는 전기를 애써 떨쳐내며, 그의 날카로운 손가락들을 힘겹게 풀었다. 그리고 곧바로 라미엘의 심장을 향해 손을 움직였다.


[카강, 푸욱!]


라미엘의 심장 부분을 보호하고 있던 갑주가 파괴되고, 그의 *대심장이 찢겨져나가며 파열되었다. 반신은 그 거대한 육신을 비틀거렸으나 쓰러지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 앞에 놓인 악마를 정확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심장이 파괴된 심각한 피해에, 뒤로 풀썩 넘어지고 말았다.
(*벨라토르는 대심장 하나와 소심장 2개를 갖고 있음.)

[부우웅-]


그러나 라미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력히 쓰러지지만은 않았다. 그는 사력을 다해 망치를 아드라말렉의 얼굴을 향해 던졌고, 망치는 아드라말렉의 자랑스러운 외뿔을 파괴시키며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크르으으.."

지옥 군세 돌격대의 수장인 아드라말렉조차도 라미엘은 강력한 상대였다. 그의 한쪽 무릎을 꿇게 만든 자는 몇천년  자신을 쓰러트린 어느 은빛 기사를 제외하면 라미엘이 최초였다.

쓰러져 정신을 잃은 라미엘의 주위로, 연방의 병사들이 몰려들어 그를 지키는 방진을 짜기 시작했다. 그런 병사들 옆으로 라미엘의 충직한 중대원들이 속속들이 나타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아드라말레크."

"...?"

아드라말렉은 자신을 둘러쌀 준비를 하는 연방의 병사들을 응시하며, 자신의 정신에서 조용히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었다. 붉은 지옥에서 자주 들어왔던 목소리. 계획자, 비웃는 자. 하후케크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당장 거기서 빠져나와."

"...하후케크...!"


"피터는 이미 퍼플 윙의 손아귀에 넘어왔다. 이제 네놈이 군세를 이끌고 거기서 빠져나오면 돼. 뭐, 나오지 않고 죽은  붉은 지옥에서 육신을 재구성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좋고."

"...흥."


하후케크의 조롱섞인 충고를 들은 아드라말렉이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를 둘러싸며 경계하던 연방 보병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지만, 그들의 총구는 아직도 아드라말렉에게로 겨누어져 있었다.


"네놈들의 목은.. 나중에 이 아드라말렉님이 모두 거둬주겠다."


아드라말렉은 연방의 병사들에게 강력한 경고가 담긴 말을 남긴 후, 그의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펼쳤다. 저주받은 문양과 글귀가 새겨진 그의 날개는 추악하고도 흉물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잠시 뛰어오르는 자세를 취한 뒤, 참호의 천장을 뚫고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방금 무슨 일이야?!"


아드라말렉이 라미엘을 쓰러트리고 참호에서 빠져나간 그 직후에, 키아나와 라미엘의 중대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라미엘이 내린 명령인 전선 전체를 돌면서 악마들의 공습을 저지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자들이었다.


"주, 중대장님-?"


키아나는 병사들이 유난히 모여있는 곳을 눈으로 훑다가, 노란 빛이 미약하게 흘러나오는 라미엘의 갑주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는 상냥한 그녀답지 않게 병사들을 이리저리 젖히며 라미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그의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 이런.. 위험해. 중대장님이! *메디쿠스!"
(*벨라토르들의 의무병 보직. 이들도 똑같은 벨라토르들이지만, 치료를 위한 장비가 존재하는 점이 다르다.)


이윽고 메디쿠스 벨라토르 하나가 달려와 라미엘의 부서진 갑주 사이로 사람 팔뚝만한 *치유 갑충를 집어넣었다. 치유 갑충는 라미엘의 갑주 사이로 파고들며 그의 몸속에 박힌 파편들을 제거하고 그의 재생이 멈춰 찢어져 있는 살갗을 응급처치하기 시작했다.
(*치유 갑충: 메디쿠스들이 2~3마리 정도 소지하고 있는 공벌레 모양의 기계로, 지능이 갖춰져 있어 상처 치료와 봉합등 다양한 치료 업무를 자동적으로 수행한다.)


치유 갑충이 반신의 몸을 훑으며 날카로운 이빨로 재생제를 투여했다. 재생제가 반신의 몸에서 피와 같이 돌며, 라미엘의  곳곳에 난 치명적인 상처를 재수복했다. 허나 치유 갑충의 능력으로도 완전히 터져버린 라미엘의 대심장을 고쳐낼 수는 없었다.

"삐릭. 끼릭. 삐리릭."

라미엘의 응급 처치를 마친 치유 갑충을 메디쿠스가 그의 손목에 달린 기계 위로 올리니, 치유 갑충이 삐릭거리며 정보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현재 상태는? 어떠시지?"

"...대심장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신체 곳곳의 심각한 피해가 다수 발생했습니다. 벨라토르의 재생 능력으로도 한계에 다다른 상황입니다. 전문 치료를 받아야할 것 같습니다."


"...그래. 중대장님을 일단 지하의 의무실로 옮겨라. 몇시간 후 메헤테크 공항의 치료 센터로 보내드려야겠어."

"알겠습니다."


메디쿠스가 라미엘을 업었다. 다른 벨라토르 몇몇이 그와 함께하며 지하의 의무실로 내려갔다. 키아나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잠시 응시하다가, 참호 내부에서 파괴된 곳을 긴급히 수리하는 공병단 병사들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병사여."


"허, 헉. 벨라토르시여. 무슨 일입니까?"


병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키아나의 눈치를 살폈다.

"지옥 군세 놈들이 물러난 건 알겠다만, 현재 피해 상태가 어떤지 간단히 알려줄 수 있겠어?"

"...그, 그게 말입니다. 지금 피해는 거의 유래가 없던 수준의 피해입니다. 방금  교전으로 10만명이 넘는 병사들이 전사했습니다. 다이아몬드 전선 곳곳도 심각한 수준으로 파괴되었구요..."

"...그런가."


"ㅇ, 예. 죄송..합니다."


"아니야. 죄송할 것 없어. 하던거 마저해. 방해해서 미안하군.."


키아나는 그녀의 헬멧 바이져를 올리며 천천히 전장이 훤히 보이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저멀리 바글거리며 물러나고 있는 지옥 군세를 보았는데, 그들은 마치 물러나면서도 승리한것처럼 왁자지껄 함성을 지르거나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사실, 이번 피해로 본다면 연방의 패배는 확실시 되는 것이었다. 키아나는 마침내 자신들의 패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쓰라린 패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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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풋을 가동하며 하늘로 높이 솟아오른 테리우스는 저멀리 정차되어있는 수송 차량을 보았다. 아마도 저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미래 예지 능력자, 피터 소위가 타고 있는 것이 틀림 없으리라.


테리우스는 그 수송 차량을 향해 방향을 돌리며 나아가려고 공중에서 자세를 잡았다. 그의 제트풋이면 100m 정도의 거리지만 3초도 안되어서 도착할 수 있을 것이었다.

"어-."


그러나 지상에 그의 눈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수송 차량에서  50m 가량 떨어진 곳에,  MTMA 기동병들이 자신들의 무기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악마들과 교전하는 모습이었다. 그중 한명은 악마들의 집중 공격을 받아 땅바닥에 비참히 쓰러지고 있는 중이었다.

"크으, 어떡해야 한단 말인가-?"


테리우스는 저멀리 정차된 수송 차량과 쓰러진 병사를 보호하며 혈전을 벌이고 있는 병사를 번갈아 보았다. 의무와 명령이냐, 아니면 위기에 처한자를 돕느냐.


테리우스는 그가 쥐고 있는 오르코드 검의 손잡이를 부러질 정도로 강하게 쥐었다. 그는 고민했다. 그는 몸이 부들거릴 정도로 고민한 후,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추악한 자들아, 붉은 지옥으로 다시 떨어지거라!"


그는 위험에 빠진 기동병들을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벨라토르가 된 이유도, 위기에 빠진 자들을 구하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테리우스는 그의 제트풋을 분사하며 지상으로 착륙함과 동시에 악마들과 기동병들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베, 벨라토르!"


죽어가는 세일을 목숨바쳐 지키며 저항하던 레나가 자신 앞에 나타난 거인을 보며 감탄했다. 그녀 가슴속에서 벨라토르를 향한 경외심과 환호가 물씬 흘러넘쳤다.


"이 악마들은 내가 맡을테니, 자네는 저 수송 차량에 가서 상황을 확인해줘.  병사까지 업고가라. 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좋아, 가!"

레나가 세일을 업고 저멀리 멈춰있는 수송 차량을 향해 발돋움치며 달려나갔다. 그곳을 빠져나가는 레나에게로 나이트 크롤러의 창이 날아들었으나 테리우스는 그의 오르코드 검으로 창과 함께 악마를 두동강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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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헉."

레나가 수송 차량의 앞에 다 와가며 숨을 고를 때였다. 그녀는 세일을 잠시 차량에 기대어 두고는, 수송 차량의 문 옆에 장갑으로 덮여있는 수동 개폐 장치를 찾아내 아래로 당겼다.

[구우웅-]


H-100 수송 차량의 두꺼운 문이 열리는 그 순간, 수송 차량이 잠시 기우뚱하더니 어느 자주색의 악마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매우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레나는 그 악마의 품에 정신을 잃고 안겨있는 피터를 보았다.

"소, 소위님!!"

레나는 정신을 잃은 세일을 다시 업고 완전히 열리지도 않은 수송 차량의 문틈으로 달려 들어갔다. 수송 차량의 땅바닥에는 상처를 입은 채 쓰러져 있는 3명의 병사가 있었다. 레나는 그들이 누군지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카, 칼리브레, 에리, 팔런..?"

세일을 좌석에 앉힌 레나가 부들부들 떨며 쓰러진 병사들을 내려다 보았다. 칼리브레와 에리는 미약하게나마 신음을 내며,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목과 가슴팍에 총상을 입은 팔런은 달랐다. 그의 총명한 눈이 빛을 잃은  탁해져 있었다.


"이게.. 무슨.. 대체..!"


"콜록! 콜록.."

"에, 에리!"

"아..레, 레나?"

"저에요! 괜찮은거죠? 소위님은 어디있어요?! 대체 누가 데려간거죠..!"

"하겐이.. 하겐이 배신을.. 놈들과 계약을 했다고..말했어.. 하겐이.. 칼리브레와 팔런을 쏘고 내 갈비뼈를 부러트렸다.."


"응?"

"놈들이.. 놈들이 피터를 데려갔어-.."

"말도 안돼..."


레나는 에리를 좌석에 눕힌 후 구석에서 가슴을 움켜쥔 채 숨을 고르고 있는 칼리브레에게로 달려갔다. 칼리브레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피가 섞인 기침을 함과 동시에 빈 재생제 주사기를 보여주었다.


"콜록-! 콜록-. 재생제 주사기가... 날 살렸군..콜록."

"칼리브레, 괜찮아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설명해  수 있어요?"

"젠장.. 일단.. 커흐윽-. 참호로 돌아가자고. 거기 가서도 설명해 줄  있으니까.. 하겐놈이 쏜 총알이, 내 폐 하나를 뚫고 지나갔거든..."

"아, 알겠어요!"


레나가 재빨리 차량의 조종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피가 이리저리 튄 조종석에서 그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은 머리에 총알 구멍이 난채 죽어있는 검은 안개 연대원이었다.

"으.... 이것도.. 하겐이."

레나는 대원의 시신을 끌어 옆 좌석으로 옮긴 후, 운전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계기판과 조종 핸들을 움직이며 여기서 멀지 않은 다이아몬드 전선으로 차량의 머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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