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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화 〉[거짓말] (93/131)



〈 93화 〉[거짓말]

"...그래서 피터는 괜찮은거지?"

공항 내부의 테이블에 앉아, 제스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에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녀의 뒤에는 피터가 들것에 눕혀져 검은 안개 연대원들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피터에겐 상처 하나도 보이지 않았으나 그는 정신을 되찾지 못하는 중이었기에, 검은 안개 연대의 의무병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예. 저희가 옥상에서 소위님을 쭉 지켜보았는데요, 밖에 있는 아즈레엘이란 사람이 아~주 잘 데리고 내려와주더군요. 피터 소위님은 지금 상처 하나 없는 상태입니다."


"아즈레엘?"


코리가 제스가 말한 자의 이름을 되새기며 의아한 표정을 띄웠다. 그러나 에리는 손을 들어올려 코리가 할말을 막아버렸다.


"됐어. 그런건 알 필요 없고, 그럼 왜 피터가 깨어나지 못하는거지? 다친 곳도 없고, 어디 아픈 곳도 없는데 말이야."

"...그건 이 약물 때문입니다."

"?"


제스가 허리춤에서 깨어진 주사기를 꺼내었다. 주사기의 내부에는 검은색의 액체가 살짝 묻어있었다.

"이게 뭔데."

"소위님이 쓰러진 이유죠. 소위님의 마인드 능력을 알고 있나요?"


"이능력.. 무효화잖아. 미래 예지랑.."


"뭐야? 너희들 나만 모르는 이야기 하지말라고. 코리,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거야?"

에리가 당황하며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보았다. 코리는 당황하고 있는 그녀에게 차분히 대화를 시작했다.


"...너한텐 말 안 해줬었나. 피터는 장교 훈련에 참가했던게 아니었어. 우리들에게만 몰래 말해줬지. 연방 이능력병단부에 끌려가 강제로 테스트들을 받았다고.."

"...나는 피터한테서 그런 이야기는 못들었는데."


에리가 말을 떨며 기절해 있는 피터를 슬쩍 쳐다보았다. 코리는 그런 그녀를 무시하며 제스를 향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강압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그럴수도 있겠지만, 제스. 나나 피터는 네게 이능력 무효화를 알려준 적이 없는  같은데? 넌 어떻게 알고 이 작전을 실행한거지?"

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제스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서 의심이 감돌았다.


"..."


"제스?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잖아."

"후-우."

제스가 허리를 쭈욱 펴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듯이 볼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제스! 말하라고! 넌 피터의 능력을 어떻게 알았냐니깐?! 넌 이번 일이 끝나면, 피터를 어떻게하려는 속셈이지? 녀석의 능력을 알아서 어쩌려는-"

"내가... 말해줬다."


"?!"


제스의 뒤에서 절뚝거리며 걸어나오는 사내를 보자, 코리가 놀란듯 입을 떡 벌렸다.

"세, 세일씨?"


"세일 준위라고 불러. 상부에서는 우리에게 '미래 예지' 능력자를 호위하라고 했지, '이능력 무효화' 능력자를 호위하란 말은 없었거든. 피터 소위와 자네같은 능력자들이 열심히 떠들어댈 때, 나는 내 슈트의 녹음기로 그 대화를 전부 녹음했어. 상부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거든."

"..."


"그리고 난 소위님의 호위팀에게 일단  사실을 알렸다. 우리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소위님의 능력을 전부 파악하고 있었지. 바로  녹음 *테이프로 말이야."
(*71화 참고.)

세일이 자신의 슈트 가슴팍을 툭툭 두들겼다. 그러자 슈트의 가슴팍이 치잉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며 조그만 검은색 테이프 하나를 뱉어냈다. 세일은 그 테이프를 제스와 코리가 있는 테이블 위로 툭 올려놓으며,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저기 쓰러져 있는 라미엘씨도 소위님의 능력을 알고 있다. 제스의 소대원들, 그리고 레나와 죽은 내 대원들까지도."

"...그래서 어쩔겁니까? 상부에 피터의 능력을 팔아넘길겁니까? 결국엔 피터를 데려갈거잖습니까?"

"..."


세일은 말이 없어졌다. 그는 아직도 몸의 상처들이 심한지 세일은 쿨럭거리는 헛기침만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가 마침내 다리를 비틀거리자, 레나가 그를 부축해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팔아넘기지는 않을 겁니다."


제스는 증거물인 테이프를 쥐고 그들의 눈앞에서 들어올렸다.

"뭐라고?  말을 어떻게 믿는데? 피터를, 우리에게서 떼어놓지 않겠다고?"

에리는 주먹을 꽈득 쥐며 제스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지금 제스를 상당히 경계하고 있었다.

"그래요. 물론 상부에 보고는 할 것이지만.. 적어도 소위님의 소대원들, 즉. 당신들은 그와 함께할 수 있을겁니다."


"...네 말을 어떻게 믿지? 제-스."

코리가 일부러 제스의 이름을 길게 늘어뜨려 불렀다. 제스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줄 뿐이었다.


"저희는 상부에 이렇게 보고할 겁니다. '피터 소위는 미래 예지 능력밖에 없었지만, 이번 전투로 인해 이능력 무효화를 깨우쳤다'고요."


"그래서?"

"바로 자신의 소대원들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죠. 이렇게 보고하면 연방 상부에서도 당신들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줄 겁니다. 당신들은 소위님의 능력이 발현되게 해준 필연적인 존재들로 생각되겠죠. 당신들과 있으면, 오히려 능력이 더 성장할  있을거라고 여길겁니다."

"..."

코리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게 입을 다물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고, 에리는 제스를 계속해서 노려보며 확답을 얻기 위해 물어보고 있었다.

"즉, 피터를 상부에 넘기면서 우리도 같이 넘기겠다는건가? 응? 그렇지?"

"...어찌보면 그렇겠죠. 하지만  편이 당신들에게  좋을 겁니다. 이런 위험한 전장보다, 훨씬 안전한 곳에서 생활할게 뻔한데요? 예를 들면 수천의 함대가 언제나 철통같이 보호하는 궤도 기지라든가."

제스는 휘황찬란한 거짓말로 그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거짓말이 그들에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상부에 피터에 관한 능력을 보고하게 된다면, 상부는 강력한 이능력 무효화 능력자를 납치해 연방의 무기로 굴릴 것이 분명했다.

피터와 그의 동료들이 영원히 헤어지든 말든, 상관없이.


제스, 그녀가  테이프를 들고 상부에 보고한다면 아마 피터와 찢어지기 싫은 저들은 연방에 반기를  수도 있다. 피터도 그들에게 동의할 것이 분명했고. 심지어는 연방군에서 탈주해, 소위와 어딘가로 도망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가 인류 보안부에 몸을 담근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나 그녀는 충분히 이런 모습들을 보아왔다.

그녀가 지금 최선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피터의 동료들이자 소대원들을 진정시키며, 거짓을 약속하는 것들 뿐이었다.

"제 말을 이해했습니까?"

제스가 에리와 코리의 눈치를 살피며, 테이프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래. 이해했어, 하지만, 우리가 네 말에 동의해줬으니 너도 우리에게 한 가지를 약속해줘야겠어."


에리가 팔짱을 끼며 그녀에게 말했다.

"...뭐죠?"


"이 테이프를 우리에게 맡겨. 증거는 이것뿐이겠지?"


"그래요."


"이 테이프는, 모든 전투가 끝나고 귀환할 때 네게 건네주도록 할게. 약속하지."

"에리, 멈춰. 정말 저 녀석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셈이냐? 저들이 거짓말을 할수도 있단 말이야. 그냥 그 테이프를 지금 박살내버리는게.."

"네 말이 맞아. 코리. 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 밖에 없잖아. 결국 여기서 피터를 제일 안전히 보호할 수 있는 자들은 저 사람들이야. 그리고  여자의 말이 전부 거짓이라고 해도... 피터 혼자서 우릴 떠나 안전한 곳으로 간다고 해도... 결국 피터는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거잖아?"


"...얌마."

"넌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피터가 죽을때까지 안전하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에리가 잠시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다음 말을 크게 망설이고 있었다.

"피터와 영원히 헤어져도 괜찮아."

"좋습니다. 저희 거래는 이렇게 성사하기로 하죠. 이번 작전이 완전히 종료되기 전까지, 그 테이프를 소지해 주세요. 단!"


제스가 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였다.


"매일 아침 테이프를 저희에게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테이프가 파손되거나 없어졌을 경우, 저희는 피터 소위님을 당신들에게서 빼앗게 되겠죠. 무슨 말인지 아주 잘 이해했을거라고 생각해요."

"좋아, 너와 이야기가 잘 되어서 좋네. 이제 가봐도 돼?"


"네, 공항 건물 내부는 정리되었고, 바깥도 이미 정리된 듯 하니 연대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시면 될 겁니다. 아직까진 별말 없는 것 같으니... 휴식을 취하시죠.
피터 소위님은 저희가 치료를 완료한 후 소대로 돌려보내드릴게요."

"그래. 고맙네. 코리, 가자."

"끄응.."

.
.
.
.


에리는 말없이 공항의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걸었다. 그녀의 옆에는 코리가 계속해서 떠들어대며, 그녀에게 질문 공세를 쏟아내고 있었다.


"에리, 진짜 미쳤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조건을 받아들인거냐? 거짓말이면 어떻게하게. 그리고  피터를 사랑하는 녀석 아니었어? 그런 녀석이 피터와 헤어지고 나면 버틸수 있을것같냐? 응? 에리! 말 좀 해보라고~!!"

"..."

에리는 코리의 질문 공세에도 묵묵히 답변하지 않고는 그저 옥상의 문을 열었다. 옥상은 아까전 데모니오 벨라토르들의 공습으로 시신을 치우는 병사들이 몇명 있었다.

"에리! 말좀 해보라니까?!"


코리는 옥상 벽에 기대어 한숨읋 쉬는 에리에게 끝까지 캐물었다.

"..."

"에리~~!!!"

"좀!! 그만해!"

"그, 그렇지만-"

"나도 알아. 나도 안다구! 제스란 여자의 말이 온통 거짓이란거! 죄없는 사람들을 끌고와서 군인으로 만든 연방이, 좋~은 능력을 가진 병사를 보면 바로 데려가려고 난리칠게 뻔하잖아?"

"알고 있었으면서!"

"그런데 피터같은 녀석을 데려가겠지, 우리를 왜 같이 데려가겠냐고? 우리가 마트 1+1 상품이야? 아니잖아!"


"그런 걸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거래를 하냐구!! 피터를 사랑하긴 한거냐?"

코리가 그의 목청을 높였다. 에리는 그에 목청에 맞춰  크게 외쳤다.


"나도 피터랑 함께 있고 싶다고! 알기나 해? 피터랑 영원히 있고 싶다고! 그래! 네가 알고 있듯이 피터를 보내고 싶지 않단 말야! 그만좀 하라고..!"

"...그럼. 그럼 왜 제스와 그렇게 거래한건데? 그거나 들어보자. 응?"

"..."


"야?"

"...피터가... 평생 안전히 살았으면 좋겠어. 다른 여자와 말 섞는건 정말 생각도 하기 싫지만!! 그래도... 그래도 있잖아? 피터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해."


"너... 피터가 너나 우리와 헤어지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냐..? 정말?"

"..."

"젠장. 나는 이제 몰라! 네가 결정한 일이니, 네가 피터와 말해보라고..!"


코리는 에리에게서 뒤돌아 옥상에서 내려갈 준비를 했다. 에리가 그런 그에게 어디가냐고 짧게 물었다.


"어디 가는데."

"...우리가 피터와 함께하든 못하든, 애들한텐 알려야할거 아냐. 넌 거기서 머리  식히다 내려와."


코리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에리는 그저 고개를  숙인채,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미래에 후회하지 않기를, 피터에게 안전한 미래만이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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