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공항 쟁탈전 4]
키아나는 자신의 죽어버린 아버지를 보며, 말없이 검을 거두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딸에 의해 죽음을 맞았으니, 편했음이 틀림없었다. 슬픔을 느끼는 반신의 뒤로, 벨라토르 중대원 서너명이 급히 달려왔다.
"*유나이트 리더님!"
(*벨라토르 중대의 소대장.)
"...무슨 일이야?"
키아나는 급히 얼굴에 여려있던 슬픔과 눈물을 지워내고, 그들에게 상황을 물었다. 벨라토르 하나가 그녀의 옆에 쓰러져있는 란젤트의 시신을 흘긋 보더니 다시 그녀에게 초점을 맞추어 지금 밖에서 포데스타가 등장하였다고 다급히 말했다.
"상황이 심각합니다. 야밤에 공항을 습격한 데모니오와 악마들이, 죽은 연방군의 시신을 제물로 바쳐 포데스타를 소환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전부 전멸하고 공항을 다시 빼앗길겁니다."
"젠장. 알았어. 가자!"
"예!"
벨라토르들이 먼저 공항 건물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들이 움직일때마다 공항 건물 내부에 쿵쿵 거리는 소음과 진동이 울려퍼졌다. 키아나는 그들을 따라 공항 밖으로 나가기 전, 차갑게 쓰러져 있는 아버지의 시신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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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켁, 켁... 레나! 레나!"
"네?! 왜요? 지금 바쁘다구요!"
레나는 공항 내부에 산재한 건물 파편들과 병사들의 시신을 피하며 건물 깊숙한 내부에 있는 패닉룸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벨라토르들이 대기하고 있는 이 패닉룸은 높은 고위직들을 위한 시설이었지만, 지금은 피터를 위한 곳이었다.
"잠깐! 잠깐 멈춰보라고..!"
피터는 자신의 목덜미를 붙잡고 끌고가는 레나의 손목을 퍽퍽 쳤다. 레나는 그를 벽에 기대워 세워둔 채, 주위를 불길하게 살피며 숨을 골랐다.
"레나, 내 소대는 어디있지? 그리고 검은 안개 녀석들은? 세일은... 안전하겠지?"
"...저도 몰라요. 하지만 그분들은 쉽게 쓰러질 사람들이 아니에요. 아마 소위님의 소대도 지금쯤이면 무장을 완료하고 놈들과 교전하고 있겠죠. 저희의 목표는 미래 예지 능력자인 소위님을 안전히, 아주 안전히 패닉룸까지 모셔다드리는거에요. 그곳으로 가면 벨라토르들이 당신을 보호해주겠죠!"
"아니야. 내말은 그게 아니었어.. 넌 못느낀거야?"
"네?"
"이 불길한 기운.. 좆같이도 불길한 기운을 못느꼈다고? 지금 공항 건물 밖에서 들려오는 교전음을 들어보면... 뭔가가 벌어지고 있는게 틀림 없어."
"..."
레나는 자신의 초인적인 감각을 이용해 공항 건물 밖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녀의 감각은 오직 청각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시각적인 효과도 더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거대한 활주로, 소리가 울리는 거대한 활주로에서 수백 수천명의 병사들이 총칼을 섞어가며 서로를 죽이고 있었다. 광기에 빠진 그들은 아군과 적을 구분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위에는 수십개의 두꺼운 촉수가 달린 거대한 악마의-
"으윽!"
청각을 통해 악마의 모습을 대강 알게된 그녀가 머리를 감싸쥐고 고통스러워했다. 머리속으로 잠시 놈의 정보가 들어왔을 뿐인데도, 초인의 감각은 바늘에 찔린듯한 고통과 순간적인 감각의 폭주를 유발했다. 밖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엄청나게 위험한 것은 맞는 것 같았다.
"레나?! 괜찮아?"
피터는 머리를 감싸쥐며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보며 깜짝 놀라 달려왔다. 피터는 비틀거리는 그녀를 부축해주며 무슨 일이냐고 캐물기 시작했다.
"정신차려. 레나, 왜 그래? 무슨 일 있는거야? 말해줘."
"...밖에."
"밖에?"
"밖에.. 무언가.. 너무나도 위험한 것이 있어요.. 이쪽으로 침입한 데모니오 놈들이 뭔짓을 한게 분명해요."
"데모니오라고? 갑자기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쏟아내지 말아달라고! 무슨 말이야?"
"...아까 공항 천장에서 내려온 놈들 기억나요? 벨라토르들과 똑같이 생겼지만, 어딘가 다른점이 있는 자들."
"그래."
"악마들에게 영혼을 팔고, 그들의 힘을 얻은 벨라토르들이 바로 데모니오예요. 저희는 놈들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으니 당장 그 자리에서 벗어난거구요."
"그, 그렇게 된 거였나."
피터가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벨라토르 같이 고결하고, 강력한 자들도 더럽고 불경한 유혹에 넘어가고 만단 말인가?
"그래서 지금 당장 패닉룸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피터씨!"
"?"
레나와 피터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제스가 자신의 소대원들과 피터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부상당하고 죽어가고 있는 대원들은 그들의 동료에게 업혀 있어, 마치 피난민의 신세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중에는 입에서 피를 토하고 있는 세일의 모습도 보였다.
"준위님!"
레나는 두 병사가 업고 있는 세일을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달려갔다. 그녀는 죽어가는 세일을 보며 주위에 있는 검은 안개 연대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거냐고 따져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나머지, 마이스랑 자드는 어디있어?!"
"그, 그게.."
"빨리 대답해!"
"그만해요! 레나!"
자신의 소대원 멱살을 붙잡고 흔들어대고 있는 초인을 보며, 제스가 그녀를 만류했다. 테니가 레나 옆으로 와 손목에 턱하고 손을 올려놓곤 고개를 저었다.
"제스! 준위님 상태는 왜 이렇고, 나머지는 다 어딨는거야?!"
레나는 울먹거리며 제스에게 말했다.
"...레나. 세일씨는 아직 살아있지만, 아직은 위험한 상태에요. 지금 계속해서 응급처치와 치료를 진행하고 있긴 하나... 패닉룸으로 들어가서 조금 더 높은 수준의 치료를 받아야할겁니다. 데모니오놈이 그를 쥐어짜듯 주물러댔어요."
"...망할!"
레나가 벽을 주먹으로 쾅 때렸다. 벽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며 주위가 쩌적쩌적 갈라졌다.
"나머지는...? 마이스랑 자드는 어디갔냐고 물었잖아."
"그들은,"
제스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들의 최후를 말해주기에는 레나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을 것 같아서였다. 머뭇거리는 제스를 보며, 테니가 잠시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마이스씨와 자드씨는 세일 준위님을 구하려다가 전사했습니다. 저희도 중화기 분대가 전멸한 것 때문에 피해가 막심해서... 도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
"레나, 일단은 패닉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일단 거기서 버텨야..."
"...알았어. 우리의 임무는 피터 소위를 호위하고, 이번 전투에서 살려보내는 것이니까."
"그렇습니다. 패닉룸은 여기서 한층 더 내려가면 나올겁니다. 어서 가자구요. 이 뒤는... 연방군과 벨라토르에게 맡기는게 현명한 판단입니다."
제스가 자신의 장비를 챙기며 소대원들에게 움직이라는 제스쳐를 보냈다. 소대원들은 다시 세일을 업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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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건물 밖은 벌써 연방 보병들의 참혹한 시신들, 사방이 파괴되어 치솟는 불길들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하하하하-! 구더기 같은 놈들을 불태워라! 전부 죽여버려!"
지휘관으로 보이는 데모니오가 비틀거리는 병사 한명을 짓밟아 복부를 으깨버리고는, 힘없이 검을 휘두르는 그를 향해 다른쪽 발을 가져다 댔다. 그 발에 연결된 제트풋이 후웅하는 소리와 가동되더니 수천도의 불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끄아아아아-"
죽어가던 병사는 제트풋의 불길에 불타며, 비명을 질러댔다. 죽어가는 자의 비참한 울부짖음이 데모니오들과 악마들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아. 기분 좋구나. 이게.. 이게 바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었어."
"케세우스님."
어느 나이트 크롤러 하나가 데모니오 앞으로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음? 무슨 일이지. 우리의 진실된 동맹자야."
"판님을 강림시킬 준비가 거의 다 되었습니다. 깨끗한 벨라토르의 육신만 있다면..."
"오, 그게 사실이야? 판님을 강림시킬 준비가 되었다고?"
"네-"
"좋아. 신선한 우리 옛 형제들의 육신이라면, 저 공항 내부에 잔뜩 있겠지. 어차피 그들은 우리를 막기 위해 서서히 기어나올 것이다. 그때.. 너희들을 위한 제물을 준비해 주지."
"감사합니다. 케세우스님."
나이트 크롤러가 뒤로 물러나며,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케세우스는 그런 악마의 모습을 즐겁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다가 자신의 뒤틀린 형제자매들을 바라보고 외쳤다.
"형제 자매들이여-! 붉은 지옥의 영광을 저들에게 전해줄 시간이 왔다. 너희들의 옛 형제자매들은 모두 새로운 자유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거부하는 자는 전부 죽이고, 머리를 베어라! 그렇지 않은 자는, 새로운 자유에 눈을 뜨게 해주거라."
"크아아-!"
"와아--!"
수십명의 데모니오 벨라토르들이 짐승같은 함성을 내지르며 자신들의 무기를 하늘 높이 들고 흔들어댔다. 케세우스는 찔린자의 생명력을 조금씩 탐하는 검을 자신의 검집에서 뽑아들고는, 공항 건물을 가리키며 외쳤다.
"붉은 지옥에게 영광을! 사악한 자들에게 영광을-!!!"
그의 함성 뒤로, 뒤틀리고 추악한 자들의 함성과 웃음이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