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0화 〉[공항 쟁탈전 1] (80/131)



〈 80화 〉[공항 쟁탈전 1]

피터가 수동 개폐장치 손잡이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피터 옆에서 총구를 앞으로 겨누고 있던 소대원 두명이 번개같이 수송선 밖으로 나가 주위를 살핀 후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피터는 그들에게 고개를 한번 끄덕거려준 뒤 손을 앞쪽으로 흔들었다. 그의 지시에 맞춰, 60명 정도 되는 소대원들이 신속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모든 소대원이 내리자, 피터와 그를 호위하는 4명의 MTMA 분대원들이 주위를 살피며 걸음을 옮겼다. 그중 레나는 잠시 조종실의 열린 문틈 사이로 죽어있는 조종병을 쳐다보고,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포탄과 기관포들에게 두들겨져 걸레짝이된 팔콘 수송선의 뒷편으로 모인 병사들은 불길한 연기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공항의 활주로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함선도 착륙할 수 있을만큼 거대한 활주로 곳곳에는 착륙한 수십대의 팔콘 수송선에서 보병들이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예정되어있던 30만 보병의 숫자는 아니었다. 아마도 적의 공격으로 인해 30만명이 갈기갈기 찢어져 행성 곳곳으로 착륙한 것 같았다.


"좋아, 친구들! 저 공항 건물 보이지? 우리 첫번째 목표가 바로 저거인데..."


피터가 자신의 소대원들 앞에서 간단히 작전을 설명하려고 할 때, 전장에 있는 모든 연방 보병들의 헬멧 통신망이 가동되었다. 통신망은 잠시 치직 거리는 소리를 낸 후 이번 작전 총 지휘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여기는 작전 사령관 메릭 토가던이다. 예정된 기갑 지원은 현재 궤도 기지에서 일어나는 전투와, 공항 주위의 대공망 때문에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 첫번째 목표는 바로 자네들 앞에 놓인 메헤테크 공항 건물이다. 공항 건물을 탈환한다면 기갑 지원이 가능해질 것이다. 또한 메헤테크 공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착륙한 연대는 다른 연대에게 합류해, 병력 손실을 최소화하라. 이상!"

통신이 두절되었다. 보병들은 지시에 반응하며, 제각기 떠들어댔다.

"지금 들었어?"

"씨팔, 뭐 괜찮은 엄폐물도 없이 전진하라고? 저렇게 기관포를 쏴대는데?!"

"예정된 기갑 지원은  안 오는거야?!"


"작전 사령관이라는 번지르르한 이름치고는, 어디 안전한 곳에서 좆이나 까잡수고 계시겠지."


"피터, 들었어?"

"들었어. 코리. 결국 공항 건물을 향해 자살돌격을 하라는 소리잖아."


"잘 알고 있네! 너라면 어떻게 이 상황을 타파할건데?"

"....그거야-"

"여긴 로스토크 제 1 보병 연대장, 에스카 카엔이다!"

피터의 말을 끊으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퍼졌다.


"뭐지?"

"제 1 연대라고? 우리는  2 소속이잖아.."


수군거리는 병사들을 제치고, 무전은 쉼없이 흘러나왔다.


"공항 건물을 타파하기 위해선 희생이 불가피 할 것 같다! 우리 1연대와 4연대가 공항의 반대쪽을 타격할테니, 우리쪽으로 시선이 끌린 순간 나머지 연대는 공항 건물을 신속히 접수하라!"


"희, 희생하겠다고?"

피터는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을 의심했다. 희생이라니. 생판 본적도 없는 다른 연방군과, 목표 달성을 위해서 목숨을 걸겠다는 것인가?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피터를 뒤로하고 보병들의 통신망에서  다른 목소리가 울렸다.

"여기는 로스토크 제 2 보병 연대장, 이스칸달이다. 두 연대의 뜻은 알았다. 누군가는 짊어져야하는 의무를 짊어져주어서 고맙다. 이번 작전은 성공할 것이다. 제 2연대는 그쪽의 움직임에 맞춰 작전을 진행하겠다."


"여기는 로스토크  3 보병 연대장, 라케니스다. 이쪽도 곧바로 진입할 준비를 완료하겠다. 고맙다. 1 연대."

"알았다!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30초 후 반대쪽 건물에 공격을 퍼부을 것이다! 나머지 병사들의 무운을 빌겠다!"


에스카의 통신이 끊어졌다. 곧이어 활주로 앞에 서있는 거대한 공항 건물 뒤편에서, 갖가지 총격음을 뚫는 병사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연방군 두개의 연대가 목숨을  의무를 짊어지는 순간이었다.

그에 맞춰, 대기중이던 여러개의 연대 지휘관들은 공항 건물을 향해 진격 명령을 내렸다. 이윽고 활주로의 수송선 잔해들 뒤에서 대기하던 2만명의 병사들이 공항 건물을 향해 함성을 내지르며 돌격했다. 그리고 그것은 피터의 소대도 마찬가지였다.


"돌격! 돌격! 공항 건물 내부로 침투-"

공항 건물 옥상에서 일제히 포탄이 뿜어져 나왔다. 포탄들은 이미 걸레짝이 된 수십 수백의 수송선들을 더욱 걸레짝으로 만들며 그 뒤에 엄폐하던 병사들의 사지를 공중으로 흩뿌렸다. 제 2 연대장 이스칸달의 최후도 그의 병사들과 똑같았다.


"머뭇거리지마! 머뭇거리면 모두 활주로에서 죽는다! 돌격해!"


일반적인 전장이라면 미친 소리였겠지만, 연방의 보병 숫자는 파도 속 물방울과 견줄만한 숫자였다. 간단히 말하면, 적이 가진 총알보다 연방 보병들의 숫자가 더 많았기에 돌격 전술을 내릴  있는 것이었다.


"으아악!"


"크아-!"

"억!"

공항 건물에서 쏘아진 포탄과 탄환들이 돌격하는 연방 보병들의 몸을 찢고, 터트렸다. 무서운 기세로 날아오는 적의 공격을 보며, 세일은 자신의 분대원들에게 소리쳤다.


"자드! 레나! 도탄 방패 전개해! 마이스는 소위님을 방패 안으로 모셔라!"

"네!"


레나와 자드가 가슴팍에 수납된 철판을 하나 꺼내들어 자신들의 왼팔에 장착했다. 철판은 잠깐 반짝이며 반투명으로 변하더니, 펼쳐지면서 2m 크기의 방패로 변했다.


"피터 소위님! 이 뒤로 숨으십시오!"


"뭐?! 나만 숨을 수 없-"

"안됩니다! 당신은 중요한 인물임과 동시에, 이 행성에 있는 악마놈을 만나는 미래를 봤잖습니까! 당신이 본 미래를 어기려고요?"


"...젠장."


레나와 자드가 펼친 도탄 방패 뒤로, 피터가 몸을 옮겼다. 적들의 기관포가 도탄 방패를 무자비하게 두들겼지만, 기관포들은 방패를 뚫지 못하거나 도탄되어 탄환의 궤도가 다른 곳으로 뒤바뀌었다.

2만명의 연방 보병들은 시체로 활주로를 가득 채우며 끈질기게 전진하고 있었다. 비록 그들이 한 걸음 한 걸음 걸을때마다 수백명이 죽어나가고 있었지만, 연방 보병들이 죽어가며 쏜 탄환에 공항을 점거중인 적들도 적잖이 타격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2만명이나 되는 병사들을 갈아가면서도 공항 건물에 진입한 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적의 끊임없는 공격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너무나 넓은 활주로의 길이였다. 무시하지 못할 강도의 체력 훈련을 받은 이들도 고작 장비를 지고 달려가는 것만으로 지치는 활주로의 넓이는, 정말 어마무시하게 거대했다.


"이, 이대로 가다간 전부 죽을거라고...!"

활주로 주위에 놓여진 함선이나 수송선들의 잔해 뒤로 숨은 병사들은 점점 희망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숫자가 많더라도 적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내면서 공항 건물로 접근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려면 2만명은 커녕, 20만명은 되야했다.

그러나 적의 습격으로 수백개의 연대가 갈기갈기 찢어진 지금은, 불가능한 임무였다. 돌격 전차나 기갑병단의 도움, 적어도 H-100 수송 차량들만 있었어도 이렇게 고생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우린 망했다! 망했다고... 씨발."


팔런이 수송선 잔해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겐과 코리가 그를 진정시키며, 피터를 쳐다보았다. 피터도 그들과 잠시 눈을 마주친 후 전장의 상황을 살폈다. 자신있게 돌격한  치고는, 결국엔 다들 엄폐물 뒤에 숨어서 적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빌어먹을. 공항을 점거해야 전차나 수송차량 같은 기갑병단의 도움을 받을  있는데... 기갑병단의 도움이 없으면 접근 자체가 안된단 말이다..!)"


피터는 속으로 지도부의 무능함을 씹었다. 이럴거면 애초에 궤도 폭격으로 이 주위를 싸그리 쓸어버린 후 자신 같은 보병들을 투입시키면 되지 않는가?


"어, 저거 뭐지?"


코리가 하늘에서 유성처럼 떨어지는 무언가를 가리켰다.


"야, 지금 상황에 장난이 나오냐? 다 죽게 생겼는데...어?"

칼리브레가 그의 머리통을 후려치다가 하늘을 보고 말문을 잃었다. 하늘에서는 유성처럼 푸른 빛으로 번쩍이는 수십개의 무언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저게 뭐야! 서, 설마 궤도 폭격인가?!"


"아니야, 마리! 저것 좀 확인해!"


피터는 마리를 불러 지정 사수 소총의 조준경으로 떨어지는 유성들의 정체를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마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준경으로 유성들을 살피더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다행이에요. 지원군 같아요. 연방군의 문양이 그려져있다구요."

"지원군이라고?"


"네."

상황을 설명해주는 마리의 얼굴은 어딘가 언짢아 보였으나, 피터는 아무래도 좋았다. 저 유성들의 정체가 연방의 지원군이라면, 이 상황을 뒤바꿀 기회일수도 있었으니까.


드넓은 활주로 위에서 희망을 잃고 죽음만을 기다리던 병사들도 떨어지는 유성들을 보며 제각기 수군거렸다. 곧이어 유성의 푸른 불꽃이 사그라지며 진정한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크기가 10m가 되는 거대한 낙하기였다.


"나, 낙하기다! 낙하기야!"

"우리 위에도 있어! 위를 봐!"


어느 병사가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들뜬 듯이 소리쳤다. 그의 말을 들은 병사들이 하늘을 올려다보자, 푸른 불꽃이 막 사그라드는 낙하기 수십대가 웅장하게 구름을 뚫고 내려오고 있었다.

[삐리-익]

세일의 헬멧에 달린 무전기가 울렸다. 세일은 헬멧에 손을 가져가며 들어온 무전과 연결했다.


"여기는 제스! 저희 소대와 라미엘씨가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피터 소위는 죽지 않았겠죠?"

"제스!"

"지금 가고 있어요! 조금만 버티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