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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화 〉[고르페우스 구역으로] (78/131)



〈 78화 〉[고르페우스 구역으로]

프로세르핀의 머리를 베어버린 아즈레엘이 낫을 거두었다. 그의 낫에서는 불경한 피가 뚝뚝 묻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낫을 한번 돌려 피를 털어낸 후, 칠흑같은 안개로 변하고 있는 자신의 가슴팍 보호구에 달린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여기는 아즈레엘. 포데스타를 처리했다. 착륙장을 다시 가동시켜도 괜찮을 것이다. 대령."


"그게 사실입니까? '안개'여. 지옥 군세의 대악마를 쓰러트렸다는게!?"

"그렇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드는군. 궤도 기지 내부의 경계 태세를 최대한으로 올려라. 나는 이년의 시신을 가져가 조금 더 조사해봐야겠으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무전기를 내려놓은 쿠셴은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물론 인류 보안부 최고의 전투력을 가진거나 마찬가지인 자들이 질리가 없었음을 그도 내심 알고 있었으나, 기쁜건 매한가지였다.


"에코."


쿠셴이 사령관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에코를 불렀다. 에코의 옆에는 그의 분대원들이 무기를 다듬고 있었다.

"예. 대령님."


"제 3 착륙장의 인원들 다시 투입시켜도 괜찮아요. 다시 작동시키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대령님. 그런데, 아까 검사하기 위해 움직였던 보안부 녀석들에게서 정보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뭐지요?"

"정신 오염도 감지기에 걸린 자가 한명도 없답니다. 아직 거주 구역을 전부 검사하지는 못했지만,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배신자 색출이 되지 않고 있다고.."

"흐음."

쿠셴은 에코의 말에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걱정이 되는지 한쪽 다리까지 심하게 떨어대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대령님."

"검사는 계속해서 진행시키고, 검사가 끝났다면 언제나 출동을 준비해두라고 전해줘요.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곧바로 피터 소위를 보호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수호."

에코가 자신의 분대원들과 사령관실 밖으로 나갔다. 쿠셴은 의자를 회전시켜 창가쪽으로 돌렸고, 자리에서 일어나 초조한 듯이 다리를 떨었다.

"분명히.. 어디선가 그를 노리고 있을거야. 악마들은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다."

그의 걱정을 조심스레 위로하듯, 아주 멀리 있는 인공위성의 미약한 불빛이 그를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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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세르핀의 육신이 파괴된 지 이틀이 흘렀다. 드디어 피터와 그가 속한 연대가 고르페우스 구역으로 투입될 날이 온 것이다.

지난 이틀 간은 궤도 기지의 모든 연방군 보병들이 간단한 훈련후 긴 휴식을 가졌다. 그들이 투입될 전장은 너무나 공포스러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었기에, 조그만 사기 진작이라도 되라고 연방이 보병들에게 내린 휴식은 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휴식 끝에는 다시 연방군의 삶과 의무가 되돌아오는 법. 피터를 비롯 3만명의 보병들은 메탄 007 궤도 기지의 각각의 착륙장에 팔콘V 수송선에서 출격 명령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비교적 후방에서 출발하는 메탄 007 기지의 보병들은, 자신들 앞에서 먼저 우주를 항해하고 있는 보병들보다는 훨씬 안전한 자리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후-후-."

고작 일주일 정도 쉬었다지만, 심호흡을 하며 심란한 마음을 안정시키는 병사들이 많았다. 닥쳐올 전투의 공포인지, 손을 부들부들 떠는 자도 있었다.


피터는 팔콘 수송선 좌석에 앉아, 자신의 소대원들을 쓰윽 훑어보았다. 자신과 같이 1년 넘게 함께한 동기들도 있었고, 피터를 지키기 위해 딱 붙어있는 세일과 그의 분대원들, 새로 편입된 신삥이들도 있었다. 피터는 그런 그들을 보며 이번에는 얼마나 살아남을지, 이들 모두가 전부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뭘 그렇게 훑어봐?"

"음?"

에리의 질문에 피터가 반응했다. 그녀는 피터를 보며 뭘 그리 보냐고 다시 물었다.

"뭘 그리 보는거냐구."


"으응. 그냥. 다들 살아남아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뭐 이런거?"

"상냥한 상상이네에.. 내가 그래서 너를 좋아한다니까."

"갑자기?"

에리가 히히 웃으며 피터의 어깨를 툭 쳤다.

"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많아. 지금 네 앞에도 잔뜩 있잖아? 안 그래?"


"?"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피터에게 에리가 손가락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피터가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자, 그의 동기들이 보였다.


먼저 피터와 눈이 마주친 코리는 아무 말 없이 씨익 웃어보이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올렸고, 칼리브레는 그의 기계 의수로 OK 사인을 만들어보였다. 하겐은 팔짱을 낀 채 그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팔런은 그의 소총을 매만지다가 피터에게 피식 웃어보였다.

"어때,  너를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들이잖아?"

"그..렇지."

"그리고 저 여잔 너를 너무 쳐다보고 있고."

에리의 목소리가 약간 차가워졌다. 피터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에는 마리가 지정사수 소총을 안고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마리?"


피터와 눈이 마주친 마리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고 땅바닥으로 시선을 내렸다. 피터와 같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던 에리의 이맛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으-. 스토커 같은 년. 널 엄청 노리고 있을걸? 뒤틀릴 정도로 말야."


"나를 노리는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뒤틀린 사랑도 그렇고."

"...아무튼."

"아무튼이라니."

"아무튼 넌 다른 사람한테 눈돌리면 죽어."

에리가 볼을 붉히며 말했다.


"쟤네들 사랑 놀이에 완-전 빠졌네. 우우~."


피터와 에리의 모습을  봐오던 코리가 엄지를 아래로 내리며 야유했다.

"냅둬라. 잘 어울리는데, 뭐."


관심 없는 표정으로 자신의 기계 의수를 끼릭대며 살피던 칼리브레가 신경쓰지말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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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탄 007 궤도 기지의 착륙장들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거대한 천장의 게이트들이 서서히 열리며, 어두운 우주를 드러냈다. 저멀리 있는 다른 궤도 기지들도 아마 지금쯤이면 출격 준비를 마쳤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는 제 1 착륙장 관제실. 출격 허가하겠다."


"제 2 착륙장도 마찬가지다. 출격을 허가한다."

이후로도 10곳이 넘는 관제실에서 출격 허가 명령이 떨어졌다. 메탄 007 우주 궤도 기지의 착륙장에서, 수백대의 팔콘 수송선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림잡아 500대는 될만한 수송선들이 꽁무니에 플라즈마 화염을 내뿜으며 우주를 가로지르는 모습은 그 어떤 연방군일지라도 물량의 위대함을 느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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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로 가득한 들판. 새빨간 석양이 대기 전체를 물들인 것처럼 하늘은 육감적인 붉은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끔 지옥에서 기어나온 날개달린 것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빼면, 아름답다고 여길만한 풍경이었다.


"크윽..으으윽.."

시체와 내장으로 가득한 들판에, 어느 벨라토르가 자신의 검으로 몸을 지탱하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의 복부에는 대포에 맞은 듯이 커다란 구멍이 뚫려, 인위적으로 개량된 내장과 뼈가 드러났다. 인류의 창인 벨라토르 군단원은, 점점 죽어가고 있음에도 자신의 육신을 일으켜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고통을 참으며 주먹을 쥔 그는 자신이 쓰고 있던 헬멧을 벗어 땅으로 내던졌다.


"아직도 일어서는 것이냐."

그런 벨라토르 군단원을 한심함 가득한 눈길로 내려다보는 아드라말레크가  걸음,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아드라발레크가 걸을 때마다 지천에 널린 뼈와 살점이 그의 발에 짓이겨지며 듣기 싫은 소음을 냈다.


"이미 네 형제 자매들은... 대부분 죽음을 맞이하거나 우리쪽으로 돌아섰다. 고작 연방의 인류를 위해 희생하는 것보다, 모든걸 불태우고 발아래 두는게 더 값지다는 걸 깨달았으니 말이야."

"..."


"지금이라도 굴복하면 살려주지. 조금 추해지겠지만, 죽는 것보다는 나을텐데?"

"..."


"굴복하겠는가? 많이 고민되나 보군. 흐하하하하-."

아드라말레크는 그를 비웃었다. 그가 어떤 결과를 선택하든간에 아드라말레크는 잃는게 없으리라. 죽음과, 의무를 버린 타락. 하지만 벨라토르는 그런 그의 비웃음과 회유에도 전혀 굽혀지지 않았다.

"나는.. 인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나는, 그들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으리라..."


"크르르.."

벨라토르의 진의를 알아챈 아드라말레크가 낮게 그르렁거렸다.

"나는 '진실된 이들' 대대의 3 중대장! 메이어스 아콘이다! 또한 나는, 인류의 창으로 죽는 것을 택하겠다. 이 뒤틀린 자여!"

상처입은 반신이 몸을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빛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인 그는 자신이 강하게 쥐고 있는 은색검을 휘두르며 아드라말레크에게 접근했다.


"오, 아니다. 아니란다."

아드라말레크는 도끼를 높이 쳐들어 도끼 손잡이 끝에 달린 창을 앞으로 내질렀다. 날카로운 창이 메이어스의 가슴팍을 갈라버리며 반신의 근육 가득한 육신에 파고들었다. 창날은 반신의 살점과 피를 천천히 음미했다. 창은 반신의 생명력을 집어삼키며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커헉."


메이어스가 핏덩이를 토했다. 그의 시야는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마침내 아드라말레크가 그의 가슴팍에 박힌 창을 뽑아내고, 도끼로 목을 내려쳐 잘라버렸을 때, 메이어스는 그가 지고 있는 의무를 다하지는 못했지만, 자유로워 질 수는 있었다.


"한심한."


아드라말레크가 죽은 메이어스의 시신을 걷어차 넘어트렸다. 그의 주위에 있던 조그만 악마들이 메이어스의 시체에 몰려들며 불경한 문양과 저주를 내리기 시작했다.


"아드라말레크시여."

"으음?"


아드라말레크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돌았다. 그곳에는 '한때' 벨라토르였던 자들이 서 있었다. 등에는 흉측한 날개가 돋아나고, 인간의 살과 뼈를 갈아버리는 전기톱을 들고있는 자들. 그들에게는 이미 벨라토르였을 적 고귀하고 고결한 정신과 생각은 없었다. 학살, 파괴, 더욱 자극적인 감정들만이 남아 있는 살육 기계들일 뿐.


"이 행성에 마지막으로 남은 연방군들이 참호를 꾸리고 버티고 있소. 어찌할 생각이지?"

"...내 대답은 너희들이 더  알 것인데.  내게 묻는 것이지."

"빨리 결정해야 할거요. 놈들의 지원 병력이  들이닥쳐, 이 행성에 진을 치게 될테니까. 그중에는 당신이 그리 원하는 자도 있소. 물론 그를 지키기 위한 벨라토르  명이 있기도 하지..."

"흥."

아드라말레크가 콧방귀를 뀌었다. 가소롭다는 눈치였다.


"전사들을 집결시켜라. 우리가 놈들의 마지막 희망을 빼앗고, 남은 놈들을 모조리 짓밟아 버릴테니. 그렇지 않아도 이미 놈들의 내부는 조금씩 썩어가고 있으니까."

아드라말레크의 말에 악마화한, 즉. 데모니오 벨라토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부에서 썩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것은 곧 알게될 일임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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