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7화 〉[악마의 머리를 베어라] (77/131)



〈 77화 〉[악마의 머리를 베어라]

"빨리 빨리 움직여!"

에코와 그의 소대원들이 착륙장에 있는 병사들을 게이트로 이동시키며 소리쳤다. 착륙장에서 정비를 하고 있던 몇몇 공병들은 검은 안개가 갑자기 끼기 시작했다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에코는 대령의 명령이라며 그들의 의견을 묵살시키곤 착륙장 밖으로 서둘러 내보냈다.


"쉬온! 다 됐지?"

에코는 관제실을 정리하고 나온 자신의 소대원에게 물었다.


"예! 관제실에 있는 녀석들까지 전부 이동시키고, 5분 후 게이트들도 전부 폐쇄될겁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그럼 우리도 이곳에서 탈출한다. 다들 게이트를 통해 이동해!"

에코의 지시를 들은 소대원들은 곧바로 게이트를 통해 거주 구역으로 이동했다. 에코는 자신의 대원들 뒤를 딱 붙어 따라가며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거대한 착륙장 내부는 환한 불빛으로 가득했지만, 거기에 어울리지 않게 검은 안개가 일렁이고 있었다. 주위에는 거미줄이 햇빛에 반짝이듯, 무언가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이 게이트가 닫히기  에코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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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제 3 착륙장 내부에는 개미 새끼 한마리의 움직임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거대하고 넓은 이 공간에는 천장에 달린 전등들이 환한 불빛을 내리쬐어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거대하고 밝은 착륙장에 걸맞지 않게, 검은색의 안개들이 착륙장 가운데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새카만 안개들은 주위에 잠시 어두운 기운을 풍기더니 뭉쳤고,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검은 안개들은 곧 인간의 모습으로 뒤바뀌어갔고, 마지막 안개들이 어두운 색깔의 망토를 만들어냈을 즈음에는 커다란 낫을 들고 후드를 뒤집어쓴 사내만이 남아있었다. 그는 쿠셴에게서, '안개'라고 불린 자였다.


그는 착륙장 주위를 살피는 듯  걸음 한 걸음 짧은 보폭으로 걸었다. 그가 걸을 때마다 검은 안개들이 그에게서 조금씩 뿜어져 나왔다.


"흐으으음.."

검은색 안개로 이루어진 그는 천천히, 또 천천히 착륙장의 내부를 걸었다. 착륙장 천장에 가득한 전등들은 착륙장 전체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지만, 팔콘 수송선들이 모여 있는 곳은 특히나 반짝이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조용히 서있는 어느 팔콘 수송선 앞에서 걸음을 멈췄을 때, 그는 자신의 뒤에서 무언가가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


커다란 낫을  그는 망토를 느릿하게 휘날리며 뒤돌았다. 망토가 살짝 들리며 그의 어깨에 박혀 있는 인류 보안부의 문양이 드러났다.


뒤돌은 그의 앞에는 연방군의 복장을  어느 여성이 똑바로 서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어린아이의 얼굴과 똑같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 앞에 서있는 자가 누군지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인류의 해악, 혼란을 몰고 오는 자들, 자신이 베어야할 자들.


...악마.


"네 정체를 드러내거라."


그는 자신 앞에 서있는 여성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 여자는 그런 그의 눈길을 따듯한 눈으로 맞받아치며 자신의 재킷을 살짝 벗어 어깨를 드러냈다. 백옥 같이 뽀얀 피부. 어느 남자라도 사랑하고, 욕정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그런 매혹적인 피부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모욕이다."


낫을 쥔 손에 힘을 준 그는 색욕과 흥분보다는 분노를 느꼈다. 그의 정신과 육신은 이미 속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오랜 세월동안 저런 자들과 맞서기 위해 강철같은 정신을 단련했으며, 육신을 더욱 가꾸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향해 노골적으로 색욕을 드러내는 것은, 그에게 모욕을 주는 것과 다름 없었다.

그녀가 픽 웃었다. 그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일까? 그녀는 다시 옷을 올려 드러났던 어깨를 감추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에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천장에 달려 있는 전등들이 미친듯이 번쩍였다.

그녀의 접근에 그도 준비했다. 낫을 한번 크게 휘둘러 그녀를 향한 뒤, 한손으로는 낫의 중간 부분을, 다른 손으로는 칼날과 가까운 부분을 쥐었다. 그는 다가오는 그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프로세르핀을 노려보았다.


"악마야. 너의 뒤틀린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는 되었나?"

"호호."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프로세르핀은 나체의 여성이었다. 외설적인 부분만이 알 수 없는 촉수와 벌레들로 가리어진, 악마. 그녀는 낫을 쥔 남자의 시각을 더럽히고 있었다.

"이름은?"

"..."

프로세르핀은 뾰족한 손톱이 드리워진 손으로 남자를 가리켰다. 하지만 그는 프로세르핀의 질문에도 낫을 겨눈  꿈쩍도 하지 않았다. 프로세르핀은 씨익 웃으며 이를 드러내고는, 무언가를 떠올리는 시늉을 하며 손톱으로 자신의 볼을 슥슥 긁었다.


"아아.. 말하지 않아도 돼. 나는 이미 알고 있기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남자를 내려다본 프로세르핀이 두개로 갈라진 길다란 혀를 낼름거리며 웃었다.

"나는 너의 끝이자, 너의 해골을 거두어갈 자란다. 아즈레엘이여-"

그 순간 그녀의 살랑거리는 혀가 반으로 잘라 베어졌다. 그녀의 혀 단면에서는 새카만 피가 줄줄 흘렀고, 잘려나간 그녀의 혀는 땅바닥에 떨어지며 꿈틀대다 추욱 늘어졌다.

"...!"


프로세르핀은 잘려나간 자신의 혀를 보고 굳었다. 그녀의 뒤편에서는 아즈레엘이 그녀를 등진채 낫에 묻은 검은 피를 털어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쳐다보는 프로세르핀의 시선을 느끼고 한마디를 뱉었다.

"내 이름을 부르지 말거라."


"이.."


프로세르핀은 고작 인간에게 혀가 잘린 치욕과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허나, 그녀의 몸을 가득 채우는 고통에서부터 오는 쾌락과 흥분은 그녀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프로세르핀은 자신의 날카로운 손톱이 가득한 손을 앞으로 향하며 아즈레엘에게 휘둘렀다.

[채-앵!]


단단하고 날카로운 손톱과 흑빛을 내는 낫이 공중에서 마찰하며 금속음을 울렸다. 프로세르핀은 낫에 가로막힌 손에 힘을 주며 낫이 움직일  없게 붙잡았다. 아즈레엘은 두 손으로 낫의 손잡이를 붙잡고는 그대로 짓눌렀다. 조금만 있으면 낫의 칼날이 프로세르핀의 쇄골을 반으로 찢어버릴 것이었다.

[휘익-]

손톱의 날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프로세르핀의 다른 손이 움직였다. 그 손은 순간적으로 아광속의 속도가 되어, 아즈레엘의 복부를 가로로 그어버렸다. 매우 빠른 속도로 베어버린지라, 그녀는 손톱이 무언가에 막히는 일없이 깔끔히 베어버렸다고 기뻐했다.

아즈레엘은 배가 갈라진 고통의 영향인지,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프로세르핀은 그런 그를 비웃으며 손톱을 털어냈다.


"오, 매우 아프겠구나. 정말 아프겠어. 너의 고통이 내 거름이 되어주겠구나. 기쁘-"


낫이 움직였다. 낫의 칼날은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프로세르핀의 손톱과 손을 손쉽게 베어버리고는 그녀의 쇄골에 꽂혔다. 악마의 저주받은 피부는 자신에게 깊숙이 들어오고 있는 칼날에 저항했으나, 낫은 그녀의 쇄골부터 유방이 있는 가슴까지 대각선으로 깔끔히 갈라버리었다.


"게에엑-!"

그녀는 아리따운 모습의 여성에게서 나올 수 없는 기이한 비명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그에 맞춰 아즈레엘도 낫을 돌리며 뒤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마, 말도 안돼는.. 분명히 배를 그어버렸는데도!"


프로세르핀은 아즈레엘의 피와 살점이 붙어 있을 자신의 손톱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톱에는 방금 막 흘러나와 묻어있는 그녀의 피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눈동자를 굴려 아즈레엘의 복부로 시선을 돌렸다. 아즈레엘의 복부는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다. 그의 흑색 보호복에도 상처 따위는 없었다.

"많이 놀랐나보군."

아즈레엘은 자신의 복부를 살짝 쓰다듬었다. 복부를 매만지던 손이 그의 복부로 들어갔다 나오며 주위에는 안개를 펄럭였다. 아즈레엘은 자신의 몸을 안개처럼 바꾸는 능력으로, 프로세르핀의 공격을 쉽게 대처한 것이었다. 연방 최고의 인체 개조 기술을 거친 자들이라면, 응당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네년이 말했듯, 나는 아즈레엘 키세스다. 나는 지금  자리에서, 네년의 목을 베어 인류가 보다 더 나은 길로 걸어가게 만들 것이다."

"웃기는 소리!"

프로세르핀이 분노하며 괴성을 질렀다. 그녀는 분노에 몸을 맡기며 네발로 움직였다. 그녀의 아리따웠던 입에서는 면도날 같이 날카로운 이빨들이 자라나며 허옇게 빛났다.
아름다운 머리칼들은 아가리를 가진 촉수가 되어 그녀의 주위에서 침을 흘렸다.


프로세르핀은 낫을 붕붕 돌리며 공격에 대응하는 아즈레엘의 멱살을 붙잡았다. 그의 낫 손잡이가 아주 살짝 구부러지며 기익하는 소리가 울렸다.


"너희들은 틀렸다!"


그녀는 지성체의 모든 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악마의 시선으로, 아즈레엘의 안개화를 꿰뚫었다. 안개화를 쓸때마다 그의 심장이 커다랗게 두근거리며 움직이는 모습. 심장을 순식간에 무력화 한다면 아즈레엘은 변화하지 못하리라.

"이게 바로 진실이었도다."


프로세르핀이 그의 심장을 먼저 공격했다. 아즈레엘은 초인적인 반응 속도로 그녀의 손과 촉수를 막아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그의 심장은 우선적으로 공격당하며 파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심장이 공격당한 충격에 그가 비틀거리는 것을 놓치지 않은 프로세르핀은 그를 땅바닥에 꽂아버렸다.

프로세르핀은 땅바닥에 메다 꽂은 그를 찢어발기며 낫을 쥐고 있는 팔을 잡아 뜯었다. 잘려나간 그의 팔이 저멀리 굴러갔다. 잘린 그의 팔은 아직도 낫을 강하게 쥐고 있었다. 프로세르핀이 아즈레엘의 능력을 인지한 이상, 안개로 변했음에도 어느정도 타격이 가해지고 있었다.


아즈레엘을 쓰러트렸다고 여긴 프로세르핀이, 다시 아리따웠던 줄리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즈레엘의 가슴팍 위에 걸터앉아, 자신의 육감적인 육체를 드러내었다.

"패배를 인정하느냐? 미천한 자야."


"..."

"말이 없는걸 보아하니, 내심 인정하고 있겠구나. 그럼... 선택의 시간을 주겠노라."

그녀는 살포시 미소지으며 아즈레엘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아즈레엘은 자신의 귓가에 속삭이는 프로세르핀의 얼굴을 향해 남은 마지막 팔로 주먹을 날렸지만, 그의 주먹은 붙잡힌채 땅바닥에 꽂혀버렸다.


"안된단다. 너는 여기서 비참히 농락당하며 죽거나, 아니면 우리의 것이 될것이니까. 자아. 선택하렴.  피를 마실거니?"

프로세르핀이 자신의 손목을 손톱으로 그었다. 검붉은 피가 꿀럭하며 샘솟더니, 색기 가득한 피부를 타고 흘렀다. 그녀는 그런 손목의 상처를 아즈레엘의 입 가까이 들이대며 마시라는 듯이 눈썹을 들썩였다.


"..."

아즈레엘은 그녀의 상처를 바라보며 잘려나간 자신의 팔에 힘을 주었다. 낫과 낫을 쥐고 있는 팔이 꿈틀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끈다면, 낫을 움직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리라.


"자, 마시려무나. 마시고, 연방을 등지는 것이다. 더이상 나약한 자들을 위해 너의 영혼을 고통스럽게 하지 않아도 된다..."


프로세르핀은 한마디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흥분에 몸이 떨리는지 말이 빨라졌다. 그녀는 의지가 뛰어난 자를 함락시키는것이 언제나 행복했다.


"마셔. 어서! 의무와 명예가 주는 고통에서 해방되거라-"


[부웅-]

무언가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소리에 프로세르핀이 뒤돌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똑바로 날아오는 낫을 보며 손으로  쳐냈다. 아즈레엘이 쥐고 있는 낫이라면 그대로 프로세르핀이 베여버리고 말았겠지만, 고작 잘린 팔에서 쥐어짜낸 마지막 힘으로는 그녀를 베어버릴 수 없었다.


그녀는 튕겨져 나간 낫이 정비된 팔콘 수송선들  하나에 박힌 것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짓고는, 자신 아래에 깔려 있는 아즈레엘을 내려다 보았다.


"아흐흐흐하하. 지금 저걸로 나를 공격하려 한...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도다."

광소를 터트리며 아즈레엘의 마지막 희망을 비웃은 그녀는 아즈레엘의 목덜미를 살며시 매만졌다. 아즈라엘은 절망에 빠진 것인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흐응. 마시지도 않겠다면, 죽기를 원한다는 건가."

프로세르핀이 양손을 높이 쳐들었다. 전등의 불빛을 받아 피묻은 손톱이 반짝였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걸터 앉은 아즈레엘이 없어져가는 것을 느꼈다.


"?"


아즈레엘이 안개로 변하고 있었다. 검은색의 안개가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빠져나가며,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었다.


"시, 심장을... 재생시킬 수도 있단 말인가?!"

당황한 그녀는 사라지는 그를 붙잡았다. 허나 그녀의 꽉  두 주먹에서는 검은색의 안개만이 조용히 흘러 나올 뿐이었다. 프로세르핀은 아까 낫이 꽂혀버렸던 팔콘 수송선을 향해 뒤돌았다.

"!!"

팔콘 수송선에 꽂혀 있는 낫과 그 팔에서는, 검은색의 안개들이 뭉게뭉게 피어나고 뭉쳐지며, 인간의 형상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프로세르핀은 지금 그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악마였다.

검은 안개에서 완전히 형상을 갖춘 아즈레엘이 수송선에 박힌 낫을 뽑아 들었다. 그의상처는 이제 완전히 재생되어, 심장마저도 다시 예전처럼 뛰고 있는 상황이었다.


"네년같은 악마들에게는 단점이 무수히 많지만, 그중 가장 큰 단점이 있다."

낫을 뽑아들고 천천히 팔콘 수송선들 사이로 숨어드는 아즈레엘이 말했다.


"그건 바로, 오만이다. 언제나 자신들이 위에 있다는 오만. 언제나 자신들이 이길거라는 오만! 이게 너희들의 커다란 죄악이자, 패배의 이유다."


"크아아아아--!"

프로세르핀이 굵직한 괴성을 지르며 움직였다. 그녀의 발판이 되었던 착륙장의 바닥이 약간 찌그러지며 그녀의 분노를 대신했다.

"그리고, 네년은 여기서 목이 베어지게 될 것이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프로세르핀을 노려본 그는 낫을 땅바닥에 박아넣었다. 프로세르핀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광소했다.


"공포에 미쳤구나! 공격을 포기하다니!"


프로세르핀은 자신이 가진 촉수들과 함께 팔을 내질렀다. 공포에 빠져 투지를 잃은 자를 찢어발기고, 그의 육신을 탐하기 위해.


허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거미줄 같은 실들이, 그녀의 손톱과 촉수들을 막아내었다. 그 실들은 마치 사냥감을 옥죄는 거미줄처럼 그녀를 옥죄기 시작했다. 그녀는 당황하며 실을 잘라내려고 했으나 실에 맨살이 닿자 치익하며 타들어갔다.

함정! 그것은 함정이었다. 사냥꾼이 사냥감을 붙잡기 위한 함정. 아즈레엘은 자신에게 당도할 악마를 기다리며 수송선들이 나열된 사이사이에 미리 함정을 설치해 두었던 것이다.

"끼야아아아-"

"걸렸군."

"이게, 이게 대체 뭐야아아아---"


몸이 점점 타들어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프로세르핀을 보며, 아즈레엘이 자신 앞에 쳐져 있는 실을 손가락으로 살짝 쓰다듬었다.


"성스럽게 죽음을 맞은 이들, 고귀한 자들의 피로 적신 실이다. 네년같은 악마들에게는 극도의 내구력을 지녔고.... 살을 타들어가게 만드는 무기지. 그리고..!"

아즈레엘은 양팔을 들어올려 자신 어깨 위에서 나풀거리는 실들의 끝을 손가락 사이사이로 붙잡았다. 수십가닥의 실들이 그의 양손에 연결되며 팽팽해졌다.

"네년을 옥죄며 썰어버릴 수 있기도 하지."

그는 수십가닥의 실을 일제히 잡아당겼다. 그러자 실들이 묶고 있는 프로세르핀의 육체가 타들어가며 썰려나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프로세르핀의 육신은 실 사이사이로 떨어지며, 조각나버렸다.

조각조각 잘려나간 그녀의 육신은 한곳으로 모이며 부활을 도모했다. 아즈레엘은 포데스타의 마지막 발악을 비웃으며 쳐다보았다.


"헤엑. 헤엑.."


겨우 육신을 재조립한 그녀는 아직도 온몸에 상처와, 찢겨져 나간 옷이 얼기설기 걸쳐져 있었다. 그녀는 일어서서 움직일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지옥의 포데스타이자 대악마인 그녀는 지금 아무것도  수가 없는 몸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아즈레엘이 한 걸음씩 다가왔다. 프로세르핀은 뒤로 기어서 물러나며, 땅바닥에 검붉은 피를 묻혔다. 마침내 어느 부숴져버린 수송선의 잔해까지 도망친 그녀는 자신의 뒤를 바짝 따라온 아즈레엘을 향해 뒤돌았다.

"오지마! 오지.. 오지마."


"..."

"나에요. 죽이지 마세요. 저는, 저는 연방의 시민이랍니다. 저는 연방을 위해 싸웠어요."


프로세르핀은 마치 자신이 순수한 인간인 듯, 최대한 불쌍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아즈레엘에게 목숨을 갈구했다. 어떻게 얻어낸 육신인데, 이렇게 잃을 수는 없었다.


"비참하구나."


"살려주세요. 죽이지 마세요. 저는 죄가 없어-"

프로세르핀은 벌벌 떨었다. 이렇게 육신을 잃고 만다면, 동료 악마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심연 속에서 몇천년. 아니, 몇만년을 보내야할지도 몰랐다.

"더이상 말할 것도 없군."


아즈레엘은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살려줄 의향도, 유혹에 넘어오지 않을 거란것도 알아챈 프로세르핀은 욕지거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이.. 미천한 새끼가... 너희는 틀렸어! 너희는.. 너희 연방은 무너지고 불타게 될거다!"


"흥."


"그들이 있었던 과거라면 몰라도- 지금의 연방은 오히려 인류의 적이나 다름없어! 예젼엔 연방이 인간을 지켰을지는 몰라도, 지금은 인간들이 연방을 지키고 있지! 너희들의 이념은 얕아지고 있단 말이야! 무엇을,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거지?!"


"..."


"고작 의무와 명예? 그딴  때문에?! 그딴  때문에 인류를 지키는거냐? 병신같은 놈들!"


"...멍청한년. 우리 인류 보안부는 그런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인류를 위해 무기를 들고, 죽음을 맞는거다.  아무도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충성과 함께 의무를 질 수 있음은 최고리 빨리 움직여!"

에코와 그의 소대원들이 착륙장에 있는 병사들을 게이트로 이동시키며 소리쳤다. 착륙장에서 정비를 하고 있던 몇몇 공병들은 검은 안개가 갑자기 끼기 시작했다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에코는 대령의 명령이라며 그들의 의견을 묵살시키곤 착륙장 밖으로 서둘러 내보냈다.


"쉬온! 다 됐지?"

에코는 관제실을 정리하고 나온 자신의 소대원에게 물었다.


"예! 관제실에 있는 녀석들까지 전부 이동시키고, 5분 후 게이트들도 전부 폐쇄될겁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그럼 우리도 이곳에서 탈출한다. 다들 게이트를 통해 이동해!"

에코의 지시를 들은 소대원들은 곧바로 게이트를 통해 거주 구역으로 이동했다. 에코는 자신의 대원들 뒤를  붙어 따라가며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거대한 착륙장 내부는 환한 불빛으로 가득했지만, 거기에 어울리지 않게 검은 안개가 일렁이고 있었다. 주위에는 거미줄이 햇빛에 반짝이듯, 무언가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이 게이트가 닫히기  에코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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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제 3 착륙장 내부에는 개미 새끼 한마리의 움직임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거대하고 넓은 이 공간에는 천장에 달린 전등들이 환한 불빛을 내리쬐어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거대하고 밝은 착륙장에 걸맞지 않게, 검은색의 안개들이 착륙장 가운데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새카만 안개들은 주위에 잠시 어두운 기운을 풍기더니 뭉쳤고, 곧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검은 안개들은 곧 인간의 모습으로 뒤바뀌어갔고, 마지막 안개들이 어두운 색깔의 망토를 만들어냈을 즈음에는 커다란 낫을 들고 후드를 뒤집어쓴 사내만이 남아있었다. 그는 쿠셴에게서, '안개'라고 불린 자였다.


그는 착륙장 주위를 살피는 듯 한 걸음 한 걸음 짧은 보폭으로 걸었다. 그가 걸을 때마다 검은 안개들이 그에게서 조금씩 뿜어져 나왔다.


"흐으으음.."

검은색 안개로 이루어진 그는 천천히, 또 천천히 착륙장의 내부를 걸었다. 착륙장 천장에 가득한 전등들은 착륙장 전체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지만, 팔콘 수송선들이 모여 있는 곳은 특히나 반짝이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조용히 서있는 어느 팔콘 수송선 앞에서 걸음을 멈췄을 때, 그는 자신의 뒤에서 무언가가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


커다란 낫을 쥔 그는 망토를 느릿하게 휘날리며 뒤돌았다. 망토가 살짝 들리며 그의 어깨에 박혀 있는 인류 보안부의 문양이 드러났다.


뒤돌은 그의 앞에는 연방군의 복장을  어느 여성이 똑바로 서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어린아이의 얼굴과 똑같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 앞에 서있는 자가 누군지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인류의 해악, 혼란을 몰고 오는 자들, 자신이 베어야할 자들.


...악마.

"네 정체를 드러내거라."


그는 자신 앞에 서있는 여성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 여자는 그런 그의 눈길을 따듯한 눈으로 맞받아치며 자신의 재킷을 살짝 벗어 어깨를 드러냈다. 백옥 같이 뽀얀 피부. 어느 남자라도 사랑하고, 욕정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그런 매혹적인 피부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모욕이다."

낫을 쥔 손에 힘을  그는 색욕과 흥분보다는 분노를 느꼈다. 그의 정신과 육신은 이미 속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오랜 세월동안 저런 자들과 맞서기 위해 강철같은 정신을 단련했으며, 육신을 더욱 가꾸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향해 노골적으로 색욕을 드러내는 것은, 그에게 모욕을 주는 것과 다름 없었다.

그녀가 픽 웃었다. 그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일까? 그녀는 다시 옷을 올려 드러났던 어깨를 감추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에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천장에 달려 있는 전등들이 미친듯이 번쩍였다.

그녀의 접근에 그도 준비했다. 낫을 한번 크게 휘둘러 그녀를 향한 뒤, 한손으로는 낫의 중간 부분을, 다른 손으로는 칼날과 가까운 부분을 쥐었다. 그는 다가오는 그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프로세르핀을 노려보았다.

"악마야. 너의 뒤틀린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는 되었나?"


"호호."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프로세르핀은 나체의 여성이었다. 외설적인 부분만이  수 없는 촉수와 벌레들로 가리어진, 악마. 그녀는 낫을 쥔 남자의 시각을 더럽히고 있었다.


"이름은?"

"..."


프로세르핀은 뾰족한 손톱이 드리워진 손으로 남자를 가리켰다. 하지만 그는 프로세르핀의 질문에도 낫을 겨눈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프로세르핀은 씨익 웃으며 이를 드러내고는, 무언가를 떠올리는 시늉을 하며 손톱으로 자신의 볼을 슥슥 긁었다.

"아아.. 말하지 않아도 돼. 나는 이미 알고 있기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남자를 내려다본 프로세르핀이 두개로 갈라진 길다란 혀를 낼름거리며 웃었다.

"나는 너의 끝이자, 너의 해골을 거두어갈 자란다. 아즈레엘이여-"

 순간 그녀의 살랑거리는 혀가 반으로 잘라 베어졌다. 그녀의  단면에서는 새카만 피가 줄줄 흘렀고, 잘려나간 그녀의 혀는 땅바닥에 떨어지며 꿈틀대다 추욱 늘어졌다.

"...!"


프로세르핀은 잘려나간 자신의 혀를 보고 굳었다. 그녀의 뒤편에서는 아즈레엘이 그녀를 등진채 낫에 묻은 검은 피를 털어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쳐다보는 프로세르핀의 시선을 느끼고 한마디를 뱉었다.


"내 이름을 부르지 말거라."


"이.."


프로세르핀은 고작 인간에게 혀가 잘린 치욕과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허나, 그녀의 몸을 가득 채우는 고통에서부터 오는 쾌락과 흥분은 그녀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프로세르핀은 자신의 날카로운 손톱이 가득한 손을 앞으로 향하며 아즈레엘에게 휘둘렀다.


[채-앵!]

단단하고 날카로운 손톱과 흑빛을 내는 낫이 공중에서 마찰하며 금속음을 울렸다. 프로세르핀은 낫에 가로막힌 손에 힘을 주며 낫이 움직일 수 없게 붙잡았다. 아즈레엘은  두 손으로 낫의 손잡이를 붙잡고는 그대로 짓눌렀다. 조금만 있으면 낫의 칼날이 프로세르핀의 쇄골을 반으로 찢어버릴 것이었다.

[휘익-]


손톱의 날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프로세르핀의 다른 손이 움직였다. 그 손은 순간적으로 아광속의 속도가 되어, 아즈레엘의 복부를 가로로 그어버렸다. 매우 빠른 속도로 베어버린지라, 그녀는 손톱이 무언가에 막히는 일없이 깔끔히 베어버렸다고 기뻐했다.


아즈레엘은 배가 갈라진 고통의 영향인지, 고개를  숙여버렸다. 프로세르핀은 그런 그를 비웃으며 손톱을 털어냈다.

"오, 매우 아프겠구나. 정말 아프겠어. 너의 고통이  거름이 되어주겠구나. 기쁘-"


낫이 움직였다. 낫의 칼날은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프로세르핀의 손톱과 손을 손쉽게 베어버리고는 그녀의 쇄골에 꽂혔다. 악마의 저주받은 피부는 자신에게 깊숙이 들어오고 있는 칼날에 저항했으나, 낫은 그녀의 쇄골부터 유방이 있는 가슴까지 대각선으로 깔끔히 갈라버리었다.


"게에엑-!"


그녀는 아리따운 모습의 여성에게서 나올 수 없는 기이한 비명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그에 맞춰 아즈레엘도 낫을 돌리며 뒤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마, 말도 안돼는.. 분명히 배를 그어버렸는데도!"


프로세르핀은 아즈레엘의 피와 살점이 붙어 있을 자신의 손톱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톱에는 방금 막 흘러나와 묻어있는 그녀의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눈동자를 굴려 아즈레엘의 복부로 시선을 돌렸다. 아즈레엘의 복부는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다. 그의 흑색 보호복에도 상처 따위는 없었다.


"많이 놀랐나보군."


아즈레엘은 자신의 복부를 살짝 쓰다듬었다. 복부를 매만지던 손이 그의 복부로 들어갔다 나오며 주위에는 안개를 펄럭였다. 아즈레엘은 자신의 몸을 안개처럼 바꾸는 능력으로, 프로세르핀의 공격을 쉽게 대처한 것이었다. 연방 최고의 인체 개조 기술을 거친 자들이라면, 응당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네년이 말했듯, 나는 아즈레엘 키세스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네년의 목을 베어 인류가 보다 더 나은 길로 걸어가게 만들 것이다."


"웃기는 소리!"


프로세르핀이 분노하며 괴성을 질렀다. 그녀는 분노에 몸을 맡기며 네발로 움직였다. 그녀의 아리따웠던 입에서는 면도날 같이 날카로운 이빨들이 자라나며 허옇게 빛났다.
아름다운 머리칼들은 아가리를 가진 촉수가 되어 그녀의 주위에서 침을 흘렸다.


프로세르핀은 낫을 붕붕 돌리며 공격에 대응하는 아즈레엘의 멱살을 붙잡았다. 그의 낫 손잡이가 아주 살짝 구부러지며 기익하는 소리가 울렸다.

"너희들은 틀렸다!"

그녀는 지성체의 모든 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악마의 시선으로, 아즈레엘의 안개화를 꿰뚫었다. 안개화를 쓸때마다 그의 심장이 커다랗게 두근거리며 움직이는 모습. 심장을 순식간에 무력화 한다면 아즈레엘은 변화하지 못하리라.

"이게 바로 진실이었도다."

프로세르핀이 그의 심장을 먼저 공격했다. 아즈레엘은 초인적인 반응 속도로 그녀의 손과 촉수를 막아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그의 심장은 우선적으로 공격당하며 파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심장이 공격당한 충격에 그가 비틀거리는 것을 놓치지 않은 프로세르핀은 그를 땅바닥에 꽂아버렸다.

프로세르핀은 땅바닥에 메다 꽂은 그를 찢어발기며 낫을 쥐고 있는 팔을 잡아 뜯었다. 잘려나간 그의 팔이 저멀리 굴러갔다. 잘린 그의 팔은 아직도 낫을 강하게 쥐고 있었다. 프로세르핀이 아즈레엘의 능력을 인지한 이상, 안개로 변했음에도 어느정도 타격이 가해지고 있었다.

아즈레엘을 쓰러트렸다고 여긴 프로세르핀이, 다시 아리따웠던 줄리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즈레엘의 가슴팍 위에 걸터앉아, 자신의 육감적인 육체를 드러내었다.

"패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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