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색출]
제스는 자신의 분대를 이끌고 피터의 방 앞까지 도달했다. 제스는 문을 노크하기 전 잠시 기다렸는데, 문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피터와 동료들은 호쾌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똑똑]
"엉?"
"누구지?"
"...그다지 좋은 의미로 온 것은 아닌 것 같군요."
세일과 그의 분대원들은 땅바닥에 내려놓은 자신들의 소총에 손을 뻗었다.
"코리, 가서 열어줘."
"우씨, 맨날 나만 시킨단 말이야."
코리가 투덜대며 문으로 걸어갔다. 그가 게이트 패널을 두들겨 문을 열자, 총구를 앞세운 6명의 검은 안개 연대원들이 밀치듯 들어왔다.
"어?"
"움직이지 마세요. 전부. 간단한 검사 후에,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갈거니까요. 알겠습니까?"
"제스! 이게 무슨 짓이야?"
"쿠셴 대령님의 명령입니다. 소위님이 속한 로스토크 제 2연대원들을 전부 검사하라는 명령이죠. 배신자를 찾아야합니다. 세일 씨, 총 내리세요."
제스 옆에 있는 검은 안개 연대원이 세일과 그의 분대원들에게 총구를 움직였다.
"흐음..."
세일은 잠시 검은 안개 연대원들을 훑어보고는 자신의 총을 내렸다.
"다들 총 내려. 상부 명령이라잖아."
MTMA 기동병들이 무장을 해제하자, 검은 안개 연대원들이 피터와 기동병들을 제외한 나머지들에게 정신 오염도 감자기를 들이댔다. 처음은 코리였다.
[오염 없음.]
기계는 삐릭하는 소리와 함께 오염 없음이라는 글씨를 띄웠다.
"뭐야, 그럼 난 안전한거지? 이거 풀어~!"
코리는 안전함 표시가 뜨자 자신의 손목을 붙잡고 눌러대던 대원을 퍽하고 밀쳤다. 다음은 칼리브레 차례였다.
"이봐. 그런걸 들이대서 뭐 배신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어? 치우지 그래."
"거부한다면 사살되거나, 끌려가야될 겁니다."
검은 안개 연대원 하나가 칼리브레를 똑바로 보고 쏘아붙였다.
"젠장.."
"비켜, 나 먼저 하지."
당황하는 칼리브레의 앞에 하겐이 나서며 말했다. 검은 안개 연대원은 칼리브레에서 하겐으로 감지기를 겨누었다.
[오염 미미. 안전 단계.]
"휴우."
"좋아, 나도 하겠어. 빨리 해보라구."
칼리브레가 한 대원에게 짜증을 냈다. 대원은 감지기를 다시 칼리브레의 머리에 겨누었다.
[오염 없음.]
검사를 끝마친 대원이 제스를 향해 돌아보자, 제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움직이라고 지시했다. 검은 안개 연대원들은 제스의 지시를 받자마자 칼같이 방 밖으로 나갔다.
"좋습니다. 검사가 완료 됐으니 다시 하던거 하시면 됩니다. 저희는 이만.."
"잠깐."
피터가 나가려는 제스를 불러 세웠다.
"무슨 일이죠?"
"그 정신도 오염 감지기는.. 어떤 방식으로 배신자를 알아내는거지?"
"...악귀들에게 타락한 사람은 대부분 영혼을 거래 조건으로 건 사람들입니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악마들에게 영혼을 담보로 내건거지요. 자신의 영혼을 걸지 않고 순수히 거래를 진행한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그런 자들은 감지기로 걸러낼 수 없어요. 타락한게 아니니까요."
"쉽게 좀 설명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러니까, 거래를 할때 영혼을 걸지 않은 자들이죠. 뭐, 그런 자들도 악마들의 꾀임에 넘어가 영혼을 팔아버릴 때가 있긴 하지만. 아무튼, 가보겠습니다."
제스와 그녀의 분대원들이 밖으로 나갔다. 피터와 동료들이 있는 방 안에는 조용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벽에 밀쳐져서 끙끙대던 코리가 침묵을 깨트려버리기 전까지는.
"아구구. 씨팔. 검사하는 건 좋은데 왜 내 머리통을 짓누르냔 말이야?"
"...에이. 술맛 다 버렸네. 잠이나 잘래?"
칼리브레는 술이 반 남아있는 병을 싱크대에 가져가 휙 쏟아버렸다. 피터는 그런 그를 보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 세일과 그의 분대원들은 팔짱을 낀채 벽에 기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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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안개 연대원들은 밝은 복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어두운 복장을 하고 차례차례 검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여러번 전투에 참가한 병사들은 오염도 감지기에서 중간 정도의 위험을 띄었으나, 그들은 검은 안개 연대원들의 감시 하에 놓였을 뿐 딱히 처리되거나 어디론가 끌려가지는 않았다.
"테니, 아직까지 별다른 이상은 없지?"
제스는 그녀의 무전기에 대고 테니를 불렀다.
"어. 아직은 괜찮은 것 같아. 오염도 감지기가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어."
"좋아, 나머지는?"
"여기는 괜찮다."
"여기도."
"이쪽도."
제스의 말에 테니 분대를 제외한 8명의 분대장이 답했다. 그들은 지금 거주 구역의 병사들을 면밀히 감시, 검사 중인 상태였다.
"알겠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곧바로 모두에게 알려. 배신자가 저항한다면 진압용 전기탄환 말고 실탄을 사용해도 좋아. 통신 종료!"
무전을 종료한 제스는 그녀의 분대원들을 이끌고 로스토크 제 2 보병 연대의 인원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10명, 100명, 400명의 검사를 완료했을 즈음, 마지막 한 곳을 남겨둔 그들은 총구를 앞으로 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생활관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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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어. 마리. 놈들이 왔단다."
"누가? 누가 왔다는거야?"
"오. 내게 걸칠 것을 주려무나. 필멸자여."
"프로세르핀, 너는 침대에 들어가서 자고 있는것이 우릴 돕는거야. 너는 지금 이곳에 적응하지 못했어."
검은 연기처럼 마리의 머리 위에 떠 있던 하후케크가 프로세르핀을 보고 경고했다.
"알겠도다."
나체의 줄리, 아니, 프로세르핀은 침대 속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가 이불을 덮었다. 갈색의 머리카락이 이불 밖으로 살짝 삐져나오며 찰랑거렸다.
"자, 마리. 그럼 이제 네가 문을 열으렴. 그리고 네 정체가 들통날 걱정은 하지마. 내가 지켜주고 있으니..."
그렇게 하후케크의 목소리가 들리던 검은 연기는 순식간에 공기중으로 퍼지며 사라져버렸다. 마리는 눈앞에서 사라진 하후케크의 지시대로 문으로 다가가 게이트 패널을 만졌다.
[기이잉-.]
방문이 열리고 총구를 앞세운 검은 안개 연대원들이 밀치듯 들어왔다. 그들은 자신들 바로 앞에 서 있는 마리에게 총구를 겨누고 움직이지 말라고 강압적으로 말했다.
"움직이지 마라. 아주 잠깐이면 되니."
한 대원이 오염도 감지기를 꺼내들었다. 그는 마리에게 몇발짝 가까이 다가오며 오염도 감지기를 들이대려고 손을 들어올렸다.
"(위, 위험해.)"
마리는 비밀이 밝혀질 위험을 느끼고는 뒤로 한발짝 물러났다. 검은 안개 연대우너들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더욱 의심을 불태우며 가까이 다가왔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을텐데!"
"피터 소위와 함께 했던 병사군. 우리가 기억나나? 움직이지는 말아줬으면 해. 금방 끝날테니까."
제스가 대원 한명에게 검사를 진행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 대원은 고개를 끄덕이곤 들고 있는 오염도 감지기를 마리의 머리로 가져갔다.
[삐릭-.]
마리의 이마 가까이 닿은 감지기는 검사중이라는 표시를 띄우며 밝은 형광색으로 빛났다. 곧이어 감지기는 적색의 경고 표시를 띄우고는 위험하다는 음성을 울렸다.
[경고. 경고. 오염도. 높 음.]
"이, 이건!"
검은 안개 연대원들은 감지기의 경고를 보고는 기겁하며 잠시 뒤로 물러났다. 허나 그들은 금방 냉정함을 되찾고 총구를 마리의 얼굴로 더욱 가까이 들이밀었다.
"어느쪽이든,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결정해라. 여기서 전부 말하든가, 끌려가서 손가락이 하나하나 잘리든가."
우락부락한 대원이 마리의 멱살을 잡고 말했다. 마리는 당황하며 켁켁댔으나 그들은 더욱 강압적으로 그녀를 대했다.
"잠시 기다려. 오류였을 수도 있다고. 다시 검사 진행해."
"예?"
"어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반응하지 못했던 제스였으나, 그래도 감지기의 오류를 주장하며 자신의 대원들을 멈춰 세웠다. 본래대로라면 오염도가 위험일시 즉각 사살하는 것이 올바른 보안부 대원들의 선택이었겠지만, 제스 앞에 서 있는 이 병사는 그 저주받은 함선에서 많은 병사들의 도움이 되었던 자였다.
게다가, 피터 소대의 일원이기도 했기에 함부로 그녀를 건들 수도 없었다. 만약 소위가 자신의 소대원이 무차별적으로 죽음을 맞았고,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향후 연방에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는 법이었으니.
"다시 하란 말 안들려? 못하겠음 이리줘!"
감지기를 들고 있는 대원에게서 감지기를 뺏은 그녀는 기기를 조작해 다시 초기 상태로 만들어 두고는 마리의 이마에 겨누었다.
마리의 머리에 겨눠진 감지기가 삐릭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다시 검사를 시작했다. 그녀는 이상하게 티딕하는 스파크 소리도 들은 것 같았으나, 다른 이들은 듣지 못했는지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삐릭-]
"..."
감지기가 작동되며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방안은 긴장감과 침묵으로 감돌았다. 이번에도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온다면, 마리는 사살당하거나 고문실로 끌려가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제스도, 검은 안개 연대원들도 그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오염도. 안전.]
"휴우.."
마리는 감지기의 결과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총구를 겨누었던 검은 안개 연대우너들도 감지기를 슬쩍 보고는 총구를 거두었다. 허나 그들의 눈빛에는 아직도 의심과 불신이 서려 있었다.
"됐군. 정말 금방 끝났지? 이 방을 같이 쓰는 다른 대원들은 있나?"
"...저 침대에 있어요."
"알겠어. 고마워."
제스는 대원들에게 이리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녀의 제스쳐를 보자마자 2명의 대원이 총구를 앞세워 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대원들은 침대를 이리저리 살피며 누군가 있는지를 찾다가, 침대에서 쿨쿨 자는 줄리를 보았다.
"여기 있어."
"검사 진행해."
대원 하나가 감지기를 가슴팍에서 꺼냈다. 그는 쿨쿨 잠들어 있는 줄리의 이마에 감지기를 차분하게 대었는데, 감지기에서 잠시 지직거리는 스파크가 튀었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바로 앞에서 지켜보던 대원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그냥 그들에게는 그저 티딕하는 기계음으로 들린 것 같았다.
하지만 마리는 그것이 무슨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티딕하는 소리는, 하후케크가 무언가를 저지른 것이라고.
[삐릭-.]
감지기는 오염도를 검사하며 소리를 냈다. 잠시 후, 감지기는 안전하다며 초록색의 불빛을 반짝였다. 감지기의 결과를 확인한 대원이 제스를 향해 돌아보며 손가락으로 ok표시를 만들었다.
"좋아. 그럼 이제 다른 곳을 검사하러 가자고."
제스의 지시에 분대원들이 신속하게 방 밖으로 나갔다. 쿨쿨 잠이 든 줄리와 제스, 마리만이 방에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미안해. 상부의 명령이라. 배신자를 찾아야하는 명령을 받았어."
"괘, 괜찮아요."
"그럼, 쉬도록 해."
제스가 나가며 방의 문을 닫았다. 마리는 그녀가 나가자마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가 한숨을 쉬고 있는데, 방의 공기 중으로 퍼져나간 검은 연기들이 한곳으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하후케크.."
"오, 정말 위험했구나. 내 도움은 어땠니?"
"역시.. 네가 한 거구나?"
"그럼. 당연하지. 나의 새로운... 친구를 잃을 순 없잖니?"
"그들은 갔나?"
잠을 자고 있던 프로세르핀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아직도 나체의 몸이었다.
"그래. 프로세르핀. 내 도움이 정말 절실했지?"
"흐응.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흐흐흐하하."
프로세르핀에 대답에, 하후케크가 비웃듯이 웃었다. 프로세르핀이 무미건조하게 그를 쳐다보자, 하후케크는 마리를 별이 가득한 창가로 인도하며 말을 돌렸다.
"자, 보렴. 나의 작은 마리야. 저 별들이 보이니?"
"...응."
"저 별들은 이제 전부 우리의 손아귀에 들어올거야. 너는, 이 일이 전부 끝난다면 원하는 별을 골라 네가 사랑하는 자와 평생을 함께하면 될거란다."
"정말..?"
"그럼. 당연하지."
악마의 얼굴처럼 바뀐 검은 연기는, 얕은 미소를 지었다. 마리가 잠시 우주의 아름다움에 정신이 팔렸을 때, 하후케크는 프로세르핀을 돌아보며 마리에게 들리지 않도록 쏘아붙였다.
"프로세르핀, 너는 당장 '안개'를 찾아. 그를 죽이든지, 타락시키든지, 네 맘대로 해. 할 수 있다면."
"'안개'를 찾으라고...?"
"그래서 네년을 부른거잖아? 아니면 그 육체를 버리고 다른 포데스타에게 양보하든지?"
"...흐응. 알았도다."
나체의 프로세르핀은 관물대로 다가가 줄리의 옷을 걸쳤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줄리가육신을 빼앗기기 전, 마리에게 덮어준 연방군 재킷을 걷어가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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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령님, 현재 로스토크 제 2 보병 연대원들을 거의 다 살펴가는데.. 배신자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어떡하실 건가요?"
제스가 무전기를 들고 쿠셴에게 물었다.
"그럴리가 없습니다. 4~5 거주 구역까지 검사를진행하세요. 이제부턴 배신자가 나온다면 간단한 심문 후 사살하셔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쿠셴은 무전이 종료된 무전기를 쾅 소리나게 테이블 위로 던져버렸다. 그는 테이블 서랍에서 꺼낸 고급 담배를 빼물고는 회색의 연기를 후욱하고 뱉어냈다. 쿠셴은 지금 모레 있을 전장에서 피터 소위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띠이이-]
"?"
[띠이이-]
평소 무전음과 다른 무전기의 소리가 테이블 아래에서 울렸다. 쿠셴은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어 뒤적거리다가 조그만 무전기를 빼들었다. 저번에, '안개' 라는 자와 연락했을 때 쓴 무전기였다.
"...쿠셴. 이 기지에는 지금 포데스타들이 있다. 그것도... 두 놈이나."
쿠셴이 무전을 받자마자 저음의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흘러나왔다. '안개' 였다.
"사실입니까?"
"그래.. 그리고 한 놈은 내게로 점점 다가오고 있군. 나는 느낄 수 있어. 제 3 착륙장의 인원을 전부 비워라. 내가 놈과 만나야겠다."
"...알겠습니다."
무전이 끊겼다. 쿠셴은 그 조그만 무전기를 테이블 아래로 조심스럽게 집어넣고는 자리에서 일어서 누군가를 불렀다.
"에코!"
"예, 대령님."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어느 병사가 들어와 열중쉬어 자세를 취했다.
"제 3 착륙장에서 작업하고 있는 병사들 전부 빼내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세요. 그리고, 누구도 출입하지 못하게 하세요."
"갑자기 말입니까?"
"명령대로 하세요. 그리고, 궤도 기지 관제실에도 3 착륙장에는 출입을 허가하지 말라고 전하세요."
"...알겠습니다."
에코가 사령관실 밖으로 나갔다. 쿠셴은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뒤돌아 커다란 창가로 다가갔다. 밖에는 거대한 함선들이 줄지어 어디론가 항해하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를 믿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