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배신자 1]
"부르셨습니까?"
피터가 사령관실로 걸어들어와 쿠셴과 마주했다. 쿠셴은 워크 비가 갖다준 커피를 막 홀짝이고 있었다. 쿠셴이 보기에 피터는 약간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네. 지난 4일간은 어땠나요?"
"...뭣같았습니다. 그것보다도."
"?"
"제 능력에 대해선 쿠셴 대령님만과 얘기했는데, 연방 이능력병단에서 저를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걸까요?"
"..."
"할말이 있으시지 않습니까?"
피터는 살짝 눈꼬리를 올리며 집요하게 물었다. 마침내 쿠셴이 커피잔을 내려놓고 한숨을 푹 쉬었다.
"후우- 그래요. 내가 연방 이능력병단에 소위를 밀고했어요. 뭐, 밀고라기보다는 능력을 정확히 짚어달라고 부탁했죠."
"...절 팔아먹은거 아닙니까?"
"오, 아니요. 미래 예지 능력을 보호하는건 당연한 법입니다. 당신이 그걸 정말로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악마의 거짓부렁인지 확인해야만 했어요. 그리고 결국 테스트 결과가 옳았죠. 소위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그 서류철. 서류철이 당신의 지위를 조금이라도 더 높여줄테니까요."
"이 서류철이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는 서류철을 쿠셴에게 보여주듯이 들었다.
"그래요. 연방 이능력병단의 테스트 결과 서류죠. 피터 메이슨 소위, 당신은 이제 연방에서 매우 소중한 인재가 되었습니다. 아마 당신이 위험에 처한다면 연방은 당신을 구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겠죠."
"(결과적으로는...나를 보호하려고 그랬던건가?)"
"어쨌든 할말은 이게 아닙니다. 소위. 지금은 더 커다란 문제가 있습니다."
쿠셴은 피터에게 자신 앞 테이블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피터가 의자에 앉자, 워크 비가 쿠키 한 봉지와 홍차를 들고와 테이블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쿠키 하나를 집어 들어 피터가 보이도록 든 쿠셴이 껍질을 찢어 꺼냈다.
"악마들은 당신을 원하는게 틀림 없습니다."
"네?"
"잘 들으세요. 앞으로 전장에 투입되면 제 말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 안전해질테니까요."
쿠셴은 그렇게 말하며 쿠키를 살짝살짝 흔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피터씨, 당신은 지난 4일간 훈련 중 꾼 꿈을 제렌 대령과 얘기한 적이 있을겁니다. 제렌 대령이 말해줬거든요. 분명히 아드라말레크라는 악마가 꿈속에서 나와, 당신에게 함께하자고 말했었죠?"
"...그렇죠."
"거기에, 검은 수염 작전 도중 만난 위트겡이라는 악마도 소위 당신을 타락시키려고 들었습니다. 이제 결론은 간단하죠. 지옥의 군세는 지금 당신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이에요."
쿠셴이 흔들던 쿠키를 다른 손으로 쥐어 뭉개버렸다. 부서진 쿠키 조각들이 테이블에 투둑하며 떨어졌다.
"악마들이라는 존재 자체가 인간을 집어 삼키려 들지만, 특이하게도 소위, 당신은 더욱 노려지고 있습니다. 아마 능력 덕분이겠죠. 악마들에게 타락해 영혼이 물들어버린다면, 능력이 훨씬 더 강력해지니까요."
"그래서 할 말이 뭡니까? 저보고 언제 악마들에게 넘어갈지도 모르니, 죽으란 말씀은 아닐텐데요."
"그런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이 악마들에게 넘어간다면, 연방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위를 제거하려고 할테니까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신이 넘어가지 않는겁니다."
"으음... 그렇게 말해봤자..."
"피터씨, 당신은 앞으로 주기적인 정신 건강 검진을 받을겁니다. 오염도 수치를 확인하는 것이죠. 순수성을 증명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일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런 말들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돌아가도 되겠죠?"
"아니오. 하나 더 남았습니다."
쿠셴이 손가락을 들어올리자 피터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대체 뭐길래 이렇게도 진득하니 붙잡아 놓는단 말인가?
"이틀 후에, 소위 당신과 30만명의 연방 보병은 고르페우스 구역에 투입될겁니다. 100개의 보병 연대말입니다. 또, 벨라토르들과 MTMA 기동병들, 연방 기갑대까지. 엄청난 전투가 치뤄지겠죠. 그만큼 연방에게는 중요한 전투일거구요."
"(30만명...)"
피터가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문제는 이 내부에 있습니다. 인류 보안부 측에선 이미 병사들 사이사이에 배신자들이 숨어있음을 간파했습니다. 그리고 인류 보안부는 30만명의 보병들을 의심하고 있지요. 벨라토르들과 MTMA 기동병들은 어느정도 순수성이 입증된 자들임에 비해, 일반적인 보병들은 아니니까."
"그리고 특히, 피터 소위, 당신의 소대에 배신자가 있을 확률도 지나칠 수 없습니다. 다시금 말하지만, 악마들은 당신을 집요히 노리고 있습니다. 제일 가까운 자들에게서 배신과 내분이 일어난다면 쉽게 끝장날테니까요. 그렇기에 제렌이 당신에게 호위팀을 붙인겁니다."
"그래서... 내 뒤를 조심하라?"
"그렇죠. 뒤를 조심하라고요."
"하지만, 제 뒤에 서 있는 동료들은 함께 생사를 오간 자들입니다. 고작 타락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배신할 일은 없-"
"아직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쿠셴이 피터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의 얼굴은 정말 차갑도록 냉정했다. 눈빛만으로 사람의 심장을 얼려 죽일만큼 차가운 눈빛이었다.
"동료간의 믿음, 가족간의 사랑, 인류간의 유대... 이런게 '개인의 소원' 하나보다 더 소중할 것 같습니까? 세상엔 이기적인 자들이 더 많아요."
그는 피터에게 약간 비웃음을 지어보였다.
"이제 알았다면,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단! 언제나 배신자는 조심하고, 동료들의 낌새가 수상하면 곧바로 보고하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몹시 당황한 표정을 띈 피터가 사령관실 밖으로 나갔다. 쿠셴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테이블 아래로 손을 집어넣어 무전기를 빼들었다. 제렌과 연락할 때와는 다른, 엄지손가락만한 초소형 무전기였다.
"아, 아, 들립니까?"
"..."
"'안개'시여. 들립니까?"
"...들린다."
무전기에서는 매우 저음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좋습니다. 배반자 수색은 어느정도 진행되었습니까?"
"...이리저리 잘 숨었군. 허나 한가지 중요한 걸 찾았다."
"뭐지요?"
"...피. 지옥 군세의 문양.. 제 3 광장 뒷편의 어두운 골목의 바닥에서, 놈들의 문양을 발견했다. 피를 흘려 의식을 치룬 것 같은데, 불에 타버려 주인을 찾을 수 없게 되었군... 하지만 이걸로 배신자가 존재하는 것은 확실해졌다."
'안개'라고 불린자는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한 단어씩 꾹꾹 눌러 말했다.
"알겠습니다. 계속 수고해 주십시오. 이틀 후에 피터 메이슨 소위를 호위하는 임무, 잊진 않았겠지요?"
"...걱정 말거라."
교신이 끊어졌다. '안개'가 교신을 끊어버린 것 같았다. 쿠셴은 무전기를 다시 테이블 내부에 집어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제스와 테니를 찾으며, 자신의 병사들을 불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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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젠장.. 아니야. 내 친구들은 나를 배신할 녀석들이 아니야.)"
피터는 온갖 불길한 상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며, 터덜터덜 힘없이 걸었다. 1년 간 그렇게 동고동락을 함께 해 온 그의 친구들이 그를 배신한다라. 그에겐 더 없이 끔찍한 일이었다.
그가 이마를 짚으며 고민하고 있을 때, 뒤에서 그를 부르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피터! 드디어 돌아 왔구나!"
"에리?!"
에리는 피터의 뒤에서 그를 껴안고 등에 볼을 비볐다. 그녀는 피터가 너무나 보고싶었다며, 외로웠다고 징징대기 시작했다.
"으우. 엄청 보고 싶었어. 외로웠단말이야. 진짜, 어디 갔었던거야.."
"아, 하하. 알았어. 그만해. 간지럽다고."
"(뒤를 조심하라고요.)"
쿠셴의 경고가 갑자기 떠올랐다. 피터는 에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려다가 손을 멈칫했다. 만약, 에리가 타락하고 배신했다면...
"(아니야! 에리는 그럴 사람이 아니야.)"
피터는 혼자서 고개를 흔들며 주먹을 쥐었다. 에리를 의심할 수는 없었다.
"어? 왜 그래? 혼자 고개를 막 흔들고..."
피터의 행동에 궁금해진 에리가 질문했다. 그녀의 의문에 피터는 멋쩍게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무 것도."
"헤- 그래~? 아닌 것 같은데?"
에리가 피터의 가슴팍에 손가락을 올리고 살짝 쓸어내렸다. 역시 에리는 피터의 속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으으. 에리. 지금은 내가 좀 이래저래 바빠. 그러니, 어울려 줄 수가 없어. 방에 돌아가서 내 호위팀과 동료들이 제대로 있는지도 봐야하고.."
"호위팀??"
"이틀 후, 우리가 작전에 투입되는 건 알아? 우리 고향이 있는 고르페우스 구역으로 간다고."
"...또 싸워야하는구나."
"그 작전에서 날 지켜줄 호위팀이야. 우리는 이제 지옥 군세들과 전면전을 한대잖아?"
"지옥 군세? 악마들 말이야?"
"그래."
"그러니까, 이제 방으로 좀 돌아가야겠어."
피터가 몸을 앞으로 돌렸다. 그러나 그의 허리를 에리가 꽉 껴안고 있던터라, 움직일 수는 없었다.
"...에리."
"응."
"놔줘야 가겠지?"
"조금만 더 이러고 있으면 안돼?"
"하-. 얼마나?"
"5초."
"1,2,3,4, 5! 끝!"
"힝.."
에리는 그의 허리를 놓기 전 온 힘을 다해 꽉 껴안았다. 그덕에 피터는 윽하며 허리가 쥐어짜이는 고통을 참아야 했다.
"그러고보니... 어차피 호위팀 녀석들과 이래저래 알고 있는것도 괜찮겠지. 에리, 너도 갈래?"
"네가 간다면 나도 갈래."
에리의 말을 들은 피터는 잠시 자신의 손목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간은 저녁을 가리키고 있었다.
"에리, 밥 먹었어?"
"응? 아니."
"음, 그럼 *체쉬 구이를 좀 사가야겠네. 광장에 들르자고."
(*체쉬: 7000년대의 개조된 닭. 연방의 주식인 연어와 비슷하게 대부분의 행성에 적응해, 좋은 식량이 되어준다.)
"체쉬? 정말?! 빨리 가자!"
피터가 체쉬를 산다는 소리에, 에리가 잔뜩 기뻐하며 그의 손목을 붙잡고는 광장 쪽 복도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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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에, 헤에, 네가 하란데로 했어. 이제, 어쩔거야..?"
마리는 어두운 방안에서 검은 목소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의 손은 검은 목소리가 치유해주었는지, 상처가 전혀 생겨있지 않았다.
"지금은.. 몸을 숨기고 다른 이에게 누명을 씌워야 해."
"뭐?"
"마리, 넌 쫓기고 있어. 회백색의 안개가 너를 감싸려하고 있단다. 그 안개는 너를 옥죄고, 갈갈이 찢어버릴테지."
"안돼. 소위님을 갖기 전에는 못 죽어. 안돼."
"당연히 그렇지. 하지만 우리의 아군이 너를 도울 거란다. 네 관물대를 열어봐.."
검은 목소리가 시키는대로, 마리는 자신의 관물대를 열어보았다. 관물대 내부에는 아까까지만 해도 보지 못한 주사기 두어개가 놓여져 있었다.
"구, 국소 마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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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겐, 너 어디갔다 오냐?"
"응?"
코리가 세일의 대원들과 떠들며 맥주를 들이키다가말고, 잠시 어딘가 나갔다온 하겐을 보며 말했다. 하겐은 자신에 손에 들려져있는 담뱃곽을 보여주며, 이런 것도 말하고 나가야되냐고 물었다.
"이런것도 말해야 돼?"
"으음. 왠지 들어왔을 때 담배 냄새가 나더라. 암튼, 그래서 내가 말이지~ 동화된 자라는 놈의 배때기를 그냥 주먹으로~!"
"으, 안 믿기는걸. 말도 안돼."
"야, 레나. 진짜라니까?"
"칼리브레 씨, 코리 말이 진짜에요?"
"...어, 피터가 도와주긴 했다던데. 난 솔직히 못 믿겠어."
"거짓말이겠지. 동화된 자는 우리같은 MTMA들도 버거워하는 상대인데.."
세일은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고 말도 안된다는 듯이 말을 흐렸다.
"지, 진짠데! 왜 안 믿지?!"
"나 왔어. 다들 친하게 지내고 있었지?"
"우아, 저 사람들은 누구래?"
피터와 함께 체쉬가 담긴 상자를 들고 있던 에리가 세일을 보고 놀랐다.
"오셨군."
세일이 일어나 예의를 차렸다. 나머지 기동병들도 일어나 자리에서 물러났다. 피터는 그런 그들에게 너무 격식차리지 말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 음. 너무 격식차리지는 마. 어차피 한 계급 차이인데다가, 저놈들도 나한테 대빵 취급은 안 해주거든."
피터는 세일에게 그렇게 말하며, 칼리브레와 코리를 가리켰다. 피터의 말을 들은 칼리브레는 자신이 뭘 어쨌냐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래서 다들 어느정도 친해진 것 같네. 같이 술도 마시고 있었고 말야."
"그렇습니다."
"코리, 칼. 테이블 좀 치우지 그래. 술병이 너무 많잖아."
"알아서 할게. 잔소리는..."
이구동성으로 대답한 둘은 킥킥대며 웃었다. 피터는 이번에 세일 쪽을 보며 물었다.
"세일, 너희들은 어디서 잘거지?"
"잠이오?"
"그래. 여기는 조금 좁거든. 대령님께 말씀드려서 방을 하나 구해야하나?"
"아니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는 문 밖에서 교대하며 서 있을겁니다. 2명은 방 내부를 지키고, 나머지 2명은 문 밖에서 대기하는거죠."
"그, 그러니까 잠은 안 잔다고?"
"저희는 신체 개조를 받은 군인들입니다. 고작 며칠 안 잔다고 신체 능력이 저하되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아... 알겠어. 그럼 부탁 하나만 할까?"
"뭐지요?"
"같이 밥이나 먹자고."
의아해하는 세일의 앞에 피터가 체쉬 구이가 가득 담긴 상자 2개를 내려놓았다. 고소하고 짭짜름한 체쉬 냄새가 방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