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나이트 크로울러]
"저런거.. 여기 들어왔을 때 있었냐?"
피터가 팔런에게 조용히 물어보면서 글라디오에 손을 가져다댔다. 자신들을 조용히 응시하는 괴물은 금방이라도 움직일듯 손가락을 꿈틀대고 있었다. 놈은 자신의 몸을 덮었던 날개를 느릿하게 피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저 새끼, 일단 아군은 아닌 것 같군."
피터가 글라디오를 뽑는 소리와 함께 놈이 손을 하늘높이 치켜들었다. 놈의 손에서는 불안정한 에너지가 솟구치며 요동치고는 날카로운 창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습을 드러내는 괴물의 창은 인간의 해골로 장식되어 섬뜩한 기운을 풍겼다.
"다들 전투 준비! 적이다!"
"크크크.."
벌떡 일어선 괴물이 날개를 펼치자 족히 5m는 될만한 거대한 두 날개가 드러났다. 놈은 3m의 커다란 키로 창을 매만지며 피터 일행을 쳐다보았다. 피터는 왠지 놈의 비웃음을 들은 듯 했다. 놈이 덤벼오기 전, 피터는 놈의 정보를 조금이라도 알아내기 위해 그 신체를 살폈다.
"(나체인데 엄청난 근육질이군. 게다가 성기가 있어야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는걸 보아하니.. 인간은 아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겹게 봐왔던 문양들이 배 한복판에 새겨져있잖아.)"
피터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놈의 간단한 특징을 알아챘다. 그러나 그 옆에 서있던 병사는 똑같이 괴물을 바라보고는 말을 잇지 못하고 어버버 댈 뿐이었다.
"아.. 아.."
"..? 이봐, 왜 그래."
"아.. 아...!!"
"야, 랭포드!"
랭포드라고 불린 대원의 눈이 순간 생기를 잃었다. 그는 고개를 툭 떨구더니 기이한 떨림과 함께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야, 너 왜그래?!"
랭포드 뒤에 있던 대원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는 랭포드를 붙잡고는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으나, 랭포드는 그녀의 이마에 총을 들이댈 뿐이었다.
[타앙-!]
"!!"
"미친!"
"(뭐지?! 갑자기, 갑자기 동료를 죽였어!)"
피터를 비롯해 모두가 굳었다. 랭포드는 동료의 머리를 박살 내놓고도 기이한 떨림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제 소총의 총구를 후미에 있던 에리에게로 돌렸다. 피터가 총구가 가리킨 곳을 쳐다보자, 에리가 랭포드의 행동에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단단히 굳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피터가 바라본 그녀의 눈에 공포심이 순간 지나갔다.
"씨바아아알!!"
피터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몸을 움직였다. 그는 랭포드의 소총을 주먹으로 올려쳐 총구를 천장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총구에서 뿜어져나온 탄환들이 천장에 튀기며 번쩍이는 스파크를 만들어냈다. 피터의 행동에 랭포드는 피터를 노려보았다. 피터도 그와 눈이 마주쳤으나, 랭포드의 눈은 왠지 거대한 의지가 개입하고 있는 것 같은 눈이었다. 그 강대한 의지는 피터에게도 어렴풋이 느껴졌기에, 피터 조차도 충격을 받고 말을 절 정도였다.
"너, 너, 너.."
"으으으..."
랭포드는 목을 기괴하게 비틀며 총을 떨어트리고는 자신의 등에 매어져있던 지정사수소총을 꺼내들었다. 그는 흐리멍텅한 눈으로 피터를 노려보며 소총을 겨누었다. 피터는 그의 눈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의지에 저항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피터가 위험에 빠지자 코리가 달려들어 랭포드의 허리를 붙잡았으나 랭포드의 힘은 알 수 없는 의지로 강화되어 있었고, 코리를 팔꿈치로 가격하여 2m를 구르며 날아가게 만들었다.
"랭포드. 제발, 정신차려라.."
"주인님들의.. 진리.. 그것이.. 인류의 길.."
랭포드는 알 수없는 말을 지껄이며 진정하라는 피터의 만류를 무시한 채 소총의 조정간을 연발로 바꾸었다. 피터를 확실히 죽이려는 속셈이었다.
"으, 으!! 으아아아아!!!"
랭포드의 뒤에 있던 팔런이 마침내 글라디오를 꺼냈다. 그는 울음섞인 기합을 지르며 글라디오를 랭포드의 어깨에 내리쳤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용서해! 용서해 줘어-!"
1번, 2번, 3번 쯤 내리쳤을까? 랭포드는 왼쪽 어깨가 통으로 잘려나가며 소총을 떨구었다. 랭포드는 비틀거리며 뒤돌았으나, 상처에 의해 숨이 점점 끊어져가고 있었다. 랭포드는 마침내 땅바닥에 엎어져 마지막 숨을 뱉기 직전 팔런과 눈이 마주쳤다.
"고, 고마워..."
"아.."
쿵. 랭포드가 바닥에 쓰러지며 숨이 끊어졌다. 그의 차폐복이 취익거리는 소리를 연신 울려대며 재생제를 투여하고 있었으나 상처는 너무 심각해 랭포드를 구할 수는 없었다.
"제기랄. 제기랄. 갑자기 랭포드가 왜..."
피터가 크윽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대원들 사이에서 절망이 피어나자, 3 거주 구역으로 가는 문을 막고 있던 괴물 놈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크크.. 크하하하하하!!"
"이 새끼..."
피터는 눈을 부라리며 놈을 쳐다보았다. 놈은 아직도 웃기다는 듯 창을 땅바닥에 쿵쿵 쳐대며 웃어대고 있었다. 피터는 가증스럽게 웃어대는 놈의 면상을 보고 두려움 대신 분노를 느꼈다. 비록 고대의 파충류와 인간의 모습을 적절히 섞어놓은 면상이 공포스럽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피터의 분노는 그 공포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묻어버릴 만큼 불타오르고 있었다.
"피터, 진정해, 혼자서는 놈을 이길 수 없을거야."
동료를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충격에 잠긴 팔런을 데리고 보호하던 코리와 하겐이 그에게 조심스레 다가와 말했다.
"맞아. 일단 진정해. 놈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야."
칼리브레도 피터의 분노를 다독이며 이성적으로 그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피터는 글라디오의 손잡이를 잡은 손을 꽈득 쥐고는 그들에게 조용히 을렀다.
"내가 놈과 싸우며 접근을 저지하면... 너희는 놈을 타격해 어떻게든 치명상을 입혀. 끝은 내가 낼테니까."
"뭐라고?"
피터는 그들에게 대답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는 쓰러진 랭포드의 시체에서 글라디오를 뽑아들었다. 랭포드의 시신을 다른 소대원들이 수습하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이제 그의 양손에는 글라디오가 들려 있었다.
그는 대원들을 훨씬 뒤로 물러나게 시키고는 괴물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놈을 마주했다. 괴물은 자신에게 홀로 맞서는 피터가 귀엽다는 듯 그를 내려다보며 피식 콧방귀를 뀌었다.
"너, 쳐 웃어댔으니 지능은 얼마든지 있겠지? 있으면 대답해라."
"크크."
"이 새끼가.... 좋아. 나는 연방 육군 보병단 소속 피터 메이슨 준위다. 지금 이 자리에서 네놈의 목을 베어갈 것을 선포하마."
"..."
"알아듣고 있잖냐?"
"가소롭지만.. 미천한 네놈에게 이몸의 소개라도 해줘야겠구나. 나는 지옥의 군세, 악마! 악귀! 나이트 크로울러!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우지. 네놈들의 선조가 그리도 두려워했던 악마들말이다."
"...악마."
"머리가 얼얼한가보군. 네놈들의 잘난 연방에서는 우리들의 존재를 암암리에 숨겨왔다지? 너희같이 여린 놈들에게는 너무나 큰 파도였으니까 말이야!"
악마는 그렇게 웃으며 창을 피터에게로 겨누었다.
"이제, 지옥 군세의 선발대 위트겡님이 네놈들의 머리를 가져가도록하마."
위트겡이라고 불리우는 악마가 창을 내질렀다. 놈의 창에 매달린 해골들과 베베꼬인 독사들이 비명을 질러대며 피터에게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피터는 이미 알고있었다는 듯이 놈의 창을 옆으로 피했다.
"?"
위트겡은 피터의 머리를 베어버리기 위해 그의 머리를 향해서 창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번에도 창은 허공을 가르며 빗나갈 뿐이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은 피터는 차폐복의 신체 강화능력으로 재빨리 움직여, 위트겡의 복부에서 허벅지까지 대각선으로 그어버렸다.
"크으르르르!!"
위트겡이 고통에 으르렁거렸다. 그는 자신의 상처를 잠시 쥐고는 새어나오는 피를 흘긋 보더니, 미친 사람처럼 킥킥 웃어댔다.
"크크, 크크크, 키하하하하하!"
"뒤질 것 같으니까 정신을 못차리겠나? 악마 나으리."
"크카하하하. 내가 왜 웃었겠는지 너는 모르겠지. 너같은 놈을 타락시킨다면... 지옥 군세에서도 나의 가치를 알아줄 것이다.. 네놈은 능력이 있다. 우리가 탐하는 능력이 있어."
"뭐라고?"
"마인드 능력자... 그중에서도 짧지만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능력자. 네놈은 자신의 능력을 아직도 파악하지 못했나?"
"무슨 소리를-"
"그만-! 네놈은 그저 예지몽을 자주 꾼다거나.. 상대방의 행동이 간단히 예측되는 것을 느낀 적이 있겠지. 그게 너의 재능이다. 그렇게 너의 재능이 모습을 드러내는 거야."
위트겡은 다시 창을 고쳐잡았다. 놈의 상처는 완전히 말끔해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네놈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것이다."
"그래봤자 네 공격은 또 막힐텐데!"
피터는 위트겡의 공격을 피하며 맞받아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위트겡의 행동이 예상되지 않았다. 오히려 위트겡의 수십가지 행동이 머릿속에서 흩뿌려지며 예상이 불가능할정도로 헤집어 놓았다.
"뭐-"
피터의 왼팔이 날아갔다. 정확히는 피터의 왼팔이 창에 베여지며 잘린 팔이 천장에 닿았던 것이었다. 피터는 경악한 표정으로 자신의 잘린 팔을 목격했다. 위트겡의 웃음과 같이 붉게 빛나는 복부의 커다란 문양도.
"크으아아악!"
"...이렇게나 간단한 것을."
"피터-!!"
후미에 있던 에리가 충격받아 굳어버린 대원들을 밀치며 달려왔다. 피터의 절친한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피터는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동기들을 멈춰 세웠다. 비록 그는 고통이 자신을 둘러싸며 괴롭게하는 순간에도, 차폐복에서 투입되는 재생제와 모르핀덕에 똑바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오지마! 벌써 잊었어!?"
"하, 하지만."
"멈춰. 에리. 피터의 말을 잊지 않았겠지."
하겐이 에리를 제지하며 그녀를 가로막았다. 에리가 하겐을 쳐다보자 하겐의 얼굴도 불안감에 가득 사로 잡혀 있는 상태였다.
"제기랄, 나도 불안하지만.. 피터가 남긴 말을 잊었어?!"
"...젠장!"
에리가 주먹을 꽈득 쥐며 뒤돌았다. 하겐이 코리에게 고개를 끄덕하자 코리가 알겠다는 듯이 끄덕이며 그에게 답했다. 코리는 휘파람을 삐익하고 불며 대원들 중 누군가를 불렀다.
"마리."
"..."
마리는 대원들을 젖히고는 조심스럽게 걸어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스코프가 달린 지정사수 소총이 들려져 있었다.
"랭포드의 소총."
마리가 랭포드의 지정사수소총을 들어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악마의 머리를 박살내겠다며 소총의 탄환을 확인했다.
"오, 고통의 신음을 참으며 아둥바둥대는 모습이 너무나도 가엽구나."
위트겡은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발로 피터를 걷어찼다. 피터는 그의 공격을 피하지 못한채 복부에 강한 충격을 받고 뒤로 넘어졌다.
"으윽."
"네놈을 죽이지는 않겠다. 다만 누누이 말했듯 우리의 것으로 만들것이야."
위트겡이 피터의 가슴팍에 발을 올리고는 그와 눈을 마주쳤다. 위트겡의 옥죄는 시선이 피터에게 흘렀다. 피터는 위트겡의 시선과 마주치고는 눈이 새카맣게 변하며 몸을 떨었다.
"그래, 그래. 그렇게 받아들여라.. 크흐흐."
피터의 눈이 더욱 까매졌다. 하지만 그 순간 피터는 글라디오를 쥔 오른손을 한번 떨었다.
"...좆까."
피터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러자 눈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피터는 그의 몸이 떨리던 것도 멈추었음을 느꼈다.
"이, 이새끼. 어떻게 악마의 시선을 견디는-"
"네 뒷걱정이나 해. 멍청한 새끼야."
[타콰앙!]
당황하는 위트겡의 턱에 커다란 탄환이 날아들었다. 위트겡의 턱은 깨끗이 관통당하며 수박만한 구멍이 뚫어져 뒷편이 훤하게 보였다.
"쿠오옥..."
위트겡은 완전히 파괴된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뒤로 몇걸음 물러섰다. 위트겡은 자신의 자랑스러운 턱이 파괴되었음을 느끼고 분노에 몸을 경련했다.
"크, 크으으,, 쿠오아아아아아-!!"
방금전까지 자신만만하던 위트겡은 완전 다른 모습으로 포효했다. 놈은 분노와 함께 저주받은 욕설들을 뿜기 시작했다.
"이, 이 미천한 개새끼들이이-! 창녀와 돼지새끼들 사이에서 태어난 미개한 놈들이 내게 감히!! 네놈들을 노예로 만들어주마, 사지를 잘라 포박해 1만년간 능욕해주마-!!! 네놈들의 도시를 불태우고 가족들을 찢어죽여주마-!!"
[타콰앙!]
다시 한번 소총의 총성이 크게 울려퍼졌다. 이번에는 위트겡의 복부에서 붉게 빛나던 문양이었다. 문양이 그려진 복부에 구멍이 뚫리며 붉은 빛이 사그라들었다. 붉은 빛이 사그라들자, 피터는 다시 자신의 예측이 뇌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아아아아악, 그흐.. 그흐하하하..."
위트겡은 고통을 느끼면서도 흥분하고 있었다. 그가 악마여서 였을까, 죽음에까지 다다른 공포와 고통은 그에게 황홀함을 선사하고 있었다.
"이제는, 다시 예측이 된다.. 그리고.. 너의 끝이다."
피터는 자리에서 비틀대며 일어섰다. 차폐복이 그의 팔을 감싸며 출혈을 멎게하는 모습이 위트겡의 눈에 들어왔다. 위트겡은 고귀한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저 필멸자에게 죽음을 주기위해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크아아아아--!"
"이제는 다 보인다고 했잖아."
피터는 옆으로 걷듯 위트겡의 공격을 피했다. 비록 위트겡이 너무 빨라서 그의 복부가 위트겡의 손톱에 긁혔을지라도. 피터는 엎어진 위트겡의 머리에 한손에 쥔 글라디오를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