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침입자들 1]
벨라토르 중대를 환영하는 축제가 점점 잦아드는 순간에도, 궤도 기지 해병들은 에테리얼 슈트를 착용하고 기지의 표면을 걷고 있었다. 오늘같은 축제 때는 그들의 경비와 수비력이 빛나야만 하는 날이었기에, 다들 어두운 우주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적을 경계하고 있었다.
"마이티. 거기는 어때?"
에테리얼 슈트를 착용한 해병이 자신의 헬멧 왼쪽 부분을 꾹 누르며 교신을 보냈다.
"여기는 아~주 괜찮아. 내 기관포가 조금 낑낑 거리는 소리를 내긴 하지만."
"좋아. 레인은?"
"방금 막 기지 표면의 파손된 부분을 수리했어. 다른 곳은 괜찮나 찾아볼게."
"오케이. 나머지는?"
"일단 대기중이야. 적의 기습은 없는 것 같아."
"여기도."
"이쪽도."
"좋았어. 다들 자리에서 대기하고 무슨 일 있음 바로바로 보고해줘. 통신 종료."
기켄은 자신의 헬멧을 꾹 눌러 무전망에서 나왔다. 그는 저 멀리 빛나며 고고하게 자리를 지키는 은하수의 별들을 바라보았다. 새까만 우주 사이사이에 점점이 뿌려진 별들은 깊은 바닷속에서 빛나는 푸른 산호초들 같았다. 기켄은 빛나는 별들과 아름다운 은하계를 바라보며 궤도 해병을 선택한 것은 정말 잘한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잠시 궤도 기지 표면에 앉았다. 기지의 경비 일도 경비 일이지만, 잠시나마 우주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그는 수송선들이 병사들을 실어나르며 우주를 가로지르고 어딘가로 날아가는 것들과 주위를 지나가는 커다란 함선의 모습도 보았다. 그의 에테리얼 슈트는 지잉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보는 아름다운 것들을 자동으로 녹화하며 나중에라도 또 볼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
어두운 우주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이윽고 수십발의 포탄들이 날아오며 우주 궤도 기지의 표면에 꽂혔다. 포탄들은 즉각적으로 폭발하며 궤도 기지에 상당한 피해를 입히기 시작했다. 어느 거주 구역이 폭발하며 시체가 우주 공간으로 빨려 나가는 모습이 기켄의 눈에 들어왔다. 궤도 기지 내부에서는 갑작스런 공격에 어안이 벙벙해진 병사들이 당황하고 있었고, 기지의 자동화 기계들이 폭발이 일어난 부분을 게이트를 내려 차단시켰다.
"제길, 뭐야!?"
포탄이 궤도 기지의 표면을 헤집자, 이윽고 팔콘 수십대가 궤도 기지 표면 여러곳에 기체를 꼴아박으며 멈추었다. 충돌로 인한 연기와 파편들이 튀고 잠시 후, 그곳에서는 차폐복을 입은 병사들이 내리고 있었다.
"모두 죽여라!"
병사들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장교가 궤도 기지 표면의 뚫린 부분으로 병사들을 투입시켰다. 병사들은 게이트에 폭발물을 설치하고는 뒤로 잠시 물러났다. 폭발이 일어나며 게이트가 파괴되자 병사들이 총을 앞으로 겨누고 침투하기 시작했다.
"저기도 연방의 개들이 있다!"
수송선에서 막 내린 어느 이름모를 병사가 기켄을 가리키며 총질을 해댔다. 기켄의 에테리얼 슈트에 총탄이 스치며 기익하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났다.
"적인가! 복장은 연방군과 다를 바가 없는데..!"
차폐복을 입은 병사들은 계속해서 기켄을 향해 총질을 했다. 기켄은 에테리얼 슈트의 신발 바닥 아래에서 일어나는 중력으로 버틴 뒤, 자신의 기관포를 꺼냈다.
"어쩔 수 없지!"
기켄이 등에 매달고 있던 기관포가 펼쳐지며 그의 왼쪽 어깨에 장착되었다. 그가 반동을 견디기 위한 자세를 잡자마자, 기관포의 총탄들이 병사들에게로 날아들었다.
"크윽!"
"크아아악!"
"악!"
차폐복을 입은 병사들은 각각 비명을 지르며 36mm 기관포에 몸이 찢겨져 나갔다. 그들의 잘려나간 사지와 살점이 우주 공간으로 흩뿌려져 외관상 결코 좋지 않은 풍경이 생겨났다.
"빌어먹을! 왜 공격해오는거지?!"
"씨팔! 브라운이 놈들의 유탄에 맞았어!"
"기켄!! 명령을 내려줘!"
"으아아악!"
기켄의 헬멧에서 자신의 분대원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 또한 궤도 기지를 습격한 이들과 교전하고 있음이 틀림 없었다. 기켄은 자신의 헬멧을 꾹 누르며 그들에게 최선의 명령을 하달했다.
"놈들은 아군이 아니야! 그냥 교전해! 그리고 각자 살아남아서 제 2광장으로 모여!"
"알겠어!"
기켄은 말을 마치며 다시 기관포에서 불을 뿜었다. 차폐복을 입은 침입자들 몇명이 그의 총격에 맞아 몸이 터져나가며 즉사했다.
"씨팔.. 일단 녀석들과 합류하는게 우선이야. 혼자서는 오래 못막아."
혼잣말을 마친 기켄은 기관포를 쏘며 달려나갔다. 그는 침입자들이 쏜 포탄에 파괴된 표면을 찾아 그곳으로 살포시 들어갔다. 그가 기지 내부로 들어가자 때마침 치익 소리를 내며 손상된 표면이 덮이기 시작했다.
"여기는 걱정 안해도 되겠다."
그는 아까 침입자들이 폭발물을 설치해 파괴시킨 게이트를 비집고 들어갔다. 복도에는 갑작스런 기습에 반응하지 못한 일반 병사들의 시신이 널려 있었다. 차폐복을 입은 침입자들이 그들을 학살한 것이 분명했다.
"젠장. 젠장. 젠장!"
기켄은 시체들의 사이를 걸으며 피범벅인 복도를 살폈다. 복도의 바닥에는 갈수록 탄피들과 탄흔이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뭐하는 자식들이지? 연방군의 장비를 착용하고 연방군을 기습한다... 시발. 모르겠다... 헉-!"
그는 차폐복을 입은 7명이 비무장한 병사들을 무릎꿇려놓고 총으로 위협하는 것을 보았다. 기켄은 빠르게 벽뒤로 숨었고, 차폐복의 침입자 한 명이 기켄의 접근을 느끼고는 잠시 뒤돌았다가 다시 비무장한 병사들에게 총을 겨누었다. 기켄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주위를 살폈다. 그의 눈에 뭔가를 쥐고 죽어있는 병사가 보였다.
"젠장, 저 병사들을 구해야하는데! 엇, 근데 이거는..."
"잘 들어라. 연방의 쓰레기들아. 너희들은 진정한 구원을 받을테냐, 아니면 망해가는 연방과 같이 불씨가 되어 재가 될테냐? 선택해라."
지휘관으로 보이는 침입자가 병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옆에는 병사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다른 침입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좆까! 연방을 배신할 바에는 티스 놈들이랑 떡을 치고말지."
"?"
놈들의 지휘관은 욕설의 근원지를 찾아 병사들을 살폈다. 그는 앞에서 무릎 꿇고 있던 어느 병사를 걷어차 그의 머리에 권총을 쏘아버리고는 그 뒤에 있는 여성의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너지?"
"그래, 나다! 이 좆만아!"
"하, 이 발칙한년 좀 봐라. 제군들. 이런 '도발'이 우리에게 먹힌다고 생각하나보지?"
"하하하하!"
"하하하하!"
지휘관과 침입자들을 그녀를 비웃듯 크게 웃었다. 지휘관은 자신의 권총을 홀스터에 집어넣고는 그녀의 배를 강하게 걷어차고 턱에 주먹을 꽂았다.
"욱! 우윽..."
복부를 걷어차이고 턱을 맞아 이빨이 몇개 날아간 병사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병사는 신음하며 입에서 피를 퉷 뱉었다. 지휘관은 그녀의 머리채를 다시 잡아 관자놀이에 권총을 들이댔다.
"자, 다시 말해봐라. 말을 잘하면 살려줄지도 모르지."
"..."
"빨리 말해보라니깐?"
"퉷!"
그녀는 피가 섞인 가래를 지휘관의 헬멧에 뱉었다. 그의 바이져에 끈적한 핏덩이가 늘어지며 흘렀다.
"이 망할년이!"
지휘관은 흥분하며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다. 기켄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만."
"?"
"그만하라는 소리 안 들리냐?"
"뭐야. 궤도 해병이잖아. 죽여!"
지휘관이 명령을 내리자 포로들을 위협하던 침입자들이 뒤돌아서 그에게 총기를 난사했다. 하지만 기켄은 날아오는 총탄을 피하지 않았다.
"어?"
"뭐야?!"
침입자들의 당황한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왔다. 그들이 발사한 총탄들은 놀랍게도 기켄의 주위에 멈춰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기켄에게 닿지 못한 총알들은 잠시 멈추다가 땅바닥에 툭 떨어졌다.
"뭐하는 놈이지?!"
"휴. 보호막 발생기를 주운 건 신의 한 수였군. 그래도 유탄이라도 쏘는 줄 알고 켰는데... 총탄 정도면 그냥 맞으면서 버틸걸 그랬네."
기켄이 에테리얼 슈트의 가슴팍을 툭툭 두들겼다.
"제길, 다들 포로놈들 옆으로 뭍어라!"
지휘관은 당황했지만 순간 침착하며 자신의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포로들을 방패로 쓴다면 놈은 기관포를 쓰지 못할거다!"
"... 아, 어디에서 굴러먹던 놈들인지는 모르겠는데. 영악하네 거."
"사격! 사격!"
포로들을 방패로 내세운 침입자들이 다시 그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하지만 기켄은 자신의 양팔을 들어올리며 항복의 의사를 내비쳤다.
"잠깐."
"뒤질 준비나 해라! 연방의 개새끼들아!"
"잠깐이라고."
"뭐가 잠깐이야?! 죽어라!"
"내가 잠깐이라고 말한 건 내 손한테 말한거야. 빙신아."
양팔을 들고 있던 기켄이 그의 팔을 내려 침입자들에게 뻗었다. 그는 검지 손가락을 펼쳐 권총모양으로 만들었다. 그의 검지 손가락에서는 잠깐 번뜩이는 빛이 나더니 형광색 레이져탄이 발사되었다.
"윽!"
"아악!"
레이져탄은 침입자 두명의 머리통을 녹여버리며 쓰러트렸다. 당황한 다른 침입자들이 총기를 발사하자, 총탄들이 기켄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기켄은 계속해서 손가락으로 침입자들을 겨누며 레이져탄을 발사했다.
"크아악!"
"으억!"
지휘관을 제외한 다른 침입자들이 레이져탄에 목숨을 잃었다. 지휘관은 계속해서 기켄에게 총을 쏘며 물러나고 있었다. 자신의 헬멧쪽으로 날아오는 총탄을 방어하던 기켄은 그의 팔을 쏘아 총기를 떨어트리게 만들었다.
"아악!"
레이져탄이 차폐복을 뚫고 놈의 팔을 녹였다. 놈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그때를 놓치지 않은 포로들이 놈을 붙잡고 총기를 빼앗았다. 기켄은 그들에게 터벅터벅 걸어가며 쓰러진 지휘관을 노려보았다.
"이.. 이.. 연방의 개새끼들이--!!"
"할 말이 그것뿐인가?"
"너희들은 진정한 구원을 무시하고 있다! 우리가 진정한 구원-"
놈의 머리가 총탄에 박살나며 말이 끊겼다. 총을 쏜 것은 처음에 복부와 턱을 맞은 병사였다. 기켄은 그들에게 뒷정리를 부탁한다며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놈들이 아직 남아있으니, 조심하고. 나는 더 앞으로 나가볼테니 여기를 부탁할게."
"ㄴ,네! 감사합니다.."
포로들은 기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경례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