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꿀같은 휴가 2]
"엄청 시끄럽네."
"그러게나 말이다."
"다른 녀석들은 어디에있지?"
축제가 한창 열리는 제 2광장에서는 수천 명의 인구가 몰려 왁자지껄 떠들거나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코리는 어느샌가 팔뚝만한 핫도그를 구해와 크게 한 입 베어무는 중이었다. 그는 얼굴에 기쁨을 가득 띄우고는 이것저것 먹어보고 싶다며 흥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 피터. 저기 애들있네."
칼리브레가 손가락으로 소대원들이 몰려있는 곳을 가리켰다. 에리나 마리 등, 피터의 소대원이자 동료들이 축제의 열기에서 잠시 빠져나와 모여있었다. 피터가 그들에게 접근하니 에리가 빛나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피터!"
"역시 무서운 아지매가 있네.."
하겐이 피터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피터는 끄응하며 마지못해 에리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에리. 나도 반가운데, 우리 애들이 왜이리 안 보여? 좀 적은 것 같은데?"
동료들이 몰려있다고는 했지만 고작 8명 정도만이 피터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에리는 피터의 질문에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어, 그게.. 동기들 방 돌아다니면서 축제 가자고 말해봤거든? 근데 다들 시끄럽다고 안 간다던 녀석이 태반이었어. 여기 8명도 반절은 끌려나온 애들이걸랑."
"그으래..."
"뭐! 얼마나 나왔든간에 무슨 상관이야? 오늘은 열심히 즐기자. 이런 날은 얼마 없다고!"
에리와 피터 사이로 끼어든 코리가 연어빵을 씹으며 왁자지껄 떠들었다. 그가 들고있던 핫도그는 칼리브레와 하겐이 조금씩 나눠먹고 있었다. 완전히 들뜬 코리는 피터만와 마리만을 남겨두고 동기들을 이끌었다. 둘을 제외한 동기들은 코리와 함께 가판대가 늘여진 길로 걸어들어갔다. 에리는 코리의 손에 이끌려가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 잠, 잠깐-"
"에이! 에이! 가자고~!"
코리는 들뜬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지 에리가 말하는 것도 무시하며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그는 에리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을 데려가면서 피터를 살짝 돌아보고 윙크를 건넸다. 마리와 어떻게든 잘 끝내보라는 뜻이었다. 피터는 그의 의도를 알아채리고는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마리와 단 둘이 남게된 피터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를 어색하게 쳐다보았다. 마리도 큼하며 헛기침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어색하게 피터와 눈을 맞추고는 같이 걷자고 말했다.
"... 같이 걷자."
"응."
마리와 피터가 가판대 사이를 걸으며 처음으로 본 것은 *페키를 수족관 안에 전시해놓고 파는 곳이었다.
(*페키: 7000년대의 물고기. 10cm 부터 2m의 크기로, 물이 있는 행성이면 어디서든 살 정도로 적응력이 뛰어남.)
마리는 페키를 보자마자 눈이 동그래지며 귀엽다고 피터를 잡아끌었다. 피터는 얼떨결에 그녀에게 끌려 가판대 앞으로 가게 되었다.
"이거, 얼마에요? 저희 방에 전시해 두려구요!"
가판대를 맡고 있던 병사는 손님이 오자 헬멧을 똑바로 쓰며 2마리는 무료로 드린다며 가져가라고 말했다.
"진짜요? 그럼 저랑, 이 친구 1마리씩 주실래요?"
"어우, 그럼요. 근데 못보던 얼굴이네? 어디서 발령받고 오셨나?"
"아, 저희는 오레스 01 행성에서 주둔하다 발령받았어요."
"오~ 오레스 01이면 온갖 꼴을 다 보셨겠구만. 자, 여깄습니다."
병사는 페키를 담은 봉투 2개를 마리에게 건넸다. 마리는 기분좋게 그에게 인사하고는 피터와 함께 자리를 떴다. 또 다시 가판대 사이를 걸으며, 마리는 페키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와, 엄청 꼬물거린다. 귀여워. 준위, 아니.. 피터도 그렇지?"
"응. 그렇네."
이곳저곳에 흥미를 보이는 마리와는 달리 피터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마리를 딱히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도 아닌데다가, 축제도 그렇게 오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동기들이자 자신의 대원들이 조금이라도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온 것이었다.
"오! 피터! 저기 봐!"
피터보다 앞서가던 마리가 뒤돌며 어느 가판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벨라토르 군단원 한 명이 글라디오를 전시해놓고 있었다. 벨라토르는 갑옷을 벗고 있었음에도 키가 2m를 훌쩍넘는 거구였다. 몸의 근육과 덩치는 전투만을 위해 단련되있었음이 틀림없었다.
마리와 피터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음을 알아챈 벨라토르 군단원이 그들에게 손짓했다. 와서 해보라는 뜻 같았다. 마리는 벨라토르가 손짓하자 피터의 손목을 잡고 그에게로 달려갔다.
"반갑다. 형제자매들이여. 이 글라디오로 높은 점수를 내 보고 싶지 않은가?"
벨라토르는 진열된 글라디오 옆에 주루룩 놓인 허수아비들을 가리켰다. 허수아비들 아래에는 LED로 번쩍이는 점수판이 놓여져 있었다.
"간단하다네. 허수아비에게 글라디오를 휘둘러 점수가 가장 높게 나온 자가 승리하고 상을 받는 것이네."
"재밌겠다! 피터, 어때?"
"어, 응? 해보지 뭐."
"허허. 그렇게 간단한 마음으로 휘두르면 점수가 잘 나오지 않을텐데."
벨라토르는 피터에게 글라디오를 건넸다. 피터와 마리 뒤에 서 있던 사람들도 벨라토르에게 검을 건네받고는 4개의 허수아비들 앞에 섰다. 피터가 나가기 전, 마리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피터를 쳐다보았다. 피터는 그녀의 눈길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멋쩍게 웃으며 허수아비 앞에 섰다.
"규칙은 간단하네! 2번! 단 2번의 *합으로 허수아비를 공격하고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하면 되네! 시작하게나!"
벨라토르가 말을 끝내자, 축제에 참가한 병사들이 글라디오를 휘둘러 허수아비를 베었다. 처음 벤 병사는 허수아비에게 그다지 상처를 입히지 못하고 300점이라는 점수를 받았다.
"음. 300점이라. 자네는 검술 훈련을 좀 더 하는게 좋겠군."
두 번째 병사가 검을 휘둘러 허수아비의 가슴팍을 베었다. 다음 공격은 복부를 베는 것이었다. 띠링하는 소리와 함께 LED 판이 번쩍이며 점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682점! 나쁘지 않군! 최고 점수가 800점이니. 그럼 다음!"
벨라토르는 조금 웃어보이며 다음 타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음 병사는 검을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잡아가며 힘을 테스트하던 피터였다.
"휘둘러보게나."
"아, 네. 뭐."
피터는 양손으로 글라디오를 잡은 후 허수아비를 향해 두 번 베었다. 허수아비의 목과 가슴팍이 베이며 3등분으로 잘려나갔다.
"와!"
"쩐다!"
"뭐하는 녀석이지?"
구경하고 있던 병사들이 수군거리며 감탄했다. 벨라토르는 피터의 손을 잡아 올리며 더이상 볼 것도 없다며 승리를 선포했다.
"더이상 볼 것도 없구만! 이 자가 승리했네!"
"와-!"
마리는 펄쩍 뛰며 피터를 껴안았다. 피터는 볼을 긁적이며 그녀를 살포시 떼어냈다.
"피터! 역시 믿고 있었지! 피터는 훈련병 동기일 때부터 압도적인 수석이었으니까.."
"어. 그랬지. 기억하고 있었네?"
"응!"
벨라토르는 잠시 가판대 뒤로 돌아가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그는 벨라토르 봉제 인형을 손에 들고 있었고, 그 인형을 마리에게 내밀었다.
"아무래도 여자친구에게 주는게 맞겠지?"
벨라토르는 호탕하게 웃으며 더 도전할 사람이 없냐며 외쳤다. 구경하던 이들 사이에서도 벨라토르의 말에 참가하겠다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왔다.
봉제 인형을 가만히 껴안고 쳐다보던 마리에게 피터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녀의 볼은 부끄러운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마리, 이제 가야지. 뭐라도 먹을래?"
"...응."
"흠, 뭘 먹을까..."
마리와 함께 푸드 코너를 걷던 피터는 도처에 널린 맛있는 음식들을 보며 심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의 뒤를 바싹 붙어 걷던 마리는 봉제 인형을 만지작 거리며 벨라토르 군단원에게 들었던 말을 되새겼다.
"여.. 여자친구라.."
"응? 뭐라고?"
"아, 아무것도 아니야!"
마리는 고개를 흔들며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피터는 알았다며 음식을 뭘 먹을까하며 그녀에게 질문했다.
"그래? 근데 음식이 너무 많아서 잘 모르겠는데, 너 뭐 먹을래?"
"어? 나도 모, 모르겠어! 네가 골라주라."
"엉. 그러지 뭐."
피터는 다시 앞을 쳐다보며 푸드 코트의 표지판들을 읽었다. 마리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두근대는 가슴을 억눌렀다.
"(왜 두근대는거지? 왜?)"
마리는 잠시 피터를 처음 본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검술 훈련 도중, 유일하게 교관에게 칭찬을 받은 훈련병. 피터 메이슨. 비록 그녀도 상위 5인 안에 들 정도의 실력이 있었지만 피터와의 차이는 메꾸기 어려울 정도로 넓고 깊었다. 어렸을 때부터 고향에서 가문의 전통이라는 이유로 검술을 배워온 그녀는 자신보다 검술에 뛰어난 이들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징병 대상자에 속하고, 결국 가문의 힘으로도 징병 대상자에 벗어나지 못한 채 훈련병이 되었을 때 본 실력자는 바로 피터였다. 피터는 그녀가 원하던 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강함과 이유를 알기위해, 또 그처럼 검을 휘두르기 위해, 그래서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무릅쓰고 그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해보기도 했다. 지금처럼 단 둘이 있어달라며 부탁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그녀는 피터를 자신보다 뛰어난 실력자라고 여김과 동시에 호감이 들었다. 그의 검술을 닮고 싶다, 라는 마음은 점점 호감의 감정으로 변해갔다. 어렸을 때부터 가혹한 검술 훈련만을 받아온 그녀에게는 피터같은 실력자야말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더이상 '검술 실력'만이 호감의 원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찌 되었든 사랑이란 것을 해보지 못한 '소녀의 마음'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두근대는 자신의 마음에 조금 솔직해져보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