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0화 〉(외전)[지옥 군세의 침공] (40/131)



〈 40화 〉(외전)[지옥 군세의 침공]

깜깜하던 4은하계에 진동이 울리기 시작한다. 이 진동은 거대한 폭풍을 암시하듯 넓게, 크게 울려퍼진다. 이윽고 어두운 4은하계 한복판에 눈부신 섬광이 발산하며 주위의 행성과 모든 것을 날려버린다. 우주의 폭발이자 가장 강력한 폭발, 초신성 폭발이었다. 알 수 없는 힘으로 인해 폭발한 별들은 커다란 중성자별을 만들어내며 현실이라는 공간을 조금씩 구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폭발한 별들은 다시 뭉쳐지며 중성자별로 변한다. 중성자별은 더욱더 자신의 몸을 구기고 붕괴시키며 압축한다. 마치 자신의 몸을 먹어치우며 죽어가는 동물들처럼. 자신들을 압축한 중성자별들은 한 데 모여 커다란 블랙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침내 어두컴컴하고 커다란 블랙홀이 은하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블랙홀. 하지만 그것은 그 무엇도 빨아들이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내뿜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4은하계만이 겪은 현상이 아니었다. 인류 수호 연방의 5개의 은하 중, 1은하만 빼고 모든 은하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었다.


블랙홀들은 모습을 드러내며 주위의 전자기기와 통신기기를 잠시 먹통으로 만들었고,  충격파는 우주 전체로 퍼져나갔다. 사태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연방 정부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상 최대 크기의 블랙홀과 초신성 폭발의 원인을 찾기 위해 일반 보병들로 이루어진 탐사팀을 파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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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제스. 저걸 봐라."


"이야.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크기 한번 죽여주시네."

테니가 수송선의 창 밖으로 비춰진 블랙홀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제스는 상상하기 힘들정도로 커다란 블랙홀의 크기에 잠시 넋이나가 감탄하였다. 블랙홀은 은하계 한복판에 고고히 멈춰서 자신의 위상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다들 차폐복 착용해."


차폐복을 착용한 연대 장교가 수송선 내부를 걸으며 명령했다. 병사들은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올리며 차폐복이 몸을 감싸는 것을 기다렸다. 제스와 테니를 포함, 5천명의 보병 연대는 4은하에 나타난 블랙홀과 초신성 폭발의 탐사와 연구를 위해 투입된 것이었다. 모든 병사들이 그렇진 않았지만 몇몇 병사들은 별 것도 아닌 일로 연방 정부가 호들갑 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블랙홀이나 초신성 폭발이 일어나는 것은 가끔 있는 일이었으니까.

"우리 연대는 블랙홀에서 그나마 제일 가까운 에코즈003 행성의 지표면에 착륙한다. 5천명이나 되니까, 뭐 금방 조사가 끝나겠지. 착륙하면 각 소대로 나뉘어 조사해라. 그리고 곧 도착하니까 다들 준비해."

연대 장교는 말을 마치고 조종석으로 걸어갔다.

"그나저나. 존나 별볼일 없는 걸로 굴려대는구만."


"테니. 무슨 말을 그렇게하냐. 연방 정부의 명령이잖아. 이번 초신성 폭발과 블랙홀이 관측된 것들 중 최고의 크기래더라."

"어휴. 그래봤자 내 삶엔 아무런 영향도 없다고. 지긋지긋한 군생활. 3년이나 남았네, 씨팔."

테니가 이것저것 불평하고 있는 도중에도 수송선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몇  지나지 않아서, 5대의 수송선이 에코즈003 행성 지표면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수송선들이 게이트를 내리자 착륙한 병사들은 명령받은대로 한 소대씩 팀을 나눠 행성 곳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제스와 테니도 차폐복에서 흐르는 맑은 산소를 들이마시며 황폐화 된 에코즈003 위를 걸었다. 그들의 뒤에는 30명의 병사들이 주위를 경계하며 걷고 있었다.


"저기는 도시 같은 곳인가?"

제스가 흙먼지가 나부끼는 어느 도시의 잔해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런  같은데. 우리는 저기를 수색해 보자고."


테니가 손을 뻗어 도시의 잔해를 향해 휘두르자, 병사 몇명이 선두로 나가 주위를 살폈다. 병사들이 도시의 입구로 가까이 다가가자, 도시의 환영하는 전광판이 아직 형형색색으로 점등하며 그들을 힘없이 맞이하고 있었다.

"음. 초신성 폭발을 아무리 멀리서 맞았더라도 맞긴 했다면 핵이라도 맞은 것 마냥 지표면이 싸그리 쓸려나갔어야하는데. 이런 건물들의 잔해가 남아있다는게 믿기지 않는걸."

"...그리고 저기 묻은 피는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니었던 것 같네."


제스의 말에 테니가 표지판을 올려다보며 자세히 살폈다. 전광판에는 피가 묻은 손바닥들이 덕지덕지 찍혀있어 보는 사람에게 소름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더 가보자."


궁금증이 든 제스는 소대원들과 도시 안으로 더욱 진입했다. 그들이 도시 안으로 진입할수록 이상하게 흙먼지와 바람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도시 안으로 깊숙이 진입한 그들은 폐허가  학교나 건물들을 보며 이상함을 느꼈다.

"... 이 주위는 더이상 초신성 폭발이 닿지 않은  같은데."


건물들을 살펴보던 테니는 문득 무너지지 않은 건물 위에서 휘날리는 것들을 보았다.

"애들아. 저 위에 있는 거 뭐냐?"


테니의 말에 건물 위로 소대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건물 위에는 무언가가 인형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했다.


"니치.  줘봐."


"네."


소대 지정사수에게 소총을 받아든 테니는 건물 위를 확대해 쳐다보았다. 그는 건물 위에서 나부끼는 것의 정체를 알아차리고는 헬멧의 바이져를 열어 토악질을 해댔다.


"이봐! 왜그래?! 빨리 바이져 올려! 초신성 폭발이 난 곳은 방사능이 엄청나다고!"

병사 한 명이 테니를 걱정하며 다가왔다. 그러나 테니는 말 없이 소총을 건네주며 건물 위를 가리켰다. 병사는 약간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소총을 받아들고는 건물 위를 자세히 확대했다.

"어..? 어.. 으, 으아.."


소총의 조준경에서 눈을 떼자마자 병사는 기겁하며 땅에 털퍼덕 앉았다. 제스는 무슨 일이냐며 그들에게서 총을 빼앗아 건물 위를 확인했다.


"... 씨발. 저게 뭐야?"


건물 위에서 나부끼던 것은 이미 죽은 시체였다. 뼈와 근육이 없는 시체의 살가죽이,  남지 않은 장기들과 함께 장대에 걸려 휘날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체 누가 저런 짓을 한단 말인가? 초신성 폭발로 인해 모든 것이 없어질 찰나에, 저런 짓을 한다. 제스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야?"

"뭐야?!"

동료들의 질문에 조준경에서 눈을 뗀 제스는 시선을 피하며 얼버무렸다. 너무나 끔찍한 광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살가죽과 장기들이 나부끼고 있더군.. 대체 누가 저런 짓을-"


"여기 좀 와 봐!"


제스의 말이 어느 병사가 외치는 소리에 끊겼다. 제스와 동료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총기를 꼬나쥐고는 외친 병사에게로 달려갔다. 그 병사는 어느 커다란 정육점 앞에 서 있었는데,  볼걸 본 사람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왜 그래? 오른. 무슨 일이야??"


"저.. 저저.. 저기 봐.."

오른이 떨리는 손으로 정육점 내부를 가리켰다. 제스와 테니를 비롯한 병사들도 정육점 내부를 보고 경악하며 겁에 질렸다.

정육점 내부는 인간의 피와 살점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각종 고기를 걸어놓는 도구에는 인간의 머리통이나 허벅지 살들이 걸려졌고, 방금이라도 막 쓴 것 같은 커다란 식칼은 인간의 팔을 썰고 있었는지 잘려있는 팔과 도마 위에 나란히 올려져 있었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인간의 내장으로 만든 소시지나 거꾸로 매달린 나체의 인간등 일반적인 시선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것들이 도처에 널려있던 것이다.

"니미랄. 이게.. 다 뭐냐?"


"씨팔. 이게 뭐야?"

"-!"


병사들이 충격에 제각기 욕설이나 탄식을 내뱉고 있을 때, 뭔가가 어두운 정육점에서 튀어나왔다.

"어-! 안돼!!"

제스가 튀어나온 것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선두에 서서 긴장하고 있던 병사는 적의 기습이라고 여기며 방아쇠를 당겼다. SK-2 소총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며 튀어나온 어린 소년의 가슴팍을 뚫어버렸다.


"이 멍청아!!"


테니가 총을 쏜 병사를 발로 걷어차버리고는 쓰러진 소년에게로 달려갔다. 소년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처럼 꺼억꺼억댔다.


"의무병! 빨리!!"


테니는 자신의 재생제를 뽑아들고는 소년의 목덜미에 꽂았다. 재생제의 약물이 소년의 몸 안으로 주입되었음에도 소년은 꺽꺽대며 죽어가고 있었다. 의무병이 장비를 갖고 달려와 소년과 테니의 옆에 앉았다.

"빨리해! 이러다 죽는다!"

"ㅇ,알았어!"


의무병은 재생 스프레이를 꺼내 소년의 상처에 뿌리고는 솜조각들을 꺼내 소년의 상처에 뿌렸다. 솜조각들은 순식간에 피를 빨아들이며 그의 상처 속에서 몸을 불리고는 출혈을 저지했다.

"이봐! 들려?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니?"

소년의 상처를 응급처치한 의무병은 소년의 동공을 확인하며 차례차례 질문했다. 소년은 고통에 정신을 차리기 힘든지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모르핀 투여해."

"알았어."

의무병이 강력 모르핀을 소년의 팔에 투여했다. 소년은 모르핀이 몸에 들어오자 부들거리며 떨던 것을 멈추었다. 소년은 테니와 의무병을 바라보며 힘겹게 눈을 떴다.

"좋아. 어떻게든 살려냈군. 이봐, 아가야. 다른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니?"


"...지..옥....의..마들... 여기서 나..가..야..."

"이 녀석 뭐라는거냐?"


테니가 의무병을 쳐다보며 물었다. 의무병도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느정도 사태가 진정되자 제스와 다른 병사들도 그들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너희 둘, 망좀 봐."

"알았어."

"살아있어?"


"응. 그런데 아직 안심하면  될걸. 치료를 받아야 해."

"수송선에 돌아가면 되겠다. 아무튼 여기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 게 틀림없어.  소년이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몰라."

"그러자고. 이봐! 돌아가...자..?"

망을 보던 동료들에게 뒤돌아 말하려던 테니가 굳어버렸다. 망을 보던 병사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이쪽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테니와 제스를 비롯해 몇몇 소대원들은 빠르게 반응하며 엄폐물 뒤로 숨거나 무기를 꺼내들었으나 대부분의 병사는 그러지 못했다.


[투타타타타타타타-!]


고개를 푹 숙인 2명의 동료가 쏜 총탄이 빗발치며 병사들의 차폐복을 뚫었다. 8명의 병사가 벌집이 된  풀썩 쓰러졌다. 그들의 차폐복에서는 재생제가 치익하며 투여되는 소리가 났으나 가망은 없어보였다.


"이런 씨팔!!"


니치가 자신의 소총으로 둘의 머리를 정확히 조준해 쏘았다. 차폐복의 바이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머리통이 박살나 내용물이 땅바닥에 쏟아졌다.


아군을 향해 사격하던 병사들이 쓰러지자 엄폐물 뒤에 숨어있던 제스와 그녀의 소대원들이 무기를 쓰러진 그들에게 조준하며 걸어나왔다. 제스가 손가락을 두개 펴고 앞으로 향하자, 두명의 병사가 계속해서 총을 조준하며 쓰러진 그들에게 다가갔다.


"죽었어. 이마가 박살이 났네."

"이 녀석도 죽었어요."

니치가 쓰러트린 병사 2명의 죽음이 확인되자 제스는 그들의 시체로 걸어갔다. 아군을 향해 쏘다가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얼굴은 총탄으로 인해 이리저리 뒤틀리고 함몰되었으나 어딘가 기쁜 표정이었다.


"...대체 뭐냐고. 여기."

"왜 쏜걸까? 제길."

당황하는 병사들을 뒤로하고, 제스는 이곳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녀의 마음 속 어딘가에서는 계속해서 이곳을 벗어나라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일단 수송선 쪽으로 합류해서 상황을 살피자. 다들 움직여! 테니, 소년은 네가 좀 업어줘."

"맡겨줘."


벌써 10명의 대원들을 잃은 제스의 소대는 한시라도 빨리 이 저주받은 곳을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들어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었다.


분명히 똑같은 길이자 들어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뿐이었으나, 22명의 병사들은 왜인지 꺼림칙한 기분을 받고 있었다. 분명히 똑같은 길이지만 처음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제기랄, 제스! 여기 원래 저런 문양들이 박혀있었냐?"


"아니! 기억은 잘 안나지만, 저런 문양은 없었는데.."

병사들이 목격한 문양은 마름모꼴 안에 있는 커다란 눈동자를 삼각형들이 감싸는 알  없는 기이한 문양들이었다.  문양들은 건물의 잔해나 심지어 땅바닥에까지 박혀있었다. 처음에 왔을 때는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저런건 신경쓰지마! 수송선으로 복귀한다. 메크, 다른 소대나 수송선 쪽으로 교신해봐."


"하, 하고 있는데.. 교신이 가지를 않아요. 뭔가에 막힌 것처럼 교신이 멤돌다가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뭐?"

"진짜예요! 사실 아까 정육점에서 그런 기이한 것들을 봤을 때부터 계속해서 다른 소대와 교신을 시도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교신이 연결되지가 않아-"

건물의 잔해 속에서 무언가 잔해를 헤치며 일어섰다. 거대한 뿔과 새빨간 몸체. 족히 10m는 될만한 커다란 덩치. 그리고 놈의 가슴팍에 걸린 인간들의 잘려나간 사지들은 충분히 공포스러운 모습이었다. 악몽에서나 나올법한 그 괴물은 자신의 피묻은 도끼를 높이 들어올리더니 메크를 내리쳐 반으로 갈라버렸다.

"메크!!"

"씨부랄! 저게 뭐야?!"

"티스인가! 티스인가?!"

"사격! 사격! 쏴!!"


병사들의 총탄이 놈에게 쏟아졌다. 총탄들은 가끔 놈의 살점에 박힐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단단한 근육에 가로막혀 땅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총탄에 맞아 흥분한 괴물은 자신의 도끼를 더욱 거세게 휘둘러 3명의 병사를 일시에 두동강 내버리고는 그들의 시체를 입에 털어넣었다. 괴물이 괴성을 지르자, 모든 병사들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공포를 느꼈다.

"이, 일단 저기에 숨어!"


제스가 공포를 느끼며 어느 건물의 잔해를 가리켰다. 건물 주위는 잔뜩 피칠갑이 되어있었으나 놈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병사들은 놈에게 총을 쏘아대며 잔해속으로 몸을 던졌다. 처음에는 소년을 업은 테니가, 그 후에는 소대원들이,  후에는 제스가. 후미에서 지원사격을 해 주던 병사 2명은 잔해속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놈에 우악스런 손에 붙잡혀 허리가 반쪽으로 찢어지고 말았다. 2명  유탄 발사기를 소지한 병사라는 점에서 이미 제스의 소대는 끝장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 안으로! 더 안으로 들어가!"

제스의 외침에 병사들이 잔해속으로 더욱 깊숙히 들어갔다. 잔해 바깥에서는 괴물의 게걸스러운 웃음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허억...허억... 허억... 이정도면 안전할거야."

잔해의 공간속에서 병사들이 숨을 골랐다. 그들은 모두 처음 본 적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어느 병사가 입술을 떨며 말문을 틔웠다.

"대, 대체 뭐였지? 새로운 티스 개체인가? 뭐였냔 말이야!"


"놈의 도끼에 4명이나 죽었어! 놈은 우리를 두부 잘라버리듯 쉽게 베어버렸다고!"

"씨발, 나도 똑똑히 봤어!"


"이런 제기랄. 다들 진정해!!"


겁먹고 흥분한 동료들에게 제스가 윽박을 질렀다. 일단 상황이 어느정도 진정되고 병사들이 진정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처음 만난 적에게 이렇게 당황하면서 맞선다면, 한 명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다들 어느정도 진정됐지?"

"..."

"그래."


"응."

"밖에 있는 놈은 한 놈으로 보여. 덩치도 스웜가드랑 비슷하고. 수류탄을 일제히 놈에게 던진다면 타격을 입힐 수 있을거야. 달리 방법이라도 있는사람?"

모두 조용해졌다. 사실 수류탄을 던지자는 것도 도끼를 휘두르는 놈에게 어느정도 근접해야만 가능한 일인데, 이 방법 말고는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으니.


"아까 전투로 유탄 발사기를 들고있는 녀석이 당했어. 유탄도 못쏜다고. 방법은... 이것 뿐야."

"... 잠시 쉬고 생각하자. 다들 순간적으로 말도 안되는 일들만 겪어서 그런지 지쳤어."

테니가 제스에게 슬쩍 다가와 말했다. 제스가 동료들을 둘러보니,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심과 불안감이 잔뜩 묻어 있었다.


"알았어. 일단 다들  쉬자고."

제스는 그렇게 말하며 잔해 바깥을 조심스레 살폈다. 밖에는 방금까지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들을 살육하던 괴물이 온데간데 없었다. 하지만 제스는 놈이 어디에서든지 숨어있을거라고 생각하며,  기다려보기로 마음먹었다.


"(대체 뭐였던거지? 티스 중에 저렇게 도끼같은 무기를 쓰는 놈들이 있었나? 기껏해봐야 2~3m 짜리 동화된 자들이나 검을 썼는데. 저런건 처음 봐..)"


그는 갖고 있던 초코바를 씹으며 바깥을 쳐다보았다. 금방이라도 괴물들이 튀어나와 자신들을 잡아먹으러 올  같았다.

"제스."

"!!"

"뭘 그리 놀라고 그래. 이거 니치가 찾았는데, 한번 읽어봐."

테니는 바이져를 열고 그에게 한 권의 노트를 건넸다. 노트 표지에는 굳은 피가 묻어있었다.

"이게 뭐야?"

"우리가 숨어있는 이 건물의 잔해가 거주구역이었나 봐. 생필품들이 있더군."

"그래? 알았어."


제스는 노트를 펼쳐보려다가 무언가 생각난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소년은?"


"... 걔?"


"어."

"안 그래도 말하려고 했어. 방금 죽었다."


"쩝."


"죽기 전에 눈을 크게 뜨더니 새까만 동공을 보여주더라고. 그리고는 지옥의 군세라는 이상한 말을 하고 숨이 끊어졌어."

"지옥의 군세?"

"그래."


"아무튼 알겠어. 돌아가 봐."

테니를 돌려보낸 그는 노트를 열어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노트는 급히 쓴 일지 같았다. 앞장에는 쓰잘데기 없는 낙서나 음식의 가격같은 것을 적어두고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흘겨쓴 일지가 나왔다.

<7103년 7월 38일>

무슨 일이 일어난지 모르겠다. 아침에 행성 전체가 진동하듯 울리고는 잠시 필름이 끊겼다. 정신을 차려보니 무너진 내 집이 눈에 들어왔다. 바깥에는 사람들의 비명과 신음이 울려대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비명과 신음에는 황홀함이 가득한 것 같았다.


<7103년 7월 39일>

씨팔, 저것들은 대체 뭐야. 사람들을 잡아먹거나 고문하며 유린하고 있다. 티스인가? 말로만 듣던 그 외계 괴물들이란 말인가? 하지만 놈들은 말을하고 있어, 지능과 성격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저 괴물들의 대열 중 어딘가 아름다운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내 쪽을 뻔하니 쳐다보았다.


노트를 계속 읽어나가던 제스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단어가 점점 틀리거나 맞춤법이 엉망으로 된 문장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흠."

<7103년 7월 40일>


기ㅣㅣ분이좋다. 내가 숨어있던 잔해속으로 그 여인이 찾아와 주었다. 말발ㄹ굽이 있었는데,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밖에서 피칠갑이  사람들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말했다. 저도 왜인지 그ㅡ녀위 말ㅇ리 정말 맞다고 생각해.


<71360ㅁㄴ얀링일403일>

말발굽을 가진 여인과 몸을섞다. 기ㅣ분이좋아ㅏ아아.아. 내 정시니ㅣ신에 정신ㅇㅔ 파고들고있.어.


"뭐야.."

소름이 끼친 제스는 노트를 덮어버렸다. 그는 노트를 건물의 잔해 사이로  던져버렸다. 기분이 너무나 역겨울 지경이었다. 제스는 일지의 마지막 말이 제일 기분 나빴다. 정신에 파고든다니. 무슨 티스의 *뇌 기생충이라도 된단말인가.
(*뇌 기생충: 뇌에 파고들어 숙주를 티스의 노예로 만드는 기생충)

제스는 고민하며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어떻게하면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하면 연대에 합류하여 수송선으로 갈  있을까? 어떻게든 자신들의 상황을 전해야만 했다. 그녀가 심히 고민하고 있을 무렵, 밖은 점점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빛이 점점 줄어들고 날이 어두워지자, 제스도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밀려드는 졸음에 서서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를 재우는 달콤한 속삭임이 그녀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참으로 달콤한 속삭임이었다.

"야! 이새끼 왜이래! 진정시켜!"


"-!"


테니의 다급한 외침에 제스는 잠이 벌떡 깼다. 그는 자신의 옆에 세워둔 소총을 쥐고 테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테니를 비롯 14명의 병사가 1명의 병사를 말리고 있었다.


"제스! 저 새끼 말려! 미쳤나 봐!"

"뭐야! 그만해!"

병사  명이 소총을 자신에게 향하고 자살 소동을 벌이고 있었다. 제스는 그를 보자마자 그만두라고 외쳤다. 하지만 병사는 제스가 오는 것을 기다렸는 듯, 제스를 보며 얕게 미소지었다.

"제스.. 나는 알았어."

"뭐가! 일단 총 내려놓고 말해. 어서!"

"우리는 여기서 살아돌아갈 수 없어. 모두 그들의 노예가 되거나 잔혹한 죽음을 맞겠지."


"이런 미친놈! 그만 두라고!"


"나는 그런 미래를 봐버렸어. 그들이 내게 보여줬어!! 난 버틸 수가 없어!!"

"그만둬어어!!!"


테니가 병사를 말리기 위해 달려갔다. 하지만 병사의 손가락이 더 빨랐다. 소총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며 병사 자신의 머리를 박살내버렸다. 그의 뇌수가 천장에 점점이 뿌려졌다.

"씨발.."

"이제 우리만 남았잖아..."


절망에 빠진 13명의 병사들이 주저앉으며 제각기 울부짖었다. 테니는 벽을  때리고는 제스에게 와서 말했다.

"여기서 빨리 빠져나가야 돼. 이런 곳에 있다간 우리 모두 미치고 말걸. 나만 그런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자꾸만 귓가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있어. 미칠  같단 말이다."

테니가 자신의 귀를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사실 제스도 그런 속삭임을 들으며 잠에 솔솔 빠져들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아무 반박도 할  없었다.

"어떻게 빠져나가게. 아까  괴물을 보고도 느끼는게 없는거야? 놈이 우리를 쫓아오면 방법이 없단 말이야!"

"어쩔 수 없이 이판사판이야. 수송선에 가면 다른 소대 녀석들을 비롯, 연대의 병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거야. 무슨 이유에서인지 교신은 되지 않지만 그렇기에 다들 그쪽에 모여 있겠지!"

"... 위험을 무릅쓰고 가자는거냐?"

"그래..! 가야만해! 여기에 있다간 다들 지 머리통에 총구를 겨누게 될 걸?  나아가 서로를 죽일 수도 있단말이다."


"알겠어."


테니의 말을 이해한 제스는 주저앉은 자신들의 동료이자 소대원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용기를 마음속 깊이 채우며 그들에게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들 잘 들어. 밖은 지금 어둑어둑하지만, 우리는 움직일거야. 수송선 쪽으로 말이야. 길이 바뀔리가 없으니 우리가 왔던 길을 통해 그대로 나가면 될거야. 다들 알았어?"


"..."

"아까 전 처럼 괴물들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 재주껏 살아남아야겠지."

"말도 안돼는 소리하지마! 결국 죽자는 소리잖아?"

"그럼?! 이곳에 있다가 다들 자살하고 싶다는 소리야? 어떻게 됐든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고! 우리를 구출하러   안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잖아!"

제스는 자신의 머리에 총을  병사의 시신을 가리켰다. 그의 뻥 뚫린 머리에서는 총탄의 연기가 노릇노릇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들 알잖아. 가야한다고."


테니도 옆에서 제스를 거들었다. 테니마저 제스를 거들자, 병사들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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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히 따라나와."


테니가 선두에 서며 조심히 잔해를 들췄다. 밖에는 아무것도 없이 깨끗했다. 사람의 시체로 만든 '예술' 작품들과 곳곳에 박힌 기괴한 문양들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다. 가자!"

테니와 제스 두명이 선두에 서고, 나머지 병사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달렸다. 그들은 도시의 잔해를 거치며 말 못할 끔찍한 것들을 보았다. 처음 왔을 때는 분명히 보지 못했던 것들이었으나 누군가 숨겨놨다 내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사람의 내장을 얇게 썰어 만든 하프, 건물의 철근에 매달아 놓은 손과 발, 벽 한 가운데에 박아놓은 사람 머리 주위에 뿌려놓은 백탁액들. 제스는 그것들을 보며 지옥이란게 있으면 이런 곳이 아닐까 싶었다.

그들이 도시를 벗어나기도 전에, 도처에 잠들어있던 자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디에선가 귀신처럼 나타나 병사들을 낚아채 자신들의 노리개로 만들거나 잔혹한 고문을 가하는 등, 악마가 따로 없었다.


제스를 비롯한 소대원들도 죽어가는 동료를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 가장 큰 목적은 후퇴인지라, 눈물을 머금고 달릴 수 밖에 없었다. 괴물들의 공격에 의해    명  끔찍한 죽음을 맞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수송선에만 도착하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꺄아아-!!"

땅바닥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손이 니치를 잡아채 양의 뿔이 달린 시뻘건 괴물들 사이로 던져넣었다. 괴물들은 추악한 손으로 니치의 차폐복과 군복을 갈가리 찢어버리고는 그녀를 범하기 시작했다. 괴물들의 이질적이고 역겨운 성기들이 그녀의 내부를 탐했다. 이윽고 허여멀건한 체액들이 그녀의 위로 뿌려지며, 절망에 가득 찬 니치의 심장은 충격에 멈추어버리고 말았다.


"니치!!"

"돌아보지마! 죽고싶어?!"


테니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어버린 니치를 보며 울분을 터트렸으나, 제스는 앞으로 계속해서 돌진했다. 이런 자살과 같은 돌격으로 제스와 테니를 비롯 2명의 병사들만이 살아남아 수송선이 보이는 곳까지 올 수 있었다.


"다 왔어!! 다들! 조금만.."

제스의 응원을 받던 병사 1명이 하늘 높이 낚아채졌다. 3명은 불길함에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놈! 메크를 반으로 갈라버리고 5명을 죽여버린  괴물이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의 손에 들고있던 병사를 노려보았다.

"윽-!! 으으으으아가악!!"

놈의 눈에 정확히 시선이 맞은 병사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더니 멍하니 뻗어버렸다. 놈은 병사를 땅에 살포시 내려놓았고, 정신이 망가진 병사는 3명을 향해 총을 겨누기 시작했다. 인간의 나약한 정신은 이 괴물들에게는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정신이 망가진 병사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동료였던 자들에게 총을 쏘았다. 제스와 테니는 빠르게 반응해 병사의 머리통과 가슴팍에 총알을 박아버렸지만, 운 나쁘게도 테니 옆에 서 있던 병사는 총격에 쓰러졌다.

"크하하하하하하하!"


테니와 제스가 자신의 동료를 쏘는 모습을 쭉 지켜본 거대한 괴물은 다시금 호탕하게 웃었다. 테니와 제스는 놈 앞에서 기가 꺾여 점점 뒷걸음질 쳤다.

괴물놈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로 그들에게 뚜벅 뚜벅 걸어왔다. 놈의 발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공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흙먼지였을까? 검은 연기가 놈의 발치에서 미끄러져 나오더니 테니와 제스 주위에 은은히 퍼졌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


도끼를 높이 올려든 놈은 그들을 향해 내려찍을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놈은 내려찍지 않았다. 놈은 테니와 제스의 뒷편에 있는 수송선 5대를 노려보더니, 제스와 테니를 비웃듯 미소지었다.

"크흐흐흐.."


"!!"


테니와 제스가 뒤를 돌아보자, 수송선들이 급히 떠나며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미 다른 병사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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